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결과 총 19건
-
장관 청문회가 또 부동산 검증장 됐다…정책능력은 언제 묻나
[경제일보] 국방부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가장 뜨거웠던 것은 북한 핵도 전시작전통제권도 아니었다. 집과 상가였다. 16일 강신철 후보자 청문회에서 야당은 서울 천왕동 철거민 특별공급과 장남의 7억원대 상가 매입, 재산신고 누락 문제를 집중적으로 파고들었다. 강 후보자는 특별공급은 정상적인 보상이었고 장남 상가를 신고하지 못한 것은 자신의 불찰이라고 답했다. 여야는 이 문제를 놓고 상당한 시간을 공방으로 보냈다. 검증할 사안이다. 고위공직자 후보자가 부동산을 어떤 방법으로 취득했는지, 세금을 제대로 냈는지, 특혜를 받은 것은 없는지, 재산을 빠뜨리지 않고 신고했는지는 따져야 한다. 국방부 장관이라고 예외일 이유도 없다. 다만 청문회는 거기서 끝날 수 없다. 국방부 장관에게 맡길 것은 7억원짜리 상가가 아니라 군과 국방예산이다. 북한 핵·미사일에 어떻게 대응할지, 전작권 전환을 어떻게 볼지, 병력 감소와 초급간부 부족을 어떻게 풀지까지 같은 강도로 물었어야 한다. 하루 전 열린 청문회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형일 경제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 후보자에게는 17년 동안 보유한 과천 아파트에 실제 거주한 기간이 약 4개월이라는 문제가 집중적으로 제기됐다. 이소영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후보자에게도 서울 홍제동 아파트를 장기간 실제 거주하지 않고 보유한 문제가 따라붙었다. 당사자들의 해명과 여야의 반박이 이어졌고 부동산은 두 청문회의 중심 쟁점이 됐다. 경제부총리라면 부동산 문제를 피해 갈 수 없다. 세금과 주택정책을 다루는 자리인 만큼 후보자의 주택 보유 방식과 정책 사이에 모순이 없는지도 살펴야 한다. 그러면 경제도 그만큼 물어야 한다. 잠재성장률을 어떻게 끌어올릴 것인지, 확장재정과 국가채무를 어떻게 관리할 것인지, 기업 투자를 어떻게 살릴 것인지 묻는 것이 경제부총리 청문회다. 중기부 장관에게도 집을 언제 샀는지만 물을 수는 없다. 문을 닫는 자영업자와 사람을 구하지 못하는 중소기업, 벤처 투자 위축에 어떤 해법을 갖고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 홍지선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는 성격이 조금 다르다. 지난해 서울 아파트를 사면서 금융기관과 장모에게 돈을 빌린 과정이 검증 대상에 올랐다. 국토부 장관이라면 자신의 집을 어떻게 사고 보유했는지가 정책 판단과 무관할 수 없다. 그와 함께 서울 집값을 어떻게 안정시킬지, 주택 공급을 어디서 얼마나 늘릴지, 교통과 철도 정책을 어떻게 끌고 갈지도 따져야 한다. 국토부 장관 청문회가 아파트 매입 경위만 묻고 끝난다면 그것도 반쪽짜리 검증이다. 국회는 이미 17년 전 같은 문제를 짚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2009년 우리 인사청문회가 후보자의 도덕성과 개인 신상에 관한 질문에 많은 시간을 쓰면서 공직 수행능력을 제대로 검증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미국 상원 인준청문회와 비교하면서 한국은 후보자의 과거를 살피는 ‘회고적 평가’에 치우친 반면 미국은 정책과 향후 계획을 따지는 ‘전망적 평가’의 비중이 높다고 분석했다. 후보자를 도덕성·정책능력·리더십이라는 세 기준으로 평가하는 방안도 제시했다. 17년 전 국회가 스스로 내놓은 진단이다. 당시 보고서는 의원의 질의 방식도 문제로 들었다. 주어진 발언시간 대부분을 의원이 사용하면서 후보자가 충분히 답할 기회를 갖지 못한다는 지적이었다. 후보자의 답보다 의원의 폭로가 앞서는 청문회가 되기 쉽다는 뜻이다. 정책을 캐묻으려면 의원도 공부해야 한다. 국방장관 후보자에게 군 구조개편을 묻고 답변의 허점을 파고들려면 국방정책을 알아야 한다. 경제부총리 후보자의 성장정책을 검증하려면 숫자와 경제정책을 들여다봐야 한다. 부동산 등기부 한 장에서 시작하는 공방보다 품이 많이 든다. 재산 검증은 당연히 해야 한다. 부동산 투기나 탈세, 위장전입, 특혜, 허위 재산신고가 있다면 끝까지 확인해야 한다. 다만 부동산은 장관을 검증하는 한 항목일 뿐이다. 청문회 전부가 될 수는 없다. 집이 몇 채인지, 얼마에 샀는지만 알고 청문회장을 나선다면 국민은 후보자의 재산 상태는 알 수 있어도 그 사람이 장관 일을 할 수 있는지는 알기 어렵다. 장관 한 사람이 움직이는 예산은 수조원에서 수십조원에 이르고 수많은 공무원과 산하기관이 그 판단에 따라 움직인다. 국방장관의 판단 하나는 안보와 군의 운용을 바꾸고 경제부총리의 판단 하나는 기업과 가계에 영향을 준다. 중기부 장관의 결정은 자영업자와 중소기업의 생존과도 연결된다. 장관 후보자에게 필요한 검증은 과거의 부동산 거래만이 아니라 앞으로 내릴 판단의 수준까지 포함해야 한다. 그런데 청문회가 열릴 때마다 질문은 다시 집으로 돌아간다. 후보자가 몇 채를 가졌는지, 얼마에 샀는지, 몇 달을 살았는지는 청문회가 끝난 뒤에도 또렷하게 남는다. 정작 그 사람이 장관이 되면 무엇을 할지는 잘 남지 않는다. 집을 어떻게 샀는지는 끝까지 캐묻는다. 나라 일을 어떻게 할지는 그만큼 묻지 않는다. 지금 인사청문회의 가장 큰 빈틈은 거기에 있다.
2026-09-17 09:07:47
-
외국계 은행 자문에서 국내 최대 로펌까지…김앤장 53년
[경제일보] 김앤장은 법정이 아니라 기업의 계약서에서 출발했다. 1973년 김영무·장수길 변호사가 문을 연 김·장 법률사무소의 초기 고객은 한국에 진출한 외국계 은행이었다. 국내 은행과 기업이 해외에서 자금을 빌릴 때 계약서를 검토하고 외국 기업의 국내 투자를 자문했다. 변호사의 주된 무대가 법정이던 시절, 김앤장은 기업의 거래 현장으로 먼저 들어갔다. 53년이 지난 지금 김앤장은 국내 최대 로펌이다. 변호사만 1400명이 넘고 변호사를 포함한 법률전문가는 2000명을 웃돈다. 2025년 매출은 업계에서 1조6000억~1조7000억원 수준으로 추산한다. 2위권 대형 로펌과도 상당한 격차를 두고 있다. 처음부터 이런 규모였던 것은 아니다. 김앤장보다 먼저 기업법무 시장에 자리 잡은 법률사무소도 있었다. 김앤장이 선두로 치고 올라온 과정에는 한국 기업이 다음에 필요로 할 법률서비스를 먼저 준비하는 방식이 있었다. ◆ 판·검사 대신 기업법무 택한 김영무 창업자 김영무 변호사의 이력부터 당시 법조계의 통상적인 경로와 달랐다. 1964년 제2회 사법시험에 합격했지만 판사나 검사가 되지 않았다. 서울대 사법대학원을 거쳐 미국으로 건너가 시카고대 로스쿨에서 비교법을 공부했고 하버드 로스쿨에서 J.D. 학위를 받았다. 1970년에는 미국 일리노이주 변호사 자격을 취득했다. 1970년대 한국 기업들은 해외 자본을 끌어들이며 빠르게 성장했다. 차관을 들여오고 외국 회사와 합작법인을 세우면서 계약도 복잡해졌다. 국내법뿐 아니라 외국법과 국제거래에 익숙한 변호사가 필요해지기 시작했다. 김영무 변호사는 이 시장을 파고들었다. 법정에서 이미 벌어진 분쟁을 해결하는 것보다 기업이 거래를 하기 전 계약을 짜고 위험을 줄이는 업무에 무게를 뒀다. 지금은 흔한 기업법무지만 당시에는 새로운 시장이었다. 장수길 변호사의 합류는 김앤장의 빈 곳을 채웠다. 장 변호사는 고등고시를 거쳐 서울민사지법과 서울형사지법원 판사를 지냈다. 김영무 변호사가 국제거래와 기업자문을 맡았다면 장 변호사는 송무와 중재, 지식재산권을 담당했다. 김앤장이라는 이름은 두 사람의 성에서 따왔다. ◆ 기업이 해외로 나가자 로펌도 따라갔다 김앤장의 성장은 한국 기업의 해외 진출과 궤를 같이했다. 1970~1980년대 해외 차관과 외국인 투자가 늘면서 국제금융과 외국인투자 업무가 커졌다. 기업들이 합작회사를 만들고 해외 자본을 끌어들이면서 김앤장이 일찍 쌓은 국제거래 경험을 찾는 기업도 늘었다. 1976년 합류한 정계성 변호사는 금융 분야를 맡았다. 공기업과 기업의 해외 차입, 국제자본시장 업무를 담당했고 1997년 외환위기와 2008년 금융위기 때 기업의 외자유치와 금융거래를 자문했다. 1980년 입사한 정경택 변호사는 외국인 투자와 M&A, 공정거래 분야를 키웠다. 1983년 GM과 대우자동차의 합작투자, 1991년 사우디아라비아 아람코의 쌍용정유 지분 인수, 1997년 미국 P&G의 쌍용제지 인수 등 국내 기업법무 시장의 굵직한 거래에 참여했다. 기업의 거래 방식이 바뀔 때마다 김앤장의 조직도 달라졌다. 기업들이 해외에서 돈을 빌리자 금융 전문가가 늘었고 외국 기업의 국내 진출이 많아지자 외국인투자 분야를 키웠다. M&A가 활발해지자 기업거래 변호사를 늘렸고 공정거래 규제가 강화되자 경쟁법 전문가를 붙였다. 김앤장이 몸집을 키운 과정은 변호사를 무작정 늘린 역사와는 거리가 있다. 시장이 먼저 움직였고 그 시장에 맞춰 사람을 채웠다. ◆ 유명 변호사 한 명보다 팀으로 승부 김앤장의 또 다른 특징은 사건을 맡는 방식이다. 대형 사건을 이름난 변호사 한 명에게 맡기기보다 사건 성격에 따라 여러 분야의 전문가를 한 팀으로 묶는다. M&A 사건이라면 기업법무 변호사뿐 아니라 공정거래와 금융, 조세, 노무 전문가가 함께 들어간다. 규제가 걸린 산업에서는 해당 부처나 감독기관을 경험한 전문가도 참여한다. 현재 김앤장 공정거래 분야에는 국내외 변호사와 경제학자, 산업 전문가, 전직 공정거래위원회 관계자 등 150명 넘는 전문인력이 참여하고 있다. 자본시장 분야에도 80명 이상의 전문가가 포진해 있다. 기업 입장에서 대형 로펌을 찾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수천억원, 수조원이 오가는 거래나 회사의 존립이 걸린 사건에서는 법률 하나만 문제가 되지 않는다. 공정거래와 세금, 노동, 인허가 문제가 동시에 터진다. 김앤장은 이를 한 조직 안에서 처리할 수 있도록 인력을 만들어왔다. 젊은 변호사를 키우는 방식에도 일찍부터 해외 경험을 넣었다. 파트너와 후배 변호사가 함께 사건을 맡게 하고 해외 로펌 연수도 활용했다. 정계성 대표도 1982~1983년 미국 뉴욕 셔먼앤드스털링에서 실무를 익혔다. 사건을 맡아 경험을 쌓고 해외에서 새로운 거래 방식을 익힌 변호사들이 돌아와 다시 큰 사건을 맡았다. 이 과정이 수십 년 반복되면서 분야별 전문인력이 쌓였다. ◆ 외환위기, 김앤장이 한 단계 커진 시기 1997년 외환위기는 한국 기업의 지형을 뒤흔들었다. 기업들이 자산을 팔고 외국 자본을 끌어들이기 시작했다. 부실기업 구조조정과 기업 매각, 외자유치가 한꺼번에 쏟아졌다. 해외 자본과 국내 기업 사이에서 거래 조건을 만들고 정부 규제를 검토할 법률전문가의 역할도 커졌다. 김앤장은 외환위기 이전부터 국제금융과 외국인투자 업무를 다뤄왔다. 국내 기업들이 급하게 해외 자본을 찾기 시작했을 때 이미 관련 업무를 해본 변호사들이 있었다. 외환위기 이후 국내 M&A 시장이 커지면서 김앤장의 업무도 금융과 외국인투자에서 M&A, 공정거래, 조세, 구조조정으로 빠르게 넓어졌다. 김앤장 연혁에는 이 무렵 국내 로펌 가운데 처음으로 변호사 수가 100명을 넘어섰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대형 거래를 맡으면서 경험이 쌓였고 그 경험을 보고 또 다른 기업이 찾아왔다. 새로운 사건이 들어오면 다시 전문인력을 늘렸다. 김앤장이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국내 기업법무 시장의 선두로 올라선 배경이다. ◆ 계약서에서 시작해 기업 형사사건까지 반세기가 흐른 지금 김앤장이 맡는 사건의 규모는 달라졌다. 대한항공의 아시아나항공 인수 과정에서는 14개국 경쟁당국의 기업결합 심사가 필요했다. 김앤장은 4년여에 걸친 기업결합 심사와 항공 관련 인허가 자문에 참여했다. SK하이닉스의 인텔 낸드플래시 사업 인수와 삼성바이오로직스 인적분할, 한앤컴퍼니의 SK스페셜티 인수 등 조 단위 거래에도 이름을 올렸다. 2026년 상반기 국내 M&A 법률자문 시장에서는 자문금액 26조3406억원, 68건으로 1위를 기록했다. 금액 기준 시장점유율은 33.27%였다. 기업자문에서 출발했지만 송무와 기업형사 분야에서도 대형 사건을 맡는다.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과 관련해 기소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형사재판에 참여해 1·2·3심 무죄 판결을 받았다. SK실트론 사건에서는 최태원 SK그룹 회장 등에 대한 공정거래위원회 처분을 취소하는 대법원 판결을 이끌어냈다. 승소 기록만 있는 것은 아니다. 구글과 메타가 개인정보보호위원회를 상대로 낸 과징금 취소소송에서는 청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1973년 외국계 은행의 계약서를 검토하던 법률사무소의 업무는 이제 M&A와 공정거래, 국제중재, 개인정보, 기업형사로 넓어졌다. 기업이 겪는 문제가 복잡해지면서 로펌이 다루는 영역도 함께 넓어진 것이다. ◆ 커진 영향력, 커진 감시 국내 최대 로펌이라는 자리는 사건만 많이 가져오는 것은 아니다. 기업이나 기업인이 정부 조사와 형사사건에 직면하면 김앤장을 찾는 경우가 많다. 법원과 검찰, 정부 부처와 규제기관 출신 전문가도 적지 않다. 김앤장의 사건 대응력이 높아지는 만큼 전관과 이해충돌을 둘러싼 논란도 따라붙는다. 2025년 공정거래위원회 직원의 외부인 접촉 보고 가운데 김앤장 관련 보고는 로펌 중 가장 많은 363건이었다. 접촉 보고는 사건 관계인과의 만남 자체를 기록하는 제도여서 이 숫자가 곧 부적절한 접촉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규제기관 출신 인력을 대거 보유한 로펌이 해당 기관의 규제를 받는 기업을 대리하는 문제는 늘 감시 대상이 된다. 김앤장이 커질수록 사건 수임 못지않게 이해충돌 관리와 전관 논란에 어떻게 대응하느냐도 중요해졌다. 고객 평가 역시 전문성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한국경제와 한국사내변호사회가 실시한 2025년 조사에서 김앤장은 종합평가와 전문성 부문에서 1위에 올랐다. 서비스 평가는 3위였고 소송비용의 합리성은 6위였다. 복잡한 사건에 여러 분야의 전문인력을 투입하는 방식은 강점이지만 비용이 높다는 평가도 피하기 어렵다. 압도적인 규모가 항상 고객 만족으로 이어지는 것도 아니다. ◆ 시장이 열리기 전에 사람을 준비했다 김앤장의 53년을 보면 몇 번의 중요한 갈림길이 있었다. 기업이 해외에서 돈을 빌리기 시작할 때 국제금융을 키웠고 외국 자본이 국내로 들어올 때 외국인투자 업무를 늘렸다. 기업 인수·합병이 본격화되기 전에 M&A 전문가를 확보했고 공정거래 규제가 강해지자 경쟁법 인력을 늘렸다. 지금은 AI와 데이터, 공급망, 경제안보, 글로벌 통상, 기업지배구조가 기업법무의 새로운 시장으로 들어오고 있다. 김앤장도 이 분야에 전문조직과 인력을 늘리고 있다. 김앤장이 53년 동안 한 선택을 한 문장으로 줄이면 복잡하지 않다. 기업이 법률 문제에 부딪힌 뒤 변호사를 찾았다면 김앤장은 그보다 먼저 그 문제를 다룰 사람을 준비했다. 1973년 외국계 은행의 계약서에서 시작한 김앤장이 국내 최대 로펌으로 성장한 데에는 그 시간차가 있었다.
2026-09-08 08:32:10
-
"냉각장치부터 자동차 두뇌까지"…삼성·LG, '가전 밖'에서 다시 붙었다
[경제일보] 국내 가전 시장에서 오랜 경쟁을 이어온 삼성전자와 LG전자의 전선이 ‘가전 밖’으로 넓어지고 있다. 냉장고와 세탁기, TV를 넘어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를 식히는 냉난방공조(HVAC)와 자동차 전장으로 무게중심을 옮기면서다. 소비자를 상대로 제품을 판매하는 B2C에서 기업 고객과 장기간 수주·납품 관계를 맺는 B2B로 새로운 수익원을 확보하려는 경쟁이 본격화하고 있다. 28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와 LG전자는 최근 HVAC와 전장 사업 확대에 속도를 내고 있다. 지난 19일 삼성전자는 광주사업장에 약 2400억원을 투자해 플랙트그룹의 HVAC 생산라인을 구축한다고 밝혔고, LG전자는 차세대 5G 텔레매틱스 솔루션을 유럽 프리미엄 완성차 양산 모델에 공급하기 시작했다. AI 냉각 격돌 가장 뜨거운 경쟁 분야는 데이터센터 냉각이다. 생성형 AI 확산으로 고성능 그래픽처리장치(GPU) 사용이 늘면서 데이터센터의 전력 소비와 발열량이 급증하자 HVAC가 새로운 성장시장으로 떠올랐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11월 유럽 HVAC 업체 플랙트그룹을 15억유로에 인수하며 승부수를 던졌다. 기존 가정용·시스템에어컨 등 개별공조에 플랙트가 보유한 칠러와 공기조화기(AHU), 컴퓨터룸 공기처리장치(CRAH), 냉각수분배장치(CDU) 등 중앙공조 기술을 더해 소형 주거시설부터 초대형 AI 데이터센터까지 아우르는 제품군을 갖췄다. 생산능력 확대에도 나섰다. 삼성전자는 광주사업장 제3캠퍼스에 약 2400억원을 투자해 2만1800㎡ 규모의 HVAC 생산라인을 구축하고 2028년 초 가동할 예정이다. 광주사업장은 플랙트의 글로벌 생산거점이자 아시아 핵심기지 역할을 맡는다. 삼성전자 DA부문 관계자는 “글로벌 시장에서 B2B 에어컨 수주를 이어가고 AI 데이터센터 분야로 사업을 확대해 HVAC를 미래 성장동력으로 적극 육성하고 있다”며 “플랙트의 고정밀 공조 기술과 삼성전자의 AI 기반 빌딩 통합 제어 플랫폼인 스마트싱스 프로와 b.IoT를 결합해 대형 상업·산업시설 등 고부가가치 HVAC 시장에 대응할 계획”이라고 했다. 국내 생산을 통해 데이터센터 프로젝트의 맞춤형 납품과 협력사 밸류체인 구축에도 속도를 낸다는 방침이다. LG전자 역시 실제 수주를 빠르게 늘리고 있다. LG전자 ES사업본부에 따르면 AI 데이터센터향 냉난방공조 솔루션 수주액은 이미 6000억원을 넘어섰으며 연말까지 수조원 수준의 수주 확보를 목표로 하고 있다. LG전자의 강점은 칠러와 팬월유닛(FWU) 등 공랭식 냉각부터 CDU 등 액체냉각까지 아우르는 제품군이다. LG전자 ES부문 관계자는 “제품을 안정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부품 경쟁력인 ‘코어테크’가 강점”이라며 “공랭식과 액체냉각뿐 아니라 소프트웨어와 전력 인프라까지 토털 솔루션을 제공할 수 있다”고 했다. LG전자는 AI 데이터센터와 글로벌 사우스 등 신흥시장을 공략해 2030년 HVAC 매출 20조원을 달성한다는 목표다. 車 두뇌 경쟁 두 번째 전선은 자동차다. 차량이 소프트웨어와 AI 중심으로 진화하면서 전장 역시 양사의 핵심 B2B 사업으로 자리 잡고 있다. 삼성의 중심에는 하만이 있다. 2017년 삼성전자가 인수한 하만은 디지털 콕핏과 텔레매틱스, 카오디오 등을 중심으로 사업을 확대하고 있다. 올해 2분기 하만은 매출 4조6000억원, 영업이익 4000억원을 기록했다. 삼성전기는 차량용 적층세라믹커패시터(MLCC)와 카메라모듈, 삼성디스플레이는 차량용 OLED 등으로 전장 사업을 뒷받침하고 있다. LG는 VS사업본부를 중심으로 소프트웨어중심차량(SDV) 시장을 공략한다. 최근 유럽 완성차에 공급을 시작한 5G R16 기반 텔레매틱스는 무선 소프트웨어 업데이트(OTA), 차량·사물통신(V2X), 자율주행 등에 필요한 연결성을 제공한다. LG전자 VS부문 관계자는 “이번 공급은 차량용 통신 분야에서 축적한 기술력과 글로벌 사업 경쟁력을 입증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며 “텔레매틱스를 인포테인먼트와 차량용 소프트웨어 등과 연계해 경쟁력을 강화할 계획”이라고 했다. LG전자는 앞으로 SDV와 AIDV를 중심으로 차량용 소프트웨어와 AI 역량도 키운다. 인포테인먼트와 텔레매틱스를 고도화하면서 AI 기반 인캐빈 센싱과 개인화 기능 등을 확대해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AI를 아우르는 통합 솔루션으로 사업 영역을 넓힌다는 구상이다. 승부는 수익성 양사의 B2B 사업은 이제 외형 확대에서 수익성을 입증하는 단계로 넘어가고 있다. 지난해 LG전자 B2B 매출은 24조1000억원을 기록했고 VS와 ES사업본부 합산 영업이익은 처음 1조원을 넘어섰다. 올해 2분기 VS사업본부는 매출 3조259억원, 영업이익 1912억원, ES사업본부는 매출 2조7261억원, 영업이익 2358억원을 기록했다. 삼성도 하만을 안정적인 수익원으로 키운 데 이어 대형 인수합병(M&A)을 활용해 HVAC 사업 기반을 빠르게 넓히고 있다. 플랙트 인수로 중앙공조 기술과 글로벌 고객 기반을 확보한 데 이어 광주 생산라인을 통해 국내외 공급망까지 강화하는 수순이다. 결국 다음 승부는 누가 B2B 수주를 장기간 안정적인 이익으로 연결하느냐에서 갈릴 전망이다. LG가 먼저 확보한 데이터센터·완성차 고객과 수주를 토대로 수익성을 높이는 전략이라면 삼성은 플랙트와 하만에 기존 AI·플랫폼 기술을 접목해 사업 외연을 빠르게 넓히고 있다. 냉장고와 TV에서 맞붙었던 두 회사의 경쟁이 이제 데이터센터 냉각장치와 자동차의 두뇌로 옮겨가고 있다.
2026-08-28 17:22:03
-
하반기 삼성은 AI 반도체, LG는 AI 냉각…같은 시장 다른 전략
[경제일보] 삼성전자와 LG전자가 AI 인프라 확대에 힘입어 나란히 역대 최대 2분기 실적을 거둔 가운데, 하반기 AI 시장을 공략하는 방식에서 차이를 보이고 있다. 삼성전자는 AI 반도체 경쟁력을, LG전자는 AI 데이터센터 냉각과 로봇 등 신사업을 앞세우면서 양사의 전략이 향후 실적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3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의 2분기 연결 기준 매출은 171조4995억원, 영업이익은 89조4924억원을 기록했다. 전년 동기 대비 매출은 130.0%, 영업이익은 1813.8% 증가했으며, 순이익은 71조6245억원으로 1299.9% 증가했다. 매출과 영업이익 모두 분기 기준 역대 최대 기록을 경신하며 3분기 연속 최고 실적을 이어갔다. 실적은 반도체 사업이 이끌었다. 디바이스솔루션(DS)부문은 HBM과 서버용 D램 판매 확대에 힘입어 매출 127조5000억원, 영업이익 89조2000억원을 거두며 역대 최대 실적을 냈다. 반면 스마트폰과 가전 등을 담당하는 디바이스경험(DX)부문은 부품 원가 상승 영향으로 매출 48조원을 기록했지만 8000억원의 영업손실을 내며 적자로 돌아섰다. 하만은 매출 4조6000억원, 영업이익 4000억원을 기록했고, 디스플레이는 매출 7조5000억원, 영업이익 7000억원을 올렸다. 양사의 실적은 AI 수혜를 입었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실적을 이끈 사업은 달랐다. 삼성전자는 반도체가 성장을 견인한 반면 LG전자는 생활가전과 전장, 냉난방공조(HVAC) 등 주요 사업이 고르게 성장하며 역대 최대 실적을 거뒀다. LG전자의 2분기 매출은 23조8265억원, 영업이익은 1조5791억원으로 각각 전년 동기 대비 14.9%, 147.0% 증가하며 2분기 기준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생활가전(HS)사업본부는 처음으로 분기 매출 7조원을 넘어섰고, 전장(VS)사업본부는 2개 분기 연속 3조원대 매출을 기록했다. 냉난방공조를 담당하는 ES사업본부는 해외 에어컨 판매 확대에 힘입어 매출이 늘었다. 회사는 이 사업본부 안에서 AI 데이터센터 냉각 솔루션을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키우고 있다. 하반기 AI 시장을 공략하는 양사의 전략도 서로 다르다. 삼성전자는 AI 중심의 반도체 수요가 이어지면서 전사 실적 성장세를 이어갈 것으로 내다봤다. 회사는 상반기 범용 D램 위주였던 생산능력을 하반기에는 HBM4 중심으로 전환해 수익성을 높이겠다고 밝혔다. HBM4 매출은 하반기 전체 HBM 매출의 60% 이상을 차지할 것으로 전망했다.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사업도 반등을 노린다. 회사는 아직 적자를 이어가고 있지만 2나노 공정 수주 과제 수가 지난해보다 두 배 이상 확대될 것으로 내다봤다. 브로드컴을 비롯한 주요 고객사와 여러 프로젝트를 논의 중이라고 설명했다. 시스템 LSI 사업도 AI 경쟁력 강화에 나선다. 회사는 2나노 2세대 공정 기반 모바일 AP '엑시노스 2700'을 하반기 양산해 내년 초 갤럭시 S27 시리즈에 탑재할 계획이다. AI 반도체 경쟁력을 강화해 성장세를 이어가겠다는 전략이다. LG전자는 기존 주력 사업을 기반으로 AI 인프라 신사업 확대에 속도를 낸다. 회사는 상반기 AI 데이터센터(AIDC) 냉각솔루션 수주액이 6000억원을 넘어섰으며 연말까지 수조원 규모의 AI 데이터센터 프로젝트 수주를 목표로 하고 있다고 밝혔다. 냉각수 분배 장치(CDU)는 일부 모델이 엔비디아 제품 인증을 획득했고 추가 모델 인증도 진행 중이다. 로봇 사업도 확대한다. LG전자는 사업 전반을 전담하는 '로보틱스 사업센터'를 신설하고 하반기 가동을 목표로 국내 최대 규모의 로보틱스 데이터 팩토리를 구축하고 있다. 2분기 B2B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5% 증가한 6조5000억원으로 LG이노텍을 제외한 전사 매출의 36%를 차지했다. 이를 기반으로 AI 데이터센터 냉각과 로봇 등 신사업 확대에 속도를 낸다는 방침이다. 다만 AI 데이터센터 냉각 시장에서는 양사의 경쟁이 본격화될 전망이다. LG전자는 CDU와 칠러 등 자체 냉각 솔루션을 앞세우고 있으며, 삼성전자는 최근 인수한 플랙트그룹의 공조 기술과 글로벌 고객 기반을 활용해 시장 공략에 나서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삼성전자는 반도체 의존도가 오히려 더 커진 만큼 메모리 업황이 꺾일 때를 대비해 완충할 수 있는 사업을 함께 키워야 한다"며 "LG전자는 반대로 여러 사업이 고르게 성장한 만큼 신사업이 자리 잡을 때까지 버틸 체력은 있지만, 그 신사업이 본궤도에 오르는 속도가 관건일 것"이라고 했다.
2026-08-03 16:40:52
-
배경훈, "외산 AI 끊기면 속수무책"…한국형 프론티어 AI 승부수
[경제일보] 배경훈 부총리 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이 미국과 중국의 인공지능(AI) 패권 경쟁에 대응해 세계 최상위 수준의 ‘프론티어 AI’ 개발에 나서겠다는 구상을 밝혔다. 국내 산업의 AI 전환을 지원하는 독자 AI 파운데이션 모델 개발을 넘어, 미국·중국과 직접 성능을 겨룰 수 있는 모델을 확보해야 한다는 판단이다. 다만 프론티어 AI 개발은 아직 정부의 예산과 사업 구조가 확정된 단계는 아니다. 정부가 막대한 개발비를 보조금으로 지원하기 어려운 만큼 지분투자나 특수목적법인(SPC) 설립 등 새로운 투자 방식을 재정당국과 협의하는 구상에 가깝다. 배 부총리는 20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미국과 중국이 고성능 AI를 핵무기처럼 통제하려는 시대가 오고 있다”며 “우리만의 역량이 없다면 외산 AI 서비스가 갑자기 중단되거나 가격이 100배 올라도 대응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 독파모 넘어 ‘미토스급’ 모델 도전 정부가 검토하는 전략은 투트랙이다. 현재 추진 중인 ‘독자 AI 파운데이션 모델’ 사업을 통해 국내 산업과 공공서비스에 활용할 모델을 확보하는 동시에, 앤트로픽의 ‘클로드 미토스5’처럼 세계 최고 성능을 겨루는 프론티어 모델 개발을 별도로 추진하는 방식이다. 프론티어 AI는 단순히 매개변수가 큰 모델을 뜻하지 않는다. 복잡한 추론과 코딩, 과학 연구, 사이버보안, AI 에이전트 등에서 기존 모델의 한계를 넓히는 최첨단 모델을 말한다. 개발에 성공하면 산업 경쟁력을 높일 수 있지만 공격적인 사이버 능력 등 이중용도 위험도 커 국가가 접근을 통제할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미국 정부는 지난달 국가안보를 이유로 앤트로픽의 미토스5와 페이블5에 대한 외국인 접근을 제한했다가 이후 규제를 완화했다. 배 부총리는 이를 글로벌 AI 서비스를 언제든 사용할 수 있다는 전제가 무너질 수 있음을 보여준 사례로 들었다. 중국도 변수다. 문샷AI가 최근 공개한 ‘키미 K3’는 일부 평가에서 미국 최상위 모델과 대등한 성능을 보였다. 현재 중국 기업들이 오픈웨이트 전략으로 개발자 생태계를 넓히고 있지만, 기술 경쟁이 격화하면 중국도 고성능 모델을 폐쇄하거나 해외 제공을 제한할 수 있다는 것이 배 부총리의 진단이다. ◆ GPU만 3조5000억원…보조금으로 감당 어려워 가장 큰 장벽은 비용이다. 배 부총리는 미토스급 모델을 개발하려면 엔비디아 차세대 GPU ‘베라 루빈’을 기준으로 약 1만장이 필요하고, GPU 가격만 현재 추산으로 3조50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이는 장관이 제시한 추정치로 실제 비용은 모델 구조와 학습 방식, GPU 도입 가격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데이터센터와 전력·냉각·네트워크, 데이터 구축, 연구인력 비용까지 포함하면 전체 투자액은 더 늘어난다. 현재 독파모 참여 기업에 배정되는 GPU가 엔비디아 B200 기준 500∼735장 수준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프론티어 모델은 기존 지원 규모와 차원이 다르다. 특정 기업 한 곳에 수조원대 자원을 무상 지원하면 형평성과 특혜 논란도 불가피하다. 정부가 ‘투자형 R&D’를 검토하는 이유다. 기존 출연금처럼 예산을 지급하고 끝내는 대신 정부가 기업이나 SPC에 지분을 투자하고, 개발에 성공하면 지분 가치나 수익을 회수해 후속 연구에 다시 투입하는 구조다. 배 부총리는 “정부가 특정 기업에 이 정도 자원을 몰아주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며 “지분투자나 SPC 설립 등 투자형 R&D 방식으로 재원을 마련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내년도 예산 반영을 위해 재정당국과도 협의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다만 투자형 R&D가 작동하려면 실패 위험을 누가 부담하고 기술과 지식재산권을 누가 보유할지 정해야 한다. 정부가 투자한 모델을 특정 기업이 독점할 수 있는지, 공공과 중소기업에 어떤 조건으로 개방할지도 쟁점이다. ◆ 한국형 AI 풀스택, 미중 사이 제3국 공략 프론티어 모델은 수출 전략과도 연결된다. 정부는 국산 AI 모델과 서비스, NPU, 클라우드·데이터센터를 하나로 묶은 ‘한국형 AI 풀스택’을 구축해 미국과 중국 어느 한쪽에 종속되기를 원하지 않는 국가에 제공하는 방안을 구상하고 있다. 배 부총리는 유럽연합(EU)과 중동, 아세안 국가에서 한국과의 AI 협력을 희망하는 수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이 모델만 공급하는 것이 아니라 현지 언어와 데이터 주권, 보안 규제에 맞춘 인프라와 서비스를 함께 제공하면 미중 사이의 대안으로 자리 잡을 수 있다는 구상이다. 관건은 다국어 성능이다. 한국어에 강한 모델을 해외에 그대로 내놓는 것만으로는 글로벌 서비스가 될 수 없다. 배 부총리는 협력국 언어 데이터를 학습 데이터의 최소 1% 수준까지 확보해야 현지에서 활용 가능한 모델을 만들 수 있다고 진단했다. 중국이 러시아·브라질 등 29개국과 출범시킨 세계인공지능협력기구(WAICO) 참여 여부에는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미국 AI 서비스를 광범위하게 이용하면서 중국 오픈모델도 활용하는 한국으로서는 어느 한쪽 진영에 서기보다 기술·안보·통상 영향을 함께 따져야 한다는 설명이다. 정부의 구상이 현실화하려면 ‘한국도 프론티어 모델을 보유해야 한다’는 선언을 넘어 개발 주체와 자금 조달 구조, 성능 목표, 데이터 확보, 상용화 경로까지 구체화해야 한다. 수조원을 들여 모델을 만든 뒤 실제 이용자와 매출을 확보하지 못하면 일회성 국가 프로젝트에 그칠 수 있다. 한편 프론티어 AI의 성패는 GPU를 몇 장 확보했느냐보다 모델을 지속해서 개선하고 산업과 해외 시장에서 쓰이게 할 생태계를 구축할 수 있느냐에 달렸다. 정부가 투자형 R&D를 꺼낸 것도 기술 개발과 사업 성과를 함께 요구받는 단계에 들어섰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2026-07-20 17:46:00
-
-
서울역·잠실·창동까지…오세훈 5선에 서울 대형 사업 연속성 확보
[경제일보] 오세훈 서울시장의 5선 성공으로 서울 대형 복합개발 사업을 추진 중인 건설업계의 정책 불확실성이 상당 부분 걷히는 분위기다. 장기간 행정 절차와 민간투자가 맞물린 사업들이 기존 흐름을 이어갈 수 있게 되면서다. 역세권과 강북 성장거점을 중심으로 한 복합개발 확대 기조 역시 유지될 가능성에 무게가 실린다. 15일 건설업계에 따르면 서울에서 추진 중인 대형 복합개발 사업들은 이번 서울시장 선거 결과를 주요 변수로 봐왔다. 복합개발은 주거시설뿐 아니라 업무·상업시설, 호텔, 문화시설 등을 한 공간에 집적하는 방식이다. 인허가와 도시계획, 민간투자 구조가 복잡하게 얽히는 만큼 정책 방향이 바뀌면 사업 일정과 사업성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오 시장은 이번 선거 과정에서 역세권 복합개발 확대와 강북전성시대 구상, 신속통합기획 2.0 등을 주요 공약으로 내세웠다. 건설업계의 시선은 기존 대형 사업의 연속성에 그치지 않는다. 앞으로 서울시가 내놓을 신규 복합개발 사업이 새로운 수주 시장으로 이어질 수 있어서다. 서울시는 앞서 역세권 325곳 전체를 복합개발 대상지로 넓히고 향후 5년간 100곳의 신규 개발사업을 추진하는 ‘역세권 직·주·락 활성화 전략’을 발표했다. 환승역 등 성장거점에는 최대 1300% 용적률을 적용하는 방안도 담았다. 역세권 복합개발은 주거와 업무, 상업, 문화시설이 결합되는 대형 사업이다. 토목과 건축, 인프라 조성, 운영 기획이 함께 요구되는 만큼 대형 건설사들이 정비사업 외에 확보할 수 있는 주요 사업 파이프라인으로 평가된다. 현재 서울에서는 서울역 북부역세권 개발과 잠실 스포츠·MICE 복합공간 조성사업 등 수조원 규모의 복합개발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다. 서울역 북부역세권 개발은 한화 건설부문이 시공을 맡아 추진하고 있다. 잠실 MICE 사업도 서울 동남권을 대표하는 대형 복합개발 사업으로 꼽힌다. 현대건설도 복정역세권 복합개발과 가양동 CJ 부지 개발, 힐튼호텔 부지 개발 등 서울 내 주요 복합개발 사업을 추진 중이다. 단순 주택 도급공사보다 사업 구조가 복잡한 만큼 대형 건설사들은 복합개발을 중장기 수익 기반으로 보고 있다. 이들 사업은 일반 도급공사와 성격이 다르다. 장기간에 걸쳐 토지 이용계획과 교통 대책, 공공기여, 상업시설 운영 전략까지 함께 검토해야 한다. 민간 사업자 입장에서는 서울시의 도시정책 방향이 유지되는지 여부가 사업 리스크를 판단하는 중요한 기준이 된다. 강북권에서는 오 시장이 강조해 온 ‘강북전성시대’ 구상이 또 다른 관심사다. 대표적인 축은 창동·상계 일대다. 서울시는 창동차량기지 일대를 서울 디지털바이오시티로 조성해 동북권 경제거점으로 육성하겠다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강남권에 집중된 업무·산업 기능을 강북으로 분산하고 일자리와 주거, 문화 기능을 결합한 복합개발 거점으로 키우겠다는 구상이다. 창동역 일대 개발도 맞물려 있다. 서울아레나는 창동 일대에 대규모 공연장과 중형 공연장, 상업시설 등을 조성하는 문화복합시설이다. GTX-C 노선과 연계한 창동역 복합환승센터도 추진되고 있다. 여기에 장기간 표류했던 창동역민자역사가 준공되면서 창동 일대는 교통·문화·상업 기능이 결합된 동북권 거점으로 재편되는 흐름이다. 오세훈 5기 서울시정의 복합개발 정책은 기존 대형 사업의 불확실성을 줄이는 동시에 신규 수주 기회를 넓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서울역과 잠실, 창동·상계 등 주요 거점 사업이 속도를 낼 경우 서울 복합개발 시장은 정비사업과 함께 대형 건설사들의 핵심 사업 무대로 커질 가능성이 크다. 업계 관계자는 “복합개발은 정책 방향이 자주 바뀌면 민간 사업자가 중장기 투자 계획을 세우기 어렵다”며 “서울역과 잠실뿐 아니라 강북 거점 사업까지 기조가 이어진다면 건설사 입장에서는 사업 추진 불확실성이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2026-06-15 14:49:28
-
초대형은 대형사, 소규모는 중견사…서울 정비사업 시장 이원화 뚜렷
[경제일보] 서울과 수도권 소규모 정비사업 시장에서 중견 건설사들의 존재감이 커지고 있다. 모아타운과 가로주택정비사업을 중심으로 수주 실적을 쌓아가면서 대형 건설사 중심으로 재편된 도시정비시장의 틈새를 공략하는 모습이다. 5일 정비업계에 따르면 쌍용건설과 신동아건설, 호반건설 등 중견 건설사들은 서울과 수도권 모아타운·가로주택정비사업 시공권을 잇따라 확보하며 사업 기반을 확대하고 있다. 쌍용건설은 지난달 31일 서울 마포구 창전동46-1번지 일대 가로주택정비사업 시공사로 선정됐다. 이 사업은 지하 5층~지상 20층, 6개 동, 총 292가구 규모의 아파트와 부대복리시설을 조성하는 프로젝트로 공사비는 약 1213억원이다. 사업지는 서울시 모아타운 대상지에 포함돼 있으며 신촌과 광흥창, 대흥역을 이용할 수 있는 입지에 여의도와 광화문, 용산 접근성도 우수해 사업성이 높은 지역으로 평가받는다. 이번 수주뿐만아니라 쌍용건설은 최근 홍은동 가로주택정비사업과 시흥5동 모아타운, 천호동 가로주택정비사업, 노량진 은하맨션 일대 가로주택정비사업 등을 확보하며 서울·수도권 소규모 정비사업에서 실적을 꾸준히 쌓고 있다. 대형 정비사업보다는 지역 밀착형 사업을 중심으로 수주 기반을 넓혀가는 흐름이다. 신동아건설도 경기 안양시 동안구 비산동 가로주택정비사업을 수주했다. 사업비는 약 504억원 규모로 비산동 557-7번지 일대에 아파트 124가구와 오피스텔 12실, 부대시설 등을 조성하는 사업이다. 지난해 회생절차를 조기 종결한 신동아건설 입장에서는 이번 수주가 의미 있는 성과로 평가된다. 회생절차 종료 이후 확보한 첫 도시정비사업 실적이자 정비사업 시장 복귀를 알리는 신호탄이라는 점에서다. 호반건설 역시 모아타운 시장 공략에 적극적이다. 지난 5월 면목역 6차3구역 가로주택정비사업을 수주한 데 이어 앞서 6차4구역과 5구역까지 확보했다. 호반건설은 세 개 사업지를 연계해 총 1391가구 규모의 브랜드타운을 조성한다는 구상이다. 개별 사업 수주에 그치지 않고 권역 단위 개발 효과를 노리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중견 건설사들이 이처럼 소규모 정비사업에 집중하는 배경에는 도시정비사업 시장의 구조 변화가 자리하고 있다. 과거에는 중견사들도 일정 규모 이상의 재개발·재건축 사업에 참여할 수 있었지만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코로나19 펜더믹 이후 사업 규모와 공사비가 급격히 커지면서 진입 장벽이 높아졌다. 특히 서울 핵심 정비사업지는 사업비가 수조원에 달하는 초대형 사업으로 확대됐다. 시공사 선정 과정에서도 금융조달 능력과 브랜드 경쟁력, 초고층 시공 경험 등이 중요한 평가 요소로 자리 잡으면서 현대건설과 삼성물산, 포스코이앤씨 등 시공능력평가 상위 대형 건설사 중심의 경쟁 구도가 뚜렷해지고 있다. 반면 모아타운과 가로주택정비사업은 상대적으로 사업 규모가 작고 사업 기간도 짧다. 수천억원대 입찰보증금이나 대규모 금융조달 부담이 크지 않아 중견 건설사들이 접근하기 수월하다. 조합 입장에서도 절차가 비교적 단순하고 사업 속도가 빠르다는 장점이 있다. 건설업계 전반에 확산된 수익성 중심 경영 기조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중견 건설사 입장에서는 대형 사업 한 건을 확보하기 위해 막대한 비용을 투입하는 것보다 수백억~1000억원대 사업을 여러 건 확보하는 편이 안정적인 실적 확보에 유리하다는 판단이다. 또 착공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는 대규모 재개발·재건축 사업은 공사비 변동 위험이 크다. 반면 가로주택정비사업은 사업 기간이 상대적으로 짧아 원가 관리가 용이하고 시장 환경 변화에 따른 부담도 덜한 편이다. 업계에서는 정비사업 시장이 사업 규모에 따라 점차 분화되는 흐름이 뚜렷해지고 있다고 보고 있다. 대형 건설사들이 압구정과 성수, 여의도 등 초대형 사업지에 집중하는 사이 중견 건설사들은 모아타운과 가로주택정비사업에서 실적을 쌓으며 새로운 시장을 구축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와 함께 서울시가 모아타운 사업지를 지속적으로 확대하고 있어 소규모 정비사업 시장의 존재감도 한층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한 건설업계 관계자는 “서울 초대형 사업지는 입찰보증금부터 문턱이 높아 중소건설사가 진입하기 어렵다”며 “결과적으로 정비사업 시장도 사업 규모에 따라 대형사와 중견사의 역할이 점차 구분되는 것 같다”이라고 말했다.
2026-06-05 09:01:08
-
-
-
-
호황의 잔칫상, 씨종자까지 나눠 먹을 텐가
[경제일보] 올해 대한민국 제조업의 임금협상장은 이전과는 전혀 다른 언어들이 점령하고 있다. 수십 년간 협상 테이블의 주역이었던 “기본급 몇 호봉 인상”이라는 정액 중심의 담론은 어느덧 뒷전으로 밀려났다. 그 자리를 대신한 것은 “영업이익의 N%”라는 서늘한 수식어다. 노동의 대가를 ‘비용’이 아닌 ‘지분’의 관점에서 바라보기 시작한 노조의 요구는 이제 삼성전자를 넘어 현대자동차와 HD현대중공업 등 한국 경제의 기둥인 중후장대 산업 전체로 번지고 있다. 최근의 흐름은 가히 폭발적이다. 삼성바이오로직스, 현대차, 카카오, HD현대중공업 등 주요 대기업 노조는 약속이라도 한 듯 영업이익 또는 순이익의 일정 비율을 성과급으로 명시하라는 요구안을 던졌다. 특히 HD현대중공업 노조는 올해 임단협에서 “연간 영업이익의 최소 30%를 조합원에게 지급할 것”을 공식 요구하며 배수의 진을 쳤다. 이는 지난해 실적 기준 조합원 1인당 약 7500만원에 달하는 막대한 재원이다. 현대차 노조 역시 지난해 거둔 역대급 순이익의 30%를 성과급으로 요구하며 사측을 압박하고 있다. 삼성전자 노조가 고수하고 있는 ‘영업이익 15% 성과급 재원화’와 ‘성과급 상한 폐지’는 이제 단순한 임금 인상을 넘어 기업 이익의 사후 배분 구조를 바꾸겠다는 근본적인 도전이다. 이러한 요구를 단지 ‘노조의 이기주의’나 ‘귀족 노조의 떼쓰기’로 치부하는 것은 사태의 본질을 보지 못하는 단견(短見)이다. 노동자들의 목소리에는 실존적인 불안과 정당한 기여도가 섞여 있다. 고물가 행진 속에 실질 임금은 정체됐고, 현장의 노동 강도는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무엇보다 인공지능(AI)과 자동화가 일자리를 위협하는 대전환기에 ‘내가 만든 호황의 과실’이라도 확실히 챙겨야겠다는 절박함이 깔려 있다. 앞서 뉴욕타임스나 로이터 등 외신들도 글로벌 제조업 전반에서 나타나는 이러한 이익 공유(Profit Sharing) 요구의 강화가 기술 격변기의 노동자들이 선택한 자기방어적 전략이라고 분석한 바 있다. 그러나 문제는 방법론이다. 성과를 나누자는 철학에는 동의할 수 있지만, 이익의 일정 비율을 ‘자동 배분’ 공식으로 고정하자는 주장은 기업의 영속성을 뒤흔들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영업이익은 장부상의 숫자가 아니라 내일의 생존을 위해 투입돼야 할 ‘미래의 종잣돈’이기 때문이다. 동양의 고전 순자(荀子) 부국(富國)편에는 “욕다이물과, 과칙필쟁(欲多而物寡, 寡則必爭)”라는 구절이 나온다. “욕망은 많은데 물건이 적으면 반드시 다툼이 생긴다”는 뜻이다. 순자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분(分)’, 즉 합리적인 제도와 기준을 강조했다. 지금의 성과급 논쟁은 바로 이 ‘분’의 기준이 무너졌기 때문에 발생한다. 영업이익이라는 한정된 그릇을 두고 노동자, 주주, 협력사, 그리고 미래 투자가 서로의 몫을 먼저 챙기려 다투는 형국이다. 특히 반도체와 자동차, 조선업은 소위 ‘사이클 산업’이다. 오늘의 천문학적인 이익은 어제의 고통스러운 R&D(연구개발)와 설비투자가 낳은 결과다. 동시에 오늘의 이익은 내일의 다운사이클을 버텨낼 맷집이자, 초격차 기술을 확보할 유일한 실탄이다. 최근 기업들이 노사 갈등으로 투자 재원을 소진할 경우, 국가 보조금을 등에 업은 중국과 미국 기업들과의 경쟁에서 순식간에 낙오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이유다. 삼성전자가 AI 메모리 시장에서 한 세대만 뒤처져도 수조원의 이익은 순식간에 적자로 돌아설 수 있다. 현대차가 전기차와 SDV(소프트웨어 중심 차량) 전환기에 투자 시기를 놓치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노동자의 일자리 안정성을 위협하는 부메랑으로 돌아온다. 성과급 공식이 투자의 발목을 잡는 순간, 우리는 ‘미래를 가불해서 오늘을 잔치하는’ 우를 범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해법은 무엇일까. 우리는 이제 성과 배분의 새로운 원칙을 세워야 한다. 첫째, 성과급 산정의 투명성 확보가 최우선이다. 노조가 ‘정률 배분’이라는 거친 요구를 들고나온 것은 사측이 성과급 산정 기준을 ‘깜깜이’로 운영해온 탓이 크다. 기업은 사업부별 실적과 현금흐름, 향후 투자 계획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노조를 진정한 경영 파트너로 대우해야 한다. “회사가 어려우니 참으라”는 식의 낡은 훈계는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둘째, 성과 배분의 범위를 산업 생태계 전체로 확장해야 한다. 현대차 노조가 제안한 ‘협력업체 노동자와의 성과 공유’는 매우 고무적인 진전이다. 대기업 정규직만 성과의 과실을 독식하는 구조는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심화시키고 산업의 기초 체력을 약화시킨다. 1, 2차 협력사와 사내하청 노동자들까지 아우르는 ‘상생형 성과 배분’ 모델을 정립해야 한다. 셋째, ‘정률 배분’ 대신 ‘유연한 보상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영업이익의 30%를 고정적으로 떼어가는 방식은 기업 경영의 유연성을 완전히 박살 낸다. 대신 실적에 연동하되, 미래 투자 재원과 재무 건전성을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상한선과 하한선을 조율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은 최근 사석에서 “기업의 성장은 국가 발전과 궤를 같이해야 한다”는 취지의 언급을 했다고 전해진다. 이 메시지는 무겁다. 개별 기업의 임단협 결과가 국가 수출 경쟁력과 환율, 지역 경제에 직결되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경제는 냉철한 숫자로 움직이지만, 사회는 따뜻한 분배의 정의로 유지된다. 성과는 나눠야 한다. 그것은 시장경제의 정의다. 그러나 미래까지 나눠 먹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산업의 상식이다. 지금 삼성전자와 현대차, HD현대중공업의 협상 테이블 위에 놓인 것은 단순한 ‘보너스 금액’이 아니다. 대한민국 제조업이 호황의 단물을 어떻게 처리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다음 10년이 결정될 것이다. 노사는 지금 좁은 능선 위에 서 있다. 서로를 벼랑 끝으로 밀어낼 것인가, 아니면 서로의 손을 잡고 더 높은 고지로 향할 것인가. ‘나눔’의 미덕과 ‘투자’의 책무가 조화를 이룰 때, 비로소 ‘K-제조업’의 지속 가능성은 증명될 수 있다. 성과는 나누되 미래의 씨앗은 남겨두는 것, 그것이 오늘날 우리 시대가 요구하는 진정한 산업의 문법이다.
2026-05-15 13:38:41
-
강남 재건축이라는 위험한 착시
[경제일보] 강남 재건축 시장을 바라보는 시선에는 유독 환상이 많다. 압구정과 반포, 개포와 잠실에서는 신고가 거래가 이어지고 건설사들은 최고급 브랜드 경쟁에 사활을 건다. 스카이브리지와 호텔식 로비, 초대형 커뮤니티 시설과 특화 설계가 등장할 때마다 시장은 열광한다. 조감도만 보면 서울의 미래가 이미 완성된 듯한 분위기다. 그러나 현장 안으로 들어가면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공사비 폭등과 추가분담금 갈등, 조합 내 권력 다툼과 소송전, 반복되는 사업 지연이 강남 재건축 곳곳에서 터져 나오고 있다. 겉은 최고급 아파트지만 안에서는 이해관계 충돌과 불신, 피로감이 쌓여간다. 화려한 조감도 뒤에서 실제로 커지고 있는 것은 기대보다 부담이다. 최근 서울 주요 재건축 현장의 공사비는 3.3㎡당 1000만원을 넘기 시작했다. 압구정과 개포 일대에서는 추가분담금이 수억원에서 많게는 10억원 안팎까지 거론된다. 사업이 늦어질수록 금융비용 부담도 함께 커진다. 재건축이 아니라 사실상 현금 동원 경쟁이라는 말까지 나오는 이유다. 문제는 이런 흐름이 일부 단지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지금 강남 재건축 시장은 점점 ‘좋은 집을 짓는 사업’이 아니라 ‘누가 끝까지 버틸 현금을 갖고 있느냐’를 가르는 시장으로 변해가고 있다. 수십년 동안 한집에서 살아온 은퇴 고령층조차 추가분담금 부담 때문에 대출을 고민해야 하는 상황까지 벌어진다. 집값은 수십억원이라는데 정작 그 집에 살던 사람은 현금 부족 때문에 불안에 내몰리는 셈이다. 원래 재건축은 노후 주거지를 정비하고 생활 환경을 개선하기 위한 제도다. 그러나 지금 강남 재건축 시장에서는 도시 정비보다 자산 경쟁과 가격 상승 기대가 훨씬 강하게 움직이고 있다. 건설사는 초고급 브랜드 경쟁에 매달리고 조합은 더 높은 일반분양가와 더 화려한 설계를 원한다. 사업비는 끝없이 불어난다. 결국 그 부담은 다시 조합원에게 돌아간다. 더 심각한 문제는 사업 운영 과정이다. 수조원대 사업이 진행되는데도 상당수 조합원은 공사비 산정 근거와 금융비용 증가 내역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채 총회 표결에 참여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총회 의결은 형식적으로 성립한다. 하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일반 조합원이 복잡한 사업 구조와 자금 흐름을 온전히 검증하기 어려운 경우가 반복된다. 이 과정에서 가장 강한 힘을 갖는 쪽은 결국 시공사와 사업 실무를 장악한 세력들이다. 공사비가 오르면 조합은 반발한다. 그러나 사업이 멈추면 금융비용 부담은 더 커진다. 시간이 길어질수록 조합원들은 지쳐가고 결국 추가 공사비를 받아들이는 방향으로 밀려간다. 계약이라는 형식을 갖췄을 뿐 실제 현장에서는 협상력 균형이 무너진 사례가 적지 않다. 강남 재건축 현장에서 왜 소송과 갈등이 반복되는지 이유는 어렵지 않다. 사업 규모는 수조원대로 커졌는데 이를 견제하고 감시할 장치는 여전히 허술하기 때문이다. 조합 집행부를 둘러싼 충돌과 시공사 선정 논란, 설계 변경과 공사비 증액 다툼이 사업 내내 이어진다. 도시를 정비하는 사업이라기보다 거대한 이해관계 충돌의 장처럼 변해가고 있다는 지적까지 나온다. 잠실 르엘 사례는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입주는 시작됐지만 관리처분계획 변경 문제로 등기와 정산이 늦어지면서 입주민들이 재산권 행사에 어려움을 겪었다. 새 아파트에 들어갔는데도 매매와 담보 설정, 대출 실행 등에 차질이 생길 수 있는 상황이 이어진 것이다. 수십억원짜리 고급 아파트인데도 가장 기본적인 권리관계 정리가 매끄럽게 끝나지 못한 셈이다. 그런데도 시장은 여전히 강남 재건축을 ‘불패 신화’처럼 소비한다. 그러나 냉정하게 보면 지금 강남 재건축은 지나치게 비대해진 욕망 위에 올라탄 시장에 가깝다. 더 높게 짓고 더 화려하게 만들고 더 비싸게 팔려는 경쟁 속에서 사업의 본래 목적과 상식은 점점 뒤로 밀리고 있다. 강남 재건축 시장을 보면 지금 대한민국 부동산 시장의 왜곡이 한곳에 응축돼 있다는 생각을 지우기 어렵다. 집은 살아가는 공간이어야 하는데 어느 순간부터 거대한 투자 상품이 됐다. 재건축은 도시를 정비하는 제도여야 하는데 초고가 자산 경쟁의 무대로 변해가고 있다. 그 과정에서 갈등과 금융 부담, 권리관계 혼란은 점점 커지고 있다. 물론 재건축 자체를 멈출 수는 없다. 서울의 노후 주거지를 정비하려면 재건축은 필요하다. 다만 지금처럼 초고급 경쟁과 끝없는 사업비 인상에만 매달리는 흐름이 이어진다면 결국 시장 전체가 감당해야 할 위험도 함께 커질 수밖에 없다. 강남 재건축 시장에 필요한 것은 더 화려한 조감도가 아니다. 사업비와 공사비를 둘러싼 투명성, 조합원 권리 보호, 현실적인 사업 관리다. 지금 강남 재건축 현장에서 가장 빠르게 사라지고 있는 것은 집의 본래 가치와 도시 정비의 상식이다.
2026-05-11 09:01:59
-
반도체 독주 끝?…AI주 수혜, 전력·부품으로 번진다
[경제일보] 인공지능(AI) 투자 확대로 증시 자금이 반도체 대형주에서 전력기기·기판 등 인프라·부품 기업으로 이동하며 국내 산업 지형이 재편되고 있다. 4일 한국거래소와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최근 국내 증시에서는 인공지능(AI) 투자 확대 흐름을 타고 전력기기와 정보기술(IT) 부품 종목이 가파른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기존에 시장을 주도하던 반도체 대형주 중심의 흐름에서 벗어나 전력 인프라와 부품 기업으로 수혜 축이 확장되는 양상이다. 실제 코스피가 6000선을 재돌파한 이후 상승 구간에서 기계장비 업종이 가장 높은 상승률을 기록했고 IT와 반도체 업종이 뒤를 이었다. 특히 LS일렉트릭, HD현대일렉트릭, 효성중공업 등 전력기기 기업은 같은 기간 코스피 상승률을 크게 웃도는 주가 상승을 나타냈다. IT 업종 내에서도 변화가 감지된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반도체 투톱보다 LG이노텍, 삼성전기 등 기판·부품 기업의 상승폭이 더 크게 나타나며 투자심리가 후공정 영역으로 이동하는 흐름이 확인된다. 이 같은 변화는 AI 산업 구조 자체가 확장되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생성형 AI 확산으로 데이터센터 구축이 급증하면서 전력 소비가 폭증하고 이에 따라 변압기·전력제어장치 등 전력 인프라 수요가 동반 확대되고 있다. 동시에 고성능 반도체를 안정적으로 연결하기 위한 기판·패키징 등 부품 수요도 빠르게 늘어나는 상황이다. 업계에서는 AI 산업의 성장 제약 요인이 반도체에서 전력과 부품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고성능 칩 확보 경쟁에 이어 이를 실제로 구동할 전력망과 시스템을 구축하는 능력이 AI 경쟁력을 좌우하는 핵심 요소로 부상하고 있다는 것이다. 기업 실적 역시 이러한 흐름을 뚜렷하게 반영하고 있다. LS일렉트릭은 올해 1분기 연결 기준 매출 1조3766억원, 영업이익 1266억원을 기록하며 전년 동기 대비 각각 33%와 45% 증가한 분기 기준 사상 최대 실적을 달성했다. 특히 북미 매출이 약 3000억원으로 1년 새 80% 급증하며 성장세를 견인했다. 효성중공업도 같은 기간 매출 1조3582억원, 영업이익 1523억원을 기록해 각각 26%, 48% 증가했으며 분기 기준 최대 신규 수주(4조1745억원)를 확보하며 중장기 성장 기반을 확대했다. HD현대일렉트릭은 1분기 매출 1조365억원, 영업이익 2583억원으로 각각 2.1%, 18.4% 증가하며 실적 개선 흐름을 이어갔다. 특히 분기 기준 역대 최대 수준인 약 2조6500억원 규모의 신규 수주를 기록하고 수주잔고도 11조원대로 확대되며 향후 실적 가시성을 높였다. 이들 전력기기 빅3는 북미 데이터센터와 전력망 투자 확대에 힘입어 수주잔고가 수조원 단위로 쌓이며 중장기 성장 동력을 확보한 상태다. 업계에서는 글로벌 빅테크의 AI 인프라 투자 확대와 맞물려 초고압 변압기 등 전력 설비 수요가 지속적으로 증가할 것으로 보고 있다. 한편 IT 부품 업종 역시 실적 개선 기대가 커지고 있다. 삼성전기 등 주요 기판·부품 기업은 AI 서버용 고부가 제품 비중 확대를 기반으로 두 자릿수 이익 성장세가 예상되며 2분기 이후 본격적인 수요 반영이 나타날 것으로 전망된다. 시장에서는 2분기 이후가 '실적 검증 국면'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주가가 이미 기대를 선반영한 만큼 실제 수주와 실적이 이를 뒷받침할지가 향후 흐름을 가를 관건으로 꼽힌다. 이상현 BNK투자증권 연구원은 지난달 29일 발표한 기업분석 리포트에서 "빅테크 기업들의 AI 데이터센터 투자 확대에 따라 전력 인프라 수요가 급증하며 북미 시장을 중심으로 수주가 빠르게 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어 "AI 관련 설비 투자 규모 확대에 힘입어 전력기기 수요 강세가 중장기적으로 이어질 것으로 보이지만 수요 증가 속도에 비해 생산능력이 제한적인 만큼 공급 제약 요인도 함께 부각되고 있다"고 했다. 이민희 BNK투자증권 연구원은 지난달 30일 발표한 기업분석 리포트에서 "AI 서버와 전장 수요 확대에 따라 MLCC와 FC-BGA 등 고부가 부품의 수익성이 빠르게 개선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어 "FC-BGA는 가격 인상이 반영되기 시작했고 하반기 추가 상승도 예상되는 등 수요 확대가 가격 상승으로 이어지는 국면에 진입했다며 이번 사이클에서 과거 최고 수준의 수익성 회복 가능성도 열려 있다"고 덧붙였다.
2026-05-04 15:54:3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