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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사비 28% 뛰어도 추가 지급 없다"…KT, 쌍용건설 143억 소송 승소
[경제일보]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원자재 가격이 급등했다며 쌍용건설이 KT에 추가 공사대금을 요구한 소송에서 법원이 KT의 손을 들어줬다. 공사비가 예상보다 크게 올랐더라도 물가 변동에 따른 계약금 조정을 배제하기로 한 특약이 유효한 이상 발주사에 추가 비용을 부담시킬 수 없다는 판단이다. 18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27부는 지난 3일 KT가 쌍용건설을 상대로 낸 채무부존재 확인 소송에서 원고 승소로 판결했다. 쌍용건설이 KT를 상대로 142억9000만원의 추가 공사대금을 요구한 반소는 기각했다. 이번 분쟁은 KT 판교 신사옥 건설 과정에서 불거졌다. 쌍용건설은 2020년 8월부터 2023년 4월까지 공사를 수행하기로 계약했으며 설계 변경 등을 반영한 최종 계약금은 879억원으로 확정됐다. 공사가 진행되는 동안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하고 원자재와 인건비가 오르자 쌍용건설은 다섯 차례에 걸쳐 계약금 증액을 요구했다. KT가 물가와 환율 변동에 따른 공사비 조정을 배제한 계약 특약을 근거로 이를 거부하면서 양측 갈등은 법정으로 이어졌다. 쌍용건설은 국토교통부 건설분쟁조정위원회에 조정을 신청했고, KT는 2024년 5월 추가 공사대금을 지급할 의무가 없다는 점을 확인해 달라며 소송을 제기했다. 쌍용건설도 다음 달 맞소송을 냈다. ◆ 건설공사비 28% 상승…특약은 유효 당시 건설업계가 받은 비용 충격은 작지 않았다. 한국은행 자료를 인용한 판결 보도에 따르면 건설공사비지수는 2020년부터 2023년까지 약 28% 상승했다. 쌍용건설은 계약 당시 예상할 수 없던 수준의 원자재 가격 상승 위험을 시공사에 일방적으로 떠넘긴 특약이어서 건설산업기본법상 현저하게 불공정한 약정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특약이 유효하더라도 통상적으로 예측할 수 있는 물가 변동에만 제한적으로 적용해야 한다는 논리도 폈다. 계약 체결 이후 코로나19 장기화와 공급망 불안이 겹치면서 정상적인 사업 판단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비용이 발생했다는 취지였다. 재판부 판단은 달랐다. 해당 특약은 물가 상승에 따른 공사대금 증액뿐 아니라 물가가 하락했을 때 KT가 계약금을 낮추는 것도 배제하고 있어 위험을 시공사에 일방적으로 전가한 조항으로 보기 어렵다고 봤다. 원자재를 사전에 계약하는 등 건설사가 가격 변동 위험을 줄일 수단도 존재한다고 판단했다. 쌍용건설이 국내 시공능력평가 28위에 해당하는 대형 건설사로 풍부한 시공 경험을 보유했다는 점도 판단 근거가 됐다. 계약에 따른 위험을 충분히 인식할 역량이 있었으며, 설계 변경처럼 별도 비용이 발생한 경우에는 계약금 조정이 허용돼 시공사의 이익을 보호할 장치도 있었다는 것이다. KT가 계약 과정에서 일방적인 우월적 지위를 행사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는 점도 고려됐다. ◆ “팬데믹 위험 예측 가능”…계약 자유에 무게 재판부는 코로나19에 따른 물가 급등이 예측 불가능했다는 주장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세계보건기구가 입찰에 앞선 2020년 3월 코로나19의 세계적 대유행을 선언한 만큼 계약 체결 당시 물가 변동 위험을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특약이 피고에게 현저히 불공정한 경우로서 무효라고 볼 수 없다”며 당사자들이 숙고해 체결한 계약을 사후적인 손실만을 이유로 무효화하면 사적 자치와 계약 자유의 원칙을 부정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번 판결은 팬데믹과 전쟁 등으로 공사비가 급등한 이후 건설업계 전반에서 이어진 추가 공사비 분쟁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물가변동 배제 특약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모든 추가 청구가 차단되는 것은 아니지만, 계약 당사자의 협상력과 전문성, 위험의 예측 가능성, 가격 상승과 하락 위험을 대칭적으로 배분했는지가 특약의 유효성을 가르는 기준이 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줬다. 아직 1심 판단인 만큼 개별 공사계약에 일률적으로 적용할 확정 법리로 보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법원이 이례적인 공사비 급등보다 당사자가 스스로 정한 계약 조건과 위험 배분에 무게를 뒀다는 점은 분명하다. 비용이 급등했을 때 누가 손실을 부담할 것인지는 공사가 끝난 뒤의 협상보다 계약을 맺는 순간 이미 상당 부분 결정된다는 의미다.
2026-07-18 11:12:55
법원, 코인원 영업정지 제동…가상자산 제재 소송전 확산
[경제일보] 금융당국이 가상자산 거래소 코인원에 내린 영업 일부정지 처분에 법원이 제동을 걸었다. 업비트와 빗썸에 이어 코인원까지 집행정지 신청이 받아들여지면서 가상자산 거래소를 상대로 한 금융정보분석원(FIU)의 제재가 본안 소송에서 다시 판단을 받게 됐다. 29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행정10부는 코인원이 FIU를 상대로 낸 영업 일부정지 3개월 처분 집행정지 신청을 인용했다. 이에 따라 코인원에 대한 영업 일부정지 처분은 본안 판결 후 30일이 되는 날까지 효력이 멈춘다. FIU는 앞서 코인원이 특정금융정보법상 미신고 가상자산사업자와의 거래금지 의무, 고객확인의무, 거래제한 의무 등을 다수 위반했다고 보고 영업 일부정지 3개월과 과태료 52억원 부과를 결정했다. FIU 검사 결과에 따르면 코인원은 해외 미신고 가상자산사업자 16개사와 1만113건의 가상자산 이전 거래를 지원했고 고객확인의무와 거래제한의무 위반까지 포함해 약 9만건의 위반 사항이 지적됐다. 영업 일부정지는 신규 고객의 외부 가상자산 이전, 즉 입출고 업무를 일정 기간 제한하는 조치다. 기존 고객의 거래나 원화 입출금, 가상자산 매매 자체가 전면 중단되는 것은 아니지만 신규 고객 확보와 시장 점유율 경쟁에는 영향을 줄 수 있다. 법원도 처분 효력이 유지될 경우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가 발생할 우려가 있다고 봤다. 이번 결정은 단순히 코인원 한 곳의 제재 유예에 그치지 않는다. 앞서 빗썸도 FIU의 영업 일부정지 처분에 대해 집행정지를 받아냈고 업비트를 운영하는 두나무는 영업 일부정지 처분 취소소송 1심에서 승소했다. FIU가 이에 항소하면서 가상자산 거래소 제재를 둘러싼 법정 공방은 2심과 본안 소송으로 이어지고 있다. 핵심 쟁점은 거래소가 미신고 해외 가상자산사업자와의 거래 차단 의무를 어느 수준까지 이행해야 하는지, 고객확인 절차상 하자가 영업정지로 이어질 만큼 중대한지 여부다. 당국은 자금세탁방지 체계 훼손 가능성을 강조하고 있다. 반면 거래소들은 제재 수위와 법령 해석, 의무 이행 기준의 명확성 등을 다툴 가능성이 크다. 다만 이번 집행정지 결정이 코인원의 본안 승소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법원은 처분의 최종 위법 여부를 본안에서 따져봐야 한다는 입장이다. 가상자산 시장이 제도권 금융 규율 안으로 들어오는 과정에서 당국의 감독 권한과 사업자의 예측 가능성 사이의 균형이 향후 재판의 핵심 변수가 될 전망이다.
2026-05-29 16:46:21
동맹 흔든 트럼프식 종전, 남겨진 책임의 빈자리
[경제일보] 전쟁은 총성이 멎는 순간 끝나지 않는다. 이후를 정리하는 방식에 따라 질서의 방향이 달라진다. 그래서 종전은 단순한 종료가 아니라 관계를 다시 짜는 과정으로 이어져 왔다. 합의와 조율을 거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최근 미국의 선택은 이 흐름과 거리를 둔다. 협상 없이 전쟁을 마무리하겠다는 구상이다. 군사적 목표가 충족됐다는 판단이 서면 조건 조율을 거치지 않고 종료를 선언하는 방식이다. 시간과 비용을 줄이려는 계산이 깔려 있다. 국내 경제 부담을 낮추려는 고려도 함께 작용한 것으로 읽힌다. 이 접근이 정치적 현실을 반영한 측면은 있다. 전쟁이 길어질수록 경제와 여론의 부담이 커진다. 다만 절차를 건너뛴 종전이 남기는 문제도 함께 봐야 한다. 협상이 생략된 자리에는 책임과 보상의 기준이 남지 않는다. 갈등의 원인이 충분히 정리되지 않은 채 남을 가능성도 있다. 동맹을 바라보는 시선도 달라진 모습이다. 해상 안전을 각국이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는 발언은 기존 인식과 다르다. 미국이 제공해온 안보 역할을 재조정하겠다는 신호로 해석된다. 동맹을 공동체로 보던 틀에서 비용과 기여를 따지는 관계로 이동하는 흐름이 읽힌다. 이 변화에는 일정한 이유가 있다. 부담이 한쪽에 쏠린 상태가 지속되기 어렵다는 판단이다. 그러나 부담 조정이 책임 축소로 이어질 경우 다른 형태의 불안이 생길 수 있다. 특히 이해관계가 복잡한 지역에서는 작은 균열도 빠르게 확산될 수 있다. 협상 없는 종전은 예측 가능성 측면에서도 과제를 남긴다. 국제질서는 반복된 합의와 절차를 통해 신뢰를 쌓아왔다. 절차가 약해질수록 각국은 상대의 선택을 가늠하기 어려워진다. 이는 긴장을 낮추기보다 높이는 방향으로 이어질 수 있다. 기존 방식이 완전했던 것은 아니다. 협상은 지연을 낳았고 합의가 현실과 어긋나는 경우도 있었다. 그렇다고 절차를 생략한 종료가 대안으로 자리 잡을 수 있는지는 별도의 검증이 필요하다. 속도를 택한 만큼 안정성을 어디에서 확보할지도 함께 제시돼야 한다. 전쟁이 끝난 뒤의 책임이 누구에게 어떻게 배분되는지, 동맹이 어떤 기준으로 유지되는지에 따라 이후 질서의 방향이 달라진다. 이번 선택은 한 전쟁의 종결을 넘어 국제사회가 의지해온 원칙을 다시 돌아보게 만든다.
2026-04-03 09:05:15
'AICT 퀀텀점프' 위해선 이사회 물갈이 必
[경제일보] KT의 차기 사령탑으로 낙점된 박윤영 대표이사 내정자가 출발선에 서기도 전에 험난한 가시밭길을 마주했다. 다행히 법원이 대표 선임 절차 중단 가처분 신청을 기각하며 최악의 사법 리스크라는 큰 암초는 피했지만 붕괴 직전의 이사회를 안고 겹겹이 쌓인 경영 현안을 처리해야 하는 무거운 짐을 지게 됐다. 자본시장은 사법 족쇄를 풀어낸 박윤영호(號)가 '거버넌스 리셋'이라는 수술을 성공적으로 완수하고 본 궤도에 오를 수 있을지 숨죽여 지켜보고 있다. 최근 수원지방법원 성남지원 민사5부(부장판사 김원수)는 조태욱 KT노동인권센터 집행위원장이 제기한 KT 이사회 결의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전격 기각했다. 소송의 핵심은 상법상 겸직 금지 규정을 위반한 조승아 전 사외이사가 박 내정자를 발탁하는 차기 CEO 숏리스트 심사 과정에 개입했으므로 선임 절차가 무효라는 주장이었다. 그러나 법원의 판단은 냉철했다. 재판부는 "결격 사유가 있는 이사가 회의에 참여한 절차적 흠결은 인정된다"면서도 "하지만 해당 이사가 최종 후보 1인을 결정하는 투표에는 불참했고 그의 표를 제외하더라도 당시 이사회의 의결 정족수(과반수 찬성)를 충족하는 데 무리가 없다"고 판시했다. 무엇보다 법원의 기각 결정 이면에는 국가 기간통신망 사업자인 KT의 경영 공백이 장기화될 경우 초래될 막대한 사회·경제적 파장에 대한 우려가 깊게 깔려 있었다. 이로써 박 내정자는 오는 3월 31일 정기 주주총회에서 주주들의 동의를 얻어 정식 취임할 수 있는 탄탄한 법적 정당성을 확보했다. 이에 불복한 조 위원장 측이 지난 6일 즉시항고장을 제출하고 이사회 결의 무효를 다투는 본안 소송을 제기하며 자본시장법상 '성별 다양성 규정 위반(여성 이사 부재)' 등 추가 쟁점을 꺼내 들었지만 당장의 박윤영 체제 출범을 막을 명분으로는 역부족이라는 것이 법조계의 중론이다. ◆ '잃어버린 1분기' 만회할 무기… 4월 인사 태풍과 'AICT' 비전 법적 장애물을 치운 KT의 시선은 이제 '4월의 대격변'으로 쏠린다. KT는 전임 경영진과의 마찰과 이사회의 인사권 통제 논란 탓에 매년 연말 연초에 단행해야 할 정기 임원 인사와 대규모 조직 개편을 3개월째 미뤄둔 상태다. 현재 주요 핵심 임원들이 사상 초유의 '월 단위 쪼개기 연장 계약'으로 버티는 비정상적인 상황이 이어지며 조직 피로도가 한계치에 달했다. 박 내정자는 취임 직후인 4월, 그동안 억눌렸던 경영 쇄신의 고삐를 당길 전망이다. 정통 'KT맨' 출신이자 기업부문장(사장)으로서 B2B(기업간거래) 사업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던 그의 성향을 감안할 때 대대적인 인적 쇄신과 '매머드급' 조직 개편이 확실시된다. 가장 시급한 과제는 미래 성장 동력 확보를 통한 'AICT(AI+ICT) 컴퍼니'로의 도약이다. 경쟁사인 SK텔레콤이 'AI-RAN' 기술을 선점하고 LG유플러스가 '익시오(ixi-O)' 등 AI 에이전트로 MWC(Mobile World Congress)와 같은 글로벌 무대를 누비며 6G 생태계 주도권 경쟁을 벌이는 동안 KT의 혁신 시계는 사실상 멈춰 있었다. 박 내정자는 최근 마이크로소프트(MS)와 체결한 수조 원대 전략적 파트너십을 구체적인 실적 모델로 구현해 내야 한다. 한국형 소버린 AI(Sovereign AI) 인프라 구축과 공공·금융 클라우드 시장 장악은 통신 본업의 정체를 돌파할 유일한 탈출구다. 이를 위해 4월 조직 개편에서 AI, 클라우드, 데이터센터(AIDC) 등 신사업 부서에 인력과 권한을 대폭 실어주는 전면적인 '판 짜기'가 이뤄질 것으로 예측된다. ◆ 진정한 밸류에이션 정상화, '이사회 물갈이'에 달렸다 그러나 완벽한 경영 정상화를 위해서는 뼈아픈 숙제가 남아있다. 바로 '거버넌스 디스카운트(지배구조 불확실성에 따른 주가 저평가)'의 해소다. KT는 높은 배당 수익률 등 방어주로서의 매력에도 불구하고 외국인 지분 한도가 49%에 달해 추가적인 외국인 수급 유입이 꽉 막힌 상태다. 결국 주가를 레벨업 시키기 위해서는 국내 기관 투자자들의 뭉칫돈을 끌어와야 한다. 기관 투자자들을 움직이는 핵심 지표는 실적을 넘어선 '지배구조의 예측 가능성'이다. 박 내정자는 윤종수 이사 사퇴로 촉발된 이사회 공백 사태를 역이용해 '거버넌스 2.0'을 구축해야 한다. 3월 주총에서 신규 선임될 서진석(회계), 김영한(미래기술), 권명숙(경영) 이사 등 새로운 인사들과 합심하여 과거 특정 세력의 이권 개입을 원천 차단하고 철저한 독립성과 전문성을 갖춘 이사회로 물갈이를 단행해야 한다. 시장 전문가들은 “사법 리스크 해소는 단기 이벤트에 불과하다”며 “KT가 정상화 궤도에 오르기 위해서는 박윤영 내정자가 시장이 납득할 수 있는 분명한 쇄신안을 제시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이어 “경영 안정화, 기술 비전 실현, 주주 자본주의 원칙에 기반한 투명한 거버넌스 확립이 2026년 KT의 운명을 가를 것”이라고 지적했다. 벼랑 끝에서 돌아온 KT에 4월은 또 한 번의 시험대다. ‘잔혹사’의 고리를 끊을지, 또 하나의 4월을 남길지 갈림길에 섰다.
2026-03-20 13:34:00
규제 속도에서 갈린 신약 경쟁… C-바이오 질주, 한국은 어디에
[이코노믹데일리] 중국 제약·바이오 산업의 성장 속도가 가파르다. 지난해 중국 기업의 기술수출 규모는 1356억달러로 집계됐다. 한국은 150억달러 수준이다. 금액 기준으로 9배 차이다. 2020년만 해도 양국 격차는 크지 않았지만 이후 흐름이 달라졌다. 기술수출은 신약 후보물질을 다국적 제약사에 넘기고, 개발 단계에 따라 기술료를 받는 계약을 말한다. 글로벌 제약사 입장에서는 외부에서 유망한 신약 씨앗을 사들이는 방식이다. 이 후보물질 목록을 업계에서는 ‘파이프라인’이라고 부른다. 앞으로 개발해 시장에 내놓을 가능성이 있는 신약들의 집합이라는 뜻이다. 파이프라인이 풍부할수록 기업의 미래 가치가 높게 평가된다. 5일 업계에 따르면 중국의 약진 배경에는 비용과 속도가 동시에 거론된다. 일부 글로벌 제약사들은 중국에서 신약 후보물질을 확보할 경우 개발 비용이 미국 대비 30~40% 수준에 그친다고 평가한다. 임상시험 비용이 상대적으로 낮기 때문이다. 여기에 규제 환경이 더해졌다. 중국 국가약품감독관리국은 신약을 사람에게 시험하기 전 제출해야 하는 임상시험 계획 승인 기간을 60일에서 30일로 줄였다. 쉽게 말해 신약 개발의 출발선에 서기까지 걸리는 시간을 절반으로 단축한 것이다. 해외에서 진행된 임상시험 결과도 일정 범위 내에서 인정한다. 글로벌 제약사가 계약을 맺을 때 시간과 절차 불확실성이 줄어든다는 의미다. 미국도 규제 운영 방식을 손보고 있다. 미국 식품의약국을 이끄는 로버트 마카리 국장은 신약 허가 시 요구되는 대규모 최종 임상시험을 기존 두 차례에서 한 차례로 조정할 수 있다는 취지의 입장을 밝혔다. 여기서 말하는 최종 임상시험은 수천 명 환자를 대상으로 약의 효과와 안전성을 마지막으로 검증하는 단계다. 개발 과정에서 가장 많은 시간과 비용이 투입된다. 미국은 1960년대 이후 두 번 이상의 최종 시험을 요구해 왔으나 최근에는 시험 횟수보다 설계의 타당성과 데이터의 신뢰성을 더 중요하게 보는 방향으로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이 같은 변화는 글로벌 제약 시장 구조와도 맞물린다. 2030년까지 특허가 만료되는 대형 의약품 매출은 약 3000억달러에 달한다. 기존 매출이 줄어들 것을 대비해 다국적 제약사들은 새로운 후보물질을 서둘러 확보해야 한다. 개발 비용이 낮고 심사 속도가 빠른 국가가 계약에서 유리해질 가능성이 높다. 문제는 한국이다. 한국 식품의약품안전처도 신속심사와 조건부 허가 제도를 운영한다. 자료를 준비되는 대로 제출해 심사를 병행하는 방식도 도입했다. 제도 틀만 보면 주요국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글로벌 제약사가 한국을 신약의 첫 허가 시장으로 선택하는 사례는 많지 않다. 여러 국가에서 동시에 개발이 진행되는 경우, 미국과 유럽이 우선 순위가 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심사 인력 규모와 절차의 예측 가능성, 해외 임상 자료 활용 범위 등에서 보완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한국은 안전성 기준이 엄격하다. 이는 의료 신뢰를 지탱하는 기반이다. 그러나 주요국이 규제 체계를 산업 전략의 일부로 재정비하는 상황에서, 한국 역시 허가 제도를 산업 경쟁력과 어떻게 연결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이어진다. 기술수출 격차는 연구개발 능력 차이만으로 설명되기 어렵다. 비용, 시간, 제도 환경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는 해석이 나온다. 규제를 완화할 것인가의 문제가 아니라, 판단의 속도와 정밀성을 어떻게 균형 있게 확보할 것인가의 문제다. 글로벌 신약 경쟁은 이미 본격화됐다. 각국은 허가 체계를 산업 전략의 한 축으로 다루고 있다. 한국이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격차의 방향도 달라질 수 있다.
2026-03-05 08: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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