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일보]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2·3조 개정안, 이른바 ‘노란봉투법’ 시행 이후 국내 IT 업계의 노사 관계가 새로운 국면에 들어섰다. 자회사와 하청업체 노동자들이 모회사에 직접 교섭을 요구하는 움직임이 확산되면서 그동안 IT 기업들이 활용해 온 분사·매각 중심의 고용 전략이 시험대에 올랐다는 분석이 나온다.
12일 전국화학섬유식품산업노동조합 카카오지회(크루유니언)는 카카오 판교 아지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자회사 디케이테크인 소속 품질관리(QA) 노동자들의 고용 문제 해결에 모회사가 직접 나설 것을 요구했다.
디케이테크인은 지난해 카카오와의 QA 업무 계약이 종료되면서 소속 노동자들에게 권고사직을 통보했다. 노조는 10년 이상 카카오 서비스 품질 관리 업무를 맡아온 노동자들이 계약 방식 변경을 이유로 일터에서 밀려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노조 측은 카카오가 실질적인 경영권을 행사하는 원청 기업임에도 불구하고 자회사 뒤에 숨어 고용 문제 해결을 회피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문병호 화섬식품노조 사무처장은 “개정 노동법의 취지는 원청이 임금과 근로조건, 고용에 실질적 영향력을 행사한다면 교섭에 책임 있게 참여하라는 것”이라며 “카카오는 협의 대신 책임을 미루고 있다”고 말했다.
이번 갈등은 노란봉투법 시행 이후 IT 업계에서 나타나는 구조적 변화의 한 단면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그동안 IT 기업들은 신규 사업을 별도 법인으로 분사하거나 매각하는 방식으로 조직을 재편하면서 고용 책임을 자회사 단위로 분산해 왔다. 하지만 개정 법률에 따라 원청이 근로 조건에 실질적 영향력을 미치는 경우 단체교섭 당사자가 될 수 있다는 법적 근거가 마련되면서 이러한 구조가 흔들릴 가능성이 커졌다는 것이다.
실제로 IT 업계에서는 유사한 갈등이 이어지고 있다. 사무금융노조 구글코리아지부는 장기간 지연된 단체협약 체결 문제를 이유로 강경 대응을 예고한 상태다. 서비스 운영과 기술 지원 등 플랫폼 산업의 핵심 업무를 수행하는 노동자들 사이에서는 자회사와 손자회사 구조를 통한 책임 분산 관행을 재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노동계는 이번 디케이테크인 사태를 특정 기업의 문제가 아니라 IT 산업 전반의 고용 구조와 관련된 문제로 보고 있다. 화섬식품노조는 5만 명 규모의 산하 조합원 조직을 기반으로 원청 교섭을 요구하는 전국 단위 대응에 나설 가능성을 시사했다.
기업들 역시 대응 전략 마련에 나서고 있다. 노란봉투법 시행으로 원청이 노사 협상 당사자로 등장할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분사나 사업 매각을 통한 조직 재편 전략에도 변화가 불가피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특히 자회사 고용 승계 문제나 사업 구조 변경 과정에서의 노동자 보호 장치를 어떻게 설계할지가 기업 경영의 주요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법 개정이 빠르게 변화하는 IT 산업 특성을 고려할 때 기업의 구조 개편과 투자 결정에 부담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시장 상황에 맞춰 사업을 신속하게 재편해야 하는 기업의 자율성이 위축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반면 노동계는 안정적인 고용 구조가 장기적으로 기업 경쟁력에도 도움이 된다는 입장이다. 플랫폼 산업에서 숙련 인력의 경험과 기술 축적이 중요한 만큼 단기적인 비용 절감 중심의 고용 전략은 지속 가능한 성장에 한계가 있다는 주장이다.
노란봉투법 시행 이후 원청 책임을 둘러싼 노사 갈등은 IT 업계 전반으로 확산될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카카오와 구글을 비롯한 주요 플랫폼 기업들이 자회사와 협력사 노동자들과의 관계를 어떻게 재정립할지에 따라 향후 IT 산업의 노사 구조에도 적지 않은 변화가 나타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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