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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중 정상회담 테이블에 오른 AI·희토류…한국은 어디에 설 것인가
[경제일보] 미국과 중국의 패권 경쟁이 새로운 국면으로 들어가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정상회담이 오는 24일 워싱턴에서 열릴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중국은 아직 정상회담 개최를 공식 확인하지 않았다. 앞서 스콧 베선트 미 재무장관과 허리펑 중국 국무원 부총리는 이번 주말 만나 정상회담 의제를 조율할 예정이다. 인공지능(AI)과 희토류, 무역·에너지 등 경제안보 현안이 폭넓게 다뤄질 전망이다. 한국에는 남의 나라 정상회담이 아니다. 미중이 협상 테이블에서 다루는 현안 하나하나가 한국의 주력 산업과 연결돼 있어서다. AI의 중심에는 반도체가 있고 희토류와 핵심광물은 배터리·자동차·항공우주·방위산업에 들어간다. 미국과 중국의 합의와 충돌에 따라 한국 기업의 투자와 생산, 공급망 전략까지 영향을 받을 수 있다. AI는 특히 그렇다. 베선트 장관은 미국이 중국과 AI가 초래할 공동의 위험을 논의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다. 미중 AI 경쟁이 첨단 반도체와 기술 수출통제를 넘어 안전과 국제규칙의 영역으로 확장되고 있다는 의미다. 세계 AI 산업에서도 안전 규칙을 누가 만들고 집행할 것인지를 놓고 논쟁이 커지고 있다. 한국은 이 경쟁의 한복판에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세계 메모리 반도체 시장을 이끌고 있고 AI 가속기에 필요한 고대역폭메모리(HBM)에서도 한국 기업의 비중이 크다. 미중 기술 경쟁이 격화될수록 한국 반도체 기업의 기술과 생산시설은 단순한 기업 자산을 넘어 경제안보의 자산이 된다. 미국 중심의 반도체 공급망 재편 움직임도 빨라지고 있다. 로이터는 SK하이닉스가 인텔과 미국에서 메모리 반도체를 생산하는 방안을 협의하고 있다고 지난 16일 보도했다. 인텔의 오하이오 공장 일부를 활용하거나 인텔·클라우드 기업 등이 참여하는 합작법인을 만드는 방안이 거론된다. 아직 초기 협의 단계이고 결정된 것은 없다. 하지만 한국 메모리 기업이 처음으로 미국에서 생산할 가능성이 논의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반도체 공급망이 얼마나 빠르게 재편되고 있는지 보여준다. 여기에는 한국이 고민해야 할 지점도 있다. 미국의 공급망 현지화와 한국의 이해가 언제나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생산시설을 미국에 두는 것이 시장 접근과 공급망 안정에는 도움이 될 수 있지만 핵심 제조기술의 해외 이전과 국내 산업 생태계 약화 가능성도 함께 살펴야 한다. 기업의 투자 판단을 존중하되 국가 차원에서는 어떤 기술과 생산기반을 국내에 반드시 남겨야 하는지 원칙을 세울 필요가 있다. 희토류 문제는 더 절박하다. 중국은 미국이 자국 중심의 핵심광물 공급망을 구축하는 데 막대한 자금을 투입하고 있는데도 여전히 주요 핵심광물의 정제 과정에서 압도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 자료를 분석한 로이터 보도에 따르면 중국의 희토류 정제 비중은 2023년 90% 이상에서 2025년 약 85%로 낮아졌지만 여전히 세계 공급망을 좌우할 수준이다. 잘 알려지지 않았던 희토류 원소인 이트륨은 이런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트륨은 반도체와 항공우주, 제트엔진 코팅 등에 쓰이는 전략 물질이다. 중국은 세계 이트륨 공급에서 압도적인 영향력을 갖고 있고 수출통제를 통해 공급량을 조절해 왔다. 미국 제조업에서도 공급 부족에 따른 생산 차질이 발생했다. 이 때문에 이트륨 문제 역시 미중 정상회담의 주요 현안 가운데 하나로 거론된다. 한국의 취약점도 여기에 있다. 반도체와 배터리, 자동차를 세계에 수출하지만 이를 만드는 핵심광물과 소재 상당 부분은 해외에서 들여온다. 미국이 첨단기술 공급망에서 중국 의존도를 낮추는 속도를 높이면 한국 기업도 대응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고 세계 제조업의 거대한 생산기지이자 시장인 중국과의 공급망을 단기간에 끊는 것도 현실적이지 않다. 따라서 한국의 대응을 단순히 ‘미국이냐 중국이냐’의 문제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 안보와 직결된 첨단기술 분야에서는 동맹국과 협력을 강화하되 핵심 원료와 소재는 특정 국가에 과도하게 의존하지 않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최근 열린 한·중앙아시아 정상회의도 그런 점에서 의미가 있다. 한국과 중앙아시아 5개국은 핵심광물과 에너지, 공급망 협력을 주요 의제로 다뤘고 70건이 넘는 협정과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정부는 단순한 원료 수입을 넘어 탐사와 정제, 소재 가공, 완제품 생산까지 협력 범위를 넓히겠다고 밝혔다. 이제 중요한 것은 실행이다. 공급망 다변화는 양해각서 숫자로 평가할 일이 아니다. 광물 탐사와 개발이 실제 정제·가공과 국내 기업의 장기 구매로 이어져야 한다. 핵심광물 개발은 투자 회수 기간이 길고 가격 변동성도 큰 만큼 정부가 정책금융과 비축제도 등을 활용해 민간의 위험을 분담할 필요가 있다. 공급망은 평상시에는 비용의 문제지만 위기가 닥치면 국가안보의 문제가 된다. AI에서도 마찬가지다. 한국이 메모리 반도체를 잘 만드는 것만으로 미래 경쟁력을 보장받기는 어렵다. AI 반도체와 데이터센터, 전력망, 소프트웨어와 AI 모델로 이어지는 산업 생태계를 함께 키워야 한다. 미중이 AI의 기술표준과 안전 문제까지 논의하기 시작했다면 한국도 이미 만들어진 규칙을 받아들이는 데 머물러서는 안 된다. 국제 AI 거버넌스와 기술표준을 만드는 과정에 적극 참여해야 한다. 미중 경쟁은 이제 관세 몇 퍼센트(%)를 주고받는 무역전쟁을 넘어섰다. 누가 AI의 규칙을 만들고 첨단 반도체를 생산하며 핵심광물을 안정적으로 확보하느냐를 둘러싼 경제안보 경쟁이다. 중국은 핵심광물 공급망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갖고 있고 미국은 첨단 반도체와 AI 생태계를 중심으로 자국 공급망을 강화하고 있다. 한국의 운명을 워싱턴과 베이징의 협상 결과에 맡길 수는 없다. 어느 한쪽을 무조건 선택하는 것도, 양쪽의 눈치를 보며 결정을 미루는 것도 해법이 아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선택을 강요받았을 때 버틸 수 있는 힘을 먼저 만드는 것이다.
2026-09-17 10:4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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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오픈AI 협력, '칩 이후' 설계해야
[경제일보] 삼성전자와 오픈AI의 관계가 흥미로운 단계로 들어섰다. 삼성은 오픈AI가 필요로 하는 첨단 반도체를 만들고, 동시에 오픈AI가 만든 인공지능을 회사 안에서 대규모로 사용한다. 한쪽에서는 공급자이고 다른 한쪽에서는 고객이다. 글로벌 AI 산업의 가치사슬이 얼마나 빠르게 뒤섞이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장면이다. 오픈AI는 지난 9일 서울에서 삼성전자와 차세대 AI 반도체 개발 협력이 진전되고 있다고 밝혔다. 구체적인 기술이나 생산 방식은 공개하지 않았다. 삼성전자 역시 고객 관련 사안이라며 세부 내용을 확인하지 않았다. 다만 지난해 ‘스타게이트’ 프로젝트를 계기로 시작된 양사의 관계가 메모리 공급을 넘어 차세대 칩 연구·생산으로 넓어지고 있다는 것이 오픈AI의 설명이다. 반대 방향의 거래도 이미 크게 열렸다. 삼성전자는 지난 6월 국내 전 임직원과 전 세계 DX부문 직원에게 ChatGPT Enterprise와 Codex를 제공하기 시작했다. 오픈AI는 이를 자사의 역대 최대 규모 기업 도입 사례 가운데 하나라고 밝혔다. 연구개발과 제조, 소프트웨어 개발, 제품기획과 마케팅까지 사용 영역도 넓다. 한국 기업들의 AI 도입 속도는 더 가파르다. 오픈AI에 따르면 지난 8월 말 기준 국내 기업·기관의 ChatGPT Enterprise 이용자는 1년 전보다 약 28배 늘었다. 불과 1년 사이 생성형 AI가 일부 개발자의 실험도구에서 기업 업무의 기반으로 옮겨가고 있다는 뜻이다. 모두 반길 일이다. AI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을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것은 당연하다. 삼성이라고 예외일 이유가 없다. 기업은 국적이 아니라 성능과 생산성을 보고 도구를 선택해야 한다. 오픈AI가 삼성의 반도체를 필요로 하듯 삼성도 오픈AI의 모델과 개발도구를 활용해 연구개발 속도를 높이고 업무 생산성을 끌어올릴 수 있다. 하지만 바로 이 부분에서 하나의 질문이 생긴다. "삼성은오픈AI에 무엇을 팔고, 오픈AI를 쓰면서 무엇을 자기 것으로 남길 것인가." 이번 협력의 진짜 쟁점은 여기에 있다. 한국은 AI 시대의 핵심 생산국이다. 오픈AI와 삼성이 지난해 맺은 협력에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스타게이트에 필요한 첨단 메모리 공급을 확대하기로 했다. 오픈AI가 예상한 메모리 수요는 웨이퍼 투입량 기준 월 최대 90만장에 달한다. 삼성은 메모리뿐 아니라 시스템반도체와 파운드리, 첨단 패키징까지 갖춘 몇 안 되는 종합 반도체 기업이기도 하다. AI 붐이 거세질수록 이런 생산능력의 가치는 커질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칩 공급자’라는 역할 자체를 낮춰 볼 이유는 없다. 세계가 원하는 반도체를 만들 수 있는 능력은 한국 산업이 수십 년간 쌓아 올린 힘이다. AI 서버 한 대도 메모리와 반도체 없이 돌아가지 않는다. 문제는 거기에서 가치사슬이 끝날 때다. 삼성이 첨단 칩을 공급하고 그 칩 위에서 돌아가는 AI 모델과 기업용 소프트웨어는 다시 해외 플랫폼에서 사오는 구조가 굳어질 경우 한국은 AI 시대에도 익숙한 위치에 머물 수 있다. 제조는 강하지만 플랫폼은 약하고, 부품은 팔지만 서비스를 사는 구조다. 반도체와 AI 소프트웨어의 사업 구조는 다르다. 반도체는 생산해 납품하면 매출이 발생한다. 기업용 AI는 고객의 업무 안으로 들어가 매일 사용된다. 개발자가 코드를 짜고 연구원이 자료를 분석하며 생산현장이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플랫폼은 업무 방식 자체의 일부가 된다. 사용이 늘수록 생태계와 개발 경험, 서비스 매출이 함께 쌓인다. 때문에 AI 플랫폼 기업들은 오히려 아래로 내려오고 있다. 오픈AI는 모델 개발에 머물지 않고 브로드컴과 자체 AI 반도체를 설계하고 있다. 9일 로이터 보도에 따르면 오픈AI는 직접 개발한 AI 모델을 자체 칩 설계에도 활용했고 이미 테이프아웃 단계까지 진행했다. 소프트웨어 기업이 칩이라는 하드웨어 영역으로 들어오는 것이다. 이 움직임은 삼성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오픈AI가 모델에서 칩으로 내려오고 있다면 삼성은 칩에서 AI로 올라가야 한다. 이 말은 삼성이 오픈AI와 경쟁할 범용 초거대 모델을 당장 만들어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막대한 자본을 들여 이미 앞서 있는 글로벌 플랫폼을 그대로 복제하자는 것도 아니다. 더 현실적인 목표가 있다. 오픈AI의 AI를 삼성 내부에 적용하는 과정에서 삼성만이 가질 수 있는 AI 역량을 축적하는 것이다. 반도체 공정을 예로 들어보자. 수율이 왜 떨어지는지, 어느 장비에서 어떤 이상이 발생하는지, 공정조건을 어떻게 바꾸면 불량률이 낮아지는지에 대한 경험은 삼성의 생산현장에 있다. 수십 년간 축적한 제조 노하우는 범용 AI 기업이 돈을 주고도 단숨에 얻기 어려운 자산이다. ChatGPT와 Codex를 활용해 엔지니어의 일을 빠르게 만드는 것은 첫 단계다. 그 다음은 그 도구를 사용하는 과정에서 삼성의 공정지식과 엔지니어링 경험을 AI 기술로 바꾸는 일이어야 한다. 생산 최적화와 반도체 설계, 품질관리와 장비 유지보수에 특화된 AI 역량이 삼성 내부에 남아야 한다. 그래야 AI 사용료가 비용으로 끝나지 않고 경쟁력으로 전환된다. 이 대목에서 지난해 삼성SDS와 오픈AI가 맺은 협력도 눈여겨볼 만하다. 삼성SDS는 스타게이트 AI 데이터센터의 설계·구축·운영뿐 아니라 오픈AI 모델을 기업 업무에 도입하려는 고객을 대상으로 컨설팅과 구축·운영 사업을 추진하기로 했다. 삼성이 단순히 오픈AI의 서비스를 구매하는 데 그치지 않고 기업용 AI 사업에 참여할 통로도 이미 열려 있다는 뜻이다. 이 방향을 더 키워야 한다. 삼성·오픈AI 협력의 성적표가 ‘삼성이 HBM을 얼마나 팔았는가’와 ‘삼성 직원이 ChatGPT를 얼마나 많이 사용했는가’라는 두 숫자로만 남아서는 부족하다. 차세대 칩을 함께 연구하면서 어떤 설계 역량을 쌓았는지, AI를 제조현장에 적용하면서 어떤 독자적인 시스템을 만들었는지, 삼성SDS가 기업용 AI 시장에서 얼마나 새로운 사업을 만들었는지가 더 중요하다. 그리고 여기에는 한 가지 원칙이 필요하다. 외부 기술의 활용과 내부 역량의 축적이 함께 가야 한다. 프랜시스 베이컨은 ‘노붐 오르가눔’에서 ‘지식과 인간의 힘은 서로 같은 것’이라고 했다. 원인을 알지 못하면 원하는 결과도 얻을 수 없다는 뜻에서 나온 말이다. 네 세기가 지난 AI 시대에도 산업의 본질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기술을 사용하는 것과 그 기술을 이해하고 자기 능력으로 만드는 것은 다른 문제다. 오픈AI의 뛰어난 AI를 쓰는 것은 경쟁력이다. 하지만 어떤 기업이 외부 AI 없이는 핵심 업무를 개선하지 못하고, 그 과정에서 자기 기술과 사람이 자라지 않는다면 그것은 다른 종류의 의존이 될 수 있다. 반대로 글로벌 플랫폼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면서 그 위에 자신의 데이터와 업무지식, 소프트웨어와 서비스를 쌓는다면 협력은 산업 역량을 키우는 지렛대가 된다. 때문에 삼성·오픈AI 관계를 ‘누가 누구에게 종속되느냐’는 식으로 볼 필요는 없다. 오히려 서로가 필요하기 때문에 지금이 기회다. 오픈AI에는 삼성의 메모리와 반도체 제조능력이 필요하다. 삼성에는 최전선 AI 모델과 개발도구가 필요하다. 서로 필요한 것이 분명할 때 협상력도 생긴다. 중요한 것은 이 교환의 끝이다. 칩을 팔아 매출을 얻고 AI를 사서 생산성을 높이는 것까지는 좋은 거래다. 하지만 장기적인 산업 경쟁력은 그 거래가 끝난 뒤 무엇이 남았는지에 달려 있다. "삼성 내부에 AI를 이해하고 설계할 사람이 남았는가.", "제조 노하우가 독자적인 AI 역량으로 바뀌었는가.", "오픈AI와 함께 만든 경험이 삼성의 새로운 제품과 서비스로 이어졌는가." 이 세 질문에 답할 수 있어야 한다. 국내 ChatGPT Enterprise 이용자가 1년 만에 28배 늘었다는 숫자도 같은 의미에서 읽을 필요가 있다. 한국 기업이 AI를 빠르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 긍정적이다. 하지만 사용자가 빨리 늘어나는 것과 AI 산업이 빨리 성장하는 것은 같은 말이 아니다. AI를 많이 쓰는 나라와 AI로 새로운 제품과 서비스를 만들어 파는 나라는 다르다. 한국이 후자로 가려면 삼성 같은 기업의 역할이 중요하다. 세계적인 제조기업이 글로벌 AI를 가장 빨리 도입하고, 그 과정에서 축적한 경험을 다시 제조 AI와 기업용 서비스로 만들어낸다면 한국은 반도체 강국이라는 강점을 AI 산업의 경쟁력으로 연결할 수 있다. 삼성과 오픈AI의 협력 확대를 반길 이유도 여기에 있다. 오픈AI가 삼성의 칩을 더 많이 사는 것도 중요하다. 삼성 직원이 오픈AI의 AI를 더 잘 활용하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이번 협력의 궁극적인 성적표는 다른 곳에 있어야 한다. 삼성이 칩을 팔고 AI를 사는 동안, 삼성과 한국에 어떤 AI 기술과 사업이 새로 남았는가. 공급자와 고객 사이에는 아직 넓은 공간이 있다. 삼성·오픈AI 협력이 그 공간을 한국의 기술과 사람, 서비스로 채우는 관계로 발전해야 한다. 좋은 기술협력은 많이 사고 많이 파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거래가 끝난 뒤 서로에게 없던 능력이 남을 때 비로소 전략적 협력이 된다.
2026-09-10 09:2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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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억 달러 장외매입, 외환당국은 왜 설명하지 않나
[경제일보] SK하이닉스가 지난 7월 미국 자본시장에서 조달한 265억 달러가 한국 외환정책의 원칙을 묻는 문제로 번졌다. 로이터 등의 보도대로라면 외환당국은 SK하이닉스의 조달금 가운데 약 200억 달러를 장외에서 사들였다. 우리 돈 27조원이 넘는 규모다. 현재까지 정부와 한국은행, SK하이닉스는 이 거래에 대해 입장을 밝히지 않았고, 거래 시점과 환율, 구체적인 계약 방식도 알려지지 않았다. 따라서 매입 사실과 목적을 정부가 공식 확인한 것처럼 단정할 단계는 아니다. 그럼에도 이번 보도가 던지는 질문은 가볍지 않다. SK하이닉스의 조달금은 AI 반도체 생산능력 확충을 위한 공장과 설비 투자 등에 투입될 예정이다. 문제는 이 거액의 달러가 국내로 유입되는 과정이다. 상당액을 원화로 바꾸면 외환시장에는 그만큼의 달러 매물이 쏟아진다. 또 달러 공급이 갑자기 불어나면 원화 가치에는 단기간에 상당한 상승 압력이 가해질 수 있다. 최근 시장 상황도 민감했다. 원화는 지난 6월 말 달러당 1550원 안팎까지 밀린 뒤 두 달 사이 12% 넘게 반등했다. 이 국면에서 수백억 달러의 일회성 물량까지 더해지면 변동성이 급격히 커질 수 있다. 외환시장은 방향보다 속도에 더 쉽게 다친다. 원화가 경제의 기초체력을 반영해 서서히 오르는 것과 특정 기업의 대규모 자금 이동 때문에 며칠 사이 급격히 치솟는 것은 다르다. 수출기업은 환율을 전제로 가격과 손익을 짜고, 수입기업은 결제계획을 세우며, 외국인 투자자는 환차손익을 계산한다. 예측 가능한 변화에는 적응할 수 있지만 급격한 쏠림에는 대응할 시간이 없다. 로이터 보도대로 외환당국이 SK하이닉스 물량의 상당 부분을 장외에서 받아냈다면, 시장 충격을 완화하려는 조치로 해석할 수 있다. 로이터 역시 원화의 급격한 강세를 누그러뜨리고 외화 여력을 보강하려는 성격으로 이번 거래를 전했다. 외환당국이 최근 상당한 규모의 달러를 시장에 공급해 온 것은 확인된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당국은 원화 약세가 심했던 지난해 4분기 224억6700만 달러, 올해 1분기 136억2800만 달러를 외환시장에서 순매도했다. 두 분기 동안 풀어놓은 달러만 360억 달러를 넘는다. 그만큼 외화 대응 여력을 다시 보강할 유인이 있었을 것이라는 해석은 가능하다. 원화가 급락할 때 달러를 팔아 속도를 늦췄다면, 반대로 대규모 달러 공급으로 원화가 급등할 때 일부를 다시 흡수하는 것은 외환시장 안정이라는 정책 목적에도 부합한다. 따라서 시장안정 차원의 매입이었다면 정책적 명분은 충분하다. 쟁점은 매입 자체가 아니다. 외환당국이 무엇을 지키기 위해 200억 달러를 움직였느냐다. 시장인가, 특정 환율인가. 외환정책은 본래 한 가지 긴장을 품고 있다. 환율은 시장에 맡겨야 하지만 시장이 한쪽으로 급격히 쏠릴 때는 당국이 손을 놓고 있을 수 없다. 그렇다고 정부가 원하는 환율을 만들어내기 시작하면 시장안정은 환율 수준을 관리하는 정책으로 변질된다. 그래서 개입에는 선이 필요하다. 외환당국이 지켜야 할 것은 환율의 특정한 ‘수준’이 아니라 시장의 ‘질서’다. 원화가 어느 수준에서 거래돼야 하는지는 기본적으로 시장이 판단할 몫이다. 수출기업에 유리하다는 이유로 원화를 의도적으로 약하게 만들거나, 물가를 잡겠다고 특정 환율을 사실상의 목표로 삼는 것은 정부가 시장가격을 대신 정하는 일이다. 시장의 가격발견 기능을 흔들 뿐 아니라 교역 상대국과의 환율 갈등을 자초할 수도 있다. 반대로 일회성 대규모 외화 유입 등으로 수급이 단기간에 한쪽으로 쏠릴 때 그 충격을 완화하는 것은 당국의 역할이다. 환율의 수준은 시장이 정하되, 그 가격을 찾아가는 시장의 질서는 당국이 지켜야 한다. 이번 200억 달러 거래를 따져봐야 할 기준도 여기에 있다. 로이터 보도대로 265억 달러 가운데 약 200억 달러를 외환당국이 흡수했다면 전체의 4분의 3이 넘는다. 시장 충격을 흡수하기 위한 일시적 조치였다면 개입 자체를 문제 삼을 이유는 크지 않다. 수백억 달러가 한꺼번에 현물환시장으로 쏟아지는 것을 피하는 것은 중앙은행과 외환당국이 충분히 검토할 수 있는 선택이다. 그렇다고 200억 달러라는 숫자의 무게까지 가벼워지는 것은 아니다. 이 정도 규모의 거래라면 어떤 원칙이 적용됐는지는 물어야 한다. 다른 기업이 같은 규모의 외화를 들여와도 같은 방식으로 대응할 것인가. 무엇보다 외환당국이 개입에 나서는 수급 충격의 기준은 무엇인가. 현재 공개된 정보만으로 이번 거래를 특정 기업에 대한 특혜로 규정할 근거는 없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이런 거래가 반복될 때 적용할 보편적 기준이다. 한국 외환시장의 수급 구조는 이미 달라졌다. 거래 규모가 커졌다면 외환정책의 규칙도 그에 맞춰 정교해져야 한다. 그래서 이제 외환개입에도 ‘사후 설명의 원칙’이 필요하다. 한국 외환당국은 현재 외환 순거래액을 일정한 시차를 두고 공개한다. 과거와 비교하면 투명성이 상당히 높아졌다. 하지만 얼마를 사고팔았는지는 알 수 있어도 왜 그런 판단을 했는지는 알기 어렵다. 외환개입의 세부 내용을 실시간으로 공개하라는 얘기는 아니다. 개입 시점과 가격, 규모를 공개하면 시장이 당국의 대응 패턴을 역이용할 수 있다. 때문에 외환정책에는 불가피하게 비밀이 필요하고 정책당국의 재량도 있어야 한다. 하지만 비밀이 필요하다는 것과 불투명해도 된다는 것은 전혀 다른 얘기다. 거래가 끝난 뒤 설명이 비어 있는 자리는 추측과 개입설이 차지한다. 이번에도 200억 달러라는 거대한 거래가 정부 발표가 아니라 외신의 익명 취재를 통해 알려졌다. 거래의 세부 조건은 공개하지 않더라도 정책 목적과 판단 원칙 정도는 사후에 설명할 필요가 있다. 시장 변동성을 완화하기 위한 것이었는지, 앞서 사용한 외화 여력을 보강하기 위한 것이었는지, 아니면 다른 정책적 판단이 있었는지 말이다. 외국환평형기금도 마찬가지다. 외평기금은 외환시장이 급격히 흔들릴 때 충격을 완충하기 위해 존재한다. 시장 안정을 위해 재량 있게 운용할 필요가 있는 특수한 자금이다. 그렇다고 정부가 필요할 때 수십조원을 움직인 뒤 아무런 설명도 하지 않아도 되는 돈은 아니다. 거래 세부를 공개할 수 없다면 최소한 대규모 장외거래의 목적과 운용 원칙, 기금에 미치는 영향 정도는 국회가 사후 검증할 수 있어야 한다. 외환정책에는 두 가지 절제가 함께 필요하다. 시장에 개입하되 가격을 정하려 해서는 안 되고, 비밀을 지키되 원칙까지 감춰서는 안 된다. 200억 달러 매입이 단기적인 수급 충격을 흡수하기 위한 것이었다면 외환시장 안정이라는 정책목표에 부합할 수 있다. 반면 원화 가치를 일정 수준 아래로 묶어두기 위한 것이었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외환당국이 설명해야 할 것은 개별 거래의 세세한 조건이 아니라 바로 이 경계다. ‘논어’ 안연편은 ‘민무신불립(民無信不立)’, 즉 신뢰가 없으면 나라가 설 수 없다고 했다. 금융시장에서는 더욱 그렇다. 환율은 숫자로 표시되지만 그 숫자를 떠받치는 것은 결국 정책에 대한 신뢰다. 외환당국이 가진 가장 큰 힘이 언제나 외환보유액인 것은 아니다. 예측 가능한 원칙 역시 강력한 외환정책 수단이다. SK하이닉스가 미국 자본시장에서 265억 달러를 조달한 것은 한국 기업의 경쟁력이 만든 성과다. 그 거대한 자금이 국내 외환시장에 일시적인 충격을 줄 우려가 있었다면 당국이 이를 완충하는 것 역시 정책의 영역이다. 다만 시장안정이라는 이름이 모든 개입을 정당화하지는 않는다. 외환당국이 지켜야 할 것은 특정한 환율이 아니라 환율이 제 가격을 찾아갈 수 있는 시장의 질서다. 로이터가 보도한 200억 달러 거래가 사실이라면 이제 당국이 밝혀야 할 것도 거기에 있다. 왜 개입했고, 어떤 원칙을 적용했으며, 같은 상황이 다시 오면 어떤 기준으로 움직일 것인가. 시장에는 비밀이 필요하다. 정책에는 원칙이 필요하다. 외환당국이 지켜야 할 마지막 자산은 달러가 아니라 그 원칙에 대한 신뢰다.
2026-09-03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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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롬비아 규모 7.4 강진…최소 111명 사망, 서부 도시 곳곳 붕괴
[경제일보] 남미 콜롬비아 서부에서 발생한 지진으로 인한 사망자가 100명을 넘어섰다. 페레이라, 칼리, 마니살레스 등 주요 도시에서 건물이 무너지고 구조 작업이 이어지고 있어 인명 피해는 더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 미국 지질조사국(USGS)에 따르면, 지진은 10일(현지시간) 오전 콜롬비아 태평양 연안 초코주의 산호세델팔마르 인근에서 발생했다. 규모는 7.4, 진원 깊이는 약 107㎞로 분석됐다. 강한 흔들림은 콜롬비아 전역은 물론 인접한 에콰도르와 파나마에서도 감지됐다. AP통신, 로이터 통신 등의 보도에 따르면, 현재까지 약 1600채의 건물이 피해를 입었고, 이 가운데 61채가 완전히 무너진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현지에서는 실종자가 계속 신고되고 있으며 구조대가 붕괴 건물 잔해를 수색하고 있다. 아벨라르도 데 라 에스프리에야 콜롬비아 대통령은 규모 7.4의 강진으로 사망자와 부상자가 각각 111명, 87명 발생한 것으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이번 지진으로 붕괴된 건물은 61채로 집계됐다. 에스프리에야 대통령은 “현재 인명 구조작업을 최우선으로 하고 있다”고 했다. 피해는 콜롬비아 서부의 주요 도시를 중심으로 광범위하게 발생했다. 특히 대표적인 커피 생산지역에 위치한 리사랄다주의 주도 페레이라는 진앙에서 비교적 가까워 큰 피해를 입었다. 페레이라에서는 다수의 건물이 붕괴해 주민들이 잔해에 갇힌 것으로 파악됐다. 구조대뿐 아니라 시민들도 현장에서 콘크리트와 건물 잔해를 직접 옮기며 생존자 수색을 돕고 있다. 인근 마니살레스에서도 피해가 발생했다. 현지의 대표적인 네오고딕 양식 성당에서는 지진 충격으로 첨탑 가운데 하나가 무너져 내렸고, 당국은 추가 여진에 대비해 주민들에게 건물 밖에 머물 것을 권고했다. 초코주의 주도 키브도에서도 건물 피해와 부상자가 발생했다. 진앙과 가까운 산악지역은 통신망까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곳이 있어 정확한 피해 규모를 확인하는 데 시간이 걸리고 있다. 콜롬비아 제3의 도시 칼리 역시 직격탄을 맞았다. 현지에서는 여러 건물이 무너지고 수백 채가 파손됐다. 주민과 구조대원들은 붕괴 현장에서 생존자를 찾기 위한 수색을 이어가고 있다. 강진 당시 칼리 시내 곳곳에서는 건물이 흔들리면서 먼지구름이 치솟았고, 시민들이 거리로 긴급 대피했다. 일부 붕괴 건물에서는 사람들이 갇힌 것으로 파악돼 구조작업이 계속되고 있다. 태평양 연안의 항구도시 부에나벤투라를 비롯한 서부지역에서도 건물 피해가 잇따랐다. 항공시설 피해도 발생했다. 페레이라와 마니살레스, 키브도, 아르메니아, 카르타고, 부에나벤투라 등 서부지역 공항들이 시설 안전을 점검하면서 항공 운항에도 차질이 빚어졌다. 에스프리에야 대통령은 지진 발생 이후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고 구조와 피해 복구에 정부 역량을 투입하겠다고 밝혔다. 콜롬비아 정부는 군과 경찰, 소방·재난대응 인력을 피해지역에 투입하고 있고, 지방정부들도 보고타 등 다른 지역에 구조대와 장비 지원을 요청하고 있다. 미국과 브라질, 멕시코 등 주변국에서도 구조와 구호 지원 의사를 밝히고 있다. 이번 지진은 콜롬비아에서 수십 년 만에 발생한 가장 강력한 수준의 지진 가운데 하나로 평가되고 있다. 콜롬비아 중·서부에서는 평소에도 지진이 발생하지만 규모 6.0을 넘는 강진은 상대적으로 드물다. 지난 1999년에는 아르메니아와 페레이라 일대에서 규모 6.2의 지진이 발생해 1100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다. 당시에도 콜롬비아의 대표적 커피 생산지역이 큰 피해를 입었다. 이번 강진은 지난 6월 이웃 국가 베네수엘라를 강타한 대규모 지진 이후 약 한 달 반 만에 발생했다. 콜롬비아 당국은 여진 가능성을 경고하면서 피해지역 주민들에게 손상된 건물에 접근하지 말 것을 당부하고 있다. 현재도 일부 피해지역에서 통신이 원활하지 않고 붕괴 건물 내부 수색이 진행 중인 만큼 사망·부상자 규모는 계속 변동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알려졌다.
2026-08-11 07:5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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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업계, 호르무즈 불안에도 7~8월 원유 물량 확보
[경제일보] 중동 정세가 다시 흔들리면서 정부가 원유 수급 상황 긴급 점검에 나섰다. 국내 정유업계가 7~8월 원유 도입 물량을 전년 수준 이상 확보해 당장 공급 차질 가능성은 제한적이지만, 호르무즈 해협 통항 불안이 장기화할 경우 유가와 해상운임, 보험료 변동성이 다시 커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15일 산업통상부에 따르면 문신학 산업부 차관은 지난 13일 한국석유공사, 정유업계, 해운업계 관계자들과 ‘원유 수급상황 긴급 점검회의’를 열었다. 회의는 이란의 호르무즈 해협 재봉쇄 선언, 통항 선박 공격, 미군의 이란 공습 등으로 중동 긴장이 다시 고조된 데 따른 조치다. 산업부는 원유 수급과 유조선 통항 상황, 석유가격 동향, 업계 대응 방안을 함께 점검했다. 산업부는 국내 정유업계가 확보한 7~8월 원유 도입 물량이 전년 대비 100% 이상이라 단기 수급 영향은 제한적이라고 판단했다. 다만 중동 긴장이 길어질 가능성에 대비해 정유·해운업계와 실시간 소통체계를 구축하고, 대체 물량 확보 방안도 병행 검토하기로 했다. 문 차관은 “원유 도입선을 다변화하는 등 석유산업의 근본적인 체질 개선을 통해 어떤 위기에도 흔들리지 않는 에너지 안보를 확립하겠다”고 밝혔다. 호르무즈 해협은 세계 원유 시장의 핵심 병목 지점이다. 미국 에너지정보청(EIA)에 따르면 2024년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한 석유 물량은 하루 평균 2000만 배럴로, 세계 석유류 소비의 약 20%에 해당한다. 호르무즈를 지나는 원유와 콘덴세이트 상당 부분은 중국, 인도, 일본, 한국 등 아시아 시장으로 향한다. 한국 입장에서는 중동산 원유 조달과 직결되는 길목인 셈이다. 국제유가도 중동 긴장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미국과 이란의 충돌이 재점화되면서 브렌트유와 서부텍사스산원유(WTI)가 상승했고, 호르무즈 해협을 통한 공급 차질 우려도 커졌다. 국제에너지기구(IEA)도 7월 석유시장 보고서에서 6월 호르무즈 흐름 재개로 세계 석유 공급이 일부 반등했지만, 미국과 이란 간 긴장이 다시 고조되면 공급 전망이 흔들릴 수 있다고 분석했다. 정유업계는 현재로서는 7~8월 원유 도입 물량과 선적·운송 일정에 큰 차질은 없다고 보고 있다. 에쓰오일은 기존처럼 사우디 얀부항을 통해 안정적으로 원유를 도입할 예정이다. 에쓰오일 관계자는 “이란전쟁 기간 중에도, 종전협상 이후에도 사우디산 원유를 안정적으로 도입했고 기존 조달 구조와 수입처에는 변화가 없다”고 설명했다. SK에너지와 HD현대오일뱅크도 단기 물량에는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SK에너지는 7~8월 원유 도입 물량에 이상이 없으며 HD현대오일뱅크 역시 전쟁 장기화에 대비해 대체 원유 도입 계획을 잡아둔 만큼 7~8월 공정 운영에는 큰 문제가 없다고 밝혔다. 당장 국내 정유사들의 생산 차질이나 내수 공급 불안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의미다. 문제는 호르무즈 통항 불안이 길어질 경우다. 업계 전체로는 원유의 안정적 도입과 비용 부담이 다시 핵심 이슈가 될 수 있다. SK에너지는 유가 급변과 해협 통항 차질에 따른 원유 수급 불안정을 우려하고 있다. HD현대오일뱅크는 원유 가격과 해상운임, 보험료가 모두 원유 도입 비용에 포함되는 만큼 특정 요인만 따로 떼어 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원유 가격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지만 운임과 보험료도 함께 원가 부담으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운임과 보험료 상승이 정제마진이나 제품가격에 바로 반영되는 구조도 아니다. 에쓰오일은 운임·보험료 상승분이 정제마진에 일률적으로 반영되는 것은 아니며, 국제 원유가격과 석유제품 수급, 시황에 따라 제품가격에 단계적으로 반영된다고 설명했다. SK에너지도 운임·보험료 상승이 사우디 OSP 하락이나 중동산 원유 약세에 따른 원가 부담 완화 효과와 복합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봤다. 결국 이번 사안의 핵심은 물량 부족보다 비용과 구조다. 원유 도입 물량이 확보돼 있더라도 통항 리스크가 커지면 유조선 운임과 보험료가 오르고, 국제 원유가격과 석유제품 가격도 흔들릴 수 있다. 호르무즈가 완전히 막히지 않더라도 선박이 우회하거나 항로 안전 확보에 시간이 더 걸리면 도입 비용은 높아질 수밖에 없다. 원유 도입선 다변화 필요성은 더 커졌지만 단기간에 중동산 원유를 대체하기는 쉽지 않다. 국내 정유설비는 중동산 중질유를 들여와 등·경유 등 고부가 제품을 생산하는 구조에 맞춰져 있다. 미국산 원유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따른 무관세 효과가 있지만, 운송거리와 원유 성상, 정제설비 적합성, 환율, 장기계약 물량까지 함께 따져야 한다. 운송 기간도 변수다. 업계에 따르면 중동권 원유는 국내 도입까지 20일 안팎이 걸리지만, 미국산이나 아프리카산 원유는 이보다 시간이 더 걸린다. 대체 원유 도입은 단순히 새 공급처를 찾는 문제가 아니라, 도입 일정과 경제성, 원유 성상, 기존 정제설비와의 적합성을 모두 맞춰야 하는 문제다. 정유사들은 이미 중동 외 원유 도입 가능성을 계속 검토하고 있다. SK에너지는 중동산 원유 의존도를 낮추기 위한 대체 도입선 검토를 지속하겠다는 입장이다. HD현대오일뱅크도 미국산과 아프리카산 등 대체 원유 도입을 살펴보고 있지만, 거리와 원유 성상, 경제성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GS칼텍스 역시 앞서 미국산 원유 등 도입선 다변화를 지속 추진하고 있으며, 캐나다산 원유도 검토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호르무즈 리스크가 반복될 때마다 국내 정유업계는 같은 질문을 마주하게 된다. 당장 원유를 얼마나 확보했느냐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얼마나 안정적으로, 얼마나 예측 가능한 비용으로 들여올 수 있느냐다. 단기 수급 안정과 중장기 도입선 다변화 사이의 간극을 줄이는 것이 에너지 안보의 시험대가 되고 있다.
2026-07-15 14:4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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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데이터센터 핵심 공급처 '삼성전자'…세계 증시 중심에 서다
[경제일보] 삼성전자가 다시 세계 증시의 중심에 섰다. 올해 6월 글로벌 시가총액 순위에서 삼성전자는 10위권에 이름을 올렸다. 22일 업계에 따르면, 글로벌 시가총액 집계 사이트 컴퍼니즈마켓캡 기준 삼성전자의 시가총액은 1조5500억 달러 수준으로 집계됐다. 이는 테슬라(1조4900억 달러), 메타 플랫폼즈(1조4400억 달러) 등 글로벌 기업들의 수치를 앞선 결과다. 순위는 주가와 환율, 집계 기준에 따라 달라질 수 있지만, 세계 자본시장이 삼성전자를 다시 가격에 반영하기 시작했다는 점은 분명하다. 이번 상승은 단순한 주가 이벤트를 넘어 삼성전자가 AI 인프라를 떠받치는 핵심 기업으로 재평가받고 있다는 신호에 가깝다. AI 데이터센터가 바꾼 메모리 '몸값' 삼성전자의 재평가는 메모리 반도체의 귀환에서 출발한다. AI는 연산의 산업이지만, 동시에 데이터를 빠르게 저장하고 옮기는 산업이다. 거대언어모델(LLM)과 생성형AI 서비스가 커질수록 필요한 것은 GPU만이 아니다. 고대역폭메모리, 고용량 DRAM, 서버용 SSD가 함께 움직여야 AI 데이터센터가 돌아간다. 한동안 경기민감 산업으로만 여겨졌던 메모리 반도체가 AI 시대의 전략 자산으로 다시 떠오른 이유다. 이와 같은 변화는 삼성전자에 유리하게 작용했다. 삼성전자는 세계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서 오랜 기간 최상위권을 지켜온 기업이다. 불황기에는 메모리 의존도가 약점처럼 보였지만, AI 투자 사이클이 시작되자 같은 구조가 강점이 됐다. 수요의 중심도 PC와 스마트폰에서 AI 서버와 데이터센터로 이동하고 있다. 그 결과 메모리 가격과 전략적 중요성이 동시에 올라갔다. 삼성전자의 기업가치 상승은 이러한 산업 지형의 변화가 반영된 결과다. 실적도 이를 뒷받침한다. 삼성전자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연결 기준 매출 133조9000억원, 영업이익 57조2000억원을 기록했고, 반도체를 담당하는 DS부문은 매출 81조7000억원, 영업이익 53조7000억원을 올렸다. AI 수요가 단순한 기대가 아니라 실제 매출과 이익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의미다. HBM4와 파운드리, '반격'의 조건 HBM 시장에서 SK하이닉스가 엔비디아 공급망에서 강한 존재감을 보이는 동안 삼성전자의 HBM 경쟁력은 한동안 도마 위에 올랐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삼성전자는 메모리, 파운드리, 로직, 패키징을 함께 보유한 보기 드문 종합 반도체 기업이고, 차세대 제품에서 고객 인증과 양산 안정성을 증명할 경우 판을 다시 흔들 수 있는 체급을 갖고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 2월 HBM4 양산 출하를 발표하며 반격의 출발선을 다시 그었다. HBM4를 통해 올해 HBM 매출이 지난해 대비 3배 이상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고, HBM4 생산 능력을 선제적으로 확대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5월에는 12단 HBM4E 샘플을 글로벌 고객사에 출하했다. 삼성전자의 HBM4E가 이전 HBM4 제품보다 속도 성능이 20% 이상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파운드리도 재평가의 축이다. 지난 11일 로이터 보도에 따르면, 구글은 차세대 AI 프로세서 ‘아이스피시’의 일부를 삼성전자에 맡기는 방안을 논의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TSMC가 핵심 연산부를 맡고, 삼성전자는 2나노 공정을 활용해 메모리 연결 부품을 생산하는 방안이 거론되고 있다. 아직 논의 단계이고 양산 시점도 2028년 이후로 거론되는 만큼 단정하기 이르지만, 구글과 같은 빅테크 기업의 AI칩 공급망 다변화 흐름 자체는 삼성전자에 기회로 작용할 수 있다. 업계 관계자는 "AI 반도체는 단일 칩의 경쟁이 아니라 고성능 연산칩, HBM, 첨단 패키징, 전력 효율, 데이터센터 공급망이 함께 움직이는 싸움"며 "삼성전자는 메모리를 만들고, 파운드리를 제공하며, 스마트폰과 가전을 통해 소비자 접점까지 갖고 있다"고 했다. 이어 "과거에는 사업 포트폴리오가 넓다는 점이 투자자에게 복잡한 구조로 보이기도 했지만, AI 인프라 경쟁이 본격화되면서 그 넓이가 다시 장점으로 읽히고 있다"고 덧붙였다. '종합 반도체 기업' 재평가 모바일과 가전도 삼성전자의 긍정적 재평가를 뒷받침한다. 갤럭시 스마트폰과 TV, 생활가전은 삼성전자가 소비자와 직접 만나는 거대한 접점이다. AI가 데이터센터 안에만 머무르지 않고 휴대폰, 집, 자동차, 사무공간으로 확산될수록 이 접점의 가치는 커진다. 삼성전자는 AI 반도체를 공급하는 기업이면서 동시에 AI가 작동하는 기기를 판매하는 기업이다. 데이터센터용 메모리와 파운드리, 온디바이스 AI, 스마트홈, 모바일 생태계를 한데 묶을 수 있는 기업이라는 점에서 시장의 시선이 달라지고 있다. 삼성전자의 글로벌 시총 10위권 진입은 한국 산업에도 상징성이 크다. 세계 최상위 기업가치 순위는 엔비디아, 알파벳,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 같은 미국 빅테크가 장악해왔다. 이러한 무대에 한국 제조기업이 다시 이름을 올렸다는 것은 AI 시대에도 물리적 제조역량이 여전히 중요하다는 의미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주가와 환율, 우선주 포함 여부, 집계기관 기준에 따라 시총 순위는 달라질 수 있다"며 "HBM 고객 인증, 파운드리 대형 고객 확보, 메모리 가격 상승 지속성, 글로벌 공급망 리스크도 남아 있다"고 했다. 다만 그는 "중요한 것은 시장의 시선이 바뀌었다는 점"이라며 "삼성전자는 더 이상 ‘메모리 사이클에 흔들리는 제조기업’으로만 인식되지 않고, AI 데이터센터의 핵심 공급자, 차세대 HBM의 도전자, 첨단 파운드리의 대안, 소비자 AI 생태계의 주요 플레이어로 다시 평가받고 있다"고 덧붙였다. [아주경제 2026년 06월 23일자 13면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2026-06-23 08:5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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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스크, 세계 첫 '조만장자' 됐다…돈을 하루 400억씩 써도 100년
[경제일보] 일론 머스크 테슬라·스페이스X 최고경영자(CEO)가 세계 최초로 순자산 1조달러를 넘긴 ‘조만장자’에 올랐다. 스페이스X가 나스닥 상장 첫날 급등하며 시가총액 2조달러를 돌파하자 최대 주주인 머스크의 지분 가치도 함께 뛰어오른 결과다. AP와 로이터 등 외신에 따르면 스페이스X는 12일(현지시간) 공모가 135달러로 상장한 뒤 150달러에 거래를 시작했고 장중 176달러대까지 올랐다. 종가는 160달러대 안팎으로 공모가보다 약 19% 높았다. 이에 따라 스페이스X 시가총액은 약 2조1000억달러로 불어나며 미국 상장사 중 최상위권에 진입했다. 머스크의 순자산은 약 1조1000억달러 안팎으로 평가됐다. 원화로 환산하면 1590조원 안팎에 이르는 규모다. 다만 이는 현금 보유액이 아니라 스페이스X와 테슬라 등 보유 지분의 시장가치가 반영된 ‘장부상 부’다. 주가가 오르면 빠르게 불어나지만 주가가 떨어지면 순자산도 크게 줄어들 수 있다. 그럼에도 규모는 압도적이다. 1조500억달러를 전 세계 인구 약 82억명으로 나누면 1인당 약 128달러가 돌아간다. 100년 동안 매일 써도 모두 쓰려면 하루 약 2877만달러, 우리 돈으로 400억원대에 가까운 돈을 써야 한다. 개인 자산이라기보다 웬만한 국가 경제 규모와 비교해야 가늠되는 수준이다. 세계 부호들과의 격차도 벌어졌다. 포브스 실시간 부호 순위 기준 래리 페이지, 세르게이 브린, 제프 베이조스, 래리 엘리슨 등 2~5위권 부호들의 자산을 모두 합쳐야 머스크 한 명의 순자산과 비슷한 수준이 된다. 워런 버핏의 자산과 비교하면 여러 배 차이가 난다. 국가 경제 규모와 비교해도 이례적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의 2026년 명목 GDP 전망 기준 대만은 9767억달러, 싱가포르는 6596억달러, 남아프리카공화국은 약 4800억달러 수준이다. 머스크 개인의 순자산이 주요 중견국 1년 경제 규모를 웃도는 셈이다. 머스크를 조만장자로 만든 결정적 계기는 스페이스X 상장이다. 2002년 설립된 스페이스X는 재사용 로켓, 민간 우주 발사, 위성 인터넷 스타링크를 앞세워 우주산업의 판을 바꿨다. 최근에는 우주 기반 데이터센터와 인공지능 인프라 구상까지 더해지며 투자자들의 기대가 폭발했다. 다만 스페이스X의 높은 평가가 모두 검증된 실적으로 뒷받침되는 것은 아니다. 외신들은 회사의 막대한 투자 부담과 적자, 우주·AI 사업의 불확실성, 머스크 지배구조에 대한 우려도 함께 지적하고 있다. ‘머스크 프리미엄’이 주가를 끌어올린 만큼 기대가 흔들리면 자산 규모도 급격히 변할 수 있다. 머스크의 1조달러 돌파는 한 기업인의 성공담을 넘어 자본시장의 방향을 보여주는 사건이다. 시장은 이미 현재의 이익보다 미래의 우주, AI, 통신 인프라 가능성에 거대한 가격을 매기고 있다. 조만장자의 탄생은 기술의 승리이자 기대가 부를 만들어내는 시대의 상징이다. 그러나 그 부가 얼마나 오래 유지될지는 스페이스X가 꿈이 아니라 실적으로 우주경제를 증명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2026-06-13 13:5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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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우주, 다른 승부… 한화 '안보 우주' vs 스페이스X '민간 우주'
[경제일보] 우주는 하나지만, 기업들이 그리는 청사진은 다르다. 특히 일론 머스크의 스페이스X와 김동관 부회장이 이끄는 한화그룹의 우주를 미래 성장축으로 한 발 빠른 행보에 관심이 모아진다. 두 기업이 겨냥하는 시장과 축적해 온 산업 자산의 결은 확연히 다르다. 스페이스X가 전 세계 소비자를 겨냥한 ‘민간 우주 플랫폼’으로 진화하고 있다면, 한화는 발사체와 위성, 해양안보를 묶는 ‘안보 우주 기업’에 방점을 찍고 있다. 스페이스X가 우주를 통해 시장을 연결한다면, 한화는 안보를 연결하는 셈이다. ‘로켓 회사’ 넘어 거대 통신 플랫폼으로 진화한 스페이스X 최근 미국 연방통신위원회(FCC)의 결정은 스페이스X의 지향점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로이터 등 외신에 따르면, 스페이스X는 에코스타의 주파수 매각 승인을 통해 스타링크 단말 간 직접통신 서비스용 65MHz 대역을 170억 달러에 확보했다. 이는 스페이스X가 더 이상 단순한 로켓 발사나 위성 인터넷 사업자에 머물지 않음을 시사한다. 저궤도 위성망과 지상 이동통신망을 결합해, 기지국 없이도 전 세계 휴대전화를 우주망에 직접 연결하는 거대한 통신 플랫폼을 구축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파괴력의 원천은 팰컨9 로켓의 1단부 재사용 기술을 통한 획기적인 비용 절감과 사업의 수직계열화에 있다. 우주로 쏘아 올리는 발사체 제조 능력과 우주 공간에서 궤도 위 통신망을 운영하며 서비스를 판매하는 능력을 동시에 갖췄다는 점이 스페이스X의 진정한 경쟁력이다. 발사체 자립과 방산의 융합… 한화의 ‘한국형 안보 우주’ 한화의 길은 다른 궤도를 그린다. 한화그룹은 ‘스페이스허브’를 통해 발사체, 위성, 우주 탐사 역량을 통합하고 있다. 이는 단순히 ‘한국판 스페이스X’를 좇는다고 평가하기 어렵다. 한화가 보유하고 있는 산업 자산은 민간 소비자를 위한 인터넷망보다는 군 위성통신, 감시정찰, 지상 및 해양 방산 체계와 더 강하게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전환점은 누리호 4차 발사였다. 한화는 누리호 제작 및 조립을 총괄하며 단순 부품 공급자를 넘어 체계종합기업으로 도약했다. 한국항공우주연구원과 함께 차세대 발사체(KSLV-Ⅲ) 개발도 주도하고 2032년 달 착륙선 발사를 목표로 하고 있는 등 국가 우주 수송 능력 확보라는 장기 프로젝트의 중심에 섰다. 한화의 강점은 단일 로켓 기술에 국한되지 않는다. 발사체 및 항공엔진 기술(한화에어로스페이스)과 지휘통제·위성통신(한화시스템), 함정·잠수함 등 해양방산(한화오션)이 결합하며 육·해·공을 우주로 잇는 거대한 방산 생태계를 구축하고 있다. 최근 한화시스템이 프랑스‧영국계 위성사업자 유텔셋 지분 5.4%를 전량 매각한 것 역시, 글로벌 민간 통신 가입자 유치 경쟁에 뛰어들기보다는 자사의 강점인 군 위성통신 및 안보 인프라에 집중하겠다는 전략적 선택으로 풀이된다. 인프라가 된 우주, 새롭게 재편되는 글로벌 전장 우크라이나 전쟁은 이와 같은 선택의 당위성을 명확히 설명한다. 전쟁 이후 위성통신과 상업 위성영상, 드론 운용, 전장 데이터 연결은 현대전의 핵심 인프라가 됐다. 일례로 지난해 7월 스타링크 장애가 우크라이나 군 통신과 드론 운용에 영향을 준 바 있다. 이는 상업용 위성영상이 병사, 드론, 지휘소를 실시간으로 잇는 핵심 전장 인프라로 격상됐고, 민간 위성망조차 전쟁이 발발하면 정찰과 타격을 위한 안보 인프라로 전환되는 시대가 열렸다는 것을 의미한다. 실제 독일 연방군은 오는 2029년까지 자체 위성망 구축을 검토 중이고, 중국은 저궤도 위성망을 차세대 6G 통신의 핵심 인프라로 삼고 대규모 주파수 및 궤도 자원 선점에 나서는 등 주요 국가들의 발걸음도 한층 빨라지고 있다. 한화의 승부처, K-방산과 해양 안보의 결합 우주 산업 전문가들은 한화가 단기간에 스페이스X의 길을 그대로 걷는 것은 무리라고 입을 모은다. 발사 빈도나 민간 위성 수요, 글로벌 가입자 기반 등에서 한국은 아직 후발 주자이기 때문이다. 한화가 주력해야 할 승부처는 막연한 ‘한국판 스타링크’가 아닌 ‘한국형 안보 우주 생태계’의 구축이다. 우리 군과 동맹국이 필요로 하는 저궤도 군 통신, 정찰위성, 발사체 자립, 장거리 정밀타격 체계를 하나의 패키지로 묶는 전략이 유효하다. 특히 해상에서 움직이는 전력을 위성으로 감시하고 표적 정보를 갱신하는 현대전의 양상을 고려할 때, 안보 우주와 해양 방산의 시너지는 필수적이다. 캐나다 잠수함 사업 수주에 나선 한화오션의 행보 역시 이 같은 큰 그림의 연장선에 있다. 업계 관계자는 “우주 경쟁이 단순한 발사체 기술 경쟁을 넘어 주파수, 통신 주권, 전장 데이터 지배력을 다투는 싸움으로 확전된 양상”이라며 “스페이스X가 거대한 내수 시장과 벤처 자본을 바탕으로 민간 우주 플랫폼의 글로벌 표준을 만들고 있다면, 한화는 K-방산 특유의 빠른 제조 역량과 동맹국의 안보 수요를 결합해 ‘안보 우주의 표준’을 정립해 나가야 한다”고 했다.
2026-05-21 10:2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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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머노이드 동료와 퇴근하는 저녁, 우리는 준비가 됐나
[경제일보] 휴머노이드 로봇이 더 이상 전시장 무대 위의 묘기가 아니라 공장 라인의 동료가 되는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로이터 보도에 따르면, 영국 로봇기업 휴머노이드는 독일 자동차·산업부품 기업 셰플러의 글로벌 제조 현장에 2032년까지 1000~2000대의 휴머노이드 로봇을 투입할 계획이다. 초기 배치는 올해 말부터 내년 상반기까지 독일 헤르초게나우라흐와 슈바인푸르트에서 시작된다. 현대차그룹도 보스턴다이내믹스의 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를 오는 2028년부터 미국 조지아 공장에 투입할 계획을 밝힌 바 있다. 이제 질문은 기술이 가능한가가 아니다. 인간의 일자리와 임금, 세금과 안전망은 준비돼 있는가다. 자동차 공장은 산업혁명의 가장 오래된 상징 중 하나다. 컨베이어벨트가 노동을 쪼갰고, 산업용 로봇 팔이 용접과 도장을 바꿨다. 이제 그 라인에 사람의 형태를 닮은 기계가 들어온다. 바퀴가 아니라 두 다리로 움직이고, 고정된 팔이 아니라 사람처럼 공간을 인식하며, 단순 반복이 아니라 상황 판단을 흉내 내는 기계다. 공장 안의 로봇은 더 이상 철제 울타리 안에 갇힌 설비가 아니다. 사람 옆에서 상자를 들고, 부품을 옮기고, 위험한 작업을 대신하는 ‘강철 동료’가 되고 있다. 경제적 관점에서 이 흐름은 거스를 수 없다. 한국은 이미 인구절벽 앞에 서 있다. 통계청 장래인구추계에 따르면 15~64세 생산연령인구는 2022년부터 향후 10년간 332만명 감소하고, 전체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2022년 71.1%에서 2072년 45.8%로 낮아질 전망이다. 노동의 빈자리는 점점 커지고, 숙련 노동자의 은퇴는 빨라지며, 청년 인력은 제조 현장을 기피한다. 이 구조에서 휴머노이드 로봇은 공상과학의 장난감이 아니라 산업 현장의 생존 수단이 된다. 기업 경영의 관점도 분명하다. 로봇은 피로를 덜 느끼고, 위험한 작업을 대신할 수 있으며, 일정 수준 이상의 품질을 반복적으로 수행할 가능성을 제공한다. 다만 여기서 단정은 경계해야 한다. 휴머노이드는 아직 완성된 해법이 아니다. 실제 공장 투입에는 안전성, 신뢰성, 유지보수 비용, 작업 전환 속도, 현장 노동자와의 협업 규칙이 필요하다. 현대차가 아틀라스를 2028년 공장에 투입하고 2030년까지 더 복잡한 공정으로 확대하겠다는 계획을 세운 것도, 이 기술이 오늘 당장 전면 대체가 아니라 단계적 검증의 대상임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방향은 분명하다. 인구는 줄고, 제조 경쟁은 치열해지며, 글로벌 기업들은 더 싸고 빠르고 안정적인 생산체계를 요구한다. 한국 자동차·부품·조선·물류·전자 산업이 휴머노이드 도입을 외면할 수는 없다. 문제는 로봇 도입 여부가 아니라 로봇 도입의 질서다. 시장은 이미 움직이는데 법과 제도, 교육과 세금, 노사관계는 아직 과거의 언어에 머물러 있다. 플라톤은 ‘국가’에서 정의를 설명하며 각자가 자기 본성에 맞는 일을 하고 남의 일을 침범하지 않는 질서를 말했다. 이를 오늘의 공장에 기계적으로 적용할 수는 없다. 그러나 한 가지 통찰은 남는다. 사회는 역할이 새로 나뉠 때 정의를 다시 세워야 한다. 로봇이 위험하고 반복적이며 고강도인 작업을 맡는다면 인간은 설계, 관리, 창의, 공감, 판단, 돌봄의 영역으로 이동해야 한다. 그 이동이 가능하려면 교육과 임금, 안전망이 함께 움직여야 한다. 기술의 승전보 뒤에는 반드시 그림자가 있다. 휴머노이드 도입은 어떤 노동자에게는 해방이지만, 어떤 노동자에게는 실직의 예고일 수 있다. 로봇이 허리를 굽혀 무거운 부품을 들 때 인간 노동자의 허리는 보호받을 수 있다. 그러나 그 로봇이 인간의 일자리까지 대신한다면, 보호받은 것은 노동자의 몸인지 기업의 비용인지 묻게 된다. 기술은 중립적일 수 있어도 기술이 배치되는 시장은 중립적이지 않다. 여기서 ‘로봇세’ 논의가 나온다. 로봇세는 오래된 논쟁이다. 빌 게이츠는 2017년 로봇이 인간 노동을 대체해 기업 비용을 줄인다면, 그에 상응하는 세금을 부과해 돌봄·교육 같은 인간에게 필요한 일자리에 재원을 투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대 논리도 만만치 않다. 로봇을 어떻게 정의할 것인지, 어떤 자동화가 과세 대상인지, 혁신 투자를 위축시키지 않을지, 해외 이전을 부추기지 않을지 모두 어려운 문제다. 따라서 지금 필요한 것은 구호로서의 로봇세가 아니라 설계로서의 사회계약이다. 로봇 한 대마다 단순히 세금을 매기는 방식은 거칠 수 있다. 그러나 로봇과 AI로 늘어난 생산성, 자동화로 절감한 인건비, 자본집약적 생산에서 발생한 초과이익을 어떻게 사회 전체의 전환 비용으로 연결할 것인지는 논의해야 한다. 재교육 기금, 고용 전환 계정, 지역 제조업 훈련센터, 중장년 노동자의 직무 재설계, 협력사 자동화 지원 같은 구체적 장치가 필요하다. 핵심은 혁신을 벌주는 것이 아니다. 혁신이 만든 과실로 혁신에서 밀려나는 사람을 다시 세우자는 것이다. 기업이 휴머노이드 로봇을 도입해 생산성을 높이는 일은 막을 수 없고 막아서도 안 된다. 다만 그 생산성의 과실이 주주와 경영진, 일부 기술 인력에게만 집중된다면 산업의 정당성은 약해진다. 시장경제가 오래가려면 시장 밖으로 밀려난 사람을 다시 시장 안으로 데려오는 장치가 있어야 한다. 유럽도 이 문제를 완전히 풀지는 못했다. 다만 AI 시스템의 투명성, 표시 의무, 이용자 고지 같은 규범은 점차 구체화되고 있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는 이 달 AI법 제50조상 특정 AI 시스템의 투명성 의무 이행 지침 초안을 공개했다. 이것이 곧바로 ‘휴머노이드 노동 가이드라인’은 아니다. 그러나 AI와 로봇이 인간의 생활세계로 들어올수록 기술 사용의 투명성, 책임성, 이용자 보호가 제도화되고 있다는 흐름은 분명하다. 한국도 기술 강국이라는 자부심만으로는 부족하다. 휴머노이드 로봇을 만들고 쓰는 능력만큼, 로봇과 함께 일하는 사회를 설계하는 능력이 중요하다. 로봇이 산업 현장에 들어오면 산업안전 규칙도 바뀌어야 한다. 사람이 로봇 옆에서 일할 때 사고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로봇이 학습한 작업 데이터는 누구의 자산인가. 로봇 도입으로 줄어든 인건비 중 일부를 노동 전환에 쓸 수 있는가. 협력사와 중소기업도 자동화 혜택을 누릴 수 있는가. 이 질문에 답하지 못하면 로봇 산업은 기술적으로는 앞서가도 사회적으로는 충돌할 수밖에 없다. 정부의 역할도 분명하다. 한쪽으로는 규제를 정비해야 한다. 실증 특례, 안전 인증, 데이터 표준, 로봇 보험, 산업안전 기준을 정교하게 만들어야 한다. 다른 한쪽으로는 사람에 투자해야 한다. 로봇 정비사, 로봇 운용 관리자, 공정 데이터 분석가, AI 안전 관리자, 현장 재교육 강사 같은 새 직무를 만들어야 한다. 로봇이 기존 일자리를 없애는 속도보다 사람이 새 일자리로 이동하는 속도가 빨라야 사회가 버틴다. 노동계도 냉정해야 한다. 휴머노이드 도입을 전면 거부하는 방식은 오래가기 어렵다. 인구 구조와 글로벌 경쟁, 원가 압박을 외면할 수 없기 때문이다. 대신 노동계는 더 구체적으로 요구해야 한다. 로봇 도입 전 고용영향 평가, 전환 배치 계획, 재교육 시간의 유급 인정, 자동화 이익 공유, 산업안전 공동 점검, 협력사 노동자 보호를 교섭 의제로 올려야 한다. “로봇 반대”가 아니라 “인간을 배제하지 않는 로봇 도입”을 요구해야 한다. 기업도 바뀌어야 한다. 휴머노이드 도입을 단순 비용 절감 프로젝트로만 보면 갈등은 커진다. 로봇은 인간을 대체하는 장비이기도 하지만 인간의 생산성을 높이는 도구이기도 하다. 어느 길을 선택할지는 기업의 철학과 제도 설계에 달려 있다. 로봇을 들여오면서 노동자의 숙련을 무시하면 공장은 조용해질지 몰라도 조직의 신뢰는 무너진다. 반대로 로봇을 위험 작업과 반복 작업에 먼저 배치하고, 사람을 더 높은 가치의 업무로 옮기면 자동화는 갈등이 아니라 경쟁력이 된다. 휴머노이드 로봇은 노동의 종말일 수도 있고, 생산성의 신대륙일 수도 있다. 어느 쪽이 될지는 기술이 아니라 제도가 결정한다. 로봇의 성능은 기업이 높일 수 있다. 그러나 로봇이 만든 사회의 품격은 정부와 국회, 기업과 노동계가 함께 만들어야 한다. 우리는 머지않아 휴머노이드 동료와 같은 공장에서 일하고, 같은 라인을 점검하고, 같은 시간에 퇴근하는 저녁을 맞게 될 것이다. 그때 인간 노동자의 어깨가 패배감으로 처지지 않게 하려면 지금 준비해야 한다. 로봇이 대신한 노동의 빈자리를 인간의 배움과 이동, 돌봄과 창의의 자리로 바꿔야 한다. 로봇이 만든 부가 인간을 배제하는 자본의 성벽이 아니라 인간을 다시 세우는 사회적 기반이 되게 해야 한다. 결국 모든 혁신의 마침표는 기술 그 자체가 아니라 사람이어야 한다. 기업이 생산성을 높이는 일은 시장경제의 활력이다. 그 과정에서 밀려나는 사람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일은 공동체의 의무다. 차가운 금속음 속에 인간의 따뜻한 숨결을 남기는 것, 그것이 휴머노이드 시대 한국 산업이 지켜야 할 기본이고 원칙이며 상식이다.
2026-05-17 09:2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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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황의 잔칫상, 씨종자까지 나눠 먹을 텐가
[경제일보] 올해 대한민국 제조업의 임금협상장은 이전과는 전혀 다른 언어들이 점령하고 있다. 수십 년간 협상 테이블의 주역이었던 “기본급 몇 호봉 인상”이라는 정액 중심의 담론은 어느덧 뒷전으로 밀려났다. 그 자리를 대신한 것은 “영업이익의 N%”라는 서늘한 수식어다. 노동의 대가를 ‘비용’이 아닌 ‘지분’의 관점에서 바라보기 시작한 노조의 요구는 이제 삼성전자를 넘어 현대자동차와 HD현대중공업 등 한국 경제의 기둥인 중후장대 산업 전체로 번지고 있다. 최근의 흐름은 가히 폭발적이다. 삼성바이오로직스, 현대차, 카카오, HD현대중공업 등 주요 대기업 노조는 약속이라도 한 듯 영업이익 또는 순이익의 일정 비율을 성과급으로 명시하라는 요구안을 던졌다. 특히 HD현대중공업 노조는 올해 임단협에서 “연간 영업이익의 최소 30%를 조합원에게 지급할 것”을 공식 요구하며 배수의 진을 쳤다. 이는 지난해 실적 기준 조합원 1인당 약 7500만원에 달하는 막대한 재원이다. 현대차 노조 역시 지난해 거둔 역대급 순이익의 30%를 성과급으로 요구하며 사측을 압박하고 있다. 삼성전자 노조가 고수하고 있는 ‘영업이익 15% 성과급 재원화’와 ‘성과급 상한 폐지’는 이제 단순한 임금 인상을 넘어 기업 이익의 사후 배분 구조를 바꾸겠다는 근본적인 도전이다. 이러한 요구를 단지 ‘노조의 이기주의’나 ‘귀족 노조의 떼쓰기’로 치부하는 것은 사태의 본질을 보지 못하는 단견(短見)이다. 노동자들의 목소리에는 실존적인 불안과 정당한 기여도가 섞여 있다. 고물가 행진 속에 실질 임금은 정체됐고, 현장의 노동 강도는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무엇보다 인공지능(AI)과 자동화가 일자리를 위협하는 대전환기에 ‘내가 만든 호황의 과실’이라도 확실히 챙겨야겠다는 절박함이 깔려 있다. 앞서 뉴욕타임스나 로이터 등 외신들도 글로벌 제조업 전반에서 나타나는 이러한 이익 공유(Profit Sharing) 요구의 강화가 기술 격변기의 노동자들이 선택한 자기방어적 전략이라고 분석한 바 있다. 그러나 문제는 방법론이다. 성과를 나누자는 철학에는 동의할 수 있지만, 이익의 일정 비율을 ‘자동 배분’ 공식으로 고정하자는 주장은 기업의 영속성을 뒤흔들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영업이익은 장부상의 숫자가 아니라 내일의 생존을 위해 투입돼야 할 ‘미래의 종잣돈’이기 때문이다. 동양의 고전 순자(荀子) 부국(富國)편에는 “욕다이물과, 과칙필쟁(欲多而物寡, 寡則必爭)”라는 구절이 나온다. “욕망은 많은데 물건이 적으면 반드시 다툼이 생긴다”는 뜻이다. 순자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분(分)’, 즉 합리적인 제도와 기준을 강조했다. 지금의 성과급 논쟁은 바로 이 ‘분’의 기준이 무너졌기 때문에 발생한다. 영업이익이라는 한정된 그릇을 두고 노동자, 주주, 협력사, 그리고 미래 투자가 서로의 몫을 먼저 챙기려 다투는 형국이다. 특히 반도체와 자동차, 조선업은 소위 ‘사이클 산업’이다. 오늘의 천문학적인 이익은 어제의 고통스러운 R&D(연구개발)와 설비투자가 낳은 결과다. 동시에 오늘의 이익은 내일의 다운사이클을 버텨낼 맷집이자, 초격차 기술을 확보할 유일한 실탄이다. 최근 기업들이 노사 갈등으로 투자 재원을 소진할 경우, 국가 보조금을 등에 업은 중국과 미국 기업들과의 경쟁에서 순식간에 낙오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이유다. 삼성전자가 AI 메모리 시장에서 한 세대만 뒤처져도 수조원의 이익은 순식간에 적자로 돌아설 수 있다. 현대차가 전기차와 SDV(소프트웨어 중심 차량) 전환기에 투자 시기를 놓치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노동자의 일자리 안정성을 위협하는 부메랑으로 돌아온다. 성과급 공식이 투자의 발목을 잡는 순간, 우리는 ‘미래를 가불해서 오늘을 잔치하는’ 우를 범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해법은 무엇일까. 우리는 이제 성과 배분의 새로운 원칙을 세워야 한다. 첫째, 성과급 산정의 투명성 확보가 최우선이다. 노조가 ‘정률 배분’이라는 거친 요구를 들고나온 것은 사측이 성과급 산정 기준을 ‘깜깜이’로 운영해온 탓이 크다. 기업은 사업부별 실적과 현금흐름, 향후 투자 계획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노조를 진정한 경영 파트너로 대우해야 한다. “회사가 어려우니 참으라”는 식의 낡은 훈계는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둘째, 성과 배분의 범위를 산업 생태계 전체로 확장해야 한다. 현대차 노조가 제안한 ‘협력업체 노동자와의 성과 공유’는 매우 고무적인 진전이다. 대기업 정규직만 성과의 과실을 독식하는 구조는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심화시키고 산업의 기초 체력을 약화시킨다. 1, 2차 협력사와 사내하청 노동자들까지 아우르는 ‘상생형 성과 배분’ 모델을 정립해야 한다. 셋째, ‘정률 배분’ 대신 ‘유연한 보상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영업이익의 30%를 고정적으로 떼어가는 방식은 기업 경영의 유연성을 완전히 박살 낸다. 대신 실적에 연동하되, 미래 투자 재원과 재무 건전성을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상한선과 하한선을 조율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은 최근 사석에서 “기업의 성장은 국가 발전과 궤를 같이해야 한다”는 취지의 언급을 했다고 전해진다. 이 메시지는 무겁다. 개별 기업의 임단협 결과가 국가 수출 경쟁력과 환율, 지역 경제에 직결되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경제는 냉철한 숫자로 움직이지만, 사회는 따뜻한 분배의 정의로 유지된다. 성과는 나눠야 한다. 그것은 시장경제의 정의다. 그러나 미래까지 나눠 먹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산업의 상식이다. 지금 삼성전자와 현대차, HD현대중공업의 협상 테이블 위에 놓인 것은 단순한 ‘보너스 금액’이 아니다. 대한민국 제조업이 호황의 단물을 어떻게 처리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다음 10년이 결정될 것이다. 노사는 지금 좁은 능선 위에 서 있다. 서로를 벼랑 끝으로 밀어낼 것인가, 아니면 서로의 손을 잡고 더 높은 고지로 향할 것인가. ‘나눔’의 미덕과 ‘투자’의 책무가 조화를 이룰 때, 비로소 ‘K-제조업’의 지속 가능성은 증명될 수 있다. 성과는 나누되 미래의 씨앗은 남겨두는 것, 그것이 오늘날 우리 시대가 요구하는 진정한 산업의 문법이다.
2026-05-15 13:3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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