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석진건설부동산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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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공시지가, 집값보다 더 오른 이유는
서울의 공동주택 공시가격이 올해 큰 폭으로 올랐다. 일부 지역에서는 상승률이 두 자릿수를 훌쩍 넘는다. 시장에서 체감하는 집값의 움직임과는 결이 다르다. 거래가 뜸해졌다는 이야기가 이어지는 와중에 공시가격만 가파르게 올라간 듯 보이는 장면은 많은 이들에게 낯설다. 같은 부동산을 두고도 ‘가격’이 둘로 갈라진 것처럼 느껴지는 순간이다. 이 괴리는 우선 시간의 문제에서 비롯된다. 공시가격은 시장의 흐름을 실시간으로 따라가지 않는다. 일정 시점을 기준으로 수집된 거래 사례와 평가 자료를 토대로 산정된다. 그 사이 시장은 이미 방향을 틀기도 한다. 지난해 특정 지역에서 나타났던 상승 흐름이 뒤늦게 반영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시장이 숨을 고르는 구간에서도 공시가격은 과거의 상승분을 품은 채 올라오는 이유다. 체감과 수치 사이에 간극이 생기는 배경이다. 가격의 분포가 달라진 점도 빼놓기 어렵다. 최근 부동산 시장은 전반적 상승이라기보다 특정 지역과 자산으로 수요가 쏠리는 모습에 가깝다. 이른바 ‘상급지’로 불리는 지역의 가격은 크게 움직이고, 외곽이나 수요가 약한 곳은 정체되거나 미미한 변동에 그친다. 문제는 공시가격이 이런 차이를 그대로 드러내기보다 일정한 기준 아래 묶어내려는 성격을 가진다는 데 있다. 일부 지역의 급등이 전체 수치를 끌어올리는 효과가 나타나고, 상대적으로 변화가 적은 지역까지 상승 흐름 속에 포함된 것처럼 보이게 된다. 산정 방식의 특성도 영향을 준다. 공시가격은 개별 거래를 하나하나 따라가기보다 대표성이 있다고 판단되는 사례를 중심으로 평가된다. 이 과정에서 가격이 빠르게 오른 지역의 사례가 기준점 역할을 하게 되면, 그 영향이 주변으로 확산된다. 시장은 점점 더 나뉘고 있는데, 공시가격은 이를 한 틀 안에 담으려 하면서 체감과의 거리가 벌어진다. 여기에 제도적 성격도 겹친다. 공시가격은 단순한 참고 수치에 그치지 않는다. 보유세를 비롯한 각종 부담의 기준이 된다. 세제와 연결되는 순간, 공시가격은 시장의 결과를 반영하는 수치이면서 동시에 정책의 도구가 된다. 같은 숫자라도 어떤 기준을 택하고 어떤 속도로 반영하느냐에 따라 납세자가 느끼는 부담은 달라진다. 이 지점에서 공시가격은 ‘시장 가격’과는 다른 성격을 띠게 된다. 결국 공시가격이 집값보다 더 오른 것처럼 보이는 현상은 단일한 원인으로 설명되기 어렵다. 시간의 간극, 가격 상승의 편중, 평가 방식의 특성, 그리고 정책과의 연결이 겹쳐 만들어낸 결과에 가깝다. 시장은 이미 여러 갈래로 나뉘어 움직이고 있는데, 이를 하나의 지표로 담아내는 과정에서 균열이 드러난 셈이다. 문제는 이 괴리가 반복될수록 신뢰가 흔들릴 수 있다는 점이다. 공시가격은 단순한 통계가 아니라 국민 다수의 부담과 직결된 기준이다. 시장과 동떨어졌다는 인식이 쌓이면 제도 전반에 대한 의문으로 이어질 수 있다. 숫자를 둘러싼 논쟁이 커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상승률을 둘러싼 공방이 아니다. 어떤 기준으로 가격을 읽어낼 것인지, 그 결과를 어떻게 부담으로 연결할 것인지에 대한 설계다. 시장은 계속 변하고, 가격은 그 변화의 결과다. 이를 담아내는 방식이 현실과 너무 멀어지지 않도록 조정하는 일은 정책의 몫이다. 공시가격을 둘러싼 논란은 그 출발점에 서 있다.
2026-03-18 07:4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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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르그 섬의 어제와 오늘 ②] 이란 전쟁의 심장부 하르그섬…석유 터미널과 군사 거점
중동의 전쟁을 이야기할 때 시선은 대개 사막과 수도, 핵시설과 미사일 기지에 쏠린다. 그러나 이번 이란 전쟁 국면에서 세계가 다시 확인한 사실이 있다. 국가의 운명을 좌우하는 곳은 때로 수도가 아니라 항구다. 궁전이 아니라 저장탱크이고, 국경선이 아니라 바다 위의 작은 섬이다. 이란 남부 페르시아만 북부 해상에 떠 있는 하르그섬이 바로 그런 곳이다. 면적은 약 20㎢ 남짓이지만 이란 원유 수출의 약 90%가 이 섬을 거쳐 세계 시장으로 나간다. 하르그섬의 첫인상은 의외로 소박하다. 뉴욕 맨해튼의 약 3분의 1 크기, 이란 해안에서 약 26㎞ 떨어진 산호성 섬, 호르무즈 해협에서 북서쪽으로 약 483㎞ 떨어진 위치. 숫자만 보면 세계를 뒤흔들 전략 거점으로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지정학은 언제나 면적이 아니라 위치로 결정된다. 하르그섬의 가장 큰 강점은 이란 본토 해안과 달리 주변 해역 수심이 깊다는 점이다. 이란 본토의 많은 해안은 진흙질이고 얕아 초대형 유조선이 접근하기 어렵다. 반면 하르그섬 주변 해역은 대형 선박 접안이 가능하다. 이 자연 조건 때문에 이 섬은 오래전부터 ‘대형 선박이 접근 가능한 드문 섬’이었다. 현대 석유 산업이 시작되자 이 지형은 곧바로 전략적 가치로 바뀌었다. 하르그섬은 단순한 항만이 아니다. 파이프라인과 저장탱크, 선적 터미널과 해상 부두, 보급시설과 근로자 주거지가 결합된 거대한 에너지 복합체다. 로이터에 따르면 이 섬의 저장 능력은 약 3천만 배럴에 이른다. 3월 초 기준 약 1천800만 배럴의 원유가 이곳에 보관돼 있었다. 이란은 올해 들어 하루 평균 약 170만 배럴의 원유를 수출했는데 그 가운데 약 155만 배럴이 하르그섬을 통해 나갔다. 전쟁 직전인 2월에는 수출량이 하루 217만 배럴 안팎까지 늘었다. 2월 16일이 낀 주간에는 하루 379만 배럴이라는 기록적 선적량도 관측됐다. 이 수치는 단순한 물류 통계를 넘어선다. 하르그섬이 멈추면 이란의 외화 수입은 급격히 줄어든다. 국가 재정과 환율, 군수 조달과 사회 안정까지 동시에 흔들릴 수 있다. 그래서 하르그섬은 흔히 이란의 ‘왕관보석’이자 ‘경제적 심장부’로 불린다. 하르그섬의 석유 인프라가 대체하기 어려운 이유는 세 가지다. 첫째, 파이프라인 연결 구조다. 이란 주요 유전에서 생산된 원유가 육상 파이프라인을 통해 하르그섬 터미널로 모인다. 둘째, 저장과 선적 기능이 한곳에서 결합돼 있다. 저장탱크에 모인 원유가 곧바로 해상 부두와 선적 시설로 이어진다. 셋째는 해상 접근성이다. 본토의 얕은 수심으로는 불가능한 초대형 원유 운반선 접안이 이 섬 주변에서는 가능하다. 결국 하르그섬은 본토가 해결하지 못하는 지리적 한계를 대신하는 산업적 장치다. 석유 탱크 몇 개만의 문제가 아니라 파이프라인과 항만 접근성 전체가 결합된 체계이기 때문에 대체가 쉽지 않다. 군사적 관점에서 보면 하르그섬은 더 복합적이다. 이번 공습에서 미국이 타격했다고 밝힌 목표물은 해군 기뢰 저장시설과 미사일 벙커 등 약 90개의 군사 시설이었다. 이 사실만 보아도 하르그섬이 순수한 민간 에너지 시설이 아니라는 점을 알 수 있다. 이 섬은 석유를 실어 나르는 경제 인프라이면서 동시에 이를 방어하고 주변 해역을 통제하기 위한 군사 거점이기도 하다. 저장시설을 보호하기 위해 방공망과 벙커가 필요하고 해군과 혁명수비대 전력이 배치된다. 필요할 경우 해상 교통로를 압박하기 위한 기뢰와 미사일, 감시 자산도 결합된다. 그래서 미국과 이스라엘도 하르그섬을 오래도록 ‘레드라인’에 가까운 목표로 다뤄 왔다. 군사시설은 타격할 수 있지만 석유 인프라 전체를 파괴하는 순간 전쟁은 다른 차원으로 넘어간다. 세계 원유 시장을 직접 흔드는 경제전으로 확장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로이터는 이란산 해상 원유가 중국 수입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약 11.6%에 이른다고 전했다. 하르그섬은 이란만의 문제가 아니라 아시아 에너지 수급과도 연결된 시설이다. 이곳이 완전히 마비될 경우 국제 원유시장과 해운보험, 운임, 전략비축유 정책까지 영향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하르그섬의 역사는 석유보다 훨씬 오래됐다. 이 섬에는 고대 점유 흔적이 남아 있다. 대표적인 유적은 동쪽과 남쪽에 있는 대형 암석 절개 묘실이다. 두 무덤 가운데 하나는 깊이가 약 13m에 이르는 것으로 기록돼 있다. 이 유적은 이 섬이 단순한 무인도가 아니라 오래전부터 사람이 살고 교역하던 장소였음을 보여 준다. 일부 학자들은 묘실 양식이 팔미라 상인 집단과의 교류를 시사한다고 보기도 한다. 섬 서쪽에서는 기독교 교회와 수도원 유적도 발견됐다. 이는 하르그섬이 한때 동방기독교 전통과 연결된 공간이었음을 보여 준다. 페르시아만은 석유의 바다가 되기 훨씬 전부터 종교와 상업, 언어가 교차하는 해상 교역로였다. 중세와 근세의 하르그섬 역시 중요한 무역 거점이었다. 이 섬에서는 진주와 농산물이 거래됐고 18세기에는 네덜란드 동인도회사가 교역 거점을 설치하기도 했다. 그러나 1765년 현지 세력에 의해 축출됐다. 이 사건은 하르그섬의 전략적 가치가 석유 시대에 처음 생긴 것이 아님을 보여 준다. 담수와 정박성, 항로 접근성이라는 조건은 오래전부터 이 섬의 경쟁력이었다. 현대의 하르그섬은 1950~60년대 석유 개발과 함께 결정적으로 변했다. 팔레비 왕정 시기 미국 석유회사 아모코와 협력해 이 섬에 대형 원유 수출 터미널이 건설됐다. 유전과 연결된 파이프라인, 저장 설비, 심해 부두와 선적 시설이 단계적으로 들어섰다. 작은 섬 하나가 사실상 ‘해상 수출 공장’으로 변한 것이다. 국제 에너지 전문가들이 하르그섬을 이란 석유 수출의 핵심 터미널로 설명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런 구조는 전쟁 때 취약성으로 되돌아온다. 1980년대 이란·이라크 전쟁에서 하르그섬은 주요 공격 목표였다. 이라크는 이란의 경제적 숨통을 조이기 위해 이 섬과 연결된 유조선과 시설을 반복적으로 공격했다. 그럼에도 하르그섬은 완전히 기능을 잃지 않았다. 이란은 일부 수출 경로를 다른 섬으로 우회하면서도 이곳의 방어와 복구를 계속했다. 하르그섬이 맞으면 아프지만 쉽게 무력화되는 시설은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 준 사례였다. 결국 하르그섬은 이란의 취약점이면서 동시에 세계의 취약점이다. 이 섬에는 세계 원유 공급망과 아시아 수입국의 에너지 안보, 해운과 보험, 외교와 금융이 함께 얽혀 있다. 고대의 암석 묘실, 기독교 수도원 유적, 중세의 무역항, 근세의 동인도회사, 20세기의 저장탱크와 파이프라인, 그리고 오늘의 군사 벙커와 위성 감시. 이 모든 층위가 하나의 섬 위에 겹쳐져 있다. 그래서 하르그섬을 이해하려면 단순히 “이란 원유의 90%가 지나가는 곳”이라는 설명만으로는 부족하다. 왜 이 작은 섬이 수천 년 동안 권력과 자본, 군대의 시선을 동시에 끌어왔는지를 함께 봐야 한다. 그 질문 앞에서 하르그섬은 단순한 뉴스 속 지명이 아니라 페르시아만 문명과 산업 지정학이 교차하는 살아 있는 교과서가 된다.
2026-03-17 06: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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