검색결과 총 14건
-
추석 연휴 첫날 귀성길 짙은 안개…서울→부산 최대 10시간 30분
[경제일보] 추석 연휴 첫날인 24일, 귀성 차량이 몰리는 오전에 서해안과 내륙 곳곳에 짙은 안개가 낄 전망이다. 기상청은 출발 전 도로 기상정보를 확인하고 운행 중에는 속도를 줄일 것을 당부했다. 24일 새벽부터 오전 10시 사이 경기 내륙과 강원 내륙·산지, 충청권, 전라권 일부 지역은 가시거리가 200m 미만으로 떨어질 수 있다. 안개는 강이나 호수 주변 도로에서 더욱 짙어질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 서해중부해상에도 안개가 예상돼 선박을 이용한다면 운항 여부를 미리 확인해야 한다. 전국에는 구름이 많겠다. 아침 최저기온은 14~19도, 낮 최고기온은 26~30도로 예보됐다. 서울은 19도에서 28도, 광주는 19도에서 30도까지 오르겠다. 낮과 밤의 기온 차가 큰 만큼 이른 아침 이동하거나 야외에서 시간을 보낼 때는 옷차림에 신경 쓰는 것이 좋다. 강원 북부 동해안과 산지에는 늦은 밤부터 비가 내릴 전망이다. 안개와 함께 교통량도 귀성길의 변수다. 정부는 이번 추석 특별교통대책 기간에 3093만 명이 이동하고, 고속도로 통행량은 하루 평균 605만 대에 이를 것으로 내다봤다. 귀성길은 24일 오전, 귀경길은 추석 당일인 25일 오후가 가장 혼잡할 것으로 예상했다. 24일 오전 서울 출발 기준 최대 예상 소요시간은 부산 10시간 30분, 광주 9시간 30분, 목포 10시간 45분, 강릉 7시간이다. 이는 혼잡 시간대의 전망치로, 실제 이동 시간은 출발 시각과 사고·기상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한국도로교통공단은 안개가 낀 도로에서 전조등을 켜고 앞차와 거리를 충분히 둔 채 감속하라고 안내한다. 장거리 운전 중 졸음이 오면 무리하게 계속 달리지 말고 가까운 휴게소나 졸음쉼터에 들러 쉬어야 한다. 출발 전 차량 상태를 살피고 이동 중에는 실시간 교통정보를 확인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24일부터 27일까지는 고속도로 통행료가 면제된다.
2026-09-24 07:55:00
-
-
-
-
5·18을 '소요'라 부른 국회, 역사를 거꾸로 돌릴 순 없다
[경제일보] 46년 전 광주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대한민국은 아직도 모두 밝혀내지 못했다. 누가 최종 발포 명령을 내렸는지처럼 미완의 질문도 남아 있다. 그렇다고 1980년 5월의 역사가 다시 백지가 된 것은 아니다. 법원의 판결이 있었고, 국가 차원의 진상규명이 이어졌으며, 계엄군의 발포와 시민 희생에 관한 숱한 기록이 축적됐다. 역사는 완결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아무 이름이나 붙일 수 있는 무주공산도 아니다. 지난 13일 국회도서관에서 열린 ‘5·18 민주화운동 재조명’ 공개포럼이 논란을 일으킨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진숙 국민의힘 의원이 시민단체 새역사국민운동과 공동 주최한 이 행사에서 이영훈 새역사국민운동 대표는 1980년 5월 광주를 ‘소요 사태’라고 표현했다. 또한 이 의원은 5·18이 특정 진영의 소유물이 돼서는 안 된다며 이른바 ‘성역화’ 문제를 제기했다. 국민의힘 원내지도부는 행사 전 취소를 권고했고, 논의 내용은 당의 공식 입장이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더불어민주당은 이 의원 제명을 거론하며 강하게 반발했다. 현장에서는 고성과 몸싸움이 벌어져 경찰까지 출동했다. 정치권의 반응을 걷어내고 본질부터 볼 필요가 있다. 5·18을 연구하고 토론하는 데 금기가 있어서는 안 된다. 기존 조사에 오류가 있다면 밝혀야 하고, 새로운 자료가 나오면 기존의 역사 서술도 수정할 수 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어떤 역사적 사건도 질문할 수 없는 성역이 되어서는 곤란하다. 이 의원이 제기한 문제의식 가운데 이 대목까지 부정할 이유는 없다. 하지만 성역을 허물겠다는 것과 사실의 토대를 허무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다. 학술적 재검토에는 조건이 있다. 기존의 결론을 뒤집으려면 기존보다 강한 증거가 있어야 한다. 새로운 사료를 내놓거나 기존 사료의 해석이 왜 틀렸는지를 논증해야 한다. 그것이 연구다. 국가와 사법부가 수십 년에 걸쳐 확인해 온 역사적 사실을 그대로 둔 채 사건의 명칭만 바꾼다고 새로운 역사가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특히 ‘소요’라는 표현은 가볍지 않다. 단어에는 시선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같은 사건도 ‘민주화운동’이라고 부를 때와 ‘소요’라고 부를 때 독자가 받아들이는 역사적 주체와 책임은 달라진다. 전자는 국가권력과 시민 저항의 관계를 보게 하고, 후자는 먼저 사회질서의 혼란을 떠올리게 한다. 물론 특정 단어의 사용만으로 곧바로 불법이라고 규정해서도 안 된다. 정치적·학술적 표현의 법적 허용 범위는 구체적인 발언과 맥락을 놓고 판단해야 한다. 다만 법적으로 말할 수 있다는 것과 역사적으로 타당한 말이라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표현의 자유는 국가가 함부로 입을 막지 못하도록 만든 권리이지, 말한 사람이 사실 검증과 사회적 비판에서 면제된다는 뜻이 아니다. 더구나 이번 토론회가 열린 곳은 국회다. 국회는 개인 방송의 스튜디오가 아니다. 국민의 대표가 입법권을 행사하는 헌정기관이다. 국회의원이 행사를 공동주최하고 국회 공간을 제공하면 그 주장에는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든 공적 권위가 실린다. 논쟁적인 역사 문제를 국회 안으로 가져오겠다면 그만큼 더 치밀한 근거와 반론의 기회를 준비했어야 한다. 국민의힘 지도부가 사전에 토론회 취소를 권고했다는 사실 역시 가볍게 볼 대목은 아니다. 당 지도부 스스로 파장을 우려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행사가 열렸고 예상했던 논란이 현실이 됐다. 당의 공식 입장이 아니라는 설명만으로 책임을 다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자유민주주의와 헌정질서를 중요한 가치로 내세우는 정당이라면 5·18에 관한 역사적 인식 역시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고 반대편의 물리력까지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다. 행사 도중 항의와 몸싸움이 벌어졌고 경찰이 출동했다. 5·18 희생자와 유족에게 모욕적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주장을 접한 사람들의 분노를 이해하기는 어렵지 않다. 하지만 민주주의에서 잘못된 주장에 대한 답은 상대의 마이크를 빼앗는 것이어서는 안 된다. 역사 왜곡에 가장 치명적인 것은 물리력이 아니라 기록이다. 판결문을 펼치고, 당시 군 기록을 꺼내고, 피해자의 증언과 국가 조사보고서를 제시하면 된다. 주장에 오류가 있다면 하나씩 입증하면 된다. 오히려 폭력으로 행사를 중단시키려 하면 논쟁의 초점은 역사적 사실에서 ‘표현을 탄압했느냐’는 문제로 옮겨간다. 왜곡된 주장을 반박하려다 그 주장에 피해자의 지위를 선물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여기에 민주주의의 까다로움이 있다. 듣기 싫은 말을 견뎌야 한다. 동시에 그 말이 틀렸다면 틀렸다고 단호하게 말해야 한다. 자유를 지킨다는 이유로 사실을 포기해서도 안 되고, 사실을 지킨다는 명분으로 자유를 짓밟아서도 안 된다. ‘한서(漢書)’에는 하간헌왕 유덕의 학문 자세를 두고 실사구시(實事求是), 곧 사실에 근거해 옳음을 구했다고 기록돼 있다. 오늘날 흔히 쓰는 이 네 글자의 무게는 역사 논쟁에서 더욱 크다. 5·18을 새롭게 해석하겠다면 ‘새롭게’보다 먼저 ‘사실에 근거했는가’를 물어야 한다. 반대로 그 해석을 잘못됐다고 비판하려면 ‘불쾌하다’보다 먼저 ‘어떤 사실이 틀렸는가’를 보여줘야 한다. 역사를 둘러싼 싸움의 최종 심판자는 목소리의 크기도, 의석수도 아니다. 남아 있는 기록과 검증 가능한 사실이다. 정치권이 5·18을 진영의 무기로 이용하는 태도 역시 이제는 벗어날 때가 됐다. 보수정당이 5·18을 인정하는 것이 보수의 역사를 부정하는 일도 아니고, 진보정당이 5·18을 계승한다고 해서 그 역사를 독점할 권리가 생기는 것도 아니다. 5·18은 어느 정당의 사유물이 아니라 대한민국 민주주의가 어떤 시행착오와 희생을 거쳐 여기까지 왔는지를 보여주는 공동의 역사다. 그렇기 때문에 더 엄격해야 한다. 아직 밝혀지지 않은 사실은 계속 파헤쳐야 한다. 기존 연구의 오류도 얼마든지 비판해야 한다. 하지만 의문이 일부 남아 있다는 사실을 이용해 이미 확인된 역사 전체를 다시 안개 속으로 밀어 넣는 것은 학문의 태도가 아니다. 반대로 사회적 합의가 이뤄졌다는 이유로 추가 연구 자체를 금기시하는 것도 건강한 역사 인식이 아니다. 역사는 성역이 돼서는 안 된다. 그렇다고 무한정 다시 쓸 수 있는 정치적 백지도 아니다. 따라서 국회에서 벌어진 일은 그래서 한쪽만의 문제로 정리하기 어렵다. ‘학술 토론’의 이름 아래 역사적 사실을 다룰 때 요구되는 엄격함이 부족했다면 비판받아야 한다. 그 주장에 맞선다는 이유로 물리력을 행사했다면 그것 역시 민주주의의 방식이 아니다. 국회라면 양쪽 모두에 더 높은 기준을 요구해야 한다. 말할 자유는 최대한 넓게 보장하되 그 말에는 근거를 요구하고, 잘못된 주장에는 단호하게 반박하되 상대의 발언권까지 빼앗지는 않는 것. 그것이 자유민주주의가 권위주의와 다른 지점이다. 5·18을 무엇이라고 부르느냐는 단어 하나의 문제가 아니다. 그 이름 속에는 국가권력의 책임과 희생자의 명예, 대한민국 민주주의가 지나온 길에 대한 평가가 들어 있다. 그러니 다시 묻는다면 답은 단순하다. 역사를 다시 연구할 자유는 있다. 다만 새로운 증거 없이 역사를 과거의 언어로 되돌릴 권리까지 있는 것은 아니다. 표현의 자유는 사실 앞에서 책임을 지는 자유다.
2026-08-14 11:10:21
-
-
전쟁보다 무서운 건 경제 불확실성이다
[경제일보] 전쟁은 끝났다고 해서 곧바로 끝나지 않는다. 총성이 멎은 뒤에도 전쟁은 유가에 남고 환율에 남고 물류비에 남고 기업의 투자계획서와 가계의 장바구니에 남는다. 미국과 이란이 전쟁 종식과 호르무즈 해협 재개방에 합의했다는 소식은 분명 다행스러운 일이다. 세계 금융시장은 즉각 안도했다. 국제유가는 급락했고 주요 증시는 반등했다. 전쟁 프리미엄이 빠지자 시장은 마치 긴 터널을 빠져나온 듯 환호했다. 그러나 지금 필요한 것은 환호가 아니라 냉정이다. 전쟁보다 무서운 것은 전쟁이 끝난 뒤에도 사라지지 않는 경제 불확실성이다. 휴전문서 한 장이 원유 생산시설을 하루아침에 복구하지 못한다. 해협 재개방 선언이 곧바로 선박 보험료를 낮추지도 않는다. 국제유가가 하루 이틀 떨어졌다고 해서 물가가 곧장 안정되는 것도 아니다. 전쟁은 정치적으로는 합의로 끝나지만 경제적으로는 비용 청구서가 도착할 때 비로소 시작된다. 이번 미국·이란 전쟁이 세계경제에 남긴 첫 번째 상처는 에너지 시장이다. 호르무즈 해협은 세계 원유와 액화천연가스가 지나는 핵심 길목이다. 그 길목이 전쟁의 인질이 되자 세계는 다시 한 번 에너지 안보가 추상적 구호가 아니라 경제 생존의 문제임을 확인했다. 합의 이후 브렌트유 가격은 급락했지만 이것은 위험이 사라졌기 때문이라기보다 최악의 시나리오가 일단 뒤로 밀렸기 때문이다. 유가가 내려도 공급망은 즉시 회복되지 않는다. 산유국의 생산설비, 정제시설, 항만, 보험, 선박 운항, 금융결제망은 모두 시간이 필요한 시스템이다. 더 큰 문제는 시장의 기억이다. 한번 흔들린 시장은 쉽게 예전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선사들은 통항이 가능하다는 정치적 선언보다 실제 항로의 안전을 본다. 보험사는 합의문보다 재발 가능성을 계산한다. 정유사와 항공사, 석유화학 기업은 현물가격보다 3개월 뒤, 6개월 뒤의 조달 안정성을 본다. 그래서 전쟁 뒤의 경제는 늘 ‘안정’이 아니라 ‘안정 확인’의 시간을 요구한다. 불확실성은 가격 그 자체보다 더 비싸다. 이번 합의는 세계 중앙은행에도 어려운 숙제를 남겼다. 전쟁 중 급등한 에너지 가격은 물가를 밀어 올렸다. 유가가 떨어지면 물가 압력은 완화되지만 이미 오른 운송비와 원재료비, 기대인플레이션은 시차를 두고 경제 전반에 스며든다. 중앙은행은 금리를 내리고 싶어도 물가가 불안하면 움직이기 어렵다. 금리를 유지하면 경기 회복은 더뎌지고 금리를 내리면 다시 물가와 환율이 흔들릴 수 있다. 전쟁은 끝났지만 통화정책의 안개는 더 짙어질 수 있다. 한국경제에는 이 불확실성이 더 예민하게 작용한다. 한국은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높고 제조업과 수출 비중이 큰 나라다. 원유와 가스 가격이 오르면 기업의 생산비가 먼저 오른다. 정유·화학·철강·항공·해운은 물론이고 전력비 부담이 큰 반도체와 데이터센터 산업에도 파장이 간다. 유가가 오르면 무역수지가 흔들리고 무역수지가 흔들리면 환율이 불안해진다. 환율이 오르면 수입물가가 뛰고 수입물가가 뛰면 소비자물가가 다시 고개를 든다. 결국 중동의 포성이 서울의 주유소 가격표와 서민 밥상으로 번지는 구조다. 합의 이후 유가가 안정된다면 한국경제에는 분명 숨통이 트인다. 기업의 원가 부담은 줄고 항공·해운·석유화학·자동차 등 에너지 민감 업종은 불확실성을 덜 수 있다. 고유가에 짓눌렸던 소비심리도 일부 회복될 수 있다. 환율 안정은 외국인 투자자금 유입에도 긍정적이다. 최근 반도체 수출 호조가 이어지는 상황에서 에너지 가격 부담이 낮아지면 한국경제는 다시 회복 궤도에 올라설 여지가 있다. 그러나 이것을 경기 반전의 신호로 과대해석해서는 안 된다. 종전 합의가 곧 경기부양책은 아니다. 전쟁은 이미 비용을 남겼다. 기업들은 몇 달 동안 비싼 원료와 물류비를 감당했다. 일부 기업은 납기와 계약조건을 조정했고 일부 가계는 고유가와 고물가 속에서 소비를 줄였다. 한번 미뤄진 투자는 다시 집행되기까지 시간이 걸린다. 한번 닫힌 소비지갑은 유가가 떨어졌다는 뉴스 하나로 곧바로 열리지 않는다. 정부와 한국은행이 봐야 할 지점도 여기에 있다. 지금 필요한 정책은 ‘전쟁이 끝났으니 정상화됐다’는 낙관론이 아니라, ‘전쟁이 끝났지만 불확실성은 남았다’는 위험관리다. 물가가 완전히 안정되기 전까지 통화정책은 신중해야 한다. 동시에 취약계층과 에너지 다소비 업종에는 선별 지원이 필요하다. 고유가의 부담은 모든 국민에게 같지 않다. 대기업은 헤지와 장기계약으로 버틸 수 있지만 영세 자영업자와 운송업자, 농어민, 저소득층은 유가 변동을 그대로 맞는다. 정부는 유류세 인하 같은 단기 처방에만 기대서는 안 된다. 필요할 때 한시적 완충장치는 있어야 하지만 재정 여력이 무한한 것은 아니다. 더 중요한 것은 에너지 수입선 다변화, 전략비축 체계 점검, 핵심 원자재 공급망 확보, 항만·해운 리스크 관리, 기업의 환율·유가 헤지 역량 강화다. 전쟁이 남긴 교훈은 단순하다. 싸게 사는 것보다 안정적으로 사는 것이 더 중요해졌다. 효율만 따지던 공급망의 시대가 저물고, 회복탄력성을 따지는 공급망의 시대가 왔다. 기업도 달라져야 한다. 중동 리스크를 일시적 외부 변수로만 볼 수 없다. 지정학은 이제 재무제표의 바깥에 있는 문제가 아니다. 원가, 환율, 운송, 보험, 재고, 투자, 배당까지 모두 흔드는 변수다. 최고경영자는 매출 목표만이 아니라 지정학적 리스크 시나리오를 들여다봐야 한다. 에너지 가격이 배럴당 70달러일 때와 100달러일 때, 호르무즈 통항이 정상일 때와 부분 제한될 때, 환율이 100원 더 오를 때의 손익을 따져야 한다. 위기 대응은 전쟁이 난 뒤 만드는 문서가 아니라 평시에 쌓아두는 체력이다. 금융시장도 안도 랠리에 취해서는 안 된다. 전쟁 합의 이후 주가가 오르고 유가가 내리는 것은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그러나 금융시장은 종종 정치적 이벤트에 먼저 환호하고 실물경제의 복구 속도를 뒤늦게 확인한다. 유가 하락이 물가 안정으로 이어질지, 물가 안정이 금리 인하로 이어질지, 금리 인하가 소비와 투자 회복으로 이어질지는 아직 열린 질문이다. 지금의 시장 반등은 ‘평화 배당’이라기보다 ‘공포 할인 해소’에 가깝다. 여기서 고전의 지혜를 떠올릴 필요가 있다. 손자병법은 “용병을 잘하는 자는 다시 징병하지 않고, 군량을 세 번 싣지 않는다”고 했다. 전쟁을 잘하는 장수는 싸움터에서만 이기는 사람이 아니라 보급의 비용을 아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오늘의 경제도 마찬가지다. 국가의 실력은 전쟁의 승패보다 전쟁 뒤 비용을 얼마나 줄이느냐에서 드러난다. 에너지, 물류, 금융, 물가, 환율의 보급선을 관리하지 못하면 평화의 이름 아래서도 경제는 계속 흔들린다. 이번 미국·이란 합의는 세계경제에 시간을 벌어줬다. 하지만 시간을 번 것과 문제를 해결한 것은 다르다. 호르무즈 해협이 다시 열린다고 해도 세계경제는 이미 에너지 안보의 취약성을 봤다. 국제유가가 내려간다고 해도 한국경제는 수입 에너지 의존 구조를 다시 확인했다. 증시가 오른다고 해도 기업과 가계가 체감하는 불확실성이 하루아침에 사라지지는 않는다. 정책당국은 이제 세 가지를 해야 한다. 첫째, 유가·환율·물류비의 변동이 물가와 산업별 비용에 미치는 영향을 면밀히 추적해야 한다. 둘째, 에너지와 원자재 공급망을 장기계약·비축·대체선 확보 중심으로 재설계해야 한다. 셋째, 전쟁 이후 완화된 시장 분위기를 구조개혁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 위기가 지나가면 개혁의 긴장도 함께 풀린다. 그러나 다음 위기는 늘 우리가 방심할 때 온다. 전쟁보다 무서운 것은 경제 불확실성이다. 전쟁은 언젠가 끝난다. 그러나 불확실성은 끝났다는 선언을 믿지 않는다. 그것은 숫자와 가격과 계약과 기대 속에 남아 서서히 비용을 청구한다. 지금 한국경제가 해야 할 일은 평화의 뉴스에 취하는 것이 아니라, 전쟁이 남긴 경제의 균열을 차분히 메우는 일이다. 평화는 합의문으로 시작되지만 경제의 안정은 준비된 국가만이 얻을 수 있다.
2026-06-16 15:11:44
-
트럼프 "호르무즈 비밀작전으로 1억배럴 공급"…유가 방어 앞세워 이란 압박
[경제일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미군의 호르무즈 해협 비밀작전을 공개하며 1억배럴 이상의 원유가 시장에 공급됐다고 주장했다. 이란과의 군사 긴장이 이어지는 가운데 미국이 핵심 원유 수송로를 사실상 통제하고 있다는 메시지를 내놓은 것으로, 유가 안정과 대이란 압박을 동시에 겨냥한 발언으로 풀이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10일(현지시간) 트루스소셜을 통해 “지난달 미군에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는 유조선과 상선을 지원하는 비밀작전을 지시했다”며 “그 결과 1억배럴 이상의 석유가 해협을 지나 공개 시장에 공급됐다”고 밝혔다. 그는 상선 200척 이상이 해협을 안전하게 통과했다고도 주장했다. 다만 해당 원유 물량과 선박 수는 현재 공개자료 기준으로 독립 검증에 한계가 있다. ABC뉴스는 트럼프 대통령이 밝힌 숫자의 정확성을 즉시 확인하지 못했다고 보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앞서 백악관 행사에서도 “매일 밤 수백만배럴의 석유를 끌어내 왔다”고 언급했지만, 구체적인 작전 방식과 기간, 참여 선박 내역은 공개되지 않았다. 호르무즈 해협은 세계 에너지 시장의 급소다. 미국 에너지정보청(EIA)에 따르면 2024년 이 해협을 지난 석유 물동량은 하루 평균 약 2000만배럴로 세계 석유·석유제품 소비의 약 20%에 해당한다. 사우디아라비아, 이라크, UAE, 쿠웨이트, 카타르 등의 원유와 액화천연가스가 이 해협을 통해 아시아와 유럽 시장으로 이동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작전이 유가 급등을 막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유가가 배럴당 250달러가 아니라 85~90달러 수준에 있는 이유”라고 주장했다. 실제 크리스 라이트 미 에너지부 장관도 전날 호르무즈 해협과 걸프 지역의 선박 통항, 원유 수출이 최근 의미 있게 늘고 있다고 밝혔다. 다만 정상적인 에너지 흐름으로 돌아가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수 있다는 전망도 함께 내놨다. 이번 발언은 군사·외교적 신호도 담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이 아니라 미국이 호르무즈 해협을 통제하고 있다”며 이란을 강하게 압박했다. 미국은 이란과 평화 합의를 모색하고 있다고 밝히면서도 협상에 실패할 경우 강경 대응에 나설 수 있다는 메시지를 병행하고 있다. 호르무즈 작전 공개는 에너지 안보와 대이란 군사 압박을 하나의 프레임으로 묶는 행보다. 시장 시선은 실제 통항 회복 속도와 이란의 대응에 쏠린다. 호르무즈 해협의 선박 통행이 안정되면 국제유가에는 하방 압력이 커질 수 있다. 반대로 미국과 이란 간 군사 충돌이 재확산되거나 상선 안전이 다시 흔들릴 경우 유가는 언제든 급등할 수 있다. 특히 한국과 일본, 중국, 인도 등 아시아 주요 원유 수입국은 호르무즈 리스크에 직접 노출돼 있다. 호르무즈는 단순한 해협이 아니다. 세계 경제의 혈관이자 중동 정세의 압력이 곧바로 유가와 물가로 번지는 통로다. 트럼프 대통령의 비밀작전 공개는 유가 방어의 성과를 과시하는 정치적 선언이지만 시장이 원하는 것은 숫자의 주장보다 항로의 안정이다. 전쟁의 안개가 걷히기 전까지 호르무즈의 물길은 세계 경제의 가장 예민한 가격표로 남을 것이다.
2026-06-11 07:40:08
-
'AI 미래' vs '보수 재건' vs '지역 탈환'…3인 3색 '운명의 북구갑'
[경제일보] 부산 북구갑 국회의원 보궐선거는 6·3 지방선거와 함께 치러지는 재보궐 선거 가운데 가장 전국적인 관심을 받는 지역이다. 더불어민주당 전재수 전 의원이 부산시장 선거에 출마하면서 공석이 된 자리이고, 민주당은 하정우 전 청와대 AI미래기획수석을 전략공천했다. 국민의힘은 박민식 전 국가보훈부 장관을 확정했고,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는 무소속으로 뛰어들었다. 이 선거가 특별한 이유는 북구갑의 정치적 이중성 때문이다. 부산 전체로 보면 보수 우위가 강하지만, 북구갑은 전 전 의원이 버텨낸 민주당의 부산 교두보다. 2024년 22대 총선에서 전 전 의원은 52.31%를 얻어 국민의힘 서병수 후보 46.67%를 꺾었다. 다시 말해 북구갑은 ‘부산은 보수’라는 공식과 ‘북구갑은 민주당도 이길 수 있다’는 경험이 동시에 작동하는 지역이다. 안개 속 판세, 조사 방식 따라 요동치는 ‘민심의 풍향계’ 최근 여론조사는 하 후보가 선두권을 유지하는 가운데, 보수 표심이 한 후보와 박 후보 사이에서 갈라지는 흐름을 보여준다. KBS부산총국이 한국리서치에 의뢰한 여론조사(KBS부산총국 의뢰, 한국리서치 조사, 2026년 5월 8~10일, 부산 북구갑 거주 만 18세 이상 남녀 500명 대상, 3개 통신사 제공 휴대전화 가상번호 100% 무작위 추출, 면접원에 의한 전화면접조사 방식, 응답률 22.7%, 표본오차 95% 신뢰수준 ±4.4%포인트.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에서는 하정우 37%, 한동훈 30%, 박민식 17% 등의 지지율이 나타났다. 하 후보와 한 후보의 격차는 오차범위 안이고, 두 후보는 박 후보를 오차범위 밖에서 앞섰다. 같은 조사에서 하정우·한동훈 양자 가상대결은 40% 대 37%로 초접전, 하정우·박민식 가상대결은 43% 대 31%로 나타났다. 앞선 SBS가 입소스에 의뢰한 여론조사(SBS 의뢰, 입소스 조사, 2026년 5월 1~3일, 부산 북구갑 선거구 거주 만 18세 이상 남녀 유권자 503명 대상, 성·연령·지역 할당 후 무선 가상번호 추출 무선 전화면접조사 방식, 응답률 14.4%, 표본오차 95% 신뢰수준 ±4.4%포인트.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에서도 하 후보는 38%를 기록하며 두 후보를 앞섰다. 박 호부와 한 후보는 각각 26%, 21%의 지지율을 보였다. 하 후보가 두 보수 후보를 오차범위 밖에서 앞섰고, 보수 단일화 찬반은 찬성 39%, 반대 34%로 팽팽했다. 단일화 찬성 응답자 중 적합도는 박민식 42%, 한동훈 41%로 사실상 백중세였다. 반면, 부산MBC가 한길리서치에 의뢰한 여론조사(부산MBC 의뢰, 한길리서치 조사, 2026년 5월 1~3일, 부산 북구갑 주민 584명 대상, 무선 ARS 84.3%·유선 RDD 15.7% 혼합 방식, 응답률 5.3%, 표본오차 95% 신뢰수준 ±4.1%포인트.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에서는 또 다른 흐름이 잡혔다. 하정우 34.3%, 한동훈 33.5%, 박민식 21.5%로 하 후보와 한 후보의 격차는 0.8%포인트에 불과했다. 같은 시기 조사인데도 KBS·한국리서치, SBS·입소스, 부산MBC·한길리서치 결과가 조금씩 다르게 나타난 것은 조사 방식, 유선 포함 여부, 조사 시점, 보수 후보 표기 효과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북구를 ‘AI 메카’로…‘미래 산업론’ 승부수 던진 하정우 하 후보의 선거 전략은 두 축이다. 하나는 전 전 의원이 20년 가까이 쌓아온 북구갑 지역 기반을 승계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자신이 가진 AI 전문가 이미지를 북구의 미래 산업 전략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그는 북구를 ‘AI 교육 일번지’로 만들겠다는 구상을 밝혔다. 하 후보의 핵심 정책은 ‘AI 북구’다. 부산시장 후보로 출사표를 전 전 의원과 하 후보는 부산을 AI 핵심도시로 육성하겠다며 동부산 미디어 AI 특구, 서부산 부산 AI 산업운영센터 신설, 부울경 제조업·항만과 AI 결합을 제시했다. 이는 북구갑 보선과 부산시장 선거를 하나의 정책 패키지로 묶으려는 전략이다. 전 후보가 부산시정을 잡고, 하정우 후보가 국회에서 예산과 제도를 뒷받침한다는 ‘원팀 실행론’이다. 다만 하 후보의 약점은 선명하다. 전 전 의원의 후광은 자산이지만, 동시에 ‘전재수 없는 하정우’가 얼마나 독자적 경쟁력을 갖느냐는 질문을 낳는다. 선출직 경험이 부족하고, 지역 현장 정치의 축적도 박 후보에 비해 짧다. 하 후보가 승리하려면 단순히 ‘민주당 후보’나 ‘AI 전문가’에 머무르지 않고 구포·덕천·만덕 생활권의 교통, 주거, 상권, 교육 문제를 자신의 언어로 풀어내야 한다. 하 후보의 ‘강점’은 AI 전문성, 전재수 전 의원의 지역 기반, 민주당 부산 교두보 수성 명분이다. 반면 ‘약점’은 낮은 지역 정치 경험, 전략공천 후보 이미지, ‘전재수 후광’에 의존한다는 비판 가능성이다. ‘기회’ 요소는 보수 표심 분열, 전 전 의원과의 동반 상승 효과, 북구의 도시재생·교육 수요이고, ‘위협’은 보수 단일화 압박, 한동훈 후보의 전국적 흡인력, 박 후보의 지역 연고론이다. 중앙 정치 프레임 앞세운 한동훈…‘지역 밀착형 민심 잡기’ 관건 한 후보의 강점은 압도적 인지도다. 북구갑 보선은 한 후보 출마 이후 지역 선거를 넘어 전국 정치의 무대가 됐다. 그는 무소속으로 부산 북구갑 출마를 선언하며 국민의힘 지도부와 이재명 대통령을 모두 비판하고, 보수 재건을 내세우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한 후보의 선거 언어는 지역 개발보다 먼저 정권 견제, 보수 재건, 정치 변화에 놓여 있다. 한 후보에게 가장 큰 기회는 ‘박민식보다 더 강한 보수 후보’로 각인되는 것이다. KBS·한국리서치 조사에서 한 후보는 30%를 얻어 박 후보 17%를 크게 앞섰고, 부산MBC·한길리서치 조사에서도 하 후보와 0.8%포인트 차 초박빙을 기록했다. 국민의힘 공식 후보는 박 후보지만, 일부 여론조사상 보수 대표 주자 경쟁에서는 한 후보가 앞서거나 경합하는 장면이 나타난 것이다. 하지만 무소속의 한계도 분명하다. 조직, 투표 독려, 선거 당일 동원력에서는 정당 후보보다 불리하다. 또 보수 재건과 중앙정치 메시지가 지나치게 강하면 북구갑 유권자에게 “지역보다 대권 행보가 먼저 아니냐”는 의구심을 줄 수 있다. 한 후보의 ‘강점’은 전국 인지도, 보수 팬덤, 높은 정치적 주목도이지만, ‘약점’은무소속 조직 한계, 지역 밀착성 부족, 중앙정치 프레임 과잉이다. ‘기회‘는 박 후보를 제치고 보수 대표 주자로 자리 잡을 가능성, 단일화 국면 주도권, 하 후보와의 양강 구도 형성이지만, ‘위협’은 국민의힘 지지층의 반감, 단일화 실패 책임론, 지역 현안보다 대권 메시지가 앞선다는 비판이다. ‘북구 르네상스’ 꿈꾸는 박민식…‘장관 출신’ 중량감으로 정면돌파 박 후보의 핵심 자산은 지역 연고와 공당의 조직력이다. 그는 부산 북·강서갑에서 18·19대 국회의원을 지낸 재선 의원 출신이고, 윤석열 정부 초대 국가보훈부 장관을 지냈다. 국민의힘은 당원 투표 50%, 일반 국민 여론조사 50%를 합산한 경선 결과 박 후보를 최종 후보로 확정했다. 정책은 개발과 생활 인프라에 집중돼 있다. 박 후보는 ‘북구 르네상스’를 핵심 공약으로 내걸고, 경부선 철도 지하화 구포·가야 구간 포함, 도시재생, 구포·덕천·만덕 지역별 개발 공약 등을 제시했다. 하 후보가 AI와 미래 산업을 전면에 세우고, 한 후보가 보수 재건을 외친다면, 박 후보는 “북구를 아는 사람이 묵은 숙원사업을 풀겠다”는 지역 실리론으로 맞서고 있는 모습이다. 문제는 보수 대표성의 분산이다. 박 후보는 국민의힘 공식 후보지만, KBS 조사에서는 한 후보에게 크게 뒤졌다. 이에 보수층이 한 후보 쪽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해석과 국민의힘 지도부 총출동이 역효과를 냈을 수 있다는 분석이 동시에 나오고 있다. 박 후보의 ‘강점’은 북구 연고, 재선 의원·장관 경력, 국민의힘 공식 후보라는 조직력이지만, ‘약점’은 한 후보와의 보수 표심 경쟁, 최근 조사상 지지율 하락, 과거 지역구 이동에 따른 공격 가능성이다. ‘기회’ 요소는 막판 보수 결집, 국민의힘 조직 동원력, 개발 공약의 체감도이고, ‘위협’ 요소는 한 후보의 독자 완주, 하 후보의 선두권 고착, 보수 분열 책임론이다. 표심 가를 ‘3대 변수’…부울경 정치 지형 미래 비추는 ‘바로미터’ 세 후보의 메시지는 분명히 갈린다. 하 후보는 AI 교육, AI 산업운영센터, 제조업·항만 AI 전환, 전 전 의원과의 원팀 효과를 앞세운다. 핵심은 ‘북구를 미래 산업과 교육의 거점으로 바꾸겠다’는 구상이다. 한 후보는 보수 재건, 정권 견제, 무소속 돌파, 정치 변화론을 전면에 세운다. 핵심은 ‘무너진 보수의 날개를 다시 세우겠다’는 상징 정치다. 다만 지역 현안의 세부 설계에서는 하정우·박민식 후보보다 구체성이 약하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다. 박 후보는 북구 르네상스, 경부선 철도 지하화, 구포·덕천·만덕 생활권별 도시재생을 강조한다. 핵심은 ‘북구를 잘 아는 사람이 북구의 숙원사업을 해결한다’는 지역 개발론이다. 이번 선거의 승부처는 세 갈래로 요약된다. 우선 후보별 정체성이 관건이다. 유권자들이 하정우의 ‘미래 산업’, 한동훈의 ‘보수 재건’, 박민식의 ‘지역 연고’ 중 어느 가치에 손을 들어줄지가 첫 번째 변수다. 둘째는 보수 진영의 결집 여부다. 박 후보와 한 후보로 갈라진 보수 표심이 끝까지 분산될지, 혹은 막판에 전략적 결집이 일어날지가 승패를 가를 전망이다. 마지막으로는 전 전 의원의 선전이 같은 당 하정우 후보에게 얼마나 강력한 컨벤션 효과를 줄 것인가에 주목해야 한다. 정치권 관계자는 “부산 북구갑 보선은 한 석의 싸움이 아니다. 민주당에는 부산에서 어렵게 지켜낸 교두보를 사수하는 선거이고, 국민의힘에는 보수 도시 부산에서 빼앗긴 지역구를 되찾는 선거이자, 한 후보에게는 정치적 재기의 첫 시험대”라며 “북구갑의 선택은 부산시장 선거의 흐름, 보수 재편의 방향, 민주당의 부산 확장 가능성을 동시에 보여주는 바로미터가 될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2026-05-12 16:37:44
-
'중원' 충남의 선택은…'AI 대전환' vs '힘쎈 충남'
[경제일보] 지방선거를 앞두고 대한민국의 시선이 다시금 ‘중원’ 충남으로 쏠리고 있다. 충청남도는 단순히 수도권과 영·호남 사이의 지리적 교량(橋梁)이 아니다. 역대 선거마다 민심의 향배를 가늠하는 캐스팅보트 역할을 해온 정치적 바로미터이자, 반도체·디스플레이·석유화학 등 대한민국 경제의 심장부 역할을 수행하는 전략적 요충지다. 이번 선거는 국정을 책임지는 여당 더불어민주당이 ‘국정 안정’의 기치를 공고히 할 것인지, 아니면 야당 국민의힘이 ‘정권 견제’와 ‘인물론’을 앞세워 탈환에 성공할 것인지를 가르는 최대 승부처다. 특히 박수현 후보(민주당)의 ‘AI 대전환’ 담론과 김태흠 후보(국민의힘)의 ‘현직 프리미엄’이 정면으로 충돌하며 선거판은 안개 속 정국이다. 현재까지의 수치는 여당의 우세를 가리키고 있다. KBS대전방송총국이 한국리서치에 의뢰한 여론조사(KBS대전방송총국 의뢰, 한국리서치 조사, 2026년 4월 26~28일, 충남도 거주 만 18세 이상 남녀 800명 대상, 면접원에 의한 전화면접조사, 성·연령·지역으로 층화된 가상번호 내 무작위 추출, 응답률 17.4%, 표본오차 95% 신뢰수준 ±3.5%포인트, 가중값은 지역별·성별·연령별 셀가중 방식.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에 따르면, 박 후보는 44%의 지지율을 얻어 23%를 기록한 김태흠 후보를 오차범위 밖에서 앞서고 있다. 주목할 대목은 선거의 성격이다. 같은 조사에서 충남 유권자의 53%가 이번 선거를 ‘국정 안정용’이라고 답했다. 이는 ‘정부 견제용’(29%)보다 24%포인트나 높은 수치다. 여당 지지율(민주당 50%)이 야당(국민의힘 21%)을 압도하는 상황에서 유권자들이 현 정부의 국정 수행에 힘을 실어주려는 경향이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박 후보가 20대와 70대 이상을 제외한 전 연령대에서 고른 지지를 받는 이유도 이러한 여권의 강세 기류와 무관치 않다. ◆박수현, 'AI 대전환' 비전 제시… '추상적 구호' 넘어야 할 과제 박 후보는 국정의 중심에서 소통을 책임졌던 경험을 바탕으로 ‘설계자’로서의 면모를 부각하고 있다. 실제 그는 SBS와의 인터뷰에서 “청와대 대변인과 소통 수석은 단순히 말을 전하는 자리가 아니라 국정 전반을 꿰뚫어 보고 갈등을 조정하는 자리였다”고 강조하며 중앙정치의 네트워크와 정책 설계 역량을 자신의 강점으로 내세운 바 있다. 박 후보가 내세운 핵심 키워드는 ‘AI 시대의 충남 대전환’이다. 그는 AI를 단순한 산업 기술이 아닌 의료·복지·교육·문화 전반에 이식하는 ‘AI 기본사회’를 구상하고 있다. 특히 농어촌 지역의 고질적인 문제인 의료 공백과 교육 불균형을 AI 시스템을 통해 해결하겠다는 복안이다. 하지만 ‘행정 실무 경험 부족’이라는 꼬리표는 그가 넘어야 할 산이다. 충남은 천안·아산의 첨단 산업군부터 남부권의 국방 자산, 서해안의 에너지 전환 이슈까지 시군별 현안이 매우 이질적이다. 박 후보의 AI 담론이 도민들의 손에 잡히는 구체적인 시군별 실행 계획으로 치환되지 못할 경우 자칫 추상적인 구호에 그칠 수 있다는 우려가 언론계와 정가에서 공통적으로 제기된다. ◆‘현직 프리미엄’ 김태흠…“일해본 사람이 대형 프로젝트 완수” 재선에 도전하는 김 후보는 현직 지사로서 거둔 실적을 전면에 배치했다. 김 후보는 민선 8기 동안 2026년도 정부 예산 12조3000억원 확보, 민간 기업 투자 유치 43조7000억 원 달성이라는 가시적인 성과를 거둔 바 있다. 이는 2022년 대비 국비 규모를 4조원 이상 늘린 수치로 김 지사는 이를 통해 자신의 슬로건인 ‘힘쎈 충남’이 허언이 아님을 증명하려 한다. 그의 전략은 도정의 연속성이다. 베이밸리 메가시티 조성, 탄소중립 경제 선도, 농업 구조개혁 등 이미 궤도에 오른 대형 프로젝트들을 완수하기 위해서는 ‘일해본 사람’이 필요하다는 논리다. 김 후보는 행정통합을 통한 수도권 일극 체제 극복을 강조하며, 충남을 권역별 맞춤형 발전 전략으로 재편하겠다는 의지를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현직 책임론은 양날의 검이다. 막대한 투자 유치에도 불구하고 농어촌 소멸과 지역 간 불균형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TJB가 조원씨앤아이·리서치앤리서치에 의뢰한 여론조사(TJB 의뢰, 조원씨앤아이·리서치앤리서치 조사, 2026년 4월 18~19일, 충남 거주 만 18세 이상 남녀 803명 대상, 전화면접조사, 휴대전화 가상번호 100%, 응답률 14.1%, 표본오차 95% 신뢰수준 ±3.5%포인트.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에서 도민들이 가장 시급한 현안으로 ‘농어촌 인구 소멸 대책’(26.4%)과 ‘의료 인프라 구축’(21.1%)을 꼽았다는 점은 현직 지사인 그에게 뼈아픈 대목이다. 중앙정치 구도에서 기인한 낮은 정당 지지도 역시 그가 독자적인 행정 성과로 돌파해야 할 거대한 벽이다. ◆승패 가를 소멸 위기·의료 공백 해법…현실적 ‘생존 전략’ 중요 이번 선거의 최종 승부처는 정당의 깃발이 아닌 ‘민생의 현장’에서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구체적으로 우선 지방 소멸에 대한 실효적 대안이다. 충남 남부권과 내륙권의 인구 감소는 이미 임계점을 넘었다는 평가다. 유권자들은 누가 더 현실적인 일자리 대책과 정주 여건 개선안을 내놓느냐를 지켜보고 있다. ‘의료 시스템의 혁신’ 부분도 이번 선거의 핵심 변수다. TJB 조사에서 나타났듯 도민들은 정당보다 정책과 도덕성을 우선시하고 있고, 특히 의료 인프라에 대한 갈증이 깊다. 박 후보의 AI 의료 시스템과 김 후보의 공공의료 강화안 중 어느 쪽이 도민의 신뢰를 얻느냐가 관건이다. 또 다른 핵심 승부처는 ‘충남·대전 행정통합’에 대한 태도다. KBS 조사에서는 찬성(59%)이 압도적이었지만, TJB 조사에서는 찬반이 팽팽하게 맞섰다. 이는 통합의 당위성에는 공감하지만 방법론에서는 유권자들이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음을 뜻한다. 통합의 시기와 주도권 문제를 놓고 두 후보가 제시할 세부 청사진이 표심을 가를 것으로 보인다. 정치권 관계자는 “충남도지사 선거는 단순히 권력을 교체하거나 유지하는 과정이 아니다”라며 “충남이 가진 잠재력을 극대화하여 도민의 행복권을 어떻게 보장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엄중한 선택”이라고 했다.
2026-05-09 13:00:00
-
멈춰 선 정치, 길 잃은 경제...상식과 원칙의 복원이 시급하다
대한민국이라는 거대한 함선이 짙은 안개 속에서 표류하고 있다.*거센 파도가 배를 때리고 있지만, 조타실의 키는 고장 났고 엔진은 가열된 채 비명만 지른다. 작금의 현실을 한 문장으로 압축하자면 '정치는 죽었고, 경제는 멍들었다'는 탄식일 것이다. 경제는 불확실성이라는 늪에 빠져 방향을 잃었으며, 정치는 정쟁이라는 족쇄에 묶여 기능을 상실했다. 더 비극적인 사실은 이 두 축이 서로를 구원하기는커녕 서로의 발목을 잡아채며 동반 침몰의 길로 치닫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 사회의 부침 속에서도 지금처럼 '기본'과 '상식'이 무너진 적은 드물었다. 인류의 오랜 지혜를 담은 경전들은 공통으로 '화합'과 '실사구시(實事求是)'를 가르친다. 공자는 나라를 다스리는 데 있어 '식량을 충분히 하고, 군대를 튼튼히 하며, 백성의 믿음을 얻는 것(足食, 足兵, 民信)'을 꼽았다. 하지만 지금 우리에게 이 중 하나라도 온전한 것이 있는가. 우선, 경제의 맥박이 희미해지고 있다. 내수 침체의 골은 깊어지는데 대외 환경은 흡사 전장(戰場)을 방불케 한다. 글로벌 공급망의 급격한 재편, 격화되는 미·중 패권 경쟁, 그리고 고금리의 장기화는 한국 경제의 체질을 근본적으로 위협하고 있다. 이럴 때일수록 국가는 명확한 나침반을 제시해야 한다. 정책의 일관성과 적기(適期) 대응은 시장의 신뢰를 먹고 산다. 그러나 현재의 경제 정책은 시장에 확신을 주지 못하고 있다. 규제 혁파를 외치면서도 정작 기업의 손발을 묶는 입법은 쏟아지고, 재정 건전성을 강조하면서도 선거철만 되면 포퓰리즘의 유혹에 흔들린다. 구조개혁이라는 과제는 구호로만 존재할 뿐, 실행의 용기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시장이 정책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정책을 의심하고 회피하는 현상은 국가 경제의 근간을 뒤흔드는 신호탄이다. 노동 문제에 이르면 상황은 더욱 처참하다.노동은 인간의 존엄을 유지하는 신성한 가치이자 경제 발전의 핵심 동력이다. 지금 우리 사회는 노동의 '유연성'과 '안전망'이라는 두 가치를 놓고 극단적 대립을 이어가고 있다. 경영계는 생존을 위해 유연화를 외치고, 노동계는 생존권을 위해 보호를 요구한다. 하지만 이는 택일(擇一)의 문제가 아니다. 인류가 쌓아온 보편적 상식에 비추어 볼 때, 생산성이 담보되지 않는 임금 인상은 기업의 파멸을 부르고, 안전망 없는 유연화는 공동체의 붕괴를 초래한다. 결국 필요한 것은 '균형의 예술'이다. 그러나 작금의 논의는 해법을 찾는 치열한 고민 대신 진영 논리라는 낡은 프레임에 갇혀 있다. 상대방을 타도해야 할 적으로 규정하는 순간, 합리적인 대안은 설 자리를 잃는다. 원칙과 상식에 기반한 사회적 대타협은 실종되었고, 그 빈자리를 자극적인 선동과 혐오가 채우고 있다. 정치가 경제의 짐이 되어서는 안 된다. 정치는 갈등을 조정하고 공동체의 비전을 설정하는 고도의 지적 행위다. 하지만 오늘날 한국 정치는 갈등을 조정하기는커녕 갈등을 먹고 자라는 기생(寄生) 정치가 되어버렸다. 민생은 뒷전이고 정파적 이익을 위한 입법 전쟁에만 몰두한다. '정치는 4류, 행정은 3류, 기업은 2류'라던 과거의 일침이 여전히 유효하다는 사실이 참담할 따름이다. 이제 다시 근본으로 돌아가야 한다. 인류 경전의 가르침대로 순리를 따르고 상식을 회복해야 한다. 경제 정책은 정치가 아닌 '숫자'와 '현장'의 목소리에 기반해야 하며, 노동 개혁은 진영이 아닌 '상생'의 원칙 위에 세워져야 한다. 정치권은 서로를 향한 삿대질을 멈추고 국가의 미래를 위한 최소한의 협치(協治)를 보여줘야 한다. 국민의 인내심은 한계에 다다랐다. 정치가 경제를 가로막고, 경제가 미래를 보지 못하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내지 못한다면 우리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지도 모른다. 위기는 기회의 다른 이름이라고 하지만, 그 기회는 준비된 자, 즉 원칙과 상식을 지키는 자에게만 허락되는 법이다. 지금 당장 정치는 제자리로 돌아오고, 경제는 다시금 성장의 엔진을 가동해야 한다. 그것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준엄한 책무다.
2026-05-06 16:56:32
-
-
AI의 거울, 카네기와 록펠러에 길을 묻다
[경제일보] 역사의 변곡점에서 시대정신은 언제나 두 거인의 어깨 위에 내려앉는다. 한 명은 시대의 단단한 뼈대를 세우는 자이며 다른 한 명은 그 뼈마디 사이사이에 뜨거운 피를 돌게 하는 자다. 19세기 후반, 증기기관의 포효와 함께 미국이라는 미완의 대륙이 꿈틀거릴 때 역사는 두 사내를 선택했다. 스코틀랜드의 잿빛 가난을 짊어지고 대서양을 건너온 이민자 소년, 앤드류 카네기. 그리고 불우한 유년의 상처를 신앙과 회계장부로 봉합하며 자라난 청년, 존 D. 록펠러. 오늘 우리는 인공지능(AI)이라는 이름의 거대한 해일 앞에 서 있다. 실리콘밸리에서 시작된 이 거대한 파도는 이제 인류 문명의 모든 해안선을 재정의하고 있다. 이 현기증 나는 전환의 시대에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 화려한 기술의 신기루에 취해 길을 잃지 않으려면 역사의 거울을 들여다봐야 한다. 150년 전 철과 석유라는 문명의 두 기둥으로 세상을 재편했던 카네기와 록펠러의 삶은, 안개 자욱한 AI 시대의 본질과 승리 법칙을 놀라울 만큼 선명하게 투영한다. 이것은 낡은 위인전이 아니라 오늘 우리에게 던지는 생존에 관한 준엄한 질문이다. ◆ 미국의 뼈대를 벼려낸 자, 앤드류 카네기 앤드류 카네기의 삶은 아메리칸드림의 원형 그 자체다. 1848년, 13살의 소년은 증기선 뒷간에 숨어 신대륙에 첫발을 디뎠다. 손에 쥔 것이라곤 희망이라는 이름의 누더기뿐이었다. 방직 공장의 실패 감는 소년에서 전보 배달부, 철도 회사 직원을 거치며 그는 자본주의의 냉혹한 속성을 뼈에 새겼다. 그가 본 것은 멈추지 않는 미국의 팽창 에너지였다. 서부로, 서부로 뻗어 나가는 철도, 하늘을 찌를 듯 솟아오르는 마천루, 대륙의 혈맥을 잇는 거대한 교량. 카네기는 이 모든 야망의 근간에 무엇이 꿈틀대고 있는지 보았다. 바로 ‘철(鐵)’이었다. 여기에 그의 위대한 통찰이 번뜩였다. "인프라의 기반을 장악하는 자가 시대를 지배한다." 그는 금광을 찾아 헤매는 투기꾼이 아니었다. 금광으로 가는 길을 깔고 그 길 위를 달릴 기관차를 만들고 금을 캐는 데 쓸 곡괭이를 만드는 자가 되겠다고 결심했다. 그에게 철강은 단순한 금속이 아니었다. 그것은 미국의 미래를 떠받칠 단단한 골격이었다. 그의 철강 제국은 광적인 집념으로 쌓아 올린 견고한 성채였다. 결정적 계기는 영국에서 목격한 ‘베세머 공정’의 혁명적 잠재력을 꿰뚫어 본 순간 찾아왔다. 펄펄 끓는 쇳물에 공기를 불어넣어 불순물을 태워버리는 이 신기술은 연금술에 가까웠다. 2주가 꼬박 걸리던 강철 생산 시간은 단 15분으로 줄었고 원가는 폭락했다. 남들이 의심의 눈초리를 보낼 때 그는 전 재산을 걸고 이 신기술의 심장을 미국으로 가져왔다. 기술의 급소를 정확히 찌르는 자만이 경쟁의 규칙을 파괴하고 새로 쓸 수 있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았다. 이는 마치 오늘날 AI 기업들이 최신 반도체 공정과 아키텍처에 명운을 거는 모습과 정확히 포개진다. 그의 제국은 단순한 공장이 아니라 스스로 호흡하는 유기체였다. 그는 ‘수직 통합’이라는 개념을 통해 자신만의 생태계를 완성했다. 철강 생산에 필요한 모든 것을 자신의 손아귀에 넣었다. 미네소타의 철광석 광산에서부터 펜실베이니아의 석탄 광산, 원료를 실어 나르는 오대호의 증기선과 철도 회사까지. 원료 채굴에서 제품 생산, 운송에 이르는 전 과정을 자신의 제국 안에 편입시켰다. 외부 변수에 흔들리지 않는 누구도 원가로 넘볼 수 없는 철옹성을 구축한 것이다. 외부의 기술이나 자원에 의존하는 순간 제국의 고삐를 놓치게 된다는 냉엄한 현실을 그는 간파했다. 이 거대한 제국을 움직이는 피는 ‘원가’에 대한 병적인 집착이었다. 그는 역사상 최초로 정교한 실시간 원가 회계 시스템을 도입했다. 매일 아침 그의 책상에는 각 공정에서 발생한 비용이 1센트 단위까지 보고되었다. “이익은 알아서 따라오게 하고 비용을 감시하라”는 그의 말은 카네기 제국의 제1계명이었다. 이 서슬 퍼런 숫자에 대한 집착이 그의 용광로에서 나온 쇠를 세계에서 가장 단단하고 값싼 강철로 만들었다. 브루클린 브릿지를 지탱하는 우아하고도 강인한 강철 케이블, 미국 대륙을 동서로 관통한 수만 킬로미터의 철도 레일, 뉴욕의 스카이라인을 창조한 마천루의 H빔. 그 모든 것이 카네기의 용광로에서 벼려낸 미국의 뼈대였다. 그러나 그는 부를 쌓는 데서 멈추지 않았다. “부자로 죽는 것은 수치다”라는 그의 신념은 더 위대한 유산을 남겼다. 그는 자산의 90% 이상을 사회에 환원하여 미국 전역에 1689개의 도서관을 짓고 카네기 홀을 건립했다. 그는 물리적 인프라를 넘어 지식과 문화라는 정신의 인프라까지 구축하고자 했던 것이다. ◆ 미국의 혈관을 장악한 자, 존 D. 록펠러 카네기가 미국의 단단한 골격을 만들었다면 록펠러는 그 거대한 몸에 검고 뜨거운 피를 돌게 한 인물이다. 그의 무기는 땅속에서 솟아난 검은 황금, 바로 ‘석유’였다. 그의 유년기는 카네기보다 더 어둡고 축축했다. 떠돌이 약장수였던 아버지 밑에서 그는 일찍부터 돈의 비정함과 중요성을 깨달았다. 그가 독실한 신자였던 어머니에게 배운 것은 두 가지였다. 모든 수입과 지출을 1페니까지 기록하는 회계장부의 철저함과 수입의 10분의 1을 반드시 헌금하는 신앙의 경건함. 이 두 원칙이 훗날 그의 무자비한 사업 방식과 숭고한 자선 활동이라는 모순적인 삶의 두 축이 된다. 록펠러의 천재성은 남들이 ‘기름’이라는 노다지에 홀려 땅을 팔 때 그는 ‘시스템’이라는 거대한 그림을 보았다는 점이다. 19세기 중반 펜실베이니아에 석유가 터져 나오자 수많은 사람이 일확천금을 꿈꾸며 시추공에 달려들었다. 그러나 록펠러는 그 도박판에 끼어들지 않았다. 그는 석유 채굴은 예측 불가능한 행운의 게임이지만 일단 채굴된 원유를 정제하고 운송하여 판매하는 것은 ‘반드시 돈이 되는 사업’임을 꿰뚫어 보았다. 그는 석유 산업의 혈관, 즉 정제와 유통망을 장악하기로 결심했다. 그의 무기는 회계장부였다. 그는 카네기를 능가하는 비용 통제의 화신이었다. 원유 1갤런을 운반하는 데 쓰는 나무통 가격을 2.5달러에서 1달러 미만으로 낮추기 위해 직접 통 제조 공장을 세웠다. 통을 밀봉하는 데 쓰던 40개의 땜납을 39개로 줄여보라고 지시한 일화는 그의 경영 철학을 상징한다. 누구도 눈여겨보지 않는 이 작은 차이들이 모여 누구도 넘볼 수 없는 거대한 가격 경쟁력의 성벽을 쌓았다. 그는 이 가격 경쟁력을 바탕으로 가장 치명적인 무기를 휘둘렀다. 바로 ‘유통망 장악’이었다. 당시 유일한 운송 수단이던 철도 회사와 비밀리에 리베이트 계약을 맺어 경쟁사보다 훨씬 싼 값에 석유를 운송했다. 심지어 경쟁사가 지불하는 운송비의 일부까지 자신에게 흘러 들어오도록 설계했다. 국가의 대동맥과도 같은 철도망을 자신의 사적인 무기로 만든 것이다. 경쟁사들은 이유도 모른 채 피를 말리며 고사해갔다. 마지막으로 그는 ‘합류가 아니면 파산’이라는 냉혹한 흡수 전략으로 시장을 평정했다. 압도적인 원가 경쟁력과 유통망을 무기로 그는 경쟁 정유사들을 차례로 무릎 꿇렸다. 그는 경쟁사의 장부를 샅샅이 보여주며 스탠더드 오일에 합류할 것을 제안했다. 거부하는 자에게는 무자비한 가격 전쟁을 일으켜 파산의 나락으로 밀어 넣었다. 그는 무질서한 경쟁을 ‘죄악’으로 여겼고 독점을 통한 ‘질서’와 ‘안정’이야말로 산업의 발전이라 믿었다. 결국 그는 미국 정유 시장의 90% 이상을 장악하는 스탠더드 오일 트러스트를 완성했다. 그의 석유는 등유가 되어 인류의 밤을 밝혔고 가솔린이 되어 자동차 시대를 열었다. 스탠더드 오일은 현대 산업을 움직이는 운영 체제(OS) 그 자체였다. 그는 비정한 독점가라는 평생의 멍에를 짊어졌지만 훗날 록펠러 재단을 통해 의학과 교육 발전에 막대한 기여를 하며 부의 의미를 다시 썼다. ◆ AI 시대, 변하지 않는 법칙의 귀환 역사의 거울은 오늘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는가. 카네기의 철과 록펠러의 석유. 이 둘은 2차 산업혁명 시대의 물리적, 에너지적 기반이었다. 오늘날 AI 시대의 철과 석유는 무엇인가. 카네기의 철은 단연코 AI 모델의 두뇌인 ‘반도체’다. 록펠러의 석유는 그 반도체를 깨우는 ‘전력’과 데이터를 실어 나르는 ‘클라우드 인프라’다. 놀랍게도 오늘날 AI 패권 전쟁의 승자들은 150년 전 두 거인의 성공 공식을 그대로 복제하고 있다. 엔비디아는 AI 반도체라는 새로운 ‘철’의 생산 방식을 독점하고 있다. 아마존과 마이크로소프트는 클라우드 서비스라는 ‘석유 유통망’을 장악하고 전 세계 AI 기업들로부터 막대한 ‘통행세’를 거두고 있다. 이들 모두 반도체 설계부터 소프트웨어, 클라우드 서비스까지 모든 것을 장악하는 수직 통합을 추구하며 자신만의 제국을 견고히 쌓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거대한 지각 변동 속에서 어디에 서 있는가. 우리는 새로운 시대의 뼈대를 만드는 카네기가 될 것인가, 그 뼈대 속을 흐르는 혈액을 공급하는 록펠러가 될 것인가. 혹은 그들이 만들어 놓은 인프라 위에서 살아가는 단순한 소비자에 머무를 것인가. 카네기와 록펠러는 웅변한다. 시대의 본질을 꿰뚫고 그 기반이 되는 인프라를 장악해야만 미래의 주도권을 쥘 수 있다고. 다른 이들이 만들어 놓은 화려한 AI 모델을 가져다 쓰는 수준에 만족해서는 안 된다. 우리만의 반도체를, 우리만의 데이터센터를, 우리만의 AI 생태계를 구축해야 한다. 기술의 급소를 찌르는 혁신, 외부 의존도를 끊는 수직적 장악력, 상대를 질식시키는 원가 통제. 150년 묵은 이 법칙들은 AI 시대에 더욱 서슬 퍼렇게 귀환했다. 역사는 반복되지 않지만 그 운율은 반복된다. 철과 석유의 시대가 남긴 거대한 메아리는 AI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준엄한 경고이자 다시없을 기회다. 제2의 카네기, 제2의 록펠러가 될 수 있는 창은 아직 열려 있다. 그 창을 향해 과감히 몸을 던질 것인가, 아니면 그저 창밖의 풍경이 변하는 것을 구경만 할 것인가. 선택은 오롯이 우리의 몫이다.
2026-04-27 17:13:52
-
네이버, 좌표 기반 서비스 확대…날씨·여행 검색 정밀도 높인다
[경제일보] 네이버가 좌표와 세부 지역 기반 맞춤형 정보 서비스를 확대하며 검색 경쟁력 강화에 나섰다. 기존 행정구역 중심 정보 제공에서 벗어나 특정 장소 단위의 초정밀 정보를 제공하는 방식으로 서비스 전략을 시도하고 있다. 17일 네이버는 좌표 기반 초단기 예보 서비스인 '테마날씨'에 전국 주요 골프장 495곳을 추가하고 해외 플레이스 정보도 대폭 확대했다고 밝혔다. 날씨와 여행 등 이용자 생활 밀착형 서비스를 중심으로 지역 단위 맞춤 정보를 강화하면서 플랫폼 경쟁력을 높이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앞서 네이버는 '테마날씨' 서비스를 통해 특정 장소 중심의 초단기 날씨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기존 행정구역 단위 날씨 정보와 달리 위도와 경도 좌표를 기반으로 특정 장소의 강수량, 풍속, 습도 등 세부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특징이다. 이번 개편으로 네이버는 야구장 20곳, 테마파크 9곳, 스키장 13곳, 축구장 30곳에 이어 전국 골프장 495곳을 추가하며 총 567개 장소에 대한 맞춤형 날씨 정보를 제공한다. 누적 페이지뷰는 280만회, 구독자 수는 8만5000명을 넘어선 것으로 집계됐고 '잠실 야구장'은 1만4000명 이상이 구독하는 등 특정 장소 중심 날씨 정보에 대한 수요도 확대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골프장 테마날씨는 라운드 환경에 영향을 미치는 안개, 시야, 풍속 등 세부 정보를 제공하고 AI 기반 분석을 통해 시간대별 추천 복장과 환경 정보도 함께 제안한다. 네이버는 상반기 중 전국 100대 명산을 중심으로 '등산 테마날씨'도 추가할 계획이다. 네이버는 여행·장소 검색 서비스에서도 세부 지역 중심 정보 제공을 확대했다. 해외 플레이스 정보를 기존 대비 10배 이상 확충하고 도시 단위를 넘어 세부 지역 검색까지 지원하도록 개편했다. 기존에는 '일본 오사카 맛집' 등 도시 단위 검색 중심이었지만 개편 이후에는 '신주쿠 산초메 맛집', '도톤보리 맛집', '에펠탑 주변 맛집' 등 세부 지역 기반 검색 결과를 제공한다. 여행 목적이나 상황에 맞는 장소 탐색도 가능하도록 '아이와 함께 가볼 만한 곳', '사진 찍기 좋은 곳' 등 다양한 조건 기반 검색도 지원한다. 특히 네이버는 일본 음식점 정보 플랫폼 타베로그와의 제휴를 통해 약 70만개 일본 음식점 정보를 제공하고 일부 예약 연결 기능도 추가했다. 해외 여행 정보 탐색 수요 증가에 대응해 장소 중심 검색 기능을 강화한 것으로 풀이된다. 네이버는 날씨와 여행 등 다양한 서비스에 좌표 기반 정보를 적용하며 장소 중심 플랫폼 전략을 강화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특정 장소 단위의 정밀한 정보 제공을 통해 이용자의 검색 경험을 개선하고 서비스 체류 시간을 늘린다는 전략이다. 지도와 여행, 지역 정보 서비스는 플랫폼 이용 빈도가 높은 핵심 서비스로 맞춤형 정보 제공 여부가 사용자 확보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이에 네이버는 향후 위치 기반 맞춤형 서비스 범위를 지속 확대할 계획이다. 테마날씨 카테고리를 추가하고 해외 플레이스 정보도 확대하는 한편 AI 기반 추천 기능을 고도화해 지역 단위 맞춤형 서비스 경쟁력을 강화한다는 방침이다. 최지훈 네이버 플레이스 검색 총괄 리더는 "네이버를 통한 해외 여행지 탐색 수요가 지속 증가하고 있어 관련 경험을 강화하고자 해외 플레이스 정보를 확대 제공하게 됐다"며 "앞으로도 사용자가 네이버 검색을 통해 풍부한 여행 콘텐츠를 만나볼 수 있도록 서비스를 지속 고도화해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2026-04-17 10:1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