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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트리온 '앱토즈마', 美 소아 코로나 치료제로도 쓴다
[경제일보] 셀트리온의 자가면역질환 치료제 ‘앱토즈마(성분명 토실리주맙)’가 미국에서 소아 코로나19 치료제로도 쓰일 수 있게 됐다. 9일 업계에 따르면 셀트리온은 앱토즈마 정맥주사(IV) 제형이 미국 식품의약국(FDA)으로부터 2세 이상 소아·청소년 코로나19 적응증 추가 승인을 받았다고 밝혔다. 이번 승인으로 앱토즈마의 미국 코로나19 치료 대상은 기존 성인에서 2세 이상 소아·청소년으로 확대됐다. 특히 중증으로 입원한 소아 환자나 중증 코로나19로 진행할 위험이 높은 환자에게 치료 선택지를 넓힐 수 있게 됐다. 앱토즈마는 로슈의 ‘악템라’를 복제한 바이오시밀러다. 체내 염증 반응에 관여하는 인터루킨-6(IL-6)의 작용을 억제하는 방식으로 효과를 낸다. 미국에서 앱토즈마는 코로나19 외에도 류마티스 관절염(RA), 거대세포동맥염(GCA), 전신형 소아특발성관절염(sJIA), 다관절형 소아특발성관절염(pJIA) 등의 적응증을 확보하고 있다. 앱토즈마의 미국 허가 범위는 출시를 전후해 꾸준히 확대됐다. 셀트리온은 지난해 미국 FDA로부터 앱토즈마의 정맥주사(IV)와 피하주사(SC) 제형 품목허가를 받았다. 당시 오리지널 의약품인 악템라가 보유한 주요 적응증을 포함해 미국에서 ‘풀 라벨(Full Label)’ 허가를 확보했다. 이어 정맥주사 제형은 사이토카인방출증후군(CRS) 적응증을 추가했다. CRS는 CAR-T 세포치료제 등 면역세포치료 과정에서 과도한 면역반응으로 발생할 수 있는 중증 염증 반응이다. 당시 CRS 적응증은 악템라에서도 정맥주사 제형에 한해 허가된 항목이었다. 이로써 앱토즈마 IV 제형은 류마티스 관절염, 거대세포동맥염, 소아특발성관절염, 코로나19, CRS 등 악템라의 미국 내 주요 적응증을 모두 확보했다. 이번에는 여기에 2세 이상 소아·청소년 코로나19 적응증이 추가되면서 실제 치료 대상이 다시 확대된 것이다. 셀트리온은 적응증 확대와 함께 미국 내 처방 기반 확보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앱토즈마는 2025년 10월 미국에 출시됐으며 당시 오리지널 의약품 대비 약 35% 낮은 도매가격을 책정했다. 출시와 동시에 블루크로스블루쉴드(BCBS) 미네소타 처방집에 선호의약품으로 등재되기도 했다. 이후 미국 3대 처방약급여관리업체(PBM)인 익스프레스 스크립츠(ESI), CVS케어마크, 옵텀의 사보험 처방집에도 선호의약품으로 등재됐다. 이에 따라 미국 보험시장의 절반이 넘는 환급 커버리지를 확보한 것으로 분석됐다. 셀트리온은 병원에서 주로 투여하는 IV 제형과 향후 약국 중심으로 처방이 이뤄질 SC 제형을 병행해 환자와 의료진의 선택권을 넓힌다는 전략이다. 앱토즈마의 오리지널 의약품인 악템라는 글로벌 블록버스터 의약품이다. 토실리주맙 시장 역시 미국을 중심으로 규모가 큰 만큼 바이오시밀러 업체들의 경쟁이 이어지고 있다. 셀트리온은 미국뿐 아니라 유럽과 일본에서도 앱토즈마의 판매를 확대하고 있다. 유럽에서는 프랑스·독일·스페인 등 주요 국가에 제품을 출시했고 스페인에서는 공공입찰을 통해 공급망을 확대하고 있다. 독일에서는 올해 1분기 앱토즈마 피하주사(SC) 판매량이 전 분기보다 57% 증가했고 IV 제형 판매량도 2월 기준 전월 대비 87% 늘었다. 일본에서도 앱토즈마를 퍼스트무버로 출시하며 류마티스 관절염, 소아특발성관절염, 캐슬만병, CRS 등 주요 적응증을 기반으로 시장 공략에 나섰다. 셀트리온 관계자는 “이번 소아 코로나19 적응증 추가는 소아 환자의 치료 선택지를 넓히는 동시에 미국 토실리주맙 시장에서 앱토즈마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의료진과의 소통을 강화해 처방 확대와 시장 안착을 이어가겠다”고 말했다.
2026-10-09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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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로펌을 합쳐 만든 '최연소 빅6'…화우 23년의 승부
[경제일보] 2002년 12월 4일 법무법인 우방과 화백이 합병을 결정했다. 국제거래와 기업자문에 강했던 우방과 송무로 이름을 알린 화백의 결합이었다. 우방은 변호사 40명, 화백은 60명 안팎이었다. 양측은 기존 인력을 내보내지 않는 대등 합병을 택했다. 이듬해 2월 법무법인 화우가 출범했다. 이름은 화백의 ‘화’와 우방의 ‘우’를 따왔고 ‘화목한 집안’이라는 뜻도 담았다. 출범 당시 변호사는 90명을 넘어 김앤장과 광장, 태평양, 세종에 이은 국내 5위 규모였다. 작은 법률사무소가 조금씩 몸집을 키운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강점을 가진 두 조직이 한꺼번에 합쳐져 대형 로펌 시장에 들어왔다. 23년이 지난 현재 화우는 국내 대형 로펌을 일컫는 ‘빅6’ 가운데 역사가 가장 짧다. 2025년 법무법인 매출은 2812억원으로 전년보다 12.5% 늘었고 자매법인과 해외사무소를 포함하면 3012억원을 기록했다. 2023년 이후 2년 동안 매출은 약 35% 증가했다. 한국 변호사 1인당 매출은 7억6200만원으로 김앤장을 제외한 주요 대형 법무법인 가운데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화우의 성장사는 합병으로 뼈대를 만들고 그 위에 전문분야를 붙여온 과정이다. 첫 합병으로 기업자문과 송무를 묶었고 3년 뒤 두 번째 합병으로 지식재산권 분야를 보강했다. 최근에는 금융과 기업형사에 더해 M&A와 중대재해, AI·데이터까지 사람을 늘리고 있다. ◆ 자문 우방과 송무 화백이 만났다 화우의 한쪽 뿌리인 우방은 윤호일 변호사가 1989년 세운 법률사무소에서 출발했다. 윤 변호사는 짧은 판사 생활을 마치고 1970년 미국으로 건너가 노트르담대 로스쿨과 베이커앤드맥켄지 등을 거치며 19년 동안 미국에서 활동했다. 귀국 뒤에는 국제거래와 기업자문, 공정거래 분야를 집중적으로 다뤘다. 화백은 법원 출신 변호사들이 중심이었다. 노경래 변호사를 비롯해 판사 경험을 가진 변호사들이 송무에서 이름을 쌓았다. 우방이 계약과 거래를 다뤘다면 화백은 분쟁이 법정으로 넘어간 뒤의 대응에 강했다. 두 조직은 같은 기업 고객을 상대하면서도 맡는 일이 달랐다. 2000년대 초 국내 로펌 시장에서는 대형화 경쟁이 시작됐다. 외환위기 이후 기업 구조조정과 M&A가 늘었고 해외 거래와 분쟁도 복잡해졌다. 기업은 계약서만 검토하거나 소송만 맡기는 로펌보다 자문과 송무를 함께 처리할 조직을 찾기 시작했다. 윤호일 우방 대표와 노경래 화백 대표도 서로의 빈 곳을 알고 있었다. 우방에는 송무가 필요했고 화백에는 국제거래와 기업자문이 필요했다. 오랜 기간 독자적인 조직문화를 만들어온 두 로펌이었지만 규모와 업무 영역을 동시에 넓히기 위해 합병을 택했다. ◆ 사람을 내보내지 않은 1대1 합병 합병 과정에서 양측이 정한 원칙 가운데 하나는 기존 인력을 줄이지 않는 것이었다. 한쪽이 다른 쪽을 인수하는 방식도 피했다. 변호사 수에서는 화백이 더 컸지만 두 조직은 1대1 합병을 택했다. 규모보다 대등한 통합을 앞세운 결정이었다. 문제는 합친 뒤였다. 우방과 화백은 10년 넘게 각자 조직을 운영하면서 보수와 사건 배분, 인사 방식도 달라져 있었다. 합병 당시 윤호일 변호사도 서로 다른 기업문화와 업무 분야 때문에 협상 과정에서 적지 않은 난제가 있었다고 밝혔다. 그래도 합병을 되돌리지는 않았다. 기업자문 변호사와 송무 변호사가 같은 고객을 함께 맡도록 업무를 연결했고 서울 삼성동 아셈타워에 조직을 모았다. 한쪽의 이름을 없애는 대신 두 이름의 첫 글자를 합쳐 새 간판을 달았다. 화우는 광장보다 2년 늦게 대형 합병을 했다. 광장이 기업자문 한미와 송무 광장을 합쳐 두 축을 결합했다면 화우는 여기서 한 번 더 움직였다. 출범 3년 뒤 또 다른 로펌을 받아들였다. ◆ 두 번째 합병으로 지식재산권을 보강했다 2006년 화우는 김·신·유 법률사무소와 합병했다. 김·신·유는 1967년 설립된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축에 속하는 로펌으로 지식재산권과 외국계 기업 업무에 강점을 갖고 있었다. 화우보다 역사가 훨씬 긴 조직이었다. 첫 합병으로 기업자문과 송무를 갖췄다면 두 번째 합병에서는 지식재산권 분야를 보강했다. 김·신·유 출신 변리사들도 대거 합류했고 같은 해 특허법인 화우가 출범했다. 기업의 거래와 분쟁에 특허와 상표 문제까지 한 조직에서 다룰 수 있는 틀이 만들어졌다. 2003년 우방과 화백, 2006년 김·신·유까지 세 조직의 경험이 차례로 한 법인 안에 들어왔다. 화우가 다른 빅6보다 늦게 출발하고도 빠른 시간 안에 종합로펌의 체계를 갖춘 배경이다. 기업자문과 송무에 지식재산권까지 더하면서 다룰 수 있는 사건의 폭도 넓어졌다. 이후에는 큰 로펌을 다시 합치지 않았다. 2010년 법무법인(유한)으로 조직을 바꿨고 2013년 관세법인, 2017년 세무법인을 세웠다. 해외에서는 2008년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를 시작으로 호찌민과 하노이, 자카르타에 사무소를 냈다. ◆ 화우의 오래된 두 축, 금융과 송무 화우의 업무 가운데 오랫동안 이름을 알려온 분야는 금융과 송무다. 금융에서는 금융감독원과 금융위원회, 한국거래소 등 감독기관에서 근무한 전문가를 꾸준히 영입했다. 현재 경영을 맡고 있는 이명수 대표변호사도 금융감독원에서 10년간 법무팀장과 기업공시팀장 등을 지낸 금융규제 전문가다. 이 대표는 2010년 화우에 합류한 뒤 금융회사 검사·제재와 인허가, M&A, 불공정거래 등의 업무를 맡았다. 최근에도 금융감독원과 글로벌 회계법인 출신 전문가들을 추가로 영입했다. 금융회사 검사와 제재가 복잡해지고 회계감리와 불공정거래 조사까지 얽히면서 감독기관과 회계 실무를 경험한 인력이 필요해졌다. 송무에서는 기업 경영권 분쟁과 금융소송, 기업형사 사건을 다뤄왔다. 남양유업 경영권을 둘러싼 한앤컴퍼니의 주식양도청구 소송과 한미사이언스 신주발행금지가처분, DB하이텍 의결권행사금지가처분 등에 참여했다. ELS 불완전판매 소송에서는 금융회사를 대리했고 바이오기업 메디톡스를 둘러싼 영업비밀·특허 분쟁에도 참여했다. 체임버스앤파트너스의 2026년 평가에서 화우는 국내 송무와 기업·M&A, 공정거래에서 각각 Band 2에 올라 있다. 송무에서 출발한 화백과 기업자문을 맡았던 우방의 경험이 20년이 지난 현재의 업무 구성에도 남아 있다. ◆ 송무·금융에서 M&A로 최근 화우가 힘을 더 싣는 분야는 M&A다. 2025년에는 네이버와 두나무의 포괄적 주식교환 거래와 효성화학 네오켐 사업부 매각, 한화생명의 미국 증권사 벨로시티 인수 등을 자문했다. 금융과 송무에 비해 상대적으로 약하다는 평가를 받아온 기업자문 분야에 사람을 집중적으로 넣기 시작했다. 2026년 들어 성과도 나타났다. 네이버의 스페인 중고거래 플랫폼 왈라팝 인수, 칼라일의 KFC코리아 인수, NXC 해외 계열사 지분 매각, 하림의 홈플러스익스프레스 인수 등에 참여했다. 더벨의 2026년 상반기 M&A 법률자문 순위에서는 4위를 기록했다. 이명수 대표는 올해도 기업·금융 전문가 영입을 이어가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2025년 신입을 제외하고 80명이 넘는 외부 인재를 데려온 데 이어 M&A와 공정거래, 개인정보, 상법 관련 자문을 보강하고 있다. 방위산업과 수출통제, 에너지·인프라, AI·데이터·플랫폼 규제도 투자 분야로 잡았다. 화우가 기업자문을 키우는 방식은 처음 합병 때와 닮은 부분이 있다. 잘하는 금융과 송무를 그대로 두면서 상대적으로 부족했던 분야에 외부 인력을 붙인다. 조직 전체를 다시 합치는 대신 사람과 팀을 가져오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 2년 동안 35% 성장…1인당 매출은 선두권 최근 숫자는 화우의 변화를 보여준다. 화우의 법무법인 매출은 2023년 2082억원에서 2024년 2500억원, 2025년 2812억원으로 늘었다. 자매법인과 해외사무소를 합치면 지난해 처음으로 3000억원을 넘어섰다. 2년 동안 총매출이 약 35% 증가했다. 절대 매출로는 김앤장과 태평양, 세종, 광장, 율촌에 뒤진다. 대신 한국 변호사 1인당 매출은 2025년 7억6200만원으로 김앤장을 제외한 주요 대형 법무법인 가운데 가장 높았다. 율촌 7억6000만원, 태평양 7억3800만원, 세종 7억2400만원, 광장 7억1300만원보다 높았다. 인력을 늘리면서 매출 증가율이 더 높았다는 점도 눈에 들어온다. 최근 5년 동안 화우의 변호사 수는 15% 넘게 늘었지만 매출은 약 40% 증가했다. 금융감독원 출신 등 비변호사 전문가를 사건에 투입하고 고부가가치 사건의 비중을 늘린 영향도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다만 2~5위 로펌과의 외형 차이는 아직 크다. 2025년 태평양과 세종, 광장, 율촌이 모두 4000억원대 매출을 기록했다. 화우가 최근의 성장 속도를 유지하더라도 매출 3000억원대에서 4000억원대로 넘어가는 과정에는 또 다른 경쟁이 기다리고 있다. ◆ 합병으로 큰 로펌, 이제는 생산성으로 승부 화우도 몸집만 키우는 방식에서는 벗어나고 있다. 2003년에는 변호사 40명의 우방과 60명의 화백을 한꺼번에 합쳤고 2006년에는 김·신·유를 다시 받아들였다. 당시에는 규모를 키우는 것이 경쟁력을 높이는 빠른 방법이었다. 지금은 수백명의 변호사를 더 효율적으로 움직이는 문제가 중요해졌다. 2024년 경영 전면에 나선 이명수 대표 체제에서 화우는 금융과 송무라는 기존 기반에 M&A와 신산업 규제를 붙이고 있다. 2026년 9월에는 광화문 서울파이낸스센터에 강북사무소도 열었다. 삼성동 본사에서만 고객을 기다리지 않고 기업과 금융회사, 정부기관이 몰린 도심으로 접점을 다시 넓힌 것이다. 과거에는 로펌을 합쳐 규모를 만들었다면 지금은 고객과 가까운 곳에 거점을 두고 필요한 분야의 사람을 붙이는 방식으로 달라졌다. 화우는 빅6 가운데 가장 늦게 만들어졌다. 대신 출발부터 기존 조직 세 곳이 쌓은 경험을 한꺼번에 가져왔다. 우방에서 기업자문을, 화백에서 송무를, 김·신·유에서 지식재산권을 받아들였다. 23년이 지난 지금은 다른 계산을 하고 있다. 또 다른 로펌을 합치는 대신 필요한 전문가를 데려오고 기존 강점과 연결한다. 두 번의 합병으로 만든 로펌이 이제는 사람 한 명, 팀 하나의 생산성을 따지는 단계로 넘어갔다.
2026-09-21 08:4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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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세로 시작해 빅5까지…율촌, 합병 없이 키운 29년
[경제일보] 1997년 서울 삼성동 섬유센터에 변호사 6명이 모였다. 조세를 맡은 우창록, 공정거래와 국제조세의 윤세리, 기업금융의 강희철, 금융의 한봉희, M&A의 정영철 변호사 등이었다. 대형 로펌들이 이미 기업법무 시장의 자리를 잡아가던 때였다. 새 로펌의 이름은 ‘법률가의 마을’이라는 뜻을 담아 율촌(律村)으로 지었다. 29년이 지난 지금 율촌의 연 매출은 4000억원을 넘어섰다. 2025년 매출은 4080억원으로 전년 3709억원보다 10% 늘었다. 태평양과 세종, 광장에 이어 국내 법무법인 가운데 네 번째 4000억원대 로펌이 됐다. 한국 변호사 1인당 매출은 약 7억6000만원으로 주요 대형 로펌 가운데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율촌의 성장 과정은 앞서 출발한 대형 로펌과 조금 다르다. 다른 로펌을 합쳐 단기간에 변호사 숫자를 늘리지 않았고 처음부터 모든 업무를 갖추지도 않았다. 조세와 공정거래에서 이름을 알린 뒤 기업자문과 M&A, 송무, 금융으로 영역을 넓혔다. 설립 이후 지금까지 대형 로펌과의 합병 없이 조직을 키워왔다. ◆ 김앤장을 나온 조세 변호사가 만든 사무실 율촌의 시작은 법무법인 설립보다 5년 앞선 1992년이다. 우창록 변호사가 서울 서초구 반포동에 자신의 이름을 건 법률사무소를 열었다. 사법연수원 6기인 우 변호사는 김앤장과 미국 뉴욕 로펌에서 일했고 국내에서는 일찍부터 조세 분야를 파고들었다. 조세가 기업법무의 주요 전문분야로 자리 잡기 전이었다. 1994년 사무실 이름은 율촌합동법률사무소로 바뀌었다. 이후 우 변호사는 조세만으로 로펌을 키우기보다 서로 다른 분야에서 경험을 쌓은 변호사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공정거래와 국제조세를 다룬 윤세리 변호사, 기업금융의 강희철 변호사, 조세의 한만수 변호사, 금융과 지식재산권의 한봉희 변호사 등이 합류했다. 1997년 법무법인 율촌이 공식 출범했다. 윤세리 변호사의 경력도 당시로서는 흔하지 않았다. 검사 생활을 거쳐 하버드 로스쿨에서 LL.M., 캘리포니아대 헤이스팅스에서 J.D.를 받은 뒤 미국 베이커앤드맥켄지 뉴욕·시카고 사무소에서 근무했다. 이후 한미합동법률사무소와 우방종합법무법인을 거쳐 율촌 설립에 참여했다. 처음부터 분야를 나눠 사람을 모은 것도 규모보다 전문성을 먼저 세우려는 선택이었다. 이미 시장에서는 김앤장과 광장, 태평양, 세종이 앞서 있었다. 후발주자가 같은 방식으로 사람을 늘리는 것만으로는 격차를 좁히기 어려웠다. 율촌은 처음부터 모든 분야를 갖추기보다 경쟁할 수 있는 전문분야를 먼저 만드는 길을 택했다. ◆ 첫 승부처는 조세와 공정거래 율촌이라는 이름을 법률시장에 알린 분야는 조세였다. 우창록 변호사는 현대그룹 계열사를 둘러싼 법인세 부과처분 취소소송 등 대기업 조세 사건을 맡았다. 조세 사건은 세법만 알아서는 다루기 어렵다. 기업의 회계와 거래 구조를 이해해야 하고 국세청의 과세 논리와 법원의 판단 기준도 함께 읽어야 한다. 율촌은 변호사와 회계사, 세무사가 함께 사건을 다루는 방식으로 조세 분야의 인력을 늘렸다. 공정거래는 윤세리 변호사가 한 축을 맡았다. 기업결합과 카르텔,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 등 기업의 영업 자체를 좌우하는 사건이 늘어나면서 공정거래법도 기업법무의 주요 분야로 올라왔다. 율촌은 설립 초기부터 공정거래를 별도 전문분야로 키웠다. 두 분야에는 공통점이 있었다. 소송이 벌어진 뒤 법정에서 다투는 일만으로 끝나지 않았다. 기업이 거래를 시작하기 전부터 세금과 규제를 검토해야 했고 국세청이나 공정거래위원회의 조사 단계에서도 대응해야 했다. 율촌은 이 시장에서 먼저 기업 고객을 확보했다. 2026년 체임버스앤파트너스 평가에서도 율촌은 조세와 공정거래 분야 모두 국내 Band 1에 올라 있다. 조세는 김앤장·세종과 함께 최상위 그룹에 들었고 공정거래는 김앤장·광장·세종과 같은 등급을 받았다. 창립 초기 선택한 두 분야가 30년 가까이 지난 지금도 주력 업무로 남아 있다. ◆ 큰 로펌을 사지 않고 사람과 분야를 늘렸다 2000년대 국내 로펌 시장에는 합병 바람이 불었다. 광장은 한미와 합쳤고 세종은 열린합동을 받아들였다. 대형 로펌으로 빨리 몸집을 키우는 방법 가운데 하나가 다른 조직과의 결합이었다. 율촌은 다른 길을 택했다. 설립 이후 대형 로펌을 합병하지 않고 변호사를 직접 뽑거나 필요한 분야의 전문가를 영입하면서 조직을 키웠다. 조세와 공정거래에서 기업법무·금융, 송무, 지식재산권, 부동산·건설로 업무가 늘어났다. 대형 조직을 통째로 받아들이기보다 필요한 사람과 분야를 하나씩 붙이는 방식이었다. 규모도 빠르게 커졌다. 1997년 6명의 파트너 변호사로 출발했지만 2010년에는 국내외 변호사와 변리사, 회계사, 세무사 등 전문인력이 230여명으로 늘었다. 최근에는 변호사만 500명을 넘어섰다. 2021년 381명이던 변호사는 2025년 537명으로 4년 동안 41% 증가했다. 같은 기간 매출은 2687억원에서 4080억원으로 52% 늘었다. 사람을 늘리면서도 1인당 매출을 주요 대형 로펌 가운데 높은 수준으로 유지했다. 몸집을 키우되 생산성이 떨어지지 않도록 관리한 것이 율촌 성장 과정에서 눈에 띄는 대목이다. ◆ ‘조세 로펌’에서 M&A까지 조세와 공정거래만으로 500명이 넘는 변호사를 먹여 살릴 수는 없다. 율촌도 기업법무와 M&A, 금융 분야를 계속 키웠다. 2026년 체임버스앤파트너스는 율촌의 기업·M&A 부문을 국내 Band 1로 평가했다. 복잡한 거래에서 조세와 공정거래 전문가를 기업자문팀과 함께 투입하는 점도 강점으로 꼽았다. M&A 계약만 검토하는 것이 아니라 기업결합 심사와 세금 문제를 같은 조직에서 처리하는 방식이다. 최근 사례가 신세계그룹과 중국 알리바바그룹의 합작투자다. 양측은 지마켓과 알리익스프레스코리아를 묶어 6조원 규모의 합작법인을 세우기로 했고 율촌은 신세계 측 법률자문을 맡았다. 기업결합 승인과 지마켓 지분의 현물출자에 필요한 법원 인가 등 여러 절차가 함께 진행된 거래였다. 기업법무가 커져도 조세와 공정거래는 뒤에서 함께 움직인다. M&A 한 건에는 계약과 금융뿐 아니라 기업결합 심사와 세금, 노동 문제가 동시에 따라붙는다. 율촌이 처음부터 나눠 키운 전문분야들이 대형 거래에서 다시 만나는 방식이다. ◆ 베트남에서 먼저 해외 거점 늘려 국내 조직이 커지면서 해외에도 눈을 돌렸다. 율촌은 2007년 베트남 호찌민에 사무소를 열었고 2010년 하노이, 2011년 중국 베이징에 진출했다. 이후 미얀마 양곤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도 거점을 두면서 한국 기업이 많이 진출한 아시아 지역을 중심으로 해외 업무를 늘렸다. 2007년에는 국문과 영문 사명을 모두 ‘율촌(Yulchon)’으로 통일했다. 해외에서 창업자들의 성을 조합한 이름을 쓰는 국내 로펌이 적지 않았지만 율촌은 한국 이름을 그대로 영문 브랜드로 사용했다. ‘법률가의 마을’이라는 창업 당시 이름을 해외에서도 그대로 가져갔다. 해외 확장도 대형 외국 로펌과 합병하는 방식은 아니었다. 한국 기업이 많이 나가는 국가에 직접 사무소를 열거나 현지 로펌과 협업하는 방법을 택했다. 국내에서 선택했던 자체 성장 방식이 해외에서도 이어졌다. 다만 국내 대형 로펌의 해외사업은 여전히 숙제가 많다. 한국 기업이 해외에서 대형 거래나 소송을 벌일 때 현지 영미계 로펌을 직접 선임하는 경우가 많다. 국내에서 쌓은 전문성을 해외 매출로 얼마나 연결하느냐는 율촌을 포함한 국내 대형 로펌들이 풀어야 할 문제다. ◆ 창업자 물러나고 조세 전문가가 대표 맡아 율촌의 세대교체는 2019년 한 차례 큰 변화를 맞았다. 창업자인 우창록 변호사가 일선 경영에서 물러났고 윤용섭·강석훈·윤희웅 변호사 등이 경영을 맡았다. 현재 대표변호사인 강석훈 변호사는 17년간 판사로 근무한 뒤 2007년 율촌에 합류했다. 대법원 재판연구관 조세팀장을 지낸 조세 전문가로 율촌 조세그룹 대표를 거쳐 2019년 경영대표가 됐다. 최근에는 그룹별 세대교체도 진행했다. 2025년 초 조세와 송무, 기업법무·금융 등 주요 그룹 대표를 1970년대생 변호사들로 바꿨다. 강 대표도 2027년 하반기 차기 대표에게 경영을 넘길 계획이라고 밝혔다. 창업세대에서 2세대, 다시 다음 세대로 경영권을 옮기는 과정이 진행되고 있다. 율촌의 인재 기준에는 ‘협업’이라는 말이 자주 등장한다. 창립 20주년 사사에는 전문성과 윤리성, 협동정신을 인재 영입의 세 가지 기준으로 제시했다. 우창록 변호사도 개인 능력이 뛰어나더라도 조직과 함께 일하기 어려운 사람은 맞지 않는다는 취지로 인재관을 설명한 바 있다. 대형 합병을 하지 않고 조직 안에서 사람을 계속 붙이는 방식에서는 이 문제가 더 중요하다. 새로 들어온 전문가가 개인 고객만 관리하면 덩치는 커져도 종합로펌의 장점은 줄어든다. 서로 다른 전문분야의 변호사가 사건을 나눠 맡을 수 있어야 자체 성장 방식도 유지된다. ◆ 매출은 5위, 고객 평가는 달랐다 현재 율촌의 외형은 국내 5위권이다. 2025년 매출은 태평양 4402억원, 세종 4363억원, 광장 4309억원에 이어 율촌이 4080억원을 기록했다. 2위 태평양과 율촌의 차이는 322억원이다. 김앤장을 제외하면 대형 법무법인 네 곳이 모두 4000억원대에 들어왔다. 고객을 대상으로 한 평가는 매출 순위와 조금 다르다. 한국사내변호사회의 2025년 조사에서 율촌은 종합 2위와 전문성 2위, 서비스 1위를 기록했다. 조세·관세 분야에서는 2020년 이후 6년 연속 1위를 차지했고 TMT에서도 2025년 1위에 올랐다. 외형보다 전문성과 서비스 평가에서 강점을 보였다. 매출 2~4위 로펌보다 변호사 숫자는 적지만 1인당 매출은 높다. 율촌은 2025년 한국 변호사 1인당 약 7억6000만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주요 대형 로펌의 경쟁이 단순히 변호사 수를 늘리는 단계에서 생산성을 따지는 단계로 옮겨가고 있다는 점도 보여준다. 율촌도 최근 방향을 외형 확대보다 생산성에 두고 있다. 강석훈 대표는 리걸테크와 고부가가치 업무가 향후 실적을 좌우할 것이라고 밝혔고 매출 자체를 키우기 위한 양적 경쟁은 하지 않겠다는 입장도 내놨다. 규모보다 전문성과 생산성을 앞세웠던 창립기의 전략과도 맞닿아 있다. ◆ 30년을 앞두고 다시 꺼낸 ‘전문성’ 율촌은 2027년 창립 30년을 맞는다. 1997년 여섯 명이 모였을 때 가장 먼저 나눈 것은 사무실 지분보다 업무 분야였다. 우창록은 조세, 윤세리는 공정거래와 국제조세, 강희철은 기업금융, 정영철은 M&A, 한봉희는 금융과 지식재산권을 맡았다. 큰 조직부터 만든 뒤 전문분야를 나눈 것이 아니라 각자의 전문분야를 들고 모여 조직을 만들었다. 조세와 공정거래에서 출발한 율촌은 기업법무와 금융, 송무, M&A로 업무를 넓혔다. 다른 대형 로펌과의 합병 없이 변호사를 뽑고 분야별 전문가를 붙이며 조직을 키웠다. 그 결과 2025년 매출 4080억원, 변호사 500명대의 로펌이 됐다. 후발주자가 선발주자를 따라잡으려면 같은 길을 더 빨리 달리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율촌은 모든 분야를 한꺼번에 갖추는 대신 조세와 공정거래부터 파고들었다. 그 분야에서 확보한 기업 고객을 M&A와 금융, 송무로 연결하면서 몸집을 키웠다. 1997년 선택한 이름은 ‘법률가의 마을’이었다. 30년을 앞둔 지금 그 마을에는 500명이 넘는 변호사가 일한다. 율촌이 커진 과정은 처음부터 큰 조직을 만든 역사가 아니라 전문분야를 가진 사람들을 하나씩 모아온 역사다.
2026-09-17 07:5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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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 한미 400G 국가 연구망 구축…AI 시대 국제 데이터망 고도화
[경제일보] 인공지능(AI)과 초대형 과학 연구가 확대되면서 국가 연구망에서도 대용량 데이터를 안정적으로 주고받을 수 있는 국제 네트워크 인프라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KT가 한국과 미국을 잇는 400Gbps급 국제 전용회선을 구축하며 국가 연구망의 국제 데이터 전송 역량을 기존 100Gbps급에서 4배로 끌어올렸다. 해저케이블과 국제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AI 시대 글로벌 데이터 인프라 경쟁력도 강화한다는 전략이다. 16일 KT는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과 함께 국내 최초로 한국과 미국을 연결하는 400Gbps급 단일 국제 전용회선을 개통했다고 밝혔다. 이번 회선은 KISTI 국가과학기술연구망(KREONET)의 국제 백본망으로, 대전 KISTI 본원과 북미·유럽 연구망이 집중된 미국 시카고를 연결한다. 기존 100Gbps급 국제회선을 400Gbps급으로 확대해 대규모 연구 데이터를 보다 안정적으로 전송할 수 있도록 했다. AI를 비롯해 천문·우주, 초대형 과학 연구 등 데이터 집약적인 연구가 확대되면서 연구기관 간 국제 데이터 교류량도 늘어나고 있다. 특히 AI 학습·추론에 필요한 대규모 데이터와 과학 분야에서 생성되는 관측·시뮬레이션 데이터는 기존 연구망의 전송 용량과 지연시간에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는 것으로 꼽힌다. 400Gbps 회선은 이런 대용량 데이터를 한미 간에 전송하는 연구 인프라 역할을 맡을 전망이다. KT는 국내 연구기관이 해외 연구기관과 데이터를 주고받거나 공동 연구를 수행할 때 국제 구간의 병목을 줄이고, AI·대형 과학·융합 연구 분야에서 대규모 데이터 활용을 지원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번 구축 과정은 한국과 미국을 잇는 장거리 구간에서 400Gbps급 회선의 안정성을 확보하는 것이 핵심이다. KT는 한미 구간 해저케이블을 활용해 400Gbps급 전송망을 구축하고 안정성을 검증한 뒤 시카고까지 연결을 완료했다. 특히 KT는 한국과 미국을 직접 연결하는 NCP 해저케이블을 활용했다. 중간 국가를 거치지 않고 한미 구간을 직접 연결해 국가과학기술연구망 회선의 경로를 구성한 것이 특징이다. 국제 데이터 통신에서 해저케이블의 역할도 커지고 있다. KT는 아시아태평양게이트웨이(APG), 아시아태평양케이블2(APCN-2), 뉴크로스퍼시픽(NCP), 트랜스-퍼시픽 익스프레스(TPE), 한일케이블(KJCN) 등 5개의 해저케이블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이 가운데 NCP를 통해 한국과 미국을 직접 연결하고, 부산과 거제에 이중으로 국제 해저케이블 육양국을 운영해 한쪽 구간에 장애가 발생할 경우 우회할 수 있는 구조도 갖췄다. KT는 향후 해저케이블 용량을 추가로 확대하고 국제 육양국을 다변화해 AI 시대 글로벌 데이터 교류에 대응한다는 계획이다. 대규모 AI 연산과 데이터 활용이 확대될수록 데이터센터와 연구기관을 연결하는 국제 네트워크의 용량과 안정성이 중요해지는 만큼, 해저케이블 확보와 국제망 고도화가 통신사업자들의 새로운 경쟁 요소로 자리 잡을 것으로 전망된다. 전명준 KT 엔터프라이즈부문 엔터프라이즈서비스본부장 상무는 "대한민국 최초의 한-미 400G 국가과학기술연구망 구축은 국내 R&D 인프라 경쟁력을 한 단계 높이는 중요한 이정표"라며 "KT는 국제 해저케이블과 글로벌 백본 운용 역량을 바탕으로 KISTI와 협력해 국가 연구망의 글로벌 경쟁력 강화와 디지털 혁신을 지속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2026-09-16 09:0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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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년 만에 다시 3위…세종이 판을 뒤집은 방법
[경제일보] 2025년 국내 대형 로펌의 순위가 바뀌었다. 법무법인 세종은 국세청 부가가치세 신고 기준 매출 4363억원을 기록하며 광장과 율촌을 앞섰다. 2007년 광장에 자리를 내준 뒤 19년 만에 매출 3위로 돌아왔다. 2021년 말 455명이던 변호사는 2025년 말 603명으로 늘었다. 순위 하나가 바뀐 것보다 그 과정이 더 눈에 들어온다. 한동안 세종은 대형 로펌 경쟁에서 성장 속도가 더딘 곳으로 꼽혔다. 2007년 광장에 밀렸고 2013년에는 율촌에도 뒤졌다. 최근 5년 사이 세종은 조세와 정보통신기술(TMT), 송무와 형사, 공정거래 등 필요한 분야의 사람을 공격적으로 끌어들이며 다시 선두권으로 올라왔다. 1983년 문을 연 세종은 올해로 43년째다. 처음부터 모든 분야를 갖춘 종합로펌은 아니었다. 출발점에는 증권과 금융이 있었고 성장 과정에는 몇 차례 합병이 있었다. 최근의 세종은 여기에 인재 영입이라는 승부수를 더했다. ◆ ‘증권법 1호 박사’가 만든 로펌 세종의 출발에는 신영무 변호사가 있다. 신 변호사는 판사로 법조 생활을 시작했지만 2년 만에 법복을 벗었다. 미국 예일대 로스쿨에서 증권법을 공부했고 미 연방증권거래위원회(SEC) 연수와 뉴욕 로펌 근무를 거쳤다. 국내에서 증권법을 전공한 법률가를 찾기 어려웠던 시절이었다. 1980년 귀국한 신 변호사는 남산합동법률사무소에 합류했다. 1983년 사무실을 광화문 교보빌딩으로 옮기면서 세종합동법률사무소가 출범했다. 당시 함께 일하던 김두식 변호사의 성을 더해 영문 이름도 지금의 ‘SHIN & KIM’으로 정착했다. 창업 초기부터 금융과 증권을 주력 분야로 잡았다. 자본시장 개방이 시작되면서 세종은 외국인전용수익증권과 코리아펀드 설립을 자문했다. 삼성전자 해외 전환사채(CB), 삼미종합특수강 해외 신주인수권부사채(BW), 삼성물산 해외 주식예탁증서(DR), 포스코 미국 주식예탁증서(ADR) 발행에도 관여했다. 한국 기업이 해외 자본시장으로 나가기 시작하던 때였다. 세종은 그 길목에서 금융과 증권을 다룬 경험을 쌓았다. ◆ 창업자 혼자 가져가는 로펌을 만들지 않았다 신영무 변호사가 신경 쓴 것은 사건만이 아니었다. 로펌을 누가 소유하고 어떻게 운영할지도 중요하게 봤다. 당시 국내 법률사무소 상당수는 창업자의 영향력이 강했고 젊은 변호사가 일정 기간 일한 뒤 독립하는 일도 흔했다. 신 변호사는 미국 로펌에서 경험한 파트너십을 세종에 도입했다. 연공과 성과를 배당에 함께 반영하고 지분을 가진 파트너가 의사결정에 참여하도록 했다. 이 운영 방식은 지금도 남아 있다. 세종은 지분 파트너들의 직접 투표로 경영위원을 선출하고 현재 오종한 경영대표를 비롯한 5명의 경영위원이 주요 경영 판단에 참여한다. 한 명의 창업자나 대표에게 경영권을 집중시키는 방식과는 차이가 있다. 신 변호사는 2013년 세종에서 물러났다. 창업자가 조직을 떠난 뒤에도 로펌 이름과 경영체제는 그대로 유지됐다. 개인의 이름으로 시작한 법률사무소를 구성원들이 이어가는 조직으로 바꾸려 했던 초기 선택이 세대교체 과정에서도 이어졌다. ◆ 외환위기가 증권·금융 로펌을 바꿨다 1997년 외환위기는 세종에도 큰 전환점이었다. 기업들이 줄줄이 쓰러지면서 법률시장의 일도 달라졌다. 새로운 투자와 증권 발행보다 부도와 회생, 워크아웃, 채권 회수가 급해졌다. 세종은 대농과 한일합섬, 쌍방울그룹, 미도파, 국제상사, 삼성자동차, 기아자동차, 진로 등 당시 도산 절차를 밟은 기업들의 사건에 관여했다. 대우그룹 워크아웃과 하이닉스·SK글로벌 구조조정에도 참여했다. 금융과 증권을 다루던 변호사들이 부실기업의 채권관계와 구조조정까지 들어가기 시작했다. 이후 세종의 기업법무 영역도 M&A와 도산, 기업분쟁으로 넓어졌다. 외환위기가 금융·증권 중심의 로펌을 종합 기업법무 쪽으로 밀어낸 셈이다. 기업의 자금조달 문제와 구조조정, 소송은 따로 떨어져 있지 않았다. 자문만 잘해서는 기업 고객의 문제를 끝까지 맡기 어려웠다. 세종은 2000년대 초 송무를 크게 보강하는 선택을 했다. ◆ 국내 첫 로펌 간 합병…송무를 붙였다 2001년 1월 세종은 열린합동법률사무소와 합쳤다. 열린합동에는 대법원장 비서실장을 지낸 황상현 당시 부장판사와 이건웅 부장판사 등 법원 출신 변호사들이 포진해 있었다. 금융과 기업자문에 강했던 세종에 송무 경험이 많은 변호사들이 대거 들어왔다. 국내 법무법인 사이에서 이뤄진 첫 합병으로 알려져 있다. 합병 뒤 세종은 김앤장에 이어 국내 2위권 종합로펌으로 몸집을 키웠다. 제조물 책임 소송 등 대형 송무에서도 이름을 알렸다. 2010년에는 세종 출신 변호사들이 설립했던 에버그린을 다시 합쳐 국내외 변호사와 회계사 등 전문인력을 280여명으로 늘렸다. 금융·증권이라는 기존 기반에 송무와 기업분쟁을 붙이는 작업이 계속됐다. 광장도 2001년 한미와 합병하며 기업자문과 송무를 결합했다. 세종은 합병 이후에도 금융·증권을 중심축으로 두고 송무와 기업분쟁을 계속 보강했다. 지금의 세종에는 창립기의 금융·증권과 2000년대 이후 강화한 송무가 함께 남아 있다. 다만 몸집을 키운다고 순위가 계속 올라간 것은 아니었다. ◆ 2위권에서 밀려난 뒤 길었던 정체 2000년대 초 세종은 김앤장 다음을 다투는 로펌이었다. 이후 경쟁사들이 더 빠르게 움직였다. 2007년 광장이 세종을 앞섰고 2013년에는 율촌에도 추월당했다. 기업법무 시장이 M&A와 공정거래, 조세, 노동, 지식재산권, 국제중재 등으로 세분화되면서 전문인력 확보 경쟁도 거세졌다. 세종은 오랫동안 상위권을 지켰지만 순위에서는 4~5위권에 머물렀다. 금융과 증권이라는 전통적인 강점만으로는 빠르게 변하는 시장에서 격차를 다시 벌리기 어려웠다. 변화가 빨라진 것은 2021년 오종한 대표변호사가 경영을 맡으면서부터다. 오 대표는 1989년 세종에 입사해 기업분쟁과 M&A를 맡아온 내부 출신 변호사다. 취임 이후 세종은 부족한 분야를 외부 인재 영입으로 빠르게 채우기 시작했다. 2020년 말 434명이던 세종의 변호사는 2025년 말 603명으로 늘었다. 5년 동안 169명이 증가했고 같은 기간 매출은 93% 늘었다. 대형 로펌 가운데서도 빠른 외형 확장이었다. ◆ 사람을 데려와 팀째 키웠다 세종의 최근 성장에서 눈에 띄는 대목은 영입 방식이다. 유명한 전관 한두 명을 데려오는 데 그치지 않고 조세와 TMT, 공정거래, 송무·형사처럼 경쟁력이 부족했던 분야에 필요한 사람들을 집중적으로 붙였다. 조세에서는 2022년 백제흠 변호사를 영입한 뒤 인력을 확대했고 송무에는 법원 출신 변호사들을 보강했다. 방송·통신과 개인정보 분야에도 정부와 기업에서 경험을 쌓은 전문가들이 들어왔다. 결과는 사건으로 이어졌다.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에서는 영풍·MBK 연합을 대리했고 한미약품과 콜마그룹의 경영권 분쟁에도 참여했다. 아시아나항공과 HDC현대산업개발 사이의 2500억원대 계약금 소송에서는 아시아나항공을 대리해 대법원까지 승소했다. 송무와 기업분쟁에서 존재감이 커졌다. M&A에서도 대형 거래가 늘었다. 알리익스프레스와 신세계그룹의 온라인 플랫폼 합작법인 설립과 아워홈 경영권 지분 매각, 교보생명의 SBI저축은행 인수 등에 참여했다. 2026년 상반기에는 부동산·SOC 법률자문에서도 거래금액과 건수 기준 선두에 올랐다. 외부에서 데려온 인력이 기존 금융·기업자문 조직과 맞물리면서 업무 폭도 넓어졌다. 체임버스앤파트너스의 2026년 평가에서는 금융과 자본시장, 공정거래, 기업자문·M&A, 국제중재, 송무, 노동, 부동산, 조세, TMT 등 11개 분야가 최고등급인 Band 1을 받았다. 김앤장 다음으로 많은 숫자였다. 초기 금융·증권 중심의 로펌에서 여러 분야를 함께 가져가는 조직으로 업무 구성이 달라졌다. ◆ 19년 만의 3위…격차는 39억원 인재 영입은 숫자로도 나타났다. 세종은 2025년 매출 4363억원으로 전년보다 18% 성장했다. 태평양은 4402억원, 광장은 4309억원을 기록했다. 2위 태평양과 세종의 차이는 39억원, 세종과 광장의 차이는 54억원에 불과했다. 세종에는 19년 만의 3위 복귀지만 안심할 만한 격차는 아니다. 한두 건의 대형 M&A나 송무 수임만으로 순서가 바뀔 수 있다. 공격적인 인재 영입으로 몸집을 키운 만큼 새로 들어온 변호사들과 기존 조직을 얼마나 잘 묶느냐도 중요해졌다. 외형 확대 다음 단계의 문제다. 고객 평가에서는 가능성과 한계가 함께 나타난다. 2025년 한국경제·한국사내변호사회 조사에서 세종은 종합평가와 전문성에서 각각 3위, 서비스에서는 2위를 기록했다. M&A·IPO와 금융 일반, 경영자문에서는 2위였고 민사·송무와 형사·수사기관 대응, 조세·관세에서는 3위였다. 1위 김앤장과의 격차는 여전히 크다. 김앤장의 2025년 추정 매출은 약 1조6000억원이다. 세종을 포함한 2위권 로펌들이 4000억원대에서 치열하게 순위를 다투는 것과는 시장 규모가 다르다. 세종의 경쟁 상대는 당장 김앤장보다 태평양과 광장, 율촌 쪽에 더 가깝다. ◆ 변호사만 늘리는 경쟁은 끝나고 있다 세종도 다음 단계에서는 다른 문제를 풀어야 한다. 오종한 대표는 최근 로펌이 변호사만으로 구성된 조직에서 회계사와 세무사, 변리사, 컨설턴트 등이 함께 일하는 조직으로 바뀌고 있다고 보고 있다. 세종은 방산·국방과 통상 분야에 비변호사 전문가를 늘리고 AI·디지털 경쟁법팀과 통상산업정책센터도 새로 만들었다. AI도 업무 안으로 들어왔다. 세종은 글로벌 법률 AI 서비스 ‘하비’ 사용 계정을 기존 30개에서 100개로 확대하기로 했다. 계약서 검토에 주로 사용하던 AI를 소장과 준비서면 등 송무 업무로 넓히는 방안도 추진하고 있다. 변호사를 더 뽑는 방식에서 업무 생산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경쟁이 옮겨가고 있다. 600명이 넘는 변호사들이 같은 고객을 놓고 경쟁하지 않고 서로 사건을 연결하는 일도 중요하다. 영입한 스타 변호사의 개인 실적이 조직 전체의 실적으로 이어져야 한다. 매출 4000억원대에서 5000억원대로 넘어가려면 인력의 숫자뿐 아니라 협업과 생산성도 함께 따라가야 한다. 오 대표는 2026년 목표로 5000억원을 언급하면서 외형보다 조직의 체질 변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국내 기업의 해외 법률 수요 상당 부분이 현지 로펌으로 흘러가는 한계도 직접 거론했다. 국내에서 몸집을 키우는 것과 해외에서 한국 기업의 사건을 가져오는 것은 또 다른 경쟁이다. ◆ 밀린 순위를 사람으로 되찾았다 세종의 43년에는 앞선 대형 로펌과 다른 굴곡이 있다. 신영무 변호사는 증권법을 들고 로펌을 만들었고 자본시장이 열리자 금융과 증권 분야에서 자리를 잡았다. 외환위기가 닥치자 기업 구조조정과 도산으로 업무를 넓혔고 송무가 부족해지자 2001년 열린합동과 합쳤다. 그 뒤 경쟁사들이 더 빨리 성장하면서 세종은 2위권에서 밀려났다. 2021년부터는 방향을 바꿨다. 부족한 분야를 하나씩 오래 키우는 대신 필요한 전문가를 외부에서 데려와 기존 조직과 묶었다. 조세와 TMT, 기업송무, 형사, 공정거래에서 사람이 늘자 사건도 따라왔다. 2025년 세종은 19년 만에 다시 3위에 올라섰다. 창업기의 무기는 증권법이었고 최근의 무기는 사람이다. 한 번 밀린 순위를 되찾는 데 19년이 걸렸다. 세종이 다시 치고 올라온 방법은 복잡하지 않았다. 부족한 곳에 사람을 넣었고 그 사람들이 가져온 사건을 조직의 일로 만들었다. 43년 전 금융과 증권에서 시작한 로펌은 이제 사람을 끌어들이는 힘으로 다시 순위를 올리고 있다.
2026-09-14 08:5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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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명 브랜드의 등용문……무신사의 20년 플랫폼 혁명
[경제일보] 국내 패션 시장에는 무신사 이전과 이후가 있다. 해외 브랜드를 소비하던 시장에서 국내 디자이너 브랜드를 키우는 시장으로 온라인 쇼핑몰에서 패션 플랫폼으로 산업의 중심축을 바꿔놓은 기업이 바로 무신사다. 2001년 스니커즈 커뮤니티 '무진장 신발 사진이 많은 곳'에서 출발한 작은 온라인 공간은 이제 수천 개 브랜드가 모이고 신생 브랜드가 성장하며 소비자가 패션을 발견하는 국내 최대 패션 생태계로 성장했다. 무신사의 20여년을 관통하는 DNA는 '플랫폼 확장'이다. 커뮤니티를 쇼핑으로 연결했고 쇼핑을 브랜드 육성으로 확장했다. 다시 자체 브랜드(PB)와 오프라인, 뷰티, 글로벌 시장까지 사업 영역을 넓히며 단순히 옷을 판매하는 기업이 아니라 브랜드가 성장하는 무대를 만드는 플랫폼으로 진화했다. 상품을 직접 생산하는 기업도, 특정 브랜드 하나에 의존하는 유통기업도 아닌 수많은 브랜드가 함께 성장하는 생태계를 구축한 것이 무신사 성장의 핵심 엔진이었다. 커뮤니티가 만든 플랫폼의 출발점 무신사의 시작은 쇼핑몰이 아니었다. 2001년 조만호 창업자가 개설한 온라인 커뮤니티 '무진장 신발 사진이 많은 곳'은 국내외 운동화와 스트리트 패션 정보를 공유하는 공간이었다. 당시만 해도 해외 패션 정보를 접하기 어려웠던 시기였던 만큼 회원들은 신제품 사진과 스타일링, 구매 후기 등을 직접 올리며 커뮤니티를 키워갔다. 상품보다 콘텐츠가 먼저였다는 점도 무신사의 차별점이다. 회원들은 특정 브랜드를 구매하기 위해 모인 것이 아니라 패션 정보를 얻기 위해 방문했고 자연스럽게 브랜드에 대한 관심과 소비로 이어졌다. 패션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인 커뮤니티가 소비자 집단으로 성장한 것이다. 이 같은 구조는 이후 무신사스토어의 경쟁력이 됐다. 2009년 본격적인 온라인 커머스를 시작한 무신사는 단순히 브랜드를 입점시키는 데 그치지 않았다. 브랜드의 철학과 스타일을 소개하는 매거진 콘텐츠를 제작하고 화보와 스타일링, 인터뷰를 함께 제공하면서 소비자가 브랜드를 이해한 뒤 구매하도록 만들었다. 상품 상세페이지 중심이던 기존 온라인 쇼핑몰과 달리 콘텐츠를 통해 브랜드의 이야기를 전달하는 방식이었다. 브랜드 역시 광고보다 콘텐츠를 통해 소비자와 접점을 만들 수 있었고 무신사는 입점 브랜드와 소비자가 함께 성장하는 플랫폼 구조를 구축했다. 국내 디자이너 브랜드가 성장할 수 있는 환경도 이 과정에서 마련됐다. 자본력이 부족한 신생 브랜드들은 무신사의 콘텐츠와 마케팅, 프로모션을 활용해 소비자에게 이름을 알렸고 무신사는 다양한 브랜드가 입점할수록 플랫폼 경쟁력이 높아지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었다. 입점 넘어 육성으로…무신사의 성장 공식 무신사는 단순히 브랜드를 입점시키는 플랫폼에 머물지 않았다. 인지도가 낮은 국내 디자이너 브랜드를 발굴해 기획전과 화보, 스타일 콘텐츠, 라이브커머스, 오프라인 팝업 등을 지원하며 소비자와의 접점을 넓혔다. 브랜드는 무신사를 통해 이름을 알리고 판매를 늘렸고, 무신사는 새로운 브랜드가 성장할수록 플랫폼 경쟁력이 함께 커지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었다. 국내 패션 시장은 오랫동안 대기업 브랜드와 해외 명품 중심으로 형성됐다. 독창적인 디자인을 앞세운 디자이너 브랜드는 제품력은 갖췄지만 자본과 마케팅, 유통망이 부족해 소비자와 만날 기회가 제한적이었다. 무신사는 이 틈새를 공략했다. 신생 브랜드가 성장할 수 있는 무대를 제공하고 소비자에게는 기존 브랜드와 차별화된 새로운 선택지를 제시하면서 플랫폼의 영향력을 키웠다. 이 같은 전략은 무신사를 단순한 온라인 쇼핑몰이 아닌 '브랜드 인큐베이터'로 자리매김하게 했다. 실제로 마르디 메크르디와 마뗑킴, 디스이즈네버댓, 커버낫 등 국내 패션 브랜드들이 무신사를 주요 성장 무대로 삼으며 인지도를 키웠다. 이들 브랜드의 성장은 곧 무신사의 성장으로 이어졌다. 플랫폼 안에서 성공 사례가 늘어날수록 더 많은 브랜드가 입점하고 소비자는 새로운 브랜드를 찾기 위해 무신사를 방문하는 선순환 구조가 형성됐기 때문이다. 무신사는 특정 브랜드를 소유하지 않아도 브랜드가 성장할수록 함께 성장하는 사업 모델을 구축할 수 있었다. 패션 콘텐츠도 플랫폼 경쟁력을 키우는 핵심 요소였다. 온라인 매거진과 스냅, 스타일링 콘텐츠, 상품 리뷰는 소비자들이 단순히 제품을 구매하는 것을 넘어 새로운 패션 문화를 경험하도록 만들었다. 브랜드와 소비자를 연결하는 콘텐츠가 다시 구매로 이어지는 구조를 형성하면서 무신사는 쇼핑몰과 패션 미디어의 경계를 허물었다. 플랫폼을 넘어 브랜드로…무신사 스탠다드의 탄생 무신사의 두 번째 변곡점은 자체 브랜드(PB) 사업이었다. 다양한 브랜드를 판매하던 플랫폼이 직접 브랜드를 만드는 회사로 사업 영역을 확장한 것이다. 2017년 선보인 무신사 스탠다드는 화려한 디자인보다 기본에 충실한 베이직 의류를 합리적인 가격에 제공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당시 SPA 시장은 유니클로와 SPA 브랜드들이 주도하고 있었지만 무신사는 플랫폼에서 축적한 소비자 데이터를 바탕으로 시장을 공략했다. 플랫폼을 운영하며 소비자들이 어떤 색상과 디자인, 가격대를 선호하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던 점이 경쟁력이 됐다. 유행을 빠르게 따라가기보다 오래 입을 수 있는 기본 상품을 중심으로 제품군을 구성했고 합리적인 가격과 품질을 앞세워 빠르게 시장에 안착했다. 무신사 스탠다드는 온라인 성공에 머물지 않았다. 성수동과 홍대, 강남을 비롯해 전국 주요 상권에 오프라인 매장을 열며 소비자 접점을 확대했다. 온라인에서 상품을 확인한 뒤 오프라인에서 직접 착용하고 구매하는 방식이 자리 잡으면서 무신사 스탠다드는 플랫폼을 대표하는 브랜드로 성장했다. 특히 오프라인 매장은 단순한 판매 공간이 아니라 브랜드를 경험하는 공간으로 설계됐다. 온라인 리뷰만으로는 확인하기 어려운 소재와 착용감, 핏을 직접 체험할 수 있도록 하면서 소비자의 구매 경험을 확장했다. 플랫폼 기업이 자체 브랜드를 운영하면 입점 브랜드와 경쟁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있었지만 무신사는 PB를 하나의 브랜드로 육성하는 동시에 다양한 디자이너 브랜드를 지속적으로 입점·육성하며 플랫폼 생태계를 확대하는 전략을 유지했다. 플랫폼과 브랜드를 동시에 운영하는 이중 구조는 다른 패션 플랫폼과 차별화되는 무신사만의 경쟁력이 됐다. 패션 넘어 일상으로……29CM·뷰티·오프라인 무신사는 패션이라는 울타리에 머물지 않았다. 옷을 판매하는 온라인 쇼핑몰에서 출발해 라이프스타일과 리셀, 뷰티, 오프라인 공간까지 소비자의 일상을 연결하는 플랫폼으로 진화하며 사업 영토를 넓혀갔다. 무신사의 확장은 새로운 카테고리를 추가하는 방식으로 이어졌다. 2021년 라이프스타일 플랫폼 29CM를 품으며 패션을 넘어 홈·리빙 등 라이프스타일 영역까지 고객 접점을 넓혔다. 이어 한정판 거래 플랫폼 솔드아웃으로 리셀 시장에 진출했고 무신사 뷰티를 통해 화장품 시장까지 사업 포트폴리오를 확대했다. 서로 다른 플랫폼을 단순히 보유하는 데 그치지 않고 패션을 중심으로 라이프스타일과 뷰티, 리셀을 연결하는 플랫폼 생태계를 구축한 것이 특징이다. 특히 29CM는 취향 기반 큐레이션과 여성 디자이너 브랜드 육성을 앞세워 무신사의 또 다른 성장축으로 자리 잡았다. 2025년 연간 거래액은 1조3000억원을 돌파해 무신사가 인수한 2021년보다 약 4배로 늘었다. 2026년 상반기에는 입점 3년 이내 여성 디자이너 브랜드의 합산 거래액이 전년 동기 대비 2.6배 증가하는 등 플랫폼 성장과 신진 브랜드 육성이 동시에 성과를 내고 있다. 오프라인 전략도 한층 고도화됐다. 무신사는 성수와 홍대를 중심으로 메가스토어와 스토어, 무신사 킥스(KICKS), 무신사 런(RUN) 등 카테고리 특화 매장을 잇달아 선보이며 브랜드 경험을 강화했다. 최근에는 롯데백화점 잠실점과 영등포 타임스퀘어, AK플라자 수원점 등 백화점과 복합쇼핑몰까지 입점을 확대하며 온라인 플랫폼을 오프라인으로 확장하고 있다. 무신사의 오프라인 매장은 단순한 판매 공간이 아니다. 온라인에서 인기를 얻은 브랜드를 직접 체험하고 팝업과 한정 상품, 시즌 행사를 경험하는 플랫폼의 연장선이다. 실제로 2026년 '무진장 블랙프라이데이' 기간 성수·홍대 핵심 매장에는 일주일 만에 31만명 이상이 방문했고 거래액도 큰 폭으로 늘며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연결하는 집객 거점 역할을 입증했다. 소비자는 오프라인에서 브랜드를 경험한 뒤 다시 온라인에서 구매하고 브랜드는 오프라인 노출을 통해 새로운 고객을 확보하는 선순환 구조를 구축한 것이다. 브랜드 키우던 무신사, 세계를 연결하다 무신사의 다음 확장 무대는 해외다. 국내 디자이너 브랜드를 키우는 역할에서 나아가 해외 소비자와 K패션을 연결하는 가교로 진화를 시작했다. 과거 해외 사업이 일부 브랜드를 수출하는 수준에 머물렀다면 최근에는 일본과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 시장을 중심으로 현지 서비스를 확대하며 K패션 플랫폼으로의 전환에 속도를 내고 있다. 글로벌 스토어를 통해 해외 소비자가 국내 디자이너 브랜드를 직접 구매할 수 있도록 하고 현지 마케팅과 물류 경쟁력도 강화하고 있다. 특히 일본은 무신사가 글로벌 전략의 전진기지로 삼고 있는 시장이다. 일본에서 K패션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무신사는 글로벌 스토어를 기반으로 현지 서비스를 강화하는 한편 도쿄를 중심으로 팝업스토어와 브랜드 쇼케이스를 잇달아 열며 국내 디자이너 브랜드의 인지도를 높이고 있다. 단순히 상품을 판매하는 데 그치지 않고 국내에서 검증된 브랜드를 일본 소비자에게 소개하고 현지 시장에 안착시키는 플랫폼 역할까지 확대하는 것이 목표다. 뷰티 사업도 플랫폼 확장의 연장선에 있다. 패션에서 확보한 2030 고객 기반을 바탕으로 인디 뷰티 브랜드를 발굴·육성하고 무신사 뷰티를 새로운 성장축으로 키우고 있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연계한 '무신사 뷰티 페스타'와 팝업스토어를 통해 브랜드 경험을 확대하는 한편 글로벌 스토어에서는 K패션과 K뷰티를 함께 제안하며 플랫폼 안에서 소비자의 구매 영역과 체류시간을 동시에 넓히는 전략을 펼치고 있다. 확장의 다음 과제…수익성과 균형 무신사의 다음 과제는 더 넓히는 것이 아니라 넓어진 사업을 제대로 수익화하는 일이다. 자체 브랜드와 29CM, 오프라인, 뷰티, 글로벌 사업을 동시에 키우면서 각 사업의 투자 부담을 낮추고 플랫폼 전체의 이익으로 연결해야 한다. 무신사는 이미 외형 확대를 넘어 수익성 개선 국면에 들어섰다. 2025년 연결 기준 매출은 1조4679억원, 영업이익은 1405억원으로 각각 전년보다 18.1%, 36.7% 증가하며 역대 최대 실적을 기록했다. 다만 오프라인 점포 확대와 일본·중국 등 글로벌 시장 공략이 동시에 진행되는 만큼 늘어난 투자를 지속적인 이익으로 연결하는 것이 새로운 과제로 떠올랐다. 신규 매장과 해외 사업은 초기 투자와 운영비 부담이 큰 만큼 외형 성장뿐 아니라 플랫폼 전체의 수익성을 높이는 구조를 구축해야 한다. 플랫폼과 자체 브랜드의 균형도 중요한 과제다. 2025년 무신사의 매출 구조에서 수수료 매출은 38.76%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고 무신사 스탠다드 등을 포함한 제품 매출도 30.78%에 달했다. 플랫폼과 브랜드 사업이 모두 핵심 성장축으로 자리 잡은 셈이다. 다만 무신사 스탠다드의 외형이 커질수록 입점 브랜드와 이해관계가 충돌할 가능성도 함께 커진다. 자체 브랜드 경쟁력을 강화하는 동시에 신진 디자이너 브랜드의 성장 기반을 지속적으로 확대하며 '브랜드를 키우는 플랫폼'이라는 정체성을 유지하는 것이 무신사의 다음 성장 과제가 될 전망이다. 경쟁 환경도 빠르게 변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에이블리와 지그재그가 여성 패션 플랫폼을 중심으로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고 중국계 플랫폼 쉬인(SHEIN)과 테무(TEMU), 알리익스프레스는 초저가 전략으로 국내 시장 공략을 강화하고 있다. 브랜드 수를 늘리는 것만으로는 차별화를 유지하기 어려운 만큼 무신사는 콘텐츠와 커뮤니티, 디자이너 브랜드 육성을 기반으로 '브랜드를 가장 먼저 발견하는 플랫폼'이라는 경쟁력을 계속 입증해야 한다. 글로벌 시장에서도 넘어야 할 산은 남아 있다. 일본을 중심으로 K패션 수요가 늘고 있지만 국내에서처럼 브랜드를 성공적으로 키워낸 사례를 해외에서도 만들어내야 한다. 현지 소비자 취향과 유통 환경에 맞는 브랜드 발굴, 마케팅과 물류 경쟁력 확보는 물론 무신사 플랫폼 자체에 대한 신뢰를 쌓는 것이 장기적인 성장의 핵심 과제가 될 전망이다. 국내에서 브랜드를 키우는 플랫폼이었다면 앞으로는 K패션 생태계를 해외에 안착시키는 플랫폼으로 자리매김해야 한다. 무신사가 만들어온 것은 온라인 쇼핑몰이 아니라 브랜드가 성장하는 시장이었다. 국내 디자이너 브랜드의 등용문이 된 플랫폼은 이제 오프라인과 글로벌 시장까지 무대를 넓히고 있다. 앞으로의 경쟁력은 외형 확대가 아니라 성공 사례에 있다. 국내에서 축적한 브랜드 육성 역량을 일본을 비롯한 해외 시장에서도 재현하며 K패션 브랜드의 글로벌 성공 사례를 지속적으로 창출할 수 있느냐가 무신사의 다음 20년을 좌우할 것으로 보인다. 무신사 관계자는 "무신사의 가장 큰 경쟁력은 신진 디자이너 브랜드를 발굴해 소비자와 연결하고, 브랜드가 고객과 함께 성장할 수 있는 생태계를 구축해 온 데 있다"며 "콘텐츠와 커뮤니티, 오프라인 공간을 유기적으로 연결해 단순히 상품을 판매하는 플랫폼이 아니라 브랜드가 성장하고 고객과 관계를 맺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왔다"고 말했다. 이어 "앞으로는 온라인에서 축적한 브랜드 육성과 고객 데이터를 바탕으로 오프라인과 글로벌 시장까지 경쟁력을 확대해 나갈 계획"이라며 "국내 브랜드의 발굴부터 성장, 해외 진출까지 함께하는 플랫폼으로 진화하고 일본과 중국에서 쌓은 경험을 토대로 K패션의 글로벌 시장 확대를 지속적으로 지원하겠다"고 덧붙였다.
2026-08-05 17:2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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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통3사·네이버·넷플릭스까지…47개 플랫폼 '이용자 보호' 성적표 받는다
[경제일보] SK텔레콤과 KT, LG유플러스를 비롯해 네이버, 구글, 넷플릭스, 쿠팡, 알리익스프레스 등 국내외 주요 정보통신사업자 47곳이 올해 이용자 보호업무 평가를 받는다. 특히 올해부터는 과징금과 과태료 등 행정처분에 대한 감점이 강화되고 실제 이용자 피해 사례가 평가에 더욱 직접 반영되면서 사업자의 이용자 보호 역량이 한층 엄격하게 검증될 전망이다.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는 15일 제23차 전체회의를 열고 '2026년도 전기통신사업자 이용자 보호업무 평가계획'을 의결했다. 이용자 보호업무 평가는 전기통신사업법에 따라 2013년부터 시행되고 있는 제도로, 사업자의 이용자 피해 예방과 민원 처리, 서비스 개선 노력을 종합적으로 평가하는 제도다. ◆ 이통3사부터 구글·넷플릭스·쿠팡까지…47개 사업자 대상 올해 평가 대상은 총 47개 사업자다. 기간통신사업자는 이동통신, 초고속인터넷, 알뜰폰 등 3개 분야 21개 기업이 포함됐다. 이동통신 분야에서는 SK텔레콤, KT, LG유플러스가 평가를 받는다. 초고속인터넷은 KT, LG유플러스, SK텔레콤, SK브로드밴드, LG헬로비전, 딜라이브, KT HCN, CMB가 대상이다. 알뜰폰 분야에서는 KT엠모바일, SK텔링크, LG헬로비전, 미디어로그, KT스카이라이프, KB국민은행, 프리텔레콤, 한국케이블텔레콤, 아이즈비전, 유니컴즈 등이 포함됐다. 부가통신사업자는 총 26곳이다. 검색 분야에서는 네이버와 다음, 구글이, 앱마켓은 구글 플레이스토어, 애플 앱스토어, 삼성 갤럭시스토어, 원스토어가 대상이다. SNS는 카카오톡, 네이버 밴드,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OTT는 유튜브, 넷플릭스, 티빙, 쿠팡플레이가 평가받는다. 쇼핑 분야는 쿠팡, 네이버스토어, 11번가, 알리익스프레스, 테무가 포함됐으며, 개인방송은 숲(SOOP)과 네이버 치지직, 배달은 배달의민족과 요기요, 모빌리티는 카카오모빌리티, 중고거래는 당근이 대상이다. 지난 2년 동안 시범평가를 받아온 아이즈비전과 알리익스프레스는 올해부터 본평가로 전환된다. 올해 평가는 기존보다 한층 강화된 기준이 적용된다. 방미통위는 과징금과 과태료, 시정명령 등 행정처분에 대한 감점 폭을 확대하고 최근 사회적 이슈와 이용자 피해 사례도 평가에 적극 반영하기로 했다. 단순히 이용자 보호 정책을 갖추고 있는지를 보는 것이 아니라 실제 피해가 얼마나 발생했고, 사업자가 이를 얼마나 신속하게 복구했는지를 중점적으로 들여다보겠다는 의미다. 평가 항목도 이용자 보호 관리체계, 법규 준수 실적, 피해 예방 활동, 이용자 의견 및 불만 처리, 이용자 보호 업무 등을 중심으로 구성된다. 여기에 이용자 만족도 조사에는 처음으로 주관식 설문을 도입해 실제 이용자 경험이 평가 결과에 보다 직접 반영되도록 했다. ◆ SKT 해킹·해외 플랫폼 논란…평가 무게감 더 커졌다 올해 평가가 예년보다 주목받는 이유는 정보통신 서비스가 국민 생활과 더욱 밀접해졌기 때문이다. AI 서비스 확산과 플랫폼 영향력 확대에 따라 이용자 개인정보 보호와 피해 구제, 고객 대응 체계는 기업 경쟁력의 핵심 요소로 떠오르고 있다. 특히 올해는 SK텔레콤 유심 정보 유출 사고를 비롯해 해외 플랫폼의 소비자 보호 논란, AI 기반 서비스 확대 등 이용자 보호 중요성이 크게 부각된 상황이다. 방미통위가 사회적 이슈 반영 비중을 높인 것도 이 같은 환경 변화를 고려한 조치로 풀이된다. 이용자 보호 평가는 단순한 행정 절차가 아니다. 평가 결과가 우수한 사업자는 정부 표창을 받을 수 있으며 전기통신사업법에 따른 과징금 부과 시 매우 우수 등급은 최대 30%, 우수 등급은 최대 20%까지 감경받을 수 있다. 반대로 이용자 보호 수준이 미흡하거나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사업자는 평가 결과가 향후 감독과 제재 과정에서도 적지 않은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 플랫폼 경쟁이 서비스 기능을 넘어 신뢰 경쟁으로 옮겨가는 상황에서 이용자 보호 평가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측정하는 대표 지표로 자리 잡고 있다. 이제 통신사와 플랫폼 사업자의 경쟁력은 얼마나 많은 이용자를 확보했느냐보다 얼마나 안전하게 서비스를 운영하고 이용자의 권리를 보호했느냐에서 판가름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2026-07-15 22:4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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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통 구조조정의 대가, 왜 노동자만 치르나
[경제일보] 홈플러스가 다시 벼랑 끝에 섰다. 서울회생법원은 지난 3일 홈플러스 회생절차를 폐지했다. 법원은 수정 회생계획안을 이행하려면 최소 2000억원의 운영자금이 필요하지만, 구체적인 조달 방안이 마련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홈플러스 익스프레스 매각은 성사됐지만 대형마트 사업부 매각은 끝내 이뤄지지 않았다. 영업을 계속하는 동안 매출은 줄었고 급여, 물품대금, 조세 등 먼저 지급해야 할 채무는 늘었다. 법원은 회생계획안을 관계인집회에 부치지 않고 절차를 폐지했다. 회생절차 폐지가 곧바로 파산선고를 뜻하는 것은 아니다. 홈플러스는 즉시항고 기간 안에 운영자금을 확보하고 실현 가능한 자금조달 방안을 내놓을 수 있다. 법원도 그 가능성을 닫아두지는 않았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경과를 보면 남은 시간은 그리 길지 않다. 대주주 MBK파트너스와 최대 채권자인 메리츠금융그룹은 긴급운영자금 부담을 놓고 서로 상대방의 책임을 지적하고 있다. 회사의 존속을 가를 자금 문제는 풀리지 않았고, 현장에서는 폐점과 인력 감축이 먼저 진행됐다. 홈플러스는 전국 37개 점포의 폐점을 결정했다. 이들 점포에서 일하던 직원은 약 3500명으로 추산된다. 지난해 말 1만7986명이던 홈플러스 직원 수는 올해 4월 말 1만5398명으로 줄었다. 넉 달 사이 2588명이 회사를 떠났다. 폐점 대상 점포 직원에게는 인근 점포 전환배치와 희망퇴직 방안이 제시됐지만, 모든 사람이 기존 생활권 안에서 일자리를 이어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희망퇴직금과 고용안정지원금도 긴급운영자금 조달을 전제로 한다는 점에서 불안은 더 크다. 회사 사정이 어렵다고 해서 모든 점포를 유지할 수는 없다. 수익성이 떨어진 점포를 정리하고 인력을 재배치하는 일도 경영 판단의 영역이다. 다만 그 판단이 노동자의 생계와 퇴직금, 협력업체의 물품대금보다 먼저 집행되는 과정은 따져봐야 한다. 자금 부담을 둘러싼 협상이 길어지는 사이 매장 직원에게는 폐점 통보가 먼저 도착하고, 납품업체에는 거래 중단 가능성이 먼저 닥친다. 회생절차의 비용이 누구에게 먼저 청구되고 있는지 보여주는 장면이다. 대형마트 한 곳이 문을 닫으면 본사 직원만 영향을 받는 것이 아니다. 납품업체와 산지 생산자, 입점 점주, 물류·청소·주차·보안 인력의 매출과 일감도 함께 줄어든다. 특히 지방 중소도시나 대단지 주거지역에서는 대형마트 폐점이 생활 편의와 지역 소비 기반의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 법원은 채권자별 회수 가능성과 기업의 계속기업가치를 살펴야 하지만, 정부와 정치권은 그 과정에서 사라질 일자리와 거래처의 피해도 함께 계산해야 한다. 홈플러스 사태에는 개별 기업의 재무 문제만 있는 것이 아니다. 소비가 온라인으로 이동하고 대형마트의 고정비 부담이 커지는 유통업 전반의 변화가 겹쳐 있다. 산업통상자원부가 집계한 올해 5월 주요 유통업체 매출에서 온라인 비중은 58.6%였다. 대형마트 비중은 8.1%에 머물렀다. 전체 유통업체 매출은 전년 같은 달보다 9.0% 늘었지만 대형마트 매출은 5.1% 감소했다. 백화점과 편의점이 매출 증가를 이끈 것과 달리 대형마트는 소비 변화의 부담을 고스란히 받고 있다. 유통업 재편은 피하기 어렵다. 그렇다고 재편의 비용이 노동자에게 먼저 돌아가는 방식까지 받아들일 이유는 없다. 홈플러스가 자금난에 빠진 배경에는 시장 변화도 있고, 투자와 경영 판단의 결과도 있다. 그 책임을 매장 노동자와 협력업체가 떠안을 이유는 없다. 경영권을 행사해 온 대주주는 위기 국면에서 자금조달 방안과 고용 대책을 먼저 제시해야 한다. 채권자도 담보권과 회수율만 따질 것이 아니라 청산으로 갈 때 발생할 연쇄 피해를 함께 봐야 한다. 사모펀드가 경영권을 가진 기업의 위기는 더욱 엄격하게 봐야 한다. 투자자는 기업이 성장할 때 그 성과를 공유한다. 반대로 경영이 흔들릴 때는 필요한 자금과 책임을 얼마나 부담할지 설명해야 한다. 법적으로 투자 책임이 제한된다고 해도 경영권을 행사한 대주주의 경제적·사회적 책임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자산 매각과 점포 정리, 인력 효율화로 경영을 이끌어 온 주체라면 위기 때도 고용과 거래처 보호 방안을 내놓아야 한다. 메리츠금융그룹 역시 단순한 채권자라는 위치에만 머물 수는 없다. 홈플러스의 청산은 채권 회수 가능성과도 직결된다. 회생을 위한 추가 자금 지원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면 그 이유와 조건을 투명하게 공개할 필요가 있다. MBK와 메리츠가 서로 책임을 미루는 사이 손실이 노동자와 납품업체로 번지는 상황은 막아야 한다. 양측이 감당할 몫을 정하지 못한 채 시간을 보낸다면 회생절차의 실패는 더 큰 사회적 비용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 정부도 선을 분명히 그어야 한다. 공적 자금이 대주주의 투자 손실을 보전하는 통로가 되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임금 체불, 퇴직금 미지급, 납품대금 미정산, 협력업체 연쇄 부실을 막기 위한 지원까지 외면해서는 안 된다. 정부가 보호해야 할 대상은 투자자의 손실이 아니라 매장 직원과 협력업체, 입점 점주가 당장 마주한 생계 위기다. 고용노동부와 지방자치단체는 폐점 예정 점포별로 임금과 퇴직금 지급 상황, 전환배치 가능 인원, 간접고용 인력의 고용 현황부터 확인해야 한다. 폐점이 끝난 뒤 재취업 창구를 마련하는 방식으로는 부족하다. 노동자가 일자리를 잃기 전에 전직 상담과 직업훈련, 지역 일자리 연계를 시작해야 한다. 청소·주차·보안·물류처럼 원청의 위기 때 계약이 먼저 끊기는 인력도 보호 대책에 포함해야 한다. 국회도 대형 유통기업의 회생과 폐점 과정에서 드러난 공백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대규모 점포 폐점이나 자산 매각이 예정되면 고용, 협력업체, 입점 점주, 지역상권에 미칠 영향을 사전에 공개하고 협의하는 절차가 필요하다. 회생계획안에도 채무 조정과 매각 방안만이 아니라 임금·퇴직금 지급, 납품대금 정산, 전환배치와 재취업 지원 계획이 실질적으로 담겨야 한다. 홈플러스 사태는 특정 기업 하나의 부실로 끝나지 않을 수 있다. 대형마트와 백화점, 면세점, 물류센터 등 오프라인 유통 현장 곳곳이 소비 변화와 비용 부담에 흔들리고 있다. 지금 홈플러스에서 벌어지는 일이 다른 유통기업에서도 반복되지 않게 하려면 책임의 순서부터 바로 세워야 한다. 대주주와 채권자가 자금 부담과 고용 대책을 먼저 내놓고, 정부는 임금·퇴직금·납품대금 피해를 막는 데 집중해야 한다. 그 순서가 뒤집힌 채 폐점과 퇴직만 앞세워진다면, 유통업 재편은 경쟁력 회복이 아니라 노동자와 협력업체에 손실을 넘기는 과정으로 기억될 것이다.
2026-07-07 07:56: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