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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비상이라는 이름으로 헌법을 넘을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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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데스크 칼럼] 비상이라는 이름으로 헌법을 넘을 수는 없다

기자정보, 기사등록일
한석진 기자
2026-05-13 10:39:08
2024년 12월 4일 새벽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에 무장한 계엄군이 진입을 시도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2024년 12월 4일 새벽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에 무장한 계엄군이 진입을 시도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경제일보]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계엄은 늘 두 얼굴이었다. 헌법은 국가가 무너질 위기 상황에서 이를 수습하기 위한 마지막 권한으로 계엄을 허용했다. 그러나 국민 기억 속 계엄은 자유의 축소와 권력의 팽창으로 남아 있다. 군홧발과 통행금지 그리고 새벽의 연행은 단지 과거사의 장면이 아니다. 국가권력이 어디까지 비대해질 수 있는지를 보여준 집단적 기억에 가깝다.
 

그래서 계엄은 헌법에 적혀 있는 권한이면서도 가장 위험한 권한이다. 계엄이 선포되는 순간 민주주의의 평상시 질서는 멈춘다. 입법과 행정 그리고 사법의 균형 위에 움직이던 체계는 비상이라는 이름 아래 급속히 압축된다. 국가긴급권은 언제나 강한 유혹을 동반해왔다. 권력은 위기 상황에서 늘 예외를 찾으려 하기 때문이다.
 

대법원은 이번에 그 경계선에 대해 처음으로 선을 그었다. 12·3 비상계엄 관련 사건 가운데 처음으로 계엄 준비행위의 위법성을 인정한 원심 판단을 확정한 것이다. 총칼이 실제 거리로 나오지 않았더라도 헌정질서를 흔들기 위한 사전 움직임 자체가 형사책임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점을 확인했다. 특히 법원은 “계엄은 고도의 통치행위이므로 사법심사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주장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오랫동안 한국 사회에는 국가긴급권 문제만 나오면 사법부가 쉽게 다가서지 못하는 분위기가 있었다. 과거 권위주의 시절 통치행위론은 권력을 사법심사 밖으로 밀어내는 논리로 자주 동원됐다. 안보와 국가 위기 그리고 정치적 결단이라는 이름 아래 법원의 판단은 쉽게 뒤로 밀렸다. 그러나 민주화 이후 사법부는 조금씩 다른 길을 걸어왔다. 긴급조치 사건 재심과 국가배상 판결을 거치며 국가긴급권 역시 헌법의 한계를 벗어날 수 없다는 원칙을 확인해왔다. 이번 확정판결 역시 그 연장선 위에 놓여 있다.
 

헌법은 대통령에게 계엄 선포 권한을 부여하고 있다. 동시에 매우 엄격한 제한도 함께 달아 놓았다. 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라는 조건이 붙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국가 기능이 사실상 마비된 상황이 아니라면 계엄은 허용될 수 없다. 정치적 갈등이나 사회 혼란이 존재한다는 이유만으로 군과 정보기관이 전면에 등장하는 순간 민주주의는 빠르게 흔들리기 시작한다.
 

눈에 띄는 것은 법원이 ‘준비행위’를 바라본 시각이다. 노 전 사령관 측은 실제 폭력 사태가 발생하지 않았고 계엄 집행 역시 완성되지 않았다는 취지로 방어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정보사 요원 개인정보를 수집하고 비선 형태의 수사 조직을 준비한 행위 자체가 위헌적 계엄 추진의 일부라는 판단이었다.
 

법조 실무에서는 결과보다 과정이 더 위험한 경우를 자주 본다. 거대한 불법은 대개 작은 예외에서 시작된다. 규정 하나를 가볍게 넘기고 절차 하나를 우회하는 순간 권력은 점점 통제를 벗어난다. 특히 국가 권력 사건에서는 “아직 실행되지 않았다”는 변명이 반복된다. 그러나 헌정질서는 실제 파괴가 벌어진 이후에야 보호되는 것이 아니다. 위험한 방향으로 움직이는 순간부터 이미 법은 개입하기 시작한다. 내란 예비·음모죄가 존재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국가 시스템은 한번 무너지면 회복 비용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이번 확정판결은 개인 처벌 이상의 의미를 남겼다. 앞으로 이어질 계엄 관련 재판 전체의 기준점이 될 가능성이 크다. 내란 혐의의 본류 사건은 여전히 진행 중이고 최종 판단도 남아 있다. 다만 최소한 한 가지는 또렷해졌다. 계엄과 관련된 준비행위 역시 헌법 질서를 흔드는 행위로 평가될 수 있다는 점이다.
 

법원의 유죄 확정은 정치권에도 적지 않은 질문을 던진다. 최근 몇 년 동안 한국 사회는 극단적 정치 대립을 반복해왔다. 선거 결과를 쉽게 인정하지 못하는 분위기와 음모론 그리고 상대 진영에 대한 적대감 역시 빠르게 커졌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정치 불신이 극단으로 치달을수록 일부 세력은 점점 헌법 밖 수단을 떠올리기 시작한다. 법률과 제도를 통한 해결보다 힘의 논리가 더 빠르다고 믿는 순간 민주주의는 위험해진다.
 

군과 정보기관은 국가를 지키기 위한 조직이지 정치 갈등의 해결사가 아니다. 이 선이 무너지기 시작하면 공동체는 급속히 균열된다. 대한민국 현대사는 이미 그 대가를 여러 차례 치른 경험이 있다.
 

선진 민주국가일수록 계엄권 행사 문턱은 높다. 이유는 어렵지 않다. 비상이라는 말은 언제나 통제를 약화시키는 방향으로 작동해왔기 때문이다. 권력이 스스로를 절제하지 못하면 결국 마지막 방어선은 헌법과 사법부가 된다. 대법원이 내놓은 결론 역시 같은 방향을 가리킨다. 헌법 밖의 비상구는 허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돌이켜보면 대한민국 민주주의는 수많은 충돌과 갈등 속에서 조금씩 앞으로 나아왔다. 때로는 대통령 탄핵 제도가 작동했고 때로는 법원이 국가권력 남용에 제동을 걸었다. 그 과정은 느렸고 혼란스럽기도 했지만 사회는 결국 헌법이라는 기준으로 되돌아오려 했다.
 

법은 평온할 때보다 위기 상황에서 진짜 얼굴이 드러난다. 정치가 극단으로 치닫고 권력이 흔들릴 때에도 헌법 원칙을 지켜낼 수 있는지가 민주주의 수준을 결정한다. 이번 확정판결은 그런 점에서 단순한 형사사건 판결문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대한민국 헌법이 어디까지 허용하고 어디서부터 멈춰 세우는지를 다시 확인한 기록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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