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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재관의 시선] 삼성 노조의 균열, 성과급이 아니라 신뢰가 빠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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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재관의 시선] 삼성 노조의 균열, 성과급이 아니라 신뢰가 빠져나갔다

기자정보, 기사등록일
선재관 기자
2026-05-03 16:45:13
선재관 AI 부장
선재관 AI 부장
삼성전자 노조가 흔들리고 있다. 밖에서 밀린 것이 아니다. 안에서 갈라졌다. 반도체(DS)와 비반도체(DX)라는 한 지붕 두 가족의 해묵은 간극이 노조라는 용광로 안에서 터져 나왔다.

표면의 쟁점은 성과급이다. 본질은 신뢰와 대표성의 붕괴다. 노조의 깃발 아래 모였던 수만 명의 조합원이 이제 묻고 있다. 저 깃발은 과연 우리 모두를 위한 것인가.

최근 초기업노조 삼성전자지부 홈페이지에는 탈퇴 신청이 폭주했다. 하루 100건에도 미치지 않던 탈퇴계가 1000건을 넘어섰다는 소식은 단순한 숫자의 이탈이 아니다. 노조라는 댐에서 신뢰라는 물이 빠져나가고 있다는 경고다. 직장인 커뮤니티의 탈퇴 인증은 그 균열이 얼마나 깊고 빠른지를 보여주는 아픈 증거다.

불씨는 노조 공동교섭본부의 섣부른 요구에서 비롯됐다. 노조는 DS 부문에 영업이익의 15%를 상한 없이 지급하라고 요구했다. 수억원대 성과급 잔치를 예고한 것이다. 그러나 올해 1분기 영업이익이 36% 급감하고 연간 적자까지 우려되는 DX 부문을 향해서는 침묵했다. 한쪽에는 불을 지피고 다른 한쪽에는 재를 뿌린 셈이다. 이 기묘한 침묵의 순간 DX 직원들은 자신들이 이 싸움의 주역이 아닌 들러리임을 직감했다.

삼성전자는 하나의 회사지만 그 안에는 서로 다른 경제가 흐른다. DS 부문은 거대한 투자가 천문학적인 이익으로 돌아오는 장치 산업이다. 호황의 사이클을 타면 돈을 갈퀴로 긁어모은다. 반면 DX 부문은 스마트폰과 가전이라는 피 튀기는 전쟁터다. 시장은 촘촘하고 소비자는 냉정하다. 같은 삼성전자 명함을 쓰지만 반도체 엔지니어의 체감 경제와 가전 영업직의 체감 경제는 전혀 다른 행성에 속해 있다.

노조의 첫 번째 과오는 이 명백한 차이를 '하나의 투쟁'이라는 구호로 뭉개버린 것이다. 사업 구조가 다르면 보상의 논리도 달라야 마땅하다. DS의 호황을 기준으로 만든 공식이 적자를 걱정하는 DX 직원에게 공정하게 들릴 리 없다. "누군가의 축배가 왜 나의 희생을 담보로 해야 하는가." 이 질문에 노조는 답하지 못했다.

두 번째 과오는 연대의 본질을 망각한 것이다. 연대는 구호가 아니다. 부담과 이익을 함께 설명하고 동의를 구할 때 비로소 성립하는 사회적 계약이다. 쟁의 기간 조합비를 1만원에서 5만원으로 올리고 파업 스태프에게 300만원의 수당을 내건 결정은 많은 DX 조합원에게 '함께 싸우자'는 연대의 제안이 아니라 '우리의 싸움을 위해 돈을 내라'는 동원의 명령으로 읽혔다. DS의 성과급 투쟁을 위해 왜 DX가 더 많은 조합비를 내야 하는가. 그 돈은 투명하게 쓰이는가. 이 의심의 빈자리를 불신이 빠르게 채웠다.

사측은 이 균열을 정확히 파고들었다. 회사는 DS 부문의 성과에 대해서는 업계 최고 대우를 약속했다. 동시에 특별 포상과 자사주 지급, 복리후생 강화 등 전 임직원이 체감할 수 있는 '종합 보상 패키지'를 제시했다. 노조가 놓친 지점을 정확히 찌른 것이다. "그래서 우리 모두에게 돌아오는 것이 무엇인가." 사측은 노조가 외면한 이 질문에 먼저 답을 내놓았다.

임금 투쟁은 숫자의 싸움처럼 보이지만 본질은 명분의 싸움이다. 숫자가 아무리 커도 명분이 약하면 조직은 모래알처럼 흩어진다. 지금 삼성전자 노조의 문제는 요구액이 과하다는 데 있지 않다. 그 기준이 한쪽으로 기울었다고 보인다는 데 있다. 공정은 평균이 아니다. 다른 조건에 같은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평등이 아니라 폭력일 수 있다.

삼성전자 노조의 등장은 한국 노사 관계의 새 역사를 열었다. 대기업 사무직과 연구직을 아우르는 거대 노조의 탄생은 그 자체로 시대의 변화를 상징한다. 그러나 크다고 강한 것은 아니다. 큰 배일수록 보이지 않는 암초에 더 치명상을 입는다. 반도체 엔지니어의 이해와 가전 영업직의 이해, 모바일 개발자의 이해는 결코 같을 수 없다. 이 복잡한 방정식의 해법을 찾지 못하고 하나의 구호로 덮으려 한 순간 거대 노조는 거대한 균열을 맞았다.

DX 직원들의 탈퇴는 노조에 대한 반발 이전에 자신들의 목소리가 지워졌다는 항의다. 노조가 DS의 성과급 상한 폐지를 외칠 때, DX의 고용 안정과 적자 부문의 보상 안전망을 함께 말했어야 했다. 그것이 진정한 연대다.

노조는 이제 선택의 기로에 섰다. 반도체 노조로 남을 것인가, 진정한 삼성전자 노조로 바로 설 것인가. 전자의 길은 선명하고 쉽다. 그러나 조직은 쪼그라들 것이다. 후자의 길은 복잡하고 고되다. 그러나 대표성은 회복될 것이다.

탈퇴 신청 1000건은 심판이 아니다. 아직은 경고다. 거대 노조가 태어나는 데는 분노가 필요하지만 유지되는 데는 신뢰가 필요하다. 지금 삼성전자 노조가 잃고 있는 것은 조합원 숫자가 아니다. 바로 그 신뢰다. 신뢰를 잃은 조직은 조합비로도, 수당으로도 결코 지탱할 수 없다. 투쟁에서 이겨도 조직에서 지는 싸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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