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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출은 늘고 고용효과는 줄었다…성장의 성적표를 바꿀 때
[경제일보] 반도체가 날아오르자 수출이 늘고 기업의 이익도 커졌다. 수출이 한국 경제의 생산과 부가가치에서 차지하는 몫 역시 확대됐다. 하지만 일자리의 움직임은 달랐다. 수출이 만들어내는 경제적 성과는 커졌지만, 같은 금액의 수출이 유발하는 고용은 오히려 줄었다. 한국은행이 21일 발표한 2024년 산업연관표가 보여준 한국 경제의 단면이다. 수출 호황이 곧바로 고용과 가계소득의 증가로 이어진다는 익숙한 성장 공식에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숫자는 선명하다. 2024년 국내 생산 가운데 수출이 유발한 비중은 전년 32.7%에서 35.1%로, 부가가치 비중은 25.4%에서 28.2%로 높아졌다. 전 산업의 부가가치율도 41.2%에서 42.0%로 상승했다. 반도체를 중심으로 한 수출 회복과 수출 공산품의 영업잉여 증가, 수입 원자재 가격 하락 등이 영향을 미쳤다. 반면 수출 10억원당 취업유발계수는 5.4명에서 5.0명으로 떨어졌다. 전 산업 평균도 8.2명에서 7.8명으로 낮아졌다. 수출이 국민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커졌는데, 단위 수요가 만들어내는 일자리의 수는 감소한 것이다. 이는 단순히 경기의 좋고 나쁨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변화다. 한국 경제를 이끄는 산업의 성격 자체가 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반도체는 대표적인 자본집약 산업이다. 최첨단 공장 하나를 짓는 데 수십조원이 들어간다. 생산량과 수익성을 좌우하는 것은 대규모 설비와 미세공정, 자동화 기술과 수율이다. 숙련된 엔지니어와 연구개발 인력의 중요성은 크지만, 생산이 늘어난다고 고용이 같은 비율로 증가하지는 않는다. 그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더 적은 노동으로 더 많은 가치를 생산하는 것은 생산성 향상의 본질이다. 이를 거슬러 일자리를 늘리겠다고 자동화를 늦추거나 불필요한 인력을 유지한다면 글로벌 경쟁에서 살아남기 어렵다. 문제는 이러한 산업이 성장을 주도할수록 기업의 실적과 국민이 체감하는 경기 사이에 간격이 벌어질 수 있다는 데 있다. 수출이 급증해도 신규 채용은 그만큼 늘지 않을 수 있다. 늘어난 이익이 설비투자와 연구개발, 임금과 배당으로 배분되더라도 그 혜택이 모든 산업과 지역에 고르게 전달되는 것은 아니다. 반도체 공장의 생산성 향상이 주변 협력업체의 매출과 고용, 가계의 구매력으로 이어지는 경로가 얼마나 튼튼한지가 중요해지는 이유다. 여기서 통계를 정확히 읽을 필요가 있다. 2024년 전체 취업자 수는 2857만6000명으로 전년보다 15만9000명 증가했다. 그러나 주 40시간 근무를 기준으로 환산한 전업환산 취업자는 2596만명으로 2만8000명 감소했다. 한국은행은 건설업과 농림수산업의 고용 감소, 근로시간이 짧은 노인 일자리 증가 등을 배경으로 설명했다. 이를 반도체 호황 때문에 전체 일자리가 줄었다는 뜻으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 짧은 근로시간이 반드시 나쁜 일자리를 의미하는 것도 아니다. 실제로 상용직 비중은 61.0%에서 61.3%로 높아졌다. 그럼에도 취업자 수와 실제 노동 투입량이 서로 다른 방향으로 움직였다는 사실은 주목할 만하다. 고용 인원만으로 노동시장의 변화를 온전히 설명하기 어렵다는 의미다. 수출의 고용 기여도 역시 마찬가지다. 2024년 전체 취업자 가운데 수출이 유발한 비중은 20.7%에서 22.2%로 상승했다. 수출이 일자리를 만드는 역할까지 줄어든 것은 아니다. 수출 규모가 커지면서 전체 고용에서 차지하는 몫은 확대됐지만, 수출 10억원당 취업유발 인원은 감소했다. 수출의 양적 성장과 고용 창출의 효율을 구분해야 산업구조의 변화가 제대로 보인다. 이제 산업의 성과를 설명하는 숫자도 더 정교해질 필요가 있다. 그동안 첨단산업의 경쟁력은 수출액과 설비투자 규모, 세계시장 점유율을 중심으로 평가돼 왔다. 반도체 수출이 얼마나 늘었는지, 어느 기업이 수십조원을 투자하는지, 글로벌 시장에서 몇 위를 차지했는지가 산업정책의 성적표를 채웠다. 모두 중요한 지표다. 수출과 투자가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고용과 소득을 늘릴 기반도 약해진다. 다만 그것만으로 한 산업의 성과가 국민경제에 얼마나 넓고 깊게 전달됐는지는 알기 어렵다. 가령 수출액이 크게 늘었더라도 핵심 소재와 장비를 대부분 해외에서 들여왔다면 국내에 남는 부가가치는 달라질 수 있다. 반대로 국내 설계와 소재·부품·장비, 소프트웨어 기업이 함께 성장했다면 생산과 고용의 파급효과는 더 넓게 나타날 여지가 있다. 반도체 공장 하나의 경제적 의미도 공장 안에서만 계산할 수 없는 까닭이다. 그 공장이 국내 협력업체의 기술을 얼마나 끌어올렸는지, 연구개발과 전문서비스 분야에 어떤 수요를 만들었는지, 생산성이 높아진 성과가 임금으로 얼마나 연결됐는지를 함께 살펴봐야 한다. AI와 자동화의 확산은 이러한 질문을 더욱 중요하게 만든다. AI는 일부 업무를 대체하는 동시에 새로운 직무와 수요를 만들어낼 수 있다. 어떤 효과가 더 크게 나타날지는 산업의 특성과 기술 도입 방식, 노동자의 직무전환 능력에 따라 달라진다. 자동화 투자가 늘어난다는 이유만으로 고용이 감소한다고 단정할 수도, 첨단산업이 성장하니 양질의 일자리도 저절로 늘 것이라고 기대할 수도 없다. 고용의 양과 질을 결정하는 것은 결국 생산성 향상의 성과가 어디로 흘러가느냐다. 노동자 한 사람이 더 많은 가치를 만들어내고 그 성과가 임금 상승으로 이어진다면 신규 채용이 크게 늘지 않더라도 가계소득은 개선될 수 있다. 반대로 기업의 부가가치는 커지는데 노동소득이 정체된다면 수출 호황이 소비로 이어지는 힘은 약해질 수 있다. 물론 이번 산업연관표만으로 임금 분배나 가계의 체감경기가 악화했다고 결론 내릴 수는 없다. 산업별 임금과 노동소득분배율, 신규 채용과 고용 유지, 가계 소비를 함께 살펴야 확인할 수 있는 문제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수출액 하나로 성장의 성과를 설명하는 방식에는 한계가 있다. ‘논어’ 학이편에서 유자(有子)는 ‘본립이도생(本立而道生, 근본이 서야 길이 열린다)’고 했다. 경제성장의 근본은 더 많은 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는 생산성에 있다. 다만 그 성과가 기업의 장부에서 끝나지 않고 국민의 소득과 생활로 어떻게 이어지는지까지 살펴야 성장의 모습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다. 반도체의 성공을 깎아내릴 이유는 없다. 세계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한 첨단산업은 한국 경제가 가진 소중한 자산이다. 그 산업의 생산성을 낮춰 일자리를 억지로 늘리는 방식도 지속 가능하지 않다. 하지만 수출이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는 소식과 일자리를 구하기 어렵다는 국민의 체감이 동시에 존재할 수 있다는 현실은 놓쳐서는 안 된다. 기업의 실적이 좋아졌다는 사실과 국민의 삶이 나아졌다는 판단 사이에는 확인해야 할 과정이 남아 있다. 한국은행의 산업연관표는 그 과정을 들여다볼 출발점이다. 수출이 얼마나 늘었는지뿐 아니라 국내에 얼마의 부가가치를 남겼고, 어떤 일자리를 만들었으며, 생산성 향상이 임금과 소득에 어떻게 반영됐는지 함께 살펴볼 때 성장의 성과를 더 정확하게 측정할 수 있다. 반도체가 높이 날아오른 것은 분명하다. 이제 살펴야 할 것은 그 성장의 힘이 한국 경제의 다른 산업과 노동자, 가계에 얼마나 넓게 닿고 있는가다. 수출은 성장의 출발점이다. 그 성과가 국민의 소득과 일자리로 이어지는 과정까지 보여줄 때 비로소 성장의 성적표가 완성된다.
2026-09-22 13: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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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00억달러 대미투자, 밀실 협상으로 결정할 돈 아니다
[경제일보] 정부가 3500억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 패키지 중 첫 투자사업과 관련한 협상 상황을 국회에 보고한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는 22일 오전 산업통상부로부터 관련 내용을 비공개로 보고받을 예정이다. 당초 17일로 예정됐던 보고가 한미 협상이 마무리되지 않아 연기된 지 닷새 만이다. 재정경제기획위원회도 같은 날 보고 일정을 협의하고 있다. 논의되는 사업의 규모부터 예사롭지 않다. 한미가 협의 중인 3500억달러 중 1500억달러는 조선 분야에 배정되고, 나머지 2000억달러 규모의 전략투자를 놓고 세부 협상이 진행되고 있다. 현재 텍사스 엔시날의 6.3GW 가스복합화력발전소, 미국 내 대형 원전 건설, 알래스카 액화천연가스(LNG) 사업 등이 후보로 거론된다. 로이터는 텍사스 발전소 사업비만 약 223억달러 규모이며 원전도 최대 8기가 논의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아직 어느 사업에 얼마를 투자할지는 최종 확정되지 않았다. 대미 투자는 단순한 해외투자가 아니다. 지난해 한미 통상협상에서 미국의 대한국 관세를 15% 수준으로 낮추는 합의와 함께 마련된 경제협력의 핵심 축이다. 미국 시장에 대한 접근성을 지키고 조선·원전·에너지 등 한국 기업의 사업 기회를 넓힐 수 있다는 점에서 전략적 의미도 작지 않다. 그렇다고 외교·통상의 필요성이 투자 판단의 기본원칙까지 대신할 수는 없다. 정부 역시 상업성이 확보되는 사업에 투자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이재명 대통령도 최근 협상 내용 가운데 동의하기 쉽지 않은 부분이 있어 다시 협의하고 있다는 취지로 설명했다. 문제는 이제부터다. 투자 규모가 수백조원에 이르는 만큼 무엇에 투자하느냐뿐 아니라 누가 위험을 부담하고 손실이 발생하면 누가 책임지는지도 따져야 한다. 정부가 정책금융이나 보증 등 공적 수단을 활용한다면 일반 기업의 해외투자보다 오히려 더 엄격한 원칙이 적용돼야 한다. 투자주체와 사업별 투자금액은 물론 예상 수익률, 투자기간, 회수조건, 환율 위험과 손실부담 구조를 따져야 한다. 사업이 실패했을 때 정부와 금융기관, 참여 기업 가운데 누가 어느 정도까지 손실을 부담하는지도 분명해야 한다. 수익은 사업자에게 돌아가면서 위험은 국민이나 공적 금융기관이 떠안는 구조가 된다면 곤란하다. 특히 상업성은 선언으로 보장되지 않는다. 미국에 발전소와 원전을 건설하는 사업은 투자금 회수에 긴 시간이 필요하다. 사업비 증가와 금리, 전력가격, 인허가, 환율 등 변수도 적지 않다. 알래스카 LNG처럼 경제성을 면밀히 따져야 할 사업도 마찬가지다. 동맹이라는 이유로 투자심사표의 숫자가 달라져서는 곤란하다. 실제 한미는 상업적 합리성의 구체적인 조건을 놓고 막판 협상을 이어가고 있다. 국회의 역할도 중요하다. 이번 산자위 보고가 비공개로 예정된 데는 협상이 진행 중이라는 현실적인 이유가 있다. 국가 간 협상에는 상대에게 공개해서는 안 될 전략과 조건이 존재한다. 모든 내용을 실시간으로 공개하라는 것은 현실적이지 않다. 그러나 협상 과정의 비밀과 국민에 대한 설명책임은 다른 문제다. 협상이 끝난 뒤에도 핵심 조건까지 비공개로 남겨서는 안 된다. 영업비밀과 협상전략은 보호하더라도 공적자금이 얼마나 투입되는지, 어떤 기준으로 사업의 상업성을 판단했는지는 국민이 알아야 한다. 정부가 어떤 위험을 부담하는지도 설명해야 한다. 3500억달러라는 경제적 약속이 외교협상이라는 이유로 블랙박스가 돼서는 안 된다. 국회도 보고를 받는 데 그쳐서는 곤란하다. 산자위 관계자는 협상 결과 투자액이 늘거나 한국이 손해를 부담할 부분이 있다면 내용을 따져보고 향후 국회 동의가 필요한지도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미국 측이 검토를 요구한 사업의 규모와 조건을 면밀히 따져 투자 총액과 정부 부담의 범위를 명확히 하는 것이 중요하다. 대규모 해외투자는 외교적 성과와 경제적 수익성이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다. 정부에는 양국 관계와 통상환경을 고려해야 할 책임이 있지만 동시에 국민경제에 과도한 위험이 전가되지 않도록 해야 할 책임도 있다. 이 두 가지가 충돌할 때 무엇을 기준으로 결정했는지를 설명하는 것 역시 정부의 몫이다. 한미 경제협력을 확대하는 것은 필요하다. 한국 기업이 미국의 에너지·원전·조선 시장에 진출할 기회를 넓히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나 투자 규모가 클수록 원칙은 더 엄격해야 한다. 국익이라는 말이 경제성 검토를 대신해서도, 동맹이라는 이름이 투자 위험을 가려서도 안 된다. 3500억달러 대미투자는 한 정부의 임기 안에서 끝나는 사업이 아니다. 사업에 따라 수십 년 동안 국민경제와 기업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정부는 협상할 때는 국익을 지키고 투자할 때는 상업성을 따져야 한다. 이후 협상이 끝난 뒤에는 국민에게 설명해야 한다. 외교에는 비밀이 필요하지만 국민이 위험을 부담하는 투자에는 투명성이 필요하다. 이는 수백조원짜리 국가적 투자를 결정할 때 지켜야 할 최소한의 원칙이다.
2026-09-21 10: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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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원구성 답보…법사위 싸움에 민생경제 볼모 잡혔다
[경제일보] 22대 국회 하반기 원구성이 또다시 멈춰 섰다. 국회 의장단은 선출됐지만 정작 국회를 굴러가게 할 상임위원장 배분은 법제사법위원회 문턱에서 막혀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집권 여당으로서 국정과제와 민생입법을 뒷받침하려면 법사위원장을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국민의힘은 입법의 최종 관문인 법사위를 야당이 맡아야 견제와 균형이 가능하다고 맞선다. 여기에 정무위원회, 재정경제기획위원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등 주요 경제 상임위원장 배분까지 얽히면서 협상은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국회가 또 자리 싸움에 갇혔다. 여당은 책임정치를 말하고, 야당은 견제정치를 말한다. 말만 놓고 보면 둘 다 그럴듯하다. 그러나 국민 눈에는 다르게 보인다. 법사위원장 자리를 누가 차지하느냐는 정치권의 권력 계산일 뿐이다. 국민에게 더 절박한 것은 대출금리, 장바구니 물가, 전기요금, 일자리, 집값, 세금이다. 국회가 상임위원장 명패를 놓고 힘겨루기를 하는 사이 가계의 이자 부담은 줄지 않고 기업의 투자 결정은 미뤄지며 정부 정책은 국회 문턱에서 멈춰 선다. 법사위는 국회 입법의 수문장이다. 각 상임위를 통과한 법안은 법사위의 체계·자구 심사를 거쳐 본회의로 간다. 그래서 여야가 법사위원장을 놓고 물러서지 않는 것이다. 여당은 법사위를 야당에 넘기면 국정과제 입법이 막힐 수 있다고 본다. 야당은 여당이 법사위까지 장악하면 입법 독주를 막을 장치가 사라진다고 우려한다. 양쪽 모두 나름의 논리는 있다. 그러나 법사위가 입법 품질을 높이는 관문이 아니라 정쟁의 병목으로 변질된다면 그 논리는 국민 앞에서 설 자리를 잃는다. 더 심각한 것은 경제 상임위 공백이다. 정무위는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 공정거래위원회 등 금융시장과 공정거래 질서를 다루는 핵심 상임위다. 재경위는 세제와 재정, 거시경제 정책을 좌우한다. 산자위는 반도체, 에너지, 통상, 산업경쟁력의 최전선이다. 예결위는 정부 예산의 마지막 문턱이다. 지금 한국 경제는 구조개혁과 경기 대응이 동시에 필요한 시점이다. 자본시장 밸류업, 가계부채 관리,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 부실 정리, 금융소비자 보호, 소상공인 지원, 반도체·AI·에너지 투자, 세수 관리, 민생 예산 조정이 모두 국회 논의와 맞물려 있다. 국회가 멈추면 경제정책도 멈춘다. 그 피해는 가장 먼저 가계로 간다. 금융 취약계층 지원, 서민금융 보강, 전세사기 피해 지원, 소상공인 채무조정, 통신비·에너지비 부담 완화 같은 민생 법안은 상임위가 열려야 논의된다. 여야가 법사위 명패를 두고 기 싸움을 벌이는 동안 서민은 이자 고지서를 먼저 받는다. 국회의 하루 공전은 정치권에는 협상 전략일지 몰라도 가계에는 생활비 압박이다. 민생을 입에 달고 사는 정치가 정작 민생의 시간을 갉아먹고 있다. 기업도 피해자다. 기업은 불확실성을 가장 싫어한다. 세법이 어떻게 바뀔지, 산업지원 예산이 유지될지, 금융규제가 풀릴지 조여질지, 노동·환경·공정거래 규정이 어느 방향으로 갈지 알 수 없으면 투자를 미룬다. 투자가 늦어지면 고용도 늦어진다. 특히 반도체, 배터리, 조선, 방산, AI 데이터센터, 에너지 인프라처럼 대규모 자본 투자가 필요한 산업은 국회와 정부의 정책 신호에 민감하다. 정치권이 상임위 배분을 놓고 시간을 허비하는 동안 해외 경쟁자는 투자 속도를 높인다. 국회의 정쟁은 기업에는 비용이고 국가경제에는 기회 손실이다. 정부도 발목이 잡힌다. 정부는 예산과 법률이라는 두 바퀴로 움직인다. 아무리 좋은 경제정책도 국회 상임위에서 논의되지 않으면 종이 위 계획에 머문다. 경기 대응책을 내놓아도 입법과 예산 뒷받침이 없으면 효과는 반감된다. 정부가 국회를 우회하려 하면 행정 독주 논란이 생기고 국회가 정부를 무조건 막으면 국정 마비가 된다. 여당은 다수의 힘을 절제해야 하고 야당은 견제의 이름으로 국회 정상화를 볼모로 삼아서는 안 된다. 지금의 대치는 어느 한쪽만의 책임으로 돌릴 수 없다. 양쪽 모두 국민경제 앞에서 책임을 방기하고 있다. <논어>에는 “군자는 의로움에 밝고, 소인은 이익에 밝다”는 말이 있다. 국회가 지금 밝아야 할 것은 자리의 이익이 아니라 국민의 고통이다. 상임위원장 자리가 권력 배분의 전리품처럼 취급되는 순간 국회는 민의를 대표하는 기관이 아니라 정당 간 점령지가 된다. 법사위가 누구 손에 들어가느냐보다 중요한 것은 법사위가 국민을 위해 작동하느냐다. 정무위가 어느 당 몫이냐보다 중요한 것은 금융시장 안정과 소비자 보호, 공정거래 질서가 제대로 논의되느냐다. 정치권은 원구성 협상이 어려운 일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국민이 보기에는 어렵다기보다 염치가 없어 보인다. 국회는 다수결만으로 움직여서도 안 되지만 소수의 발목잡기로 멈춰서도 안 된다. 다수당은 책임 있게 의제를 추진하되 야당의 견제 공간을 보장해야 한다. 야당은 견제하되 국회 공백을 협상 카드로 써서는 안 된다. 상임위원장 배분은 정치적 협상의 대상일 수 있지만 국회 마비는 협상의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 정치권이 계산해야 할 것은 의석수가 아니라 손실이다. 국회가 하루 늦어질 때 민생 법안은 얼마나 밀리는가. 금융시장 불확실성은 얼마나 커지는가. 기업 투자 결정은 얼마나 지연되는가. 정부 예산 심사는 얼마나 압박받는가. 이런 비용표를 국민 앞에 내놓는다면 여야가 지금처럼 쉽게 강대강 대치를 이어갈 수 있겠는가. 국민은 법사위원장 이름보다 자신의 대출금리를 더 걱정한다. 정무위원장 배분보다 금융사고와 불완전판매 방지를 더 원한다. 예결위원장 몫보다 내년 예산이 어디에 쓰일지를 더 궁금해한다. 기업은 어느 당이 상임위를 차지했는지보다 정책의 예측 가능성을 원한다. 정부는 정쟁의 승리가 아니라 실행 가능한 국정 동력을 필요로 한다. 국회는 싸우라고 있는 곳이다. 그러나 싸움에도 순서가 있다. 먼저 문을 열고 회의를 열고 법안을 올리고 예산을 따져야 한다. 그다음에 치열하게 다투면 된다. 문도 열지 않은 채 열쇠를 누가 쥘지만 다투는 정치는 국민에게 설명할 수 없다. 국회를 열지 않는 정치는 견제가 아니라 직무유기다. 22대 국회 하반기 원구성 협상은 단순한 자리 싸움이 아니다. 한국 경제가 정치 리스크를 얼마나 더 견딜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시험대다. 여야가 법사위와 경제 상임위를 놓고 끝까지 힘겨루기를 벌인다면 그 비용은 국회가 아니라 국민이 낸다. 가계는 이자로 내고 기업은 투자 지연으로 내며 정부는 정책 실기라는 이름으로 낸다. 경제는 기다려주지 않는다. 국회가 멈춰도 시장은 움직이고 국회가 싸워도 국민의 청구서는 날아온다. 여야가 정말 민생을 말하려면 원구성부터 끝내야 한다. 권한을 나누는 협상보다 책임을 나누는 합의가 먼저다. 국회의 주인은 정당이 아니라 국민이다. 그 상식을 잊는 순간, 원구성 싸움은 정치의 문제가 아니라 경제의 위험이 된다.
2026-06-29 16: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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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은행 63년…서민금융 전용은행서 리딩뱅크 KB로
KB금융그룹의 역사는 한국 서민금융과 주거금융의 성장사와 맞닿아 있다. 출발점은 1963년 2월 설립된 국민은행이었다. 국민은행은 서민의 목돈 마련과 생활금융을 지원하기 위해 태어난 은행이었다. 1967년에는 한국주택금고를 뿌리로 한 주택은행이 설립됐다. 국민은행이 서민 리테일 금융의 상징이었다면, 주택은행은 내 집 마련과 주택금융의 상징이었다. 국민은행의 DNA는 처음부터 생활금융에 가까웠다. 당시 금융의 중심이 기업대출과 정책금융에 놓여 있었다면 국민은행은 일반 국민과 가계의 금융 접근성을 넓히는 역할을 맡았다. 목돈마련저축, 국민카드, 자동화기기, 온라인 시스템 등 국민 생활과 맞닿은 금융 인프라를 확장하며 서민과 자영업자, 월급생활자가 가장 먼저 떠올리는 은행으로 자리 잡았다. ◆서민금융·주택금융 DNA…국민·주택은행 합병으로 리딩뱅크 기틀 국민은행의 성장은 한국 가계금융의 성장과 함께했다. 1994년 총수신 20조원, 1996년 총수신 30조원을 넘어섰고, 1998년에는 금융기관 최초로 총수신 50조원을 돌파했다. 같은 해 대동은행을 자산·부채 이전 방식으로 인수했고 한국장기신용은행도 합병했다. 장기신용은행 합병은 국민은행이 리테일 은행의 틀을 넘어 기업금융과 장기금융 역량까지 넓히는 계기가 됐다. 또 하나의 축은 주택은행이었다. 주택은행은 △청약예금 △주택채권 △주택금융신용보증기금 관리 △주택 관련 금융업무 등을 통해 한국의 주거금융 체계를 떠받쳤다. 국민은행과 주택은행은 서로 다른 뿌리를 가졌지만 서민의 저축과 주거, 생활금융을 책임져 왔다는 점에서 같은 방향을 보고 있었다. 결정적 변곡점은 2001년 국민·주택은행 합병이었다. 서민금융과 주거금융, 리테일 고객 기반과 주택금융 역량이 결합한 대전환이었다. 외환위기 이후 금융 구조조정과 대형화 경쟁 속에서 국민은행은 장기신용은행, 대동은행, 주택은행을 품으며 단숨에 초대형 은행으로 변신했다. ◆지주사 전환과 비은행 확장…KB사태 뒤 시스템 경영 강화 KB의 2차 도약은 금융지주사 전환이었다. KB금융지주는 2008년 9월 공식 출범했다. 출범 당시 KB금융은 국민은행을 중심으로 KB투자증권, KB생명, KB부동산신탁, KB자산운용 등을 거느린 총자산 320조원 규모의 금융지주회사였다. 은행 중심 금융회사에서 증권·보험·카드·자산운용을 아우르는 종합금융그룹으로 방향을 바꾼 것이다. 비은행 포트폴리오 확대는 KB금융의 오랜 과제였다. 국민은행의 리테일 경쟁력은 압도적이었지만, 은행 의존도가 높다는 점은 약점이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KB금융은 카드, 증권, 보험, 자산운용, 캐피탈로 사업 축을 넓혔다. 2011년 KB국민카드가 분사했고 2015년 LIG손해보험을 자회사로 편입해 KB손해보험 체제를 만들었다. 2016년에는 현대증권을 인수하며 자산관리와 투자은행(IB) 역량을 보강했다. 그러나 금융명가의 역사에 성장의 장면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KB금융은 2014년 이른바 ‘KB사태’라는 혹독한 내홍을 겪었다. 국민은행 주 전산시스템 교체를 둘러싸고 지주와 은행 경영진, 이사회, 감사 라인이 충돌했고 금융당국 제재와 경영진 퇴진으로 이어졌다. 사태의 본질은 전산시스템 문제가 아니라 지배구조와 내부통제의 허점이었다. 이후 KB금융은 이사회 중심 경영, 최고경영자 승계 절차, 계열사 리스크 관리, 소비자보호 체계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조직을 정비했다. ◆순익 5조 리딩금융 재확인…생산금융·AI·자산관리로 다음 성장판 현재의 KB금융은 과거의 서민 전용 은행도, 은행 단일 회사도 아니다. 2008년 지주 출범 당시 320조원 규모였던 KB금융의 총자산은 2025년 말 797조9000억원으로 불어났다. 단순 비교하면 17년 만에 477조9000억원, 약 2.5배 커진 셈이다. 관리자산(AUM)까지 포함한 그룹 총자산은 1417조4000억원에 달한다. 실적의 체급도 달라졌다. KB금융은 2025년 지배기업 지분 기준 당기순이익 5조8430억원을 기록했다. 2024년보다 15.1% 늘어난 역대 최대 실적이다. 이자이익은 13조731억원, 비이자 부문 이익은 4조8721억원으로 집계됐다. 계열사별로는 KB국민은행이 3조8620억원, KB증권이 6739억원의 순이익을 냈다. 2026년 출발도 강하다. KB금융은 올해 1분기 당기순이익 1조8924억원을 기록했다. 전년 동기 대비 11.5% 증가한 수치다. 은행 이자이익과 비은행 자회사의 순수수료이익이 함께 늘었고, 비은행 부문 이익 비중은 43%까지 높아졌다. KB국민은행의 1분기 순이익은 1조1010억원, KB증권은 3478억원으로 집계됐다. KB금융의 미래 성장전략은 △생산적 금융 △자산관리·비은행 강화 △인공지능(AI) 전환 △내부통제 등으로 꼽힌다. 우선 KB금융은 단순한 대출 확대가 아니라 국가 전략산업과 혁신기업에 자본을 공급하는 방향으로 무게중심을 옮기고 있다. AI·로보틱스 등 딥테크 혁신기업 지원, 성장 인프라 펀드, 지역균형성장 SOC, 디지털 인프라, 에너지 인프라 투자가 대표적이다. 자산관리도 중요하다. 고령화와 은퇴자산 시장 확대, 퇴직연금 머니무브, 글로벌 자산배분 수요 증가는 KB금융에 새로운 기회다. KB국민은행의 방대한 고객 기반과 KB증권의 투자상품·IB 역량, KB손해보험과 KB라이프생명의 보장성 상품, KB자산운용의 운용 역량을 결합하면 고객의 생애주기 전체를 관리하는 복합 자산관리 모델을 만들 수 있다. AI 전환은 시대적 요구다. 금융 경쟁력은 더 이상 점포 수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고객 데이터를 얼마나 안전하고 정교하게 분석하는지, 모바일 앱에서 얼마나 빠르고 안정적인 금융 경험을 제공하는지, 상담·심사·리스크관리·자산관리 영역에 AI를 얼마나 책임 있게 적용하는지가 관건이다. 여기에 KB금융은 2014년 KB사태를 겪으며 지배구조와 내부통제의 중요성을 확인했다. 앞으로 금융그룹의 경쟁력은 자본과 기술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소비자보호, 건전성 관리, 주주환원, 사회적 책임이 함께 작동해야 한다. 업계에서는 KB금융의 강점을 ‘생활금융의 압도적 고객 기반’과 ‘비은행 포트폴리오의 균형’에서 찾는다. KB금융 관계자는 “과거의 국민은행이 서민금융의 상징이었다면 미래의 KB금융은 국가 성장산업과 고객 자산, 디지털 금융을 연결하는 가치 금융그룹이 될 것”이라며 “국민의 생활 속에서 출발한 은행이 국민경제의 미래 성장판을 여는 금융그룹으로 진화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아주경제 2026년 05월 28일자 15면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2026-05-28 08:0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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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초과수익, '나눠 쓰기'보다 '나라의 성장판'에 먼저 써야
[경제일보] AI 반도체 호황이 한국 경제의 새 숙제를 던지고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중심으로 메모리 반도체 가격이 뛰고, 수출과 기업 이익이 늘면서 법인세 등 초과세수 기대도 커지고 있다. 김광석 한양대 겸임교수가 27일 경제일보 주최 국회정책간담회에서 던진 질문도 이 지점이다. “100조 반도체 초과세수, 갚을까, 나눌까, 투자할까.” 자료는 국가채무 증가, 소득분배 악화, 잠재성장률 하락, 중국 등 경쟁국 추격, 데이터센터 수요 확대를 함께 제시하며 재정 운용의 우선순위를 묻고 있다. 논쟁은 김용범 청와대 정책실장의 발언으로 더 커졌다. 김 실장은 안공지능(AI) 인프라 시대의 과실이 특정 기업만의 결과가 아니라며, 반도체 호황이 역대급 초과세수로 이어질 경우 국민배당금 방식의 환원도 검토할 수 있다는 취지의 주장을 내놨다. 김 실장은 특히 과거 반도체 호황기의 초과세수가 사전에 설계된 원칙 없이 소진됐다며, 이번에는 제도적 설계가 필요하다고 했다. 문제 제기는 의미가 있다. AI 반도체 호황은 개별 기업의 기술력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국가가 깔아온 전력망, 교육, 연구개발 인프라, 세제 지원, 산업단지, 외교·통상 전략이 모두 얽혀 있다. 산업의 과실이 사회 전체의 기반 위에서 생겼다면, 그 일부가 사회로 되돌아가야 한다는 주장은 완전히 배척할 수 없다. 더구나 반도체 호황이 자산시장과 고소득층에 먼저 전달되고, 저소득층과 자영업자에게는 늦게 닿는다면 국민경제의 체감 회복은 더딜 수밖에 없다. 그러나 결론이 곧바로 ‘현금 배당’이어서는 안 된다. 초과세수는 영구 재원이 아니다. 반도체는 구조적 성장 산업이지만 동시에 가격 사이클이 큰 산업이다. 호황기에 들어온 세수를 반복 지출의 재원으로 삼으면, 불황기에는 국채 발행과 증세 논의가 뒤따른다. 재정은 인기의 장부가 아니라 국가의 안전판이다. ‘생긴 김에 나눠주자’는 방식은 정치적으로 쉽지만 경제적으로는 위험하다. 삼성전자 노사의 임금협상 잠정합의안이 노조 투표에서 찬성률 73.7%로 가결된 것도 중요한 신호다. 전체 의결권자 6만5593명 가운데 6만2616명이 투표해 투표율은 95.5%에 달했다. 반도체 초과수익의 1차 분배는 기업 내부에서도 이미 진행되고 있다. 임금, 성과급, 협력사 단가, 연구개발 투자, 주주환원은 모두 초과수익을 배분하는 통로다. 정부가 할 일은 이를 정치 구호로 끌고 가는 것이 아니라, 기업의 투자 의욕을 꺾지 않으면서 사회적 수용성을 높이는 원칙을 세우는 일이다. 우선순위는 분명해야 한다. 첫째, 초과세수의 일정 부분은 국가채무와 미래 의무지출 관리에 써야 한다. 저출산·고령화로 연금, 건강보험, 장기요양, 기초연금 지출은 빠르게 늘 수밖에 없다. 지금의 호황은 미래 세대에게 넘길 빚을 줄일 드문 기회다. 둘째, 더 큰 몫은 반도체 생태계의 재투자에 배정해야 한다. 전력망, 용수, 송전선, 첨단 패키징, 소재·부품·장비, AI 데이터센터, 전문 인력 양성에 돈을 넣어야 한다. 한국 반도체가 벌어들인 세수를 단기 소비로 흩뿌리면 한 번의 온기에서 끝난다. 그러나 생산 기반과 인재에 투자하면 다음 세대의 세수로 돌아온다. 셋째, 국민 환원은 보편 현금 지급보다 ‘목적 있는 배당’이어야 한다. 취약계층 에너지 비용, 직업 전환 교육, 청년 과학기술 장학금, 지역 산업 전환기금처럼 생산성과 안전망을 동시에 높이는 방식이 바람직하다. 국민에게 돌려준다는 명분이 필요하다면, 소비 진작용 현금보다 미래 역량을 키우는 사회적 배당이 맞다. 넷째, 기업에 대한 추가 부담 논의는 극도로 신중해야 한다. 초과이윤을 겨냥한 별도 과세는 투자 결정을 지연시키고 글로벌 경쟁에서 불리한 신호를 줄 수 있다. 미국, 대만, 일본, 중국이 반도체 공급망을 국가 전략으로 밀어붙이는 상황에서 한국만 기업 이익을 정치적 배분 대상으로 먼저 규정하면 자본과 인재는 더 예측 가능한 곳으로 움직인다. 초과세수 활용과 기업 초과이윤 과세는 다른 문제다. 둘을 혼동해서는 안 된다. 동양 고전 <논어> 헌문편에는 “이익을 보면 의로움을 생각하라”는 말이 있다. 견리사의(見利思義)다. 지금 한국 경제 앞에 놓인 반도체 호황이 바로 그런 시험대다. 이익을 보되, 의로움을 생각해야 한다. 다만 그 의로움은 당장의 박수갈채가 아니라 지속 가능한 번영이어야 한다. 반도체 초과수익은 나눌 수 있다. 그러나 먼저 지켜야 한다. 더 크게 키워야 한다. 그리고 오래 가게 만들어야 한다. 초과세수의 원칙은 세 가지면 충분하다. 빚을 줄이고, 성장에 투자하고, 약자를 두텁게 돕는 것이다. 그것이 AI 반도체 시대의 과실을 국민 모두의 미래로 바꾸는 길이다.
2026-05-27 14:5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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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업권 위에 선 국가경제…반도체가 멈추면 정부가 움직인다
[경제일보] 삼성전자 노사 갈등이 총파업 직전까지 치닫자 정부는 긴급조정 가능성을 공개적으로 시사했다. 파업은 잠정합의로 유보됐지만, 이번 사태는 국가 기간산업의 노사갈등에 정부가 어디까지 개입할 수 있는가라는 무거운 질문을 남겼다. 긴급조정은 가벼운 제도가 아니다.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은 쟁의행위가 공익사업에 관한 것이거나 규모와 성질이 특별해 국민경제를 현저히 해하거나 국민의 일상생활을 위태롭게 할 위험이 있을 때 고용노동부 장관이 긴급조정을 결정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긴급조정 결정이 공표되면 관계 당사자는 즉시 쟁의행위를 중지해야 하며, 공표일부터 30일이 지나지 않으면 쟁의행위를 재개할 수 없다. 정부가 삼성전자 파업 위기에서 긴급조정 카드를 거론한 배경은 분명하다. 삼성전자는 단순한 대기업이 아니다.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의 핵심 축이다. 메모리, HBM, 파운드리, 모바일, 디스플레이 생태계와 맞물려 있고, 협력업체와 수출, 금융시장, 세수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 앞서 정부는 지난 17일 삼성전자 파업 위기와 관련해 긴급조정권 발동 가능성을 공식적으로 처음 시사했다. 정부는 중앙노동위원회 사후조정과 노사 대화를 통한 해결을 강조하면서도, 파업이 현실화할 경우 국민경제에 미칠 파장을 우려했다. 이는 삼성전자 파업이 개별 사업장 차원을 넘어 국가 산업과 글로벌 공급망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판단이 반영된 것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긴급조정은 노동권 제한이라는 반대편의 문제를 동반한다. 헌법이 보장한 단체행동권을 행정권이 일시적으로 멈추게 하는 제도이기 때문이다. 긴급조정권 발동에 대해 노사 자율 원칙과 노동3권을 훼손할 우려가 있는 만큼 최대한 신중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업계 전문가는 “정부가 반도체 산업이 국가 경제에 중요하다는 이유만으로 노동권 제한을 쉽게 정당화돼서는 안되지만, 국가 기간산업의 파업이 공급망과 국민경제에 미칠 충격도 외면할 수 없다”며 “정부는 압박자가 아니라 중재자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번 삼성전자 노사 잠정합의는 결과적으로 긴급조정 발동 없이 이뤄졌다.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 주재의 막판 교섭에서 노사가 합의점을 찾았다는 점은 의미가 있다. 법적 강제보다 자율교섭이 우선돼야 한다는 원칙을 지킨 셈이다. 하지만 ‘막판 타결’이 반복되는 구조는 위험하다. 파업 직전까지 가야 정부가 움직이고, 정부가 움직여야 노사가 접점을 찾는 방식은 지속 가능하지 않다. 국가 기간산업의 노사갈등은 사전에 위험을 감지하고 조정하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삼성전자 사태가 보여준 것은 한국 경제의 이중 현실이다. 한편으로는 반도체 호황이 기업 실적과 국가 세수를 끌어올리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그 초과이익을 둘러싼 배분 갈등이 산업 현장의 불안 요인이 되고 있다. 정부가 올해 추경 과정에서 초과세수 25조2000억원, 법인세 증가분 14조8000억원을 전망한 것도 반도체 경기 개선과 무관하지 않다. 결국 긴급조정 논란의 본질은 ‘파업을 막을 것인가’에만 있지 않다. 반도체 호황이 만든 이익과 부담을 어떻게 나누고, 어떤 원칙으로 노사갈등을 관리할 것인가에 있다. 제도가 늦으면 갈등은 거리로 나오고, 정치가 늦으면 행정권의 강제 카드가 먼저 거론된다. 업계 관계자는 “긴급조정 카드는 꺼내지 않는 것이 가장 좋고, 노사 모두가 예측 가능한 교섭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며 “정부도 사후 압박이 아니라 사전 조정의 역량을 키워야 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한편, 본지는 오는 27일 오후 3시 국회의사당 본관 2식당(귀빈식당)에서 ‘삼성전자 노사 사태, 지금부터 시작이다’를 주제로 ‘경제일보 정책 간담회’를 개최한다. 이번 간담회는 삼성전자 노사갈등을 기업 내부 문제가 아닌 한국 경제의 구조적 의제로 다룰 예정이다. 또한 반도체 초과이익 배분, 성과급 제도, 주주환원, 미래 투자 문제를 포함해 반도체 호황이 만든 초과 세수를 재정준칙 복원과 국가채무 관리, 미래 성장 투자에 어떻게 활용할지 논의한다.
2026-05-25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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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총파업 땐 '도미노 충격'…최대 100조 손실 우려까지
[경제일보] 삼성전자 노조의 총파업 가능성이 커지면서 산업계 안팎에서 반도체 생산 차질에 따른 경제적 파장이 우려되고 있다. 전면 셧다운은 법원 가처분 결정으로 일부 제한됐지만 생산 인력 공백이 현실화될 경우 수십조원대 피해와 글로벌 공급망 불안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삼성전자 노조는 성과급 제도화와 상한 폐지 등을 요구하며 21일부터 다음 달 7일까지 18일간 총파업을 예고했다. 로이터는 약 4만8000명의 삼성전자 노동자가 파업에 참여할 수 있으며 이는 국내 삼성전자 인력의 약 38%에 해당한다고 보도했다. 가장 큰 우려는 반도체 생산라인 차질이다. 반도체 공장은 24시간 연속 가동되는 장치산업이다. 공정이 멈추거나 인력 부족으로 관리가 지연되면 웨이퍼 폐기, 설비 재가동 지연, 후공정 일정 차질이 연쇄적으로 발생할 수 있다. 법원은 삼성전자가 노조를 상대로 낸 위법 쟁의행위 금지 가처분 신청을 일부 받아들여 방재시설, 배기·배수시설 등 안전보호시설을 평상시 수준으로 유지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다만 업계에서는 가처분으로 최악의 셧다운은 막더라도 필수 유지 인력이 전체 인력의 일부에 그치는 만큼 생산 차질 가능성은 남아 있다고 보고 있다. 피해 규모를 둘러싼 전망도 엇갈리지만 우려 수위는 높다. 김민석 국무총리는 지난 17일 대국민 담화에서 삼성전자 파업으로 국민경제에 막대한 피해가 우려될 경우 긴급조정을 포함한 모든 대응 수단을 강구할 수 있다고 밝혔다. 동아일보는 김 총리가 삼성전자가 한국 수출의 23%를 차지한다고 언급하며 파업 손실이 최대 100조원에 이를 수 있다는 우려를 전했다고 보도했다. 로이터도 삼성전자 파업이 현실화할 경우 한국의 올해 예상 성장률 2%에서 0.5%포인트를 깎을 수 있다는 분석을 전했다. 또 삼성전자가 하루 최대 1조원 수준의 손실을 볼 수 있다는 추정도 보도했다. 글로벌 공급망 영향도 변수다. 삼성전자는 세계 최대 메모리 반도체 업체 중 하나다. 파업이 장기화되면 D램과 낸드 공급뿐 아니라 AI 서버용 고대역폭메모리(HBM), 첨단 패키징, 주요 고객사 납기 일정에도 부담이 될 수 있다. 가디언은 파업이 진행될 경우 전 세계 D램 공급의 최대 4%, 낸드 공급의 3%가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분석을 전했다. 고객 신뢰 문제도 작지 않다. 삼성전자의 주요 고객사에는 엔비디아, 애플 등 글로벌 빅테크가 포함돼 있다. 반도체 공급 계약은 납기와 품질 신뢰가 핵심이어서 생산 차질 우려만으로도 고객사들이 물량 분산을 검토할 수 있다. 특히 AI 반도체 수요가 급증하는 상황에서 메모리 공급 안정성은 고객사의 장기 조달 전략과 직결된다. 국내 협력사 생태계에도 충격이 번질 수 있다. 삼성전자는 소재·부품·장비 협력사를 포함한 국내 반도체 공급망의 중심 기업이다. 생산 차질이 장기화되면 협력사의 납품 일정, 매출, 재고 운영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반도체 수출이 한국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고려하면 단순한 노사 갈등을 넘어 국가 전략산업 리스크로 확산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가 긴급조정권을 언급한 것도 이런 배경 때문이다. 긴급조정은 쟁의행위가 국민경제나 공익에 현저한 위해를 줄 우려가 있을 때 정부가 발동할 수 있는 제도다. 로이터는 한국 정부가 삼성전자 파업의 경제적 충격을 줄이기 위해 긴급조정 명령을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다만 긴급조정권은 노동권 제한 논란이 큰 수단이다. 합법 쟁의행위에 대해 정부가 강제 개입할 경우 노동계 반발이 커질 수 있다. 따라서 정부는 노사 자율 타결을 우선 압박하면서 파업이 실제 경제 피해로 번질 경우 개입 수위를 높이는 방식을 택할 가능성이 크다. 이번 사태의 본질은 성과급 배분을 둘러싼 갈등이다. 노조는 성과급 상한 폐지와 영업이익 연동 방식 도입을 요구하고 있다. 반면 사측은 적자 부문까지 대규모 성과급을 동일하게 보상할 경우 성과주의 경영 원칙이 흔들릴 수 있다는 입장이다. 로이터는 노조가 성과급 상한 폐지와 영업이익의 15%를 성과급 재원으로 배분하는 방안을 요구하고 있다고 전했다. 파업이 현실화하더라도 실제 피해 규모는 파업 참여율, 기간, 공정별 인력 대체 가능성, 비상 운영 체계, 정부 개입 여부에 따라 달라진다. 최대 100조원 손실 전망은 생산 차질과 고객 이탈, 공급망 충격, 증시 영향 등을 모두 포함한 최악의 시나리오에 가깝다. 그럼에도 산업계가 긴장하는 이유는 반도체 공정의 특수성 때문이다. 제조라인 일부만 흔들려도 웨이퍼 투입, 장비 관리, 후공정, 납품 일정이 연쇄적으로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삼성전자 파업은 회사 내부의 임금 협상을 넘어 한국 반도체 산업의 신뢰도와 글로벌 공급망 안정성을 시험하는 변수가 되고 있다.
2026-05-20 21:2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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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 노사, 총파업 하루 앞두고 새벽 '끝장 협상'
[경제일보] 삼성전자 노사가 총파업 예고일을 하루 앞두고 중앙노동위원회에서 새벽까지 ‘끝장 협상’을 이어갔다. 성과급 제도화와 상한 폐지, 사업부별 배분 기준을 둘러싼 입장차가 좁혀지지 않으면서 협상은 당초 합의 시한을 넘겼다. 삼성전자 노사 협상 대표와 박수근 중앙노동위원회 위원장 등은 19일 오전 10시 정부세종청사 중앙노동위원회에서 2차 사후조정 회의를 시작했다. 중노위는 당초 이날 오후 10시 전후 합의 또는 조정안 제시 여부가 결정될 것으로 예상했지만, 협상은 자정을 넘겨 20일 새벽까지 계속됐다. 이번 협상은 노조가 예고한 총파업 전 사실상 마지막 교섭이다. 삼성전자 노조는 오는 21일부터 다음 달 7일까지 18일간 총파업에 돌입하겠다는 입장이다. 노조는 성과급 제도화와 상한 폐지, 성과급 재원 산정 방식 개선 등을 요구하고 있다. 핵심 쟁점은 성과급이다. 노조는 영업이익의 일정 비율을 성과급 재원으로 제도화하고, 초과이익성과급(OPI) 상한을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반면 사측은 사업부별 실적과 투자 여력, 경영 환경을 고려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일부 보도에 따르면 노조는 영업이익의 15%를 성과급 재원으로 요구한 반면, 사측은 10% 수준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성과급 배분 문제도 갈등을 키우고 있다. 인공지능(AI) 반도체 수요로 메모리 사업부 실적은 개선됐지만, 파운드리와 시스템LSI 등 비메모리 부문은 적자를 이어가면서 사업부별 성과급 격차가 커졌다. 노조는 격차가 인재 이탈과 조직 불신을 키울 수 있다고 주장하고, 사측은 적자 사업부에 동일한 성과급을 적용하기 어렵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노사는 앞서 지난 11일부터 13일 새벽까지 1차 사후조정을 진행했지만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이후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의 중재, 삼성전자 사장단의 대국민 사과와 노조 면담,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대화 호소가 이어지면서 추가 협상 테이블이 마련됐다. 정부도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김민석 국무총리는 지난 17일 대국민 담화에서 삼성전자 파업으로 국민 경제에 막대한 피해가 우려될 경우 긴급조정을 포함한 가능한 모든 대응 수단을 강구할 수 있다고 밝혔다. 긴급조정은 쟁의행위가 국민경제나 공익에 현저한 위해를 줄 우려가 있을 때 정부가 발동할 수 있는 제도다. 긴급조정권 발동 가능성이 거론되는 것은 삼성전자 반도체 생산이 국가 경제와 글로벌 공급망에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이다. 반도체 공정은 24시간 가동되는 장치산업 특성이 강해 생산 차질이 발생할 경우 단기간에도 피해가 커질 수 있다. 산업계와 금융권에서는 총파업이 현실화할 경우 직접 생산 차질뿐 아니라 고객 신뢰와 공급망 불안까지 겹치며 파장이 커질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다만 긴급조정권은 노동권 제한 논란이 따르는 만큼 실제 발동 여부는 신중하게 판단될 전망이다. 노동계는 정부가 강제 개입을 앞세우기보다 노사 자율 교섭과 조정에 집중해야 한다고 반발하고 있다. 한국노총은 삼성전자 파업과 관련해 정부가 해야 할 역할은 강제 개입이 아니라 자율적 교섭을 촉진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번 사후조정에서 합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중노위는 노사 입장을 절충한 조정안을 제시할 수 있다. 그러나 노사 어느 한쪽이라도 이를 거부하면 협상은 결렬되고 파업 국면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커진다. 노조 지도부가 조정안을 수용하더라도 조합원 찬반 투표를 거쳐야 하는 만큼, 최종 타결까지는 추가 절차가 남아 있다. 삼성전자 노사 갈등은 단순 임금 협상을 넘어 국내 대기업 성과급 체계 전반의 기준점이 될 가능성이 있다. AI 반도체 호황 속에서 성과 배분을 어떻게 제도화할지, 사업부별 실적 격차를 어떻게 반영할지, 미래 투자 재원과 구성원 보상을 어떻게 조화시킬지가 핵심이다. 향후 관건은 노사가 파업 직전까지 실질적 양보안을 마련할 수 있느냐다. 사측이 성과급 투명성과 제도 개선에 대한 구체적 안을 내놓고, 노조가 상한 폐지와 재원 비율 요구에서 접점을 찾는다면 극적 타결 가능성도 남아 있다. 반대로 조정안이 부결되거나 노조가 예정대로 총파업에 돌입할 경우 정부의 긴급조정권 발동 여부가 새로운 충돌 지점으로 떠오를 전망이다.
2026-05-20 01: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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