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결과 총 89건
-
-
재개발·재건축을 왜 공급 정책의 중심에 놓아야 하는가
주택 공급을 논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반론이 있습니다. 재개발·재건축은 기존 주택을 허물고 새 주택을 짓는 사업이므로 실제 공급 증가 효과가 제한적이며, 경우에 따라서는 기존보다 가구 수가 줄어들 수도 있다는 주장입니다. 얼핏 보면 타당한 지적처럼 들립니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주택시장을 건축물의 개수만으로 바라본다는 점에서 중요한 한계를 갖습니다. 주택 공급의 효과는 새로 지어진 집의 숫자뿐 아니라 그 집이 기존 주택시장에 만들어내는 연쇄적인 변화까지 함께 살펴야 하기 때문입니다. 가령 한 정비사업 구역에서 노후 주택 800가구가 철거되고 1,600가구 규모의 아파트 단지가 들어선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사업 구역만 놓고 보면 주택 수는 800가구 증가합니다. 이는 명확한 물리적 순증 물량입니다. 하지만 이 사업의 효과가 800가구 증가에서 끝난다고 보는 것은 충분하지 않습니다. 새 아파트에 입주하는 가구가 기존에 거주하던 주택을 시장에 내놓으면서 또 다른 주거 이동이 시작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신축 아파트에 입주한 가구가 기존의 30평형대 아파트를 매도하거나 임대하고, 그 집을 선택한 가구가 다시 자신이 살던 주택을 비운다고 생각해 보겠습니다. 그 주택은 또 다른 가구의 선택지가 됩니다. 이런 이동이 주택의 가격과 품질, 입지에 따라 연쇄적으로 이어지면 신규 아파트의 공급 효과는 최초 입주 가구를 넘어 기존 주택시장으로 확산됩니다. 새로운 주택이 하나 생겼다는 사실뿐 아니라, 그 주택으로 이동한 가구가 기존에 사용하던 주거 공간을 다른 가구가 이용할 수 있게 된다는 점도 함께 봐야 합니다. 이러한 현상은 주택시장이 서로 분리된 개별 시장이 아니라 여러 가격대와 품질의 주택이 연결된 시장이라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고급 신축 아파트의 공급은 해당 주택을 직접 구입할 수 있는 가구에만 영향을 미치지 않습니다. 그 가구가 비운 기존 주택은 다른 가구의 선택지가 되고, 다시 그 가구가 비운 주택은 또 다른 수요를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최초의 공급이 주거 사다리의 여러 단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연쇄적인 주거 이동은 해외 연구에서도 분석되어 왔습니다. 미국에서는 시장가격형 아파트의 공급이 기존 저소득 지역의 임대주택 선택지를 확대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고, 핀란드에서도 신규 주택 공급에 따른 이동이 소득 하위 계층까지 이어지는 현상이 관찰됐습니다. 이는 신규 주택이 상대적으로 높은 가격대에 공급되더라도 기존 주택시장의 주거 이동을 통해 더 넓은 계층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시사합니다. 물론 여기서 주의할 점도 있습니다. 신축 주택 한 가구가 기존 주택 몇 가구의 추가 공급 효과를 만들어낸다고 일률적으로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기존 주택이 실제로 매매나 임대시장에 나오는지, 새 입주자가 기존 주택을 계속 보유하는지, 주택 수요가 충분한지에 따라 연쇄 이동의 범위는 달라집니다. 또한 한 가구의 이동으로 발생한 여러 차례의 주거 변화를 모두 독립적인 신규 공급으로 계산하면 효과를 중복 산정할 위험도 있습니다. 따라서 물리적인 주택 순증과 광역 주택시장에서 발생하는 유효공급 효과는 구분해 평가해야 합니다. 그렇다고 연쇄적인 주거 이동을 계산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그 효과를 무시하는 것 역시 합리적이지 않습니다. 직접적인 순증 물량은 객관적으로 계산할 수 있는 기본 지표이지만, 주택시장의 변화를 모두 설명하는 지표는 아닙니다. 공급 정책을 평가할 때는 실제 주택 수의 증가뿐 아니라 기존 주택의 재사용, 임대시장에 미치는 영향, 주거 선택지의 확대까지 함께 살펴야 합니다. 재개발·재건축은 주택의 품질을 개선하는 역할도 합니다. 노후화된 주택을 정비하면 주거 안전성과 생활 편의성을 높일 수 있고, 기존에 낮은 밀도로 이용하던 토지에 더 많은 주택을 공급할 가능성도 생깁니다. 이미 도로와 대중교통, 상업시설 등 도시 기반시설이 형성된 지역에서 주택을 공급할 수 있다는 점도 중요합니다. 신규 택지 조성만으로는 해결하기 어려운 도심 주택 수요에 대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신규 주택이 실제로 얼마나 늘어나는지 엄밀하게 계산하고, 그 공급이 기존 주택시장과 주거 이동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추가로 분석하는 것이 올바른 접근입니다. 주택 공급을 확대하려면 새로운 택지를 확보하는 정책과 함께 기존 도심의 재개발·재건축을 원활하게 추진할 수 있는 여건도 마련해야 합니다. 사업성을 지나치게 떨어뜨리는 규제와 불필요한 행정 지연은 민간의 공급 유인을 약화시킬 수 있습니다. 반대로 예측 가능한 규칙과 합리적인 사업 환경은 민간 자본이 실제 주택 공급으로 이어지게 하는 기반이 됩니다. 주택시장은 단순히 건축물의 개수를 더하고 빼는 산수로만 설명되지 않습니다. 한 가구의 입주가 다른 가구의 이동을 촉진하고, 그 이동이 다시 새로운 주거 선택지를 만들어낼 수 있는 연결된 시장입니다. 재개발·재건축의 공급 효과를 제대로 평가하려면 눈에 보이는 신축 물량뿐 아니라 그 뒤에서 움직이는 주택시장 전체의 흐름까지 살펴야 합니다. 공급 정책은 바로 이러한 현실을 정확하게 이해하는 데서 출발해야 합니다.
2026-10-13 15:54:05
-
-
-
-
-
-
LG CNS, 스테이블코인·토큰증권 기반 묶는다…'기틀' 출시
[경제일보] LG CNS가 금융기관의 스테이블코인·토큰증권 사업에 필요한 공통 인프라를 플랫폼으로 묶었다. 전자지갑부터 거래 처리와 기록 수집까지 기존 금융시스템과 블록체인을 연결하는 기능을 제공해, 금융사가 자산과 네트워크별로 시스템을 반복 구축하는 부담을 줄이겠다는 전략이다. LG CNS는 디지털자산 블록체인 인프라 플랫폼 ‘기틀(KITL)’을 출시했다고 6일 밝혔다. 은행·증권사·카드사·결제사가 법정화폐 등에 가치를 연동하는 스테이블코인, 블록체인으로 발행·관리하는 토큰증권, 실물자산의 권리 등을 토큰으로 구현하는 실물연계자산(RWA) 사업에 활용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 출시 시점은 금융권의 디지털자산 인프라 준비가 구체화하는 흐름과 맞물린다. 금융위원회는 내년 2월 4일 토큰증권 관련 전자증권법·자본시장법 시행을 앞두고 지난 2일부터 하위법규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개정안에는 토큰화가 가능한 증권의 범위와 분산원장 구성 요건, 발행인계좌관리기관 등록 요건 등이 담겼다. 금융사는 발행·유통 서비스와 함께 새 원장을 기존 업무시스템에 연결할 기반도 마련해야 한다. 기틀은 전자지갑, 거래 처리, 수수료 대납, 거래 내역 수집 등 네 가지 기능을 제공한다. 지갑은 고객의 디지털자산 관리와 전송에 필요한 전자서명을 담당하고, 거래 처리 기능은 금융기관이 요청한 거래가 블록체인에서 완료되는 과정과 결과를 추적한다. 블록체인 이용 수수료인 ‘가스비’는 서비스 제공사가 정한 구조에 따라 나눠 부담하도록 처리한다. 고객이 결제나 송금에 필요한 수수료를 별도로 준비하는 번거로움을 줄이는 데 활용할 수 있다. 거래 기록은 해당 금융기관과 관련된 내역을 수집해 정산·회계·감사 업무에 연결한다. 스테이블코인 발행사는 발행량과 준비자산을 대조하는 자료로도 쓸 수 있다. 지갑 발급 규모를 늘리는 기술도 적용했다. 회사 측은 개인키를 상시 저장하는 대신 전자서명이 필요한 순간 생성해 사용한 뒤 폐기하는 방식을 특허 등록했다고 설명했다. 암호키를 관리하는 하드웨어 보안 장비를 늘리지 않고도 수천만명 규모의 지갑 발급을 지원한다는 것이다. 기술 기반은 한국은행의 디지털화폐 실증 사업 ‘프로젝트 한강’에서 확보했다. 프로젝트 한강은 기관용 중앙은행 디지털화폐와 은행이 발행하는 예금토큰을 연계해 실제 지급결제를 검증하는 사업이다. 지난해 4~6월 실거래 테스트에 7개 은행이 참여했다. LG CNS는 7개 은행과 약 8만명 규모의 실증 환경에 적용한 전자지갑 기술을 기틀에 활용했다고 밝혔다. 참여자가 제한된 프라이빗 블록체인에 적용한 기술을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퍼블릭 블록체인으로 확장한 것이다. 공통 기능을 여러 자산과 블록체인에서 재사용하도록 한 점도 특징이다. 회사 측은 금융기관이 디지털자산 사업을 늘리거나 이더리움 외에 솔라나 등 다른 네트워크를 추가할 때 기존 인프라를 활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자산별로 달라지는 업무와 규제 대응은 추가하되 지갑과 거래 처리 기반을 공유하는 구조다. 글로벌 기업·재단 5곳과는 업무협약을 맺었다. 달러 스테이블코인 USDC 발행사 서클과 국내 기술·규제 환경에 맞는 솔루션 개발을 추진한다. 시큐리타이즈와는 펀드·채권의 토큰화 솔루션을 공동 개발하고, 캔톤 파운데이션과는 국내 금융기관의 캔톤 네트워크 참여 인프라를 구축할 계획이다. 체이널리시스와는 범죄 관련 자금의 지갑 유입을 탐지·차단할 거래 모니터링 기능을 통합할 계획이다. 체인링크와는 환율·펀드 기준가 등 외부 데이터를 블록체인에 제공하고 서로 다른 블록체인을 연결하는 서비스의 결합을 추진한다. 금융기관이 자산 발행과 유통, 거래 감시를 준비하는 과정에 필요한 기술을 확보하려는 협력이다. 김홍근 LG CNS 디지털비즈니스사업부장 부사장은 “디지털자산 사업에 반드시 필요한 인프라와 글로벌 파트너십을 기틀로 함께 제공해, 금융기관이 제도 시행과 동시에 서비스를 시작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토큰증권 하위법규 입법예고는 다음달 11일까지 진행되며, 금융위는 의견 수렴과 심사 절차를 거쳐 내년 2월 법 시행에 맞춰 시행할 예정이다.
2026-10-06 13:18:23
-
앤트로픽, 소네트 5.5 출시…작업 비용 낮추고 기업용 공략
[경제일보] 앤트로픽이 기업 실무에 초점을 맞춘 인공지능(AI) 모델 ‘클로드 소네트 5.5’를 공개했다. 토큰당 이용료는 이전 모델과 같지만 같은 작업을 처리하는 데 필요한 토큰 수를 줄여 비용을 낮췄고, 출력 속도도 30% 이상 높였다고 회사는 밝혔다. 복잡한 판단을 맡는 상위 모델 ‘오퍼스 5.5’에 이어 일상 업무에 많이 쓰이는 중간급 모델을 개선해 기업 고객의 선택지를 넓히려는 움직임이다. 앤트로픽은 28일(현지시간) 소네트 5.5를 출시했다. 코드 작성과 오류 수정, 문서·슬라이드·스프레드시트 제작 등 범위가 명확한 업무를 주요 용도로 제시했다. 오퍼스 5.5는 복잡한 연구와 판단이 필요한 작업에, 소네트 5.5는 반복적이고 실행 중심인 업무에 적합하다는 설명이다. 하위 모델인 ‘하이쿠 5.5’도 수주 안에 추가할 계획이다. 앤트로픽이 공개한 성능 지표 가운데 눈에 띄는 것은 에이전트형 코딩 평가인 ‘터미널 벤치 4.0’이다. 소네트 5.5는 70.6%를 기록해 전작 소네트 5의 10.3%를 웃돌았다. 오퍼스 5.5는 66.4%였지만, 해당 점수는 오퍼스에 가장 높은 추론 설정을 적용한 결과다. 이 수치만으로 소네트가 전반적인 업무에서 상위 모델보다 낫다고 볼 수는 없다. 앤트로픽도 복잡하고 개방적인 작업에서는 오퍼스가 여전히 강하다고 설명했다. 비용 절감은 요금표 인하가 아니라 작업 효율 개선에 따른 것이다. 소네트 5.5의 API 요금은 입력 토큰 100만개당 2달러, 출력 토큰 100만개당 10달러로 전작과 같다. 다만 같은 작업을 끝내는 데 토큰을 덜 쓰고 도구 호출도 줄여, 작업당 비용이 최대 30% 낮아질 수 있다고 회사는 밝혔다. 실제 절감 폭은 업무 종류와 모델 설정에 따라 달라진다. 안전장치도 강화했다. 사이버 보안 성능이 높아진 만큼 소네트 계열에서 처음으로 오퍼스 5.5와 유사한 사이버 보안 보호·대체 응답 체계를 적용했다. 고위험 보안 요청은 이전 모델로 전환되며, 일반적인 소프트웨어 개발은 계속 이용할 수 있다. 모델의 추론 과정을 대량으로 추출해 다른 모델을 학습시키는 ‘증류 공격’을 막기 위한 안전 분류기도 탑재했다. 이번 출시는 앤트로픽이 AI 모델 개발 속도 조절을 주장한 지 약 2주 만에 이뤄졌다. 다리오 아모데이 최고경영자(CEO)는 지난 12일 모델 성능 향상 속도를 늦추고 안전 검증과 업계 공조를 강화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개발 중단이 아니라 안전장치를 역량 발전과 함께 마련하자는 취지였지만, 회사는 오퍼스와 소네트를 잇달아 내놓으며 제품 경쟁도 이어가고 있다. 앤트로픽은 소네트 5.5를 자체 플랫폼과 아마존웹서비스(AWS), 구글 클라우드, 마이크로소프트 애저에서 제공한다. 기업 업무에 투입되는 중간급 모델의 속도와 비용을 낮추면 실제 도입 범위를 넓힐 수 있다. 반면 작업당 절감률은 회사가 제시한 시험 결과인 만큼, 고객 업무 환경에서도 비슷한 효율이 나오는지가 관건이다.
2026-09-29 09:51:28
-
-
-
-
AI데이터센터 특별법, '누구를·얼마까지' 지원하나…시행령이 성패 가른다
[경제일보] 내년 3월 시행되는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특별법의 실효성을 좌우할 세부 기준 마련이 본격화한다. 법률이 인허가 기간 단축과 전력·용수 지원, 비수도권 전력계통영향평가 면제라는 큰 틀을 열어놨다면 시행령은 어떤 데이터센터에 어느 수준까지 특례를 적용할지를 결정한다. 지원 대상과 전력용량 기준을 어떻게 정하느냐에 따라 ‘투자 촉진법’이 될 수도, 선언적인 지원법에 머물 수도 있다는 평가다. 7일 정보통신기술(ICT)업계에 따르면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오는 9일 오후 2시 서울 마포구 누리꿈스퀘어에서 정보통신산업진흥원(NIPA)과 ‘인공지능 데이터센터 특별법 하위법령 공개토론회’를 연다. 과기정통부는 시행령 초안을 설명하고 산업계와 학계의 의견을 수렴한 뒤 입법예고안을 보완할 예정이다. 특별법은 지난 6월9일 공포됐으며 9개월의 유예기간을 거쳐 2027년 3월10일 시행된다. 관건은 특별법상 AI 데이터센터의 범위다. 특별법 제2조는 AI 데이터센터를 AI기본법에 따른 데이터센터 가운데 ‘설비 및 규모 등이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기준에 해당하는 시설’로 규정했다. 구체적인 서버·연산장치 구성과 전력용량 등은 시행령에 넘긴 셈이다. 기준을 지나치게 높이면 중소·중견 사업자가 지원 대상에서 배제될 수 있고, 반대로 낮게 잡으면 일반 데이터센터가 일부 그래픽처리장치(GPU)를 설치한 뒤 AI 데이터센터로 신고해 지원을 받는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전체 서버에서 AI 연산장치가 차지하는 비중이나 실제 가동률, AI 서비스 제공 실적 등을 확인할 증빙 기준이 필요한 이유다. ◆ 개방형 AI DC 포함 추진…“누가 쓰나보다 어떻게 쓰나” 정부가 방향을 분명히 한 부분은 개방형 AI 데이터센터다. 개방형 AI 데이터센터는 사업자가 직접 사용하는 자가용 센터와 달리 외부 기업과 연구기관에 GPU·신경망처리장치(NPU), 공간과 전력 등을 임대하거나 공유하는 시설이다. 장기철 과기정통부 AI데이터진흥과장은 지난 2일 국회에서 열린 ‘AI 시대 네트워크 고도화 방안’ 정책간담회에서 “지금은 디테일이 필요한 시기”라며 자가용뿐 아니라 개방형 AI 데이터센터도 특별법의 정의와 적용 대상에 포함하는 방향으로 시행령을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모정훈 연세대 산업공학과 교수는 당시 국내 AI 데이터센터의 91.3%가 여러 기업이 이용하는 개방형 구조라며, 이를 지원 대상에서 제외하면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의 AI 활용 기회까지 줄어들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시설을 누가 소유하거나 직접 쓰는지보다 국내 AI 산업에 얼마나 기여하는지를 기준으로 지원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다만 개방형 센터를 포함하는 것과 세제 혜택을 주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특별법 자체가 AI 데이터센터 전체에 일률적인 세액공제를 부여하는 것은 아니다. 조세특례제한법에 따른 공제를 받으려면 해당 시설이 국가전략기술인 AI 개발과 서비스에 실제 활용된다는 점을 증명해야 한다. 이에 따라 GPU 보유량이나 임대계약만으로 인정할지, 국내 기업의 이용 비중과 AI 연산 실적까지 요구할지가 쟁점이 될 전망이다. 해외 빅테크에 컴퓨팅 자원을 전량 제공하는 센터까지 국내 산업 지원 대상으로 볼 것인지도 시행령과 세제 운용 과정에서 정리해야 한다. 기존 AI 데이터센터의 적용 범위도 불분명하다. 법 부칙은 AI기본법 제25조에 따라 정부가 이미 진행한 처분과 절차는 특별법에 따라 이뤄진 것으로 인정한다. 그러나 법 시행 전에 민간이 자체적으로 구축한 모든 AI 데이터센터를 자동으로 지원 대상에 포함한다는 규정은 없다. 비수도권에서 운영 중인 센터를 확장하거나 일반 데이터센터를 AI 데이터센터로 전환하는 사업은 전력계통영향평가 특례 대상에 포함됐다. 반면 별도의 증설이나 전환 없이 가동 중인 센터가 금융·기반시설 지원을 받을 수 있는지는 시행령의 정의와 신고·경과 기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법 시행 전 투자와 시행 후 신규 투자 사이의 형평성을 위해 기준일과 인정 서류를 명확히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배경이다. ◆ 계통평가 면제는 비수도권만…‘몇 MW까지’가 핵심 전력 특례의 실효성은 면제 용량에 달렸다. 특별법 제19조는 비수도권에서 AI 데이터센터를 신축·확장하거나 기존 데이터센터를 AI 데이터센터로 전환할 때 전력계통영향평가 대상에서 제외할 수 있도록 했다. 수도권 데이터센터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현행 분산에너지 활성화 특별법 시행령상 전력계통영향평가는 지정 지역에서 10메가와트(MW) 이상의 전력을 새로 사용하거나 추가하는 사업자에게 적용된다. AI 데이터센터 특별법은 면제 가능한 전력용량을 다시 대통령령으로 정하도록 했다. 면제 상한을 현행 평가 대상 기준과 비슷하거나 그보다 낮게 정하면 특례의 체감 효과가 크지 않다. 반대로 대규모 센터까지 폭넓게 면제하면 비수도권 전력망의 보강 비용과 계통 안정성 부담이 커질 수 있다. 센터 규모뿐 아니라 지역별 전력 여유와 자체 발전·에너지저장장치(ESS) 확보 여부 등을 함께 반영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특별법 제20조는 재생에너지 전기공급사업자가 전력시장을 거치지 않고 AI 데이터센터에 전기를 직접 공급할 수 있도록 했다. 입법 과정에서 거론됐던 액화천연가스(LNG) 직접전력구매계약(PPA)은 최종 법률에서 빠졌다. 전력 조달의 선택 폭을 넓히면서도 탄소 감축 기조를 훼손하지 않아야 하는 과제가 시행 단계에 남았다. ◆ 인허가 ‘타임아웃제’ 법에 명시…접수 전 지연 막아야 인허가 처리기간은 법률에 이미 구체적으로 담겼다. 전력계통영향평가는 150일, 에너지사용계획 협의와 교통·경관·건축위원회 심의는 90일, 건축허가와 소방 동의 등은 40일 안에 검토 결과를 통지해야 한다. 특별한 사유가 있으면 한 차례에 한해 최대 30일 연장할 수 있다. 관계기관이 해당 기간 안에 거부 통지를 하지 않으면 기간이 끝난 다음 날 인허가 처리가 완료된 것으로 보는 ‘타임아웃제’도 도입됐다. 다만 사업자는 과기정통부의 사전 검토와 국가AI전략위원회 심의·의결을 거쳐야 일괄처리 절차에 들어갈 수 있다. 결국 신청서 보완과 관계기관 협의, 국가AI전략위원회 심의에 걸리는 시간이 별도로 길어지면 법정 처리기간을 단축한 효과가 반감될 수 있다. 시행령에서는 신청 접수 여부를 결정하는 기한과 보완 요구 횟수, 관계부처 이견 조정 절차까지 구체화해야 한다. 지원 재원을 누가 부담할지도 남은 문제다. 특별법은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전력·용수·도로·통신시설을 우선 설치하고 GPU 등 연산장비의 구입·임대를 지원할 수 있도록 했다. 자금 융자와 투자, 보조금 지급 근거도 마련했다. 그러나 대부분이 ‘지원할 수 있다’는 임의규정이어서 예산과 비용 분담 기준이 뒤따르지 않으면 사업자가 체감하기 어렵다. 장 과장은 “업계 의견을 적극 반영해 AI 데이터센터 특별법 시행령을 준비할 것”이라고 밝혔다. 오는 9일 공개될 초안에서는 AI 데이터센터의 설비·규모 기준과 개방형 센터의 증빙 요건, 비수도권 계통영향평가 면제 전력용량, 기존 센터에 대한 경과조치가 핵심 검증 대상이 될 전망이다.
2026-09-07 09:20:15
-
중수청 615명 철회, 준비 안 된 개혁의 대가는 국민이 치른다
[경제일보] 중대범죄수사청에 가겠다고 신청했던 검찰 인력 615명이 막판에 지원을 철회했다. 당초 2376명이던 특례임용 신청자는 1761명으로 줄었다. 신청자의 4명 중 1명꼴이다. 중수청 정원 2874명과 비교하면 최종 신청자는 61.3%에 그친다. 철회자 대부분은 검찰 수사관으로 알려졌다. 중수청이 맡을 부패·경제·마약·방위사업·사이버범죄 등은 숙련된 수사 경험이 필요한 사건들이다. 계좌를 추적하고 압수수색 자료를 분석하며 사건 기록을 다뤄온 실무 인력이 출범 직전에 대거 발을 뺀 셈이다. 정부는 경찰과 변호사, 회계사, 변리사 등을 경력채용하고 공소청 공무원을 상대로 내년 4월 말까지 추가 특례임용을 하겠다고 한다. 중수청은 오는 10월 2일 출범한다. 출범은 10월인데 인력 충원은 내년 4월까지다. 사람을 제대로 채우기도 전에 문부터 열겠다는 얘기다. 1761명도 실제 근무 인원은 아니다. 정부는 근무 희망지와 경력, 전문성 등을 따져 다시 임용 대상을 정한다. 출범 당일 중수청에서 일할 사람은 지금보다 줄어들 수 있다. 숫자를 채우는 것보다 더 어려운 문제는 경험 많은 수사 인력을 확보하는 일이다. 이번 철회 과정만 봐도 준비가 얼마나 허술했는지 알 수 있다. 검찰 구성원에게 중수청으로 갈지 공소청에 남을지 선택하라고 했지만 철회 시한인 8월 31일까지 공소청 직제는 확정되지 않았다. 어느 기관에서 일할지 결정하라면서 그 기관의 정원과 보직, 근무지, 승진이 어떻게 될지는 제대로 알려주지 않은 것이다. 철회 시한을 앞두고 공소청의 정원 감축 폭이 예상보다 크지 않을 것이라는 직제안 윤곽이 알려지자 상당수 수사관이 잔류 쪽으로 돌아선 것으로 전해졌다. 중수청과 공소청을 만드는 법은 지난 3월 제정됐다. 시행일도 10월 2일로 정했다. 그런데 중수청의 조직과 정원, 인사 기준을 담은 하위법령은 8월 18일에야 국무회의를 통과했다. 출범 45일 전이었다. 형사소송법은 더 늦었다. 검사의 수사 권한을 없애고 보완수사 요구와 재수사 요구 절차를 손질한 개정법은 8월 4일 공포됐다. 시행까지 두 달도 남지 않은 때였다. 수십 년간 이어온 수사와 기소의 관계를 바꾸면서 현장에서 적용할 법을 출범 직전에야 확정했다. 형사사건은 간판을 바꾸고 사람을 옮긴다고 그대로 이어지는 일이 아니다. 사건을 누가 맡을지, 압수수색과 계좌추적은 어떻게 이어갈지, 부족한 수사는 어디에 다시 맡길지, 사건 기록과 증거물은 어떻게 넘길지 하나라도 엇박자가 나면 수사가 늦어진다. 수사가 늦어지면 피해자는 기다려야 한다. 증거가 사라질 수 있고 피의자 신병 확보에도 차질이 생길 수 있다. 구속 사건에서는 하루가 피의자의 신체 자유와 직결된다. 정부 조직 하나를 바꾸는 문제와 차원이 다르다. 검찰 개혁의 명분이 준비 부족을 덮어주지는 못한다. 수사와 기소를 나누겠다고 결정했다면 법과 직제, 인사와 전산, 사건 이관 절차를 먼저 갖춰 놓았어야 한다. 사람을 배치하고 실제 사건을 놓고 문제를 확인한 뒤 문을 여는 것이 순서다. 정부는 그 반대로 가고 있다. 10월 2일이라는 날짜를 먼저 정해놓고 사람과 조직, 절차를 그날에 맞추고 있다. 출범 한 달을 남겨놓고 인력이 흔들렸고 공소청 직제도 늦어졌다. 부족한 인력은 출범 뒤에도 계속 뽑겠다고 한다. 615명 철회는 우연히 튀어나온 숫자가 아니다. 준비가 덜 된 상태에서 선택을 재촉하자 현장의 사람들이 움직인 결과다. 정부가 중수청 출범에 필요한 조건을 먼저 갖췄다면 이런 대규모 철회가 나왔을지부터 돌아봐야 한다. 더 큰 문제는 10월 2일 이후다. 중수청과 경찰, 공소청 사이에서 사건이 오가고 보완수사가 늦어지면 피해는 곧바로 국민에게 간다. 정부는 조직을 만들었다고 발표하면 끝이지만 피해자는 사건이 끝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개혁의 성패는 검찰청 간판을 예정된 날짜에 내리는 데 있지 않다. 범죄를 제대로 수사하고 피해자를 제때 보호하는 데 있다. 수사가 늦어지고 사건이 밀린다면 이름을 무엇으로 바꿨든 실패다. 준비가 부족하면 일정을 늦추는 것이 책임 있는 행정이다. 날짜를 지키기 위해 수사기관부터 열고 부족한 사람과 절차를 뒤에서 채우는 것은 개혁이 아니다. 졸속이다. 정부가 10월 2일 중수청 간판을 다는 데 성공하더라도 수사가 늦어지고 사건이 표류한다면 그 대가는 정부가 치르지 않는다. 사건 당사자와 범죄 피해자, 결국 국민이 치른다. 615명 철회가 보여준 것은 인력 부족만이 아니다. 준비되지 않은 개혁을 밀어붙였을 때 누가 그 비용을 떠안게 되는지다.
2026-09-02 10:30:4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