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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 금리 인상, 물가 잡다 내수를 더 얼려선 안 된다
[경제일보] 한국은행이 추가 기준금리 인상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다. 유상대 한국은행 부총재는 11일 특별한 변수가 없다면 추가 금리 인상 가능성이 높다는 취지의 입장을 밝혔다. 한국은행은 지난 7월 기준금리를 2.75%로 올린 데 이어 국내 수요 회복에 따른 물가 압력을 경계하고 있다. 물가 안정이 중앙은행의 가장 중요한 책무라는 점에서 필요한 대응이다. 그러나 금리를 올리는 데는 언제나 대가가 따른다. 기준금리가 오르면 은행의 대출금리가 상승하고 가계의 이자 부담이 커진다. 기업의 자금 조달 비용도 높아진다. 특히 대출 의존도가 높은 자영업자와 중소기업, 취약차주에게 금리 인상은 단순한 숫자의 변화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다. 지금 한국경제는 금리를 올리기에도, 그대로 두기에도 쉽지 않은 상황에 놓여 있다. 반도체 수출과 AI 투자 확대에 힘입어 성장률 전망은 개선되고 있지만 국민이 체감하는 내수경기는 여전히 차갑다. 소비 회복은 더디고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의 어려움도 계속되고 있다.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과 건설업의 부실 우려도 완전히 해소됐다고 보기 어렵다. 이런 상황에서 물가만 바라보고 금리를 빠르게 올리면 거시경제 지표는 안정될지 몰라도 내수와 취약 부문의 부담은 그만큼 무거워진다. 반대로 가계와 기업 부담만 걱정해 물가 상승 압력을 방치하면 실질소득이 줄고 서민경제가 더 큰 피해를 입는다. 한국은행이 어려운 선택에 직면한 이유다. 최근의 물가 흐름도 면밀하게 들여다봐야 한다. 국제유가와 환율 같은 외부 요인뿐 아니라 내수 회복과 임금, 서비스 가격 등 국내 요인이 물가를 자극하고 있다면 통화당국으로서는 대응하지 않을 수 없다. 물가 상승세가 굳어지면 나중에는 더 큰 폭의 금리 인상이 필요해진다. 그렇다고 기준금리를 물가만 잡는 단일 처방전처럼 사용할 수는 없다. 통화정책은 경제 전체에 광범위한 영향을 미친다. 금리를 0.25%포인트 올리는 순간 주택담보대출과 신용대출, 자영업자 대출과 기업 대출에 동시에 충격이 전달된다. 통화정책의 효과가 강력한 만큼 부작용도 폭넓게 살펴야 한다. 가장 우려되는 곳은 가계부채다. 한국의 가계는 이미 상당한 규모의 부채를 안고 있다. 변동금리 대출 비중이 높은 차주에게 추가 금리 인상은 월 원리금 부담 증가로 바로 이어진다. 주거비와 생활물가 부담까지 커진 상황에서 이자 비용이 다시 늘어나면 소비를 줄일 수밖에 없다. 소비 감소는 자영업자의 매출 감소로 연결되고 다시 내수 침체를 키우는 악순환으로 번진다. 취약차주에 대한 정교한 대책이 필요한 이유다. 금리 인상 자체를 막기보다 그 과정에서 충격이 특정 계층에 집중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정상적으로 원리금을 상환하고 있지만 일시적인 금리 부담을 겪는 차주에 대해서는 채무조정과 장기·고정금리 전환 등 현실적인 선택지를 넓혀야 한다. 자영업자 대책도 단순한 만기 연장에 그쳐서는 안 된다. 코로나19 이후 누적된 부채에 경기 부진과 고금리가 겹치면서 경쟁력이 있는 사업자와 사실상 상환 능력을 잃은 사업자를 구분할 필요성이 커졌다. 정상 사업자에게는 금융 지원을 제공하되 회생 가능성이 낮은 경우에는 폐업과 재취업, 채무조정을 연결하는 출구 전략이 필요하다. 부동산 PF도 경계해야 한다. 금리가 높아질수록 사업성이 낮은 개발사업의 금융비용은 커지고 부실 가능성도 그만큼 높아진다. 부실을 무조건 금융권이 떠안게 하는 것도, 정부가 세금으로 막아주는 것도 답이 아니다. 사업성이 없는 사업장은 신속하게 정리하고 정상 사업장은 자금이 막혀 쓰러지지 않도록 선별 지원해야 한다. 더 중요한 것은 한국은행과 정부 정책이 서로 반대 방향으로 가지 않는 것이다. 중앙은행이 물가를 잡겠다며 금리를 올리는데 정부가 재정지출 확대와 각종 지원책으로 수요를 크게 자극한다면 정책 효과는 상쇄된다. 한쪽은 브레이크를 밟고 다른 쪽은 가속페달을 밟는 식이어서는 경제의 불확실성만 커진다. 부동산 정책도 마찬가지다. 집값 불안을 막겠다며 대출을 규제하면서 동시에 특정 계층에 과도한 금융 지원을 제공하면 시장에는 엇갈린 신호가 간다. 실수요자는 보호하되 투기성 레버리지를 억제한다는 명확한 원칙 아래 금융·세제·공급 정책이 같은 방향을 바라봐야 한다. 정부와 한국은행의 역할은 분명히 구분돼야 한다. 금리 결정은 물가와 금융안정을 기준으로 중앙은행이 독립적으로 해야 한다. 정부가 경기나 정치적 이유로 금리 결정에 압력을 가해서는 안 된다. 다만 정책 효과와 위험 요인에 대한 정보 공유와 거시정책 조율은 훨씬 정교하게 이뤄져야 한다. 금리 결정에서 중요한 것은 속도다. 추가 인상이 필요하더라도 경제가 감당할 수 있는 속도로 가야 한다. 물가 기대가 급격하게 높아지지 않는다면 한 차례 금리를 올린 뒤 소비와 고용, 부동산과 금융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충분히 확인하는 것도 방법이다. 금리는 한번 올린 뒤 되돌리기도 쉽지 않다. 경제성장률이 높아졌다는 이유만으로 긴축 여력이 충분하다고 판단해서도 안 된다. 반도체를 중심으로 한 수출 호황과 자영업자·중소기업이 느끼는 경기는 크게 다르다. 평균적인 성장률만 보고 금리를 결정하면 경제 내부의 양극화를 놓친다. 한국경제가 직면한 문제는 이른바 '성장의 역설'이다. 수출과 반도체 투자로 성장률이 높아지면 수요와 물가가 상승해 금리를 올려야 할 가능성이 커진다. 그러나 그 금리 인상의 비용은 반도체 대기업보다 대출이 많은 가계와 자영업자에게 더 크게 돌아간다. 성장의 과실과 긴축의 비용이 서로 다른 곳에 집중되는 셈이다. 이 때문에 정부의 역할이 중요하다. 통화정책으로 경제 전체의 물가를 관리하되 재정과 금융정책은 취약계층에 정밀하게 집중해야 한다. 모든 국민의 이자를 대신 내주는 식의 보편적 지원은 물가를 다시 자극한다. 상환 능력과 소득, 부채 수준에 따라 지원 대상을 정교하게 선별해야 한다. 물가 안정과 내수 회복은 양자택일의 문제가 아니다. 물가가 불안하면 실질소득이 줄고 소비도 위축된다. 반대로 내수가 무너지면 성장과 고용이 흔들린다. 두 목표 사이에서 균형점을 찾는 것이 경제정책의 실력이다. 한국은행 역시 시장과 충분히 소통해야 한다. 추가 금리 인상의 조건이 무엇인지, 어떤 물가와 금융 지표를 중점적으로 보는지 분명히 밝혀야 한다. 시장이 금리 경로를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어야 가계와 기업도 대출과 투자를 계획할 수 있다. 갑작스러운 정책 변화는 금리 수준 자체보다 더 큰 불안을 부른다. <논어>에는 "지나친 것은 미치지 못한 것과 같다"는 '과유불급(過猶不及)'이 있다. 통화정책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말이다. 물가를 방치해서도 안 되지만 물가를 잡겠다는 이유로 경제의 약한 고리까지 무너뜨려서는 안 된다. 한국은행은 물가 안정이라는 원칙을 지키되 금리 인상이 가계와 자영업자, 부동산 PF와 내수에 미칠 충격까지 세밀하게 살펴야 한다. 정부도 중앙은행의 긴축 효과를 상쇄하는 정책을 남발해서는 안 된다. 추가 금리 인상이 필요하다면 국민에게 그 이유를 충분히 설명하고 취약 부문의 충격을 줄일 안전장치를 동시에 마련해야 한다. 물가를 잡는 것도 결국 국민의 삶을 지키기 위해서다. 물가는 안정됐지만 가계와 자영업자가 먼저 무너지는 정책이라면 성공한 통화정책이라고 할 수 없다.
2026-08-12 10:4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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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토론은 반복되는데 정책의 원칙은 보이지 않는다
[경제일보] 정부가 부동산 문제를 놓고 토론을 거듭하고 있다. 공급과 금융, 세제를 주제로 분야별 토론회를 연 데 이어 이재명 대통령이 직접 국민 대토론회를 주재했다. 며칠 뒤에는 국무총리 주재로 두 번째 토론회가 열렸다. 첫 토론에서 충분히 다루지 못했거나 의견이 엇갈린 쟁점을 다시 논의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국민 생활에서 부동산이 차지하는 무게를 생각하면 정부가 전문가와 시장 참여자, 국민의 목소리를 듣는 일은 필요하다. 그러나 지금 부동산 시장의 혼란이 의견을 충분히 듣지 못해서 생겼다고 보기는 어렵다. 공급을 늘려야 한다는 주장도 오래전부터 나왔다. 투기 수요를 억제해야 한다는 요구도 반복됐다. 대출을 조여야 한다는 목소리와 실수요자의 금융 문턱은 낮춰야 한다는 주장도 함께 제기됐다. 보유세를 높이고 거래세를 낮추자는 방안, 재건축·재개발 규제를 풀어 도심 공급을 늘리자는 처방도 이미 여러 차례 검토됐다. 정부가 답해야 할 대목은 서로 충돌하는 요구 가운데 무엇을 우선하고 어떤 기준으로 정책을 운용할 것인지에 있다. 부동산 정책은 한쪽을 누르면 다른 쪽에서 부담이 생기기 쉽다. 집값 상승세를 꺾으려고 대출을 강하게 제한하면 무주택 실수요자의 내 집 마련도 어려워진다. 재건축과 재개발의 사업성을 높여 공급을 늘리면 개발 기대가 주변 집값을 끌어올릴 수 있다. 보유세 부담을 높이면서 양도세까지 무겁게 두면 다주택자가 매물을 내놓기보다 버티는 쪽을 택할 가능성도 커진다. 따라서 먼저 정해야 할 것은 정책의 우선순위다. 정부가 집값 하락에 무게를 둘 것인지, 급등을 막으면서 거래가 가능한 시장을 만드는 데 초점을 맞출 것인지부터 국민이 알 수 있어야 한다. 가계부채 관리를 앞세운다면 생애 최초 구입자와 실거주 목적의 수요를 어디까지 보호할지도 기준을 세워야 한다. 세금 역시 보유 단계와 거래 단계 가운데 어느 쪽에 더 부담을 둘 것인지 장기적인 방향이 필요하다. 지난 1년간 나온 대책을 차례로 놓고 보면 시장이 정부의 방향을 쉽게 읽지 못하는 이유를 알 수 있다. 지난해 6월 정부는 수도권과 규제지역의 주택담보대출을 강하게 제한했다. 가계부채와 수도권 집값을 잡기 위한 금융 규제였다. 9월에는 수도권에 대규모 주택을 공급하겠다는 방안을 내놨다. 한 달여 뒤에는 서울 전역과 수도권 일부 지역을 규제지역과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묶고 고가주택 대출 한도도 더 낮췄다. 올해 들어서는 도심 유휴부지를 활용한 공급 확대 방안을 발표했고 비아파트 공급을 늘리기 위한 규제 완화도 추진했다. 집값이 빠르게 오른 지역에는 다시 규제를 적용했다. 최근 토론회에서는 보유세와 양도세, 장기보유특별공제까지 논의 대상에 올랐다. 시장 상황이 달라지면 정책도 달라져야 한다. 그러나 정책을 바꿀 때마다 왜 바꾸는지, 어떤 조건에서 다시 조정하는지 국민이 납득할 수 있어야 한다. 서울 집값이 어느 정도 오르면 대출 규제를 강화하는지, 규제지역은 어떤 조건에서 지정하고 언제 해제하는지 시장 참여자가 미리 가늠하기 어렵다. 공급 부족을 인정하면서 재건축·재개발 규제를 어느 수준까지 풀 것인지도 정리돼 있지 않다. 세금도 앞으로 보유 부담과 거래 부담을 어떤 방향으로 조정할지 장기적인 그림보다 당장의 시장 움직임에 따라 새로운 방안이 계속 등장한다. 국민은 20년, 30년짜리 대출을 안고 집을 산다. 건설사는 몇 년 뒤 시장을 내다보고 토지를 확보하고 사업을 시작한다. 재건축과 재개발은 추진부터 입주까지 십수 년이 걸리기도 한다. 몇 달 뒤 대출 규제가 어떻게 바뀔지, 세 부담이 얼마나 달라질지 알 수 없다면 가계도 기업도 장기 계획을 세우기 어렵다. 정책의 수명이 짧아질수록 시장 참여자는 정부가 세운 장기 방향보다 다음 대책을 예상하는 데 더 많은 힘을 쓰게 된다. 집값이 오르면 대출 규제가 추가될 것으로 보고, 거래가 얼어붙으면 다시 완화될 것으로 예상한다. 세 부담이 커지면 언젠가 다시 줄어들 것이라는 기대도 생긴다. 정부 정책이 시장의 기준이 되지 못하고 또 다른 변수가 되는 순간이다. 최근 주택시장 지표도 이런 문제를 가볍게 넘길 수 없게 한다. 서울 아파트값은 상승 흐름을 이어가고 있고 한국은행의 7월 주택가격전망지수는 127까지 올랐다. 2021년 9월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4월 104에서 5월 112, 6월 120, 7월 127로 상승했다. 대출 규제와 공급 대책이 잇따르고 부동산 토론회가 계속되는 동안 앞으로 집값이 오를 것으로 보는 기대는 오히려 강해졌다. 이미 대출 규제는 상당한 수준까지 강화됐고 규제지역도 확대됐다. 공급 대책도 여러 차례 발표됐다. 그럼에도 시장의 상승 기대가 좀처럼 꺾이지 않는다면 규제의 강도만 더 높이는 방식으로는 답을 찾기 어렵다. 시장이 정부 정책을 얼마나 믿고 있는지부터 살펴야 한다. 서울과 지방의 사정이 크게 다른 점도 같은 문제로 이어진다. 서울과 수도권 일부에서는 가격 상승을 걱정하지만 지방에서는 미분양과 거래 침체를 걱정하는 지역이 적지 않다. 서울의 과열을 잡기 위한 규제를 지방까지 폭넓게 적용하면 침체를 더 깊게 만들 수 있고, 지방을 살리려고 규제를 풀면 수도권 수요를 자극할 가능성도 있다. 지역별 상황이 다른 만큼 정부가 어떤 가격 상승률과 거래량, 대출 증가율을 보고 규제를 강화하거나 해제할 것인지 기준을 공개할 필요가 있다. 같은 조건에는 같은 잣대가 적용된다는 믿음이 있어야 시장도 정부 정책을 계산에 넣을 수 있다. 세제와 공급도 마찬가지다. 보유세와 거래세 가운데 어느 쪽에 더 무게를 둘 것인지 장기 방향을 정하고, 공급 정책은 발표한 물량보다 착공과 준공 시점을 중심으로 책임지는 편이 낫다. 몇십만 호를 공급하겠다는 발표보다 국민에게 중요한 것은 언제 실제 집이 시장에 나오는지다. 부동산 정책에서 국민이 바라는 것은 모든 상황에서 같은 규제를 유지하는 일이 아니다. 시장이 달라지면 정책도 달라져야 한다. 다만 그 변화가 미리 정한 기준에 따라 이뤄져야 하고 정부가 세운 원칙도 쉽게 뒤집혀서는 안 된다. 국민의 재산과 주거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정책이라면 예측 가능성은 더욱 중요하다. 오늘 허용된 일이 내일 어떤 이유로 제한되는지 알 수 없고, 어느 수준에서 규제가 시작되고 끝나는지도 알기 어렵다면 정책에 대한 신뢰는 쌓이기 어렵다. 정부는 이미 상당한 의견을 들었다. 국민 의견도 수천 건 접수됐고 전문가들이 공급과 금융, 세제 문제를 놓고 여러 차례 토론했다. 각 분야에서 서로 다른 처방이 존재한다는 사실도 충분히 확인했다. 토론이 길어질수록 정부의 책임까지 토론 속에 묻혀서는 곤란하다. 의견을 듣는 과정은 정부가 판단하기 위한 절차다. 의견이 엇갈린다는 이유로 판단까지 계속 미룰 수는 없다. 서로 충돌하는 요구를 모두 만족시키기 어려운 만큼 정부가 우선순위를 정하고 선택의 이유를 설명해야 한다. 그 결과에 책임지는 일까지 정부의 몫이다. 국민이 알고 싶은 것은 다음달 어떤 이름의 부동산 대책이 나올지가 아니다. 어떤 상황에서 대출을 조이고 언제 풀 것인지, 투기 수요와 실수요를 어떤 기준으로 나눌 것인지, 세금은 어느 방향으로 가져갈 것인지, 공급 계획은 언제 실제 주택으로 이어질 것인지 알고 싶어 한다. 몇 차례 토론회를 더 연다고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이 저절로 생기지는 않는다. 정부가 판단하고 기준을 세워야 한다. 한번 세운 기준도 시장 상황이 크게 달라지지 않는 한 지켜야 한다. 부동산 시장을 안정시키는 힘은 대책의 횟수에서 나오지 않는다. 국민이 자신의 집과 대출, 세금을 놓고 몇 년 뒤를 내다볼 수 있도록 정부가 오래 지킬 기준을 세우고 그 기준대로 움직이는 데서 시작된다.
2026-07-28 08:5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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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국민 대토론회, 소통보다 결론과 책임이 중요하다
[경제일보] 정부가 부동산 정책을 놓고 대대적인 국민 의견 수렴에 나섰다. 지난 14일부터 사흘 동안 주택 공급과 금융, 세제를 주제로 분야별 토론회를 열었고 23일에는 이재명 대통령이 직접 종합토론회를 주재했다. 당초 100분으로 예정됐던 토론은 세 시간 가까이 이어졌다. 들을 만큼 들었다. 정부가 이제 보여줘야 할 것은 더 많은 발언과 추가 토론이 아니라 정책의 결론이다. 부동산 정책은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갈리는 영역이다. 집을 가진 사람과 갖지 못한 사람의 요구가 다르고 서울과 지방의 처지도 같지 않다. 재건축을 추진하는 주민과 임대주택 확대를 요구하는 무주택자의 이해도 충돌한다. 세금을 올리자는 주장과 거래를 막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은 한 자리에서 좀처럼 합쳐지지 않는다. 모든 이해관계자의 동의를 얻은 뒤 정책을 결정하겠다는 접근으로는 어느 결론에도 이르기 어렵다. 국민 의견을 듣는 절차는 필요하지만 정책 결정의 책임까지 국민에게 나눠줄 수는 없다. 정부는 서로 충돌하는 요구 가운데 무엇을 받아들이고 무엇을 포기할지 선택해야 한다. 그 선택을 설명하고 정치적 부담까지 감당하는 일이 국정 운영이다. 지금 부동산 시장에는 토론보다 시간이 더 비싼 자원이 됐다. 서울 아파트값은 7월 셋째 주까지 76주 연속 올랐다. 올해 들어 서울 아파트값은 6.03% 상승했고 성북구와 강서구, 구로구 등 비강남권의 상승세도 두드러졌다. 서울 아파트 전셋값 역시 같은 주 0.27% 올랐다. 강남 일부 지역에 머물던 가격 불안이 중저가 지역과 임대차 시장으로 번지고 있다는 뜻이다. 정부가 결론을 미루는 동안 시장은 멈춰 서 있지 않는다. 집을 살 사람은 세금이 어떻게 바뀔지 몰라 계약을 늦춘다. 집을 팔 사람은 양도소득세 개편 가능성을 지켜보며 매물을 거둬들인다. 전세대출 규제 강화 가능성이 거론되면 임차인은 대출이 막히기 전에 계약부터 서두른다. 공급 계획이 확정되지 않으면 건설사는 토지 매입과 사업 추진을 미룬다. 정책을 결정하지 않은 상태도 시장에서는 하나의 정책으로 작용한다. 불확실성이 길어지면 정보와 현금을 가진 사람은 기다릴 수 있지만 자금 사정이 빠듯한 실수요자는 버티기 어렵다. 결정 지연의 비용은 정부가 아니라 국민이 부담한다. 이번 대토론회에서는 낯선 주제가 등장한 것도 아니다. 보유세를 어느 수준으로 올릴지, 실거주 1주택과 비거주 주택을 어떻게 구분할지, 초고가 주택의 기준을 어디에 둘지 의견이 엇갈렸다. 초고가 주택 기준으로 10억원과 30억원, 50억원이 각각 거론됐다. 양도소득세 비과세 혜택을 생애 한 차례로 제한하는 방안도 나왔다. 전세대출을 줄이되 청년과 신혼부부, 생애 최초 임차인에게는 선별적으로 지원하자는 제안도 제시됐다. 쟁점이 부족했던 것이 아니다. 정부가 정해야 할 기준과 수치가 남아 있을 뿐이다. 부동산 세제는 국민의 재산권과 직접 맞닿아 있다. 보유세를 올리면 보유 비용이 커지고 양도소득세를 손질하면 매물의 양과 거래 시점이 달라진다. 취득세는 무주택자가 처음 집을 마련하는 단계부터 영향을 미친다. 세율과 공제 기준을 조금만 바꿔도 누군가에게는 수천만원의 부담이 생긴다. 세금은 여론의 흐름에 따라 수시로 움직일 수 있는 정책 수단이 아니다. 누가 얼마를 부담해야 하는지 법률로 정하고 납세자가 자신의 재산 처분과 주거 계획을 미리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 같은 주택을 보유하고도 정책 발표 전후에 따라 부담이 크게 달라진다면 조세에 대한 신뢰가 흔들린다. 대출 규제도 마찬가지다. 주택담보대출과 전세대출, 잔금대출은 단순한 금융상품이 아니다. 한 가구의 이사와 결혼, 자녀 교육, 노후 계획이 걸려 있다. 계약 당시 가능했던 대출이 잔금 지급 직전에 막히면 국민은 집을 포기하거나 위약금을 물어야 한다. 정부가 대출 기준을 바꿀 수는 있다. 가계부채와 집값을 관리하기 위해 규제를 강화할 필요도 생긴다. 그러나 예고 기간과 경과조치 없이 정책 변경의 비용을 계약 당사자에게 넘길 권한까지 정부가 가진 것은 아니다. 기존 계약을 어디까지 보호할지, 어떤 사람을 실수요자로 볼지, 예외를 어느 범위에서 인정할지 정책 발표와 동시에 제시해야 한다. 공급 문제는 더 단순하다. 국민이 궁금한 것은 몇 년 뒤까지 몇십만가구를 공급하겠다는 총량이 아니다. 어느 지역에서 언제 인허가가 끝나고 착공과 준공은 언제 이뤄지는지가 중요하다. 공급 예정 물량은 삽을 뜨기 전까지 주택이 아니다. 준공과 입주로 이어지지 못한 공급 계획은 가격 불안을 잠시 달래는 발표문에 그친다. 정부가 할 일은 공급 확대의 당위성을 다시 토론하는 것이 아니다. 사업이 늦어지는 지구를 찾아 보상과 인허가, 기반시설 설치가 어디에서 막혔는지 밝히고 부처와 공공기관, 지방자치단체별로 처리 기한을 정해야 한다. 지연이 반복되면 담당 기관과 책임자가 설명해야 한다. 이번 대토론회가 정책 전환의 출발점이 되려면 정부는 적어도 세 가지 질문에 답해야 한다. 먼저 부동산 정책의 목표부터 정해야 한다. 집값을 일정 수준까지 낮추겠다는 것인지, 단기간 급등을 막겠다는 것인지, 무주택자의 주거비 부담을 줄이겠다는 것인지 정부의 우선순위가 보여야 한다. 집값과 가계부채, 주택 공급, 전월세 안정을 한꺼번에 내세우면 정책수단이 서로 충돌한다. 대출을 강하게 조이면 가계부채는 줄일 수 있지만 현금 보유자에게 유리한 시장이 만들어질 수 있다. 공급을 늘리기 위해 재건축 규제를 풀면 장기적으로 입주 물량이 늘 수 있지만 단기적으로 해당 지역 가격이 오를 수 있다. 정부는 무엇을 먼저 잡을지 선택해야 한다. 정책 발표와 시행 시점도 제시해야 한다. 세제 개편안을 언제 국회에 제출할지, 금융 규제는 어느 날짜부터 어떤 계약에 적용할지, 공급 사업은 지구별로 언제 착공하고 입주할지 공개해야 한다. “검토하겠다”는 말이 반복될수록 국민은 정부 발표보다 시장의 소문을 먼저 믿게 된다. 책임을 맡은 사람도 드러나야 한다. 공급 일정은 국토교통부가 책임지고 대출 규제는 금융위원회가 맡아야 한다. 세제 개편은 재정경제부가 설명해야 한다. 부처 간 정책이 충돌하면 국무총리와 대통령실이 조정 결과를 내놓아야 한다. 정책이 효과를 내지 못했을 때 시장 상황과 전임 정부, 투기 세력만 탓해서는 책임 행정이 성립하지 않는다. 정부는 정책 시행 뒤 평가 기준도 공개해야 한다. 집값 상승률 하나만 놓고 성공과 실패를 판단해서는 안 된다. 주택 인허가와 착공, 준공 물량이 얼마나 늘었는지, 청년과 신혼부부의 주거비 부담이 줄었는지, 전세대출 축소로 월세 부담이 커지지 않았는지 함께 살펴야 한다. 분기마다 이행 상황을 공개하고 목표에서 벗어난 정책은 수정해야 한다. 법률과 행정에는 권한을 행사한 사람이 책임을 진다는 원칙이 따른다. 정책을 결정할 권한을 가진 정부가 결과에 대한 책임까지 국민 여론에 돌릴 수는 없다. 국민 대토론회에서 다수가 찬성했다는 이유로 잘못된 정책의 책임이 사라지지도 않는다. 반대 의견을 충분히 들었다고 해서 정책 실패가 면책되는 것도 아니다. 이재명 대통령은 이번 토론회에서 “공직자의 최대 덕목은 책임을 지는 것”이라며 비난과 갈등도 감수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통령의 이 발언이 대토론회에서 나온 가장 중요한 원칙이다. 책임을 진다는 것은 토론회를 한 차례 더 여는 데 그치지 않는다. 정부가 정한 목표와 기준을 국민에게 알리고 정책의 효과가 예상과 다를 때 잘못을 인정하고 고치는 일이다. 정책으로 손해를 보는 사람이 생기면 필요한 보완책을 마련하고 예측하지 못한 부작용이 나타나면 담당자가 설명해야 한다. 정부는 오는 27일 총리 주재 토론회에서 충분히 다루지 못한 쟁점을 다시 논의할 예정이다. 추가 토론이 결정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한 마지막 점검이라면 의미가 있다. 토론 뒤에도 결론과 일정이 나오지 않는다면 국민 대토론회는 정책 결정을 미루기 위한 긴 회의로 기억될 수밖에 없다. 국민은 이미 집값과 전셋값, 대출이자와 세금으로 자신의 의견을 내고 있다. 무주택자는 오르는 집값을 보며 불안을 호소하고 집을 가진 사람은 또다시 세제가 바뀔까 걱정한다. 청년은 대출 규제 앞에서 주거 계획을 다시 세우고 건설사는 수익성을 계산하며 사업을 멈출지 결정한다. 정부가 국민에게 더 물어야 할 질문은 많지 않다. 이제까지 나온 의견 가운데 무엇을 받아들이고 무엇을 버릴지 정해야 한다. 시행 시점을 못 박고 담당 부처와 책임자를 밝혀야 한다. 정책이 실패했을 때 누가 어떤 방식으로 수정할지도 제시해야 한다. 소통은 결론을 늦추는 면허가 아니다. 국민이 의견을 냈다면 정부는 선택해야 한다. 선택했다면 설명해야 하고 시행했다면 책임져야 한다. 부동산 정책의 신뢰는 토론 시간이나 참석자 수에서 생기지 않는다. 흔들리지 않는 기준과 지켜지는 일정, 책임지는 사람의 이름에서 생긴다.
2026-07-24 07:47: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