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기사
-
-
-
-
-
-
-
[사설] 양국 기업이 규제 없이 펄펄 날 수 있도록 상생의 새 틀 만들어야
이재명 대통령의 베트남 국빈 방문은 의전의 방문이 아니라 산업의 방문이어야 한다. 대통령은 4월 22일 하노이 동포 간담회에서 한국과 베트남의 관계를 “참으로 특별하다”고 규정하며 양국이 서로의 3대 교역국이고 한국은 베트남의 최대 투자국이라고 밝혔다. 또 2022년 수교 30주년을 계기로 양국 관계가 포괄적 전략 동반자 관계로 격상됐고 이번 방문을 통해 이를 더 미래지향적이고 전략적인 수준으로 발전시키겠다고 말했다. 특히 원전, 인프라, 과학기술 등 전략 분야의 협력 확대와 공급망 안정, 지속가능한 성장, 기후변화 대응을 핵심 의제로 제시했다. 이는 이번 한·베트남 정상외교의 무게중심이 단순한 친선이 아니라 산업·에너지·경제안보의 입체 협력에 놓여 있음을 분명히 보여준다. 베트남은 이제 한국 기업에 있어 선택 가능한 시장이 아니라 반드시 붙들어야 할 전략 공간이다. 이번 순방에서 한국 정부가 원전과 인프라 등 대형 국책사업에 우리 기업 참여를 논의하고, 베트남 국가 서열 1, 2, 3위 지도자와 연쇄 접촉에 나선 것도 그 때문이다. 베트남은 에너지·전력·철도·도시 인프라 수요가 큰 데다, 미·중 갈등과 글로벌 공급망 재편 속에서 생산기지이자 소비시장 동시에 외교·안보적 완충지대의 의미까지 함께 커지고 있다. 한국으로서는 중국과 미국에 대한 경제 의존을 완화하면서도 아세안 중심축을 단단히 세울 수 있는 드문 파트너가 바로 베트남이다. 그러나 외교의 말이 아무리 좋아도 제도와 규제가 뒤따르지 않으면 기업은 날지 못한다. 이제 필요한 것은 ‘협력 확대’라는 외교적 수사보다 더 구체적인 제도 혁신이다. 양국 기업이 현지 인허가, 통관, 인증, 투자 승인, 인력 이동, 데이터 이전, 전력·용수 접속, 조세 해석 같은 실무 장벽에 걸려 허우적거린다면 정상회담의 성과는 사진 몇 장으로 끝날 수밖에 없다. 원전 협력도 마찬가지다. 원전은 단순 수출 품목이 아니라 금융, 기술표준, 안전규제, 인력양성, 부품 공급, 장기 운영체계가 한 몸처럼 움직여야 하는 종합산업이다. 공급망 협력 역시 말만으로는 되지 않는다. 핵심 광물과 중간재, 부품과 장비, 항만과 물류, 통관과 결제의 흐름이 실제로 빨라져야 한다. 결국 양국이 진정한 전략 동반자가 되려면 정부가 기업의 발목을 잡는 낡은 규제를 먼저 걷어내야 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상생의 새 틀’이다. 첫째, 양국 정부는 원전·에너지·인프라·첨단제조를 포괄하는 한·베트남 경제안보 협의체를 상설화해야 한다. 정상회담이 끝나도 실무가 이어지고, 실무가 쌓여 제도가 되고 제도가 쌓여 투자 확대로 이어지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둘째, 규제 정합성을 높여야 한다. 한국 기업이 베트남에 투자할 때 겪는 행정 불확실성을 줄이고 베트남 기업이 한국과 기술·자본 협력을 할 때도 예측 가능한 기준을 갖도록 해야 한다. 셋째, 공급망 협력은 단순 이전이 아니라 공동 설계 방식으로 진화해야 한다. 생산은 베트남, 기술은 한국이라는 낡은 분업 구도를 넘어 연구개발·부품조달·후공정·물류·판매를 함께 설계하는 공동 생태계로 가야 한다. 넷째, 사람의 길을 넓혀야 한다. 대통령이 언급했듯 약 20만명 규모의 베트남 동포사회와 10만 세대에 이르는 한·베트남 다문화가정은 양국 관계를 잇는 살아 있는 기반이다. 기업 협력의 뿌리도 결국 사람이다. 기술자, 연구자, 관리자, 유학생, 다문화 가정 자녀가 자유롭게 오가며 역량을 키울 수 있어야 경제도 길게 간다. 한·베트남 협력은 단순히 “우리 기업이 많이 진출하자”는 수준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이제는 양국 기업이 함께 크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베트남은 값싼 생산기지가 아니라 함께 산업을 고도화할 파트너이고 한국은 단순 투자자가 아니라 기술·품질·운영 역량을 공유할 동반자여야 한다. 그래야 반도체와 전자, 배터리와 자동차, 전력과 철도, 원전과 디지털 인프라까지 협력의 스펙트럼이 넓어질 수 있다. 공급망 안정도 마찬가지다. 중동 리스크, 미·중 갈등, 보호무역 강화가 겹친 지금 특정 국가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구조는 더 이상 안전하지 않다. 한·베트남 협력은 단순한 교역 확대가 아니라 불확실성의 시대를 버티는 공동 생존 전략이 되어야 한다. 베트남은 빠르게 성장하고 있고 한국은 깊은 산업 경험을 갖고 있다. 한쪽은 역동성을, 다른 한쪽은 축적된 기술과 제도 경험을 가졌다. 이 두 힘이 맞물리면 시너지는 크다. 그러나 그 가능성은 저절로 현실이 되지 않는다. 정부가 앞에서 길을 터주고 제도를 정비하고 기업이 현장에서 과감히 뛰도록 만들어야 한다. 정상회담의 진짜 성패는 공동성명 문구의 화려함이 아니라 1년 뒤 3년 뒤 양국 기업이 얼마나 더 빠르고 자유롭게 일할 수 있게 되었느냐로 판가름 날 것이다. 외교는 결국 경제를 살리는 쪽으로 귀결되어야 한다. 한·베트남 관계가 참으로 특별하다면 그 특별함은 말이 아니라 제도로 증명되어야 한다. 이제 양국 정부는 기업이 규제에 묶여 뛰지 못하는 낡은 질서를 넘어 서로의 산업과 기술과 사람이 자유롭게 오가는 상생의 새 틀을 짜야 한다. 원전도, 공급망도, 인프라도, 미래산업도 그 틀 위에서만 제대로 자란다. 양국 기업이 규제 없이 펄펄 날 수 있도록 길을 터주는 것, 그것이 이번 정상회담이 남겨야 할 가장 현실적이고도 가장 큰 성과다.
2026-04-22 16:55:59
-
-
[제약 명가 DNA 분석② 유한양행] 민족기업의 꿈에서 글로벌 신약 무대로…유한양행 성장과 도전의 역사
대한민국 제약 산업을 말할 때 유한양행은 늘 첫머리에 놓인다. 단순히 오래된 회사여서가 아니다. 기업이 무엇을 위해 존재해야 하는지, 제약사가 어떻게 성장해야 하는지, 이익과 사회적 책임을 어떻게 함께 추구할 수 있는지를 오랜 시간 보여준 기업이기 때문이다. 유한양행의 역사는 한국 제약 산업의 성장사이자 기업 윤리의 한 장면으로 읽힌다. 출발점에는 창업주 유일한 박사가 있다. 그는 일제강점기와 격변의 시대를 거치며 기업의 역할을 남다르게 바라봤다. 산업을 일으켜 나라를 키우고, 번 이익은 사회와 다시 나눠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유한양행은 이런 철학 위에서 세워졌다. 단순히 약을 파는 회사가 아니라 국민 건강과 국가 발전에 기여하는 기업을 지향했다는 점에서 출발부터 결이 달랐다. 초기의 유한양행은 국내 의약품 생산 기반이 취약하던 시절 국민에게 필요한 약을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데 힘을 쏟았다. 수입 의존도가 높고 생산 기술이 부족하던 환경에서 품질 기준을 세우고 제조 역량을 키우는 일은 산업적 의미가 컸다. 생활 수준이 높아지고 의료 체계가 확대되면서 제약 산업이 본격 성장하자 유한양행도 생산 기업을 넘어 연구개발 기업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유한양행을 상징하는 가장 큰 자산은 창업주의 철학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유일한 박사는 보유 지분 상당 부분을 사회에 환원했고 전문경영인 체제를 뿌리내렸다. 국내 대기업 다수가 오너 중심 경영 체제를 유지하는 것과 다른 길이었다. 기업은 개인의 것이 아니라 사회의 공기라는 인식은 유한양행의 정체성을 설명하는 핵심 요소로 꼽힌다. 국내 시장에서 유한양행은 오랜 기간 안정적인 사업 기반을 다져 왔다. 전문의약품과 일반의약품, 생활건강 제품까지 고른 포트폴리오를 갖췄고 전국 단위 영업망과 브랜드 신뢰도도 확보했다. 특정 품목 하나에 기대기보다 여러 사업 축을 통해 안정성을 높여 온 전략이 돋보인다. 대중에게 친숙한 브랜드도 적지 않다. 가정상비약과 건강 관련 제품, 생활밀착형 브랜드를 통해 유한양행은 병원 밖 소비자와도 꾸준히 접점을 넓혀 왔다. 제약사가 처방 시장 안에만 머무르지 않고 국민 생활 가까이에서 신뢰를 쌓아 온 사례다. 최근 유한양행의 변화를 이끄는 중심축은 연구개발이다. 과거 국내 제약사의 경쟁력이 생산 능력과 영업력에 있었다면 이제 기업 가치를 좌우하는 기준은 신약 파이프라인과 기술력으로 옮겨갔다. 유한양행도 이 흐름에 맞춰 연구개발 투자를 늘리고 글로벌 시장을 겨냥한 혁신 신약 확보에 힘을 쏟고 있다. 대표 사례가 비소세포폐암 치료제 렉라자다. 국산 항암 신약 가운데 상징성이 큰 성과로 평가받는다. 렉라자는 기술수출과 글로벌 임상, 해외 시장 진출 가능성을 통해 국내 제약 산업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린 사례로 꼽힌다. 국내에서 개발한 신약이 세계 시장에서 경쟁할 수 있다는 기대를 키웠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크다. 유한양행은 자체 연구만으로 승부하지 않는다. 외부 바이오벤처와 대학, 연구기관과 협력하는 오픈이노베이션 전략도 적극 활용하고 있다. 기술 변화 속도가 빨라지고 연구 분야가 세분화될수록 모든 역량을 내부에서 해결하기는 어렵다. 필요한 기술은 함께 개발하고 유망 후보물질은 과감히 도입하는 방식이 글로벌 제약업계의 흐름이기도 하다. 해외 시장 확대 역시 중요한 과제다. 국내 제약 시장은 인구 구조 변화와 건강보험 재정 통제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 반면 글로벌 시장은 규모가 크고 성공 신약의 파급력도 훨씬 크다. 유한양행이 기술수출과 해외 파트너십 확대에 공을 들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유한양행의 경쟁력은 여러 층위에서 나온다. 오랜 업력에서 비롯된 신뢰도, 전문경영인 체제의 안정성, 탄탄한 기존 사업 기반, 연구개발 투자 여력, 사회적 책임을 중시하는 기업 문화는 쉽게 따라 만들기 어렵다. 창업주의 정신이 기업 이미지에 머무르지 않고 실제 경영 체계에 녹아 있다는 점도 강점으로 평가된다. 과제도 있다. 신약 개발은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들고 성공 확률은 높지 않다. 글로벌 빅파마와 경쟁해야 하는 시장에서는 자본력과 임상 경험의 격차도 존재한다. 국내 시장 성장세 둔화, 우수 연구 인력 확보 경쟁, 규제 환경 변화 역시 꾸준히 관리해야 할 변수다. 유한양행은 전통 제약사의 안정성과 연구개발 기업의 성장성을 함께 갖추려는 길을 걷고 있다. 기존 사업에서 안정적인 수익을 확보하고 이를 혁신 신약과 미래 파이프라인에 재투자하는 방식이다. 국내 시장 중심 회사에서 글로벌 기술 기업으로 체질을 바꾸는 과정이라고도 볼 수 있다. 유일한 박사의 시대가 의약품 보급과 기업 윤리의 기초를 세운 시기였다면 지금 유한양행의 과제는 한국 제약 기술의 경쟁력을 세계 시장에서 증명하는 일이다. 민족기업의 꿈에서 출발한 이 회사가 글로벌 신약 무대에서 어떤 다음 장면을 만들어낼지 업계의 시선이 모이고 있다.
2026-04-22 16:43:52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