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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야드 공항 피격이 울린 경고음…에너지 안보가 곧 국익이다
[경제일보] 중동의 불길이 세계 경제의 급소를 겨누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 수도 리야드의 관문인 킹칼리드 국제공항이 예멘 후티 반군의 미사일 공격을 받고 운항이 중단됐다는 소식은 중동 정세의 불안정성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보여준다. 공항에 대한 공격이 잇따르는 가운데 석유 시설과 주요 해상 수송로까지 위협받으면서 지역의 안보 불안이 세계 경제에 미칠 파장도 커지고 있다. 민간 항공 인프라까지 위협받는 상황에서 에너지 생산과 수송의 핵심 거점 역시 안전을 장담하기 어렵다. 이번 사태를 또 하나의 국지적 무력 충돌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 중동의 안보 불안이 국제유가의 변동성과 해상 운임, 보험료 상승 압력을 키우고 글로벌 공급망을 흔들 수 있다는 엄중한 경고로 받아들여야 한다. 무력으로 민간 시설을 위협하고 국제사회의 안정을 해치는 행위는 용납될 수 없다. 국제사회는 민간인의 안전과 국제법의 원칙을 지키기 위해 긴밀히 공조해야 한다. 그러나 규탄 성명만으로 위기를 막을 수는 없다. 중동의 긴장이 고조될 때마다 국제유가는 출렁이고 해상 운임과 보험료는 상승 압력을 받는다. 원유 수송로가 위협받거나 공급 차질 우려가 커지면 에너지 가격은 실제 수급 악화 이전부터 움직인다. 시장의 불안이 물가를 밀어 올리고 기업의 생산비용을 높이며 가계의 구매력을 떨어뜨리는 연쇄 충격이 발생하는 것이다. 한국에 이번 사태가 결코 남의 일이 아닌 이유는 분명하다. 우리나라는 에너지 자급 기반이 취약하고 원유 수입의 상당 부분을 해외에 의존하는 대표적인 자원 빈국이다. 올해 들어 수입선 다변화로 중동산 원유 비중이 낮아졌지만, 여전히 전체 원유 수입의 절반을 웃돈다. 주요 해상 수송로에 대한 의존도 역시 높아 지역 분쟁이 장기화하면 충격을 피하기 어렵다. 국제유가가 오르면 정유·석유화학업계의 원가 부담이 커지고, 운송비와 생산비용을 통해 산업 전반으로 파장이 번진다. 수입물가 상승은 소비자물가를 자극하고 기업의 채산성 악화는 투자와 고용 위축으로 이어질 수 있다. 고환율까지 겹친다면 같은 양의 원유를 들여오는 데 더 많은 원화를 지출해야 한다. 중동의 안보 위기가 우리 경제의 물가와 성장, 민생을 동시에 압박하는 구조다. 그런데도 위기가 터진 뒤 유가 동향을 살피고 임시 대책을 내놓는 데 그친다면 정부의 존재 이유를 묻지 않을 수 없다. 에너지 안보는 가격이 급등한 뒤 대응하는 사후 관리가 아니라 공급 차질을 가정하고 미리 대비하는 국가 생존 전략이어야 한다. 정부는 국제유가와 해상 운송로의 위험 수준을 상시 점검하고, 비상 상황별 원유 수급 계획과 부처 간 대응 체계를 구체화해야 한다. 전략 비축유의 규모뿐 아니라 방출 기준과 실행 절차, 실제 공급까지 걸리는 시간도 점검해야 한다. 위기 때 꺼내 쓸 수 없는 비축유는 장부상의 숫자에 불과하다. 에너지 수입선 다변화도 더는 미룰 수 없다. 중동 의존도를 단기간에 획기적으로 낮추기는 어렵지만 미국과 다른 산유국 등으로 도입선을 넓히고 공급 계약과 수송 경로를 분산해 특정 지역의 위기가 국가 전체의 공급 위기로 번지는 위험을 줄여야 한다. 액화천연가스(LNG)와 핵심 원자재 역시 공급망 취약성을 점검할 필요가 있다. 에너지 효율을 높이고 원전·재생에너지 등 국내 에너지 기반을 안정적으로 확충하는 일도 장기적인 대응책이다. 에너지 전환은 구호나 이념이 아니라 공급 안정성, 경제성, 환경성을 함께 따지는 현실적 원칙 위에서 추진해야 한다. 기업과 시장의 대응을 뒷받침할 정교한 정책도 필요하다. 정부는 정유·석유화학·항공·해운 등 에너지 가격과 수송 차질에 민감한 업종의 위험 노출을 점검하고, 중소기업의 원가 부담과 자금 경색 가능성에 대비해야 한다. 국제유가 상승을 빌미로 한 담합이나 부당한 가격 인상은 엄정하게 감시하되, 시장 가격을 무리하게 억누르는 방식으로 공급을 위축시켜서도 안 된다. 취약계층 지원은 대상을 명확히 하고 한시적으로 설계해야 한다. 위기 대응을 명분으로 재정 부담을 무작정 늘리는 것은 또 다른 위험을 키우는 일이다. 외교·안보 역시 경제와 분리해 생각할 수 없다. 한국은 한미동맹을 토대로 주요 우방국과 정보 공유, 해상교통로 보호, 공급망 안정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 동시에 중동 국가들과의 외교 채널을 유지해 우리 국민과 기업의 안전을 확보하고 에너지 공급 차질을 최소화해야 한다. 어느 한쪽에 대한 정치적 구호에 매달리기보다 국제법과 원칙을 지키면서 실질적인 국익을 확보하는 실용 외교가 중요하다. 에너지 수송로의 안전은 특정 국가만의 문제가 아니라 세계 경제가 함께 지켜야 할 공공재다. 정치권도 정쟁을 멈추고 국가 에너지 안보를 초당적 과제로 다뤄야 한다. 비축 시설과 수입선 다변화, 에너지 효율 투자에는 시간과 비용이 든다. 위기가 잠잠해지면 예산과 정책 우선순위에서 밀려나는 악순환을 끊어야 한다. 정부는 위기 때마다 국민에게 절약을 호소하기에 앞서 얼마나 치밀하게 대비했는지부터 설명해야 한다. 리야드 공항을 둘러싼 위기는 중동의 불안이 언제든 한국의 공장과 물류망, 국민의 밥상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일깨운다. 에너지 안보를 시장에만 맡길 수도, 정치적 구호로 해결할 수도 없다. 정부는 비축과 다변화, 외교와 산업정책을 하나의 국가 전략으로 묶어야 한다. 에너지를 안정적으로 확보할 능력이 곧 경제의 경쟁력이고, 위기 속에서도 국민의 삶을 지킬 수 있는 능력이 국가의 실력이다. 위기가 닥친 뒤 허둥대는 나라와 위기를 예상하고 대비한 나라의 차이는 평상시의 준비에서 결정된다. 지금 필요한 것은 낙관론이 아니라 실행이고, 임시방편이 아니라 지속 가능한 에너지 안보 체계다.
2026-10-13 10: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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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 창고로 시작해 AI 풀필먼트로…CJ대한통운,95년 '연결'의 역사
[경제일보] 1930년 11월 15일, 서울 을지로 입구의 경성전기 본사 건물에서 조선미곡창고주식회사가 업무를 시작했다. 일본으로 반출되는 조선 쌀의 물량을 조절하기 위한 보관시설을 운영하고 각종 화물을 취급하던 회사다. 이곳이 95년여 뒤 전국 물류망과 인공지능(AI) 기반 운송 플랫폼을 운영하는 CJ대한통운의 출발점이 됐다. CJ대한통운의 성장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연결'이다. 초기에는 창고와 철도, 항만과 공장을 잇는 물류망을 구축했고 택배 시장이 성장하면서 판매자와 소비자를 연결했다. 이커머스 시대에는 보관·포장·출고·배송을 하나의 흐름으로 묶었고 최근에는 운송 데이터에 AI와 로봇 기술을 접목해 화주와 차주, 국내외 공급망까지 연결 범위를 넓히고 있다. 쌀과 철도 잇던 회사…전국을 하나의 물류망으로 CJ대한통운의 역사는 한국 산업화 과정에서 물류망이 확대된 흐름과 맞닿아 있다. 조선미곡창고는 1950년 한국미곡창고로 이름을 바꾼 뒤 1962년 한국운수를 합병하고 철도 소운송업 면허를 취득했다. 1965년에는 국제물류 법인을 설립하며 택배 사업 확대의 기반이 된 운송 인프라를 갖춰갔다. 큰 전환점은 2013년 CJ GLS와 대한통운의 합병이다. 대한통운의 계약물류(CL) 인프라에 CJ GLS의 택배·글로벌 사업 역량이 더해지면서 현재의 CJ대한통운이 출범했다. 통합 첫해 3조원대였던 매출은 2022년 12조원을 넘어섰다. 늘어난 물동량을 효율적으로 처리하기 위한 기술 투자도 본격화됐다. 2016년 TES Innovation Center를 열어 로봇과 자동화 설비, 데이터 분석 등을 현장에 적용했고 2018년에는 곤지암 메가허브터미널을 열었다. 이곳은 하루 약 170만 상자의 택배를 처리하는 핵심 거점이다. 이후 사업은 풀필먼트로 확장됐다. 2020년 e-풀필먼트를 도입해 재고관리부터 피킹·포장·출고·배송까지 원스톱으로 관리하면서 익일배송 주문 마감시간을 오후 3시 수준에서 밤 12시까지 늦췄다. 2025년에는 B2B·B2C·B2B2C를 아우르는 통합 브랜드 '더 풀필(THE FULFILL)'을 선보여 국내외 520여개 물류거점을 기반으로 상품별 맞춤 물류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주 7일 배송부터 AI 배차까지…물류의 시간을 재설계하다 전국 배송망을 구축한 CJ대한통운은 배송 공백을 줄이고 도착 시간을 앞당기는 방향으로 서비스를 고도화하고 있다. 2023년 3월 통합 배송브랜드 '오네(O-NE)'를 선보인 뒤 익일·새벽·당일·2~4시간 내 배송으로 서비스를 세분화했다. 올해 4월에는 개인 간 배송 서비스 '보내오네'도 추가했다. 가장 큰 변화는 2025년 1월 도입한 주 7일 배송 '매일오네'다. 일요일과 공휴일에도 배송이 가능해지면서 2025년 12월 일요일 배송물량은 연초 대비 67% 증가했다. 식품과 패션 등 휴일 배송 수요가 높은 셀러를 중심으로 이용도 확대되고 있다. 배송 시간대를 촘촘하게 운영하려면 상품 위치와 출고 시점, 운송 차량까지 함께 최적화해야 한다. CJ대한통운은 택배와 풀필먼트에 AI·자동화 기술을 접목하는 한편 물류거점 사이를 잇는 미들마일 운송도 디지털화하고 있다. 대표 사례인 AI 기반 미들마일 플랫폼 '더 운반(the unban)'은 운행이력과 노선별 수요, 화물 특성 등을 분석해 운임 산출과 차량 매칭의 정확도를 높인다. 2026년 6월 말 기준 가입 화주는 7000여개사, 차주는 7만여명이며 서비스 초기 50% 미만이던 자동배차 성공률도 80% 이상으로 높아졌다. 물류센터 자동화도 확대하고 있다. TES물류기술연구소를 중심으로 디지털 피킹·분류 시스템과 자율주행 운송로봇을 현장에 적용하고 있으며 올해 7월에는 AI 기반 과대포장 진단 솔루션 '팩체크'를 전국 26개 물류센터에 도입했다. 자동화 설비와 AI 시스템에 투입되는 비용을 고려하면 향후 경쟁력은 처리 비용과 시간을 얼마나 낮출 수 있는지에 달려 있다. 미국 물류거점 잇고 E2E 확대…글로벌 사업 '성장의 질' 관건 CJ대한통운은 2013년 통합 이후 현지 물류기업을 잇달아 인수하며 해외 사업 기반을 넓혔다. 2016년 말레이시아 센추리 로지스틱스를 시작으로 인도 다슬 로지스틱스, 베트남 제마뎁 물류·해운 부문, 미국 DSC 등을 인수해 주요 시장의 창고와 운송망, 고객 기반을 확보했다. 글로벌 사업은 국제운송을 넘어 생산지부터 최종배송까지 공급망 전 과정을 아우르는 E2E(End-to-End) 물류로 확대되고 있다. 최근에는 미국 인프라 확충에 속도를 내 이달 일리노이주 엘우드에서 연면적 약 10만2775㎡ 규모 물류센터 가동을 시작했다. 지난해 10월 문을 연 뉴저지주 시카커스센터와 연계해 북미 공급망 대응 범위를 넓히고 있다. 성과는 외형 성장으로 나타나고 있다. 2026년 2분기 연결 매출은 3조3800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0.9% 증가했다. 글로벌사업 매출도 미국·인도 등 전략국가와 초국경 전자상거래(CBE) 물량 확대에 힘입어 9.4% 늘어난 1조2060억원을 기록했다. 반면 같은 기간 영업이익은 1016억원으로 11.9% 감소했다. 배송 서비스 고도화와 물류 인프라 투자 비용이 늘어난 데다 글로벌사업도 포워딩 업황 둔화의 영향을 받았다. 국내외에서 넓힌 물류망을 안정적인 이익 성장으로 연결하는 것이 향후 CJ대한통운의 성장의 질을 좌우할 핵심이다. CJ대한통운 관계자는 "창고업에서 택배·풀필먼트·글로벌 물류로 사업을 넓혀온 배경에는 고객과 시장의 변화를 실제 서비스로 연결하는 실행력이 있었다"며 "앞으로는 전국 물류망에서 축적되는 데이터와 AI·로봇 기술을 활용해 생산성과 수익성을 높이고 글로벌 시장에서도 지속 가능한 성장 기반을 만들어갈 것"이라고 했다. [아주경제 2026년 09월 17일자 13면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2026-09-17 08:3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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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D현대마린솔루션, 조선 호황의 '뒷단' 잡았다…AM이 새 수익원
[경제일보] HD현대마린솔루션이 조선 호황의 ‘뒷단’에서 수익을 키우고 있다. 선박을 새로 짓는 조선사와 달리 이미 바다 위에서 운항 중인 선박을 대상으로 부품, 정비, 개조, 디지털 솔루션을 제공하는 사업 구조가 실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조선업의 수익 구간이 건조 이후 선박 생애주기 전반으로 넓어지는 흐름이다. 29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DART)에 따르면 HD현대마린솔루션은 지난 27일 올해 2분기 영업실적을 공시했다. HD현대마린솔루션의 2분기 매출은 5804억원, 영업이익은 976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각각 24.1%, 17.6% 증가했다. 선박 부품·서비스를 담당하는 AM 부문과 친환경 개조, 디지털 솔루션 등 핵심사업이 전반적으로 성장한 데다 벙커링 사업 매출도 늘어난 영향으로 풀이된다. 실적을 이끈 것은 AM 부문이다. AM은 선박 인도 이후 필요한 부품 공급과 정비, 기자재 교체, 기술 서비스를 뜻한다. HD현대마린솔루션의 2분기 AM 부문 매출은 2750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9.6% 증가했다. 부품 출고량은 전년 평균보다 약 27% 늘어 6만건을 넘었고, AM 서비스를 제공한 선박은 누적 1만168척에 달했다. AM 부문 성장은 단순히 신조선 인도가 늘어난 영향에 그치지 않는다. 서비스 대상 선박이 확대되면서 엔진 부품과 정비 수요가 함께 늘어난 점이 핵심이다. HD현대마린솔루션 관계자는 “신조선과 DF엔진 탑재 선박이 늘어나면서 엔진 부품·정비 수요가 증가했고, 장기 유지보수 계약인 LTSA 규모도 늘어나고 있다”며 “설치 기반이 커질수록 안정적이고 지속적인 부품·서비스 수요를 기대할 수 있고, 신조선 인도 증가로 누적 서비스 선박 척수도 계속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이 구조가 중요한 이유는 반복 매출이다. 선박은 인도 이후 약 25~30년 동안 운항되는 자산이다. 운항 기간에는 엔진 부품 교체와 기자재 수리, 정비, 성능 개선 수요가 계속 발생한다. 친환경 선박 확대도 AM 사업의 단가와 서비스 범위를 키우는 요인이다. LNG, 메탄올, 암모니아 등 차세대 연료 선박은 기존 선박보다 엔진과 연료공급 시스템이 복잡하다. 같은 부품이라도 적용되는 엔지니어링이 달라 프리미엄이 붙을 수 있고, 유지관리 시스템 공급 범위도 넓어진다. 회사 관계자는 “차세대 연료 선박의 유지보수 시장은 기존 선박보다 고부가가치 시장”이라고 했다. 친환경 개조사업도 다음 성장축으로 꼽힌다. HD현대마린솔루션의 2분기 친환경 솔루션 매출은 453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38.1% 증가했다. 회사는 선박평형수처리장치와 탈황설비 설치 같은 1세대 개조사업에서 벗어나 친환경 연료 전환과 탄소저감 개조사업으로 영역을 넓히고 있다. 국제 환경규제가 강화될수록 선주들은 신조 발주뿐 아니라 기존 선박 개조를 통해 규제에 대응하는 선택지를 검토할 수밖에 없다. 디지털 솔루션은 AM 사업과 결합되는 흐름이다. HD현대마린솔루션의 2분기 디지털 솔루션 매출은 364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65.5% 증가했다. 회사는 디지털관제센터에서 스마트솔루션이 장착된 선박의 실시간 운항 데이터를 분석하고, 이상 징후가 감지되면 사전 예방 정비를 권고하고 있다. 필요한 경우 AM 서비스로 연결되는 구조다. 장기적으로는 데이터가 새로운 정비 수요를 만드는 방식으로 사업이 확장될 수 있다. 선박 운항 데이터를 수집하고, 이상 징후를 분석한 뒤, 예방 정비와 부품 교체, LTSA 수요로 연결하는 선순환 구조다. 단순히 고장이 난 뒤 수리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고장을 예측하고 미리 정비하는 서비스 모델로 이동하는 셈이다. 이는 조선 3사 실적과 다른 수익모델이다. HD한국조선해양, 한화오션, 삼성중공업 등 조선사는 고선가 선박을 얼마나 안정적으로 건조해 이익을 남기느냐가 핵심이다. 반면 HD현대마린솔루션은 건조가 끝난 뒤 선박이 실제 운항되는 기간에 수익을 낸다. 조선 호황의 효과가 신조선 수주잔고에서 끝나지 않고, 부품·정비·개조·디지털 서비스 시장으로 이어지는 구조다. 관건은 서비스 기반을 얼마나 넓히고, 반복 매출을 안정적으로 쌓을 수 있느냐다. AM 사업은 운항 선박이 늘어날수록 매출 기반이 커질 수 있지만, 선박 가동률과 글로벌 운임, 선주들의 정비 투자 여력에 영향을 받는다. 친환경 개조사업도 규제 속도와 선주들의 투자 판단에 따라 수요가 달라질 수 있다. 그럼에도 HD현대마린솔루션의 2분기 실적은 조선업 수익 구조의 변화를 보여준다. 배를 지어 인도한 뒤에도 부품과 정비, 개조와 운항 솔루션에서 새로운 매출이 발생한다. 조선 호황의 무게중심이 신조선 수주와 건조에만 머물지 않고, 선박 생애주기 전반의 서비스 시장으로 확장되고 있다.
2026-07-29 15:2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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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태영 의원·카카오모빌리티, "자율주행, 차보다 운영"…플랫폼 중심 상용화 제안
[경제일보] 자율주행 경쟁의 무게중심이 차량 한 대의 주행 성능에서 수백 대를 안전하게 운영하는 플랫폼 역량으로 옮겨가고 있다. 카카오모빌리티가 자체 기술과 카카오T의 이용자 접점을 결합해 자율주행을 일상적인 교통 서비스로 확대하겠다는 구상을 내놨다. 카카오모빌리티는 엄태영 국민의힘 의원과 지난 28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피지컬 AI 시대, 자율주행은 어떻게 일상이 되는가’ 토론회를 개최했다고 29일 밝혔다. 서울시가 후원한 행사에는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학계·산업계 관계자들이 참석했다. 참석자들은 자율주행 상용화가 센서와 주행 알고리즘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호출과 배차, 차량 관제, 원격 지원, 사고 대응, 이용자 안내 등 서비스 운영 체계가 함께 갖춰져야 시민이 안심하고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김진규 카카오모빌리티 피지컬 AI 부문 부사장은 서울 강남에서 진행한 자율주행 실증과 카카오T 기반 서비스 운영 경험을 소개했다. 서울시는 구역형과 수요응답형(DRT), 노선형 등 여러 형태의 자율주행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으며 이용자는 카카오T에서 출발지와 목적지를 입력해 이용 가능한 서울자율차를 호출할 수 있다. 2024년 9월 무료 운행을 시작한 강남 심야 자율주행택시는 약 17개월의 실증을 거쳐 올해 4월 유료 서비스로 전환됐다. 카카오모빌리티도 지난 3월부터 자체 자율주행 기술을 적용한 서울자율차를 강남에서 운영하고 있다. 김 부사장은 “자율주행차 한 대를 잘 달리게 하는 것은 기술의 영역이고, 서로 다른 수백 대의 차량을 시민이 믿고 이용하도록 하는 것은 플랫폼과 도시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카카오모빌리티가 플랫폼을 강조하는 배경에는 자율주행 생태계의 분업 구조가 있다. 차량과 자율주행 시스템을 개발하는 기업이 달라도 공통된 호출·배차 체계와 통합관제 시스템에 연결돼야 서비스 규모를 키울 수 있다. 카카오T의 이용자 수요와 이동 데이터를 활용하면 운행 지역과 시간대, 차량 배치도 효율적으로 설계할 수 있다. 상용화를 위해 풀어야 할 과제도 남아 있다. 차량 제조사와 기술기업, 플랫폼, 지방자치단체 사이의 사고 책임 범위를 구체화하고 운행 데이터를 공유할 표준을 마련해야 한다. 원격 개입과 긴급 대응 기준, 보험제도, 개인정보 보호체계도 대규모 운행에 맞게 정비할 필요가 있다. 유료 전환 이후 승객 수요와 운임 수입으로 차량·관제 비용을 감당할 수 있는지도 확인해야 한다. 자율주행이 시범사업을 벗어나려면 기술 안정성뿐 아니라 지속 가능한 수익모델과 시민의 신뢰를 함께 확보해야 한다. 카카오모빌리티는 자체 주행 기술을 고도화하는 동시에 다양한 차량과 사업자가 참여할 수 있는 개방형 운영 인프라를 구축한다는 계획이다. 서울의 복잡한 도로에서 축적한 경험이 표준화된 서비스 모델로 이어질 경우 국내 다른 도시로 자율주행을 확산하는 기반이 될 전망이다.
2026-07-29 11:4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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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중동 재긴장에 나프타 긴급 점검…"8월 물량은 확보"
[경제일보] 정부가 중동 정세의 긴장이 다시 높아지자 국내 나프타와 석유화학제품 수급 상황을 긴급 점검했다. 석유화학 업계가 8월까지 필요한 나프타를 전년 수준 이상으로 확보해 당장 생산 차질 가능성은 크지 않지만, 호르무즈해협과 홍해가 동시에 흔들리는 만큼 9월 이후 도입 물량과 실제 운송 일정이 관건으로 떠올랐다. 28일 산업통상부는 대한상공회의소에서 한국화학산업협회와 석유화학 업계가 참석한 가운데 ‘나프타 및 석유화학제품 수급상황 긴급 점검회의’를 열었다. 이날 회의에서 산업부는 현재 업계의 나프타 확보량과 석유화학제품 재고가 안정적인 수준이라며 단기 수급 영향은 제한적이라고 판단했다. 다만 이번 발표는 ‘8월까지 전년 수준 이상’이라는 방향만 제시했을 뿐 절대 확보량과 국내 도착을 마친 물량, 9월 이후 계약 규모는 공개하지 않았다. 계약상 물량을 잡아두는 것과 선박이 제때 국내 항만에 도착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중동의 해상운송 불안은 다시 커지고 있다. 로이터통신은 이란은 호르무즈해협의 통제권을 거듭 주장하며 일부 선박의 통항을 막았고, 예멘 후티 반군은 사우디 동부 유전지대와 홍해 수출항 얀부를 잇는 원유 수송시설을 공격했다고 설명했다. 미국이 이란 공습을 일시 중단하고 협상 가능성을 열어뒀지만 항로 위험은 해소되지 않은 상황이다. 나프타는 원유 정제 과정에서 생산되는 석유화학 기초 원료다. 이를 분해해 에틸렌과 프로필렌 등을 만들고, 다시 자동차 부품과 전자제품, 포장재, 의약·의료용품 등에 쓰이는 합성수지로 가공한다. 산업부에 따르면 국내 나프타 수요의 45%를 수입하며, 수입 물량 중 중동산 비중은 77%에 달한다. 특히 호르무즈해협뿐 아니라 홍해 항로까지 동시에 위협받고 있다는 점이 변수다. 사우디 원유를 실은 선박들이 바브엘만데브해협을 피해 항로를 되돌렸고, 아프리카를 우회하면 아시아 도착까지 한 달가량 더 걸릴 수 있다고 전했다. 나프타 운반선도 같은 해상 길목과 보험·용선 시장의 영향을 받는 만큼 도착 지연과 운임 상승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석유화학 업계에는 원료 부족과 비용 상승이 함께 부담이다. 중국발 공급과잉으로 제품 가격에 원가 상승분을 온전히 반영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나프타 가격과 선박 운임이 오르면 수익성은 다시 악화할 수 있다. 확보 물량만큼이나 도입 가격과 도착 시점, 나프타분해시설(NCC) 가동률을 함께 점검해야 하는 이유다. 산업부는 업계와 실시간 소통체계를 구축해 중동 정세와 국내외 수급 상황을 살피고, 기존 수급 안정 조치를 유지하면서 9월 이후 물량을 추가 확보하기로 했다. 당장의 재고가 안정적이더라도 해상운송 차질이 장기화하면 9월 이후 수급과 비용은 동시에 흔들릴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이어 정부 점검의 초점도 계약 물량에서 실제 도착 물량과 운송 기간, 필수품 공급망까지 넓혀야 할 것으로 보인다. 양기욱 산업자원안보실장은 “중동 정세의 불안이 장기화될 가능성에 대비해나프타 수급 영향으로 인한 의료·보건 등 국민 생활 필수품의 생산 차질이 발생하지 않도록 정부와 업계가 긴밀히 소통하며 나프타 수급 상황을 면밀히살펴줄 것을 당부드린다”며 “정부도 나프타 수급 안정화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2026-07-28 15:1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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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글로비스, 中 제조업 유럽행 물류 잇단 수주…배터리·KD·설비까지
[경제일보] 현대글로비스가 중국 제조기업의 해외 진출을 따라 물류 영토를 넓히고 있다. 중국산 완성차 운송에서 한발 더 나아가 전기차 배터리와 자동차 반조립 부품(KD), 공장 설비까지 유럽과 중앙아시아 생산거점으로 옮기는 계약을 잇달아 따냈다. 현대차그룹 계열 물량을 기반으로 성장한 사업 구조를 비계열 글로벌 화주로 확장하는 행보다. 27일 현대글로비스는 중국 배터리 기업이 생산한 전기차 배터리를 중국 남부 화남 지역에서 헝가리와 스페인, 이탈리아 등에 있는 글로벌 완성차 기업의 공장으로 운송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배터리 운송은 올해 초 시작됐으며 계약 상대방과 물량, 운임 등은 공개하지 않았다. 앞서 중국 전기차 제조기업의 동유럽 공장으로 향하는 KD와 프레스공장 설비 운송 계약도 수주했다. 올해 상반기부터 중국 화동 지역에서 부품과 설비를 인수해 슬로베니아와 크로아티아로 해상 운송한 뒤 트럭을 이용해 현지 생산공장까지 배송하고 있다. 화동 지역은 전기차와 반도체 등 중국 첨단 제조기업이 밀집한 곳이다. 이번 수주의 특징은 단순 해상운송을 넘어 물류 전 과정을 묶어 제공한다는 점이다. 현대글로비스는 출하지에서의 창고 보관과 통관부터 해상운송, 철도·트럭을 통한 내륙운송까지 일괄 관리한다. 화주가 운송 단계마다 별도의 사업자를 선정하지 않고 중국 공장에서 해외 생산거점까지 화물을 보낼 수 있는 종단 간(End-to-End) 방식이다. 중앙아시아를 향한 공급망도 가동하고 있다. 현대글로비스는 중국 완성차 기업의 차량 분해·포장 업무를 수주해 현지에서 생산된 차량을 인수하고 품질을 점검한다. 이후 차량을 분해·포장해 컨테이너에 싣고 중국횡단철도(TCR)를 통해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 등으로 운송한다. 자동차운반선(PCTC) 사업에서도 중국 비계열 물량이 빠르게 늘고 있다. 현대글로비스가 PCTC로 운송한 중국발 완성차는 2023년 약 26만대에서 2025년 약 51만대로 늘었다. 회사가 내부 집계치를 토대로 제시한 증가율은 약 93%다. 중국발 남미행 완성차를 비롯해 건설장비와 상용차 등 대형 화물로도 운송 대상을 확대하고 있다. 중국 자동차 업체들이 내수 경쟁 심화에 대응해 유럽과 동남아시아, 중남미 등 해외 시장 공략을 강화하면서 관련 물류 수요도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완성차 수출뿐 아니라 해외 생산공장 건설에 필요한 배터리와 부품, 생산설비 물량까지 함께 증가할 수 있어서다. 중국 제조기업 수주는 현대글로비스가 추진하는 비계열 고객 확대 전략과도 맞닿아 있다. 현대글로비스는 2024년 최고경영자(CEO) 인베스터데이에서 계열 물량을 안정적으로 수행하는 동시에 비계열 고객을 늘려 2030년 매출 40조원을 달성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이번 계약은 완성차 해상운송을 넘어 부품·설비와 보관·통관·내륙운송까지 사업 범위를 넓힌다는 점에서 이 같은 전략의 연장선에 있다. 현대글로비스 관계자는 “배터리 운송은 정확한 시점을 밝히기 어렵지만 올해 초부터 시작한 것으로 보면 된다”며 “이번 종단 간 운송에는 창고 보관과 통관, 해상운송, 철도 및 트럭 운송이 모두 포함된다”고 했다. 이어 “화주사와의 계약 규정과 영업상 이유로 구체적인 운송 물량과 운임, 계약 기간, 유류비 연동 조건 등은 공개하기 어렵다”며 “회사의 운송 경쟁력을 바탕으로 세계 각국의 모빌리티 관련 기업과 물류 협력 관계를 지속해서 넓혀나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관건은 늘어난 중국 물량을 안정적인 수익으로 연결하는 것이다. 계약 규모와 기간, 운임 조건이 공개되지 않아 당장의 실적 기여도를 산출하기는 어렵다. 단발성 운송을 장기계약으로 전환하고 해상·철도·육상운송을 결합한 종단 간 서비스를 확대하는 것이 비계열 사업의 수익성을 좌우할 것으로 보인다.
2026-07-27 17:0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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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름값 오르고 반도체 흔들린다…'양면 충격' 대비책 서둘러야
[경제일보] 한국 경제의 약점은 서로 멀리 떨어진 두 곳에 있다. 하나는 페르시아만과 오만만을 잇는 폭 좁은 바닷길이고, 다른 하나는 손톱보다 작은 반도체 칩이다. 호르무즈해협이 흔들리면 원유와 액화천연가스 가격이 뛰고, 반도체 시장이 흔들리면 수출과 증시가 휘청인다. 지난 주말 한국 경제의 두 약한 고리에 동시에 경고등이 들어왔다. 미국과 이란의 무력 충돌이 다시 격화하면서 국제유가는 가파르게 올랐다. 지난 17일 브렌트유는 4.59% 오른 배럴당 88.10달러를 기록했다. 미국의 대이란 공격과 이란의 보복이 이어지고, 호르무즈해협을 통과하는 유조선과 가스 운반선의 안전에 대한 우려가 커진 결과다. 같은 날 세계 증시는 반도체주를 중심으로 하락했다. 필라델피아반도체지수는 사흘 연속 떨어지며 최근 고점보다 20% 낮은 수준까지 밀렸다. 유가는 오르고 반도체는 내리는, 한국 경제에는 가장 불편한 조합이 현실이 된 것이다. 상황은 주말에도 진정되지 않았다. 19일(현지시간) 미국은 8일 연속 이란을 공격했고, 이란도 걸프 지역 미군 시설과 주변국을 향해 미사일·무인기 공격을 이어갔다. 산유국 증시는 일제히 약세를 보였고, 시장에는 전쟁이 다시 넓어질 수 있다는 불안이 번졌다. 걸프 산유국들이 수출량을 늘리고 있지만 호르무즈해협의 선박 통행은 다시 줄었다. 최근 하루 통항 선박이 단 3척에 그쳐 5월 이후 최저 수준을 기록했다는 집계도 나왔다. 한국은 이 바닷길의 사소한 변화도 사소하게 받아들일 수 없는 나라다. 한국이 수입하는 원유의 약 70%, LNG의 약 20%가 호르무즈해협을 거친다. 해협이 완전히 봉쇄되지 않더라도 통항이 느려지고 보험료와 운임이 오르면 그 비용은 정유·석유화학·항공·해운·철강을 거쳐 결국 소비자물가로 넘어온다. 원유 가격 상승에 원화 약세까지 겹치면 충격은 배가된다. 국제유가가 그대로 있어도 환율이 오르면 한국이 지불해야 할 원화 기준 에너지 가격은 높아지기 때문이다. 반대편에서는 반도체가 흔들리고 있다. 인공지능 투자 열풍을 타고 치솟았던 반도체주는 과도한 기대와 높은 가격 부담 앞에서 조정을 받고 있다. 대만 TSMC가 큰 폭의 이익 증가를 발표하고도 주가가 하락한 것은 시장이 더 이상 ‘좋은 실적’만으로 만족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AI 기업들의 막대한 설비투자가 언제까지 이어질지, 반도체 수요가 실제 수익으로 얼마나 연결될지에 대한 의심이 커지고 있다. 지난 17일 세계 반도체주 하락도 이러한 불안이 한꺼번에 터져 나온 결과였다. 한국 경제에서 반도체는 단순한 수출 품목이 아니다. 지난 6월 한국의 전체 수출은 1022억5000만 달러로 처음 1000억 달러를 넘어섰고, 상반기 반도체 수출은 1924억 달러로 이미 지난해 연간 실적을 웃돌았다. 반도체 호황은 무역수지를 지키고 기업 투자를 늘리며 세수를 떠받치는 힘이다. 하지만 그 비중이 커질수록 반도체 가격과 글로벌 AI 투자의 작은 변화가 한국 경제 전체의 진폭을 키운다. 반도체가 잘될 때는 편중이 경쟁력으로 보이지만, 흔들릴 때는 의존으로 돌아온다. 유가 상승과 반도체 하락이 동시에 던진 메시지는 분명하다. 한국 경제는 에너지를 외부에서 사오고, 벌어들이는 돈은 소수 수출 품목에 지나치게 의존한다. 원유 가격이 오르면 수입액이 늘고, 반도체가 꺾이면 수출액이 줄어든다. 무역수지의 양쪽 문이 동시에 압박받는 구조다. 여기에 유가 상승이 물가와 금리를 끌어올리고, 반도체주 하락이 증시와 소비심리를 위축시키면 실물경제와 금융시장의 충격이 서로를 증폭할 수 있다. 정부가 유류세 조정이나 석유시장 단속에만 머물러서는 안 되는 이유다. 유류세 인하는 급한 불을 끄는 수단일 뿐, 기름을 실은 배를 한국까지 가져오지는 못한다. 정부는 원유와 LNG의 국가별·항로별 도입 현황, 민간과 공공의 비축 수준, 비축유 방출 조건, 해상보험과 운임 지원 방안, 환율 급등 시 대응 원칙을 하나의 에너지 비상계획으로 공개해야 한다. 국민과 기업이 알아야 할 것은 “당장 문제없다”는 안심의 말이 아니라 어느 단계에서 어떤 조치가 작동하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시간표다. 정부는 지난 3월 중동 상황 대응본부를 가동하면서 호르무즈해협 봉쇄 가능성에 대비해 대체 도입선과 운항 일정, 보험·운임 문제를 점검했다. 수급 위기가 가시화되면 국내 비축기지의 석유를 시장에 공급한다는 방침도 밝혔다. 이미 마련된 대책이 있다면 이제는 최근의 충돌 격화와 통항 감소를 반영해 다시 공개적으로 점검할 때다. 비상계획은 서랍 속에 있을 때가 아니라 시장 참여자들이 내용을 알고 움직일 때 효과가 있다. 기업도 공급망을 평상시의 평균값으로만 계산해서는 안 된다. 정유·석유화학·항공사는 유가와 운임이 동시에 급등하는 상황을, 자동차·배터리·철강사는 원자재 가격과 환율이 함께 오르는 상황을 가정해야 한다. 반도체 기업 역시 AI 투자가 둔화하고 메모리 가격이 조정받는 경우에 대비해 설비투자와 현금흐름을 점검해야 한다. 기업별 스트레스 테스트를 의무적으로 공개할 필요까지는 없더라도, 주요 업종과 금융회사가 복합 충격에 얼마나 버틸 수 있는지는 정부와 시장이 함께 확인해야 한다. 손자병법 ‘허실’에는 “먼저 싸움터에 이르러 적을 기다리는 자는 편안하고, 뒤늦게 싸움터에 달려가는 자는 피로하다”는 말이 나온다. 경제안보도 다르지 않다. 유조선의 통항이 끊어진 뒤 도입선을 찾고, 반도체 가격이 급락한 뒤 수출 다변화를 외쳐서는 늦다. 위기는 대책을 새로 만드는 시간이 아니라, 미리 만든 대책이 실제로 작동하는지를 시험하는 시간이다. 정부가 시장의 모든 위험을 없앨 수는 없다. 국제유가도, 세계 반도체 가격도 서울에서 결정되지 않는다. 그렇다고 외부 변수라는 이유로 손을 놓아서도 안 된다. 정부의 역할은 가격을 통제하는 데 있지 않다. 충격을 견딜 수 있도록 비축하고, 도입선을 넓히며, 위험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산업의 체질을 바꾸는 데 있다. 반도체를 더 강하게 키우는 일과 반도체 외 수출 산업을 육성하는 일은 모순이 아니다. 원전과 재생에너지, 천연가스와 에너지저장장치를 조화롭게 활용해 수입 에너지 의존도를 줄이는 일도 이념의 문제가 아니다. 모두 한국 경제의 선택지를 늘리는 일이다. 에너지 안보와 수출 다변화는 위기 때마다 꺼내 드는 구호가 아니라, 평상시에 비용을 지불하며 구축해야 할 보험이다. 기름값은 뛰고 반도체는 흔들리고 있다. 두 현상을 별개의 뉴스로 읽으면 대책도 조각난다. 하지만 이를 한국 경제의 이중 취약성으로 읽으면 해야 할 일이 선명해진다. 에너지 비상계획을 공개하고, 기업별 공급망을 점검하며, 수출의 두 번째와 세 번째 기둥을 세워야 한다. 호르무즈해협과 반도체 시장은 앞으로도 흔들릴 것이다. 흔들림 자체를 막을 수 없다면, 적어도 나라 경제 전체가 함께 휘청이지 않도록 만드는 것이 정책의 기본이다.
2026-07-20 09:43: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