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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호무역은 예고하고 온다…통상도 먼저 움직여야 한다
[경제일보] 세계 철강시장의 문턱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미국은 철강에 50%의 고율 관세를 매기고 있고 유럽연합(EU)은 지난 7월부터 무관세 수입 물량을 대폭 줄였다. 여기에 미국 철강업계가 최근 한국산 철강 수입 증가를 공개적으로 문제 삼고 나섰다. 지난달 28일 미국철강협회(AISI)는 미 상무부와 무역대표부(USTR)에 한국산 철강 수입 증가에 대응해 달라고 요구했다. AISI에 따르면 한국산 장척 철강제품의 미국 수입량은 2024년 7월 2만2100톤(t)에서 올해 7월 14만5300t으로 늘었다. 철근을 포함한 일부 품목의 급증세가 미국 철강산업을 위협할 수 있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아직 미국 정부가 한국산 철강에 추가 규제를 결정한 것은 아니다. 업계가 정부에 조치를 요구한 단계다. 그럼에도 가볍게 볼 사안은 아니다. 미국은 지난해 철강 관세를 25%에서 50%로 올렸고, 한국이 2018년부터 적용받았던 무관세 쿼터도 지난해 3월 폐지됐다. 유럽의 장벽도 높아졌다. EU는 지난 7월 기존 철강 세이프가드를 새로운 관세할당제도(TRQ)로 대체했다. 전체 무관세 물량은 연간 3382만t에서 1835만t으로 약 46% 줄었고 쿼터를 넘어선 물량에는 50%의 관세가 붙는다. 한국은 협상을 통해 전용 쿼터 207만3000t을 확보했다. 이전보다 19.7% 줄었지만 EU 전체 쿼터가 크게 축소된 상황을 고려하면 정부가 시장 접근 기반을 상당 부분 방어했다는 평가도 가능하다. 정부는 지난 5월부터 EU 집행위원회를 상대로 우리 업계의 우려를 전달하고 협상을 벌였다. 이 대목은 분명히 평가해야 한다. 보호무역 장벽이 높아질 때마다 정부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은 사실과 다르다. 그러나 문제는 이제부터다. 철강을 둘러싼 세계의 움직임은 개별 국가와 벌이는 관세 협상의 수준을 넘어섰다. 지난달 30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글로벌 철강 공급과잉 포럼에 참여한 28개 시장경제국은 공급과잉에 공동 대응하는 이른바 ‘밀워키 프레임워크’를 내놓았다. 반덤핑과 상계관세, 세이프가드 등 무역구제 수단을 적극 활용하고 공급과잉을 키우는 보조금에 대한 대응을 강화하는 것이 골자다. OECD는 세계 철강 과잉생산능력이 지난해 6억100만t에서 올해 7억4500만t까지 늘어날 것으로 추산했다. 중국을 중심으로 한 공급과잉에 대응하겠다는 명분 아래 미국과 유럽을 비롯한 주요국의 시장 방어가 한층 거세질 가능성이 커졌다는 얘기다. 한국에는 간단하지 않은 문제다. 중국발 저가 철강의 유입을 막아야 하는 동시에 미국과 유럽에서는 한국산 제품이 규제 대상이 되지 않도록 방어해야 한다. 국내에서는 보호가 필요하고 해외에서는 시장 개방을 요구해야 하는 난처한 위치에 놓여 있다. 통상당국의 능력이 시험받는 지점도 바로 여기다. 앞으로 필요한 것은 문제가 터질 때마다 협상단을 보내는 대응을 넘어 주요 시장의 정책 변화를 먼저 읽는 시스템이다. 미국 철강업계와 의회에서 어떤 요구가 나오고 있는지, EU가 탄소와 공급과잉 문제를 어떤 방식으로 무역규제에 연결하는지 상시적으로 추적해야 한다. 특정 품목의 수출이 급증하면 현지에서 어떤 반작용이 생길지도 미리 살펴야 한다. 이번 미국 철강업계의 문제 제기가 좋은 사례다. 7월 한국산 철강의 미국 수입량은 55만6000t으로 전월보다 32% 늘었다. 미국 철강업계가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는 수준의 변화라면 정부와 업계가 수출 증가의 배경과 품목별 영향을 미리 분석해 둘 필요가 있었다. 통상은 상품을 많이 파는 것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수출이 빠르게 늘 때 상대국 산업과 정치권이 어떻게 움직일지까지 읽어야 한다. 철강 문제를 철강만의 문제로 다뤄서도 안 된다. 한국은 미국에서 자동차와 배터리, 반도체, 조선, 방산에 대규모 투자를 하고 있다. 알래스카 LNG와 에너지 프로젝트를 둘러싼 협력도 논의되고 있다. 미국 역시 한국의 조선과 제조업 역량을 필요로 한다. 철강 협상도 이 큰 판에서 볼 필요가 있다. 한국산 철강이 미국 자동차·조선·에너지 산업의 공급망에 어떤 역할을 하는지 구체적인 숫자로 보여주고, 한국 기업의 대미 투자와 고용 효과까지 협상의 지렛대로 활용해야 한다. 철강 수입량 하나만 놓고 방어하는 협상보다 산업협력 전체의 이해관계 속에서 문제를 푸는 편이 협상력을 높일 수 있다. 유럽에서는 또 다른 전략이 필요하다. EU는 단순한 수입규제를 넘어 탄소배출까지 무역의 조건으로 만들고 있다. 탄소국경조정제도(CBAM)가 대표적이다. 앞으로 유럽 시장에서 철강의 경쟁력은 가격과 품질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얼마나 적은 탄소를 배출해 생산했는지도 상품 경쟁력의 일부가 된다. 결국 통상정책과 산업정책이 한 몸처럼 움직여야 한다. 정부가 기업에 시장 다변화와 고부가가치화를 주문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새로운 시장의 인증과 규제 정보를 제공하고 무역보험과 금융, 현지 투자, 통상법률 지원을 묶어야 한다. 기업도 범용재 중심의 경쟁에서 벗어나 자동차강판과 조선·에너지용 특수강 등 쉽게 대체하기 어려운 제품의 비중을 높여야 한다. 저탄소 철강 기술 역시 수출 경쟁력을 좌우할 요소가 됐다. 정부가 지금부터 준비해야 할 것도 거창한 새 조직보다 이런 변화를 조기에 포착하고 움직이는 체계다. 미국의 관세와 의회 동향, EU의 쿼터와 환경규제, 주요국의 보조금과 무역구제 조치를 상시 분석하고 국내 산업에 미칠 영향을 수치로 보여줄 필요가 있다. 위험 수준에 따라 기업과 관계부처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미리 정해두는 것이 좋다. 통상에도 금융시장의 스트레스 테스트와 비슷한 접근이 필요하다. 정부가 그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EU 철강 쿼터 협상에서는 정상급과 고위급, 실무 채널을 가동해 한국 전용 물량을 확보했다. 미국 관세에도 정부와 기업이 대응해왔다. 이제 필요한 것은 대응의 속도와 수준을 한 단계 높이는 일이다. 보호무역은 더 이상 예외적인 사건이 아니다. 미국의 관세, EU의 쿼터와 탄소규제, 각국의 보조금 정책이 뒤섞이면서 새로운 통상질서 자체가 되고 있다. 문제가 생길 때마다 해결하는 방식만으로는 따라가기 어렵다. 철강은 그 변화가 가장 먼저 나타난 산업일 뿐이다. 다음은 자동차가 될 수도 있고 배터리와 반도체가 될 수도 있다. <손자병법>은 “승병선승이후구전(勝兵先勝而後求戰)”이라 했다. 이기는 군대는 먼저 이길 조건을 만들어 놓은 뒤 싸움에 나선다는 뜻이다. 통상도 다르지 않다. 협상장에 앉은 뒤 대응책을 찾기 시작해서는 늦다. 상대국 산업과 정치권이 어떤 요구를 꺼낼지 예상하고 우리가 내놓을 카드와 지켜야 할 선을 미리 정해둬야 한다. 한국은 수출로 성장한 나라다. 보호무역의 파고를 피할 수 없다면 적어도 파도가 어디에서 얼마나 높게 올지는 먼저 읽어야 한다. 정부의 통상 역량도 이제 ‘얼마나 잘 수습했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먼저 알고 움직였느냐’로 평가받아야 한다.
2026-10-06 14:4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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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의 투자 압박에 끌려갈 것인가, 국민 돈 지킬 협상력은 있는가
[경제일보] 한미 통상협상이 결국 ‘대미 투자 청구서’로 돌아오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한국의 대미 전략투자 계획을 직접 공개하며 알래스카 액화천연가스(LNG), 텍사스 가스발전소, 미국 내 원전 건설 등을 거론했다. 이 가운데 알래스카 LNG에는 500억 달러 이상이 투입될 것으로 미국 측이 설명했다. 지난해 한미 통상 합의에서 한국이 미국에 3500억 달러 규모의 투자를 약속하고 미국은 한국산 제품에 대한 관세를 낮추기로 한 데 따른 후속 조치다. 그러나 여기서 분명히 해야 할 것이 있다. 관세를 낮추기 위해 투자하기로 했다는 것과 특정 사업에 국민 돈을 쏟아붓기로 했다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트럼프 행정부의 거래적 통상정책은 이미 동맹과 경제를 하나의 협상 테이블에 올려놓고 있다. 미국이 자국 산업과 일자리, 에너지 안보를 위해 한국의 투자를 요구하는 것은 미국 정부의 국익 관점에서는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한국 정부의 첫 번째 책무는 미국의 국익을 실현하는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 국민의 재산과 미래를 지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우리 정부의 협상력이다. 지난 수개월간 협상을 벌였지만 미국 대통령이 백악관에서 대규모 투자계획을 먼저 발표하고, 정작 한국 정부는 일부 사업을 ‘추후 검토’ 대상으로 설명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미국은 이미 성과를 발표하는데 한국은 뒤늦게 사업의 조건과 상업성을 따지는 모양새다. 이것이 과연 치밀한 협상 전략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알래스카 LNG는 단순한 투자사업이 아니다. 약 1300㎞에 달하는 파이프라인과 액화시설 등을 건설해야 하는 초대형 프로젝트다. 총사업비가 445억~545억 달러 수준으로 추산되는 가운데 비용 초과와 사업 지연, 장기적인 LNG 가격 경쟁력 등에 대한 의문도 제기돼 왔다. 현재까지 확보된 장기 구매 의향 가운데 상당 부분이 구속력이 없는 데다 추가 물량 확보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그런 사업이라면 답은 간단하다. 경제성이 있으면 투자하고, 경제성이 없으면 하지 않는 것이다. 동맹이라는 이유로 경제성 검토의 잣대를 낮춰서는 안 된다. 더욱이 정부가 직접 돈을 넣거나 공기업이 투자하고 정책금융이 뒤를 받친다면 위험은 결국 국민에게 돌아온다. 사업이 성공하면 수익을 누릴 수 있지만 실패하면 손실은 정부 재정과 공공기관의 부실로 이어지고, 궁극적으로 납세자의 부담이 된다. 수십조 원 규모의 해외 프로젝트에서 손실이 발생했을 때 누가 책임질 것인지부터 국민에게 답해야 한다. 미국이 원하는 사업과 한국에 필요한 사업은 다를 수 있다. 미국 입장에서는 알래스카 천연가스 개발이 에너지 생산과 수출 확대, 지역경제 활성화라는 전략적 가치가 있다. 실제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투자를 미국의 에너지 인프라와 에너지 지배력 확대의 성과로 강조했다. 그렇다면 한국이 그 사업에 참여할 경우 그에 상응하는 경제적 권리와 수익, 공급권, 가격 경쟁력, 위험 분담 구조를 확보해야 한다. 미국이 이익을 극대화하는 동안 한국은 투자원금과 위험만 떠안는 구조라면 결코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정부가 더욱 경계해야 할 것은 ‘약속 이행’이라는 명분에 매몰되는 것이다. 이미 3500억 달러라는 거대한 투자 틀이 합의됐다고 해서 세부 사업까지 자동으로 확정되는 것은 아니다. 한국 정부도 알래스카 LNG와 원전 사업에 대해서는 상업적 타당성을 검토한 뒤 추진 여부를 결정한다는 입장이다. 그렇다면 지금부터가 진짜 협상이다. 정부는 미국에 당당하게 요구해야 한다. 첫째, 사업별 투자수익률과 현금흐름을 공개하라. 둘째, 건설비 상승과 공기 지연, LNG 가격 하락 등 최악의 상황에 대한 위험분담 장치를 마련하라. 셋째, 한국 기업의 지분과 경영권, 장기 LNG 구매권 등 실질적인 반대급부를 확보하라. 넷째, 손실 발생 시 미국 측도 일정 부분 위험을 부담하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돈은 한국이 내고 결정권과 이익은 미국이 갖는 거래라면 그것은 투자가 아니라 국부 이전이다. 대미 투자를 무조건 반대하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오히려 미국 시장은 한국 기업에 중요한 전략적 시장이고, 원전·조선·반도체·AI·배터리 등 양국 기업이 함께 성장할 수 있는 분야에서는 적극적인 협력이 필요하다. 문제는 ‘얼마를 투자했느냐’가 아니라 누구에게 어떤 이익이 돌아가고 누가 위험을 부담하느냐다. 정부와 정치권은 이제 협상 성과를 포장하는 데 급급해서는 안 된다. 국민에게 필요한 것은 화려한 투자 규모가 아니라 손실을 막을 안전장치다. 수십조 원의 국민 자산을 걸고 벌이는 협상이라면 국회와 국민에 대한 투명한 설명과 검증도 필수다. 한미동맹은 반드시 굳건해야 한다. 그러나 동맹은 굴종이 아니다. 관세 인하도 국익이고, 투자도 국익을 위해 하는 것이다. 미국의 압박이 거셀수록 한국 정부는 더 냉정하고 치밀해야 한다. 지금 정부가 보여줘야 할 것은 미국에 대한 무조건적인 ‘예스’가 아니다. 국익에 맞으면 투자하고, 수익성이 없으면 멈추며, 위험이 과도하면 조건을 다시 협상하는 당당한 ‘노’의 능력이다. 협상에서 가장 위험한 것은 상대의 압박이 아니다. 압박을 이겨낼 전략도 없이 서둘러 합의부터 하고 보는 무능한 협상이다. 국민의 세금과 미래 세대의 부담이 걸린 만큼 정부는 이제 숫자가 아니라 원칙으로 협상해야 한다. 알래스카 LNG가 그 시험대다.
2026-10-01 10:2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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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종된 정책 선거, 피해는 시민에게
[경제일보] 6·3 지방선거가 보름 앞으로 다가왔다. 유권자는 지역의 향후 4년을 맡길 시장·도지사·구청장·군수·지방의원·교육감을 골라야 한다. 그런데 정작 선거판에서 시민이 확인해야 할 것은 잘 보이지 않는다. 일자리, 교통, 주거, 교육, 돌봄, 지방재정, 산업전환 같은 의제는 뒤로 밀리고, 상대를 흠집 내는 말싸움과 진영 결집 구호가 앞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지방선거는 본래 가장 생활에 가까운 선거다. 대통령 선거가 국가의 방향을 묻는 선거라면, 지방선거는 시민의 하루를 묻는 선거다. 출근길 버스 배차 간격을 줄일 사람은 누구인가. 낡은 원도심을 어떻게 살릴 것인가. 아이를 맡길 학교와 돌봄 인프라는 충분한가. 청년이 지역을 떠나지 않고 일할 산업 기반은 있는가. 고령층의 병원 접근성은 어떻게 높일 것인가. 자영업자의 임대료와 골목상권 문제를 누가 풀 수 있는가. 이런 질문이 지방선거의 본질이다. 정책 경쟁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지역별로 교통망 확충, 산업단지 조성, 공항·철도·도청 이전, 지방세 활용 방안 등 크고 작은 공약이 쏟아지고 있다. 문제는 공약의 존재가 아니라 공약의 검증이다. 재원은 어디서 마련할 것인지,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권한은 어떻게 나뉘는지, 이미 추진 중인 사업과 충돌하지 않는지, 임기 안에 실현 가능한지 따지는 장면이 드물다. 선거가 정쟁으로 흐르면 가장 먼저 사라지는 것은 숫자다. 예산 총액, 사업 기간, 지방채 부담, 민간투자 조건, 행정 절차, 법적 근거 같은 숫자와 제도가 뒷전으로 밀린다. 그 빈자리를 구호가 채운다. ‘반드시 해내겠다’, ‘심판해야 한다’, ‘정권을 지켜야 한다’, ‘독주를 막아야 한다’는 말은 귀에 잘 들어오지만 시민의 삶을 바꾸는 설계도는 아니다. 지역 행정은 열정만으로 굴러가지 않는다. 도로 하나, 학교 하나, 병원 하나를 세우는 데도 예산과 인허가, 주민 수용성, 장기 운영비가 따라붙는다. 정쟁은 그 복잡한 문제를 한 줄 구호로 단순화한다. 정쟁 선거의 폐해는 분명하다. 첫째, 행정의 우선순위가 뒤틀린다. 후보는 지역의 구조적 문제보다 상대 후보를 공격하기 쉬운 이슈를 선택한다. 둘째, 공약의 품질이 낮아진다. 재원과 실현 가능성보다 표를 얻기 쉬운 장밋빛 약속이 늘어난다. 셋째, 선거 이후 협치가 어려워진다. 상대를 적으로 규정한 선거는 당선 뒤에도 의회와 집행부,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협력을 가로막는다. 결국 시민은 더 비싼 행정비용을 치른다. 특히 올해 지방선거는 경제 환경이 녹록지 않은 가운데 치러지고 있다. 고물가의 기억은 아직 생활비 곳곳에 남아 있고, 중동발 지정학 리스크와 에너지 가격 불안, 미국의 통상정책 변화, 지역 제조업의 산업전환 압박도 크다. 지방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은 제한적이지만, 할 일이 없는 것은 아니다. 지역 산업 생태계를 어떻게 바꿀지,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을 어떻게 지원할지, 청년층의 주거와 일자리를 어떻게 연결할지, 고령화 지역의 의료·돌봄 공백을 어떻게 메울지에 따라 지역의 생존력이 달라진다. 정당도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 지방선거 때마다 중앙당은 지역 일꾼을 말하지만 실제 선거운동은 중앙 정치 구도에 기대는 경우가 많다. 여당은 국정 안정론을, 야당은 견제론을 앞세운다. 물론 지방정부도 중앙정부 정책과 예산의 영향을 받는다. 그러나 중앙 프레임이 지역 의제를 집어삼키는 순간, 지방선거는 시민의 생활 선거가 아니라 정당의 중간평가 이벤트로 전락한다. 후보들도 달라져야 한다. 상대의 약점을 말할 수 있다. 선거는 경쟁이고 검증은 필요하다. 그러나 검증과 네거티브는 다르다. 검증은 공직 수행 능력, 이해충돌, 재정 운용, 정책 실현 가능성을 따지는 일이다. 네거티브는 시민의 판단을 흐리게 하는 감정의 소모전이다. 후보가 상대를 공격하는 데 쓴 시간만큼, 시민은 자신의 삶을 바꿀 정책을 들을 기회를 잃는다. 언론 역시 예외가 아니다. 말싸움은 기사화하기 쉽고 강한 표현은 제목이 된다. 그러나 지역 유권자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공약의 비교표와 재원 검증, 후보의 행정 경험, 기존 사업의 연속성과 수정 가능성에 대한 분석이다. 지방선거 보도는 누가 누구를 비판했는지보다, 그 비판이 사실인지, 대안은 있는지, 비용은 얼마인지까지 물어야 한다. 시민에게도 요구할 권리가 있다. ‘그래서 우리 동네에는 무엇을 하겠다는 것인가’, ‘그 돈은 어디서 마련하겠다는 것인가’, ‘임기 안에 가능한가’, ‘실패하면 무엇을 조정할 것인가’ 등을 물어야 한다. 정쟁의 소음은 큰 목소리로 번지지만 정책의 힘은 구체적인 질문에서 자란다. 유권자가 구호보다 숫자를 요구할 때 후보는 달라진다. 이번 지방선거의 핵심은 어느 정당이 더 크게 이기느냐만이 아니다. 선거 이후 시민의 삶이 조금이라도 나아질 수 있느냐다. 교통난이 줄고, 빈 상가가 채워지고, 지역 병원이 버티고, 학교가 안정되고, 청년이 떠나지 않는 도시를 만들 수 있느냐가 본질이다. 그 일을 하라고 지방권력을 맡기는 것이다. 정책 선거가 실종되면 피해는 추상적인 국민에게 가지 않는다. 버스를 기다리는 시민, 학원비를 걱정하는 부모, 매출 부진에 버티는 자영업자, 일자리를 찾아 떠날지 고민하는 청년, 병원까지 한 시간을 가야 하는 노인에게 간다. 정쟁의 비용은 늘 생활인의 지갑과 시간과 기회로 청구된다. 6·3 지방선거는 아직 늦지 않았다. 남은 기간만이라도 여야와 후보들은 중앙정치의 칼날을 거두고 지역의 장부를 펼쳐야 한다. 누가 더 세게 공격했는지가 아니라 누가 더 정확히 진단하고, 더 현실적인 해법을 내놓고, 더 책임 있게 실행할 수 있는지를 겨뤄야 한다. 지방선거의 주인은 정당이 아니라 시민이다. 선거판의 언어가 다시 시민의 삶으로 돌아와야 한다. 그래야 선거가 끝난 뒤에도 지역이 남고, 행정이 남고, 미래가 남는다.
2026-05-19 16:0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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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난 경기에도…2분기 한국경제, 대외 변수에 흔들린다
[경제일보] 올해 1분기 트리플 상승(생산·소비·투자 동반 증가)으로 회복 신호를 보인 한국 경제가 2분기 들어 다시 불확실성의 소용돌이에 직면하고 있다. 중동 전쟁의 파급 효과가 본격화되면서 물가 상승 리스크가 빠르게 고조되는 모습이다. 지표는 반등…하지만 ‘기초체력’보다 외풍이 더 커 30일 국가데이터처에 따르면 올 1분기 전산업 생산은 전분기 대비 1.7% 증가하며 2021년 이후 최대 폭 상승을 기록했다. 소매판매(2.4%)와 설비투자(12.6%)도 동반 증가하며 경기 반등 기대를 키웠다. 생산·소비·투자 등 6대 지표가 모두 증가한 것도 11분기 만이다. 하지만 이 같은 개선 흐름은 내수 회복보다는 금융시장 호조, 일시적 소비 요인, 투자 집행 효과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는 분석이 많다. 경기의 자생력이 충분히 확인됐다고 보기에는 아직 이르다는 평가다. 중동 전쟁, 시차 두고 압박…물가 자극 현실화 현재까지 전쟁의 직접적인 영향은 제한적이지만, 일부 산업에서는 이미 균열이 감지된다. 석유정제 생산 감소와 원자재 가격 상승 조짐이 대표적이다. 문제는 시차다. 정부도 전쟁의 경제적 영향이 4~5월부터 본격적으로 나타날 것으로 보고 있다. 원유 수급 불안, 해상 운임 상승, 공급망 교란 등이 동시에 작용할 경우 제조업 전반의 비용 부담이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 이는 결국 기업 수익성 악화와 투자 위축, 소비 둔화로 이어지는 전형적인 ‘외부 충격 전이 경로’를 형성할 수 있다. 특히 글로벌 공급망 붕괴에 따른 전세계 교역 둔화 우려가 커지면서 원화 약세 압력이 확대되고 외국인 자금 이탈 가능성도 커진다. 여기에 중동발 원자재 가격 상승까지 겹치면 물가와 금리 변수까지 자극하게 된다. 결과적으로 기업 비용 증가, 소비 위축, 투자 지연이 동시에 나타나는 복합 리스크 환경이 조성될 수 있다. 2분기, ‘회복의 연장’ 아닌 ‘변곡점’ 될 수도 결국 2분기 한국 경제는 1분기 회복 흐름을 이어가기보다 외부 충격에 따라 방향이 바뀔 가능성이 더 크다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전문가들은 “현재는 지표상 회복 국면이지만 실제로는 외부 변수에 가장 취약한 구간”이라며 “전쟁과 통상정책, 금융시장 변수까지 동시에 작용하는 만큼 변동성이 크게 확대될 것”이라고 진단한다. 트리플 상승이라는 긍정적 출발에도 한국 경제는 다시 대외 의존형 소규모 개방경제의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2분기는 회복의 연장이 아니라 향후 경기 방향을 가를 중대한 변곡점이 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2026-04-30 09:3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