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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해 수준 폭염, 개인의 인내가 아니라 국가의 책임이다
[경제일보] 사람이 더위에 쓰러지고 있다. 밭에서 일하던 노인이 숨지고 건설현장과 길 위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응급실로 실려 간다. 밤에도 기온이 떨어지지 않아 잠을 이루기 어렵다. 올여름 폭염을 예년보다 조금 더 더운 여름쯤으로 여길 수 없는 이유다. 지난 12일 경북 포항과 경산에는 사상 첫 ‘폭염중대경보’가 내려졌다. 2008년 폭염특보 제도가 도입된 뒤 18년 만에 신설된 최고 단계 경보다. 체감온도 35도 이상이 이틀 이상 이어진 지역에서 체감온도 38도 또는 최고기온 39도 이상이 예상될 때 발령된다. 정부가 국민에게 즉시 야외활동을 중단하고 냉방시설이 있는 곳으로 이동하라고 요구하는 수준의 더위다. 인명 피해는 이미 현실이 됐다. 질병관리청 집계로 지난 5월 15일부터 7월 25일까지 온열질환자는 1301명, 사망자는 6명이다. 지난해에는 4460명의 온열질환자가 발생했고 29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난해 환자의 79.2%는 실외에서 발생했다. 실외 작업장이 1431명으로 가장 많았고 논밭 542명, 길가 522명이 뒤를 이었다. 직업별로는 단순노무 종사자가 1160명으로 가장 많았다. 피해가 몰리는 장소를 보면 폭염의 성격이 드러난다. 냉방이 되는 사무실이나 집으로 몸을 피할 수 있는 사람보다 뙤약볕 아래 계속 일해야 하는 사람이 먼저 쓰러진다. 건설현장 노동자와 배달노동자는 일을 멈추면 소득이 줄어든다. 농민은 한낮 작업을 피하라는 안내를 받아도 수확과 생계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에어컨이 있어도 전기요금부터 걱정해야 하는 가구도 있다. 국가가 책임져야 할 근거는 이미 법에 적혀 있다.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은 폭염을 태풍, 홍수, 호우, 한파와 함께 자연재난으로 규정한다. 같은 법 제2조는 재난을 예방하고 피해를 최소화해 일상으로 회복하도록 지원하는 일을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기본적 의무로 두고 있다. 폭염은 법률상으로도 국민 각자가 알아서 버텨야 할 날씨가 아니다. 그런데 현장에서 국민에게 가장 자주 돌아오는 말은 여전히 비슷하다. 물을 자주 마시고 야외활동을 줄이고 충분히 쉬라는 것이다. 틀린 말은 없다. 그런 수칙만으로 재난 수준의 폭염을 넘길 수 없다는 데 문제가 있다. 누가 한낮의 폭염이 위험하다는 사실을 모르겠는가. 그래도 현장에 나가는 사람이 있다. 일을 멈추면 그날 임금이 사라지고 배달을 쉬면 수입이 끊긴다. 농사를 미루면 작물이 상한다. 폭염 대책은 이 사람들이 왜 위험을 알면서도 밖으로 나갈 수밖에 없는지를 다뤄야 한다. 산업현장에는 최소한의 법적 장치가 마련돼 있다. 현행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은 체감온도 33도 이상에서 폭염작업을 하는 노동자에게 매 2시간 이내에 20분 이상의 휴식을 주도록 사업주에게 의무를 부과한다. 냉방·통풍 장치 설치와 작업시간 조정 등 폭염 노출을 줄이는 조치도 규정하고 있다. 규정을 만들어 놓는 것과 노동자가 실제로 일을 멈추는 것은 별개의 일이다. 공사 기한에 쫓기는 하청업체의 일용직 노동자가 폭염을 이유로 먼저 작업중지를 요구하기는 쉽지 않다. 건당 수입에 기대는 배달노동자에게 휴식은 곧 소득 감소다. 극단적인 고온에서 작업을 중단시킬 것이라면 그 시간의 임금과 소득 문제도 함께 다뤄야 한다. 노동자에게 생계와 안전 가운데 하나를 고르게 하는 제도는 안전대책이 될 수 없다. 고령 농민은 산업안전보건 규정의 보호조차 받기 어렵다. 지방자치단체가 한낮 농작업을 자제하라는 문자메시지를 보내고 마을방송을 한다고 밭일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농번기에는 작업을 미루기도 어렵고 혼자 농사를 짓는 고령층도 적지 않다. 극한 폭염 때 농작업을 중단할 수 있도록 인력을 지원하고 고령자의 안전을 직접 확인하는 체계가 따라붙어야 한다. 경보를 보내는 데서 행정의 일이 끝나서는 안 된다. 집 안이라고 모두 안전한 것도 아니다. 쪽방과 옥탑방은 밤이 돼도 열기가 쉽게 빠지지 않는다. 냉방비가 부담되는 가구에는 에어컨을 켜라는 말부터 현실과 거리가 있다. 열대야가 이어지면 무더위쉼터도 밤까지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 재난대피시설이 가장 필요한 시간에 문을 닫는다면 이름만 쉼터일 뿐이다. 태풍이 다가오는데 국민에게 우산을 잘 쓰라고만 하지는 않는다. 위험한 도로를 통제하고 주민을 대피시키며 필요한 경우 사람의 이동까지 제한한다. 폭염도 자연재난으로 규정했다면 대응 방식 역시 그에 맞아야 한다. 생명에 위험을 주는 온도까지 올라갔는데도 물을 마시고 알아서 쉬라는 안내에 의존할 수는 없다. 국가가 정해야 할 선도 있다. 어느 온도부터 옥외작업을 멈출지, 작업을 중단한 노동자의 소득을 어떻게 보전할지, 혼자 사는 고령자와 농민을 누가 찾아갈지, 냉방비를 감당하기 어려운 가구를 어떻게 보호할지 구체적인 기준이 필요하다. 폭염특보의 단계만 세분화한다고 국민의 생명이 저절로 보호되지는 않는다. 폭염은 냉방된 사무실과 건설현장을 가리지 않고 찾아온다. 피해까지 똑같지는 않다. 38도가 넘는 철근 위에서 일해야 하는 노동자, 한여름 밭에 나가야 하는 고령 농민, 전기료 때문에 에어컨을 마음껏 켜지 못하는 사람이 먼저 위험해진다. 지난해 온열질환자가 어디에서 쓰러졌는지가 이미 보여줬다. 폭염을 당장 멈출 수 없다고 해서 피해까지 개인의 몫으로 돌릴 수는 없다. 사람을 위험한 시간대에 일하지 않게 하고, 일을 멈춰도 생계가 무너지지 않게 하며, 스스로 피하기 어려운 사람에게 피할 곳을 마련하는 일은 정책으로 할 수 있다. “더우면 쉬라”는 말로 끝낼 일이 아니다. 실제로 쉴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 재해 수준의 폭염에서 그 조건을 만드는 일은 개인의 인내가 아니라 국가의 책임이다.
2026-07-27 09: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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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청을 겨눈 하청 파업…플랜트 현장서 시작된 노란봉투법의 첫 충돌
[경제일보] 정유공장과 석유화학단지, 제철소, 발전소, 반도체 플랜트 현장에서 배관·용접·전기 공정을 맡는 하청 노동자들이 원청을 상대로 파업을 예고했다. 임금을 지급하는 하청업체가 아니라 발주와 공정, 안전관리의 큰 틀을 쥔 원청기업을 교섭 테이블로 끌어내겠다는 것이다. 민주노총 건설산업연맹 전국플랜트건설노조는 1일 서울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원청교섭을 요구하는 8월 총파업 방침을 밝혔다. 노조는 지난달 19일부터 26일까지 전국 8개 지역에서 실시한 쟁의행위 찬반투표가 79.2% 찬성으로 가결됐다고 밝혔다. 이달 15일 민주노총 총파업에 맞춘 상경투쟁을 거쳐 8월 총파업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대상은 포스코·에쓰오일·고려아연·SK에너지 등 발주사와 SK에코플랜트, 현대건설, DL이앤씨, 롯데건설, 포스코이앤씨, 삼성물산 등 종합건설사다. 노조는 하청 노동자의 안전보건과 근로조건은 하청업체만의 판단으로 정해지지 않는다며, 실질적 영향력을 가진 원청이 직접 교섭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번 사안이 주목받는 까닭은 3월 10일 시행된 개정 노동조합법, 이른바 노란봉투법 때문이다. 개정법은 근로계약을 직접 맺지 않았더라도 노동자의 근로조건에 대해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지위”에 있는 자를 그 범위에서 사용자로 본다고 규정했다. 노동쟁의 대상도 임금과 근로시간뿐 아니라 근로조건에 영향을 주는 사업경영상 결정까지 넓어졌다. 그동안 플랜트 현장에서는 원청이 안전 기준과 공정, 출입 절차, 작업 일정에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면서도 임금과 고용은 하청업체의 영역이라는 이유로 직접 교섭에서는 한발 물러나 있는 경우가 많았다. 노란봉투법은 이 분리를 다시 따져 보겠다는 법이다. 원청이 실제로 통제하는 분야가 있다면 그 문제에 관해서는 교섭 상대가 될 수 있다는 취지다. 노동위원회의 초기 판단도 노조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중앙노동위원회는 지난달 현대엔지니어링이 하청 노조의 교섭요구 사실을 공고해야 한다는 판단을 유지했다. 원청이 하청 노동자에 대해 실질적 지배력을 행사하는 영역이 있다는 취지다. 다만 SK에코플랜트 사건에서는 교섭단위 분리 신청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원청 사용자성이 인정되더라도 어느 노동조합과 어떤 단위로 교섭할지는 별도 쟁점이라는 뜻이다. 여기서부터 현장의 갈등은 더 복잡해진다. 사용자성 인정은 원청이 하청 노동자의 모든 요구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법도 원청이 실질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범위에서만 사용자성을 인정한다. 현장 안전수칙, 작업 허가, 공정 변경, 인력 투입 기준처럼 원청의 권한이 뚜렷한 사안과 개별 하청업체의 임금 체계, 인사권, 고용계약을 어디까지 나눌지가 첫 교섭의 핵심이 될 가능성이 크다. 파업의 적법성도 아직 확정된 것은 아니다. 조합원 찬반투표는 쟁의행위 절차의 한 단계일 뿐이다. 노조는 노동위원회 조정을 신청하고, 교섭을 거부하는 원청을 상대로 소송도 제기하겠다는 방침이다. 실제 파업이 이뤄질 경우 원청별 사용자성, 교섭 요구의 범위, 조정 절차 준수, 쟁의행위 대상이 된 요구사항을 놓고 다툼이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플랜트노조가 안전 문제를 전면에 내세운 이유도 여기에 있다. 노조는 2022년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뒤 플랜트산업 10대 원청사 현장에서 최소 72명의 노동자가 사망했지만 원청에 법이 적용된 사례는 없었다고 주장한다. 이 수치는 노조 집계이지만, 플랜트 현장에서 안전 책임이 하청업체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는 문제 제기는 가볍게 넘기기 어렵다. 플랜트 공사는 여러 공종이 맞물려 돌아간다. 배관 작업이 늦어지면 용접과 검사, 시운전 일정도 함께 밀릴 수 있다. 정유·석유화학 설비의 정기 보수나 증설 공사, 반도체 생산시설 건설처럼 공정 간 연결이 촘촘한 현장일수록 타격이 클 수 있다. 다만 총파업 예고만으로 공장 가동 중단을 단정하기는 이르다. 파업 참여 규모, 대상 공종, 해당 현장이 신설 공사인지 정기 보수인지에 따라 실제 영향은 크게 달라진다. 건설업계는 원청의 법정 안전관리 의무를 곧바로 사용자성의 근거로 삼아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다. 대한건설협회는 원청이 노조와 교섭해 추가 비용이나 작업 방식 변경을 수용할 경우 그 부담이 전문건설업체에 전가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원청과 노조가 합의한 내용이 실제 고용주인 하청업체의 계약·인사 운영과 충돌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 주장은 원청이 교섭에서 빠져야 한다는 근거가 되기는 어렵다. 원청의 지시와 공정 압박, 계약 단가가 하청 노동자의 작업 여건에 영향을 준다면 그 책임을 하청업체에만 남겨두기도 어렵다. 반대로 원청이 모든 하청 노동자의 임금·인사 문제까지 떠안는 방식으로 흘러간다면 현장 운영은 혼란을 피하기 어렵다. 안전과 공정, 임금과 고용, 비용 부담을 각 사안별로 가르는 교섭 틀이 필요하다. 노란봉투법의 성패는 파업 규모보다 첫 교섭의 내용에서 판가름 날 가능성이 크다. 원청이 책임져야 할 안전·공정 의제와 하청업체가 맡아야 할 고용·임금 의제를 구분하지 못하면, 교섭은 시작부터 책임 떠넘기기 싸움으로 변질될 수 있다. 반대로 현장에서 실제 권한을 가진 주체가 안전과 작업 여건을 논의하는 자리가 마련된다면, 다단계 하도급 아래 가려져 있던 책임의 빈틈을 줄일 계기가 될 수 있다. 플랜트노조의 8월 파업 예고는 노란봉투법이 조문에 머무르지 않고 산업현장으로 들어온 첫 장면이다. 원청과 하청, 발주사와 시공사, 노동조합과 전문건설업체가 어느 선까지 책임을 나눌지에 따라 정유·석유화학·제철·반도체 건설 현장의 노사관계도 달라질 수 있다. 이제 필요한 것은 교섭 자체를 미루는 일도, 원청 책임을 무한정 넓히는 일도 아니다. 각 현장에서 누가 실제로 무엇을 결정하는지부터 따져, 책임과 비용이 맞물린 협상 틀을 만드는 일이다.
2026-07-01 16:0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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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장 바꾸고도 또 사망사고… 포스코이앤씨, 구호만 남은 안전쇄신
[경제일보] 포스코이앤씨가 다시 안전관리 책임론에 휩싸였다. 지난해 잇따른 사망사고 이후 대표이사가 물러났고, 후임 대표로 최고안전책임자 출신인 송치영 대표가 선임됐지만 올해 신안산선 현장에서 또 근로자가 숨졌다. 건설업계에서는 이번 사고를 계기로 포스코이앤씨의 안전관리 체계를 다시 들여다봐야 한다는 말이 나온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해 중대재해 반복 이후 경영진 교체와 전사 안전점검, 안전조직 정비를 내세웠다. 고용노동부 특별감독도 받았다. 그럼에도 다시 사망사고가 발생하면서 송치영 대표 체제의 안전관리 실효성을 따져봐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16일 건설업계에 따르면 지난 9일 서울 관악구 신안산선 복선전철 공사 현장에서 작업 중이던 하청 근로자가 약 15m 아래로 추락해 숨졌다. 고용노동부는 사고 직후 작업중지 명령을 내리고 중대재해처벌법과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여부 조사에 착수했다. 포스코이앤씨도 현장 작업을 중단하고 사고 수습에 나섰다. 사고 다음 날 회사는 임직원 명의의 사과문을 냈다. 포스코이앤씨는 “그동안 신안산선 현장 전체에 대해 외부 전문가들과 함께 안전 점검을 진행했으나 아직도 충분하지 않다는 점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며 “안전이 완전히 확보될 때까지 작업 중지 등 할 수 있는 모든 조치를 다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포스코이앤씨는 이미 지난해 여러 차례 중대재해를 겪었다. 사고 때마다 안전점검과 재발방지 대책을 약속했다. 결국 정희민 전 대표가 책임을 지고 물러났고, 후임 대표로 송 대표가 선임됐다. 송 대표는 포스코그룹 내에서 안전 분야를 맡아온 인물이다. 당시 인사는 포스코이앤씨가 안전 문제를 경영 차원에서 다루겠다는 메시지로 받아들여졌다. 이번 사고가 더 무겁게 받아들여지는 배경도 여기에 있다. 송 대표는 일반적인 관리형 대표보다 안전 쇄신의 성격을 강하게 띠고 취임했다. 포스코이앤씨 입장에서는 대표 교체 자체가 시장에 내놓은 강한 쇄신 카드였다. 그런데 송 대표 체제에서도 사망사고가 발생하면서 대표 교체 이후 현장 안전관리가 실제로 개선됐는지 의문이 커지고 있다. 신안산선 사업 구간은 이미 사망사고가 반복된 곳이다. 지난해 4월 경기 광명시 일직동 신안산선 5-2공구에서는 터널 붕괴사고로 근로자 1명이 숨졌다. 같은 해 여의도 구간에서도 철근 구조물 붕괴 사고로 사망자가 발생했다. 이번 관악구 현장 사고까지 더하면 신안산선 사업 구간에서만 세 차례 사망사고가 발생했다. 사고 이력이 있는 사업 구간이라면 일반 현장보다 더 촘촘한 관리가 요구된다. 위험 공정 점검, 작업허가 절차, 추락 방지 조치, 하청 근로자 보호 체계가 실제 작업 단계에서 제대로 이뤄졌는지 살펴봐야 한다. 회사가 외부 전문가들과 함께 신안산선 현장 전체에 대한 안전점검을 진행했다고 밝힌 만큼 이번 사고는 점검의 실효성 논란으로도 이어질 수 있다. 포스코이앤씨 안전 논란은 신안산선에 그치지 않는다. 지난해 김해 공동주택 신축현장, 대구 주상복합 건설현장, 함양~울산고속도로 건설현장 등에서도 사망사고가 이어졌다. 광명~서울고속도로 건설현장에서는 외국인 근로자가 감전 사고로 중상을 입은 사례도 있었다. 여러 지역과 공종에서 사고가 이어졌다는 점은 특정 현장 관리 부실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는 지적을 낳고 있다. 정부 감독 결과도 부담이다. 고용노동부는 올해 초 포스코이앤씨 본사와 전국 현장을 대상으로 안전보건감독을 벌였다. 당시 전국 62개 현장 가운데 55개 현장에서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사항 258건이 적발됐다. 안전난간과 작업발판 미설치, 통로 미확보 등 기본적인 안전조치 미이행 사례도 포함됐다. 한두 현장의 문제라기보다 회사 안전관리 체계를 다시 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 배경이다. 대표 교체 이후에도 사고가 반복되면서 책임론은 현장 관리자 선에서 끝나기 어려워졌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안전보건 확보 의무는 최고경영진의 주요 책무로 다뤄지고 있다. 안전 예산과 조직, 매뉴얼을 갖췄는지뿐 아니라 그 체계가 현장에서 실제로 작동했는지가 중요해졌다. 사고가 반복될수록 최고경영자의 관리 책임을 묻는 목소리도 커질 수 있다. 송 대표 체제에 대한 평가도 이 지점에서 이뤄질 수밖에 없다. 포스코이앤씨가 그를 대표로 세운 배경에는 반복되는 중대재해를 끊어내겠다는 판단이 있었다. 그렇다면 송 대표 체제의 성과는 실적이나 수주 성과만으로 평가되기 어렵다. 중대재해 감소 여부, 위험 현장 통제, 본사 지침의 현장 이행 여부가 함께 따져질 수밖에 없다. 이번 사고 이후 포스코이앤씨는 다시 사과했고, 작업중지와 안전 확보를 약속했다. 그러나 업계 안팎에서는 사고 이후 조치보다 지난해 이후 내놓은 안전혁신 대책이 실제로 어느 정도 실행됐는지를 봐야 한다는 말이 나온다. 신안산선 현장에서 어떤 위험 요인이 확인됐고 어떤 조치가 이뤄졌는지, 사고 이력이 있는 구간에서 관리 체계가 어떻게 보강됐는지에 대한 설명도 필요해졌다. 건설업계에서는 포스코이앤씨가 기존 방식의 사과와 점검만으로 신뢰를 회복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이미 대표 교체와 특별감독, 전사 안전점검을 거쳤기 때문이다. 그 뒤에도 다시 사망사고가 발생한 만큼 새로운 구호보다 기존 대책이 왜 충분히 작동하지 않았는지에 대한 설명이 우선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번 사고는 포스코이앤씨의 수주 경쟁력에도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최근 재건축·재개발 시장에서는 시공사의 브랜드뿐 아니라 공사 수행 능력, 재무 안정성, 안전관리 역량까지 함께 평가하는 분위기가 강해지고 있다. 중대재해가 발생하면 작업중지와 조사, 공정 지연, 평판 악화가 뒤따를 수 있다. 조합원 입장에서는 안전 리스크가 사업 리스크로 이어질 수 있다. 포스코이앤씨는 프리미엄 브랜드를 앞세워 대형 정비사업 수주전에 나서고 있다. 그러나 브랜드 경쟁력은 신뢰와 분리되기 어렵다. 안전사고가 반복되는 회사라는 인식이 굳어지면 조합원 설득에도 부담이 생긴다. 고급 설계와 금융 조건을 제시하더라도 현장 안전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 수주전에서 약점으로 작용할 수 있다. 지난해 용산정비창 전면1구역 수주전도 이런 흐름 속에서 거론된다. 당시 포스코이앤씨는 오티에르 브랜드를 앞세워 수주전에 참여했지만 최종 시공권은 IPARK현대산업개발이 가져갔다. 수주 결과를 특정 사고와 직접 연결하기는 어렵다. 다만 신안산선 사고 이후 안전 논란이 확산된 시기와 맞물리면서 건설사 이미지 관리의 중요성을 보여준 사례로 받아들여졌다. 포스코이앤씨 입장에서는 이번 사고의 파장을 가볍게 보기 어렵다. 국토교통부와 고용노동부가 점검·감독에 나서면서 단일 현장 사고를 넘어 회사 전반의 안전관리 체계가 다시 검증대에 올랐기 때문이다. 국토부는 포스코이앤씨가 주관하는 신안산선 건설현장 7개소를 노동부와 합동 점검하고 안전관리조직과 의사결정체계의 적정성까지 심층 진단하기로 했다. 노동부도 이번 사고 이후 회사에 대한 강제수사와 전국 시공현장 기획감독 방침을 밝혔다. 단일 현장 조사를 넘어 회사 전체의 안전관리 체계를 다시 들여다보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향후 쟁점은 사고 원인 규명에 그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현장 작업 지시, 추락 방지 조치, 작업발판 설치 여부, 관리감독자 역할, 하청업체 안전관리 체계 등은 조사 과정에서 확인될 사안이다. 동시에 포스코이앤씨 본사의 안전관리 체계가 현장까지 제대로 작동했는지도 따져봐야 한다. 대표 교체 이후에도 사고가 반복됐다면 최고경영진 책임론도 커질 수 있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해 이미 한 차례 대표 교체로 책임을 정리했다. 후임 대표는 안전 전문가 출신이었다. 그럼에도 다시 사망사고가 발생했다면 같은 방식의 사과와 점검만으로는 설득력을 얻기 어렵다. 송치영 대표 체제가 현장을 실제로 통제할 수 있는지, 포스코이앤씨가 중대재해를 줄일 수 있는 경영 시스템을 갖췄는지 입증해야 하는 상황이다. 안전은 건설사의 평판과 브랜드 가치, 수주 경쟁력, 경영진 책임을 좌우하는 주요 평가 요소로 자리 잡고 있다. 포스코이앤씨가 대형 정비사업 시장에서 프리미엄 브랜드를 앞세우려면 현장 안전에 대한 신뢰 회복이 먼저다. 반복되는 중대재해 앞에서 필요한 것은 또 다른 약속보다 실제 현장의 변화다. [아주경제 2026년 06월 16일자 14면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2026-06-16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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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봉투법, 통신업계 첫 파장…LGU+ 원청 교섭 책임 인정
[경제일보] 지난 3월 시행된 ‘노란봉투법’이 통신업계 현장에 처음으로 본격 적용됐다. LG유플러스 인터넷·IPTV 설치와 유지보수 업무를 맡는 자회사·협력업체 노동자들에 대해 원청인 LG유플러스의 사용자성을 인정하는 노동위원회 판단이 나온 것이다. 이번 결정은 단순한 개별 노사분쟁을 넘어 통신업계 외주 구조 전반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사안으로 평가된다. 이동통신과 초고속인터넷, IPTV 서비스는 현장 설치·수리·유지보수 인력 없이는 품질을 유지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상당수 업무가 자회사나 협력업체 방식으로 운영돼 온 만큼 원청의 교섭 책임을 어디까지 볼지가 앞으로의 핵심 쟁점이 될 전망이다. ◇ 서울지노위, LGU+ 하청노조 손 들어줘 12일 업계에 따르면 서울지방노동위원회는 최근 공공운수노조 더불어사는희망연대본부 LG유플러스비정규직지부가 제기한 교섭 요구 사실 미공고 시정 신청을 인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노란봉투법 시행 이후 통신업계에서 원청의 사용자성을 인정한 첫 판단으로 파악된다. LG유플러스비정규직지부는 지난달 협력업체와 자회사 소속 현장 노동자들을 대표해 원청인 LG유플러스에 직접 교섭을 요구했다. 그러나 회사 측이 교섭 요구 사실을 공고하지 않자 노동위원회에 시정 신청을 냈다. 노동위원회는 심리 끝에 원청이 해당 노동자들의 근로조건에 실질적 영향을 미친다고 보고 노조의 신청을 받아들인 것으로 전해졌다. 해당 노동자들은 LG유플러스 인터넷과 IPTV 설치, 수리, 유지보수 등 가입자 접점 업무를 담당한다. 보도 기준 규모는 약 1250명 안팎으로 알려졌다. 노조 측은 원청이 표준공법과 작업 기준, 서비스 품질 기준을 정하고 있어 현장 노동자의 노동강도와 안전, 작업 방식에 직접 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해 왔다. LG유플러스는 정식 판정문이 도착한 뒤 관련 절차에 따라 대응하겠다는 입장이다. 회사 측이 판정에 불복할 가능성도 남아 있다. 정식 판정문이 송달되면 사용자성 인정 범위와 교섭 의제, 향후 절차가 보다 구체화될 전망이다. ◇ 핵심은 ‘고용계약’ 아닌 ‘실질 지배력’ 이번 판단의 배경에는 개정 노동조합법 2·3조가 있다. 이른바 노란봉투법은 근로계약을 직접 맺지 않았더라도 근로조건을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지위에 있으면 그 범위에서 사용자로 본다. 하청 노동자가 원청에 교섭을 요구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명확해진 셈이다. 법 시행 이후 하청노조의 원청 교섭 요구는 빠르게 늘고 있다. 고용노동부와 노동위원회에는 교섭 요구 사실 공고, 교섭단위 분리, 사용자성 판단을 둘러싼 사건이 잇따라 접수됐다. 원청 기업들이 스스로 사용자성을 인정하기보다 노동위원회 판단을 기다리는 사례가 많아지면서 시행 초기부터 현장 혼선도 커지고 있다. 이번 LG유플러스 사례는 공공기관이 아닌 민간 대기업, 그것도 통신업계라는 점에서 상징성이 크다. 통신 서비스 품질은 현장 설치와 장애 대응 속도, 안전한 유지보수 체계에 좌우된다. 원청이 고객 서비스 기준과 작업 절차를 사실상 관리한다면 그 영향이 하청 노동자의 근로조건과 분리되기 어렵다는 판단이 가능하다. 교섭 의제는 노동안전, 작업환경, 작업방식, 복리후생, 노동조합 활동 보장 등이 중심이 될 것으로 보인다. 임금 인상은 당장 핵심 의제에서 제외될 수 있지만 실제 교섭 과정에서는 도급비 구조와 인력 배치, 실적 압박, 안전장비, 휴식시간 등 민감한 문제가 함께 거론될 가능성이 있다. ◇ 통신 3사 외주 구조도 시험대 이번 판정은 LG유플러스만의 문제가 아니다. 국내 주요 통신사들은 인터넷 설치, IPTV 개통, 망 관리, 장애 처리 등 현장 업무 상당 부분을 자회사나 협력업체를 통해 운영해 왔다. 통신망은 원청 브랜드로 제공되지만 이용자와 직접 마주하는 현장 노동자는 외부 조직에 속한 경우가 많다. 이 구조는 비용 효율성과 운영 유연성을 높이는 방식으로 활용돼 왔다. 하지만 노란봉투법 시행 이후에는 원청이 업무 기준과 성과 지표, 안전 규정, 고객 응대 절차를 얼마나 실질적으로 정하는지가 법적 쟁점이 된다. 원청이 서비스 품질을 강하게 통제할수록 사용자성 논란에서 자유롭기 어려워질 수 있다. 업계에서는 SK브로드밴드 홈앤서비스 등 다른 통신 현장 노동자들의 원청 교섭 요구도 이어질 가능성을 보고 있다. 특정 사업장에서 사용자성이 인정되면 유사한 업무 구조를 가진 다른 통신사에도 선례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통신 3사는 단순히 판정 결과를 지켜보는 수준을 넘어 자회사·협력업체 운영 방식과 노사 대응 체계를 다시 점검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경영계는 원청 사용자성 범위가 지나치게 넓어질 경우 교섭 구조가 복잡해지고 원·하청 간 계약질서가 흔들릴 수 있다고 우려한다. 반면 노동계는 실제 업무를 지휘하고 서비스 기준을 정하는 주체가 원청이라면 그에 맞는 책임도 져야 한다고 본다. 이번 판정은 두 입장이 정면으로 부딪히는 첫 통신업계 사례다. ◇ 쟁점은 ‘교섭의 범위’다 앞으로의 핵심은 LG유플러스가 실제 교섭 테이블에 나설지 그리고 어떤 의제를 어느 범위까지 다룰지다. 노동위원회가 사용자성을 인정했다고 해서 모든 근로조건에 대해 원청이 곧바로 전면 사용자로 인정되는 것은 아니다. 개정법도 실질적·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범위에서 사용자성을 인정한다. 따라서 노사 간 쟁점은 ‘원청 책임이 있느냐’에서 ‘어떤 사안에 대해 어느 정도 책임이 있느냐’로 옮겨갈 가능성이 크다. 안전과 작업방식은 원청 통제가 비교적 분명한 영역으로 볼 수 있지만 임금과 복리후생은 도급계약과 하청업체의 경영권 문제까지 얽혀 논란이 커질 수 있다. 이번 결정은 통신업계가 오랫동안 유지해 온 외주화 모델에 새로운 질문을 던졌다. 이용자는 LG유플러스 서비스를 이용하지만 현장에서 설치하고 수리하는 노동자는 자회사나 협력업체 소속이다. 서비스 품질은 원청 브랜드의 경쟁력이면서 그 품질을 떠받치는 노동조건은 외부화돼 있었다. 노란봉투법의 첫 통신업계 적용은 그 분리 구조를 다시 들여다보게 만든다. 통신사는 AI와 데이터센터, 플랫폼 사업으로 영역을 넓히고 있지만 기본은 여전히 현장의 연결 서비스다. 그 연결을 책임지는 노동의 조건을 누가 결정하고 누가 책임질 것인가. 이번 판정은 통신업계 노사관계가 더 이상 과거의 외주화 관성만으로 유지되기 어렵다는 신호다.
2026-06-12 18: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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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 '봉합'이 남긴 성과급 복마전, '시장 원칙'과 '상생'으로 틀 바꾸어야
[경제일보] 삼성전자 노사의 극적인 잠정 합의로 총파업이라는 최악의 충돌은 일단 피했다. 국가 기간산업인 반도체 생산라인이 멈춰 서는 초유의 사태를 막았다는 점은 다행이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지금부터다. 겉으로는 ‘봉합’됐지만, 이번 사태는 한국 산업계 전반에 훨씬 더 큰 후폭풍을 남길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당장의 갈등을 덮기 위해 내놓은 타협이 시장 원칙과 산업 질서를 흔드는 위험한 선례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적자를 기록한 사업부에도 일정 수준의 성과급 지급을 인정한 것은 “성과 있는 곳에 보상 있다”는 자본주의와 경영의 기본 원칙을 흐리게 만든 결정이다. 성과급은 말 그대로 성과에 대한 사후 보상이다. 그런데 성과와 무관하게 일정 수준을 보장하는 순간, 그것은 더 이상 인센티브가 아니라 사실상의 고정 임금으로 변질된다. 이는 기업의 생산성과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성과주의 체계를 스스로 무너뜨리는 결과를 낳는다. 문제는 이러한 흐름이 이미 산업계 전반으로 번지고 있다는 점이다. 삼성전자뿐 아니라 기아, HD현대중공업, LG유플러스, 카카오 등 주요 기업 노조에서도 영업이익의 일정 비율을 요구하는 움직임이 확산되고 있다. 한 기업의 노사 합의가 산업 전체의 새로운 기준처럼 굳어질 경우, 기업마다 처한 경영 환경과 미래 투자 여력은 무시된 채 ‘성과급 총액 경쟁’만 남게 된다. 결국 기업은 미래 연구개발(R&D) 투자와 시설투자 재원을 줄일 수밖에 없고, 이는 국가 산업 경쟁력 약화로 직결된다. 더 우려스러운 것은 대기업 내부의 성과급 갈등이 원·하청 구조 전체의 균열로 이어질 가능성이다. 대기업 정규직들이 수천만 원대 성과급을 요구하는 동안, 협력업체와 하청 노동자들은 상대적 박탈감을 더욱 크게 느끼고 있다. 실제로 일부 하청업체 노동자들 사이에서는 “대기업이 막대한 이익을 올릴 때 왜 우리는 제자리냐”는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다. 이는 단순한 임금 문제가 아니라 한국 사회의 구조적 양극화와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더욱 심화시키는 불씨가 될 수 있다. 글로벌 경쟁 환경은 갈수록 냉혹해지고 있다. 중국의 메모리 업체들은 국가적 지원과 공격적 투자로 한국 반도체 산업을 거세게 추격하고 있다. 대만의 TSMC와 미국의 엔비디아는 기술 초격차 확보를 위해 조직 전체가 미래 투자와 혁신 경쟁에 매달리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 기업들이 내부 성과급 갈등과 노노 갈등에 매몰된다면 결국 경쟁국만 웃게 될 것이다. 기술 패권 전쟁의 시대에 내부 분열은 가장 치명적인 리스크다. 이제 필요한 것은 감정적 대립이 아니라 제도의 전면적 재설계다. 우선 성과급 체계를 글로벌 기준에 맞게 개편해야 한다. 획일적으로 영업이익의 일정 비율을 떼어주는 방식은 기업의 경기 변동성과 미래 투자 전략을 무시하는 위험한 구조다. 성과급은 기업 실적뿐 아니라 생산성 향상, 기술 혁신 기여도, 장기 성장성 등을 종합적으로 반영하는 방식으로 바뀌어야 한다. 특히 미국 빅테크 기업들처럼 개인별 기여도와 장기 성과를 반영한 RSU(양도제한조건부주식) 중심 보상 체계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 이는 단기 현금 보상보다 기업의 지속 성장과 구성원의 이해관계를 일치시키는 효과가 크다. 동시에 원·하청 상생 모델 구축도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다. 대기업의 성과가 협력업체와 하청 생태계 전반으로 확산될 수 있도록 공동성과기금이나 협력사 성과 공유제 같은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대기업만의 ‘성과급 잔치’로 비쳐지는 순간 사회적 정당성은 무너질 수밖에 없다. 정부 역할도 중요하다. 노동 3권은 존중돼야 하지만 그것이 기업 경쟁력을 위협하거나 사회적 불균형을 심화시키는 방향으로 작동해서는 안 된다. 정부는 산업 현장의 갈등이 극단으로 치닫기 전에 합리적 성과배분 원칙과 노사 협력 가이드라인을 마련해야 한다. 무엇보다 산업 경쟁력과 고용 안정, 미래 투자가 균형을 이루는 방향으로 정책적 조정자 역할을 해야 한다. 삼성전자 사태는 단순한 노사 분쟁이 아니다. 한국 산업 구조의 취약성과 노동시장 양극화, 그리고 성과 배분 체계의 한계를 동시에 드러낸 경고음이다. 총파업을 막았다고 끝난 것이 아니다. 지금 필요한 것은 눈앞의 숫자를 둘러싼 힘겨루기가 아니라, 시장 원칙과 상생의 질서를 다시 세우는 일이다. 그것이 무너진 산업 경쟁력을 회복하고 대한민국 경제의 지속 가능성을 지키는 유일한 길이다.
2026-05-21 07:47: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