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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헌 시대적 과제라면 더 늦기 전에 국민부터 물어야 한다
[경제일보] 개헌론이 다시 정치권의 전면에 섰다. 1987년 헌법 체제가 40년에 가까운 세월을 버티는 동안 대통령 권한 집중과 극한 대립 정치, 승자독식 선거 제도, 중앙 권한 편중 같은 한계가 누적됐다는 지적은 꾸준히 이어져 왔다. 시대 변화에 맞게 국가 운영의 틀을 손봐야 한다는 주장에도 일리가 있다. 개헌 필요성 자체를 외면하기는 어렵다. 문제는 방향보다 순서다. 헌법은 다수 의석으로 밀어붙이는 법안이 아니다. 선거를 앞두고 유불리를 따져 꺼내 들 카드도 아니다. 한 사회가 어떤 가치 위에 서고 어떤 방식으로 권력을 나누며 국민의 권리를 어디까지 보장할지를 정하는 최상위 규범이다. 내용만큼 절차가 무거워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최근 정치권에서는 대통령 4년 중임제, 권력 분산, 계엄 통제 장치 강화, 지방분권 확대 등 여러 구상이 한꺼번에 쏟아지고 있다. 겉으로 보면 활발한 논의처럼 보인다. 그러나 정작 국민 다수는 각 안의 차이와 파급 효과를 충분히 설명받지 못했다. 대통령 권한을 어떻게 나눌 것인지, 국회의 권한은 어디까지 넓힐 것인지, 지방정부에 재정 권한까지 넘길 것인지, 기본권 확대에 따른 국가 책임은 어떻게 감당할 것인지 핵심 쟁점마다 답이 선명하지 않다. 여론조사에서 개헌 찬성이 높게 나왔다고 해서 곧바로 사회적 합의가 이뤄졌다고 보기도 어렵다. “개헌이 필요하다”는 응답과 “어떤 헌법을 원하는가”라는 질문은 전혀 다르다. 전자는 문제의식이고 후자는 선택이다. 설계도를 보여주지 않은 채 동의부터 구하는 방식으로는 국민적 신뢰를 얻기 어렵다. 더구나 국민 삶의 현장에는 더 시급한 과제가 쌓여 있다. 주거비 부담은 여전하고 저출생은 국가의 지속 가능성을 흔든다. 청년 일자리와 지역 소멸, 연금 재정, 산업 경쟁력, 재난과 안전 문제도 하나같이 무겁다. 개헌 논의가 이런 현실을 풀어낼 국가 운영 개편과 맞닿아 있지 않다면 정치권만 뜨거운 의제로 남을 가능성이 크다. 국민은 삶이 달라질 때 제도의 의미를 체감한다. 그래서 지금 필요한 것은 속도가 아니라 공론의 토대다. 국회 안의 협상만으로는 부족하다. 지역별 순회 토론회와 시민참여형 숙의 절차, 쟁점별 비교 자료 공개, 학계와 법조계, 시민사회의 공개 검증이 함께 가야 한다. 찬반을 나누기 전에 국민이 이해할 기회를 먼저 가져야 한다는 뜻이다. 역사를 돌아보면 오래가는 제도는 충분히 듣고 넓게 묻는 과정에서 만들어졌다. 반대로 서둘러 손본 제도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다시 흔들렸다. 헌법은 정권의 작품이 아니라 국민의 약속이어야 한다. 개헌이 시대적 과제라면 더욱 서둘러야 할 일은 따로 있다. 조문을 먼저 쓰는 일이 아니다. 국민에게 먼저 묻는 일이다. 그 순서를 놓치면 개헌은 출발부터 힘을 잃는다.
2026-04-16 08:0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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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죄 없는 무기수, 윤석열의 오만이 남긴 헌정의 깊은 상처
[이코노믹데일리] 서울 한복판 법정에서 울려 퍼진 “피고인 윤석열을 무기징역에 처한다”는 선고는 단순한 형사 판결이 아니었다. 그것은 권력을 사유화하려 한 한 전직 대통령에 대한 단죄이자, 주권은 국민에게 있다는 헌법의 대원칙을 다시금 못 박은 역사적 선언이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부, 재판장 지귀연 부장판사가 이끄는 재판부는 계엄 선포와 군 병력의 국회 투입을 ‘내란’으로 명확히 규정했다. 법정은 1649년 영국 국왕 찰스 1세가 의회를 공격한 끝에 반역죄로 처형된 사례까지 언급하며, 국민 위에 군림하려 한 권력은 결국 법 앞에 무릎 꿇는다는 민주주의의 뿌리를 상기시켰다. 그 장면은 한 인간의 몰락을 넘어, 대한민국 헌정 질서의 자존심을 되찾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판결문이 낭독되는 동안 피고인 윤석열은 끝내 사죄하지 않았다. 고개를 떨군 채 침묵으로 일관했을 뿐이다. 12·3 비상계엄이라는 무모하고 위험한 결단으로 국회를 압박하고 군을 동원한 행위가 국가를 어디까지 벼랑으로 몰았는지, 그는 단 한 번도 진심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그 침묵은 반성이 아니라 오만이었다. 재판부가 지적했듯, 국가비상사태는 존재하지 않았다. 예산 갈등과 정치적 대립은 민주주의 사회에서 일상적인 긴장이다. 그것을 이유로 군 병력을 동원해 헌법기관을 제압하려 했다면, 이는 명백한 국헌문란이다. 권력의 불편함을 제거하기 위해 총칼의 그림자를 불러들인 행위는 통치가 아니라 위협이었다. “성경을 읽기 위해 촛불을 훔칠 수 없다”는 비유는 통치 명분이 아무리 화려해도 수단이 불법이면 범죄일 뿐이라는 법치의 상식을 일깨운다. 그럼에도 그는 끝까지 “통치권의 행사”라는 허울을 내세웠다. 이는 칠레의 독재자 아우구스토 피노체트가 학살을 “국가 구호”라고 강변하던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권력이 자신을 국가와 동일시하는 순간, 민주주의는 붕괴한다. 이번 사태가 남긴 가장 큰 상처는 물리적 충돌이 아니라, 최고 통치자가 헌법의 경계를 넘을 수 있다고 믿었다는 사실 그 자체다. 지도자의 사과는 패배 선언이 아니다. 그것은 공동체를 향한 최소한의 책임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의 총리 빌리 브란트가 무릎을 꿇었던 장면은, 사죄가 어떻게 국가를 도덕적으로 재건하는지 보여준다. 반면, 자신의 오판을 인정하지 않는 리더는 공동체를 분열 속에 남겨둔다. 윤 전 대통령의 태도는 후자에 가깝다. 그는 법정에서조차 국민에게 고개 숙이지 않았다. 이번 판결은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복원력을 증명했다. 어떤 권력도 헌법 위에 설 수 없으며, 군사력을 동원해 민의의 전당을 압박하는 행위는 반드시 처벌된다는 선례가 세워졌다. 그러나 그 대가 또한 결코 가볍지 않다. 국제사회에서 한국은 한순간 정치적 불안의 상징으로 비쳤고, 시장은 흔들렸으며, 시민들은 두려움 속에서 밤을 지새웠다. 그 불안과 손실은 통계로 다 환산할 수 없다. 무기징역은 형벌이다. 그러나 더 무거운 형벌은 역사적 기록이다. 후대의 교과서에 그는 ‘국민의 신임을 받았으나 헌법의 한계를 넘은 지도자’로 남을 것이다. 사죄 없는 권력은 연민의 대상이 되지 못한다. 남는 것은 냉혹한 평가와 교훈 뿐이다. 35년 전 민주화의 함성을 기록했던 세대는 다시는 이 땅에 군의 그림자가 정치의 도구로 쓰이지 않을 것이라 믿었다. 그 믿음이 흔들린 날, 우리는 다시 한 번 배웠다. 민주주의는 저절로 유지되지 않는다. 법은 종이 위의 문장이 아니라, 실제로 집행될 때 비로소 힘을 가진다. 사죄하지 않는 지도자가 남긴 상처는 깊다. 그러나 법의 심판은 그 상처를 봉합하는 첫걸음이다. 이번 판결은 복수가 아니라 원칙의 회복이다. 헌법은 다시 확인되었고, 국민의 주권은 침묵하지 않았다. 이제 남은 것은 기억이다. 권력이 오만해질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그리고 그 끝이 어디인지 우리는 똑똑히 보았다. 민주주의는 한 번의 판결로 완성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 판결이 역사의 분기점이 될 수는 있다. 이번 선고가 바로 그러한 순간이 되기를, 그리고 다시는 권력이 총칼의 유혹에 흔들리지 않기를 바란다.
2026-02-20 09:5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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