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일보] 밤에 주문한 우유와 달걀, 채소가 잠든 사이 집 앞에 도착한다. 지금은 익숙한 풍경이지만 10여 년 전까지만 해도 온라인에서 신선식품을 주문해 다음 날 아침 받는 것은 낯선 일이었다.
컬리는 이 낯선 장면을 일상으로 바꿨다. 2015년 '마켓컬리'를 출범하며 선보인 샛별배송은 장을 보기 위해 마트에 가던 시간을 잠들기 전 스마트폰을 여는 시간으로 옮겨놨다. 직접 보고 만져야 안심하고 살 수 있다고 여겨졌던 신선식품까지 온라인 장바구니에 담기 시작하면서 소비자의 장보기 방식도 달라졌다.
'골라주는 플랫폼'…상품 수보다 선별 기준
컬리가 새벽배송과 함께 쌓아온 것은 '보지 않고 사도 괜찮다'는 믿음이었다. 장바구니에 올릴 상품을 고르는 일부터 소비량을 대략적으로 예측하고 신선도를 유지해 문 앞까지 보내는 과정까지 연결했다. 소비자가 매장에서 눈으로 보고 손으로 골랐던 과정을 컬리가 대신하면서 '컬리에서 고른 상품이라면 믿고 산다'는 고객 경험을 만들어낸 것이다.역설적으로 컬리가 승부를 건 곳은 온라인에서 가장 팔기 어려운 신선식품이었다. 공산품과 달리 채소·과일·육류는 소비자가 직접 색과 상태를 살펴보고 고르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졌다. 컬리는 이 불편함을 피하는 대신 정면으로 파고들었다. 신선식품까지 믿고 살 수 있다면 온라인 장보기 자체에 대한 신뢰를 얻을 수 있다고 본 것이다.
하지만 컬리가 만든 새벽배송은 이제 컬리만의 무기가 아니다. 유통업계 곳곳에서 밤에 주문해 아침에 받는 서비스가 일상이 되면서 '새벽에 온다'는 사실만으로 소비자를 붙잡기는 어려워졌다. 지난 10년간 ‘믿고 사는 장보기’를 구축한 컬리의 다음 과제는 그 신뢰를 효율적인 사업 구조와 지속 가능한 수익으로 연결하는 데 있다.
컬리는 사업 초기부터 상품 수를 무한정 늘리는 방식과 거리를 뒀다.
컬리가 택한 방식은 상품 수 확대보다 엄격한 선별을 통해 상품 경쟁력을 높이는 것이었다. 매주 상품위원회를 열어 실제로 먹고 사용해보며 성분과 맛, 안전성 등을 살피고 자체 기준을 통과한 상품만 판매한다. 소비자가 일일이 비교하고 고르는 수고를 컬리가 먼저 대신하겠다는 큐레이션 전략이다.
이 같은 선별 방식은 컬리에서만 만날 수 있는 상품으로도 이어졌다. 현재 컬리가 단독으로 선보이는 브랜드와 자체 사양으로 기획한 ‘Kurly Only’ 상품은 3000여 개를 넘어섰다. 단순히 판매 상품 수를 늘리는 대신 다른 유통채널에서는 찾기 어려운 상품을 확보하면서 ‘컬리에 가야 살 수 있는 이유’를 만들어온 셈이다.
온라인 식품 시장에서 이 같은 방식은 중요한 차별점이었다. 오프라인 마트에서는 소비자가 채소 상태를 살펴보거나 과일을 직접 골라 담을 수 있지만 온라인에서는 화면에 표시된 정보와 판매자를 전적으로 믿고 구매해야 하기 때문이다.
컬리는 이 과정에서 상품을 선별하는 기준 자체를 플랫폼 경쟁력으로 축적했다. 소비자가 개별 상품의 품질을 일일이 판단하기보다 컬리의 선별 기준을 신뢰하고 구매하도록 하면서 '컬리가 고른 상품'이라는 고유 인식을 만들어왔다.
이 같은 기준은 상품을 고르는 데서 그치지 않고 직접 기획하는 자체 브랜드(PB)로 확장됐다. 대표적인 사례가 'KF365(KurlyFresh 365)'다. 컬리는 매일 장바구니에 담는 신선식품과 식재료를 중심으로 품질 기준을 적용하면서 가격 부담을 낮춘 상품군을 꾸준히 확대해왔다. 채소·달걀·축산물 등 일상 소비가 잦은 품목에서도 컬리만의 규격과 신선도 기준을 적용하면서 큐레이션을 자체 상품 경쟁력으로 연결한 것이다.
풀콜드체인에 수요예측까지…새벽배송 떠받치는 물류·데이터
컬리의 경쟁력은 소비자가 잠든 뒤 더욱 선명해진다. 밤늦게 주문이 마감되면 상품을 골라 담고 냉장·냉동·상온으로 나눠 포장한 뒤 이튿날 아침까지 각 가정의 문 앞에 보내야 한다. 소비자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간편한 서비스지만 그 뒤에서는 신선도를 지키며 짧은 시간 안에 주문을 처리하는 물류 시스템이 움직이고 있다.컬리는 신선식품이 산지에서 고객의 문 앞에 도착할 때까지 흐르는 시간을 물류와 데이터로 관리해왔다. 김포·평택·창원에 구축한 물류센터를 기반으로 냉장·냉동·저온·상온 등 상품 특성에 맞춰 보관과 포장 과정을 구분하고 이동 과정에서도 적정 온도를 유지하는 풀콜드체인을 운영한다. 특히 최대 규모인 평택물류센터는 각기 온도의 처리 공간을 한곳에 통합해 신선식품부터 가공식품까지 동시에 관리하는 구조를 갖췄다.
물류를 움직이는 출발점은 데이터다. 컬리는 기존 판매 데이터를 분석하고 머신러닝 기반 수요예측 모델을 활용해 상품별 발주량과 적정 재고를 산출한다. 지역과 배송 유형, 상품, 온도대별로 수요를 세분화해 예측하고 실제 주문 시점이 가까워질수록 최신 데이터를 반영해 예측치를 보정하는 방식이다. 신선식품은 수요를 과다하게 잡으면 폐기로 부족하게 잡으면 품절로 이어지는 만큼 무조건적인 속도보다는 주문이 들어오기 전에 필요한 물량을 정교하게 준비하는 능력이 컬리 새벽배송을 떠받치는 핵심으로 작동한다.
적자 원인에서 수익 기반으로…달라진 물류 역할
컬리가 택한 △직매입 △풀콜드체인 △새벽배송은 높은 품질을 유지하는 대신 그만큼 많은 비용을 감수해야 하는 구조였다. 상품을 미리 매입해 재고를 보유하고 대규모 물류센터와 배송망까지 직접 운영해야 하기 때문이다. 고객과 주문이 일정량 이상으로 늘기 전에는 센터 임차료와 설비비 등 고정비 부담이 크게 작용했고 이는 성장 초기 컬리가 외형 확대에도 수익을 내기 어려웠던 배경이 됐다.하지만 주문 규모가 커지면서 과거 비용 부담으로 여겨졌던 물류 인프라의 역할도 달라졌다. 컬리는 비효율이 상대적으로 높았던 송파 물류센터를 철수하고 자동화 설비를 갖춘 창원·평택센터를 가동해 주문 처리 생산성을 높였다. 물류센터의 고정비가 크게 달라지지 않는 상황에서 처리 물량이 증가하면 주문 한 건당 비용은 낮아지는 구조다. 최근에는 기존 센터의 유휴 공간을 풀필먼트서비스(FBK)에 활용하는 등 구축해둔 물류망 자체를 새로운 수익원으로 확장하고 있다.
물류 효율화는 배송 시간대의 확장으로도 이어졌다. 컬리는 2026년 2월 오후 3시까지 주문한 상품을 당일 자정 전에 전달하는 ‘자정 샛별배송’을 도입했다. 이후 주문은 기존처럼 다음 날 아침에 배송하면서 하루에 두 번 도착 시간을 제공하는 체계를 구축했다.
핵심은 단순히 배송 속도를 앞당긴 데 있지 않다. 컬리는 물류센터의 낮 시간대 가동률을 높여 기존 시설의 활용 범위를 넓히고 고객에게는 배송 시간 선택지를 추가했다. 이미 구축한 물류 인프라를 기반으로 처리 물량과 서비스 범위를 함께 확대하면서 과거 대규모 투자 대상이었던 물류망을 수익성 개선의 기반으로 전환하는 과정이다. 컬리 역시 올해 1분기 실적 발표에서 자정 샛별배송 도입과 물류센터 운영 고도화를 수익성 개선 요인으로 꼽았다.
뷰티·패션·리빙으로…식품 밖에서도 통하는 '컬리다움'
신선식품에서 쌓은 큐레이션 경쟁력은 식품 밖에서도 컬리의 확장 방식으로 이어졌다. 컬리는 2022년 뷰티컬리를 출범시킨 뒤 화장품에 이어 패션과 리빙까지 상품 영역을 넓혔다. 단순히 취급 품목을 늘리는 대신 식품에서 적용해온 선별 기준과 상품 발굴 방식을 새로운 카테고리에도 적용하는 전략이다.가장 먼저 안착한 영역은 뷰티다. 뷰티컬리는 백화점 럭셔리 브랜드와 국내외 인디 브랜드를 함께 선별해 소개하면서 전체 거래액의 약 10%를 차지하는 사업으로 성장했다. 올해 1분기 거래액도 전년 동기 대비 20.2% 증가했다. 잘 알려진 브랜드뿐 아니라 국내 인지도가 낮더라도 성분과 브랜드 철학, 상품 경쟁력이 컬리 고객과 맞는다고 판단하면 발굴해 선보이는 방식으로 식품에서 쌓은 큐레이션 공식을 뷰티에 옮겼다.
패션과 리빙에서도 동일한 방향이 이어지고 있다. 컬리는 올해 패션을 '퍼스널 쇼퍼'로 정의하고 브랜드 수와 상품 수를 무작정 늘리기보다 고객의 상황과 취향에 맞춰 선택지를 좁혀주는 방식에 집중하고 있다. 리빙에서도 생활·주방·가전 상품을 엄선해 선보이고 판매자배송(3P) 상품 역시 기존 직매입 상품과 마찬가지로 상품위원회 기준을 통과하도록 하고 있다. 카테고리는 확대됐지만 엄선한 상품을 제안한다는 컬리의 사업 방식은 변하지 않았다.
이는 컬리가 더 이상 새벽배송 식품몰에 머물 수 없는 현실과도 맞닿아 있다. 쿠팡을 비롯한 대형 이커머스 업체들이 빠른 배송 서비스를 확대하면서 새벽에 상품이 도착한다는 사실만으로 소비자를 붙잡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배송이 차별점에서 기본 조건으로 바뀌면서 상품 경쟁력과 고객 경험의 중요성은 오히려 커졌다.
컬리 밖에서도 컬리답게…네이버와 넓히는 고객 접점
컬리의 확장은 고객을 자체 앱 안으로 끌어들이는 방식에서도 벗어나고 있다. 지난해 9월 네이버플러스 스토어에 문을 연 '컬리N마트'는 컬리가 창립 이후 처음으로 외부 플랫폼에 진출한 사례다. 컬리가 쌓아온 상품 큐레이션과 샛별배송을 네이버의 고객 접점과 결합해 기존 컬리 이용자가 아니었던 소비자까지 장보기 고객으로 끌어들이는 전략이다.외부 플랫폼에 나가면서 상품 구성도 달라졌다. 1~2인 가구와 상품의 희소성·성분 등을 중시하는 기존 컬리 고객과 달리 네이버에는 3~4인 가구와 대용량·가성비 상품 수요가 상대적으로 많다는 점을 반영했다. 컬리는 컬리N마트 출범 과정에서 기존에 취급하지 않았던 생활필수품 등을 포함해 약 5000종을 새로 확보하고 기존 PB 상품도 대용량 형태로 구성하는 등 네이버 이용자에 맞춘 별도의 큐레이션을 적용했다. 판매 채널을 그대로 복제하기보다 고객이 달라지면 상품 구성도 다시 설계하는 방식이다.
성과도 가시화되고 있다. 컬리N마트의 올해 3월 거래액은 출시 첫 달인 지난해 9월과 비교해 약 9배 증가했다. 네이버는 지난 5월 컬리에 330억원 규모의 추가 투자를 결정해 지분율을 6.2%로 확대했고 당시 인정된 컬리의 기업가치는 약 2조8000억원이다. 단순한 판매채널 제휴를 넘어 컬리의 상품과 물류 역량을 네이버의 고객 기반과 연결하는 전략적 협력으로 관계가 확대된 셈이다.
다만 외연 확대는 컬리가 지켜온 선별 기준에도 새로운 과제를 던진다. 고객층과 카테고리, 판매채널이 늘어날수록 기존 컬리 고객과 다른 수요를 반영해야 하는 동시에 '엄선된 상품을 제안한다'는 정체성도 유지해야 하기 때문이다. 컬리N마트에서도 네이버 고객에 맞춰 상품군을 새로 구성하되 일부 프리미엄 상품은 기존 컬리몰에 남겨두는 등 채널별 역할을 구분하고 있다. 사업 영역 확대와 함께 고객별 상품 구성을 세분화하면서도 컬리 고유의 큐레이션 기준을 유지하는 것이 향후 확장의 핵심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컬리 관계자는 "꼼꼼한 상품 큐레이션과 풀콜드체인 물류를 기반으로 식품에서 차별화된 경쟁력을 구축했고 뷰티 역시 주요 성장축으로 자리 잡고 있다"며 "앞으로 식품과 뷰티 등 본업 경쟁력을 지속적으로 강화하는 동시에 패션·리빙과 풀필먼트서비스(FBK), 컬리N마트 등으로 사업 영역을 확대할 계획"이라고 했다. 이어 "본업 경쟁력 강화와 FBK를 포함한 3P, 컬리N마트 등 전 사업의 성장을 바탕으로 지속 가능한 수익 구조를 구축하고 있다"며 "향후에도 외형 성장과 이익 개선이 함께 이뤄지는 성장 구조를 더욱 고도화해 나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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