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일보] 반도체 공장은 정부가 계획을 발표한다고 세워지지 않는다. 공장 부지가 있어야 하고, 생산에 필요한 전기와 물이 제때 들어와야 한다. 도로를 놓고 각종 인허가를 마치는 일도 빠질 수 없다. 이 가운데 하나라도 늦어지면 공장 건설과 생산 일정이 흔들린다. 첨단산업 투자에서 행정의 속도는 기업의 경쟁력과 직결된다.
인공지능(AI)과 반도체를 둘러싼 경쟁이 치열해지는 상황에서 정부가 부처 간 이견을 정리하지 못해 투자 일정까지 늦춘다면 기업에만 책임을 물을 수 없다. 호남 반도체 클러스터도 마찬가지다. 정부는 광주 군공항 부지를 국가산업단지 후보지로 지정했고, 전력과 용수 공급시설의 예비타당성조사 면제도 추진·의결했다. 한국전력은 연내 전력 공급 협약을 마무리할 계획이다. 이제 필요한 것은 추가 발표가 아니라 약속한 일정을 지키는 일이다.
호남 반도체 클러스터에는 최대 6.3GW의 전력과 하루 65만t 규모의 용수가 필요할 것으로 예상된다. 전력망을 연결하고 용수 공급시설을 갖추려면 정부 부처와 지방자치단체, 한국전력, 한국수자원공사 등이 긴밀히 움직여야 한다. 부지 조성과 인허가, 재원 마련도 맞물려 있다. 어느 한 기관이 자기 업무만 끝냈다고 사업 전체가 앞으로 나아가는 구조가 아니다.
산업 부처는 기업 유치와 산업 경쟁력을 따지고, 국토·환경 부처는 입지와 교통, 환경 기준을 검토한다. 재정 당국은 사업비와 예산을 살핀다. 각자 맡은 일을 꼼꼼히 따지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부처마다 검토만 거듭하고 의견이 다르다는 이유로 결정을 미룬다면 정부가 사업을 추진한다고 할 수 없다. 각 부처의 판단을 조정하고 최종 결론을 내릴 책임자가 나서야 한다.
기업의 투자 일정은 정부의 행정 절차에 맞춰 무한정 기다려주지 않는다. 반도체 시장은 기술 변화가 빠르고 경쟁사의 투자도 거세다. 공장 가동이 늦어지면 생산 계획과 고객사 확보에도 차질이 생길 수 있다. 기업이 정부에 요구하는 것은 무조건적인 지원이 아니다. 언제 전기와 물을 쓸 수 있는지, 인허가는 언제 끝나는지, 약속한 기반시설이 계획대로 공급되는지 알 수 있어야 한다. 정부가 투자 유치를 외치면서 정작 이 질문에 답하지 못한다면 기업이 선뜻 거액을 투자하기 어렵다.
지역 균형 발전도 말만으로 이룰 수 없다. 지방에 좋은 일자리를 만들고 인구 유출을 줄이려면 기업이 실제로 투자하고 공장을 가동해야 한다. 호남 반도체 클러스터 역시 지역 발전을 내세우는 정치적 약속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기업 수요와 인력 확보, 협력업체 유치, 기반시설 공급 계획을 현실에 맞게 따져야 한다. 동시에 지방이라는 이유로 필요한 지원을 뒤로 미뤄서도 안 된다. 사업성을 냉정하게 검증하되, 결정한 사업은 정부가 책임지고 추진해야 한다.
대통령과 국무총리는 부처 간 이견을 실무자들에게 맡겨둬서는 안 된다. 관계 부처가 합의하지 못하는 사안은 총리가 조정하고, 국가 산업전략과 관련된 큰 결정은 대통령이 책임지고 정리해야 한다. 전력·용수·교통·인허가·예산을 따로 관리할 것이 아니라 하나의 일정표에 올려 함께 점검할 필요가 있다. 어느 부처가 언제까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정하고, 일정이 늦어지면 그 이유와 대책을 공개해야 한다. 회의를 여러 번 열었다는 사실이 사업을 진척시킨 것은 아니다.
규제와 환경 기준을 무조건 낮추자는 것도 아니다. 안전과 환경에 필요한 기준은 지켜야 한다. 불필요한 중복 심의와 부처 간 책임 떠넘기기로 시간을 허비하지 말자는 것이다. 예산 역시 사업 발표 때만 반짝 편성할 일이 아니다. 전력망과 용수시설에 필요한 재원을 확보하고, 공장 건설 시점에 맞춰 실제 공급이 이뤄지도록 관리해야 한다. 국회도 관련 법률과 예산을 제때 처리하고, 사업이 지역별 정치 논리에 휘둘리지 않도록 살펴야 한다.
정부가 내건 목표는 공장이 들어서고 반도체가 생산되는 데서 성과를 보여야 한다. 산업단지를 지정하고 업무협약을 맺었다고 기업 투자가 끝난 것은 아니다. 전력 공급 협약이 체결됐더라도 실제 전기가 들어오지 않으면 공장은 돌릴 수 없다. 용수 계획도 마찬가지다. 발표한 계획이 현장에서 이행되는지, 일정이 지켜지는지, 민간 투자가 실제로 이어지는지를 따져야 한다.
첨단산업 투자는 시간을 다투는 일이다. 부처마다 자기 책임만 따지고 결정을 미루는 동안 기업은 투자 시기를 놓치고, 지역은 일자리를 만들 기회를 잃는다. 정부가 내세운 국가 전략산업을 정부 스스로 늦추는 일이 벌어져서는 안 된다. 대통령과 내각은 부처 간 이견을 정리하고, 약속한 일정을 지키도록 끝까지 책임져야 한다. 기업은 정부의 구호가 아니라 실제로 공장을 지을 수 있는 조건을 보고 투자한다. 그 조건을 마련하는 것이 정부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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