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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작권 전환, 정치적 일정보다 군사적 조건이 먼저다
[경제일보]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 전환이 다시 한미 안보 현안의 중심에 섰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19일 전작권을 조기에 돌려받아야 한다는 입장을 거듭 밝혔다. 한국군이 전작권을 행사할 능력을 충분히 갖췄으며 한미 간 협의도 대체로 긍정적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취지다. 그러나 전환 시점과 군사적 준비 수준을 둘러싼 한미의 시각차도 드러나고 있다. 전작권 전환은 한국군의 자율성과 책임을 확대하는 국가적 과제다. 한국군이 한미 연합방위를 주도할 역량을 갖추는 것은 바람직한 목표다. 다만 목표의 정당성과 추진 시점의 적절성은 구분해야 한다. 안보정책의 성패는 전작권을 얼마나 빨리 넘겨받았느냐가 아니라, 전환 이후에도 북한의 도발을 억제하고 유사시 연합작전을 안정적으로 수행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최근 논란은 그 기준을 다시 묻게 한다. 제이비어 브런슨 주한미군사령관은 북한의 미사일 위협 등 변화한 안보환경을 거론하며 전작권 전환에 필요한 평가 기준의 변화를 언급했다. 이에 국방부 대변인은 조건이 계속 달라진다면 전환 자체가 어려워질 수 있다는 개인적 견해를 밝혔다. 다만 국방부는 한미가 합의한 조건에 따라 전환을 추진한다는 공식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양측의 발언만으로 한미동맹에 균열이 발생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평가 기준에 대한 시각차를 가볍게 여겨서도 안 된다. 군사적 조건을 무엇으로 판단할 것인지, 달라진 위협을 기존 평가에 어떻게 반영할 것인지부터 충분히 협의해야 한다. 전작권 전환은 이미 한미가 합의한 조건과 검증 절차에 따라 추진되고 있다. 한국군의 연합방위 주도 능력, 북한 핵·미사일 위협에 대한 대응 능력, 한반도와 역내 안보환경 등이 주요 판단 기준이다. 미래연합사의 지휘능력 역시 기본운용능력(IOC), 완전운용능력(FOC), 완전임무수행능력(FMC) 등 단계별 검증을 거친다. 국방부는 올해 FOC 검증과 전환 로드맵 마련을 추진해 왔다. 조기 전환을 목표로 필요한 능력을 신속히 확보하는 것은 가능하다. 그러나 평가를 통과하기 위해 기준을 낮추거나 검증 절차를 형식적으로 운영한다면 문제는 달라진다. 군사적 준비를 앞당기는 것과 준비가 끝난 것처럼 판단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다. 이 지점에서 대통령과 국방부의 책임이 분명해진다. 대통령은 전작권 전환의 전략적 방향을 제시하고 한미동맹의 안정성을 유지할 최종적인 정치적 책임을 진다. 국방부 장관은 필요한 전력과 인력, 지휘통제체계를 확보할 책임이 있다. 합동참모본부와 각 군 지휘부는 실제 작전 수행능력을 전문적으로 평가하고 부족한 부분을 보고해야 한다. 군의 판단이 정치적 일정에 맞춰져서는 안 된다. 평가 과정에서 미흡한 능력이 확인됐다면 보완 계획을 마련하고 필요할 경우 전환 시점도 조정해야 한다. 반대로 조건을 충족했는데도 정치적 논쟁만으로 전환을 지연하는 것 역시 바람직하지 않다. 기준은 어느 정권에나 같아야 한다. 전작권 전환 이후의 지휘구조에 대한 정확한 이해도 필요하다. 전환은 주한미군 철수나 한미연합사 해체를 의미하지 않는다. 한미가 구상한 미래연합사 체제에서는 한국군 장성이 사령관을, 미군 장성이 부사령관을 맡는다. 중요한 것은 지휘권자의 국적 자체보다 양국 군이 하나의 연합작전 체계 안에서 얼마나 신속하고 정확하게 움직일 수 있느냐다. 한국군이 연합작전을 주도하더라도 미국의 정보·감시·정찰 자산과 확장억제, 전략자산 운용 및 증원전력과의 연계는 여전히 중요하다. 특히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이 고도화하는 상황에서는 조기 경보와 지휘통제, 미사일 방어, 연합 대응 절차를 빈틈없이 갖춰야 한다. 자주국방과 한미동맹은 양자택일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군의 독자적 능력을 강화하면서 동맹의 군사적 효율성을 유지하는 것이 전환의 본래 취지에 부합한다. 정부가 제시해야 할 것은 전환 시점만이 아니다. 어떤 조건을 충족했고 어떤 능력을 보완해야 하는지, 전환 이후의 연합방위태세를 어떻게 유지할 것인지 설명해야 한다. 물론 군사적 평가 결과를 모두 공개할 수는 없다. 작전계획과 정보자산의 성능, 전력상의 취약점은 엄격히 보호해야 한다. 다만 평가 절차와 주요 단계의 진척, 전력 확보 계획, 예산 집행 현황 등 국민이 정책의 적절성을 판단할 수 있는 정보는 가능한 범위에서 공개할 필요가 있다. 국회도 비공개 보고 등 적절한 절차를 통해 검증 기능을 수행해야 한다. 정책의 성공과 실패를 판단할 기준도 미리 세워야 한다. 우선 한미가 합의한 핵심 조건을 충족했는지가 출발점이다. 전환 과정에서 지휘·통제의 공백이 발생하지 않는지, 연합작전의 신속성과 효율성이 유지되는지도 확인해야 한다. 북한 핵·미사일 위협에 대한 대응 능력과 미국의 확장억제 및 지원체계가 약화하지 않는지 역시 중요한 판단 기준이다. 핵심 전력 확보가 지연되거나 예산을 투입하고도 필요한 능력을 갖추지 못했다면 사업 관리의 책임을 따져야 한다. 평가 결과를 왜곡하거나 중대한 위험을 의사결정 과정에서 누락했다면 그 경위도 규명해야 한다. 다만 이러한 위험이 현재 모두 발생했다고 단정해서는 안 된다. 정부의 정책 방향을 비판하는 것과 아직 확인되지 않은 안보 실패를 기정사실화하는 것은 구분해야 한다. 정치권의 태도도 중요하다. 여당은 전작권 전환을 정권의 성과로만 설명하려는 유혹을 경계해야 한다. 야당 역시 전환 자체를 안보 불안과 동일시하기보다 구체적인 군사적 조건과 검증 절차를 따져야 한다. 국가안보를 둘러싼 논쟁이라면 어느 쪽이 더 강한 구호를 외치는지가 아니라 어느 주장이 더 확실한 근거를 갖췄는지로 판단해야 한다. 전작권 전환을 늦추는 것만이 신중한 정책은 아니다. 필요한 군사능력을 갖췄는데도 결정을 미루는 것은 한국군의 책임성과 자율성을 확대할 기회를 놓치는 일이 될 수 있다. 반대로 준비가 부족한데도 정해진 일정에 맞추기 위해 전환을 서두른다면 그 위험은 군과 국민이 감당해야 한다. 결국 중요한 것은 속도보다 검증이다. 대통령은 정책 결정의 이유와 위험 관리 방안을 설명하고, 국방부는 전력 확보와 연합방위태세 유지의 책임을 다해야 한다. 군 지휘부는 정치적 고려에 흔들리지 않고 작전능력을 평가해야 한다. 문제가 발생했을 때는 사실관계와 원인을 조사하고, 직무상 잘못이 확인된 경우 그에 상응하는 책임을 물어야 한다. 전작권 전환은 정권의 자존심을 세우는 사업도, 무조건 막아야 할 정치적 논쟁거리도 아니다. 대한민국이 한미동맹의 틀 안에서 스스로 연합방위를 주도할 능력을 갖췄는지 입증하는 과정이다. 전환 시점을 앞당기는 데 성공하더라도 억제력과 연합방위태세가 약해진다면 성공이라고 할 수 없다. 반대로 합의한 조건을 충족하고 안보 역량을 강화했다면 그것이야말로 국가가 책임 있게 이뤄낸 전작권 전환이다.
2026-10-20 13:5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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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아파트값 17억 원 육박…정부는 집값 폭등 책임에서 자유로운가
[경제일보] 서울 아파트값이 17억원에 육박하는 현실은 대한민국 주택 정책에 대한 엄중한 성적표다. 월급을 꼬박꼬박 모아도 내 집 마련의 꿈을 이루기 어려운 사회에서 17억원은 단순한 가격 지표가 아니다. 청년에게는 출발선의 격차이고, 무주택 서민에게는 계층 이동의 문이 닫히고 있다는 경고다. 집값 상승으로 자산을 불린 사람은 웃을지 모르지만, 집 없는 국민에게는 노동의 가치마저 무색하게 만드는 장벽이다. 주거 불안이 결혼과 출산을 늦추고 소비를 위축시키며 경제의 활력까지 갉아먹는다면, 이를 방치한 정부의 정책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 정부는 집값이 오를 때마다 공급 확대와 시장 안정을 약속해 왔다. 그러나 국민이 확인하고 싶은 것은 발표 자료의 숫자나 장밋빛 청사진이 아니다. 실제로 언제, 어디에, 얼마나 많은 주택이 공급되는지다. 공급 대책을 내놓고도 인허가와 정비사업 절차가 지연되고, 규제 완화와 강화가 되풀이돼 시장의 예측 가능성을 떨어뜨린다면 정책은 신뢰를 얻기 어렵다. 집값을 잡겠다는 구호가 반복되는 동안 가격 부담이 커졌다면 정부는 먼저 정책의 무엇이 잘못됐는지 따져야 한다. 외부 요인과 시장 탓만 앞세우는 것은 책임 있는 국정 운영의 자세가 아니다. 부동산 정책 실패의 핵심은 수요와 공급의 현실을 이념과 정치 일정에 종속시킨 데 있다. 주택은 수요가 몰리는 곳에 제때 공급돼야 한다. 서울과 수도권에 일자리·교통·교육 인프라가 집중된 현실을 외면한 채 외곽의 공급 목표만 늘어놓는다고 도심의 주택난이 해결되지는 않는다. 재개발·재건축의 불합리한 규제와 복잡한 인허가 절차를 손질하고 사업 기간을 단축해 실제 입주로 이어지도록 해야 한다. 정부가 공급 확대를 약속하고도 지방자치단체와 관계 부처의 엇박자를 조정하지 못한다면 그 약속은 공허하다. 공급 계획의 숫자를 성과로 포장하는 관행부터 끝내야 한다. 그렇다고 규제만 풀면 시장이 저절로 안정된다는 주장도 경계해야 한다. 공급 확대의 이익이 기존 주택 소유자와 개발사업자에게만 집중되고 실수요자의 부담은 줄지 않는다면 정책 목표를 달성했다고 할 수 없다. 정부는 사업성 확보와 공공기여 사이의 합리적 균형을 마련하고 교통·학교·생활 기반시설도 함께 확충해야 한다. 무엇보다 착공·준공·입주 실적을 공개하고 계획 대비 지연 사유와 책임 주체를 분명히 밝혀야 한다. 정책의 성패를 홍보가 아니라 데이터와 결과로 평가받게 하는 것이 책임 행정의 출발점이다. 무주택자를 위한 주거 사다리가 무너진 현실도 더는 외면할 수 없다. 청년과 신혼부부에게 대출을 늘려 집을 사라고 권하는 것은 근본 해법이 아니다. 소득에 맞는 공공임대주택과 합리적인 가격의 분양주택을 충분히 확보하고 전세 사기와 임대료 급등으로부터 세입자를 보호해야 한다. 금융 지원은 상환 능력을 고려해 설계하되, 정책 변화로 실수요자가 갑작스럽게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지 않도록 예측 가능성을 높여야 한다. 집값을 감당할 수 없는 국민에게 더 많은 빚을 지우는 방식으로 주거 문제를 해결해서는 안 된다. 투기 수요와 불법 거래를 차단하는 일도 필요하다. 다만 실수요자와 투기 수요를 구분하지 못한 획일적 규제는 거래를 왜곡하고 선의의 피해자를 낳을 수 있다. 불법 대출과 편법 증여, 시세 조작에는 엄정하게 대응하되 과세와 대출 규제는 명확한 기준 아래 일관되게 운용해야 한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책이 뒤집히고 정부 메시지가 엇갈리면 시장은 정책의 빈틈을 학습한다. 그 대가는 결국 무주택자와 서민의 부담으로 돌아간다. 정부는 이제 선택해야 한다. 정책 실패를 인정하고 실효성 있는 대책으로 신뢰를 회복할 것인가, 아니면 또 다른 공급 목표와 규제 대책을 발표하며 시간을 보낼 것인가. 정치권도 집값을 정쟁의 소재로 삼을 것이 아니라 공급과 주거 복지, 투기 억제를 아우르는 장기적 합의를 만들어야 한다. 집은 투기의 수단이기에 앞서 국민의 삶을 지탱하는 기반이다. 서울 아파트값이 17억원에 육박하는 현실 앞에서 국민에게 인내만 요구할 수는 없다. 정부는 정책의 결과로 책임을 평가받아야 한다. 무너진 주거 사다리를 복원하는 일은 선택 가능한 정치 구호가 아니라 국가가 져야 할 책무다.
2026-10-18 16:2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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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퇴 한 달 김용범, 왜 다시 '국채'를 꺼냈나
[경제일보] 김용범 전 청와대 정책실장이 다시 경제정책의 화두를 던졌다. 이번에는 부동산도, 증시도 아니다. 국채다. 김 전 실장이 최근 쓴 ‘국채가 흔들리는 시대’의 출발점은 글로벌 금리다. 미국과 일본, 프랑스에서 동시에 나타나는 장기금리 상승을 단순한 인플레이션 후유증이 아니라 지난 15년간 이어졌던 저금리 체제의 변화로 봤다. 글만 놓고 보면 채권시장 분석이다. 그러나 작성 시점과 김 전 실장의 현재 위치를 함께 놓으면 의미가 조금 달라진다. 김 전 실장은 지난 9월 1일 이재명 정부 초대 정책실장에서 물러났다. 정부 출범 후 15개월 만이었다. 한미 통상협상과 반도체·피지컬 AI·AI 데이터센터를 묶은 3대 메가프로젝트를 지휘했지만,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와 부동산·세제 정책을 둘러싼 논란이 이어지면서 책임론도 동시에 받았다. 퇴임 이후에도 논란은 끝나지 않았다. 국민의힘은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 도입 과정에서 부당한 압력이 있었는지 등을 규명해야 한다며 김 전 실장 등을 공수처에 고발했다.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 증인으로 불러야 한다는 요구도 나왔다. 다만 현재까지 제기된 내용은 정치권의 의혹과 고발 단계다. 10월 1일 정무위가 채택한 증인 명단에는 김 전 실장이 포함되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김 전 실장이 선택한 주제가 국채와 반도체, 그리고 미래대응기금이라는 점은 눈여겨볼 만하다. 특히 미래대응기금은 그의 정책실장 재임기를 상징하는 정책 가운데 하나다. 김 전 실장은 지난 7월 반도체 호황에 따른 추가 세수를 두고 “아주 의미 있는 규모의 돈이 모일 것”이라며 청년·미래·지역·교육에 활용하는 구상을 설명했다. 흥미로운 것은 그가 자리에서 물러난 9월 1일 정부가 2027년도 예산안을 발표하며 162조3000억원 규모의 미래대응기금을 공식화했다는 점이다. 한 사람의 정책실장 임기는 끝났지만 그가 밀었던 정책은 오히려 제도화 단계에 들어간 셈이다. 이번 글에서 김 전 실장이 “정부에서 일하며 호황기 세수가 가진 중력을 여러 번 봤다”고 회고한 대목도 그래서 그냥 지나치기 어렵다. 세수가 늘면 중앙부처와 지방정부, 교육청마다 쓸 이유가 생기고, 한 번 늘어난 지출은 다시 줄이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가 미래대응기금을 설명하면서 ‘의지만으로는 이 중력을 이기기 어렵다. 법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최근 숫자는 그의 문제의식을 뒷받침한다. 정부는 지난달 30일 올해 국세수입을 478조6000억원으로 다시 추산했다. 추경예산보다 63조2000억원 많다. 반도체 호황과 특별배당, 증시 활성화 등이 주요 원인이다. 9월 수출도 사상 최대를 기록했고 반도체 수출은 전년 동월보다 263% 증가했다. 한국 경제가 말 그대로 반도체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뜻이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김 전 실장이 이번 글에서 가장 경계하는 것도 현재의 고금리 자체보다는 반도체 호황이 끝났을 때의 한국 경제다. 지금은 반도체 수출과 기업이익이 성장과 세수, 외환수급을 동시에 받치고 있다. 그러나 반도체 업황이 꺾이면 상황은 반대로 움직일 수 있다. 성장과 세수가 둔화되고 무역흑자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글로벌 장기금리마저 높은 수준을 유지한다면 한국 경제가 쓸 수 있는 완충재는 줄어든다. ◇ 왜 지금 ‘국채’인가 글의 또 다른 축은 세계 금융시장의 변화다. 최근 미국 국채 10년물 금리는 5%를 넘어 2000년대 초 이후 가장 높은 수준까지 올라갔다. 미국 고용이 둔화하면서 연방준비제도의 추가 금리 인상 기대가 낮아졌지만 장기금리는 쉽게 떨어지지 않고 있다. 과거라면 경기 둔화 조짐이 나타났을 때 국채 금리는 먼저 내려가는 경우가 많았다. 지금은 다르다. 미국 정부의 막대한 재정적자로 국채 공급이 늘고 있는 데다 AI 투자 붐까지 자본시장 수요를 키우고 있다. 글로벌 빅테크는 데이터센터와 GPU, 전력 인프라를 확보하기 위해 과거와 비교하기 어려운 규모의 돈을 쓰고 있다. 올해 들어 AI 관련 기업들이 채권시장에서 조달하는 금액도 빠르게 증가했다. 정부와 기업이 동시에 돈을 필요로 하는 구조다. 일본도 상황이 달라졌다. 일본 국채 10년물 금리는 최근 3%를 기록해 약 30년 만의 최고 수준으로 올라섰다. 일본 금리가 오르면 장기간 해외에 투자됐던 일본계 자금의 움직임도 달라질 수 있다. 프랑스의 변화는 더 직접적이다. 재정 우려가 커지면서 독일 국채와의 금리차가 확대됐고, 국가 신용위험을 나타내는 CDS도 2013년 이후 가장 높은 수준까지 올라왔다. 여기에 중동 정세 불안으로 국제유가까지 배럴당 100달러를 넘나들고 있다. 김 전 실장이 재정, AI 투자, 인플레이션, 지정학이라는 네 가지 요인을 국채 금리 상승 원인으로 나눈 배경이다. 결국 그의 주장은 간단하다. 2010년대의 초저금리가 정상적인 상태였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 시장 분석인가, 정책 유산에 대한 설명인가 이번 글에는 개인적인 회고가 이례적으로 많이 들어 있다. 김 전 실장은 재임 당시에도 SNS에 장문의 경제정책 글을 꾸준히 올렸다. 정책실장이 직접 증시와 부동산, 산업정책을 설명하면서 시장이 그의 표현 하나하나에 반응하기도 했다. 이번 글도 그 연장선에 있다. 다만 차이가 있다. 당시에는 정책을 결정하는 사람의 글이었다면 지금은 자리에서 물러난 정책 설계자의 글이다. 그래서 “좋을 때 무엇을 남길 것인가”라는 질문은 시장 전망인 동시에 자신의 정책 선택에 대한 설명으로도 읽힌다. 특히 미래대응기금이 그렇다. 정부는 내년 기금에 162조3000억원을 적립해 청년과 성장동력, 지방, 교육·인재 등 4개 분야에 45조4000억원을 쓰고 나머지는 국채 발행 축소와 여유자금으로 운용할 계획이다. 하지만 제도가 출범하기도 전에 논쟁은 시작됐다. 국회예산정책처는 추가·초과 세수를 기금에 적립한 뒤 필요할 경우 일반회계로 전출하는 구조에 대해 분석을 진행하고 있다. 야당에서는 국회의 예산 심의권이 약화될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지방자치단체들도 지방교부세가 줄어들 수 있다며 자신들의 몫을 요구하고 있다. 김 전 실장이 글에서 “기금의 입법도 중요하지만 꺼내 쓰는 원칙을 엄격하게 세워야 한다”고 강조한 부분은 오히려 이런 논란을 의식한 메시지로 읽힐 수 있다. 기금을 만드는 것보다 더 어려운 것은 쓰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 ◇ 김용범의 진단, 어디까지 맞을까 큰 방향에서는 최근 금융시장이 그의 진단과 상당 부분 겹친다. 글로벌 국채금리가 중앙은행의 정책금리 전망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현상은 이미 뚜렷하다. 정부 부채 증가와 AI 투자에 따른 자금 수요가 장기금리를 끌어올리고 있다는 분석도 힘을 얻고 있다. 한국에 반도체라는 강력한 완충재가 있다는 분석 역시 현재 숫자만 보면 설득력이 있다. 올해 세수 증가와 기록적인 수출의 상당 부분이 반도체에서 나오고 있다. 그러나 바로 그 점이 한국 경제의 위험이기도 하다. 반도체가 잘될수록 성장률도 높아지고 세수도 늘어난다. 정부의 정책 여력도 커진다. 반대로 반도체가 흔들리면 그 효과가 동시에 반대 방향으로 움직인다. 지금 미래대응기금을 둘러싼 논쟁의 본질도 여기에 있다. 호황으로 생긴 돈을 지금 쓸 것인가. 다음 불황을 위해 남길 것인가. 아니면 AI와 인재, 새로운 산업에 투자해 반도체에 대한 의존도를 낮출 것인가. 김 전 실장은 세 번째 길을 선택해야 한다는 입장에 가깝다. 다만 그 답이 미래대응기금 하나로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국회의 통제, 지방재정과의 관계, 투자 사업의 선정 기준, 기금에서 돈을 꺼낼 수 있는 조건을 얼마나 엄격하게 정하느냐가 남았다. 기금이 미래 투자를 위한 완충장치가 될 수도 있고, 또 하나의 거대한 지출 통로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김용범은 정책실장에서 물러났다.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를 둘러싼 논란도 아직 정치권에서 끝나지 않았다. 현재 공개적으로 확인되는 새로운 공직은 없다. 그럼에도 그가 다시 시장과 정책에 대해 긴 글을 쓰는 이유는 적어도 글 안에서는 분명해 보인다. 자신이 정부 안에서 보았던 호황기의 재정 메커니즘을 설명하고, 자신이 추진했던 미래대응기금이 왜 필요했는지를 다시 말하는 것이다. 이를 정치적 복귀 신호라고 단정할 근거는 없다. 오히려 현재로서는 정책실장에서 경제정책 논객으로 위치가 바뀌는 과정에 가깝다. 한 달 전까지 정책을 만들던 사람이 이제 그 정책이 필요한 이유를 밖에서 설명하고 있다. 공교롭게도 시장은 그의 글에 유리한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국채금리는 오르고 있고, AI 투자는 더 많은 자본을 빨아들이고 있다. 반도체는 한국 경제에 전례 없는 호황을 가져왔다. 미래대응기금의 규모도 당초 예상보다 커질 가능성이 제기된다. 그래서 앞으로 볼 대목은 김용범 개인보다 정책이다. 반도체 호황이 끝난 뒤에도 한국에 남는 것이 무엇인가. 더 많은 의무지출만 남을 것인가. 아니면 신산업과 인재, 재정의 완충력이 남을 것인가. 한편 김 전 실장이 던진 ‘국채가 흔들리는 시대’라는 문제의식의 끝에는 결국 이 질문이 있다. 좋을 때 번 돈을 어떻게 쓰는가. 호황이 끝난 뒤 국가의 실력은 거기서 드러난다.
2026-10-03 22: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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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부총리 후보자의 '비거주 1주택', 정책 신뢰의 문제다
[경제일보] 이형일 경제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 후보자의 ‘비거주 1주택’이 15일 국회 인사청문의 쟁점으로 떠올랐다. 이 후보자는 부부 공동명의로 경기 과천 아파트를 보유했지만 장기간 실제 거주하지 않았다. 정부가 실수요와 실거주 중심의 주택시장 정착을 강조하는 상황에서 경제정책을 총괄할 후보자의 주택 보유 형태가 정부 정책 방향과 부합하느냐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국회에 제출된 인사청문요청안 등에 따르면 이 후보자는 과천 아파트를 2009년 매입해 약 17년간 보유했지만 실제 전입해 거주한 기간은 두 차례, 모두 합쳐 4개월가량이다. 2012년 기획재정부의 세종시 이전 이후 거주지를 옮겼고 2015년부터 3년 동안은 세계은행으로 해외 파견을 나갔다. 이후에도 다른 지역에서 임차해 생활했다. 해당 아파트는 재건축으로 현재 멸실된 상태다. 이런 사정을 무시한 채 장기간 거주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곧바로 ‘투기 주택’이라는 딱지를 붙이는 것은 온당하지 않다. 이 후보자 역시 국회 서면답변에서 거주하지 않았다는 사실만으로 투기적 수요로 단정하기는 어렵다는 취지로 답했다. 일리가 있다. 주택 취득 시기와 목적, 직장 이동, 가족 사정, 임대 경위 등을 살피지 않고 거주 여부 하나만으로 투기와 실수요를 가를 수는 없다. 문제는 이 후보자가 평범한 1주택자가 아니라는 데 있다. 경제부총리는 세제와 금융, 부동산 정책을 총괄하는 자리다. 이 후보자는 “거주 중심 주택시장을 정착시키는 것이 정부가 생각하는 일정한 방향성”이라는 입장도 밝혔다. 정부도 비거주 1주택자의 종합부동산세 기본공제를 낮추는 방안은 철회했지만 실거주자에게 세제상 혜택을 주고, 보유기간 공제를 거주기간 중심으로 바꾸는 정책 방향은 유지하고 있다. 그렇다면 국민에게 적용하려는 원칙이 정책 책임자 자신에게 적용될 때도 같은 논리가 성립하는지 설명해야 한다. 이것은 위법 여부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 후보자가 주택을 보유하면서 법을 어겼다는 사실이 확인된 것도 아니다. 집 한 채를 오래 보유했다는 사실 자체가 도덕적 흠결일 수도 없다. 오히려 직장 이동이 잦거나 지방·해외 근무를 하는 사람이 집 한 채를 보유했다는 이유로 투기자로 취급받는다면 그것 역시 불합리하다. 그래서 이번 논란은 역설적으로 정부의 ‘실거주 중심’ 부동산 정책이 얼마나 정교하게 설계돼야 하는지를 보여준다. 실거주와 비거주에 세제상 차이를 둔다면 그 이유부터 분명해야 한다. 투기 억제가 목적이라면 장기 보유 1주택자와 단기 시세차익을 노린 주택 보유를 같은 잣대로 다뤄서는 곤란하다. 직장 이전이나 해외 근무, 부모 봉양, 자녀 교육, 재건축처럼 실제 거주하기 어려운 사정도 있을 수 있다. 실거주라는 한 가지 기준만 지나치게 강조하면 정상적인 주거 이동까지 제약하는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 이 후보자의 사례가 바로 이런 질문을 던진다. 자신의 비거주에는 불가피한 사정이 있었다면 국민에게도 같은 예외와 합리적인 기준이 적용돼야 한다. 반대로 정부가 비거주 주택에 실거주 주택보다 높은 세 부담을 지우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한다면 정책 책임자 역시 같은 원칙을 받아들이는 것이 맞다. 정책의 신뢰는 말보다 일관성에서 나온다. 특히 부동산 정책은 그렇다. 역대 정부는 시장 상황에 따라 다주택 규제와 대출 규제를 강화했다가 다시 완화하는 일을 반복했다. 실거주를 강조하면서도 공급이나 거래가 위축되면 규제를 다시 손질했다. 정책이 시장의 신뢰를 얻으려면 상황에 따라 기준이 흔들린다는 인상을 줘서는 안 된다. 국민은 정부 발표보다 실제로 어떤 원칙이 누구에게나 일관되게 적용되는지를 본다. 경제부총리에게 요구되는 것도 같은 기준이다. 국민에게 거주 중심의 주택시장을 강조하면서 자신의 경우에는 ‘사정이 다르다’는 설명에 그친다면 설득력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반대로 자신의 사례를 통해 현행 정책이 현실의 다양한 주거 형태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는지 살피고 합리적인 보완책을 제시한다면 논란은 오히려 정책을 정교하게 만드는 계기가 될 수 있다. 15일 인사청문회도 ‘17년 보유, 4개월 거주’라는 숫자만 놓고 투기 여부를 몰아붙이는 정치공방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야당은 매입 자금과 취득 목적, 임대 경위, 실제 거주하지 않은 이유 등을 객관적으로 검증해야 한다. 이 후보자 역시 세종 이전과 해외 근무 등 불가피한 사정만 설명할 게 아니라 장기간 비거주 주택의 보유·임대 경위와 그에 따른 경제적 이해관계를 소상히 밝힐 필요가 있다. 자신이 추진할 실거주 중심 세제에서 자신의 사례는 어떻게 취급돼야 한다고 보는지도 분명히 설명해야 한다. 무엇보다 정부가 답해야 할 질문이 있다. 집 한 채를 갖고 있으면서 다른 집에서 사는 사람을 어떤 원칙으로 바라볼 것인가. 투기 수요인가, 실수요인가. 아니면 각각의 사정을 따져 판단할 것인가. 이 기준이 명확하지 않은 상태에서 세금부터 차등하면 정책이 현실의 다양한 주거 형태를 따라가지 못할 수 있다. 공직자의 재산을 검증하는 이유는 집을 가진 것이 잘못이어서가 아니다. 국민의 삶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정책을 만드는 사람이 자신에게도 같은 원칙을 적용할 수 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서다. 이 후보자는 비거주 사실만으로 투기로 단정하기 어렵다고 했다. 그렇다면 그 원칙은 국민에게도 똑같이 적용돼야 한다. 정부가 실거주를 부동산 정책의 중요한 기준으로 삼겠다면 왜 그래야 하는지, 직장이나 가족 사정 등으로 불가피하게 거주하지 못하는 사람은 어떻게 다룰 것인지도 함께 설명해야 한다. 정책은 국민에게만 엄격하고 정책을 만드는 사람에게 관대해서는 신뢰를 얻을 수 없다. 경제부총리 후보자의 집 한 채가 던지는 질문은 그래서 단순한 부동산 문제가 아니다. 국민에게 요구하는 원칙을 정책 책임자 자신에게도 적용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정책에 신뢰가 생긴다.
2026-09-14 09:1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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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 AI 인사 전면 배치한 정부…'AI 3대 강국' 실행력 시험대
[경제일보] 정부가 인공지능(AI) 정책을 이끌 핵심 인선을 잇달아 단행하면서 그동안 흩어져 있던 AI 정책의 방향을 정비하고 산업 현장에서 체감할 수 있는 실행력을 높이는 데 속도를 낼 전망이다. 민간 AI·정보기술(IT) 분야 경험을 갖춘 인사를 전면에 배치한 만큼 정책을 만드는 데 그치지 않고 기업의 AI 투자와 기술 개발, 서비스 확산으로 연결할 수 있을지가 관건으로 떠올랐다. 31일 업계에 따르면 정부는 최근 이해민 AI미래기획수석과 하정우 국가AI전략위원회 부위원장을 잇달아 기용하며 AI 정책 컨트롤타워 재정비에 나섰다. AI 산업을 국가 경쟁력의 핵심 축으로 삼고 대규모 투자를 추진하는 상황에서 정책을 구체화하고 부처 간 조율을 강화하기 위한 움직임으로 풀이된다. 이번 인선은 민간 현장 경험을 갖춘 인사를 AI 정책 전면에 배치한 것이 특징이다. AI 기술과 산업 현장의 변화를 직접 경험한 인사들이 정책 결정 과정에 참여하면서 기술 개발 기업과 실제 AI를 도입하는 기업 사이의 간극을 줄이는 역할을 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AI 산업은 기술 변화 속도가 빠른 만큼 정책 결정이 늦어질 경우 기업의 투자와 사업 추진에도 불확실성이 커질 수 있을 것으로 평가된다. 기업 입장에서는 어떤 분야에 정부 지원이 집중되는지, 데이터와 컴퓨팅 인프라를 어떻게 활용할 수 있는지, AI 서비스를 둘러싼 규제가 어느 수준에서 적용되는지에 따라 연구개발과 설비투자 규모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AI는 특정 산업에 국한된 기술이 아니라 제조·금융·통신·의료·유통·콘텐츠 등 산업 전반의 생산성을 좌우하는 범용 기술로 확산하고 있다. 정부가 AI를 국가 성장동력으로 제시하면서도 실제 현장에서 기업이 어떤 기준에 따라 AI를 도입해야 하는지가 명확하지 않다면 정책 목표와 산업 현장 사이에 간극이 발생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정부가 추진하는 AI 관련 대규모 투자 역시 실제 산업 성과로 이어지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중요할 것으로 전망된다. 정부가 컴퓨팅 인프라와 연구개발에 투자하더라도 기업이 이를 활용해 제품을 개발하고 매출을 만들어내지 못한다면 국가 차원의 AI 경쟁력 강화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특히 국내 AI 산업은 글로벌 빅테크와 경쟁해야 하는 동시에 제조·반도체·통신·자동차 등 국내 산업의 AI 전환도 동시에 추진해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다. 이에 AI 모델을 개발하는 기업뿐 아니라 이를 실제 업무와 생산 현장에 적용하는 수요기업까지 함께 성장할 수 있는 생태계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는 평가다. 이 과정에서 정부 정책의 일관성도 중요한 변수다. AI 기술은 정부 임기보다 긴 시간과 막대한 자본이 필요한 분야인 만큼 기업들이 단기적인 지원사업보다 중장기적인 정책 방향을 보고 투자 결정을 내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정책이 부처별로 나뉘거나 규제 기준이 빠르게 바뀔 경우 기업 입장에서는 투자 시점과 사업 방향을 결정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 AI 정책 컨트롤타워가 명확해지면 이러한 불확실성을 줄일 수 있다는 기대도 나온다. AI 산업 육성, 규제 개선, 인프라 확충, 인재 양성 등 여러 정책이 개별 부처 단위로 추진되는 대신 하나의 국가 전략 아래 연계될 경우 기업이 정부 정책의 방향을 예측하고 투자와 사업 계획을 세우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다만 이번 인선만으로 산업 현장의 변화가 자동으로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AI 기업이 기술 개발을 위해 필요한 데이터와 GPU 등 컴퓨팅 자원을 확보할 수 있는지, 기업들이 AI 서비스를 도입할 때 불필요한 규제에 발목 잡히지 않는지, 정부 지원이 실제 매출과 수출 등 산업 성과로 이어지는 정책 결정 속도와 현장 적용력이 중요해질 전망이다. 특히 AI 도입 과정에서 기업들이 가장 우려하는 것은 기술 자체보다 정책과 규제의 불확실성이 될 수 있다. 새로운 AI 기술이 등장할 때마다 어떤 규제가 적용되는지 해석이 달라지거나 부처마다 다른 기준을 제시할 경우 기업은 기술 개발보다 규제 대응에 더 많은 시간과 비용을 투입할 수밖에 없다. 이에 정부가 'AI 3대 강국'이라는 목표를 현실화하기 위해서는 산업 현장에서 혼선을 줄이는 것이 우선 과제로 꼽힌다. AI 개발 기업에는 사업화의 길을 열고, AI를 활용하려는 기업에는 명확한 규칙을 제시하며, 필요한 인프라와 인재를 적시에 공급하는 방식으로 정책의 속도를 높여야 한다는 것이다. 정부가 민간 경험을 갖춘 AI 인사를 전면에 배치한 것도 결국 이러한 실행력을 높이기 위한 포석으로 풀이된다. 앞으로 정부가 내놓을 AI 정책의 성패 역시 새로운 조직이나 인물의 등장 자체보다 이들이 현장의 목소리를 얼마나 빠르게 정책에 반영하고 기업의 투자와 AI 도입을 실제 성과로 연결하느냐에 달릴 전망이다. 하정우 국가인공지능전략위원회 신임 상근부위원장은 이날 취임식에서 "국가AI전략위원회가 국가 AI 비전을 제시하고 민간의 혁신 역량과 정부의 정책 역량을 연결해 실제 성과를 만들어내는 국가 AI 거버넌스의 중심축이 돼야 한다"며 "필요한 정책은 신속하게 결정하고 부처 간 쟁점은 적극적으로 조정하며 현장의 걸림돌은 과감히 해소하겠다"고 말했다.
2026-08-31 18: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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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대통령, ISA·주가누르기법 재검토 지시…여야 공방 격화
[경제일보] 이재명 대통령이 정부가 발표한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 개편안과 이른바 ‘주가 누르기 방지법’에 대해 전면 재검토를 지시하면서 정부가 수정안 마련에 착수했다. 당초 정부가 마련한 세제 개편안에 대해 투자자와 정치권에서 비판이 잇따르자 대통령이 직접 제동을 건 것이다. 여당 내에서는 그동안 정책을 공개적으로 비판해 온 의원들이 재검토 지시에 환영의 뜻을 나타낸 반면, 국민의힘은 정책을 졸속으로 추진한 책임을 정부와 대통령이 회피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8일 정치권에 따르면 정부는 이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ISA 개편안과 주가 누르기 방지법 개선안을 다시 검토하고 국회와의 협의에도 나설 예정이다. 당초 정부 세제 개편안은 오는 20일까지 입법예고를 거친 뒤 28일 차관회의와 다음 달 1일 국무회의를 거쳐 정기국회에 제출될 예정이었다. 대통령이 원점 재검토를 지시한 만큼 국회 제출 전 정부안을 수정하는 방안에 무게가 실린다. ◆ ISA 혜택 축소 논란에 대통령 직접 재검토 논란의 중심에 선 ISA는 예·적금과 펀드, 주식 등 여러 금융상품을 하나의 계좌에서 운용하면서 세제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절세형 계좌다. 정부가 마련한 개편안에는 국내 자산에 투자하는 ‘생산적 금융 ISA’를 신설하고 기존 ISA의 의무 가입 기간을 단축하는 방안 등이 담겼다. 국내 증시로 자금을 유도하기 위한 취지였지만 기존 ISA의 세제 혜택을 축소하는 것 아니냐는 투자자들의 반발이 나왔다. 특히 장기투자를 유도하기 위해 ISA를 활용해 온 개인투자자 입장에서는 국내 투자 활성화를 위해 기존 계좌의 혜택을 줄이는 방식이 적절한지를 놓고 논란이 커졌다. 이 대통령은 전날 세제 개편안을 둘러싼 비판 여론이 확산하자 담당 부처를 질타하며 관련 내용을 전면 재검토하라고 지시했다. 정책 발표 이후 시장과 정치권에서 예상보다 큰 반발이 나오면서 정부가 당초 마련한 개편안의 실효성과 부작용을 다시 따져보게 된 것이다. ◆ 주가 누르기 방지법도 실효성 논란 주가 누르기 방지법을 둘러싼 논란도 적지 않았다. 해당 법안은 일정 기간 주가순자산비율(PBR)이 낮은 기업을 대상으로 주주가치 제고를 유도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정부안에서는 최근 13개 반기 가운데 12개 반기 동안 PBR이 코스피 업종별 하위 25%, 코스닥 하위 10%에 해당하는 기업 등을 규제 대상으로 삼는 내용이 포함됐다. 문제는 기업들이 일부 기간에만 PBR 순위를 관리하는 방식으로 규제를 피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규제 기준을 충족하기 위해 일시적으로 주가를 관리한 뒤 다시 이전 상태로 돌아갈 가능성이 있는 만큼 제도의 실효성을 놓고 논란이 제기됐다. 주가 누르기 방지법은 여당 내부에서도 의견이 엇갈렸다. 이소영·이훈기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은 그동안 관련 법안과 정부안의 보완 필요성을 공개적으로 제기해왔다. 대통령의 재검토 지시가 나오자 이들은 즉각 환영의 뜻을 밝혔다. 이언주 민주당 의원은 이날 “수많은 개미투자자에게 ‘장기투자’를 위해 ISA 계좌를 권유했던 본래의 약속을 지켜야 한다”며 “더 이상은 신뢰를 잃어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이어 “지금이라도 대통령께서 문제점을 인식하고 바로잡도록 조치하신 것에 대해 다행스럽게 생각하며 적극 환영한다”고 말했다. 이소영 의원도 대통령의 재검토 지시와 관련해 “바로잡겠다. 재정경제부는 정신 차리시라”고 밝혔다. 이훈기 의원은 “이소영 의원과 제가 대표 발의한 주가 누르기 방지법안이 국회에서 통과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며 “‘K-코스닥 지킴이’, ‘K-개미 지킴이’가 되겠다”고 말했다. 그동안 정부안에 대한 여당 내 공개적인 이견이 대통령의 재검토 지시를 계기로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른 셈이다. ◆ 국민의힘 “졸속 국정…책임 회피” 국민의힘은 대통령의 재검토 지시를 비판했다. 정책의 내용 자체뿐 아니라 정부가 정책을 발표한 뒤 여론이 악화하자 대통령이 담당 부처를 질책하며 방향을 바꾸는 과정 자체를 문제 삼았다. 박성훈 국민의힘 수석대변인은 이날 논평에서 “비겁한 책임 회피”라며 “일단 발표하고 국민이 반발하면 고치는 졸속 국정을 즉각 중단하라”고 밝혔다. 박 수석대변인은 “이 대통령은 재검토를 지시하며 ‘왜 제대로 보고하지 않고 진행했느냐’고 참모들을 질책했다”며 “국민이 분노하면 정책 입안자를 탓하고, 문제가 터지니 보고가 잘못됐다고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여론의 거센 저항이 없었다면 졸속 개편안을 그대로 밀어붙였을 것 아니냐”며 “결국 드러난 것은 대통령도, 청와대도, 정부도 발표 전에 정책의 파장과 부작용을 제대로 검증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라고 비판했다. ISA 개편과 함께 비거주 1주택자 과세 문제, 주가 누르기 방지 제도의 역효과 등을 거론하며 정부의 정책 검토 과정 자체를 문제 삼기도 했다.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도 이날 “ISA 한도 이월과 기한 연장은 반드시 원상복구 돼야 한다”며 “개악에 동의한 책임자들 역시 갈아치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 국회 제출 전 정부안 얼마나 바뀔까 이번 재검토의 핵심은 정부가 기존 개편안에서 어느 정도까지 수정안을 내놓느냐에 달렸다. 당초 정부안은 국내 자본시장으로 자금을 유도하고 기업의 주주가치 제고를 촉진한다는 정책 목표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그러나 ISA 혜택과 투자자의 장기투자 유인 사이의 충돌, PBR을 활용한 규제의 실효성 등이 논란이 되면서 세부 설계에 대한 보완이 불가피해졌다. 정부가 국민 의견을 반영한 개선안을 마련할 경우 기존 ISA 가입자의 혜택을 어떻게 유지할지, 생산적 금융 ISA를 기존 ISA와 어떤 관계로 설계할지 등이 주요 쟁점이 될 전망이다. 주가 누르기 방지법 역시 PBR 기준만으로 기업을 규제하는 방식의 실효성을 높이는 방안이 논의될 가능성이 있다. 단순히 특정 기간의 주가나 PBR을 기준으로 삼는 것보다 기업의 배당, 자사주 소각, 지배구조 개선 등 실제 주주환원 노력을 종합적으로 반영하는 방식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올 수 있다. 정부는 당초 일정대로라면 이달 입법예고 이후 차관회의와 국무회의를 거쳐 정기국회에 세제 개편안을 제출할 예정이었다. 대통령의 재검토 지시로 국회 제출 전 정부안이 얼마나 수정될지가 새로운 변수로 떠올랐다. 여야의 입장 차이도 커지고 있다. 민주당 내부에서는 대통령의 재검토 지시를 계기로 투자자 보호와 자본시장 활성화를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질 수 있다. 국민의힘은 정부가 정책을 충분히 검증하지 않은 채 발표한 뒤 여론에 따라 수정하고 있다며 공세를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2026-08-08 12:2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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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 병원 데이터를 AI 자산으로 바꾼다
[경제일보] KT가 연세의료원과 의료 데이터를 AI가 활용할 수 있는 형태로 고도화하는 협력에 나선다. 두 기관은 4일 서울 서대문구 연세의료원에서 업무협약을 맺었다. 협약식에는 김봉균 KT Enterprise부문장(부사장)과 금기창 연세의료원장 등이 참석했다. 병원이 보유한 진료 기록과 검사 결과, 의료 영상, 연구 데이터는 AI 시대의 핵심 자산으로 꼽힌다. 하지만 형태와 구조가 제각각이라 AI가 곧바로 학습하기 어렵다. 데이터를 표준화하고 구조화해 AI가 쓸 수 있는 형태로 바꾸는 작업이 의료기관 경쟁력을 가르는 지점이 된 이유다. 두 기관은 의료 데이터 표준화 기반 확대, 데이터 활용 인프라 고도화, AI 기반 의료 서비스 적용 방안 연구, 중장기 협력 체계 구축 등을 함께 수행한다. KT는 AX 플랫폼 역량으로 의료 데이터를 AI가 분석할 수 있는 디지털 자산으로 전환하고 안전한 활용 기반을 구축한다. 연세의료원은 현장 경험을 바탕으로 데이터 활용 요구사항을 제시하고 의료진 중심 활용 방안을 검토하는 역할을 맡는다. ◆ 정부, 올해 의료AI 실증과제 20개 신설 이번 협력은 정부 정책 흐름과 맞물려 있다. 보건복지부는 지난해 12월 의료데이터 활용 확대 방안을 내놓고 올해 의료 AI 솔루션의 성능과 효과를 검증하는 실증 과제 20개를 신설하기로 했다. 전국 43개 의료기관의 데이터 공급과 수요 매칭 비용도 정부가 지원한다. 의료데이터 중심병원을 통한 AI 모델 실증 사업도 새로 생겼다. 인프라 확충도 진행 중이다. 공공기관 행정데이터 중심이던 보건의료빅데이터플랫폼에 국립대병원 임상데이터가 연계되고 2028년까지 77만명 규모 국가통합바이오빅데이터가 구축된다. 올해 하반기부터 단계적으로 개방된다. 정부는 GPU를 확보해 대용량 데이터 원격분석이 가능한 분석시스템도 제공할 계획이다. 병원이 보유한 데이터를 AI가 쓸 수 있게 다듬어 두지 않으면 이런 사업에 참여할 수 없는 구조다. KT의 이번 행보는 지난달 6일 박윤영 대표가 발표한 'AX 플랫폼 컴퍼니' 전략의 연장선에 있다. KT는 3년간 18조원을 투입해 보안과 네트워크에 12조원, AI 데이터센터와 해저케이블 등 인프라에 6조원을 쓰겠다고 밝혔다. 기존 마이크로소프트 협력을 유지하면서 구글과 팔란티어, 국내 AI 기업으로 파트너십을 넓힌다는 계획도 함께 내놨다. 의료는 데이터 규모가 크고 규제 요건이 까다로워 클라우드와 보안 역량을 함께 요구하는 분야다. 통신사가 강점을 주장할 수 있는 영역이기도 하다. 경쟁도 만만치 않다. 네이버클라우드는 가톨릭중앙의료원에 협업 도구 '네이버웍스'를 공급했고 클라우드 전자의무기록(EMR) 기업 세나클소프트 지분을 확보하는 등 인프라 강화 전략을 펴고 있다. 병동 관리를 돕는 '클로바 널싱 에이전트'도 내놨다. SK텔레콤은 5G MEC 기반 저지연 네트워크와 의료 환경별 클라우드 인프라를 제공하며 GE헬스케어와 의료 데이터 디지털 전환 시장에 함께 뛰어들었다. 금기창 연세의료원장은 "의료의 미래 경쟁력은 데이터와 AI 활용 역량에 달려 있다"며 "진료·연구·교육 전 영역의 디지털 혁신을 가속화하겠다"고 말했다. 김봉균 부사장은 "AI의 경쟁력은 결국 데이터에서 시작된다"며 "의료 데이터를 AI 활용에 최적화된 형태로 고도화하는 노하우와 AX 플랫폼 기술을 바탕으로 의료 AI 생태계 발전을 이끌겠다"고 밝혔다. 한편 KT와 연세의료원은 업무 협력을 넘어 의료 서비스 혁신을 위한 연구 과제도 지속 발굴하고 다른 기관과의 협력도 확대한다는 방침이다. 다만 이번 협약은 구체적인 사업 규모나 투자액, 첫 결과물이 나올 시점이 공개되지 않았다.
2026-08-04 17:2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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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국민 대토론회, 소통보다 결론과 책임이 중요하다
[경제일보] 정부가 부동산 정책을 놓고 대대적인 국민 의견 수렴에 나섰다. 지난 14일부터 사흘 동안 주택 공급과 금융, 세제를 주제로 분야별 토론회를 열었고 23일에는 이재명 대통령이 직접 종합토론회를 주재했다. 당초 100분으로 예정됐던 토론은 세 시간 가까이 이어졌다. 들을 만큼 들었다. 정부가 이제 보여줘야 할 것은 더 많은 발언과 추가 토론이 아니라 정책의 결론이다. 부동산 정책은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갈리는 영역이다. 집을 가진 사람과 갖지 못한 사람의 요구가 다르고 서울과 지방의 처지도 같지 않다. 재건축을 추진하는 주민과 임대주택 확대를 요구하는 무주택자의 이해도 충돌한다. 세금을 올리자는 주장과 거래를 막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은 한 자리에서 좀처럼 합쳐지지 않는다. 모든 이해관계자의 동의를 얻은 뒤 정책을 결정하겠다는 접근으로는 어느 결론에도 이르기 어렵다. 국민 의견을 듣는 절차는 필요하지만 정책 결정의 책임까지 국민에게 나눠줄 수는 없다. 정부는 서로 충돌하는 요구 가운데 무엇을 받아들이고 무엇을 포기할지 선택해야 한다. 그 선택을 설명하고 정치적 부담까지 감당하는 일이 국정 운영이다. 지금 부동산 시장에는 토론보다 시간이 더 비싼 자원이 됐다. 서울 아파트값은 7월 셋째 주까지 76주 연속 올랐다. 올해 들어 서울 아파트값은 6.03% 상승했고 성북구와 강서구, 구로구 등 비강남권의 상승세도 두드러졌다. 서울 아파트 전셋값 역시 같은 주 0.27% 올랐다. 강남 일부 지역에 머물던 가격 불안이 중저가 지역과 임대차 시장으로 번지고 있다는 뜻이다. 정부가 결론을 미루는 동안 시장은 멈춰 서 있지 않는다. 집을 살 사람은 세금이 어떻게 바뀔지 몰라 계약을 늦춘다. 집을 팔 사람은 양도소득세 개편 가능성을 지켜보며 매물을 거둬들인다. 전세대출 규제 강화 가능성이 거론되면 임차인은 대출이 막히기 전에 계약부터 서두른다. 공급 계획이 확정되지 않으면 건설사는 토지 매입과 사업 추진을 미룬다. 정책을 결정하지 않은 상태도 시장에서는 하나의 정책으로 작용한다. 불확실성이 길어지면 정보와 현금을 가진 사람은 기다릴 수 있지만 자금 사정이 빠듯한 실수요자는 버티기 어렵다. 결정 지연의 비용은 정부가 아니라 국민이 부담한다. 이번 대토론회에서는 낯선 주제가 등장한 것도 아니다. 보유세를 어느 수준으로 올릴지, 실거주 1주택과 비거주 주택을 어떻게 구분할지, 초고가 주택의 기준을 어디에 둘지 의견이 엇갈렸다. 초고가 주택 기준으로 10억원과 30억원, 50억원이 각각 거론됐다. 양도소득세 비과세 혜택을 생애 한 차례로 제한하는 방안도 나왔다. 전세대출을 줄이되 청년과 신혼부부, 생애 최초 임차인에게는 선별적으로 지원하자는 제안도 제시됐다. 쟁점이 부족했던 것이 아니다. 정부가 정해야 할 기준과 수치가 남아 있을 뿐이다. 부동산 세제는 국민의 재산권과 직접 맞닿아 있다. 보유세를 올리면 보유 비용이 커지고 양도소득세를 손질하면 매물의 양과 거래 시점이 달라진다. 취득세는 무주택자가 처음 집을 마련하는 단계부터 영향을 미친다. 세율과 공제 기준을 조금만 바꿔도 누군가에게는 수천만원의 부담이 생긴다. 세금은 여론의 흐름에 따라 수시로 움직일 수 있는 정책 수단이 아니다. 누가 얼마를 부담해야 하는지 법률로 정하고 납세자가 자신의 재산 처분과 주거 계획을 미리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 같은 주택을 보유하고도 정책 발표 전후에 따라 부담이 크게 달라진다면 조세에 대한 신뢰가 흔들린다. 대출 규제도 마찬가지다. 주택담보대출과 전세대출, 잔금대출은 단순한 금융상품이 아니다. 한 가구의 이사와 결혼, 자녀 교육, 노후 계획이 걸려 있다. 계약 당시 가능했던 대출이 잔금 지급 직전에 막히면 국민은 집을 포기하거나 위약금을 물어야 한다. 정부가 대출 기준을 바꿀 수는 있다. 가계부채와 집값을 관리하기 위해 규제를 강화할 필요도 생긴다. 그러나 예고 기간과 경과조치 없이 정책 변경의 비용을 계약 당사자에게 넘길 권한까지 정부가 가진 것은 아니다. 기존 계약을 어디까지 보호할지, 어떤 사람을 실수요자로 볼지, 예외를 어느 범위에서 인정할지 정책 발표와 동시에 제시해야 한다. 공급 문제는 더 단순하다. 국민이 궁금한 것은 몇 년 뒤까지 몇십만가구를 공급하겠다는 총량이 아니다. 어느 지역에서 언제 인허가가 끝나고 착공과 준공은 언제 이뤄지는지가 중요하다. 공급 예정 물량은 삽을 뜨기 전까지 주택이 아니다. 준공과 입주로 이어지지 못한 공급 계획은 가격 불안을 잠시 달래는 발표문에 그친다. 정부가 할 일은 공급 확대의 당위성을 다시 토론하는 것이 아니다. 사업이 늦어지는 지구를 찾아 보상과 인허가, 기반시설 설치가 어디에서 막혔는지 밝히고 부처와 공공기관, 지방자치단체별로 처리 기한을 정해야 한다. 지연이 반복되면 담당 기관과 책임자가 설명해야 한다. 이번 대토론회가 정책 전환의 출발점이 되려면 정부는 적어도 세 가지 질문에 답해야 한다. 먼저 부동산 정책의 목표부터 정해야 한다. 집값을 일정 수준까지 낮추겠다는 것인지, 단기간 급등을 막겠다는 것인지, 무주택자의 주거비 부담을 줄이겠다는 것인지 정부의 우선순위가 보여야 한다. 집값과 가계부채, 주택 공급, 전월세 안정을 한꺼번에 내세우면 정책수단이 서로 충돌한다. 대출을 강하게 조이면 가계부채는 줄일 수 있지만 현금 보유자에게 유리한 시장이 만들어질 수 있다. 공급을 늘리기 위해 재건축 규제를 풀면 장기적으로 입주 물량이 늘 수 있지만 단기적으로 해당 지역 가격이 오를 수 있다. 정부는 무엇을 먼저 잡을지 선택해야 한다. 정책 발표와 시행 시점도 제시해야 한다. 세제 개편안을 언제 국회에 제출할지, 금융 규제는 어느 날짜부터 어떤 계약에 적용할지, 공급 사업은 지구별로 언제 착공하고 입주할지 공개해야 한다. “검토하겠다”는 말이 반복될수록 국민은 정부 발표보다 시장의 소문을 먼저 믿게 된다. 책임을 맡은 사람도 드러나야 한다. 공급 일정은 국토교통부가 책임지고 대출 규제는 금융위원회가 맡아야 한다. 세제 개편은 재정경제부가 설명해야 한다. 부처 간 정책이 충돌하면 국무총리와 대통령실이 조정 결과를 내놓아야 한다. 정책이 효과를 내지 못했을 때 시장 상황과 전임 정부, 투기 세력만 탓해서는 책임 행정이 성립하지 않는다. 정부는 정책 시행 뒤 평가 기준도 공개해야 한다. 집값 상승률 하나만 놓고 성공과 실패를 판단해서는 안 된다. 주택 인허가와 착공, 준공 물량이 얼마나 늘었는지, 청년과 신혼부부의 주거비 부담이 줄었는지, 전세대출 축소로 월세 부담이 커지지 않았는지 함께 살펴야 한다. 분기마다 이행 상황을 공개하고 목표에서 벗어난 정책은 수정해야 한다. 법률과 행정에는 권한을 행사한 사람이 책임을 진다는 원칙이 따른다. 정책을 결정할 권한을 가진 정부가 결과에 대한 책임까지 국민 여론에 돌릴 수는 없다. 국민 대토론회에서 다수가 찬성했다는 이유로 잘못된 정책의 책임이 사라지지도 않는다. 반대 의견을 충분히 들었다고 해서 정책 실패가 면책되는 것도 아니다. 이재명 대통령은 이번 토론회에서 “공직자의 최대 덕목은 책임을 지는 것”이라며 비난과 갈등도 감수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통령의 이 발언이 대토론회에서 나온 가장 중요한 원칙이다. 책임을 진다는 것은 토론회를 한 차례 더 여는 데 그치지 않는다. 정부가 정한 목표와 기준을 국민에게 알리고 정책의 효과가 예상과 다를 때 잘못을 인정하고 고치는 일이다. 정책으로 손해를 보는 사람이 생기면 필요한 보완책을 마련하고 예측하지 못한 부작용이 나타나면 담당자가 설명해야 한다. 정부는 오는 27일 총리 주재 토론회에서 충분히 다루지 못한 쟁점을 다시 논의할 예정이다. 추가 토론이 결정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한 마지막 점검이라면 의미가 있다. 토론 뒤에도 결론과 일정이 나오지 않는다면 국민 대토론회는 정책 결정을 미루기 위한 긴 회의로 기억될 수밖에 없다. 국민은 이미 집값과 전셋값, 대출이자와 세금으로 자신의 의견을 내고 있다. 무주택자는 오르는 집값을 보며 불안을 호소하고 집을 가진 사람은 또다시 세제가 바뀔까 걱정한다. 청년은 대출 규제 앞에서 주거 계획을 다시 세우고 건설사는 수익성을 계산하며 사업을 멈출지 결정한다. 정부가 국민에게 더 물어야 할 질문은 많지 않다. 이제까지 나온 의견 가운데 무엇을 받아들이고 무엇을 버릴지 정해야 한다. 시행 시점을 못 박고 담당 부처와 책임자를 밝혀야 한다. 정책이 실패했을 때 누가 어떤 방식으로 수정할지도 제시해야 한다. 소통은 결론을 늦추는 면허가 아니다. 국민이 의견을 냈다면 정부는 선택해야 한다. 선택했다면 설명해야 하고 시행했다면 책임져야 한다. 부동산 정책의 신뢰는 토론 시간이나 참석자 수에서 생기지 않는다. 흔들리지 않는 기준과 지켜지는 일정, 책임지는 사람의 이름에서 생긴다.
2026-07-24 07:47: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