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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에 20조 선납 제안…전력망 책임은 누구 몫인가
[경제일보] 수백조원을 들여 반도체 공장을 지어도 전기가 들어오지 않으면 첨단 팹은 거대한 빈 껍데기에 불과하다. 반도체 경쟁이 기술과 자본의 싸움인 동시에 전력망 경쟁인 이유다. 하지만 그 전력망을 깔 돈이 부족해지자 한국전력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5년치 전기요금을 먼저 내달라는 카드를 꺼냈다. 한전이 제안한 규모는 삼성전자 20조원, SK하이닉스 5조원이다. 지난해 두 회사가 낸 전기요금 약 4조1000억원과 9000억원을 기준으로 2027년부터 2031년까지 5년치를 계산했다. 선납금은 용인·호남 반도체 클러스터의 송전선로와 변전소 건설 등에 투입하고, 기업에는 국고채 금리보다 높은 수준의 이자를 제공하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 다만 참여 여부와 금리, 금액과 기간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한전도 ‘제안’ 단계임을 분명히 했다. 전기요금 선납제 자체도 새로운 제도는 아니다. 지난해 선납액은 약 3900억원이었고, 대부분 공공기관이 이용했다. 기업이 미래에 낼 전기료를 먼저 내고 한전은 그 돈을 필요한 설비에 투자하며 기업은 이자를 받는 구조라면 금융거래로서 성립할 여지는 있다. 적기에 전력망이 완공되지 못해 수십조원짜리 공장이 서는 위험을 줄일 수 있다는 점에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도 이해관계가 있다. 문제는 규모와 목적이다. 3900억원 수준이던 선납제도를 단숨에 25조원짜리 전력망 조달수단으로 바꾸면 제도의 성격 자체가 달라진다. 25조원은 한전 연간 매출의 4분의 1에 가까운 돈이다. 전기요금 납부 편의를 위한 제도가 사실상 국가 핵심 인프라를 조달하는 금융수단으로 변하는 셈이다. 한전이 이 방안을 고민하는 사정은 이해할 만하다. 반도체 클러스터 조기 가동과 호남 클러스터 건설 등에 따른 추가 전력수요는 20.6GW로 추산되고, AI 데이터센터까지 더하면 필요한 전력이 더 늘어난다. 한전은 당초 2038년까지 전력망에 72조8000억원을 투자할 계획이었지만 투자 수요는 더 커졌다. 반면 한전의 연결 기준 부채는 지난 6월 말 210조7000억원에 달한다. 올해 상반기에만 이자비용으로 2조1000억원을 썼다. 공기업의 재무제표와 국가 산업정책의 시간표가 정면으로 충돌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여기서 곧바로 “삼성과 하이닉스가 쓰는 전기니 두 회사가 망을 깔면 된다”는 결론으로 가서는 안 된다. 전력망은 공장 안의 생산설비가 아니다. 발전소에서 만든 전기를 산업단지와 도시로 실어 나르는 국가 기간시설이다. 지난 7월 시행된 ‘국가기간 전력망 확충 특별법’도 국가첨단전략산업 특화단지에 전기를 공급하는 주요 송·변전설비를 ‘국가기간 전력망 설비’로 규정하고 있다. 법의 목적부터 전기에너지의 안정적 공급과 국가 주요 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전력망을 조기에 확충하는 데 있다. 국가가 스스로 ‘기간망’이라고 이름 붙인 인프라의 책임을 특정 기업의 현금 여력에 의존해 해결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물론 반대편 원칙도 분명하다. 막대한 전기를 사용하는 대기업이 자신 때문에 추가로 발생하는 인프라 비용을 한 푼도 부담하지 않겠다는 논리 역시 설득력이 없다. 10GW, 20GW의 새로운 수요가 생기면 발전설비뿐 아니라 송전선과 변전소, 계통보강 비용이 따라온다. 그 비용을 일반 가정과 중소기업을 포함한 모든 전기 소비자에게 똑같이 떠넘기는 것도 공정하지 않다. 애덤 스미스는 ‘국부론’ 제5편에서 개인이나 소수에게 맡길 수 없는 공공사업을 세우고 유지하는 일을 국가의 책무로 봤다. 동시에 도로와 교량 같은 시설의 비용은 이용자에게 받는 통행료로 충당할 수 있다고 했다. 250년 전에도 공공 인프라의 책임과 이용자의 비용부담은 서로 모순되는 개념이 아니었던 셈이다. 지금 필요한 것도 ‘국가가 전부 낼 것이냐, 기업이 전부 낼 것이냐’는 양자택일이 아니다. 누가 어느 비용을 왜 부담하는지에 대한 원칙이다. 국가 전체가 이용하는 기간 송전망과 장거리 간선망은 국가와 한전이 책임지는 것이 맞다. 반면 특정 산업단지나 초대형 수요처 때문에 추가로 필요한 전용선로와 변전소, 접속설비에는 원인자·수익자 부담 원칙을 적용할 수 있다. 여러 기업과 지역이 함께 혜택을 보는 계통보강 비용이라면 수익 범위에 따라 분담하는 방식도 가능하다. 이 선이 먼저 그어져야 한다. 지금처럼 한전이 재무적으로 어려워졌을 때 현금이 많은 기업을 찾아가 몇 년 뒤 받을 전기료를 미리 달라고 하는 방식이 관행이 되면 문제가 생긴다. 오늘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지만 내일은 데이터센터, 배터리, 철강·석유화학 기업이 대상이 될 수 있다. 국가 인프라 투자비가 전력 수요자의 현금 보유액이나 협상력에 따라 결정되는 구조는 산업정책도, 요금정책도 아니다. 더구나 한전은 독점적인 송·배전망 사업자다. 기업 입장에서는 “싫으면 참여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만으로 거래의 자발성이 완전히 확보됐다고 보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새 공장에 제때 전기를 공급받아야 하는 기업과 그 전력을 공급할 사실상의 유일한 사업자가 20조원 규모의 선납을 협상한다면 일반적인 금융거래보다 훨씬 엄격한 절차와 기준이 필요하다. 따라서 선납제를 확대하려면 세 가지 안전장치가 먼저다. 선납금은 해당 전력망 건설에만 쓰도록 별도 관리해야 한다. 기업별 부담액은 전력 사용량과 추가 계통투자 비용 등에 따른 객관적 산식으로 정하고 동일한 조건의 대규모 수요자에게 같은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 공사가 늦어지거나 전력 공급 일정이 어긋났을 때 선납기업이 부담할 위험과 보상 원칙도 계약 단계에서 명확히 해야 한다. 한전의 재무문제와 전력망 투자 문제도 구분할 필요가 있다. 선납금으로 한전채 발행을 줄이는 효과가 생길 수는 있다. 하지만 과거 전기요금 정책과 연료비 급등으로 쌓인 210조원대 부채를 반도체 기업의 미래 전기료로 메우는 것이 목적이 돼서는 곤란하다. 반도체 전력망에 들어갈 돈과 한전의 누적 재무부담을 한 통장에 넣는 순간 비용 부담의 원칙은 흐려진다. 정부의 책임도 가볍지 않다. 정부는 반도체를 국가전략산업으로 지정하고 용인과 호남에 대규모 클러스터를 추진하고 있다. 기업에는 수십조원, 수백조원 규모의 투자를 주문하면서 정작 공장을 돌릴 전력망은 한전과 기업이 돈을 마련해 알아서 깔라는 식이어서는 산업정책이라 하기 어렵다. 공장 유치는 국가전략이고 송전망은 기업 사정이라는 식의 역할 분담은 성립하지 않는다. 반도체 산업의 속도는 전력망의 속도를 넘어설 수 없다. 주민 수용성 문제와 송전선로 인허가를 풀고 장기 전력수요를 예측해 기간망을 미리 확보하는 일은 개별 기업이 대신할 수 없는 국가의 몫이다. 올해 시행된 국가기간전력망법이 5년마다 30년 단위의 장기 전망을 담은 전력망 기본계획을 만들도록 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수혜자가 되는 전력설비 비용을 일정 부분 부담하는 방안은 검토할 수 있다. 조건이 합리적이고 기업이 자발적으로 참여한다면 전기료 선납도 하나의 재원조달 방식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순서는 분명해야 한다. 먼저 국가가 어떤 전력망을 언제까지 책임질 것인지 정하고, 그 다음 특정 수요자가 추가로 발생시킨 비용의 몫을 투명하게 계산해야 한다. 한전의 재무사정이 어렵다는 이유로 그 순서를 거꾸로 세워서는 안 된다. 전기는 기업이 돈을 내고 사는 상품이지만, 그 전기가 흐르는 국가기간망은 대한민국 산업의 기반이다. 상품의 값을 기업에 받을 수는 있다. 더 많이 쓰는 기업에 더 많은 인프라 비용을 부담시킬 수도 있다. 하지만 국가가 제때 준비하지 못한 기간망의 책임까지 ‘5년치 전기료 선납’이라는 이름으로 기업에 청구해서는 안 된다. 25조원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보다 먼저 답해야 할 질문은 그것이다. “한국의 전력망은 누구의 책임인가.”
2026-09-04 13: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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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격전'도 좋다, 대통령이 모든 길을 뚫을 순 없다
[경제일보] 대통령이 다시 기업들의 투자 일정표를 펼쳐 들었다. 이재명 대통령은 10일 청와대에서 ‘메가프로젝트’ 제2차 민관합동 점검회의를 주재하고 반도체 클러스터를 비롯한 대형 투자사업의 진행 상황을 직접 챙겼다. 지난달 첫 회의를 연 지 한 달여 만이다. 광주 군공항 이전에서 반도체 산업단지 조성, 전력과 용수 공급, 각종 인허가와 규제 개선까지 대통령 앞에 올라왔다. 이 대통령은 “속도전을 넘어서 전격전을 치러야 하는 상황”이라고 했다. 세계 산업전쟁의 시계에 한국 행정의 느린 걸음을 맞출 수 없다는 주문일 것이다. 맞는 진단이다. 반도체와 인공지능, 피지컬AI에서 1~2년은 단순히 달력 몇 장이 넘어가는 시간이 아니다. 기술 세대가 바뀌고 고객사가 공급망을 다시 짜고, 경쟁국이 새로운 공장을 먼저 돌릴 수 있는 시간이다. 기업이 수십조원을 투자하겠다고 나섰는데 부지와 전력, 용수, 환경영향평가를 놓고 정부 부처를 몇 년씩 오가게 한다면 국가가 기업의 발목을 잡는 꼴이다. 정부가 추진하는 ‘메가특구특별법’도 이와 같은 문제의식에서 나왔다. 각종 인허가 기간을 줄이고 전력·용수·교통 등 기반시설을 함께 구축하며, 여러 부처에 흩어진 사안을 범정부 차원에서 신속하게 조정하겠다는 것이다. 광주 군공항의 기능을 조기에 분산 배치해 반도체 산업단지 조성을 앞당기고, 필요한 전력도 사업 일정에 맞춰 공급하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 충청권과 영남권에서도 수백조원 규모의 민간 투자가 예정돼 있다. 대통령이 나서자 오래 얽혀 있던 실타래가 풀리기 시작했다. 기업으로서는 반가운 일이다. 이런 일이라면 대통령이 몇 번이고 회의를 열어도 좋다는 목소리가 나올 만하다. 하지만 박수를 치고 끝내기에는 한 가지 질문이 남는다. ‘왜 대통령이 직접 챙겨야 일이 움직이는가.’ 군공항 이전 시점부터 산업단지 착공, 송전망과 용수 공급까지 대통령이 일일이 일정표를 확인해야 비로소 부처가 움직인다면 그것은 대통령의 추진력을 보여주는 장면인 동시에 우리 행정의 허약함을 드러내는 장면이기도 하다. 대통령이 처음 길을 뚫는 것은 필요하다. 군과 지방자치단체, 여러 정부 부처와 기업의 이해관계가 수십 년간 뒤엉킨 사업이라면 최고 책임자의 결단 없이는 첫 삽을 뜨기조차 어려울 수 있다. 누구도 책임지고 먼저 움직이지 못하는 사안에서 대통령이 “이 방향으로 가라”고 정리하는 것은 지도자의 역할이다. 대통령이 첫 문을 열었다면 두 번째 문부터는 장관들이 열어야 한다. 산업부 장관은 투자 일정을 책임지고, 국토·환경 행정은 부지와 교통망, 환경과 용수를 맡아야 한다. 전력 당국은 송전망의 완공 시점을 책임져야 하고, 지방자치단체장은 주민을 설득하고 정주 여건을 갖추는 일을 자신의 이름으로 해내야 한다. 약속한 날짜를 지키지 못했다면 왜 늦었는지 설명하고, 필요한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면 책임도 져야 한다. 그것이 정상적인 행정이다. 한국 행정의 고질적인 문제는 책임자가 없어서라기보다 책임이 너무 잘게 쪼개져 있다는 데 있다. 대형 공장 하나를 짓는 데 산업·국토·환경·전력·지방행정이 모두 관여한다. 하지만 각 기관은 자기 업무만 처리하면 책임을 다했다고 생각하기 쉽다. 산단 지정에는 문제가 없고, 환경 절차에도 문제가 없고, 전력 공급도 규정대로 검토했다고 한다. 모든 기관이 자기 몫을 했다는 데 정작 공장 착공은 늦어진다. 기업 눈에는 정부가 여러 개가 아니다. 하나다. 이 단순한 상식을 행정이 자주 잊는다. 기업인은 어느 부처의 어느 과가 무엇을 맡았는지 알고 싶어 하는 것이 아니다. “언제 공장을 지을 수 있는가”라는 한 가지 답을 원한다. 하지만 그 답을 누구도 책임지지 않으니 결국 대통령 앞까지 사안이 올라간다. 대통령 주재 회의가 열리면 분위기는 달라진다. 그동안 “어렵다”고 하던 사안에 대안이 붙고, “검토 중”이던 사업에 날짜가 생긴다. 법이 갑자기 바뀐 것이 아니다. 책임지고 결정할 사람이 나타난 것이다. 여기에 ‘대통령 직할 행정’의 효용과 위험이 함께 있다. 초기에는 빠르다. 강력한 정치적 권위가 부처의 칸막이와 오래된 이해관계를 단숨에 넘어설 수 있다. 이런 방식이 일상화되면 다른 문제가 생긴다. 대통령이 관심을 가진 사업은 빨리 가고, 대통령의 회의 안건에 올라가지 못한 사업은 다시 평소의 속도로 돌아간다. 기업 입장에서 법과 제도보다 대통령의 관심 여부가 더 중요한 변수가 된다면 그것은 좋은 투자 환경이라고 할 수 없다. 더구나 대통령에게도 시간은 하루 24시간뿐이다. 반도체 공장의 물길과 송전선까지 대통령이 끝까지 챙기는 동안 외교와 안보, 복지와 교육, 저출생과 재정도 대통령을 기다린다. 메가프로젝트가 늘어날수록 대통령실이 거대한 민원조정실이 되는 구조는 오래갈 수 없다. 이번 ‘전격전’의 진짜 성과는 특정 공장의 착공 시점을 몇 년 앞당기는 데서 끝나서는 안 된다. 대통령이 챙기지 않아도 같은 속도로 움직이는 정부를 만드는 데까지 가야 한다. 먼저 대형 전략투자에는 한 사람이 전체 일정을 책임지는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 ‘원스톱 창구’를 설치했다고 해놓고 접수만 한 곳에서 받은 뒤 서류가 다시 여러 기관을 순회한다면 간판만 바꾼 것이다. 일정 규모 이상의 국가전략 프로젝트에는 총괄 책임자를 두고 부지·전력·용수·환경·교통 문제를 한꺼번에 관리하도록 해야 한다. 행정 방식도 바꿔야 한다. 환경 검토가 끝난 뒤 전력을 논의하고, 전력 문제가 정리된 뒤 용수를 검토하는 식으로 순서대로 일을 처리해서는 세계 산업경쟁의 속도를 따라가기 어렵다. 사업 초기부터 환경·전력·용수·교통 문제를 동시에 들여다봐야 한다. 이것은 환경 기준을 낮추자는 얘기가 아니다. 절차를 없애는 것과 시간을 낭비하지 않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다. 주민의 권리와 노동 문제도 마찬가지다. 국가전략산업이라는 이유로 주민 의견을 건너뛰거나 노동·환경 기준을 일괄적으로 풀어서는 안 된다. 처음에는 빨라 보일지 몰라도 갈등이 쌓이면 소송과 반발로 더 많은 시간을 잃는다. 빠른 정부는 절차를 무시하는 정부가 아니라, 필요한 절차를 정해진 시간 안에 끝내는 정부다. 공무원이 결정을 피하지 않게 만드는 일도 중요하다. 새로운 사업에는 언제나 위험이 따른다. 성공하면 정치권의 성과가 되고 실패하면 실무자의 책임이 되는 구조에서는 누구라도 전례를 찾고 결재를 미룬다. 명백한 특혜나 위법이 아니라면 당시의 자료와 절차에 따라 내린 합리적인 정책 판단은 보호할 필요가 있다. 적극행정은 구호가 아니라 감사와 인사제도에서 시작해야 한다. ‘맹자’에는 “도선부족이위정 도법불능이자행(徒善不足以爲政 徒法不能以自行)”이라는 말이 있다. 좋은 뜻만으로 정치를 할 수 없고, 법도 스스로 실행되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결국 사람이 움직여야 제도가 움직인다. 지금 메가프로젝트에 대통령의 힘이 필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오래 굳어버린 행정을 처음 움직이려면 최고 책임자의 결단이 필요할 수 있다. 하지만 좋은 국가는 뛰어난 지도자 한 사람의 독촉에 오래 의존하지 않는다. 지도자의 의지를 제도로 바꾸고, 제도를 조직의 습관으로 만드는 나라가 강한 나라다. 대통령의 역할은 방향을 정하고 처음 막힌 길을 여는 데 있어야 한다. 그다음부터는 총리가 부처를 조정하고 장관이 일정에 책임을 지며, 지자체장이 현장의 결과를 만들어야 한다. 사업이 늦어질 때마다 대통령이 다시 등장하는 구조가 아니라, 대통령이 없어도 담당자가 움직이고 정해진 날짜에 답을 내놓는 구조가 필요하다. 메가프로젝트의 성적표도 그렇게 바꿔야 한다. 대통령이 몇 차례 회의를 열었는지가 아니라 그 뒤 대통령이 회의를 열지 않아도 사업이 일정대로 진행됐는지를 봐야 한다. 대통령에게 보고하기 전에 장관이 문제를 풀었는지, 지자체장이 기업과 주민을 설득했는지, 담당 기관이 약속한 날짜 안에 결정을 내렸는지를 따져야 한다. ‘전격전’은 시작할 때 필요하다. 다만, 국가가 언제까지나 전격전으로 움직일 수는 없다. 지금은 대통령이 직접 뛰어 막힌 길을 열어야 할 때일 수 있다. 그 길이 열렸다면 이제 장관과 지자체장이 달려야 한다. 대통령은 방향을 정하고, 장관은 일정과 결과에 책임지며, 공무원은 법과 원칙 안에서 결정을 내리는 정부. 그것이 메가프로젝트 속도전의 다음 단계다. 대통령의 속도는 임기와 함께 끝난다. 시스템의 속도는 정권이 바뀌어도 남는다. 이번 ‘전격전’의 가장 값진 성과는 공장 몇 곳을 빨리 세우는 데 있지 않다. 대통령이 직접 챙기지 않아도 제시간에 움직이는 정부를 남기는 데 있다.
2026-08-11 09: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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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진국은 국가 대개혁으로 완성된다
[경제일보] 국가의 선진화는 국민소득이나 수출액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경제가 성장하고 인공지능(AI) 기술이 발전하더라도 법이 공정하게 집행되지 않는다면 선진국이라 부르기 어렵다. 교육이 시대 변화에 뒤처지고 정치와 언론이 신뢰를 잃는다면 그 또한 선진국이 아니다. 이재명 정부가 출범 1년을 맞아 성장과 AI 국가전략을 제시했다면, 이제는 그 성과를 지속 가능하게 만들 국가 시스템의 대개혁에 나서야 한다. 대한민국은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이룬 나라다. 반도체와 자동차, 조선과 배터리, 문화산업에서 세계적인 경쟁력을 확보했다. 그러나 사회 내부를 들여다보면 법치에 대한 불신과 교육 격차, 저출산과 지방소멸, 정치적 양극화, 언론 신뢰 하락이 국가의 지속 가능성을 위협하고 있다. 경제 규모는 커졌지만 국가 운영의 기본질서는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가장 먼저 바로 세워야 할 것은 법치주의다. 법치는 강한 처벌을 뜻하지 않는다. 권력자와 일반 국민, 대기업과 중소기업, 여당과 야당에 같은 기준을 적용하는 것이 법치의 본질이다. 수사와 재판이 정치적 이해에 따라 흔들린다는 인식이 퍼지면 어떤 개혁도 국민적 동의를 얻기 어렵다. 수사기관 개편도 기관의 권한을 나누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 검찰과 경찰, 중대범죄수사기관과 공소기관 사이의 책임선을 분명히 하고 부실 수사를 바로잡을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권한 남용은 통제하되 범죄 피해자가 기관 간 떠넘기기의 희생자가 돼서는 안 된다. 사법개혁의 성적표는 조직을 몇 개 만들고 없앴는지가 아니라 억울한 사람을 줄이고 범죄에 더 정확하게 대응했는지로 평가해야 한다. 법치는 정부와 공공기관에도 엄격하게 적용돼야 한다. 잘못된 정책과 행정 오류를 감추지 않고 기록과 과정을 공개하는 문화가 필요하다. 독립기관의 독립성도 외부 감시를 피할 권리가 아니다. 정치권의 부당한 압력에서 벗어나 법과 절차를 지킬 책임이다. 기본적인 절차와 상식이 무너지면 국민은 결과가 옳더라도 국가를 신뢰하지 않는다. 교육개혁은 국가 대개혁의 두 번째 축이다. AI 시대에는 지식을 얼마나 많이 외웠는가보다 새로운 문제를 정의하고 기술을 활용해 해결하는 능력이 중요하다. 정부는 AI 보편교육과 지방대학 육성을 2026년 교육정책의 주요 과제로 제시했고, 전문대학과 지역 산업을 연결하는 AI·디지털 전환 교육도 확대하고 있다. 모든 대학생을 위한 AI 기본교육과정과 초·중등 AI 중점학교도 늘리고 있다. 방향은 맞지만 숫자 확대만으로 교육혁신이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AI 교육을 몇 시간 이수했는지, 교육과정을 몇 개 만들었는지가 중요한 게 아니다. 학생이 AI를 비판적으로 활용하고 산업현장에서 실질적인 생산성을 높일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 고급 연구자와 현장 엔지니어, 일반 시민의 교육 목표를 구분하고 교사의 역량도 함께 높여야 한다. 교육부가 2029년까지 AI 교육 담당 교원 1만명 연수를 추진하는 것도 이런 점에서 의미가 있다. 교육개혁은 입시제도 몇 가지를 바꾸는 수준을 넘어야 한다. 대학 서열과 수도권 집중, 학령인구 감소, 산업 수요와 교육과정의 불일치를 동시에 풀어야 한다. 지역 대학을 지역 산업·연구기관·기업의 중심으로 키우고 학생이 지역에서 배우고 취업하고 창업하는 경로를 만들어야 한다. 지방대학이 무너지면 지역의 청년과 기업, 의료와 문화도 함께 사라진다. 저출산과 지방소멸 대응도 현금 지원 중심에서 벗어나야 한다. 아이를 낳지 않는 이유는 출산지원금이 부족해서만이 아니다. 안정적인 일자리와 주거, 돌봄과 교육, 경력 단절에 대한 두려움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지방을 떠나는 이유도 애향심 부족이 아니라 일자리와 교육·의료·문화 기회의 격차 때문이다. 정부는 인구감소지역에 대한 세제 지원과 지역 성장거점 조성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지방에 건물과 보조금만 내려보내서는 사람이 남지 않는다. 지역별 주력산업과 대학, 금융, 교통, 의료를 묶어 생활과 일자리가 함께 유지되는 생태계를 만들어야 한다. 저출산 정책 역시 부처별 사업을 나열하는 방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주거와 고용, 보육과 교육을 하나의 생애주기 정책으로 묶고 정책 효과를 냉정하게 평가해야 한다. 효과가 낮은 사업은 정리하고 일·가정 양립과 주거 안정처럼 실제 출산 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분야에 자원을 집중해야 한다. 언론개혁의 핵심은 통제가 아니라 신뢰 회복이다. 허위정보와 조작 콘텐츠, AI 딥페이크가 빠르게 확산하면서 가짜뉴스 대응의 필요성은 커지고 있다. 그러나 정부나 정치권이 진실과 거짓을 직접 판정하는 방식은 표현의 자유를 훼손하고 비판 언론을 위축시킬 수 있다. 가짜뉴스에 대한 가장 강한 대응은 신속한 팩트체크와 투명한 정보 공개, 정정 보도의 실효성 강화다. 플랫폼에는 조작 콘텐츠의 표시와 확산 경로 공개, 광고 수익 제한 등의 책임을 부과할 수 있다. 언론사도 오보를 작게 정정하고 자극적인 제목으로 클릭만 늘리는 관행에서 벗어나야 한다. 언론의 자유는 오보의 자유가 아니며, 신뢰를 잃은 언론은 권력을 감시할 힘도 잃는다. 정치개혁은 모든 개혁의 출발점이자 종착점이다. 여야가 상대를 국정의 경쟁자가 아니라 제거해야 할 적으로 여기는 정치에서는 장기적인 국가전략이 나올 수 없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교육과 부동산, 에너지와 산업정책이 뒤집히면 기업과 국민은 미래를 계획할 수 없다. 협치는 야당의 요구를 모두 받아들이는 것도, 여당의 국정과제를 무조건 통과시키는 것도 아니다. 국가적 과제에는 최소한의 장기 합의를 만들고 쟁점 법안은 충분한 숙의와 검증을 거치는 것이다. 국회의 속도가 느린 것은 문제지만 다수 의석을 앞세워 토론을 생략하는 것도 민주주의의 효율이라 할 수 없다. 집권당은 야당보다 더 무거운 책임을 져야 한다. 지지층에게 박수받는 선명한 구호보다 실행 가능한 정책과 결과를 보여줘야 한다. 야당도 반대를 위한 반대에서 벗어나 재원과 실행계획을 갖춘 대안을 내놓아야 한다. 협치는 양보의 다른 이름이 아니라 국가적 손실을 줄이는 정치 기술이다. 국가 대개혁의 바탕에는 기본원칙과 상식의 회복이 있어야 한다. 잘못했으면 인정하고, 약속했으면 지키며, 공적 권한을 사익에 사용하지 않는 것은 거창한 개혁이 아니다. 그러나 이런 기본이 무너졌기 때문에 국민은 정치와 행정, 사법과 언론을 불신한다. <논어>에는 “백성의 신뢰가 없으면 나라가 설 수 없다”는 뜻의 ‘무신불립(無信不立)’이 나온다. 국가 경쟁력의 가장 깊은 뿌리는 기술도 자본도 아닌 신뢰다. 법이 공정하다는 신뢰, 노력하면 기회를 얻는다는 신뢰, 정부와 언론이 사실을 숨기지 않는다는 신뢰, 정치가 최소한의 약속은 지킨다는 신뢰가 있어야 국민이 미래를 위해 투자하고 협력한다. 이재명 정부의 남은 임기가 경제성장률 몇 프로 성장만으로 평가돼선 안된다. 법치와 교육, 인구와 지역, 언론과 정치의 낡은 구조를 얼마나 바꿨는지가 더 오래 남는 성적표가 될 것이다. 개혁은 구호가 아니라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결과에 책임지는 인고의 과정이다. 이재명 정부의 남은 임기는 경제성장률 몇 퍼센트만으로 평가돼서는 안 된다. 법치와 교육, 인구와 지역, 언론과 정치의 낡은 구조를 얼마나 바꿨는지가 더 오래 남는 성적표가 될 것이다. 개혁은 구호를 외치는 일이 아니라 저항을 설득하고 이해관계를 조정하며 결과에 책임지는 일이다. 선진국은 잘사는 나라를 넘어 시스템을 믿을 수 있는 나라다. 교육이 미래의 기회를 만들고 법이 누구에게나 공정하며, 언론이 사실을 지키고 정치가 차이를 조정할 때 대한민국은 비로소 완성된 선진국으로 나아갈 수 있다. 이재명 정부는 이제 국가 대개혁의 청사진과 우선순위, 실행 일정을 국민 앞에 제시해야 한다. 성장과 AI 전략의 성공도 결국 기본과 원칙, 상식이 살아 있는 국가에서만 가능하다.
2026-08-06 15:5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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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AI 국가전략, 이젠 실행이 답
[경제일보] 생성형 인공지능(AI)이 글과 그림, 영상과 프로그램을 만드는 단계를 넘어 현실 세계를 움직이는 ‘피지컬 AI’ 시대로 진입하고 있다. 로봇이 공장을 운영하고 무인 농기계가 작물을 관리하며 자율주행 장비가 물류를 담당하는 시대다. AI 경쟁의 무대가 컴퓨터 화면에서 제조·농업·물류·국방·돌봄 현장으로 확장되고 있는 것이다. 정부도 피지컬 AI를 국가 전략기술로 정하고 관련 정책을 본격화하고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데이터와 기술, 산업 확산, 생태계 조성을 아우르는 피지컬 AI 전략을 내놓았다. 독자적인 월드모델과 로봇 파운데이션 모델, 온디바이스 컴퓨팅 기술을 확보하고 제조·농업·국방·돌봄 등으로 활용 범위를 넓히겠다는 구상이다. 정부는 월드모델 핵심기술 국산화를 위해 올해부터 2년간 340억원을 투입하고 국내 산학연 컨소시엄을 가동했다. 방향은 옳다. 생성형 AI 분야에서 미국과 중국의 대형 플랫폼을 단기간에 따라잡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한국은 세계적인 제조업과 반도체, 통신망, 로봇 기술, 높은 현장 자동화 수준을 갖추고 있다. 디지털 두뇌를 실제 기계와 산업현장에 연결하는 피지컬 AI에서는 충분히 승부를 걸 수 있다. 그 중심지로 새만금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새만금은 넓은 산업용지와 재생에너지 기반, 항만과 공항을 연계할 수 있는 입지 조건을 갖추고 있다. 정부도 새만금을 재생에너지와 그린수소, AI 데이터센터와 로봇산업을 결합한 혁신 거점으로 육성하는 방향을 제시해 왔다. 새만금개발청은 정부 출범 1년 성과로 새만금 피지컬 AI 산업 육성을 내세웠다. 이제는 새만금을 국가 AI 특구로 명확히 지정하고 권한과 재원을 집중해야 한다. 여러 부처가 개별 사업을 나눠 추진하는 방식으로는 글로벌 경쟁의 속도를 따라가기 어렵다. 규제 특례와 연구개발, 데이터 구축, 실증, 사업화를 하나의 체계로 묶고 성과에 책임지는 전담 추진체계를 만들어야 한다. 새만금은 단순히 AI 데이터센터를 유치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 데이터센터만 들어서고 핵심 기술과 기업, 일자리가 수도권이나 해외에 남는다면 지역경제에 돌아오는 효과는 제한적이다. 농업 AI와 재생에너지 AI, 물류로봇과 자율주행 장비, 스마트 제조를 실제 현장에서 시험하고 사업화하는 ‘피지컬 AI 수도’로 만들어야 한다. 농업은 새만금의 강점을 가장 잘 살릴 수 있는 분야다. 드론과 무인 농기계, 작황 예측, 병충해 탐지, 수자원 관리 기술을 대규모 농업 현장에 적용하면 농촌의 인력 부족과 생산성 문제를 동시에 풀 수 있다. 농업 AI 실증 과정에서 축적된 데이터와 장비, 운영 경험은 해외 스마트농업 시장으로 수출할 수도 있다. 재생에너지 AI도 중요한 축이다. 태양광과 풍력은 기상 여건에 따라 발전량이 달라진다. AI로 발전량과 전력 수요를 예측하고 에너지저장장치와 송전망을 통합 관리하면 재생에너지의 불안정성을 줄일 수 있다. 새만금의 에너지 인프라를 AI 데이터센터와 연계한다면 친환경 전력을 사용하는 미래형 산업단지 모델을 만들 수 있다. 하지만 데이터센터와 로봇 공장은 발표만으로 세워지지 않는다. 막대한 전력과 용수, 초고속 통신망이 필요하다. 정부는 대형 AI 데이터센터의 입지에 맞춰 재생에너지와 원전 등 다양한 전원을 조화롭게 활용하고 전력망을 확충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관건은 계획의 속도와 주민 수용성이다. 송전망 건설과 용수 확보가 늦어지면 기업의 투자 일정도 미뤄질 수밖에 없다. 전력 공급 원칙도 현실적으로 세워야 한다. 재생에너지 확대는 필요하지만 날씨에 좌우되는 전원만으로 대규모 데이터센터와 첨단 제조시설을 안정적으로 가동하기 어렵다. 원전과 재생에너지, 저장장치와 수요관리 기술을 결합해 비용과 안정성, 탄소 감축을 동시에 달성해야 한다. 에너지 정책을 둘러싼 이념 논쟁이 AI 산업의 발목을 잡아서는 안 된다. AI 인재 전략도 숫자 경쟁에서 벗어나야 한다. ‘AI 인재 100만 시대’는 연구자 100만명을 양성한다는 뜻일 수 없다. 세계적 수준의 모델을 개발하는 고급 연구자와 산업 현장에서 AI를 적용하는 엔지니어, AI 도구를 활용하는 일반 노동자를 구분해 교육해야 한다. 정부도 피지컬 AI를 활용할 실무인재부터 핵심 모델을 개발할 고급인재까지 전방위 양성체계를 구축하겠다고 밝혔다. 대학 정원 몇 명을 늘리고 단기 교육과정을 개설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새만금과 전북 지역의 대학, 연구기관, 기업이 공동으로 교육과 실증을 수행하도록 해야 한다. 학생이 지역에서 배우고 현장 프로젝트에 참여한 뒤 지역 기업에 취업하거나 창업하는 경로를 만들어야 한다. 수도권 인재를 잠시 내려보내는 방식이 아니라 지역에 지속 가능한 연구·산업 생태계를 구축해야 한다. 국가 AI 예산도 대폭 확대하되 나눠주기식 지원은 피해야 한다. 정부는 국가 AI 프로젝트와 GPU 인프라 확보, 데이터 플랫폼, 피지컬 AI 기술개발을 추진하고 있다. 정부 GPU 확보·운용 사업만도 2조원대 규모로 제시됐다. 예산 규모보다 중요한 것은 선택과 집중이다. 중앙부처와 지방자치단체가 비슷한 AI 센터와 교육사업을 경쟁적으로 만드는 방식은 효과가 낮다. 핵심 모델과 컴퓨팅 인프라, 현장 데이터, 실증단지를 중심으로 국가 자원을 집중해야 한다. 민간기업이 정부 지원이 끝난 뒤에도 투자와 사업을 이어갈 수 있는지 사업 초기부터 검증해야 한다. 성과 평가도 달라져야 한다. 데이터센터 유치 건수나 교육 수료자 수, 양해각서 체결 숫자를 성과로 내세워서는 안 된다. 국산 기술의 현장 적용률과 생산성 향상, 민간 투자액, 새로 생긴 양질의 일자리, 해외 수출 실적을 기준으로 평가해야 한다.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 사업은 과감히 중단하고 가능성이 확인된 분야에 예산을 다시 집중해야 한다. 피지컬 AI는 사람과 기계가 같은 공간에서 움직이는 기술이다. 기술 경쟁력 못지않게 안전과 책임 기준이 중요하다. 로봇이나 자율 장비의 판단으로 사고가 발생했을 때 개발사와 제조사, 운영자 가운데 누가 책임지는지 분명히 해야 한다. 정부도 실데이터와 합성데이터의 품질 관리, 통신·보안과 안전·신뢰 기술을 함께 개발하겠다고 밝혔다. AI 강국은 정부가 선언한다고 만들어지지 않는다. 기업이 투자하고 인재가 모이며 기술이 현장에서 성과를 낼 때 비로소 완성된다. 새만금을 특구로 지정하는 것만으로도 부족하다. 규제와 인프라, 데이터와 인재, 연구개발과 사업화를 한곳에서 연결해야 한다. <한비자>에는 “세상의 일이 달라지면 대비책도 달라져야 한다”는 뜻의 ‘세이즉사이(世異則事異)’가 나온다. 생성형 AI 시대의 전략을 피지컬 AI 시대에도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다. 이제 국가는 기술을 지원하는 보조자를 넘어 산업과 에너지, 지역과 인재 정책을 함께 설계하는 운영자가 돼야 한다. 이재명 정부는 출범 1년 동안 AI를 국가 성장전략의 중심에 놓았다. 이제 필요한 것은 또 하나의 비전이나 구호가 아니다. 새만금 국가 AI 특구 지정과 전력·용수 인프라 구축, 데이터센터와 로봇기업 유치, 농업·에너지 AI 실증, 인재 양성, 예산 집중을 구체적인 일정표로 제시해야 한다. AI 경쟁은 기다려주지 않는다. 선언이 길어질수록 기술과 기업, 인재는 다른 나라로 이동한다. 새만금을 피지컬 AI 수도로 만들고 그 성과를 전국의 제조업과 농업, 물류와 돌봄으로 확산해야 한다. 한국 AI 국가전략의 성패는 계획의 크기가 아니라 실행의 속도와 결과로 판가름 날 것이다.
2026-08-05 10:4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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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자문기구 "AI 전환, 성장만으론 부족…혁신·포용 국가전략 필요"
[경제일보] 대통령 자문기구인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와 국민경제자문회의가 인공지능(AI) 전환 시대의 국가 전략 마련을 주문했다. AI가 산업 경쟁력뿐 아니라 고용과 교육, 지역 격차를 동시에 흔드는 만큼 혁신과 포용을 함께 설계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이다.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와 국민경제자문회의는 25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 국제회의장에서 ‘AX 도전과 대응: 혁신·성장·포용을 위한 국가전략’을 주제로 공동 심포지엄을 열었다. 양 자문회의는 AI 전환 경쟁력 확보와 포용적 전환을 위한 정책 방향을 논의했다. 이경수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부의장은 개회사에서 “AI가 기업과 산업, 교육과 고용을 비롯한 사회 전반과 일상에 깊이 결합하고 있다”며 “기회와 격차 문제를 함께 살피고 대응할 수 있는 실질적 전략을 도출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성식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은 에이전틱 AI와 피지컬 AI 확산을 새로운 기회로 봤다. 그는 제조 경쟁력과 데이터, 디바이스 역량을 바탕으로 AI 풀스택 전략을 구축하고 국가 차원의 협력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AI 모델만이 아니라 반도체와 클라우드, 네트워크, 제조 현장 적용까지 연결하는 전략이 필요하다는 취지다. 정부와 산업계도 같은 문제의식을 공유했다. 배경훈 부총리 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과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은 축사를 통해 AI 전환기 미래 전략 확보를 위해 정부와 산업계의 협력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첫 세션에서는 제조 피지컬 AI 도입 전략과 AX 산업 생태계 강화가 논의됐다. 장영재 KAIST 교수는 AI가 정보기술 시스템 중심을 넘어 센서와 통신장비, 데이터 인프라가 함께 발전하는 생태계형 기술로 진화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제조 분야를 기반으로 한 AX 혁신과 ‘다크 팩토리’ 턴키 수출 전략도 제안했다. 피지컬 AI는 AI가 현실 세계의 설비와 로봇, 제조 공정을 인식하고 판단하며 움직이는 기술 흐름이다. 한국이 강점을 가진 제조업과 결합할 경우 생산성 향상과 공정 자동화, 스마트팩토리 수출로 이어질 수 있다. 반대로 핵심 소프트웨어와 운영체계를 해외 기술에 의존하면 제조 경쟁력의 부가가치가 외부로 빠져나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권용현 LG유플러스 부사장은 소버린 AI 생태계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국내 자체 스택이 갖춰지지 않으면 매출의 상당 부분이 해외로 유출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통신망과 클라우드, 데이터센터, 디바이스, AI 모델을 국내 산업 생태계 안에서 연결해야 실질적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는 의미다. 교육과 노동시장 재설계도 주요 의제로 다뤄졌다. 류근관 서울대 명예교수는 AI 확산이 노동수요를 숙련 수준에 따라 비대칭적으로 재편하는 ‘스킬 축 J커브’ 구조를 보인다고 분석했다. 그는 선택과 집중형 교육체계 구축을 핵심 전략으로 제시했다. 배상훈 성균관대 교수는 AI 교육 확대와 격차 해소를 함께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생애주기형 맞춤형 AI 교육체계를 구축해 학생과 재직자, 고령층이 각자의 수준에 맞게 AI 역량을 갖추도록 해야 한다는 제안이다. AI 전환이 특정 계층의 기회로만 작동하지 않도록 교육 접근성을 넓혀야 한다는 취지다. 이번 심포지엄은 AI 정책의 초점이 기술 개발에서 산업 구조와 노동, 교육, 포용 전략으로 넓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에이전틱 AI와 피지컬 AI가 확산되면 기업의 업무 방식과 제조 현장, 고용 구조는 빠르게 바뀔 수밖에 없다. 국가 전략도 모델 개발이나 규제 완화에 머물 수 없다. 양 자문회의는 이번 심포지엄에서 제기된 정책 제안과 현장 의견을 향후 대통령 자문과 정책 제언 과정에 반영하고 후속 논의를 이어갈 방침이다. AI 전환은 더 이상 먼 미래의 산업 의제가 아니다. 한국이 제조와 데이터, 인재 기반을 실제 경쟁력으로 연결하려면 기술 투자와 교육 개편, 산업 생태계 전략을 같은 속도로 추진해야 한다.
2026-06-25 15: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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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대통령, 국정 2년차 수석급 참모진 개편…지지율 경고등에 칼 빼들어
[경제일보] 이재명 대통령이 국정 2년 차를 맞아 청와대 수석급 참모진을 대폭 교체하며 국정 쇄신과 개혁 드라이브 강화에 나섰다. 최근 지방선거 결과와 지지율 하락세를 계기로 국정 운영 기조를 재정비하는 동시에 인공지능(AI)·에너지 전환, 노동 개혁, 공급망 대응 등 핵심 정책 추진에 속도를 내겠다는 의지가 반영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21일 대통령실에 따르면 이 대통령은 홍보소통수석, 민정수석, 사회수석과 국가안보실 1·3차장을 교체하는 인사를 단행했다. 향후 임명될 AI미래기획수석까지 포함하면 전체 수석급 참모 11명 가운데 6명이 바뀌는 중폭 이상의 개편이다. 대통령실은 이번 인사에 대해 국정 2년 차를 맞아 소통과 개혁 동력을 강화하기 위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강훈식 대통령 비서실장은 브리핑에서 "좀 더 개혁하고 스스로를 채찍질하는 데 게을리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고 밝혔다. 이번 개편의 핵심은 홍보·민정 라인 교체다. 홍보소통수석에는 성기홍 전 연합뉴스 사장이, 민정수석에는 한찬식 변호사가 각각 임명됐다. 최근 지방선거 이후 나타난 민심 변화와 지지율 하락 흐름에 보다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국민 체감형 정책 성과를 높이겠다는 의중이 반영된 것으로 해석된다. 실제 이 대통령은 지난 19일 브리핑에서 "대통령이, 당이 마음에 안 드는 사람이 늘어난 것"이라며 "냉정한 현실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언급한 바 있다. 정책 추진 체계에도 변화가 예상된다. 한찬식 신임 민정수석은 공소청·중대범죄수사청 설치와 형사소송법 개정 등 검찰개혁 후속 과제를 맡게 된다. 강건작 국가안보실 1차장은 군 구조개혁과 자주국방 역량 강화 작업을 담당할 것으로 전망된다. 노동 정책 라인도 한층 강화됐다. 문진영 전 사회수석 후임으로 약사이자 노동운동가 출신인 김경자 수석이 임명됐다. 앞서 민주노총 출신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과 한국노총 출신 이옥남 노동비서관이 합류한 데 이어 노동계 출신 인사들이 정책 전면에 배치되는 모습이다. 경제·산업 정책 측면에서는 공급망과 경제안보 대응 역량 강화가 주목된다. 송기호 경제안보비서관을 국가안보실 3차장으로 승진 발탁한 것은 미국의 관세 정책과 중동 리스크 등 글로벌 공급망 불확실성에 대응하기 위한 조치로 평가된다. 외교·안보와 경제가 긴밀하게 연결되는 환경 속에서 경제안보 컨트롤타워 기능을 강화하겠다는 의미다. 반면 경제성장수석과 재정기획보좌관 등 경제 라인은 유임됐다. 지난 1년간 추진해 온 경제정책 기조를 유지하면서 AI와 에너지 전환, 자본시장 활성화, 부동산 안정화, 국토 균형발전 등 핵심 과제의 성과 창출에 집중하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다만 하정우 전 수석의 출마로 공석이 된 AI미래기획수석 인선은 이번 발표에서 제외됐다. AI 국가전략을 총괄할 적임자 물색에 시간이 걸리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2026-06-21 14: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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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대 쏠림' 흔드는 삼전닉스 계약학과…최상위권 선택 기준이 바뀐다
[경제일보] 자연계 최상위권 입시 지형이 빠르게 바뀌고 있다. 의대가 절대 우위를 지켜온 이공계 입시 판도에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취업이 연계된 이른바 ‘삼전닉스’ 반도체 계약학과가 서울대 자연대 합격선을 넘어섰다. 일부 대학 반도체 계약학과는 지방권 의대보다 높은 합격선을 기록하며 의대 턱밑까지 추격했다. 입시 현장의 변화는 단순한 ‘인기 학과’ 현상이 아니다. 반도체 슈퍼사이클, 대기업 채용 안정성, 억대 성과급 기대, 첨단산업 인재 확보전, 의대 정원 확대와 지역의사제 도입 논의가 한꺼번에 맞물리며 최상위권 수험생의 진로 선택 기준 자체가 흔들리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반도체 계약학과 평균 96.2점…서울대 자연대 앞질렀다 21일 종로학원이 2026학년도 정시 결과를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연세대, 고려대, 한양대, 성균관대, 서강대 등 서울 소재 주요 대학 반도체 계약학과의 수능 국어·수학·탐구 평균 점수는 96.2점으로 집계됐다. 이는 서울대 자연대 합격자 평균 점수 95.8점보다 0.4점 높은 수준이다. 대학별로는 한양대 반도체공학과가 98.0점으로 가장 높았다. 이어 고려대 반도체공학과 97.0점, 성균관대 반도체 관련 학과 96.0점, 서강대·연세대 반도체 관련 학과가 각각 95.0점으로 나타났다. 특히 한양대 반도체공학과 합격선은 2026학년도 지방권 의대 평균 합격선 97.2점보다 높았다. 고려대 반도체공학과 역시 지방권 의대 평균과 거의 같은 수준까지 올라섰다. 서울권 의대 평균 합격선은 98.8점, 경인권 의대는 99.0점으로 여전히 최상위권을 유지하고 있지만 격차는 크게 좁혀졌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자연계 최상위권 진로 선택은 ‘의대냐, 서울대 공대냐’ 구도에 가까웠다. 그러나 올해 정시 결과는 여기에 ‘대기업 반도체 계약학과’라는 세 번째 축이 본격적으로 들어왔음을 보여준다. ◆‘삼성전자 vs SK하이닉스’도 입시 변수로 계약 기업별 차이도 나타났다. SK하이닉스와 채용 협약을 맺은 고려대·서강대·한양대 반도체 계약학과 평균 점수는 96.7점으로, 삼성전자와 계약한 연세대·성균관대 평균 95.5점보다 1.2점 높았다. 이는 최근 메모리 반도체 업황 회복과 고대역폭메모리(HBM) 시장에서 SK하이닉스가 두각을 나타낸 흐름이 수험생 선호에도 반영된 결과로 풀이된다. 입시업계에서는 “과거에는 기업 브랜드 자체가 절대적 기준이었다면, 최근에는 실적 전망, 성과급 기대, 직무 성장성, 산업 내 위상까지 고려하는 경향이 커졌다”고 본다. 실제 2026학년도 대기업 계약학과 정시 지원자는 전년보다 크게 늘었다. 종로학원 분석에 따르면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 7개 대기업 16개 계약학과 정시 지원자는 2478명으로 전년 1787명보다 38.7% 증가했다. 전체 경쟁률도 9.77대 1에서 12.77대 1로 상승했다. 이 가운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계약학과 지원자가 전체의 65%를 차지했다. ◆취업 보장·장학금·성과급…‘진로 불확실성’ 줄인 학과의 힘 반도체 계약학과의 가장 큰 강점은 ‘입학과 동시에 진로의 상당 부분이 정해진다’는 점이다. 계약학과는 대학과 기업이 협약을 맺고 기업이 필요로 하는 인재를 양성하는 제도다. 학생들은 장학금, 현장실습, 인턴십, 졸업 후 채용 연계 등의 혜택을 받는다. 특히 반도체 계약학과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라는 국내 대표 제조기업과 직접 연결돼 있다는 점에서 안정성이 크다. 과거 이공계 최상위권 학생들이 의대를 선호한 핵심 이유는 직업 안정성과 고소득 기대였다. 그런데 반도체 계약학과가 이 두 요소에 상당 부분 근접하면서 선택지가 달라지고 있다. 의대는 긴 수련 과정과 지역의사제, 필수의료 배치 논의 등 정책 변수가 커졌다. 반면 반도체 계약학과는 4년 학부 교육 이후 대기업 취업이라는 경로가 비교적 명확하다. 여기에 HBM, 인공지능 반도체, 첨단 패키징, 파운드리, 차량용 반도체 등 산업 확장성이 더해지면서 ‘공대 진학의 기대수익’이 과거보다 커졌다는 평가다. ◆산업계에는 반가운 신호…하지만 수도권·대기업 쏠림도 과제 이번 결과는 산업계 입장에서는 긍정적 신호다. 한국 반도체 산업은 메모리 강국을 넘어 시스템반도체, 첨단 패키징, AI 반도체 등으로 전선을 넓혀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이를 위해서는 설계·공정·소자·소프트웨어를 아우르는 고급 인재 확보가 필수다. 실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대학과 협력해 육성한 반도체 계약학과 졸업생은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산업 현장에 투입될 전망이다. 업계에서는 주요 대학 1기생 졸업이 시작되면 반도체 계약학과 졸업 인원이 연간 400~480명 수준에 이를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부작용도 있다. 계약학과 인기가 높아질수록 수도권 주요 대학과 대기업 중심의 인재 쏠림이 심화될 수 있다. 대기업 계약학과는 전국 13개 대학, 18개 학과에서 운영되고 있지만 상당수가 수도권과 과학기술특성화대학에 집중돼 있다. 지방 일반대학의 참여 폭은 제한적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정부가 반도체 인재 양성을 국가전략 차원에서 추진해왔지만, 실제 우수 인재가 일부 대기업 협약 학과에 몰릴 경우 중견·중소 반도체 기업과 소재·부품·장비 기업의 인력난은 계속될 수 있다. 반도체 생태계 전체를 키우려면 계약학과 확대뿐 아니라 지역 대학, 전문대학, 대학원, 현장 재교육을 잇는 다층적 인재 공급망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2027학년도 입시 최대 변수는 의대 증원과 지역의사제 입시업계는 2027학년도 정시에서 반도체 계약학과와 의대의 합격선 경쟁이 더 치열해질 것으로 보고 있다. 지역의사제 도입으로 의대 모집 인원이 늘어날 경우 지방권 의대 합격선이 조정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종로학원 임성호 대표는 “반도체 계약학과와 의대에 동시 합격할 경우 수험생이 어느 곳을 선택할지 주목된다”며 “선택에 따라 계약학과와 의대 합격선에 상당한 변화가 나타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2027학년도 반도체 학과 모집도 확대 흐름을 보이고 있다. 진학사 분석에 따르면 서울권 반도체 학과 수시 모집 대학은 2026학년도 14개교에서 2027학년도 15개교로 늘고, 수시 모집 인원은 502명에서 564명으로 62명 증가한다. 다만 삼성전자·SK하이닉스 협약 계약학과 수시 모집 인원은 205명으로 변동이 없고, 증가는 일반 반도체 학과 중심으로 이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향후 입시 경쟁이 두 갈래로 나뉠 수 있음을 시사한다. 하나는 삼성전자·SK하이닉스 취업이 연계된 계약학과의 초고득점 경쟁이고, 다른 하나는 일반 반도체 학과를 통한 첨단산업 진입 경쟁이다. 계약학과는 취업 안정성이 강점이고, 일반 반도체 학과는 특정 기업에 묶이지 않고 진로를 넓힐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의대 독주 시대의 균열…핵심은 ‘지속 가능한 선택지’다 반도체 계약학과의 약진은 한국 사회가 오랫동안 겪어온 의대 쏠림 현상에 균열이 생기고 있음을 보여준다. 최상위권 인재가 산업 현장으로 향하는 것은 국가 경쟁력 측면에서 환영할 일이다. 특히 반도체는 한국 수출과 제조업의 핵심 축이다. 인재가 모이지 않으면 기술 초격차도, 공급망 주도권도 유지하기 어렵다. 그러나 입시 합격선 상승만으로 반도체 인재 양성이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학생들이 계약학과를 선택한 뒤 실제 산업 현장에서 성장할 수 있는 교육 과정, 연구 환경, 직무 배치, 장기 경력 설계가 뒤따라야 한다. 대기업 취업 보장이 단기 유인이라면, 산업 생태계 전반의 혁신 역량은 장기 유인이다. 이번 정시 결과는 수험생들이 더 이상 대학 간판만 보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최상위권 학생들은 이제 ‘어느 대학이냐’와 함께 ‘어떤 산업으로 가느냐’, ‘졸업 후 어떤 경로가 열리느냐’를 따진다. 의대 일변도였던 자연계 입시가 산업과 노동시장 변화에 반응하기 시작한 셈이다. 한 입시컨설팅 관계자는 “입시 판도 변화의 본질은 한양대 반도체공학과가 지방의대보다 높았다는 한 줄의 숫자에만 있지 않다”며 “한국 경제의 미래 먹거리와 청년 세대의 안정 욕구가 한 지점에서 만났다는 데 있다. 반도체 계약학과의 부상은 최상위권 인재 시장에서 시작된 작은 변화지만 그 파장은 대학, 기업, 지역, 의료정책, 산업전략 전반으로 번질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2026-06-21 12:5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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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AI 전략공천 굳히기냐 국민의힘 호남 교두보 확보냐
[경제일보] 6·3 지방선거와 함께 치러지는 광주 광산을 국회의원 보궐선거가 광주 정치 지형의 변화를 가늠할 핵심 승부처로 떠오르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인공지능(AI) 전문가 임문영 국가인공지능전략위원회 부위원장을 전략공천하며 “AI 중심도시 광주” 비전을 전면에 내세웠고, 국민의힘은 안태욱 전 광주시당위원장을 내세워 민주당 독점 정치 견제론으로 맞서고 있다. 광산을 보선은 민형배 전 의원이 전남광주특별시장 선거 출마를 위해 의원직을 내려놓으면서 치러지게 됐다. 민주당에는 광주 핵심 지역구를 안정적으로 승계해야 하는 방어전이고, 국민의힘에는 호남 정치 지형에 균열 가능성을 시험하는 상징전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광산을은 광주에서도 가장 역동적인 지역으로 꼽힌다. 첨단지구와 수완지구를 중심으로 젊은층과 신도시 인구 유입이 많고, 평동산단과 하남산단 등 산업벨트가 함께 형성돼 있다. 광주형 AI 산업과 미래차 산업, 청년 일자리 문제가 민심의 핵심 축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이번 선거 역시 단순한 지역 보선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민주당은 AI 전략공천을 통해 “이재명 정부 AI 국가전략과 광주 미래산업을 연결하겠다”는 구상을 내세우고 있고, 국민의힘은 “민주당 일당 독점이 광주 발전을 가로막았다”는 프레임으로 접근하는 분위기다. 여론 흐름 민주당 압도 우세…국민의힘은 존재감 확보 총력 현재까지 광산을 보궐선거 후보 간 공식 양자대결 여론조사는 확인되지 않는다. 다만 최근 광주 지역 정당 지지도와 정치 지형 조사에서는 민주당 우세 흐름이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KBC광주방송이 리서치뷰에 의뢰해 2026년 4월 26일부터 27일까지 광주 거주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정당 지지도는 더불어민주당 63%, 국민의힘 14%로 집계됐다. 조사는 무선 ARS 방식으로 진행됐고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포인트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광주 정치권에서는 이 수치를 근거로 “광산을 역시 민주당 우세 흐름이 강하다”는 해석이 우세하다. 특히 광주는 전통적으로 민주당 조직 기반이 강한 지역이고, 광산을은 젊은층 비중이 높은 만큼 민주당 핵심 지지층 결집력이 상당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다만 정치권에서는 “민주당 우세와 전략공천 만족도가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평가도 나온다. 실제 민주당이 임문영 부위원장을 전략공천한 이후 광주 시민단체들은 “과정도 결과도 납득하기 어려운 전략공천”이라며 공개 비판에 나섰다. 광주시민단체협의회는 “전문가가 있어야 할 자리가 반드시 지역 국회의원이냐”는 취지의 성명을 발표하며 전략공천 방식 자체를 문제 삼았다. 정치권 관계자는 “민주당 지지세 자체는 매우 강하지만, 광주 민심이 예전처럼 무조건적이라고 보기도 어렵다”며 “전략공천 과정과 지역 대표성 문제는 선거 막판 변수로 남아 있다”고 말했다. 임문영, AI 성장전략·중앙 네트워크 강점…전략공천 논란은 부담 임문영 후보의 가장 큰 강점은 “AI 중심도시 광주”와 직접 연결되는 상징성이다. 임 후보는 국가인공지능전략위원회 상근부위원장을 맡아 정부 AI 전략 설계에 참여해온 인물이다. 국내 1세대 IT 전문가로 평가받고 있으며, 이재명 대통령이 성남시장과 경기지사 시절 함께 일했던 핵심 정책 인사로도 알려져 있다. 민주당은 바로 이 점을 전략적으로 강조하고 있다. 광주가 추진 중인 AI 산업과 미래차 산업, 국가 데이터센터 사업 등을 중앙정부 AI 전략과 연결할 수 있는 적임자라는 것이다. 실제 임 후보는 출마 이후 “광주를 AI 3대 강국의 중심축으로 만들겠다”며 AI 입법과 국가 투자 확대를 핵심 공약으로 내세우고 있다. 민주당 지도부 역시 “AI 국가전략과 광주 미래산업을 연결할 인물”이라고 평가하며 힘을 싣고 있다. 민주당 조직력 역시 강점이다. 광주는 민주당 핵심 지지 기반이고 광산을 역시 민주당 우세 지역으로 분류된다. 지방의원 조직과 권리당원 조직이 본격적으로 움직일 경우 선거 막판 결집력은 상당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그러나 부담도 적지 않다. 무엇보다 전략공천 후유증이다. 지역 기반 정치인들이 아닌 중앙 AI 전문가를 전략공천한 데 대해 지역 정치권과 시민단체 일각에서는 “낙하산 공천”이라는 반발도 나온다. 특히 “지역 활동 경험이 부족하다”는 문제 제기가 이어지고 있다는 점은 민주당 입장에서 부담이다. 생활밀착형 지역 정치 경험 부족 역시 약점으로 꼽힌다. AI와 미래산업이라는 거대 담론은 강점이지만, 실제 광산을 주민들이 체감하는 교통·주거·돌봄·생활 SOC 문제와 얼마나 연결될 수 있느냐가 관건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정치권에서는 임 후보의 기회요인으로 △AI 국가전략 △민주당 조직 결집 △광주 미래산업 기대감 △청년층 지지 가능성을 꼽는다. 반면 위협요인으로는 △전략공천 반발 △지역 정치 경험 부족 △민주당 독점 피로감 △낮은 투표율 가능성 등을 거론한다. 안태욱, 민주당 독점 견제론 승부수…호남 조직 열세는 한계 국민의힘 안태욱 후보의 가장 큰 강점은 “민주당 일당 독점 견제론”이다. 안 후보는 광주시당위원장을 지낸 지역 정치인으로, 민주당 장기 독점 체제가 광주 발전 정체로 이어졌다는 점을 집중 부각하고 있다. 특히 광주 청년 유출과 산업 경쟁력 문제, 지역경제 침체를 민주당 책임론과 연결하려는 전략을 펴고 있다. 국민의힘 내부에서는 “광주에서 의미 있는 득표율만 확보해도 정치적 의미가 크다”는 평가도 나온다. 실제 광주는 최근 일부 여론조사에서 국민의힘 지지율이 과거보다 소폭 상승 흐름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다만 한계 역시 분명하다. 무엇보다 민주당 조직 기반이 압도적이라는 점이 가장 큰 부담이다. 광산을은 민주당 핵심 지지층 비율이 높은 지역이고, 지방의회와 지역 정치 네트워크 역시 민주당 중심으로 움직이고 있다. 또한 광주에서 국민의힘은 여전히 “정권 견제 세력”보다는 “외부 정당” 이미지가 강하다는 점도 한계로 꼽힌다. 특히 윤석열 정부 시기 누적된 호남 민심 이반이 아직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다는 분석도 나온다. 국민의힘 입장에서는 △민주당 전략공천 피로감 △호남 정치 독점 피로감 △청년층 변화 요구가 기회요인으로 꼽힌다. 반면 △낮은 정당 지지율 △조직 열세 △광주 내 보수 기반 취약은 가장 큰 위협요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AI도시냐 정치 피로감이냐…광산을 막판 승부처는 청년층 정치권에서는 이번 광산을 보선 최대 변수로 세 가지를 꼽는다. 첫째는 AI 산업 체감 민심이다. 광주는 AI 중심도시를 핵심 성장전략으로 내세우고 있지만 실제 청년 일자리와 생활 변화로 이어졌느냐를 두고는 평가가 엇갈린다. 임 후보가 AI 비전을 얼마나 생활경제와 연결할 수 있느냐가 핵심이라는 분석이다. 둘째는 전략공천 수용 여부다. 민주당 지지층이 강한 지역이지만, 전략공천 과정 자체에 대한 불만도 일정 부분 존재한다는 평가가 나온다. 민주당이 조직력으로 이를 얼마나 빠르게 봉합하느냐가 변수라는 것이다. 셋째는 청년층 투표율이다. 광산을은 광주에서도 젊은층 비중이 높은 지역이다. 첨단지구·수완지구·신도시 생활권 표심이 실제 투표장에서 어떻게 움직이느냐에 따라 득표율 격차가 달라질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정치권 관계자는 “광산을은 겉으로 보면 민주당 우세 지역처럼 보이지만 실제 내부로 들어가면 AI 산업 기대감과 정치 피로감이 동시에 존재하는 곳”이라며 “민주당이 AI 성장론으로 본진을 안정적으로 굳힐지, 국민의힘이 견제론으로 존재감을 확보할지가 핵심 관전 포인트”라고 말했다. 이어 “이번 광산을 보선은 단순한 지역 재보선이 아니라 광주 민심이 AI 미래산업과 세대교체 흐름을 얼마나 수용할지를 가늠하는 시험대가 될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2026-05-13 08: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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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턴다이나믹스, 美 로봇 국가전략 설계 참여…정책·표준 영향력 확보
[경제일보] 보스턴다이나믹스가 미국 로봇 산업 전략을 설계하는 민간 주도 협의체에 참여한다. 산업·정책·학계가 결합된 구조에서 제조·물류 중심 로보틱스 적용 방향을 제시하며 정책 설계 기구의 역할을 맡는다. 24일 업계에 따르면 미국 민간 싱크탱크 SCSP는 최근 ‘첨단제조 로봇 국가안보위원회’를 출범시켰다. 해당 위원회는 미국의 로봇 산업 경쟁력 확보를 위한 중장기 전략과 정책 방향을 마련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SCSP는 지난 2021년 출범한 비영리 초당파 기구로, 구글 전 최고경영자(CEO)인 에릭 슈미트가 주도하고 있다. 인공지능(AI), 반도체, 로보틱스 등 첨단 기술이 국가 안보와 산업 경쟁력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고 정책 자문을 제공하는 역할을 수행해왔다. 이번에 구성된 위원회는 SCSP 최고경영자인 일리 바이라크타리를 비롯해 공화당 소속 테드 버드 상원의원과 민주당 소속 엘리사 슬롯킨 상원의원이 공동의장을 맡는다. 위원회에는 산업계와 학계 주요 기관이 대거 포함됐다. 보스턴다이나믹스를 포함해 엔비디아, AMD, 제너럴모터스(GM), 미시간대학교, 오하이오주립대학교, MIT 산업성능센터 등이 참여한다. 로보틱스와 ‘피지컬 AI’ 분야에서 기술과 산업 적용 경험을 동시에 갖춘 기업과 연구기관이 결합된 형태다. 보스턴다이나믹스는 미국 로보틱스 기업 가운데 대표 사례로 참여한다. 브랜던 슐만 부사장이 위원으로 활동할 예정이다. 슐만 부사장은 로봇 윤리와 정책 분야에서 활동해온 인물로, 산업 현장 적용 경험과 정책 논의 모두에 관여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위원회는 향후 1년간 운영되며, 결과 보고서는 내년 3월 발표될 예정이다. 주요 과제는 공공과 민간 투자를 연계하는 국가 차원의 프레임워크 구축, 자동화 시스템 확산 전략 수립, 로보틱스 전문 인력 확보, 공급망 경쟁력 강화 등이다. 특히 연구 단계 기술을 산업 현장에 적용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간극을 줄이는 방안도 핵심 의제로 포함됐다. 제조·물류·인프라 분야에서 로봇 적용 사례를 확대하고, 실증 기반 데이터를 정책 설계에 반영하는 방식이다. 보스턴다이나믹스는 이번 위원회 참여를 통해 산업 현장에서 축적한 로봇 적용 사례를 공유할 계획이다. 물류 자동화, 산업용 로봇, 인프라 점검 등 다양한 분야에서의 적용 경험을 기반으로 정책 설계 과정에 기술적 기준을 제시하는 역할을 맡는다. 정책 영향력 측면에서도 의미가 있다. 로봇 산업 관련 규제와 지원 정책이 구체화되는 과정에서 기업 의견이 반영될 수 있는 구조가 마련됐기 때문이다. 업계에서는 이번 참여가 단순 자문 수준을 넘어 정책 방향 설정 단계에서 영향력을 확보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미국 정부는 로봇 산업을 차세대 전략 산업으로 규정하고 지원 방안을 확대하고 있다. 상무부는 이달 초 산업용 로봇과 휴머노이드 로봇 기업 관계자들이 참석한 회의를 열고 산업 현황과 정책 지원 방향을 점검했다. 해당 회의에는 보스턴다이나믹스를 비롯해 엔비디아, 테슬라, 오픈AI 등 주요 기업 관계자들이 참여한 것으로 전해졌다. 슐만 부사장은 이 자리에서 “로보틱스 산업에 대한 정부 지원이 확대되는 흐름 속에서 정책 방향이 구체화될 것으로 본다”고 말다. 정부 주도의 산업 지원과 민간 기술 개발이 병행되는 구조가 형성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로봇 산업은 인공지능과 결합된 ‘피지컬 AI’ 형태로 확장되며 제조 경쟁력과 직결되는 영역으로 분류되고 있다. 로봇 기술이 단순 자동화를 넘어 생산성, 국방, 물류 체계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인프라로 자리잡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보스턴다이나믹스의 기업가치도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일부 투자 업계에서는 최근 평가 기준으로 약 30조원 수준의 기업가치를 인정받은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2026-03-24 09:38: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