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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년 만에 정부와 함께 기린 유엔의 날…이중근 부영 회장 "국경일 지정해야"
[경제일보] 이중근 부영그룹 회장 겸 유엔한국협회장·대한노인회장은 23일 “우리는 인류의 평화와 공동 번영의 중심인 유엔의 창설 81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모였다”며 “이번 기념식은 유엔의 날이 공휴일에서 제외된 지 51년 만에 국가 차원의 행사로 거행되는 매우 뜻깊은 자리”라고 말했다. 이중근 회장은 이날 서울 종로구 외교부 청사에서 열린 ‘제81회 유엔의 날(UN Day) 기념식’에서 이같이 밝혔다. 유엔의 날은 유엔헌장이 발효돼 유엔이 공식 출범한 1945년 10월 24일을 기념하는 날이다. 국내에서는 1975년까지 법정공휴일이었지만 1976년부터 공휴일에서 제외됐다. 행사에는 이 회장을 비롯해 조현 외교부 장관, 이종찬 광복회장, 정대철 대한민국헌정회장, 신상태 대한민국재향군인회장, 주한 외교단과 국제기구 관계자, 학생 대표 등 약 350명이 참석했다. 이 회장은 개회사에서 대한민국이 유엔의 도움 속에서 성장해왔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대한민국의 역사는 유엔으로부터 시작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며 “6·25전쟁으로 나라의 운명이 풍전등화에 놓였을 때 유엔군의 신속한 파병과 희생이 있었기에 지금의 대한민국이 존재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도움을 받던 나라에서 국제사회에 기여하는 국가로 성장한 만큼 우리의 책임과 의무를 다해야 할 때”라며 대한민국이 유엔과 국제사회에서 더 큰 역할을 맡아야 한다는 뜻을 밝혔다. 이와 함께 10월 24일 유엔의 날을 국경일로 지정하는 것과 국제기구의 국내 유치를 제안했다. 그는 “유엔의 날을 국경일로 지정하는 것은 대한민국이 글로벌 리더 국가로서 세계 평화와 발전을 위해 중심적인 역할을 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주는 의미가 있다”며 “글로벌 불확실성이 커지는 상황에서 6·25 참전국과 연대를 다지는 것은 우리의 중요한 자산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 “아시아 지역의 유엔 거점 공백을 메우면 동북아 긴장 완화와 한반도 안보에 기여하고 다자외교의 중심으로 도약할 수 있다”며 “유엔의 날이 국경일로 지정된다면 서울에 뉴욕 유엔본부에 버금가는 건물을 직접 건립해 기증하고 다양한 유엔 기구를 유치하는 데 힘을 보태겠다”고 덧붙였다. 행사에 참석한 조현 외교부 장관도 기념사를 통해 대한민국과 유엔의 관계를 ‘함께 성장해온 동반자’로 규정했다. 조 장관은 한국전쟁 당시 유엔 참전국들의 지원과 전후 복구 과정에서 이어진 유엔의 역할을 언급하며 한국이 국제사회의 지원을 받던 국가에서 기여하는 국가로 성장했다고 평가했다. 조 장관은 “유엔은 우리 역사의 중요한 순간마다 함께한 동반자로서 우리에게 각별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며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22개 유엔 참전국들이 대한민국의 자유를 수호하기 위해 함께 싸웠고 전쟁이 끝난 뒤에도 대한민국의 재건과 복구를 지원했다”고 강조했다. 올해 유엔 가입 35주년을 맞은 대한민국의 달라진 위상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조 장관은 “유엔의 지원 속에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룬 대한민국은 이제 도움을 받던 나라에서 도움을 주는 나라가 됐다”며 “동명부대와 한빛부대는 분쟁 지역의 평화를 지키고 있고 우리의 개발협력은 세계의 지속 가능한 발전에 기여하고 있다”고 말했다. 유엔이 직면한 과제에 대해서는 국제사회의 협력이 더욱 중요해졌다고 봤다. 조 장관은 “분쟁의 장기화와 기후위기, 인공지능의 등장 등으로 오늘날 유엔이 엄중한 시험대에 서 있다”며 “유엔이 가진 연대의 가치를 발휘하고 더욱 효율적으로 기능할 수 있도록 대한민국이 힘을 보태야 한다”고 했다. 안토니오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과 반기문 제8대 유엔 사무총장은 영상으로 축하 메시지를 전했다. 특히 반 전 총장 역시 유엔이 현재 여러 도전에 직면해 있지만 그럴수록 다자주의와 국제협력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기후위기와 팬데믹 등 국경을 넘어서는 문제는 어느 한 국가의 힘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만큼 국제사회가 연대와 협력의 가치를 다시 확인해야 한다는 취지다. 청년 세대의 목소리도 이어졌다. 구나윤 유엔한국학생협회장은 축사에서 국제사회의 도움과 연대 속에서 성장한 대한민국의 청년들이 앞으로는 세계가 직면한 문제 해결에 직접 참여해야 한다고 짚었다. 이날 유엔한국협회와 광복회, 대한민국헌정회, 대한민국재향군인회, 새마을운동중앙회, 대한노인회 등 6개 단체는 ‘10월 24일N데이, 평화의 역사를 미래세대에 전하는 일입니다’를 슬로건으로 공동 캠페인도 진행했다. 최근에는 유엔의 날을 국경일로 지정하자는 논의 역시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8월 양부남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매년 10월 24일을 국경일로 지정하는 내용의 ‘국경일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같은 해 9월에는 이 회장이 42만명이 참여한 유엔데이 국경일 지정 서명부를 국회에 전달하기도 했다.
2026-10-23 13:4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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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적 대립 부추기는 외교를 경계한다
[경제일보] 외교는 말의 전쟁이 아니다. 더구나 국가의 안보와 경제적 이해가 걸린 사안이라면 공개적인 설전보다 치밀한 계산과 물밑 협상이 우선이다. 그런데 최근 한·우크라이나 관계를 둘러싼 일련의 공방을 보면 대한민국 외교가 과연 이런 기본 원칙을 지키고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상대국의 공개적인 불만에 정부가 민감하게 반응하고, 양국 간 이견이 언론을 통해 확대 재생산되는 모습은 국익을 극대화해야 할 외교가 오히려 갈등을 키우는 양상으로 비칠 수 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정부의 전략 부재다. 북한의 러시아 파병과 북·러 군사협력 강화는 대한민국 안보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중대한 변수다. 러시아가 북한에 군사기술과 경험을 제공하고 북한이 러시아의 전쟁 수행을 지원하는 구도가 굳어진다면 한반도의 군사적 불확실성은 커질 수밖에 없다. 한국이 우크라이나와 협력하고 국제사회와 공동 대응을 모색하는 것 자체가 문제가 아니다. 문제는 그 과정에서 대한민국이 무엇을 얻고 무엇을 감수할 것인지에 대한 냉정한 전략 계산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외교에서 가장 위험한 것은 원칙이 없는 것이 아니라 전략이 없는 것이다. 정부가 우크라이나와의 관계를 중시한다면 우리의 지원 범위와 조건, 한계선을 사전에 치밀하게 조율했어야 한다. 상대국의 요구에 끌려가는 모양새도, 공개적인 감정싸움으로 맞서는 모습도 피했어야 한다. 그런데 외교적 이견이 공개적인 신경전으로 번진다면 결국 손해를 보는 쪽은 대한민국이다. 상대국과의 협상력은 떨어지고, 러시아와의 관계 관리 공간도 좁아지기 때문이다. 특히 정부가 경계해야 할 것은 '가치외교'라는 명분이 '무조건적인 동조'로 변질되는 것이다. 자유·민주주의·국제법·주권 존중이라는 보편적 가치는 대한민국이 결코 양보해서는 안 될 원칙이다. 그러나 원칙을 지킨다는 것과 다른 나라의 요구를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국가의 외교는 도덕적 선언문이 아니라 냉정한 손익계산서이기도 하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유럽에서 끝나는 문제가 아니다. 에너지와 원자재 가격, 글로벌 공급망, 방산시장, 식량안보, 미·러 갈등은 물론 북·러 군사협력까지 한국의 경제와 안보에 직결돼 있다. 여기에 향후 우크라이나 재건 사업이라는 거대한 경제적 기회도 걸려 있다. 한국이 외교력을 제대로 발휘한다면 인도적 지원과 재건 협력을 확대하면서 우리의 산업과 기업이 참여할 공간을 확보할 수 있다. 반대로 감정적인 외교로 관계를 불필요하게 틀어버리면 시장과 기업이 얻을 기회까지 잃을 수 있다. 러시아 문제도 마찬가지다. 북·러의 군사협력에는 단호하게 대응해야 한다. 그러나 러시아와의 관계를 사실상 회복 불가능한 상태로 몰아가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러시아는 한반도 정세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핵심 변수다. 에너지·자원·물류와 관련해서도 무시할 수 없는 국가다. 지금 당장 관계가 어렵다고 해서 외교적 출구까지 스스로 봉쇄한다면 훗날 한반도 안보와 경제 협상에서 사용할 수 있는 지렛대를 우리 손으로 버리는 꼴이 된다. 정부는 이제라도 외교의 무게중심을 바로 잡아야 한다. 첫째, 정상적인 외교 채널을 복원하고 공개적인 설전을 최소화해야 한다. 외교적 이견은 언론이 아니라 협상 테이블에서 풀어야 한다. 둘째, 우크라이나 지원 원칙과 범위를 명확히 하고 국민에게 그 기준과 비용을 투명하게 설명해야 한다. 셋째, 미국·유럽과의 공조를 유지하면서도 한·러 관계를 관리할 별도의 소통 채널을 가동해야 한다. 넷째, 우크라이나 재건과 방산·에너지·인프라 협력을 국익 차원에서 종합적으로 설계해야 한다. 무엇보다 정부는 외교를 국내 정치의 연장선에서 다루는 듯한 인상을 줘서는 안 된다. 외교적 강경 발언 한마디는 국내에서는 박수를 받을지 몰라도 국제사회에서는 협상 카드를 하나 없애는 결과가 될 수 있다. 반대로 조용한 물밑 협상은 눈에 잘 띄지 않지만 국가의 실리를 지키는 가장 강력한 수단이 될 수 있다. 지금 대한민국에 필요한 것은 목소리 큰 외교가 아니라 계산된 외교다. 동맹은 굳건히 하되 국익은 스스로 챙겨야 하고, 국제적 원칙은 지키되 우리의 선택권까지 포기해서는 안 된다. 정부가 이를 제대로 하지 못하면 결국 비용은 국민과 기업이 떠안는다. 외교 실패는 외교부의 실패로 끝나지 않는다. 에너지 가격과 수출시장, 기업의 해외사업, 안보 비용과 국가 재정으로 고스란히 돌아온다. 정부는 한·우크라이나 관계의 최근 난맥상을 단순한 외교적 해프닝으로 넘겨서는 안 된다. 이것은 대한민국 외교가 명분과 실리 사이에서 얼마나 정교하게 균형을 잡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시험대다. 굴종도 강경 일변도도 답이 아니다. 원칙에는 단호하되 협상에서는 유연하고, 말은 절제하되 국익에는 집요해야 한다. 그것이 21세기 대한민국이 가져야 할 외교의 기본이다.
2026-10-08 13: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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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파병은 없다, 통항엔 기여'…호르무즈 지원 범위부터 명확히 하라
[경제일보] 이재명 대통령이 호르무즈 해협 파병 논란에 선을 그었다. 지난 18일 기자회견에서 “전쟁에 관여하거나 개입하는 파병은 없다”고 했다. 군사자산을 보내 전쟁에 관여하는 일도 하지 않겠다고 했다. 다만 우리 상선과 원유 수송로, 국민의 안전을 보호하기 위한 활동은 필요하다며 청해부대 활동 강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전쟁에는 들어가지 않되 우리 배와 선원은 지키겠다는 게 정부의 방침이다. 문제는 실제 작전에서 그 선을 어디에 긋느냐다. 청해부대가 호르무즈 해협 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기존 상선 보호 임무의 연장인지, 새로운 군사임무인지부터 따져야 한다. 해상초계기나 군수지원함 등 추가 전력이 투입될 경우에는 성격이 더 달라질 수 있다. 대통령도 이런 차이를 언급했다. 호르무즈 안쪽인지 인근 해역인지, 병력을 보내는지 장비를 보내는지, 병력이라면 전투병인지 비전투병인지에 따라 상황이 다르다고 설명했다. 외국군 지휘 아래 우리 장병이 들어가는 경우에 대한 우려도 직접 밝혔다. ‘파병’이라는 한 단어로 묶기에는 서로 다른 선택지가 많다는 얘기다. 외교부는 한발 더 나갔다. 조현 외교부 장관은 18일 워싱턴에서 마코 루비오 미 국무장관을 만나 호르무즈 해협의 자유로운 통항 회복을 위해 한국도 미국과 국제사회에 실질적으로 기여할 뜻이 있다고 밝혔다. 미국은 한국의 입장을 이해한다며 계속 협의하자는 반응을 보였고 특정 부대나 전력을 보내 달라는 구체적인 요구는 하지 않았다는 게 정부 설명이다. 그렇다면 ‘실질적 기여’가 무엇을 뜻하는지부터 밝혀야 한다. 전쟁에 참여하지 않으면서 통항을 지원하는 방식은 이미 다른 나라에서도 논의되고 있다. 영국과 프랑스가 주도하는 호르무즈 다국적 임무는 민간 선박 보호와 상선 운항 지원, 기뢰 제거를 임무로 정했다. 다른 군사작전과 분리하고 전투가 계속되는 상황이 아닌 작전 가능한 환경에서 움직인다는 조건도 붙였다. 한국도 이 구상에 정치적 지지를 표시한 국가 가운데 하나다. 영국과 프랑스는 ‘파병’이라는 이름보다 임무의 범위를 먼저 정했다. 무엇을 보호하고 언제 움직이며 다른 군사작전과 어떤 관계를 맺을지를 문서에 담았다. 항행의 자유를 지키는 활동과 전쟁에 참여하는 활동을 구분하려면 임무와 작전 범위부터 나눠야 한다. 군함 한 척을 보내느냐보다 그 군함이 어디서 누구의 지휘를 받아 무슨 일을 하느냐가 더 중요하다. 한국에는 청해부대가 이미 중동 해역에 나가 있다는 변수가 있다. 새 부대를 보내지 않고 청해부대의 작전지역과 임무를 넓히는 방안도 나올 수 있다. 그러나 부대 이름이 그대로라고 해서 맡는 일까지 그대로인 것은 아니다. 해적 퇴치와 우리 선박 보호를 위해 파견된 부대가 무력 충돌 위험이 높은 해역에서 다국적 군사임무를 수행한다면 기존 파견과 같은 성격인지 따져야 한다. 헌법은 국군의 해외 파견을 행정부 판단에만 맡겨두지 않았다. 헌법 제60조 제2항은 국군의 외국 파견에 대해 국회가 동의권을 갖도록 규정한다. 새로운 병력을 보내는 경우에는 국회 동의 문제가 바로 따라온다. 기존 부대의 작전지역이나 임무를 크게 바꾸는 경우에도 종전 동의 범위 안에 있는지 다시 따져봐야 한다. 정부가 설명해야 할 내용은 구체적이다. 청해부대가 호르무즈 해협 안으로 들어가는지, 작전구역은 어디까지인지, 영·프 주도의 다국적 임무에 참여하는지, 독자 지휘를 유지하는지부터 밝혀야 한다. 추가 병력이나 군사자산을 보낼 가능성이 있는지, 무력 사용은 어떤 상황에서 허용되는지, 국회 동의가 필요한 경우 어떤 절차를 밟을지도 함께 설명할 필요가 있다. 호르무즈는 한국과 관계없는 먼바다가 아니다. 원유와 상품을 실은 우리 선박이 오가는 항로이고 통항 차질은 국내 경제에도 영향을 준다. 우리 선박과 선원을 보호하는 것과 다른 나라의 전쟁에 참여하는 것은 같은 일이 아니다. 그래서 둘 사이의 선을 더 분명하게 그어야 한다. “전쟁 파병은 없다”, “통항 회복에는 기여한다” 두 방침을 함께 추진할 수는 있다. 그러나 그 사이의 빈칸을 남겨둔 채 ‘실질적 기여’만 강조하면 파병 논란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청해부대가 어디까지 가고 누구의 지휘를 받아 어떤 임무를 맡을 것인지부터 분명히 해야 한다. 호르무즈 지원 논의는 그 선부터 정한 뒤 시작해야 한다.
2026-09-21 09:0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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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르무즈 파병, 동맹 중요하지만 국익도 계산하라
[경제일보] 호르무즈 해협 파병을 둘러싼 정부의 태도가 갈수록 복잡해지고 있다. 그동안 신중론을 펴던 정부가 미국의 공개적인 압박 속에 파병 방안을 구체적으로 검토하는 단계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에는 해상초계기와 군수지원함 등 군사적 자산의 파견 방안까지 거론되고 있다. 국가의 군사적 판단이 국제정세와 동맹의 요구에 따라 크게 흔들린다면 국민은 무엇을 믿어야 하는가. 외교·안보에서 경계해야 할 것은 잘못된 선택 못지않게 원칙 없는 정책 변화다. 파병 여부를 결정한다면 무엇보다 대한민국의 국익이라는 기준이 분명해야 한다. 한미동맹의 중요성을 부정할 국민은 많지 않다.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이 현실인 상황에서 미국과의 안보협력은 대한민국의 핵심적인 전략자산이다. 그렇다고 동맹국의 요구라면 우리의 군대를 어디든 보내야 한다는 논리는 성립하지 않는다. 동맹에도 각자의 국익이 있고 각국이 부담해야 할 비용과 위험에도 차이가 있다. 미국이 자국의 안보와 경제적 이익을 최우선으로 판단하듯 대한민국 역시 국민의 생명과 국가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판단해야 한다. 무엇보다 냉정하게 따져야 할 것은 경제적 손익이다. 호르무즈 해협은 한국 경제의 핵심 에너지 수송로다. 이곳의 안정과 항행의 자유가 흔들리면 국제유가와 해상운임, 보험료 등이 뛰어 우리 경제에 직접적인 충격을 줄 수 있다. 따라서 호르무즈의 안전을 확보하는 것은 분명 대한민국의 중요한 국익이다. 그러나 해협의 안전을 지키는 것과 군사적 충돌의 당사자가 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우리 군의 파병이 실제로 항행의 안전을 높이는지, 아니면 중동의 군사적 긴장을 키워 유가와 해상보험료를 오히려 끌어올리는지 면밀한 검증이 필요하다. 최악의 경우 한국이 군사적 대립의 한쪽으로 인식되면서 이란의 보복 대상이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렇게 되면 원유 수급을 안정시키려던 파병이 오히려 에너지 안보를 위협하는 역설이 발생할 수 있다. 경제적 이해관계도 간단하지 않다. 한국 기업들은 중동 곳곳에서 건설·플랜트·에너지·물류 사업을 벌이고 있다. 수십 년간 쌓아온 경제적 관계가 군사적 선택 하나로 흔들릴 가능성을 가볍게 봐서는 안 된다. 현지 교민과 기업의 안전 역시 정부가 우선적으로 따져야 할 변수다. 미국과의 관계에서 얻는 외교적 이익이 파병에 따른 경제적 위험과 장병의 안전 문제를 상쇄할 만큼 큰지 국민 앞에 설명할 필요가 있다. 정부가 정말 파병이 국익에 부합한다고 판단한다면 무엇을 얻고 무엇을 감수해야 하는지 분명하게 밝혀야 한다. 미국이 무엇을 요구했는지, 우리에게 어떤 외교·안보상의 실익이 있는지, 원유 수송과 에너지 안보에 어떤 도움이 되는지, 파병에 따른 경제적 비용과 위험은 어느 정도인지 공개해야 한다. 우리 장병의 임무와 교전 상황 발생 시 대응 범위, 교민과 기업 보호 대책도 구체적으로 제시해야 한다. 호르무즈 문제를 한미동맹의 충성도 시험으로 만들어서도 안 된다. 동맹은 일방적인 복종을 요구하는 관계가 아니다. 동맹을 지키는 것과 동맹국의 모든 요구를 수용하는 것은 다르다. 오히려 어려운 사안에서 우리의 국익과 국민적 우려를 분명하게 전달하고 협상하는 것이 성숙한 동맹의 모습이다. 지금 세계는 자국의 경제와 에너지 안보를 지키기 위해 치열한 국익 경쟁을 벌이고 있다. 미국도, 중국도, 일본도 자국의 이익을 철저하게 계산한다. 대한민국만 동맹이라는 이름 아래 손익계산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 특히 군사적 파병은 명분만으로 결정할 일이 아니다. 얻는 것과 잃는 것을 끝까지 따져야 한다. 호르무즈 해협의 안정에 기여하는 방법이 반드시 우리 군의 직접적인 군사적 개입이어야 하는 것도 아니다. 외교적 협력과 국제적 해상안전 활동은 물론 원유 수입선 다변화, 비축유 확대, 대체 수송로 확보 등 다양한 수단을 함께 검토해야 한다. 에너지 안보는 군함 한 척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공급망 전체를 지키는 종합 전략에서 나온다. 무엇보다 파병 여부는 국민과 국회의 동의를 거쳐야 할 사안인 만큼 충분한 설명과 검증이 선행돼야 한다. 실제로 정치권에서도 정부가 파병 검토의 배경과 실익을 국회에 투명하게 설명해야 한다는 요구가 나오고 있다. 정부는 이제 미국의 표정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손익계산서를 펼쳐놓고 결정해야 한다. 파병이 국익에 도움이 된다면 국민을 설득하고 당당하게 추진하면 된다. 반대로 위험과 비용이 편익보다 크다면 동맹국에도 그 이유를 설명하고 다른 방식의 기여를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주권국가의 외교다. 호르무즈 파병 논란은 정부 외교의 시험대다. 동맹을 중시하되 동맹에 끌려가서는 안 된다. 에너지 안보를 지키되 군사적 위험을 무분별하게 떠안아서도 안 된다. 무엇보다 우리 장병의 생명과 국민의 안전, 국가 경제의 이익보다 우선하는 외교적 명분은 없다. 정부는 더 이상 정치적 유불리에 흔들리지 말고 분명한 원칙과 냉정한 손익계산으로 국민 앞에 서야 한다.
2026-09-07 10:3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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