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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호르무즈 '美 영토' 재차 주장…이란 압박하며 중간선거까지 겨냥
[경제일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호르무즈 해협을 미국 영토로 간주하고 있다고 재차 주장했다. 이란과의 전쟁 및 해협 봉쇄를 둘러싼 긴장이 계속되는 가운데 나온 발언으로, 이란에 협상 압박을 가하는 동시에 미국 내 정치적 지지층을 결집하려는 의도가 겹쳐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은 21일(현지시간) 사우스캐롤라이나주 머틀비치에서 열린 공화당 상원의원 후보 지원 유세에서 “이란은 절실하게 합의하고 싶어 한다”면서도 “우리가 합의를 원하는지조차 모르겠다. 나는 현재 호르무즈 해협을 미국의 영토로 보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그곳은 미국의 영토”라고 거듭 강조했다. ◆ 호르무즈 둘러싼 ‘영토’ 발언, 협상 압박 수단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은 단순한 수사에 그치지 않고 최근 미국이 호르무즈 해협에 대한 통제력을 강화하고 있다는 주장과 맞물려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4일에도 이란을 “패배시킨 뒤” 호르무즈 해협을 미국 영토로 선언하겠다고 밝혔다. 당시에도 미국이 해협을 사실상 봉쇄하고 있어 “우리가 원하지 않으면 어떤 배도 통과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국제법상 호르무즈 해협이 미국 영토라는 근거는 없다. 해협은 이란과 오만 사이에 위치하며, 좁은 수로 특성상 양국의 영해가 맞닿는 구조다. 국제법상 국제항행에 이용되는 해협에는 선박의 통항을 보장하는 ‘통과통항’ 원칙이 적용된다. 미국 역시 과거부터 이 원칙을 근거로 호르무즈 해협에서 항행의 자유 작전을 벌여왔다. 호르무즈 해협이 중요한 이유는 세계 에너지 공급망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2025년 하루 평균 약 2000만배럴의 원유 및 석유제품이 이곳을 통과했으며, 세계 해상 원유 거래량의 약 4분의 1이 이 해협을 지났다. 이란·이라크·쿠웨이트·카타르·바레인 등 걸프 지역 주요 산유국의 수출에도 핵심적인 통로다. 현재 실제 해상 운송은 정상 수준과 거리가 멀다. 로이터에 따르면 8월 19일 호르무즈를 통과한 원자재 운반선은 6척에 그쳤다. 이란은 해협이 여전히 폐쇄돼 있다는 입장인 반면 미국은 해협을 통제하고 있으며 선박 통항이 가능하다는 상반된 주장을 내놓고 있다. ◆ 이란 압박하면서 미국 내 정치전선 확대 트럼프 대통령이 호르무즈 문제를 강하게 밀어붙이는 배경에는 교착된 미·이란 협상도 자리 잡고 있다. 지난 6월 양국이 전쟁 종식을 위한 잠정 합의를 마련했지만, 핵 문제와 미군 철수, 제재 해제, 호르무즈 재개방 등을 둘러싼 이견이 해소되지 않으면서 협상이 사실상 교착 상태에 빠졌다. 이란 측은 미국이 합의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을 경우 군사적 대응을 강화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경제적 압박도 커지고 있다. 미국의 봉쇄로 이란의 원유 수출은 크게 위축됐으며, 로이터는 8월 이란의 원유 선적량이 하루 약 53만4000배럴로 2025년 평균 140만배럴에서 급감했다고 보도했다. 중국 정유사들이 대체 원유를 찾으면서 글로벌 원유 공급망에도 연쇄적인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대외정책 메시지를 국내 정치와 직접 연결했다. 이날 유세는 오는 25일 사우스캐롤라이나 연방상원의원 공화당 후보 결선투표를 앞두고 열린 것으로, 트럼프 대통령은 고(故) 린지 그레이엄 전 상원의원의 여동생인 달린 그레이엄 후보를 공개 지지했다. 그레이엄 후보는 앞선 공화당 예비선거에서 32.8%를 얻어 24.6%를 얻은 랠프 노먼 하원의원을 앞섰지만 과반을 확보하지 못해 결선투표를 치른다. 트럼프 대통령은 특히 오는 11월 중간선거를 겨냥해 “투표용지에 내 이름이 없더라도 내가 투표용지에 있다고 생각하고 나와서 투표해달라”고 호소했다. 공화당이 선거에서 패배하면 국경 보안과 감세 정책이 후퇴하고 자신에 대한 탄핵까지 추진될 것이라고 주장하며 지지층의 결집을 촉구했다. 결국 이날 발언은 호르무즈 해협을 둘러싼 군사·외교적 주도권뿐 아니라 미국 국내 정치까지 한데 묶은 메시지로 풀이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에는 ‘합의하지 않으면 더 강한 압박을 받게 된다’는 신호를 보내는 동시에 미국 유권자들에게는 자신의 대이란 강경책과 공화당 의회 장악이 연결돼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문제는 호르무즈의 불안정이 장기화될 경우다. IEA는 중동 전쟁 여파로 2026년 세계 원유 공급량이 전년보다 하루 430만배럴 감소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미국과 이란의 협상 결과뿐 아니라 호르무즈의 실제 선박 통항 정상화 여부가 국제유가와 물류비, 글로벌 인플레이션의 핵심 변수로 떠오른 이유다.
2026-08-22 12:3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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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작권 환수, 정치 일정 아닌 군사적 준비가 기준돼야
[경제일보] 이재명 대통령이 전시작전통제권의 임기 내 환수 방침을 다시 확인했다. 이 대통령은 18일 을지 국무회의에서 한미동맹을 굳건히 유지하면서도 독자적인 국방 역량을 강화해야 한다며 전작권 전환을 차질 없이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핵추진 잠수함 사업에 속도를 내고 미래 전장에 맞는 통합 지휘 역량도 키워야 한다고 주문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미 연합훈련의 대폭 축소를 지시한 직후 나온 발언이라는 점에서 더욱 주목된다. 전작권 환수는 언젠가 완성해야 할 과제다. 자국 군대의 전시 작전을 자국이 주도하는 것은 주권국가로서 자연스러운 방향이다. 한미동맹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구조에서 벗어나 한국군이 한반도 방위를 주도할 능력을 갖추는 것 역시 바람직하다. 그러나 전작권 전환에서 가장 중요한 기준은 대통령 임기가 아니다. 실제 전쟁이 발생했을 때 한국군이 연합전력을 지휘하고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대응할 수 있느냐가 기준이어야 한다. 현재 한미가 추진하는 전작권 전환도 원칙적으로는 '시기'가 아니라 '조건'에 기반한다. 이재명 정부 역시 임기인 2030년까지 전환을 마무리한다는 목표를 갖고 있지만, 한미가 합의한 군사적 능력 조건을 충족하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 미국 측도 전작권 전환은 위기 상황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능력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그렇다면 정부가 먼저 국민에게 보여줘야 할 것은 날짜가 아니라 준비 수준이다. 첫째는 정보·감시·정찰 능력이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 징후와 핵 위협을 얼마나 신속하고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는지가 현대전의 승패를 좌우한다. 위성과 정찰기, 무인기, 각종 감시체계에서 미국의 정보자산 의존도가 여전히 높다면 한국군이 전시 지휘를 주도하더라도 실질적인 작전 자율성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둘째는 북한 핵·미사일 대응 능력이다. 북한은 핵전력을 계속 확대하고 탄도미사일 능력도 고도화하고 있다. 전작권 전환 이후 한국군이 연합방위를 주도하려면 탐지와 요격, 지휘통제, 정밀타격까지 연결되는 대응체계가 충분히 갖춰져야 한다. 전환 일정에 맞추느라 검증 기준을 낮추는 일은 있어서는 안 된다. 셋째는 연합지휘 능력이다. 전작권 환수는 주한미군이 철수하거나 한미동맹이 끝난다는 뜻이 아니다. 전환 이후에도 한미연합방위체제는 유지된다. 오히려 한국군 장성이 연합전력을 실질적으로 지휘해야 하는 만큼 육·해·공군은 물론 우주와 사이버 영역까지 통합적으로 운용할 역량이 중요하다. 이 대통령이 통합작전 역량을 갖춘 지휘관 육성을 강조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넷째는 독자적인 군사기술과 방위산업 역량이다. 핵추진 잠수함이나 정찰위성, 미사일방어체계 같은 전략자산은 단기간에 확보할 수 없다. 예산을 늘리는 것만으로 끝날 문제도 아니다. 핵심 기술과 운영 인력, 유지·정비 체계를 오랜 기간 축적해야 한다. 이런 점에서 전작권 환수를 '자주 대 동맹'의 구도로 보는 것은 잘못이다. 자주국방과 한미동맹은 서로 반대되는 개념이 아니다. 한국의 독자적인 방위 능력이 강해질수록 동맹에서 한국의 역할과 협상력도 커진다. 이 대통령 역시 강한 동맹과 독자적 국방 역량은 서로 보완하는 관계라는 점을 강조했다. 다만 최근 한미동맹을 둘러싼 환경 변화는 전작권 문제를 더욱 신중하게 다룰 것을 요구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미 연합훈련을 대폭 줄이라고 지시했다. 훈련 비용과 함께 한국이 이란 비핵화 동참 요청에 응하지 않은 점도 이유로 들었다. UFS 훈련도 이미 야외기동훈련 건수를 줄이는 방식으로 규모가 조정됐다. 전작권 전환을 준비하는 시기에 연합훈련이 충분히 이뤄지지 않는다면 한국군의 연합지휘 능력을 검증할 기회도 줄어들 수 있다. 실제 한미 연합훈련은 전작권 전환 준비와 군사능력 검증을 지원하는 중요한 과정으로 활용돼왔다. 올해 봄 실시된 프리덤실드 훈련에서도 한미 양국은 전작권 전환 준비를 주요 훈련 목적 가운데 하나로 제시했다. 이 때문에 한미훈련 축소와 전작권 조기 전환을 동시에 추진할 경우에는 더욱 정교한 보완책이 필요하다. 야외기동훈련 규모가 줄어든다면 지휘소훈련과 시뮬레이션, 다영역 작전 훈련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실전능력을 유지해야 한다. 전작권 전환 검증 역시 정치적 상황에 따라 완화해서는 안 된다. 대북 대화와 긴장 완화도 중요하다. 이 대통령은 최근 북한과의 대화를 통해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해야 한다는 구상도 제시했다. 한반도에서 전쟁 위험을 낮추려는 노력은 필요하다. 그러나 북한이 핵무기와 미사일 능력을 계속 강화하는 현실을 외면한 채 군사적 대비태세를 먼저 약화시키는 방식으로 평화를 만들 수는 없다. 평화정책과 국방태세는 함께 가야 한다. 대화를 추진할수록 오히려 예측 불가능한 상황에 대비한 군사적 능력은 더 탄탄해야 한다. 정부는 전작권 전환을 정치적 성과로 만들려는 유혹부터 경계해야 한다. 어느 정부가 전작권을 가져왔느냐보다 중요한 것은 그 뒤 대한민국의 안보가 더 강해졌느냐다. 임기 내 환수를 위해 조건을 서두르거나 평가 기준을 낮춘다면 자주국방의 취지 자체가 훼손된다. 반대로 능력이 충분히 갖춰졌는데도 정치적 부담 때문에 전환을 계속 미루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필요한 것은 객관적인 검증이다. 한국군의 핵심 군사능력이 어느 수준까지 왔는지, 부족한 분야는 무엇인지, 언제까지 보완할 수 있는지를 국민에게 투명하게 설명해야 한다. 전작권 전환은 선언이 아니라 실력의 문제다. 지휘권을 넘겨받는 순간부터 한국군은 전시에 한미 연합전력을 주도할 책임을 진다. 그 책임을 감당할 정보력과 무기체계, 지휘능력과 인재부터 갖춰야 한다. 스스로를 지킬 힘을 갖춘 상태에서 동맹과 협력하는 것이 자주국방의 본뜻이다. 정부는 임기 내 환수라는 시간표보다 '준비가 끝나면 전환한다'는 원칙을 앞세워야 한다. 전작권은 정치 일정에 맞춰 가져오는 상징물이 아니라 국민의 생명과 국가의 존립을 책임질 군사 지휘권이다. 준비된 자주국방이 먼저고, 전환의 날짜는 그다음이다.
2026-08-19 11:0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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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해서 입점'에서 '입점해서 유명'으로…올리브영이 키운 K-뷰티 '발견의 힘'
[경제일보] 1999년 서울 강남구 신사동에 문을 연 작은 화장품 매장은 2026년 한국인의 뷰티 소비 지도를 뒤집었다. 특정 브랜드와 제품을 정해 구매하던 소비자는 이곳에서 여러 브랜드를 한눈에 비교하고 이름조차 낯선 제품을 직접 써본 뒤 선택하기 시작했다. 국내 첫 헬스앤뷰티(H&B) 스토어로 출발한 CJ올리브영은 해외 드럭스토어를 그대로 옮기는 대신 뷰티를 중심에 둔 한국형 모델을 만들었다. 27년이 지난 지금은 단순한 화장품 유통점을 넘어 소비자가 새로운 브랜드와 제품을 접하고 신생 브랜드는 고객과 만남의 기회를 얻는 K뷰티 '발견 플랫폼'으로 자리 잡았다. 올리브영의 성장사를 관통하는 DNA도 이 '발견'에 있다. 이미 검증된 인기 상품에만 의존하기보다 가능성 있는 브랜드와 제품을 발굴하고 매대와 랭킹·행사·체험 등을 통해 소비자의 관심을 구매로 연결해왔다. 구매할 제품을 정한 뒤 매장을 찾던 소비 방식을 매장을 둘러보며 새로운 선택지를 발견하는 방식으로 바꾼 것이다. 이 과정에서 올리브영은 단순한 화장품 판매점을 넘어 소비자 선택 폭을 넓혀주는 큐레이터이자 신생 브랜드가 시장 반응을 검증하는 테스트베드로 변했다. 과거 해외 브랜드와 국내 소비자를 연결하는 역할에 가까웠다면 현재는 국내 중소·인디 브랜드를 발굴해 한국은 물론 해외 소비자에게 소개하는 K뷰티 플랫폼으로 영역을 넓히고 있다. 낯선 브랜드를 '발견'으로…올리브영이 만든 K뷰티 성장 공식 올리브영은 신사점 이후 수도권과 지방으로 점포망을 넓혔다. 2008년 부산에 첫 지방 매장을 열며 전국으로 사업 영역을 확대했고, 닥터자르트와 메디힐 등 중소 브랜드의 판로 역할을 하며 상품군을 넓혔다. 2017년에는 전국 매장 수가 1000개를 넘어섰다. 경쟁자도 잇따랐다. GS리테일은 랄라블라를, 롯데쇼핑은 롭스를 운영했고 이마트도 영국 드럭스토어 부츠를 들여와 H&B 시장에 뛰어들었다. 그러나 부츠는 2020년 국내 매장을 모두 철수했고 랄라블라도 2022년 사업을 접었다. 롭스 역시 가두점에서 철수하고 롯데마트 내 숍인숍 형태로 사업을 재편했다. 경쟁사들이 잇따라 철수하거나 사업을 축소하면서 올리브영 중심의 시장 구도가 굳어졌다. 경쟁자도 잇따랐다. GS리테일은 랄라블라를, 롯데쇼핑은 롭스를 운영했고 이마트도 영국 드럭스토어 부츠를 들여와 H&B 시장에 뛰어들었다. 그러나 부츠는 2020년 국내 매장을 모두 철수했고 랄라블라도 2022년 사업을 접었다. 롭스 역시 가두점에서 철수하고 롯데마트 내 숍인숍 형태로 사업을 재편했다. 경쟁사들이 잇따라 철수하거나 사업을 축소하면서 올리브영 중심의 시장 구도가 굳어졌다. 다만 H&B 전문점 중심의 경쟁이 약화된 것과 달리 최근 경쟁 구도는 오히려 다변화되고 있다. 다이소가 가격 경쟁력을 앞세워 화장품 시장을 확대하고 무신사와 컬리 등 패션·커머스 플랫폼도 각자의 고객층과 큐레이션 역량을 기반으로 뷰티 사업을 키우고 있다. 소비자가 새로운 브랜드를 접하는 유통채널도 올리브영을 넘어 다양한 플랫폼으로 확대되는 모습이다. 올리브영이 매장 수를 늘리는 동안 함께 축적한 경쟁력은 새로운 상품과 브랜드를 발굴해 소비자에게 제안하는 선별 역량이었다. 유명 화장품 회사의 베스트셀러만 채우기보다 새로운 제형과 콘셉트, 소비자가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 카테고리를 발굴해 매대에 선보였다. 이후 올영세일과 올리브영 어워즈, 페스타, 온라인 랭킹과 리뷰 등 다양한 마케팅 장치를 더해 소비자의 관심을 한 데 모았다. 성과는 입점 브랜드의 성장에서도 나타난다. 2025년 올리브영 온·오프라인에서 연 매출 100억원 이상을 기록한 입점 브랜드는 116개로 2020년 36개에서 5년 만에 세 배 이상 늘었다. 이 가운데 닥터지와 달바, 라운드랩, 메디힐, 클리오, 토리든 등 6개 브랜드는 올리브영 내 연 매출 1000억원을 넘어섰고 메디힐은 입점 브랜드 가운데 처음으로 2000억원을 돌파했다. 매장 줄이고 경험 키웠다…온라인과 연결된 옴니채널 진화 두 번째 변곡점은 온라인이었다. 화장품 구매가 빠르게 온라인으로 이동하자 기존 오프라인 유통업체에는 매장이 비용으로 바뀔 수 있다는 우려가 커졌다. 올리브영은 반대로 매장을 온라인 경쟁력을 만드는 자산으로 활용했다. 2014년 모바일 앱을 출시하고 2017년 공식 온라인몰을 열었다. 이듬해에는 화장품업계 최초 당일배송 서비스인 ‘오늘드림’을 선보였다. 온라인몰과 오프라인 매장을 연결하면서 매장은 상품을 체험하고 구매하는 공간을 넘어 온라인 주문을 뒷받침하는 옴니채널 거점으로 역할이 확대됐다. 이는 '발견'과 '구매' 사이의 시간을 단축했다. 매장에서 테스트한 제품을 앱으로 주문하고 온라인 랭킹이나 리뷰에서 처음 본 제품을 가까운 매장에서 직접 테스트할 수 있게 됐다. 고객에게는 온라인과 오프라인이 별개의 채널이 아니라 하나의 쇼핑 과정으로 묶인 셈이다. 최근에는 점포 전략도 양적 확대에서 매장 대형화와 기능 강화로 옮겨가고 있다. 올리브영 국내 매장은 지난해 2분기 1393개에서 올해 2분기 1367개로 줄었다. 지난해 3분기 1394개를 정점으로 4분기 1381개, 올해 1분기 1369개, 2분기 1367개로 3개 분기 연속 감소했다. 대신 기존 소형 점포를 통합하거나 더 넓은 공간으로 확장 이전하고 체험·특화 기능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점포망을 재편하고 있다. 지난 3월 문을 연 '센트럴 명동 타운'이 대표적이다. 3개 층 약 950평 규모에 1000여개 브랜드와 약 1만5000개 상품을 갖춰 올리브영 매장 중 최다 상품을 선보인다. '마스크 라이브러리'에는 마스크팩 800여개를 모아 피부 타입과 기능별로 구분하며 소비자가 다양한 제품을 쉽게 비교·탐색할 수 있도록 진열을 세분화했다. 방한 쇼핑 명소에서 미국 현지로…해외 유통망 확장 올리브영의 발견 기능은 K뷰티의 해외 확산과 맞물리며 새로운 성장축이 됐다. 과거 올리브영이 해외 화장품과 새로운 뷰티 트렌드를 한국 소비자에게 소개했다면 이제는 반대로 세계 소비자가 한국의 새로운 브랜드를 찾기 위해 올리브영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2025년 1~11월 전국 올리브영 오프라인 매장에서 발생한 방한 외국인 누적 구매금액은 1조원을 달성했다. 2022년 연간 실적과 비교하면 약 26배 커진 규모다. 전체 오프라인 매출에서 외국인이 차지하는 비중도 2022년 약 2%에서 2025년 25% 이상으로 뛰었다. 외국인 고객의 58%는 6개 이상의 브랜드를 구매했고 10개 이상의 브랜드를 구매한 고객도 33%에 달했다. 이는 특정 K뷰티 히트상품 몇 개만 구매해가는 현상과는 차이가 있다. 올리브영 매장 자체가 여러 국내 브랜드를 비교하고 새 제품을 찾는 쇼룸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뜻이다. 중소 브랜드 입장에서 올리브영은 국내에서 성장 가능성을 확인하는 관문인 동시에 세계 각국 소비자에게 브랜드를 알리는 글로벌 쇼케이스가 됐다. 올리브영은 이제 외국인이 한국을 찾아오는 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직접 해외 소비자 곁으로 가고 있다. 지난 5월 29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패서디나에 미국 1호점을 열었고 6월 13일에는 로스앤젤레스(LA) 웨스트필드 센추리시티에 2호점을 냈다. 패서디나점은 개점 당시 약 400개 뷰티·웰니스 브랜드의 상품 5000여종을 구성했으며 현지 트렌드를 빠르게 반영하기 위해 짧게는 2주 단위로 매대 상품 큐레이션을 업데이트한다는 운영 방침도 세웠다. 한국 매장을 그대로 복사하지도 않았다. 센추리시티점은 미국에서 수요가 높은 스킨케어 매대를 국내 표준점보다 약 1.5배 크게 구성하고 피부 상태 진단과 제품 추천을 결합한 체험형 서비스를 도입했다. 미국 전용 온라인몰과 멤버십도 함께 운영해 오프라인 매장과 온라인을 연결하는 옴니채널 기반을 구축했다. 현지 운영 기반도 확대하고 있다. 캘리포니아주 블루밍턴에는 약 3600㎡ 규모의 미국 서부 물류센터를 구축해 통관과 보관·재고 관리·배송 등을 지원한다. 올리브영이 발굴·큐레이션한 브랜드가 세포라 등 현지 유통채널에 공급될 경우 해당 물류센터를 활용해 현지 물류도 지원할 계획이다. 자체 매장에서 제품을 판매하는 유통사를 넘어 국내 브랜드가 다른 해외 채널에 진입하는 과정까지 연결하겠다는 전략이다. 상품 아닌 생활방식 제안…올리브영, 웰니스까지 영역 확대 올리브영은 올해 1월 웰니스 전문 플랫폼 '올리브베러'를 출범시키고 서울 광화문에 첫 매장을 열었다. 약 130평 규모의 공간에 500여개 브랜드와 3000여종의 상품을 구성하고 영양제와 건강식품을 비롯해 운동·휴식·셀프케어 등 일상적인 건강관리와 관련된 상품을 한데 모았다. 상품을 단순히 품목별로 진열하는 데 그치지 않고 소비자의 생활 방식과 건강관리 목적에 따라 다양한 웰니스 상품을 탐색할 수 있도록 카테고리의 범위를 넓힌 것이 특징이다. 온라인에서도 기존 올리브영의 옴니채널 전략을 접목했다. 올리브영 앱 내 별도 서비스를 통해 웰니스 상품을 탐색하고 추천받을 수 있도록 하고 섭취 알림 기능과 오늘드림·매장 픽업 등 기존 배송 서비스를 연계했다. 오프라인에서는 새로운 상품을 직접 살펴보고 온라인에서는 관련 정보를 확인한 뒤 구매와 재구매까지 이어지는 구조를 구축한 셈이다. 접근 방식은 1999년 H&B 시장에 진입했던 당시와 닮아 있다. 당시 소비자에게 생소했던 H&B라는 범주를 다양한 브랜드와 상품, 체험을 통해 하나의 소비 영역으로 구체화했다면 이번에는 건강기능식품과 운동, 휴식, 셀프케어 등 여러 산업에 분산된 상품을 '웰니스'라는 하나의 라이프스타일로 재구성하고 있다. 기존 시장에 상품을 추가하는 방식보다 새로운 소비 범주를 제시하고 그 안에서 브랜드와 제품의 발견을 유도해 온 올리브영의 성장 공식을 재적용하는 시도다. 커진 영향력만큼 무거워진 책임 올리브영의 영향력이 커질수록 입점·납품 브랜드와의 관계도 숙제다. 플랫폼에서의 노출이 브랜드 성장에 미치는 영향이 커질수록 행사 참여와 판매 조건, 수수료 등 거래관계에 대한 책임도 갑과 을 관계로 번질 가능성이 높아진다. 실제 올리브영과 납품업체 간 거래관계는 이미 공정당국과 법원의 판단 대상이 된 바 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2023년 CJ올리브영이 납품업체의 경쟁사 행사 참여를 제한하고 판촉행사 종료 후 정상 납품가격을 환원하지 않은 행위, 정보처리비를 받은 행위 등을 대규모유통업법 위반으로 보고 시정명령과 과징금 18억9600만원을 부과하고 법인을 고발했다. 이후 행정소송에서 경쟁사 행사 참여 제한과 관련한 처분은 취소됐고 대법원도 2025년 9월 공정위의 상고를 기각하면서 과징금은 약 14억원 수준으로 줄었다. 다만 법원은 올리브영이 납품업체에 대해 거래상 우월적 지위를 가진다는 점 자체는 인정했다.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 여부는 이와 별개의 문제다. 공정위는 2023년 올리브영의 일부 거래정책이 공정거래법상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에 해당하는지도 검토했지만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아우르는 화장품 유통시장의 범위와 올리브영의 시장지배적 사업자 해당 여부를 명확히 판단하기 어렵다며 무혐의가 아닌 심의절차종료 결정을 내렸다. 당시 공정위 역시 올리브영의 화장품 소매유통 채널 내 위치가 강화되고 있다는 점을 들어 관련 거래행위가 시장 경쟁에 미치는 영향을 지속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1999년 낯선 브랜드와 제품을 소비자에게 소개하며 시작된 올리브영의 '발견' 스토리는 이제 브랜드와 시장의 연결 방식 자체를 재편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앞으로의 경쟁력은 신제품을 발굴하는 선별 역량을 넘어 입점 브랜드와의 동반 성장 및 유망 브랜드의 시장 안착을 지원하는 플랫폼 역량에 달려 있다. 올리브영 관계자는 "올리브영은 다양한 브랜드와 상품을 발견하고 경험할 수 있는 체험형 매장과 온·오프라인을 연결하는 옴니채널 경쟁력을 지속적으로 강화하고 있다"며 "앞으로는 국내에서 축적한 카테고리 육성과 큐레이션 역량을 바탕으로 K뷰티의 글로벌 확산과 K웰니스 생태계 육성을 함께 추진하고 지역과 브랜드가 함께 성장하는 글로벌 K뷰티·웰니스 플랫폼으로 성장해 나갈 것"이라고 했다.
2026-08-13 17:4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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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대통령, ISA·주가누르기법 재검토 지시…여야 공방 격화
[경제일보] 이재명 대통령이 정부가 발표한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 개편안과 이른바 ‘주가 누르기 방지법’에 대해 전면 재검토를 지시하면서 정부가 수정안 마련에 착수했다. 당초 정부가 마련한 세제 개편안에 대해 투자자와 정치권에서 비판이 잇따르자 대통령이 직접 제동을 건 것이다. 여당 내에서는 그동안 정책을 공개적으로 비판해 온 의원들이 재검토 지시에 환영의 뜻을 나타낸 반면, 국민의힘은 정책을 졸속으로 추진한 책임을 정부와 대통령이 회피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8일 정치권에 따르면 정부는 이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ISA 개편안과 주가 누르기 방지법 개선안을 다시 검토하고 국회와의 협의에도 나설 예정이다. 당초 정부 세제 개편안은 오는 20일까지 입법예고를 거친 뒤 28일 차관회의와 다음 달 1일 국무회의를 거쳐 정기국회에 제출될 예정이었다. 대통령이 원점 재검토를 지시한 만큼 국회 제출 전 정부안을 수정하는 방안에 무게가 실린다. ◆ ISA 혜택 축소 논란에 대통령 직접 재검토 논란의 중심에 선 ISA는 예·적금과 펀드, 주식 등 여러 금융상품을 하나의 계좌에서 운용하면서 세제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절세형 계좌다. 정부가 마련한 개편안에는 국내 자산에 투자하는 ‘생산적 금융 ISA’를 신설하고 기존 ISA의 의무 가입 기간을 단축하는 방안 등이 담겼다. 국내 증시로 자금을 유도하기 위한 취지였지만 기존 ISA의 세제 혜택을 축소하는 것 아니냐는 투자자들의 반발이 나왔다. 특히 장기투자를 유도하기 위해 ISA를 활용해 온 개인투자자 입장에서는 국내 투자 활성화를 위해 기존 계좌의 혜택을 줄이는 방식이 적절한지를 놓고 논란이 커졌다. 이 대통령은 전날 세제 개편안을 둘러싼 비판 여론이 확산하자 담당 부처를 질타하며 관련 내용을 전면 재검토하라고 지시했다. 정책 발표 이후 시장과 정치권에서 예상보다 큰 반발이 나오면서 정부가 당초 마련한 개편안의 실효성과 부작용을 다시 따져보게 된 것이다. ◆ 주가 누르기 방지법도 실효성 논란 주가 누르기 방지법을 둘러싼 논란도 적지 않았다. 해당 법안은 일정 기간 주가순자산비율(PBR)이 낮은 기업을 대상으로 주주가치 제고를 유도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정부안에서는 최근 13개 반기 가운데 12개 반기 동안 PBR이 코스피 업종별 하위 25%, 코스닥 하위 10%에 해당하는 기업 등을 규제 대상으로 삼는 내용이 포함됐다. 문제는 기업들이 일부 기간에만 PBR 순위를 관리하는 방식으로 규제를 피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규제 기준을 충족하기 위해 일시적으로 주가를 관리한 뒤 다시 이전 상태로 돌아갈 가능성이 있는 만큼 제도의 실효성을 놓고 논란이 제기됐다. 주가 누르기 방지법은 여당 내부에서도 의견이 엇갈렸다. 이소영·이훈기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은 그동안 관련 법안과 정부안의 보완 필요성을 공개적으로 제기해왔다. 대통령의 재검토 지시가 나오자 이들은 즉각 환영의 뜻을 밝혔다. 이언주 민주당 의원은 이날 “수많은 개미투자자에게 ‘장기투자’를 위해 ISA 계좌를 권유했던 본래의 약속을 지켜야 한다”며 “더 이상은 신뢰를 잃어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이어 “지금이라도 대통령께서 문제점을 인식하고 바로잡도록 조치하신 것에 대해 다행스럽게 생각하며 적극 환영한다”고 말했다. 이소영 의원도 대통령의 재검토 지시와 관련해 “바로잡겠다. 재정경제부는 정신 차리시라”고 밝혔다. 이훈기 의원은 “이소영 의원과 제가 대표 발의한 주가 누르기 방지법안이 국회에서 통과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며 “‘K-코스닥 지킴이’, ‘K-개미 지킴이’가 되겠다”고 말했다. 그동안 정부안에 대한 여당 내 공개적인 이견이 대통령의 재검토 지시를 계기로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른 셈이다. ◆ 국민의힘 “졸속 국정…책임 회피” 국민의힘은 대통령의 재검토 지시를 비판했다. 정책의 내용 자체뿐 아니라 정부가 정책을 발표한 뒤 여론이 악화하자 대통령이 담당 부처를 질책하며 방향을 바꾸는 과정 자체를 문제 삼았다. 박성훈 국민의힘 수석대변인은 이날 논평에서 “비겁한 책임 회피”라며 “일단 발표하고 국민이 반발하면 고치는 졸속 국정을 즉각 중단하라”고 밝혔다. 박 수석대변인은 “이 대통령은 재검토를 지시하며 ‘왜 제대로 보고하지 않고 진행했느냐’고 참모들을 질책했다”며 “국민이 분노하면 정책 입안자를 탓하고, 문제가 터지니 보고가 잘못됐다고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여론의 거센 저항이 없었다면 졸속 개편안을 그대로 밀어붙였을 것 아니냐”며 “결국 드러난 것은 대통령도, 청와대도, 정부도 발표 전에 정책의 파장과 부작용을 제대로 검증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라고 비판했다. ISA 개편과 함께 비거주 1주택자 과세 문제, 주가 누르기 방지 제도의 역효과 등을 거론하며 정부의 정책 검토 과정 자체를 문제 삼기도 했다.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도 이날 “ISA 한도 이월과 기한 연장은 반드시 원상복구 돼야 한다”며 “개악에 동의한 책임자들 역시 갈아치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 국회 제출 전 정부안 얼마나 바뀔까 이번 재검토의 핵심은 정부가 기존 개편안에서 어느 정도까지 수정안을 내놓느냐에 달렸다. 당초 정부안은 국내 자본시장으로 자금을 유도하고 기업의 주주가치 제고를 촉진한다는 정책 목표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그러나 ISA 혜택과 투자자의 장기투자 유인 사이의 충돌, PBR을 활용한 규제의 실효성 등이 논란이 되면서 세부 설계에 대한 보완이 불가피해졌다. 정부가 국민 의견을 반영한 개선안을 마련할 경우 기존 ISA 가입자의 혜택을 어떻게 유지할지, 생산적 금융 ISA를 기존 ISA와 어떤 관계로 설계할지 등이 주요 쟁점이 될 전망이다. 주가 누르기 방지법 역시 PBR 기준만으로 기업을 규제하는 방식의 실효성을 높이는 방안이 논의될 가능성이 있다. 단순히 특정 기간의 주가나 PBR을 기준으로 삼는 것보다 기업의 배당, 자사주 소각, 지배구조 개선 등 실제 주주환원 노력을 종합적으로 반영하는 방식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올 수 있다. 정부는 당초 일정대로라면 이달 입법예고 이후 차관회의와 국무회의를 거쳐 정기국회에 세제 개편안을 제출할 예정이었다. 대통령의 재검토 지시로 국회 제출 전 정부안이 얼마나 수정될지가 새로운 변수로 떠올랐다. 여야의 입장 차이도 커지고 있다. 민주당 내부에서는 대통령의 재검토 지시를 계기로 투자자 보호와 자본시장 활성화를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질 수 있다. 국민의힘은 정부가 정책을 충분히 검증하지 않은 채 발표한 뒤 여론에 따라 수정하고 있다며 공세를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2026-08-08 12:2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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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화 스테이블코인, 발행 경쟁보다 신뢰의 틀부터 세워라
[경제일보] 여당과 금융위원회·금융감독원이 20일 만나 디지털자산기본법과 원화 스테이블코인 규율 방안을 논의한다. 정부도 ‘2026년 경제성장전략’을 통해 올해 하반기 스테이블코인 제도화를 위한 법적 기반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지연돼 온 입법 논의가 다시 속도를 내는 것은 다행이다. 그러나 법 제정의 목표가 시장 선점이나 발행 사업자 확대에 치우쳐서는 안 된다. 스테이블코인 제도의 출발점은 혁신 경쟁이 아니라 신뢰의 제도화여야 한다. 스테이블코인은 원화나 달러 같은 법정화폐에 가치를 연동한 디지털자산이다. 가격 변동성이 큰 비트코인 등과 달리 지급·결제와 송금 수단으로 활용될 가능성이 크다. 블록체인 기술을 이용하면 거래 시간을 줄이고 국경 간 송금 비용을 낮출 수 있다. 디지털자산 시장에서 달러 기반 스테이블코인의 영향력이 커지는 상황에서 원화 기반 생태계를 조성해야 한다는 주장도 일리가 있다. 그렇다고 이름에 붙은 ‘스테이블’, 즉 안정성이 저절로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발행자가 받은 돈을 어디에 보관하는지, 이용자가 원할 때 원화로 돌려받을 수 있는지, 발행사가 파산하더라도 준비자산이 보호되는지에 따라 스테이블코인의 신뢰도는 달라진다. 준비자산이 부실하거나 상환 요구가 한꺼번에 몰리면 디지털 금융상품도 전통적인 은행의 뱅크런과 같은 위기에 빠질 수 있다. 현재 논의는 원화 스테이블코인 발행을 은행 중심 컨소시엄에 우선 허용할 것인지, 기술기업과 가상자산사업자 등 비은행에도 문호를 열 것인지에 집중돼 있다. 은행권은 금융안정과 자금세탁 방지 경험을 내세우고, 비은행권은 은행 중심 구조가 혁신과 경쟁을 가로막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양측 모두 나름의 근거가 있지만 발행 주체를 둘러싼 지분율 논쟁이 입법의 본질을 가려서는 안 된다. 누가 발행하느냐보다 먼저 정해야 할 것은 무엇을 지켜야 하느냐다. 발행자는 이용자가 맡긴 돈에 상응하는 준비자산을 충분히 보유해야 한다. 준비자산은 현금과 단기 국채 등 안전성과 유동성이 높은 자산으로 제한하고 발행회사의 고유재산과 분리해 보관해야 한다. 이용자가 요구하면 액면가로 신속하게 상환하도록 의무화하고, 준비자산의 규모와 구성은 정기적으로 외부 검증을 받아 공개해야 한다. 발행사가 부실해질 경우 이용자의 상환청구권을 다른 채권보다 우선 보호하는 장치도 필요하다. 사업 철수와 파산에 대비한 정리계획을 사전에 제출하게 하고 금융당국에는 검사와 시정명령, 발행 중단 권한을 부여해야 한다. 해킹과 전산 장애, 자금세탁, 해외 이전에 대한 규율도 전통 금융회사에 준하는 수준으로 마련해야 한다. 스테이블코인이 지급·결제 수단으로 확산될수록 사고의 충격은 가상자산 시장에 머물지 않고 금융회사와 실물경제로 번질 수 있어서다. 해외 주요국도 산업 육성과 규제를 대립 관계로만 보지 않는다. 미국의 스테이블코인 규율은 준비자산의 완전한 뒷받침과 정기적 공시, 자금세탁 방지 의무를 핵심으로 삼고 있다. 유럽연합은 가상자산시장법을 통해 발행자 인가와 준비자산, 상환권을 규율하고 있다. 영국도 파운드화 기반 스테이블코인의 준비자산 구성과 발행 한도를 제도화하는 방향으로 규정을 다듬고 있다. 규칙이 분명해야 기업도 예측 가능한 환경에서 투자할 수 있다는 판단이다. 원화 스테이블코인을 곧바로 ‘디지털 화폐 주권’이나 ‘원화 국제화’와 동일시하는 것도 경계해야 한다. 화폐의 국제적 위상은 토큰 하나를 발행한다고 높아지지 않는다. 경제의 규모와 건전성, 금융시장의 개방성과 유동성, 법치와 정책에 대한 신뢰가 뒷받침돼야 한다. 해외에서 원화 자산을 보유하고 결제하려는 수요가 없다면 원화 스테이블코인은 국내 가상자산 거래를 위한 결제 수단에 머물 가능성이 크다. 오히려 성급한 발행 경쟁이 사고로 이어지면 원화의 디지털 신뢰가 훼손될 수 있다. 산업 육성을 이유로 규제를 뒤로 미루고 문제가 생긴 뒤 수습하는 방식은 금융 분야에서 특히 위험하다. 민간기업은 수익을 얻지만 대규모 환매 사태나 금융시장 불안의 비용은 결국 국민과 국가가 떠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논어> 안연편에는 “백성이 믿지 않으면 나라가 설 수 없다(民無信不立)”고 했다. 화폐는 신뢰의 가장 압축된 형태다. 디지털 공간에서 사용된다고 해서 그 원리가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신뢰 없는 화폐는 빠르게 유통될수록 위험도 더 빠르게 퍼뜨린다. 국회와 정부는 은행과 비은행 가운데 어느 쪽에 유리한 제도를 만들 것인지에 매달려서는 안 된다. 발행자 자격과 준비자산, 상환 의무, 이용자 재산 분리, 외부 검증, 감독과 퇴출 절차부터 빈틈없이 정해야 한다. 그 원칙을 충족하는 사업자에게 단계적으로 시장을 개방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원화 스테이블코인 입법은 가상자산 업계의 새로운 사업권을 나누는 일이 아니다. 디지털 시대에 화폐의 신뢰를 어떤 방식으로 지킬 것인지를 결정하는 일이다. 혁신은 서두를 수 있지만 신뢰는 단번에 만들 수 없다. 발행 경쟁의 출발 총성을 울리기 전에 실패해도 이용자의 돈과 금융시장을 지킬 수 있는 제도적 방파제부터 세워야 한다.
2026-07-20 09:19: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