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일보] 잇따른 가정폭력 살인 사건을 계기로 경찰이 가해자 격리와 감시를 강화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지만, 관련 법률 개정안은 국회에서 좀처럼 처리되지 않고 있다. 기존 접근금지 조치 위반 여부와 관계없이 재범 위험성이 높은 가해자를 격리하거나 전자장치를 부착하는 방안 등이 이미 법안으로 발의됐지만, 상당수가 소관 상임위원회에 묶여 있는 상황으로 알려졌다.
18일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22대 국회에서 발의된 가정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개정안은 총 32건으로, 모두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이 가운데 16건은 법사위 심사 단계에 있으며, 나머지 16건은 접수 단계에 머물러 있다.
계류 법안에는 최근 잇따른 가정폭력 사건을 계기로 경찰이 검토하는 가해자 격리·감시 강화 방안과 맞닿은 내용이 포함돼 있다. 기존 퇴거·접근금지 조치를 위반하지 않았더라도 재범 위험성을 고려해 가해자의 유치장 유치를 신청하거나, 긴급임시조치 위반에 대한 제재를 과태료에서 형사처벌로 강화하는 방안 등이다. 가정폭력 가해자에게 위치추적 전자장치, 이른바 전자발찌를 부착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도 검토 대상이다.
◆ 접근금지 위반해야 격리 가능…현행 제도의 한계
현행 가정폭력처벌법은 가정폭력 재발 우려가 있는 경우 가해자에게 퇴거·격리와 접근금지 등의 임시조치를 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다만 수사 단계에서 가해자를 유치장 등에 유치하도록 신청하려면 기존 임시조치를 위반하고 가정폭력이 재발할 우려가 있다는 요건을 충족해야 한다.
이에 경찰은 해당 요건의 한계에 주목하고 있다. 가해자가 접근금지 명령을 위반하지 않았더라도 반복적인 폭력이나 협박 정황 등으로 피해자의 안전이 위협받을 수 있지만, 현행 제도에서는 가해자를 신속하게 격리하는 데 제약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경찰은 스토킹 범죄와 유사하게 기존 조치 위반 여부만이 아니라 재범 위험성도 고려해 유치 신청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확인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긴급임시조치 위반에 대한 처벌 수준도 개선 과제로 꼽힌다. 긴급임시조치는 가정폭력이 다시 발생할 우려가 있고 법원의 결정을 기다리기 어려운 긴급한 상황에서 경찰이 가해자에게 퇴거나 접근금지 등을 명령하는 제도다. 현행법상 이를 위반하면 300만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될 수 있다.
반면 스토킹 범죄의 긴급응급조치를 위반하면 1년 이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할 수 있다. 비슷하게 피해자 접근을 제한하는 조치라도 범죄 유형에 따라 위반에 따른 제재 수준에 차이가 있는 것이다. 경찰이 가정폭력 긴급임시조치 위반도 형사처벌 대상으로 강화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배경이다.
가해자에게 전자발찌를 부착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 역시 피해자와 가해자의 접촉을 제한하고 재범 위험에 대응하기 위한 대책으로 거론된다. 스토킹 범죄에는 법원 결정에 따라 위치추적 전자장치를 부착할 수 있는 제도가 마련돼 있지만, 가정폭력 사건에 이를 적용하려면 관련 법률의 정비가 필요하다.
해당 개선안은 이번 국회에서 처음 제기된 것이 아니다. 20대와 21대 국회에서도 가해자 격리와 긴급임시조치 위반 처벌 강화를 위한 법 개정이 추진됐지만, 본회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가정폭력방지법상 경찰의 현장조사를 거부하거나 기피하는 행위에 대한 제재를 과태료에서 형사처벌로 강화하는 개정안이 지난 3월 본회의를 통과한 것이 올해 들어 관련 분야의 주요 입법 성과로 꼽힌다.
◆ 국감에선 보호 공백 질타…입법 논의는 제자리
가정폭력 사건이 반복될 때마다 경찰의 초기 대응과 피해자 보호 체계에 대한 비판은 이어져 왔다. 최근 국정감사에서도 접근금지 등 보호조치가 만료되기 전에 피해자의 위험성을 다시 평가하고, 반복 신고와 접근금지 위반 이력 등을 구속영장 신청 과정에서 충분히 반영해야 한다는 제언이 나왔다.
이는 개별 신고에 대한 대응을 넘어 과거 폭력과 위협이 반복된 맥락을 함께 살펴야 한다는 취지로 풀이된다. 신고 당시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거나 가해자가 접근금지 조치를 위반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위험성을 낮게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지적과도 이어진다.
입법 논의의 필요성이 커지자 관련 법안을 종합적으로 다루기 위한 움직임도 나오고 있다. 남인순 국회부의장은 지난 15일 친밀관계폭력 관련 법안을 종합적으로 논의하기 위한 특별위원회 구성결의안을 발의했다.
◆ '가정 회복'보다 피해자 안전…법 목적도 손질해야
전문가들은 가해자 격리 수단을 늘리는 것뿐 아니라 가정폭력처벌법의 목적과 사건 처리 원칙도 재검토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현행 가정폭력처벌법 제1조는 법의 목적을 '가정폭력범죄로 파괴된 가정의 평화와 안정을 회복하고 건강한 가정을 가꾸며 피해자와 가족 구성원의 인권을 보호함'으로 규정하고 있다. 가정의 회복과 피해자 보호를 함께 내세우고 있지만, 실제 사건 처리 과정에서 가정 유지가 강조될 경우 피해자의 안전과 가해자에 대한 책임 추궁이 뒤로 밀릴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지난 3월 발간한 '친밀한 관계 기반 폭력 대응 및 피해자 보호 강화를 위한 법제화 연구' 보고서도 사건 처리 과정에서 피해자의 위험 상태나 보호 필요성보다 관계 유지 여부가 중요한 판단 기준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피해자의 처벌 의사에 따라 형사처벌 대신 보호관찰이나 상담위탁 등 보호처분을 하는 가정보호사건 절차로 전환되는 경우가 많다는 점도 짚었다.
해당 보고서는 중대하거나 상습적인 가해자에게 실효성 있는 형사책임을 묻고, 피해자에게는 주거·생계·치료·자립 등을 지원하는 원칙을 법령에 명시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가정폭력은 한 차례 신고만으로 위험성을 판단하기 어렵고, 피해자가 가해자와 생활공간이나 경제적 기반을 공유하는 경우도 있어 피해자 보호에 복합적인 접근이 필요한 것으로 평가된다. 이에 가해자 격리와 처벌을 강화하는 동시에 피해자가 안전하게 거처를 옮기고 생활을 이어갈 수 있도록 지원 체계도 함께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으로 풀이된다.
가정폭력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사후 대응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데 그쳐서는 실질적인 변화로 이어지기 어렵다. 국회가 계류 법안의 내용을 면밀히 검토해 신속히 처리하는 한편, 피해자의 안전을 우선하는 법적 원칙과 현장 대응 기준을 정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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