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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BM만 바라볼 수 없다"…삼성·SK하이닉스, 중국 D램의 역습에 맞서다
[경제일보] 인공지능(AI) 열풍으로 한국 메모리 반도체 기업들이 역대급 실적을 올리는 사이 중국이 또 다른 전선에서 추격의 속도를 높이고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고대역폭메모리(HBM)와 서버용 D램에 생산능력을 집중하는 동안 중국 창신메모리(CXMT)는 모바일 메모리의 공정 미세화와 생산성 개선을 앞세워 시장 확대에 나섰다. 21일 업계에 따르면, CXMT는 전날 중국 허페이에서 열린 세계제조업대회에서 5세대 D램 기술 플랫폼인 ‘G5’의 양산을 공식 발표했다. G5를 적용한 24기가비트(Gb) LPDDR5X 제품 2종도 공개했다. 삼성전자·SK하이닉스·마이크론이 주도해 온 시장에 중국산 첨단 D램 공급을 늘리겠다는 선언이다. 이번 발표의 핵심은 생산성이다. CXMT는 네 차례 패터닝하는 공정 기술을 활용해 메모리 배열 내 특정 구조의 반간격을 11.95나노미터까지 줄였다고 밝혔다. 8Gb 제품으로 환산한 웨이퍼당 생산 가능한 칩 수는 이전 세대보다 최소 50% 늘었다는 설명이다. 단일 칩 용량도 기존 동급 제품보다 50% 증가한 24Gb로 높였다. 다만 이를 한국 기업과의 기술 격차 해소로 단정할 수는 없다. 11.95나노미터는 메모리 배열의 특정 구조를 측정한 값으로,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가 사용하는 공정 세대 명칭과 직접 비교하기 어렵다. 웨이퍼당 칩 수 증가도 불량품을 제외한 양품 수율과 다르다. CXMT는 G5의 실제 수율과 월간 생산량, 고객사별 공급 규모를 공개하지 않았다. 1세계 D램 4위까지 올라온 중국…공백 파고드는 생산능력 CXMT의 추격은 기술 발표에만 머물지 않는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올해 2분기 글로벌 D램 매출 점유율은 삼성전자 39.4%, SK하이닉스 24.9%, 미국 마이크론 23.3%, CXMT 9.5% 순이었다. CXMT의 점유율은 1분기 7.6%에서 한 분기 만에 1.9%포인트 상승했다. 매출액 기준으로 세계 4위 공급업체의 존재감이 커진 것이다. 중국 업체에 기회가 생긴 배경에는 기존 강자들의 생산능력 재배치가 있다. HBM과 고용량 서버용 D램 수요가 폭증하자 주요 업체들이 수익성이 높은 제품에 설비를 우선 배정했다. 상대적으로 모바일·PC용 제품의 공급 여력이 줄면서 CXMT를 비롯한 후발 업체들이 고객을 확보할 공간이 넓어졌다. 그렇다고 범용 D램 시장이 이미 가격 폭락에 들어간 것은 아니다. 트렌드포스는 지난 7일 보고서에서 2분기 D램 업계 매출이 전분기보다 59.5%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3분기 일반 D램 계약가격 역시 13~18% 상승할 것으로 전망했다. 현재 확인되는 것은 중국산 공급 확대에 따른 잠재적 경쟁 압력이지, 한국산 제품의 가격 하락이 현실화됐다는 사실은 아니다. 당장의 접점은 스마트폰이다. CXMT가 이번에 내놓은 G5 기반 제품은 저전력 모바일 D램인 LPDDR5X다. 중국 스마트폰 제조업체들이 공급처를 다변화할 경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가격뿐 아니라 전력 효율, 품질, 안정적인 공급 능력으로 고객을 붙잡아야 한다. 실제 경쟁 강도는 신제품의 양산 수율과 고객사 채택 규모가 확인돼야 판단할 수 있다. 삼성은 제품 포트폴리오, SK는 고객 밀착…서로 다른 방어전 삼성전자는 HBM과 일반 D램을 동시에 고도화하는 전략을 펴고 있다. 지난 7월 30일 발표한 2분기 실적 자료에서 HBM4 공급 확대와 업계 최초 HBM4E 샘플 출하를 강조하는 한편, DDR5와 저전력 서버 메모리 규격인 SOCAMM2도 고부가 제품군으로 제시했다. 서버용 제품 매출 비중도 역대 최고 수준이라고 밝혔다. 폭넓은 제품군을 확보한 삼성의 과제는 제한된 설비를 어디에 배정하느냐다. HBM과 서버용 제품의 호황에 대응하면서도 모바일 고객이 요구하는 물량과 가격 경쟁력을 유지해야 한다. HBM 투자 확대가 범용 D램 포기를 뜻하지는 않지만, 수요가 다른 제품군 사이에서 생산능력을 조정하는 부담은 커졌다. SK하이닉스는 HBM과 고부가 서버 메모리에 무게를 싣고 고객과의 장기계약을 확대하고 있다. 회사는 2분기 HBM4 대량 출하를 시작했고 약 10개 주요 고객사와 장기공급계약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동시에 10나노급 6세대 공정 기반 D램 출하와 SOCAMM2 판매도 확대하고 있다. HBM에 집중하면서 서버용 일반 메모리까지 묶어 고객 수요에 대응하는 구조다. 두 기업의 차이는 경쟁의 출발점이다. 삼성은 폭넓은 메모리 제품군과 생산 포트폴리오를 조정해야 하고, SK하이닉스는 HBM을 중심으로 구축한 고객 관계와 고부가 제품 판매를 지속적으로 확대해야 한다. 어느 쪽이든 중국 업체가 모바일과 일반 D램에서 공급을 늘리면 기존 제품의 수익성과 시장 기반을 함께 점검해야 한다. 中 LPDDR6까지 상용화…승부는 ‘양산 발표’ 다음에 CXMT의 행보는 LPDDR5X에 그치지 않는다. 회사는 지난 7일 차세대 모바일 메모리인 LPDDR6의 양산과 샤오미 플래그십 스마트폰 적용을 발표했다. 이번 G5 발표에 앞서 차세대 규격의 상용화를 알린 셈이다. 중국 업체의 경쟁 영역을 과거 세대의 저가 D램에만 한정해 볼 수 없는 이유다. 사업영역도 넓히고 있다. 실제 CXMT는 베이징 신규 시설에 낸드플래시 연구개발 생산라인 구축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이는 계획 단계로, 상업 생산이 확정된 것은 아니다. D램에서 확보한 자본과 고객 기반을 다른 메모리 분야로 확장하려는 움직임으로 읽힌다. 한국 기업에 필요한 것은 HBM 투자를 줄이는 단순한 대응이 아니다. AI 서버는 HBM뿐 아니라 고용량 일반 D램도 사용한다. HBM의 기술 우위를 강화하는 동시에 서버용 DDR5와 저전력 메모리에서 고객이 요구하는 성능·가격·공급 안정성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 업계 관계자는 “중국의 G5 양산 발표가 글로벌 가격 질서를 바꿀지는 아직 불확실하다”며 “앞으로 확인해야 할 지표는 생산라인의 실제 양품 수율, 월간 출하량, 해외 고객사 확보 여부”라고 했다. 이어 “한국 기업에는 여기에 제품별 수익성과 생산능력 배분이라는 과제가 더해진다”면서 “AI 호황이 한국 메모리 산업에 막대한 이익을 안겨주고 있지만, 그 사이 일반 D램 시장의 경쟁 구도도 달라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HBM을 앞세운 성장과 폭넓은 D램 시장의 기반을 동시에 지킬 수 있느냐. 중국의 추격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이 두 가지 과제를 함께 던지고 있다”고 했다.
2026-09-21 15: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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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가격 공세에 車업계 원가절감 총력…혼다 13조·스텔란티스 9.4조
[경제일보] 글로벌 완성차 업계가 중국 업체와의 가격 경쟁 심화, 미국의 관세 정책, 예상보다 더딘 전기차 보급, 원자재비 상승 등 복합적인 비용 압박에 대응해 대대적인 원가 절감에 나섰다. 부품 가격을 낮추는 기존 방식에서 벗어나 부품 표준화와 차종 축소, 생산량 조정, 생산거점 재편 등을 추진하면서 제조 과정 전반의 비용 구조를 바꾸고 있다. 7일 업계와 외신 보도에 따르면 일본 혼다는 오는 2030년까지 1조5000억엔(약 13조원)의 비용 절감을 추진한다. 최근 주요 협력사 미팅에서는 프레스·단조 부품, 전장 부품, 소프트웨어 중심 자동차(SDV) 관련 부품 등 3개 분야에 30% 비용 절감 목표를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혼다는 협력사별 조달 체계에도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1차 협력사에는 소재 조달 방식의 재검토를 요청했으며 2·3차 협력사에는 표준화 부품 활용을 확대하도록 했다. 중국산 부품을 활용할 수 있는 분야에서는 자체 사용 확대도 요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폭스바겐그룹은 모델 수를 줄여 생산 효율을 높이는 동시에 인력과 생산시설을 축소한다. 감독이사회는 지난 3일(현지시간) 모델 포트폴리오를 50% 간소화하고 5만명 규모의 인력을 조정하는 내용을 담은 ‘미래 계획 2030’을 승인했다. 2030년 영업이익률 목표는 9%다. 폭스바겐그룹은 제품 구성의 복잡성을 약 75% 낮추고 파생 모델을 줄일 계획이다. 회사 측은 “더 적은 수의 파생 모델에 집중해 모델당 생산량 증대, 비용 절감, 더 강력한 규모의 경제라는 이점을 누리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유럽 생산능력도 손질한다. 폭스바겐그룹은 현지 생산능력이 시장 수요보다 50만대 이상 많은 것으로 보고 있다. 생산시설 조정과 함께 보유 지분 및 사업 포트폴리오를 재평가하고 관련 규모를 약 3분의 1 축소할 계획이다. 스텔란티스는 개발기간 단축을 통해 차량 개발에 투입되는 비용과 시간을 줄인다. 지난 5월 발표한 ‘패스트레인(FaSTLAne) 2030’ 전략에 따라 가치 창출 프로그램(VCP)을 추진하고 2028년까지 연간 60억유로(약 9조4000억원)의 비용 절감을 목표로 제시했다. 차량 개발 주기는 기존 최대 44개월에서 24개월 수준으로 단축한다. 유럽 생산능력은 80만대 이상 줄인다. 개발기간과 생산규모를 함께 조정해 차량 개발 및 제조 과정에서 발생하는 비용을 낮추는 방식이다. 재규어 랜드로버는 인력 구조를 조정한다. BBC 등에 따르면 회사는 사무직과 관리직을 대상으로 자발적 퇴직 프로그램을 추진할 예정이라고 노조에 통보했다. 향후 2년간 최대 4000명의 일자리를 줄이는 방안이 거론되고 있다. 현대차는 원가 절감 대상을 차량 개발과 재료비, 부품 조달까지 확대한다. 최근 ‘최고경영자(CEO) 인베스터 데이’에서 2030년 영업이익률 목표를 기존 8~9%에서 9% 이상으로 높이고 매출원가율은 당초 계획보다 3%포인트 낮추겠다고 밝혔다. 세부적으로는 신규 개발 차량의 제조 방식과 디자인 사양 공용화, 생산 공정 개선을 통해 1.5%포인트를 낮춘다. 하이브리드 물량 확대와 리튬인산철(LFP) 배터리 적용 확대를 통한 재료비 절감으로 1%포인트, 부품 현지화 확대를 통해 0.5%포인트를 추가로 낮출 계획이다.
2026-09-07 09:5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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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측에 200만달러 낸 베이스…美 반덤핑 재심 한국알미늄 모회사 최대주주
[경제일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측 회사에 200만달러를 지급한 국내 ㈜베이스가 미국 상무부의 반덤핑 관세 재심을 받고 있는 한국알미늄의 모회사 까뮤이앤씨 최대주주인 것으로 확인됐다. 베이스와 트럼프 측의 거래, 한국알미늄의 미국 관세 절차가 각각 진행되는 가운데 두 회사가 지분관계로 연결돼 있다는 사실이 국내외 공개자료를 통해 드러난 것이다. 1일 한국거래소 공시와 미국 정부·의회 자료를 종합하면 베이스는 유가증권시장 상장사 까뮤이앤씨의 최대주주다. 까뮤이앤씨는 한국알미늄 지분 100%를 보유하고 있다. 현재 공개된 자료만으로 베이스의 200만달러 지급과 한국알미늄의 관세 문제 사이에 청탁이나 대가관계가 있었다고 볼 근거는 확인되지 않았다. 베이스와 트럼프 측은 해당 자금이 골프장 사업과 관련한 정상적인 계약에 따라 지급된 돈이라는 입장이다. ◆ 美 재산공개서에 등장한 베이스 200만달러 거래는 트럼프 대통령의 재산공개 자료에서 확인된다. 미국 정부윤리청에 제출된 연례 재산공개서에는 트럼프 대통령 측 회사가 베이스와 의향서를 체결했고, 이 계약과 관련해 200만달러의 ‘환불되지 않는 개발수수료’를 받은 것으로 기재돼 있다. 트럼프오거니제이션은 이후 이 의향서가 지난해 8월 베이스와 체결한 골프장 관련 계약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정확한 지급 날짜와 금액 산정 근거, 양측이 체결한 의향서 전문은 공개되지 않았다. ◆ 베이스 최대주주는 까뮤이앤씨…한국알미늄까지 이어져 베이스는 공시상 경영·재무컨설팅업체다. 지난 7월 24일 공시 기준 까뮤이앤씨 지분 44.21%를 직접 보유하고 있으며, 최대주주와 관계인 지분을 합하면 54.67%다. 까뮤이앤씨는 다시 한국알미늄 지분 100%를 보유하고 있다. 한국알미늄은 알루미늄 호일과 식품·의약품 포장재 등을 생산하는 업체다. 한국알미늄의 미국 관세 문제는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이전부터 이어져 왔다. 미 상무부는 2022년 중국산 알루미늄 원재료를 한국에서 가공한 뒤 미국으로 수출한 제품이 기존 반덤핑·상계관세 명령을 우회한 것인지 조사에 착수했다. 상무부는 이듬해 11월 한국에서 생산된 일부 알루미늄 제품을 기존 관세명령의 우회 대상으로 판단했다. 당시 공개된 기업 명단에는 한국알미늄을 비롯한 국내 업체들이 포함됐다. ◆ 28.01% 적용받던 한국알미늄…다음 재심선 105.80% 가능성 이후 한국알미늄에 대해서는 실제 반덤핑률을 정하기 위한 행정재심이 진행됐다. 앞선 재심에서는 별도세율 적용 업체로 인정돼 올해 5월 수정 최종결과에서 28.01%의 가중평균 덤핑마진을 적용받았다. 하지만 지난 7월 공개된 다음 행정재심 예비결과에서는 상황이 달라졌다. 미 상무부는 한국알미늄을 비롯한 일부 업체가 별도세율 신청서나 인증서를 제출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별도세율 자격을 인정하지 않았다. 이에 따라 한국알미늄은 예비적으로 중국 전체에 적용되는 단일세율 대상에 포함됐다. 최종 결과에서도 같은 판단이 유지될 경우 적용되는 반덤핑률은 105.80%다. 현재까지 공개된 상무부 결정만 놓고 보면 베이스가 트럼프 측에 200만달러를 지급한 뒤 한국알미늄이 관세상 혜택을 받은 정황은 확인되지 않는다. ◆ 골프장 사업비라는데…하남서 사업 구체화 베이스와 트럼프 측이 200만달러의 지급 근거로 밝힌 골프장 사업은 올해 들어 국내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하남시에 따르면 에릭 트럼프 트럼프오거니제이션 총괄부사장은 지난 2월 경기 하남시 위례 성남골프장 부지를 둘러봤다. 그로부터 6개월 뒤 트럼프오거니제이션은 베이스와 함께 하남시 학암동에 ‘트럼프 인터내셔널 골프클럽 코리아’를 개발한다고 공식 발표했다. 트럼프 측은 앞서 받은 200만달러가 골프장 사업과 관련한 개발수수료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지난해 체결된 의향서에 담긴 사업과 올해 발표된 하남 골프장 사업이 같은 사업인지는 아직 공개자료만으로 확인되지 않는다. ◆ 美 상원, 베이스 이어 상무부에도 자료 요구 미국 정치권도 두 사안을 함께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엘리자베스 워런, 리처드 블루먼솔, 앤디 김 민주당 상원의원은 지난달 김성집 베이스그룹 회장에게 200만달러의 지급 시점과 방식, 계약 내용, 트럼프 측과의 접촉 자료 등을 제출하라고 요구했다. 의원들은 한국알미늄의 관세 문제를 트럼프 측이나 미국 정부 관계자와 논의한 적이 있는지도 물었다. 이어 론 와이든 미 상원 재무위원회 민주당 간사는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에게 베이스·한국알미늄 관계자와 상무부 사이의 접촉 자료를 요구했다. 와이든 의원은 미 행정부가 200만달러 지급 사실을 언제 알았는지, 백악관과 상무부가 두 회사의 관세 문제를 놓고 연락을 주고받았는지도 확인해 달라고 했다. 상무부에 제시된 답변 시한은 9월 1일이다. 미 상원이 들여다보는 대목은 결국 하나다. 200만달러가 오간 전후 베이스와 한국알미늄 관계자들이 미 행정부와 접촉했는지, 접촉했다면 그 자리에서 무엇이 오갔는지다.
2026-09-01 10:0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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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강 살리고 사람 잃는 전환은 안 된다
[경제일보] 철강의 위기가 공장 담장을 넘어 일자리로 번지고 있다. 충남 당진이 지난 21일부터 ‘고용위기 선제대응지역’이 됐다. 현대제철을 비롯한 철강기업들이 밀집한 이 도시에서 철강업과 금속제품 제조업을 중심으로 고용 감소가 나타나자 정부가 고용 충격이 더 커지기 전에 안전망을 가동한 것이다. 23일 충남도는 정부 지원과 자체 일자리 정책을 연계해 고용 유지부터 직업훈련, 전직·재취업, 생계 지원까지 대응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이번 지정은 단순한 지역 고용대책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대한민국 철강산업의 구조적 위기가 기업 손익계산서를 넘어 지역사회에 청구서를 보내기 시작했다는 신호이기 때문이다. 당진은 포항·광양과 함께 한국을 대표하는 철강도시다. 공장 하나가 철강만 만드는 것이 아니다. 협력업체와 운송업체, 정비업체가 붙고 식당과 상점이 생긴다. 공장이 벌어들인 돈으로 지방세가 걷히고, 그 돈이 다시 지역의 학교와 도로, 복지에 쓰인다. 주력기업의 생산이 줄면 협력업체 매출이 먼저 꺾이고 채용이 줄며, 그 여파는 골목상권과 지방재정까지 이어진다. 당진은 이미 그 징후를 겪고 있다. 지역 주요 철강기업 5개사의 영업이익은 2023년 2623억원 흑자에서 지난해 444억원 적자로 돌아섰다. 당진의 국세 납부액 역시 2022년 5063억원에서 2024년 1228억원으로 급감했고 법인 지방소득세는 같은 기간 317억원에서 28억원으로 쪼그라들었다. 철강기업의 실적 악화가 지역경제의 체력을 얼마나 빠르게 떨어뜨릴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숫자다. 원인은 하나가 아니다. 산업연구원은 국내 철강시장이 건설수요 감소와 글로벌 공급과잉, 수출 부진이 겹치며 20년 만의 최저 수준의 수요를 경험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일부 설비의 폐쇄와 가동 중단, 인력 조정 압력에 더해 산업용 전기요금 상승과 탄소중립 비용도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철강산업의 체질을 바꿔야 한다는 결론을 피할 수 없는 이유다. 값싼 범용재를 대량 생산해 중국산 철강과 가격으로 경쟁하는 방식에는 한계가 분명하다. 자동차·조선·방산·에너지용 고부가 강재로 올라가고, 수소환원제철과 전기로 확대 등 탄소배출을 줄이는 생산체제로 전환해야 한다. 제조공정에는 인공지능과 자동화를 더 깊이 넣어야 한다. 유럽의 탄소규제와 각국의 보호무역 장벽을 생각하면 선택이라기보다 생존에 가까운 문제다. 정부가 경쟁력이 떨어진 모든 설비와 일자리를 세금으로 영원히 붙들어둘 수도 없다. 시장에서 수요를 잃은 생산시설까지 고용을 이유로 계속 유지하면 기업 경쟁력을 떨어뜨리고 결국 더 큰 구조조정을 부를 수 있다. 문제는 산업 전환이 필요하다는 사실이 아니라 그 비용을 누가 부담하느냐다. 기업은 오래된 설비를 닫으면 재무구조가 좋아질 수 있다. 국가는 산업 전체의 생산성을 높일 수 있다. 친환경 설비를 도입하면 탄소배출도 줄어든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일자리를 잃은 노동자와 공장 주변의 협력업체, 지역 상인에게는 ‘산업 고도화’라는 말이 당장의 생계 문제로 돌아온다. 국가와 기업이 전환의 편익을 얻으면서 비용은 노동자와 지역에만 남기는 구조라면 공정하지도, 지속 가능하지도 않다. 이번 당진 고용위기 선제대응지역 지정이 의미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지원 대상 노동자의 국민내일배움카드 한도는 300만원에서 500만원으로 늘어나고 생활안정자금 융자 한도도 2000만원에서 2500만원으로 확대된다. 기업의 고용유지지원금 지원 비율은 66.7%에서 80%로 높아진다. 충남도는 내년 최대 60억원 규모의 ‘당진 철강산업 버팀이음프로젝트’ 국비 확보도 추진한다. 필요한 조치다. 다만 생계자금과 훈련비를 늘리는 것만으로 산업 전환이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핵심은 숙련을 버리지 않는 전환이다. 철강공장에서 20년을 일한 노동자에게 새로운 직업을 찾으라며 몇 달짜리 일반 직업훈련을 제공하는 것으로 책임을 다했다고 할 수 없다. 제철소의 설비와 공정, 품질관리, 안전관리 경험은 산업의 자산이다. 이를 수소환원제철과 전기로, 친환경 설비, 산업용 로봇과 스마트팩토리 운영 역량으로 전환시키는 교육이 필요하다. 재교육의 출발점도 실업 이후가 아니라 재직 중이어야 한다. 구조조정 대상자가 확정된 뒤 교육기관을 찾는 것은 너무 늦다. 기업의 설비 전환 계획과 함께 향후 줄어드는 직무와 새로 필요한 직무를 예측하고, 노동자가 기존 일자리에서 일하는 동안 새로운 기술을 익히도록 해야 한다. 기업에도 책임을 요구해야 한다. 국가가 탄소중립 설비에 세액공제와 정책금융을 제공한다면 해당 기업은 고용 전환 계획을 함께 내놓아야 한다. 어떤 일자리가 줄어들고 어떤 직무가 새로 생기는지, 기존 노동자를 얼마나 재배치하고 협력업체 고용에는 어떤 영향이 있는지를 사전에 제시해야 한다. 친환경 설비 투자계획은 수십 년 뒤까지 세우면서 사람에 대한 계획은 구조조정 직전에 만드는 식이어서는 곤란하다. 지역 정책은 더 크게 봐야 한다. 당진의 철강 노동자를 모두 다른 철강회사로 옮기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결국 철강산업의 경쟁력을 높이는 정책과 함께 지역의 산업구조 자체를 넓혀야 한다. 당진을 저탄소 철강의 거점으로 만들면서 수소·에너지, 철강 자원순환, 친환경 소재, 산업자동화와 같은 연관 산업을 끌어들일 필요가 있다. 산업연구원도 철강 집적지역의 대응 방안으로 수소환원제철과 탈탄소 설비·부품 산업, 제조 AX, 자원순환 분야로의 다각화를 제시했다. 그래야 전환 과정에서 사라지는 일자리와 새로 생기는 일자리가 같은 지역 안에서 연결될 수 있다. 과거 제조업 구조조정의 실패에서 배울 것도 있다. 주력기업이 떠난 뒤에야 도시재생과 창업지원 사업을 시작하면 이미 숙련인력과 젊은 가족은 지역을 떠난 뒤다. 사람과 기업이 빠져나간 도시를 다시 일으키는 데 들어가는 비용은 일자리를 지키고 새로운 산업으로 연결하는 비용보다 훨씬 크다. 정부가 고용 충격이 통계에 완전히 나타나기 전에 당진을 선제대응지역으로 지정한 것은 그래서 평가할 대목이다. 이 제도 자체도 기존 고용위기지역이 실업과 고용 감소가 상당 부분 진행된 뒤에야 작동한다는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지난해 도입됐다. 이제 ‘선제’라는 말을 정책의 시간표 전체에 적용해야 한다. 실직하기 전에 훈련하고, 협력업체가 폐업하기 전에 사업 전환을 돕고, 지역의 청년이 떠나기 전에 새로운 기업을 불러들여야 한다. 정부도 최근 산업위기 선제대응지역의 상황이 급격히 나빠지면 산업위기대응특별지역으로 신속하게 넘어갈 수 있도록 패스트트랙을 도입하는 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위기가 현실이 된 뒤 지원하던 방식에서 위험이 보일 때 움직이는 방식으로 바꾸겠다는 취지다. ‘중용’에는 ‘범사예즉립 불예즉폐(凡事豫則立 不豫則廢)’라는 말이 있다. ‘모든 일은 미리 준비하면 서고, 준비하지 않으면 무너진다’는 의미다. 산업 전환도 그렇다. 철강의 구조조정을 막을 수 있다는 환상을 가져서는 안 된다. 기술도 바뀌고 시장도 바뀐다. 탄소를 많이 배출하는 생산방식은 결국 새로운 방식으로 대체될 것이다. 중요한 것은 변화를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변화가 누구의 희생 위에서 이뤄질 것인지를 미리 결정하는 일이다. 기업에는 친환경 설비와 고부가 제품 전환을 지원하고, 노동자에게는 숙련을 이어갈 직업과 교육을 제공하며, 지역에는 다음 산업을 심어야 한다. 세 정책이 따로 움직여서는 안 된다. 산업정책의 성공을 공장의 생산성만으로 평가하던 시대도 지나야 한다. 수소환원제철 공장을 지었는데 숙련 노동자가 일자리를 잃고, 기업은 살아났는데 지역 상권과 인구가 무너졌다면 그것을 온전한 산업 전환이라고 부르기는 어렵다. 철강은 한국 산업화를 떠받친 산업이다. 당진과 포항, 광양의 노동자와 지역사회 역시 그 성장의 비용과 과실을 함께 감당했다. 새로운 철강으로 넘어가는 비용 역시 함께 나눠야 한다. 산업을 살리기 위해 사람을 버리는 전환은 오래갈 수 없다. 공장을 바꾸는 것과 사람의 삶을 이어주는 것, 그 둘을 함께 해내야 진짜 산업 전환이다.
2026-08-24 14: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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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강국의 길목이 바뀌었다…K게임의 다음 승부처는 '다양성'
[경제일보] 한국 게임산업의 풍경이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산업 규모만 보면 여전히 성장세다. 그런데 이용자가 찾는 플랫폼과 장르, 게임을 즐기는 방식은 빠르게 변하고 있다. 과거 한국 게임산업을 대표했던 모바일 MMORPG 중심의 시장에 새로운 장르와 플랫폼이 들어오고 중국 게임까지 경쟁을 넓히면서, 이제 K게임의 다음 승부처는 ‘얼마나 큰 게임을 만드느냐’보다 얼마나 다양한 선택지를 만들어내느냐에 가까워지고 있다. 지난 3월 25일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콘텐츠진흥원이 발표한 ‘2025 대한민국 게임백서’에 따르면 2024년 국내 게임시장 매출은 23조8515억원으로 전년보다 3.9% 증가했다. 수출액도 85억346만달러로 1.3% 늘었고, 종사자는 8만7576명으로 3.1% 증가했다. 국내 게임산업이 외형적으로 후퇴하고 있다는 근거는 오히려 찾기 어렵다. ◆ 시장은 줄어든 게 아니라 ‘갈라지고’ 있다 변화가 뚜렷하게 나타나는 곳은 이용 행태다. 지난해 12월 18일 콘진원이 발표한 ‘2025 게임이용자 실태조사’에서 최근 1년간 게임 이용률은 50.2%로 전년보다 9.7%포인트 감소했다. 하지만 플랫폼별로 보면 PC게임 이용률은 58.1%, 콘솔게임은 28.6%로 각각 상승했다. 모바일게임 이용률은 89.1%로 낮아졌다. 게임을 즐기는 시간도 플랫폼별 차이가 나타났다. 콘진원 조사에서 PC게임의 하루 평균 이용시간은 주중 117.9분, 주말 193.4분으로 최근 5년 중 높은 수준이었다. 전체 게임 이용시간은 줄었지만 PC·콘솔의 존재감은 오히려 커진 것이다. 게임 이용자가 사라졌다기보다 모바일에 집중됐던 소비가 다른 플랫폼으로 분산되는 과정으로 볼 여지가 있는 이유다. 게임 이용자들이 게임을 떠난 이유에서도 변화가 드러난다. 게임 경험은 있지만 현재 이용하지 않는 응답자 가운데 44%는 ‘이용 시간 부족’을 이유로 들었고, 대체 여가를 찾았다는 응답자의 86.3%는 OTT·영화·TV·애니메이션 등 시청 중심 활동으로 이동했다고 답했다. 게임이 다른 게임만이 아니라 모든 여가 콘텐츠와 시간을 놓고 경쟁하는 시대가 된 셈이다. ◆ MMORPG 독주에 균열…4X가 9년 만에 추월 장르에서도 변화가 시작됐다. 시장조사업체 센서타워에 따르면 2026년 1월 국내 모바일게임 시장에서 4X 전략 장르의 월 매출이 7000만달러를 넘어 MMORPG를 처음으로 앞질렀다. MMORPG가 한국 모바일게임 시장의 매출 1위 하위 장르를 유지해온 기간이 9년에 달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다만 이를 MMORPG의 몰락으로 해석할 필요는 없다. 4X 전략 역시 장기적인 성장과 경쟁, 이용자 간 협력을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한국 이용자에게 익숙한 장기 서비스와 경쟁·과금 구조를 일부 공유한다. 오히려 주목할 부분은 한국 이용자가 익숙한 게임 문법 안에서도 새로운 장르가 시장을 확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인디게임 역시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다. 지난 7월 부산인디커넥트페스티벌 조직위원회가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BIC 2026에는 57개국에서 856개 작품이 출품됐다. 전년보다 작품 수가 44% 증가한 역대 최대 규모다. 최종 선정작도 41개국 180여개에 달했다. 작은 팀이 만든 게임이 글로벌 이용자와 만날 수 있는 통로가 커지고 있다는 의미다. 정부도 이런 변화를 지원하고 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은 2025년 인디게임 지원사업을 통해 3년 미만 법인에 최대 1억8000만원, 3~7년 성장기업에 최대 2억5000만원을 지원했다. PC·콘솔 게임 제작지원과 AI·클라우드 등 신성장 게임 지원도 별도로 진행했다. ◆ 중국 게임, 이제는 ‘외산’보다 ‘경쟁자’로 봐야 국내 게임사가 주목해야 할 또 하나의 변화는 중국 게임의 경쟁력이다. 2025년 상반기 센서타워 자료를 보면 국내 모바일게임 시장 매출 2위와 3위를 중국산 ‘화이트아웃 서바이벌’과 ‘라스트 워: 서바이벌’이 차지했다. 특히 화이트아웃 서바이벌은 지난해 5월 한국에서 약 2600만달러의 월 매출을 기록하며 출시 이후 최고치를 경신했다. 그렇다고 한국 게임이 밀려난 것만도 아니다. 같은 조사에서 ‘세븐나이츠 리버스’, ‘마비노기 모바일’, ‘RF 온라인 넥스트’가 각각 매출 4위, 5위, 6위에 올라왔다. 센서타워는 국산 신작 3종이 동시에 매출 상위권에 진입한 것이 2014년 자체 집계 이후 처음이라고 분석했다. 중국 게임의 성장과 한국 신작의 흥행이 동시에 나타난 것이다. 중국 게임을 주목해야 하는 이유도 단순한 자본력에 있지 않다. 4X 전략처럼 한국 개발사가 상대적으로 덜 주목했던 장르를 집중 공략하면서 글로벌 이용자를 확보하고, 장기간 업데이트와 공격적인 이용자 확보 전략을 통해 출시 이후에도 매출을 키우는 방식이 눈에 띈다. 센서타워는 화이트아웃 서바이벌의 한국 누적 매출 가운데 57%가 2025년에 발생했다고 분석했다. 게임이 오래됐다고 성장 기회가 끝나는 것이 아니라 운영 역량에 따라 다시 성장할 수 있다는 사례다. ◆ ‘다음 메이플’ 하나보다 ‘다음 100개’가 필요한 이유 이제 한국 게임산업에 필요한 것은 대작 개발 역량을 버리는 것이 아니다. 대형 게임이 만들어내는 글로벌 경쟁력은 여전히 중요하다. 다만 모든 역량을 하나의 대형 프로젝트에 집중하는 구조만으로는 플랫폼과 장르 변화에 대응하기 어렵다. 작은 팀이 새로운 장르와 게임성을 실험하고, 시장에서 가능성을 확인하면 VC와 퍼블리셔가 후속 투자를 연결하는 구조가 필요하다. 인디와 프로젝트 게임이 단순한 ‘소규모 게임’이 아니라 차세대 IP를 발굴하는 실험실이 될 수 있는 이유다. 넥슨이 최근 최대 2500억원 규모 게임 스타트업 장기 투자 프로그램을 가동한 것도 이런 흐름과 맞닿아 있다. 초기 단계에서는 게임 전문 VC가 발굴하고 성장 가능성이 확인되면 넥슨이 후속 투자에 참여하는 구조다. 대형 게임사가 모든 게임을 직접 만드는 방식에서 벗어나 외부 생태계에서 미래 IP를 찾아내려는 시도다. 한국 게임산업의 다음 경쟁은 ‘대작 대 인디’의 선택지가 아니다. 대형 프로젝트를 만들 수 있는 역량을 유지하면서도 작은 팀의 실험과 다양한 장르, PC·콘솔, 글로벌 시장을 함께 키우는 포트폴리오형 산업 구조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게임 강국의 길목이 바뀌고 있다. 시장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길이 여러 갈래로 나뉘는 것이다. K게임이 다시 성장하려면 가장 큰 길 하나를 넓히는 것보다 더 많은 길을 만들고 그중 세계 시장으로 이어지는 길을 찾아내는 능력이 필요하다.
2026-08-24 08:5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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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와 교역 줄어도 수출 14% 늘었다…로봇·관광객 소비 키우는 중국
[경제일보] 중국의 올해 1~7월 수출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4% 늘었다. 미국과의 교역은 감소했지만 아세안과 유럽연합, 일대일로 참여국과 거래가 늘면서 전체 교역액은 30조위안을 넘어섰다. 자본시장에서는 휴머노이드 로봇 업체 유니트리가 60억위안 넘는 자금을 조달하는 기업공개에 들어갔다. 베이징에서는 외국인 관광객에게 발급한 출국세 환급 신청서가 지난해의 5배 수준으로 늘었다. 내국인 소비가 좀처럼 살아나지 않는 가운데 중국이 수출 상대를 넓히고 로봇 산업에 자금을 대는 한편 외국인 관광객의 소비까지 끌어들이고 있다. ◆ 미국 줄고 아세안 늘었다 중국 해관총서에 따르면 올해 1~7월 상품 수출입액은 30조1300억위안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7.3% 증가했다. 수출은 17조4400억위안으로 14%, 수입은 12조6900억위안으로 22% 늘었다. 7월 한 달간 수출입액은 4조6600억위안으로 전년 동월보다 19.2% 증가했다. 수출은 17.8%, 수입은 21.2% 늘었다. 월간 교역액은 지난 3월부터 5개월 연속 4조위안을 웃돌았다. 교역 상대별 실적은 엇갈렸다. 아세안과의 교역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0% 늘었고 유럽연합과의 교역은 9.5% 증가했다. 중남미와 아프리카를 상대로 한 교역도 각각 15.4%, 18.9% 늘었다. 중국이 일대일로 참여국으로 분류한 국가들과의 교역액은 15조3600억위안으로 15.5% 증가했다. 중국 전체 교역액의 절반을 넘는다. 미국과의 교역은 1.6% 줄었지만 감소 폭은 상반기보다 2%포인트 줄었다. 미국 시장에서 줄어든 거래를 아세안과 중남미, 아프리카 시장이 메우는 양상이다. 중국의 최대 교역 상대도 미국이 아니라 아세안이다. 미국과 중국 사이의 무역 갈등이 장기화하면서 중국 기업들이 생산기지를 동남아시아로 옮기고 현지에서 부품과 중간재를 조달하는 움직임도 교역 증가에 영향을 미쳤다. 수출 품목도 달라지고 있다. 올해 1~7월 중국의 기계·전자제품 수출은 11조1200억위안으로 21.2% 증가했다. 전체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63.8%로 지난해보다 3.8%포인트 높아졌다. 전기차 수출은 71.2%, 리튬 배터리는 35.8%, 풍력발전기는 34.8% 늘었다. 3D 프린터 수출액은 지난해의 두 배를 넘었고 산업용 로봇 수출도 13.2% 증가했다. 의류와 완구 같은 소비재보다 전기차와 배터리, 산업용 장비가 수출 증가를 이끌고 있다. 수입도 빠르게 늘었다. 기계·전자제품 수입액은 5조3100억위안으로 29.7% 증가했다. 인공지능 산업과 첨단 제조업에 들어가는 반도체와 장비 수요가 늘어난 영향이 컸다. 올해 1~7월 수입 증가율은 수출 증가율을 8%포인트 웃돌았다. ◆ 유니트리에 몰린 중국의 큰손들 중국 로봇 업체 유니트리는 지난 6일 상하이증권거래소 커촹반 기업공개 공모가를 주당 150.8위안으로 확정했다. 커촹반은 반도체와 인공지능, 바이오, 첨단 장비 기업이 주로 상장하는 시장이다. 유니트리는 신주 4044만6434주를 발행한다. 상장 후 전체 주식의 10%에 해당한다. 이번 기업공개로 조달하는 금액은 약 60억9900만위안이며 공모가를 기준으로 한 상장 후 시가총액은 609억9300만위안이다. 중국 증권감독관리위원회는 지난 7월 유니트리의 상장을 승인했다. 유니트리는 네 발로 걷는 사족보행 로봇과 사람의 몸을 닮은 휴머노이드 로봇을 만든다. 조달한 자금은 로봇 연구개발과 생산시설 확충, 체화지능 알고리즘 개발 등에 쓸 예정이다. 체화지능은 인공지능이 로봇의 카메라와 센서로 주변을 인식하고 팔과 다리를 움직여 실제 작업을 수행하는 기술을 말한다. 사람의 지시를 글이나 음성으로 답하는 생성형 인공지능보다 산업 현장에 적용하기 어렵지만 시장 규모는 훨씬 클 수 있다는 기대를 받고 있다. 전략적 투자자에는 딥시크 운영사인 항저우선두추숴인공지능기초기술연구유한공사가 이름을 올렸다. 딥시크는 약 93만3400주를 배정받아 1억4100만위안을 투자한다. 텐센트 계열 상하이치산투자와 중국석유그룹 쿤룬캐피털, 중국남방전력 계열 투자회사, 차이나텔레콤 계열 톈이캐피털도 참여했다. 인공지능 업체와 정보기술 기업, 에너지·통신 국유기업이 유니트리 주주로 들어가는 것이다. 공모가는 지난해 실적과 비교하면 높은 수준이다. 유니트리의 공모가 기준 주가수익비율은 약 219배다. 같은 업종 기업들의 평균인 약 39배보다 5배 이상 높다. 유니트리는 올해 상반기 매출을 10억5200만~11억2800만위안, 순이익을 2억5800만~3억600만위안으로 예상했다. 매출과 순이익이 늘어도 현재의 공모가를 뒷받침하려면 로봇 판매를 빠르게 늘려야 한다. 연구개발비와 판매비가 늘면서 일회성 이익을 제외한 상반기 순이익은 지난해보다 감소할 것으로 회사는 내다봤다. 상장 후에는 로봇을 얼마나 많이 생산해 어느 시장에 팔 수 있는지가 평가의 기준이 된다. ◆ 관광객이 산 자리에서 세금 돌려준다 중국 정부는 외국인이 입국해 쓰는 돈을 늘리는 데도 공을 들이고 있다. 올해 상반기 중국에 입국한 외국인은 2291만4000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0.4% 증가했다. 이 가운데 무비자로 입국한 외국인은 1781만5000명으로 30.6% 늘었다. 전체 외국인 입국자의 77.7%가 비자 없이 중국에 들어왔다. 관광객이 늘면서 쇼핑도 함께 증가했다. 올해 1~7월 베이징에서 외국인 관광객에게 발급한 출국세 환급 신청서는 지난해보다 400% 증가했다. 지난해의 5배 수준이다. 환급 대상 상품 매출은 44.5%, 실제 환급액은 44% 늘었다. 베이징의 출국세 환급 매장도 7월 말 기준 2000곳을 넘어섰다. 외국인이 사는 물건도 바뀌었다. 과거에는 실크 제품과 차, 전통 공예품이 주류였지만 최근에는 중국산 스마트폰과 보조배터리, 전동칫솔, 액션카메라, 무선이어폰을 찾는 관광객이 늘고 있다. 베이징 싼리툰의 샤오미 매장과 중국 국제무역센터 인근 DJI 매장에는 중국산 전자제품을 사려는 외국인이 몰리고 있다. 베이징 훙차오시장은 하루 방문객 8000여 명 가운데 외국인이 70%를 차지한다. 중국 정부는 출국세 환급 절차도 계속 줄이고 있다. 지난해 외국인 관광객이 세금을 돌려받을 수 있는 최소 구매액을 500위안에서 200위안으로 낮췄고 현금 환급 한도는 1만위안에서 2만위안으로 올렸다. 물건을 산 매장에서 세금을 먼저 돌려주는 ‘즉시 환급’ 제도도 전국으로 확대했다. 지난 7월부터는 구매액이 1만위안 미만인 경우 모든 물품을 검사하지 않고 일부만 무작위로 확인한다. 신청서와 영수증도 종이로 낼 필요 없이 온라인으로 제출할 수 있다. 베이징에서 즉시 환급을 받은 관광객이 상하이나 광저우 공항을 통해 출국하더라도 절차를 마칠 수 있도록 지역 간 환급도 허용했다. 즉시 환급을 받은 뒤 출국해야 하는 기간은 28일로 통일했다. 중국이 외국인 관광객의 쇼핑에 힘을 쏟는 배경에는 부진한 내수가 있다. 올해 상반기 중국의 소매판매액은 24조8722억위안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3% 증가하는 데 그쳤다. 상품 판매 증가율은 1.1%였다. 수출입 증가율과 비교하면 소비 회복 속도가 더디다. 관광객 소비만으로 중국 전체 내수를 끌어올리기는 어렵다. 다만 관광객이 쓰는 돈은 숙박과 음식, 교통, 쇼핑으로 곧바로 퍼진다. 무비자 입국을 확대하고 외국 신용카드와 모바일 결제를 허용한 데 이어 세금 환급 절차까지 손보는 이유다. 중국은 아직 내수 부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대신 해외에서는 거래처를 넓히고 국내에서는 로봇 기업에 자금을 대며 공항과 상점에서는 외국인 관광객이 돈을 더 쓰게 하는 정책을 잇달아 내놓고 있다. 부동산과 내국인 소비가 예전처럼 성장률을 끌어주지 못하자 다른 곳에서 빈자리를 메우고 있다.
2026-08-07 17:4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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