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일보] SK바이오팜이 미국 뇌전증 시장을 겨냥해 약 1조1000억원 규모의 승부수를 던졌다. 기존 주력 신약 ‘엑스코프리’에 이어 차세대 뇌전증 치료제 후보물질을 추가로 확보하면서 미국 시장에서 두 개의 신약을 앞세운 성장 전략에 본격 시동을 걸었다.
단순히 신약 하나를 사들이는 데 그치지 않고 이미 구축한 미국 직판망에 새로운 제품을 얹는 방식이어서 이번 거래가 향후 기업가치를 좌우할 중요한 분기점이 될 전망이다.
28일 업계에 따르면 SK바이오팜은 미국 바이오기업 바이오헤이븐으로부터 뇌전증 신약 후보물질 ‘오파칼림(BHV-7000)’을 최대 7억9500만 달러에 도입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계약금만 4억 달러에 달한다. 이 가운데 3억5000만 달러는 거래 종결 시 지급하고 5000만 달러는 1년 뒤 지급한다. 이후 개발과 허가 단계에 따라 최대 3억9500만 달러의 마일스톤을 지급하는 조건이다.
이번 계약의 핵심은 오파칼림 한 개의 물질만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는 데 있다. SK바이오팜은 오파칼림뿐 아니라 후속 Kv7 활성화 화합물과 관련 신약 후보를 발굴할 수 있는 Kv7 디스커버리 플랫폼에 대한 전 세계 독점 개발·상업화 권리까지 확보했다. 한 번의 거래로 현재 제품과 미래 파이프라인을 동시에 사들인 셈이다.
오파칼림은 기존 뇌전증 치료제와 작용 방식부터 다르다. 신경세포의 흥분성을 조절하는 칼륨통로 Kv7.2·7.3을 선택적으로 활성화해 신경세포가 과도하게 흥분하지 않도록 하는 방식이다. 세노바메이트 성분의 엑스코프리가 나트륨통로 억제와 GABA 작용 강화 등을 통해 신경신호를 낮추는 것과는 다른 접근법이다. 같은 뇌전증 치료제라도 두 제품의 약리학적 특성이 달라 환자군을 나눠 공략할 수 있다는 것이 SK바이오팜의 구상이다.
시장 경쟁은 이미 시작됐다. 가장 강력한 경쟁자로 꼽히는 곳은 제논파마슈티컬스다. 제논의 아제투칼너는 올해 3월 임상 3상에 성공해 미국 허가 신청을 준비하고 있다. 공개된 오픈라벨 데이터를 단순 비교하면 발작 빈도가 50% 이상 감소한 환자 비율은 오파칼림 54%, 아제투칼너 56%로 비슷한 수준이다.
하지만 안전성에서는 오파칼림이 상대적으로 좋은 모습을 보였다는 평가가 나온다. 어지럼증 발생률은 오파칼림 4%로 아제투칼너 25%보다 낮았고 두통은 6% 대 19%, 졸림은 3% 대 17%, 낙상은 4% 대 15%로 차이가 있었다. 다만 서로 다른 임상시험의 데이터를 단순 비교하는 데는 한계가 있는 만큼 최종적인 우열은 향후 직접적인 임상 결과와 허가 과정에서 확인해야 한다.
특히 Kv7 활성화제 계열은 안전성이 상업적 성패를 가를 가능성이 크다. 과거 같은 계열의 1세대 약물 레티가빈이 청색증과 망막 색소침착 등 부작용 문제로 시장에서 철수한 전례가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오파칼림이 효과뿐 아니라 장기간 복용에 대한 안전성과 내약성을 입증할 수 있느냐가 핵심이다.
SK바이오팜이 이번 거래에 큰돈을 베팅한 배경에는 이미 확보한 미국 상업화 역량이 있다. SK바이오팜은 2020년 엑스코프리의 미국 출시 이후 현지에서 직접 판매하며 처방의사 네트워크와 보험 등재, 전문약국, 의학부서 등 신약 판매에 필요한 기반을 구축해왔다. 오파칼림이 미국에서 허가를 받으면 별도의 대규모 영업조직을 새로 만들 필요 없이 기존 인프라를 활용할 수 있다.
제품 포지셔닝도 분명히 나눈다는 전략이다. 엑스코프리는 강력한 약효를 앞세워 난치성 뇌전증 환자를 집중 공략하고 오파칼림은 상대적으로 우수한 내약성을 무기로 초기 치료 단계나 부작용에 민감한 환자층을 겨냥하는 방식이다. 하나의 영업조직으로 두 제품을 판매하면서 시장을 넓히는 이른바 ‘마케팅 인프라 레버리지’ 전략이다.
시간표도 주목할 만하다. 오파칼림의 출시 예상 시점은 2029년이다. 반면 엑스코프리의 물질특허 만료 시점은 2032년 10월이다. 성공적으로 개발과 허가가 진행된다면 엑스코프리가 현금창출원 역할을 하는 동안 오파칼림이 후속 성장동력으로 올라오는 그림을 만들 수 있다. 신약 하나에 의존했던 사업 구조를 두 개의 제품으로 전환하면서 매출의 연속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의미다.
물론 부담도 만만치 않다. 오파칼림 개발에 따라 분기당 약 200억원의 연구개발비가 추가될 것으로 예상된다. 허가 전까지는 새로운 매출 없이 비용만 늘어나는 구간을 거쳐야 한다. 계약금 4억 달러 역시 보유 현금과 금융기관 차입을 통해 마련할 예정이다. 결국 오파칼림이 임상과 허가 관문을 통과하고 시장에서 실제 처방으로 이어져야 1조원 베팅의 정당성이 입증된다.
첫 번째 시험대는 올해 하반기다. 오파칼림의 진행 중인 허가용 임상 가운데 RISE-3는 환자 등록을 마쳤으며 75㎎ 고용량 투약군의 첫 탑라인 결과가 하반기 공개될 예정이다. 이 결과에서 유효성과 안전성이 확인될 경우 시장의 평가도 크게 달라질 수 있다.
다만 시장이 최종적으로 주목할 것은 계약 규모가 아니라 임상 데이터다. 오파칼림의 현재 가치는 아직 불확실성이 크고 임상 결과에 따라 기업가치가 크게 움직일 수 있다. 특히 올해 말 발표될 RISE-3 결과에서 경쟁 후보인 아제투칼너와 비교해 어떤 차별성을 보여주느냐가 향후 밸류에이션의 핵심 변수가 될 전망이다.
SK바이오팜의 전략은 이제 ‘엑스코프리 하나를 잘 파는 회사’에서 벗어나는 단계로 접어들고 있다. 오파칼림을 통해 두 번째 상업화 제품을 확보하고 Kv7 플랫폼을 통해 후속 신약까지 연결하겠다는 구상이다. 여기에 세노바메이트 적응증 확대와 파킨슨병, 방사성의약품치료(RPT), 표적단백질분해(TPD) 등으로 파이프라인을 넓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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