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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코 58년 만의 파업, '회사가 버틸 수 있는 합의' 찾아야
[경제일보] 포스코의 ‘58년 무분규’ 기록이 끝났다. 지난 9일 창사 이후 처음으로 생산현장에서 부분파업이 벌어진 데 이어 16일 오전 7시부터는 닷새간 120시간의 2차 부분파업에 들어갔다. 15일 노사가 다시 협상 테이블에 앉았지만 기본급과 성과보상을 둘러싼 간격을 좁히지 못했다. 회사는 대체인력을 투입해 현재 생산에는 차질이 없다고 밝혔다. 파업의 역사성이 눈길을 끌지만 더 무거운 질문은 따로 있다. “앞으로도 충분히 벌고, 투자하고, 고용할 수 있는 회사로 남을 것인가.” 지난 교섭에서 노조는 기본급 7.1% 인상과 격려금 600%, 우리사주 50주, 명절상여금 200% 등을 요구했다. 회사는 기본급 2% 인상, 목표달성 격려금 350만원, 지역사랑상품권 50만원 등을 제시했다. 회사 측은 노조 요구안을 그대로 수용할 경우 큰 재무 부담이 생긴다고 주장하고 있고, 노조는 요구안은 협상을 통해 조정할 수 있는데 사측이 부담만 지나치게 부각한다고 맞서고 있다. 임금뿐 아니라 현장 인력과 안전, 근무환경에 대한 불만도 쟁점이다. 노동자가 회사의 성과를 나누자고 요구하는 것을 탓할 이유는 없다. 쇳물은 고로가 만들지만 좋은 철강은 결국 사람이 만든다. 포항과 광양제철소를 세계적인 생산기지로 키운 데에는 설비와 기술뿐 아니라 수십 년 동안 현장을 지켜온 숙련 노동자의 몫이 있다. 실적이 좋아졌다면 노동자가 그 과실을 공유하는 것은 시장경제의 원리에도 어긋나지 않는다. 올해 2분기 포스코홀딩스의 연결 영업이익은 8190억~8200억원 수준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4%가량 증가했다. 노동자들이 “회사가 벌었는데 왜 우리의 몫은 작냐”고 묻는 배경을 이해할 만하다. 다만 숫자를 한 꺼풀 벗겨보면 상황은 단순하지 않다. 포스코 철강사업 자체의 2분기 영업이익은 2740억원이었다. 전분기보다는 28.6% 늘었지만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는 46.6% 줄었다. 그룹 전체 이익 증가는 이차전지소재의 흑자전환과 에너지·인프라 사업의 호조가 상당 부분 떠받쳤다. ‘포스코그룹이 돈을 잘 번다’는 말과 ‘국내 철강사업의 체력이 충분하다’는 말은 같은 뜻이 아니다. 바깥 환경은 더 거칠다. OECD는 올해 세계 철강산업의 과잉 생산능력이 2025년 6억4000만톤에서 2028년 7억4500만톤까지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세계 철강수요 증가율은 2030년까지 연평균 0.9% 정도에 머물 것으로 예상했다. 특히 중국 철강업체들은 내수 부진 속에서 2025년 사상 최대인 1억3100만톤을 해외시장에 내보냈다. 2020년보다 153% 늘어난 규모다. 싸고 많은 철강이 세계시장으로 쏟아지고 있다는 뜻이다. 한국 철강은 여기에 탈탄소라는 두 번째 파도를 동시에 넘어야 한다. 포스코는 최근 광양제철소에 국내 최대 규모의 전기로를 완공했고, 포항에는 2028년 준공을 목표로 연산 30만톤 규모의 수소환원제철 하이렉스(HyREX) 실증설비를 추진하고 있다. 2030년까지 상용화 기술을 확보한다는 계획이다. 유럽의 탄소국경조정제도(CBAM)와 국내 탄소감축 압력이 커지는 상황에서 미룰 수 없는 투자다. 결국 지금의 임금협상은 몇 퍼센트를 올릴 것인가만의 싸움이어서는 안 된다. 과거의 성과를 어떻게 나눌 것인가와 미래의 경쟁력을 어떻게 남길 것인가를 동시에 협상해야 한다. 여기에는 구분이 필요하다. 좋은 실적으로 생긴 성과는 성과급과 일회성 보상을 통해 노동자와 충분히 나눌 수 있다. 회사가 잘 벌었는데 “산업이 어렵다”는 말만 반복하며 노동자의 몫을 지나치게 줄이는 것 역시 정당하지 않다. 반면 기본급처럼 한번 올라가면 경기가 꺾여도 계속 지급해야 하는 고정비는 다르게 봐야 한다. 철강처럼 경기에 민감한 산업에서 호황기의 이익을 기준으로 고정비를 계속 높이면 불황이 왔을 때 결국 구조조정 압력으로 돌아올 수 있다. 성과는 나누되 고정비는 회사가 불황에도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어야 한다. 회사도 같은 책임을 져야 한다. 경쟁력이라는 말을 노동자에게 임금 양보를 요구하는 편리한 명분으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 비용 절감이 필요하다면 경영진과 조직부터 효율성을 증명해야 하고, 노동자가 양보한 몫이 정말 탈탄소 설비와 고부가가치 강재, 안전과 자동화에 투자되는지도 보여줘야 한다. 무엇보다 노동자에게 산업전환의 비용만 떠넘겨서는 안 된다. 전기로와 수소환원제철, AI와 로봇이 확대되면 제철소의 일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줄어드는 직무가 생기고 새로운 직무도 나타날 것이다. 회사가 자동화를 추진하면서 노동자에게 고용불안만 남긴다면 기술혁신은 노사 갈등을 키울 뿐이다. 임금협상 테이블에 그래서 직무전환과 재교육, 숙련인력 재배치, 신규기술 교육, 안전투자까지 올라와야 한다. 노조도 변화를 외면해서는 안 된다. 기존 직무와 인력구조를 그대로 유지하는 것을 고용안정이라고 생각하면 오히려 장기적으로 일자리를 위험하게 만들 수 있다. 세계 철강업체가 저탄소 생산과 자동화로 원가를 낮추는데 한국 공장만 변화하지 못하면 기업은 국내 생산을 줄이거나 해외 투자를 확대할 수밖에 없다. 지켜야 할 것은 특정 작업 방식이 아니라 좋은 일자리가 계속 존재할 수 있는 회사다. ‘주역’ 계사하전에는 ‘궁즉변 변즉통 통즉구(窮則變 變則通 通則久)’라는 구절이 있다. 상황이 다하면 변해야 하고, 변하면 길이 열리며, 그래야 오래간다는 의미다. 지금 한국 철강산업에 이보다 잘 맞는 말도 드물다. 중국의 과잉생산과 보호무역, 탈탄소 전환은 과거의 경영 방식과 노사관계로 버티기 어려운 변화를 만들고 있다. 회사만 변할 수도 없고 노동자에게만 변하라고 요구할 수도 없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파업을 ‘노조의 무리한 요구’ 또는 ‘회사의 임금 억제’라는 단순한 구도로 볼 수 없다. 노사 모두 자신들의 계산서에는 근거가 있다. 노동자는 지난 성과와 숙련의 몫을 묻는다. 회사는 철강사업의 수익성과 앞으로 들어갈 막대한 투자비를 걱정한다. 둘 가운데 하나만 옳다고 할 수 없다. 그래서 필요한 것은 ‘누가 더 가져가느냐’의 협상에서 ‘회사를 어떻게 오래 가게 할 것이냐’의 협상으로 테이블을 넓히는 일이다. 기본급은 물가와 생산성, 철강사업의 지속 가능한 수익성을 기준으로 조정하고, 초과이익은 성과급을 통해 더 적극적으로 공유할 수 있다. 대신 노사는 탈탄소·자동화 투자와 연결된 고용·직무전환 계획을 함께 만들 필요가 있다. 경영성과가 좋아지면 노동자의 몫도 커지고, 생산성이 높아지면 그 성과가 다시 노동자에게 돌아오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그것이 회사에도 이익이고 노동자에게도 더 오래가는 안전망이다. 포스코의 58년 무분규가 깨진 것 자체를 실패라고 할 필요는 없다. 노조의 파업권은 법이 보장한 권리이고, 갈등을 드러내는 것 또한 노사관계의 한 과정이다. 진짜 실패는 산업의 구조가 바뀌는데도 노사가 과거 방식의 협상에서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하는 데 있다. 포스코가 지금 지켜야 할 것은 ‘무분규 58년’이라는 기록이 아니다. 노동자에게는 성과를 공정하게 돌려주고, 회사에는 다음 불황과 산업전환을 견딜 체력을 남기는 합의다. 좋은 임금협상은 어느 한쪽이 많이 얻는 합의가 아니다. 노동자도 버틸 수 있고 회사도 버틸 수 있어 다음 협상 때도 함께 앉을 수 있는 합의다. 창사 58년 만의 첫 파업 뒤 포스코 노사가 찾아야 할 답도 결국 거기에 있다.
2026-09-16 13: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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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업권 쥔 현대차 노조, 성과급 잔치가 먼저인가
[경제일보] 현대차 노조가 파업권을 쥐었다. 올해 임금협상에서 노조는 기본급 인상과 함께 전년도 순이익의 30%를 성과급으로 요구하고 있다. 조합원 투표는 파업 쪽으로 기울었고, 중앙노동위원회 조정도 멈췄다. 현대차 파업은 낯선 뉴스가 아니지만, 올해의 '공기'는 다르다. 기존 임단협이 '기본급 몇 원, 상여금 몇 퍼센트'의 문제였다면, 지금의 쟁점은 이익 배분 공식이다. '순이익의 30%'라는 숫자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서 불붙은 성과급 논쟁이 자동차 산업으로 넘어왔다는 신호다. 대기업 노조의 교섭 언어가 임금 인상률에서 이익 배분율로 바뀌고 있다. 노동의 몫을 말하는 일은 정당하다. 현대차의 실적은 현장의 땀 없이 만들어지지 않았다. 울산·아산·전주 공장의 생산라인, 품질을 붙든 숙련공, 납기를 맞춘 협력사, 해외 시장에서 브랜드를 지켜낸 임직원이 없었다면 오늘의 현대차도 없다. 불황기에는 고통 분담을 말하고, 호황기에는 미래 투자를 이유로 성과 공유를 미루는 기업은 신뢰를 얻기 어렵다. 노조가 성과급의 기준과 투명성을 요구하는 배경에는 그런 불신도 있다. 다만, 순이익의 30%를 성과급으로 요구하는 방식이 과연 지속 가능한지에 대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현대차가 서 있는 자리는 '편안한 잔칫상'이 아니다. 전기차 수요는 예상보다 느리게 움직이고, 하이브리드 호황은 언제든 경쟁 심화에 흔들릴 수 있다. 미국 관세와 통상 불확실성은 손익계산서에 이미 부담을 남겼다. 중국 업체들은 가격으로 밀고 들어오고, 테슬라와 글로벌 완성차들은 소프트웨어 중심 차량, 자율주행, 로봇, 배터리 내재화 경쟁에 돈을 쏟고 있다. 현대차의 이익은 올해 성과급의 재원인 동시에 다음 10년 생존을 위한 실탄이다. 성과급 논쟁이 불편한 지점도 바로 이 부분이다. 순이익은 금고 속 현금 더미가 아니고, 이 순이익 안에는 미국 공장 투자, 전기차 플랫폼, 배터리 공급망, 소프트웨어 인력, 로봇과 AI, 협력사 지원, 주주환원, 미래차 연구개발이 포함돼 있다. 오늘 나눌 돈은 내일 싸울 돈이기도 하다. 교섭장에서 이 사실이 지워지면, 성과급은 보상이 아니라 미래 투자와의 경쟁이 된다. 올해 현대차 노조 요구에는 AI와 자동화에 대한 불안도 담겨 있다. 로봇은 더 똑똑해지고, 생산 데이터는 더 촘촘해지며, 소프트웨어가 자동차의 가치를 좌우하는 등 완성차 공장은 빠르게 바뀌고 있다. 이에 회사가 AI와 로봇을 도입해 변화를 꾀하는 과정에서 노동자들의 불안감은 고조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이와 같은 불안감이 모든 요구의 정당성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AI 전환이 불안하다면 필요한 것은 순이익 30%라는 숫자만이 아니라 직무 전환 계획, 재교육 시간의 유급 보장, 자동화 도입 전 고용영향 평가, 생산성 향상분의 합리적 공유, 협력사 노동자 보호, 고령 숙련공의 역할 재설계 등의 요구들이 나왔어야 한다. 미래차 시대의 노사 교섭은 돈의 크기보다 변화의 설계가 더 중요하다. 대기업 성과급 파업이 더 민감한 이유는 그 울림이 공장 담장을 넘기 때문이다. 현대차가 멈추면 1차 협력사만 흔들리는 것이 아니다. 2차·3차 협력사, 물류, 항만, 지역 상권까지 파장이 간다. 대기업 정규직의 성과급 요구가 커질수록 그 성과를 함께 만든 협력업체 노동자의 몫은 어디에 있는지도 묻게 된다. 성과급 잔치가 원청 정규직의 식탁에서 끝나면 산업 생태계의 신뢰는 약해진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현대차 노조도 더 큰 시야를 가져야 한다. 현대차 노조는 한국 노동운동의 상징 중 하나다. 그만큼 힘이 있고, 그만큼 책임도 크다. 순이익 30%를 요구할 수는 있다. 하지만 그 요구가 청년 구직자와 협력사 노동자, 주주와 소비자, 지역경제와 국가 산업전략 앞에서 어떻게 들릴지도 생각해야 한다. 권리는 고립돼 존재하지 않는다. 권리는 늘 다른 사람의 몫과 마주 선다. 회사 역시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 노조의 요구가 거칠다고만 말하기 전에, 성과 배분의 기준을 얼마나 투명하게 설명했는지 돌아봐야 한다. 경영진 보상과 주주환원은 어떻게 정해지고, 임직원 성과급은 어떤 원칙으로 결정되며, 미래 투자를 위해 얼마를 남겨야 하는지 숫자로 말해야 한다. “어렵다”는 말만으로는 부족하다. 현대차는 이미 세계적 기업이다. 세계적 기업이라면 보상 체계도 세계적 설득력을 가져야 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서로를 이기는 협상이 아니다. 파업권은 압박 수단일 수 있지만, 그 자체가 성과는 아니다. 실제 파업이 벌어지면 노조는 힘을 보여줄 수 있고, 회사는 원칙을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생산 차질과 브랜드 훼손, 협력사 부담과 고객 신뢰의 균열은 모두의 장부에 남는다. 파업 뒤에 남는 것은 승자의 깃발이 아니라 손실의 명세서일 가능성이 크다. 삼성전자 노사 합의 이후 대기업 노조들은 성과급의 새 기준을 찾고 있다. 이해할 수 있는 흐름이다. 반도체 호황의 과실을 본 노동자들이 보상을 요구하고, 자동차와 조선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산업 호황을 근거로 같은 질문을 던지는 것은 자연스럽다. 다만 산업마다 체질이 다르고, 이익의 변동성도 다르며, 투자 사이클도 다르다. 삼성의 산식이 현대차의 산식이 될 수 없고, 반도체의 성과급 공식이 자동차와 조선의 표준이 될 수도 없다. 성과는 나눠야 한다. 그것이 시장경제의 신뢰다. 하지만 미래까지 나눠 먹어서는 안 된다. 그것이 산업의 상식이다. 이 두 문장 사이의 균형을 찾는 것이 올해 현대차 교섭의 본질이다. 현대차는 지금 단순한 임금협상장에 서 있지 않다. 전기차 캐즘, 중국차 공세, 미국 통상 압박, AI와 로봇 전환, 고령화와 정년 연장 요구가 한꺼번에 몰려오는 길목에 서 있다. 이런 때 성과급 논쟁이 모든 의제를 삼켜버리면 가장 중요한 질문이 사라진다. 현대차는 다음 10년에도 세계 시장에서 이길 수 있는가. 그 승리 안에 노동자의 자리는 어떻게 보장되는가. 노조는 파업권을 얻었다. 이제 더 어려운 선택이 남았다. 그 권리를 실제 파업으로 쓸 것인가, 아니면 더 나은 합의를 끌어내는 마지막 압박으로 남길 것인가. 회사도 선택해야 한다. 버티기로 시간을 살 것인가, 아니면 투명한 성과 배분과 미래 전환 계획을 내놓을 것인가. 현대차의 성과급 논쟁은 돈의 문제가 맞지만, 돈만의 문제는 아니다. 한국 제조업이 호황을 다루는 방식, 노동이 기술 전환을 받아들이는 방식, 기업이 성과와 미래를 동시에 설명하는 방식의 문제다. 성과급이 필요 없다는 말이 아니다. 성과급만으로 미래를 설명할 수 없다는 말이다. 파업권을 쥔 현대차 노조 앞에 놓인 것은 잔칫상이 아니라 갈림길이다. 성과를 나누되 투자의 숨통은 남기는 길, 자동화의 불안을 인정하되 변화 자체를 막지 않는 길, 대기업 정규직의 몫을 키우되 협력사와 미래세대의 몫을 지우지 않는 길이 필요하다. 그 길을 찾지 못하면 이번 파업권 확보는 노조의 힘을 보여준 장면으로는 남을 수 있다. 그러나 한국 자동차 산업의 품격을 높인 장면으로 기억되기는 어렵다. 현대차 노사 모두가 그 사실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아직 늦지 않았다. 파업권을 얻은 지금이야말로 파업을 피할 마지막 기회다.
2026-06-26 08:5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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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업권 위에 선 국가경제…반도체가 멈추면 정부가 움직인다
[경제일보] 삼성전자 노사 갈등이 총파업 직전까지 치닫자 정부는 긴급조정 가능성을 공개적으로 시사했다. 파업은 잠정합의로 유보됐지만, 이번 사태는 국가 기간산업의 노사갈등에 정부가 어디까지 개입할 수 있는가라는 무거운 질문을 남겼다. 긴급조정은 가벼운 제도가 아니다.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은 쟁의행위가 공익사업에 관한 것이거나 규모와 성질이 특별해 국민경제를 현저히 해하거나 국민의 일상생활을 위태롭게 할 위험이 있을 때 고용노동부 장관이 긴급조정을 결정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긴급조정 결정이 공표되면 관계 당사자는 즉시 쟁의행위를 중지해야 하며, 공표일부터 30일이 지나지 않으면 쟁의행위를 재개할 수 없다. 정부가 삼성전자 파업 위기에서 긴급조정 카드를 거론한 배경은 분명하다. 삼성전자는 단순한 대기업이 아니다.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의 핵심 축이다. 메모리, HBM, 파운드리, 모바일, 디스플레이 생태계와 맞물려 있고, 협력업체와 수출, 금융시장, 세수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 앞서 정부는 지난 17일 삼성전자 파업 위기와 관련해 긴급조정권 발동 가능성을 공식적으로 처음 시사했다. 정부는 중앙노동위원회 사후조정과 노사 대화를 통한 해결을 강조하면서도, 파업이 현실화할 경우 국민경제에 미칠 파장을 우려했다. 이는 삼성전자 파업이 개별 사업장 차원을 넘어 국가 산업과 글로벌 공급망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판단이 반영된 것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긴급조정은 노동권 제한이라는 반대편의 문제를 동반한다. 헌법이 보장한 단체행동권을 행정권이 일시적으로 멈추게 하는 제도이기 때문이다. 긴급조정권 발동에 대해 노사 자율 원칙과 노동3권을 훼손할 우려가 있는 만큼 최대한 신중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업계 전문가는 “정부가 반도체 산업이 국가 경제에 중요하다는 이유만으로 노동권 제한을 쉽게 정당화돼서는 안되지만, 국가 기간산업의 파업이 공급망과 국민경제에 미칠 충격도 외면할 수 없다”며 “정부는 압박자가 아니라 중재자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번 삼성전자 노사 잠정합의는 결과적으로 긴급조정 발동 없이 이뤄졌다.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 주재의 막판 교섭에서 노사가 합의점을 찾았다는 점은 의미가 있다. 법적 강제보다 자율교섭이 우선돼야 한다는 원칙을 지킨 셈이다. 하지만 ‘막판 타결’이 반복되는 구조는 위험하다. 파업 직전까지 가야 정부가 움직이고, 정부가 움직여야 노사가 접점을 찾는 방식은 지속 가능하지 않다. 국가 기간산업의 노사갈등은 사전에 위험을 감지하고 조정하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삼성전자 사태가 보여준 것은 한국 경제의 이중 현실이다. 한편으로는 반도체 호황이 기업 실적과 국가 세수를 끌어올리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그 초과이익을 둘러싼 배분 갈등이 산업 현장의 불안 요인이 되고 있다. 정부가 올해 추경 과정에서 초과세수 25조2000억원, 법인세 증가분 14조8000억원을 전망한 것도 반도체 경기 개선과 무관하지 않다. 결국 긴급조정 논란의 본질은 ‘파업을 막을 것인가’에만 있지 않다. 반도체 호황이 만든 이익과 부담을 어떻게 나누고, 어떤 원칙으로 노사갈등을 관리할 것인가에 있다. 제도가 늦으면 갈등은 거리로 나오고, 정치가 늦으면 행정권의 강제 카드가 먼저 거론된다. 업계 관계자는 “긴급조정 카드는 꺼내지 않는 것이 가장 좋고, 노사 모두가 예측 가능한 교섭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며 “정부도 사후 압박이 아니라 사전 조정의 역량을 키워야 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한편, 본지는 오는 27일 오후 3시 국회의사당 본관 2식당(귀빈식당)에서 ‘삼성전자 노사 사태, 지금부터 시작이다’를 주제로 ‘경제일보 정책 간담회’를 개최한다. 이번 간담회는 삼성전자 노사갈등을 기업 내부 문제가 아닌 한국 경제의 구조적 의제로 다룰 예정이다. 또한 반도체 초과이익 배분, 성과급 제도, 주주환원, 미래 투자 문제를 포함해 반도체 호황이 만든 초과 세수를 재정준칙 복원과 국가채무 관리, 미래 성장 투자에 어떻게 활용할지 논의한다.
2026-05-25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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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업이 던지는 '신뢰'의 청구서… 멈추는 순간, 초일류도 멈춘다
[경제일보] 나노미터(㎚·10억분의 1m) 단위의 미세 공정이 24시간 365일 돌아가는 반도체 팹(Fab)에서 ‘정지’는 단순한 일시정지가 아니다. 그것은 곧 ‘사멸’을 뜻한다. 1초의 오차도 허용치 않는 진공의 클린룸에 삼성전자 노동조합이 예고한 ‘18일간의 장기 파업’이라는 불길한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다. 단순한 노사 갈등을 넘어, 대한민국 경제의 심장부인 평택과 기흥 사업장에 전례 없는 정적이 예고된 것이다. 이 정적의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다. 반도체 생산 라인의 차질은 단순히 웨이퍼 몇 장을 덜 찍어내고 마는 산술적인 손실이 아니다. 이는 수만 개의 부품과 수백 개의 글로벌 빅테크 기업이 거미줄처럼 얽힌 글로벌 공급망(Supply Chain)에 가하는 거대한 충격파다. 무엇보다 수십 년간 글로벌 시장에서 피땀 흘려 쌓아 올린 ‘삼성’이라는 이름의 ‘신뢰 자본’에 치명적인 균열을 내는 행위다. 글로벌 시장은 이미 차가운 의심의 눈초리로 묻고 있다. “세계 최고의 수율과 기술력을 자랑해 온 삼성이, 과연 약속한 납기일에 안정적으로 물량을 공급할 수 있는 조직인가?”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FT)는 최근 칼럼을 통해 "글로벌 반도체 패권 경쟁이 격화되는 가운데, 한국 반도체 산업의 내부적 노사 갈등은 경쟁국들에게 뜻밖의 호재(unexpected boon)가 될 수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번 갈등의 도화선은 삼성전자가 스스로 증명해 낸 ‘역대급 실적’이다. 올해 1분기 삼성전자는 매출 133조9000억원, 영업이익 57조2000억원이라는 경이로운 숫자를 시장에 내놨다. 특히 인공지능(AI) 반도체 수요 폭발에 올라탄 DS(반도체) 부문의 영업이익 기여도는 전사의 94%에 육박한다. 노조의 요구는 바로 이 화려한 숫자에 근거하고 있다. 기본급 7% 인상, 성과급(OPI) 산정 기준의 투명화, 영업이익의 15%를 성과급 재원으로 배정하라는 주장은 ‘노동의 가치를 정당하게 보상받겠다’는 선명한 명분을 띠고 있다. 경쟁사인 SK하이닉스와 끊임없이 비교되는 보상 체계는 이제 단순한 돈의 문제를 넘어 직원들의 자존심 문제로 번진 지 오래다. 하지만 이 지점에서 우리는 ‘이익의 본질과 성격’을 차갑고 냉철하게 해부해 볼 필요가 있다. 57조원이라는 천문학적인 영업이익은 결코 현재 팹을 지키는 인력들만의 오롯한 성과물이 아니다. 이는 과거 불확실성 속에서도 조 단위의 자금을 쏟아부은 경영진의 과감한 설비 투자, 밤을 지새운 연구원들의 피땀, 그리고 AI 사이클이라는 우호적인 거시 경제 환경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빚어낸 종합적 결과물이다. 이를 오로지 현재 인력의 몫으로만 분배해야 한다는 주장은, 급변하는 반도체 사이클의 겨울을 버텨낼 ‘기초 체력’과 미래 세대를 위한 투자 재원을 갉아먹는 위험한 근시안적 도박이 될 수 있다. 전체 직원의 70%에 달하는 9만명의 조합원. 규모만 놓고 보면 삼성전자 노조는 한국 노동 운동사에 유례가 없는 ‘매머드급’ 조직이다. 파업 찬성률 93%라는 압도적 수치는 사측의 일방통행식 소통과 보상 체계에 대한 직원들의 누적된 불만이 이미 임계점을 돌파했음을 방증한다. 다만, 이 거대 조직의 외양 뒤에는 ‘내부의 소외’라는 짙은 그림자가 존재한다. 가전과 스마트폰을 담당하는 DX 부문 노조가 최근 공동투쟁본부를 이탈한 사건은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철저하게 DS 부문의 성과에만 초점을 맞춘 투쟁 방식과 보상 요구안은 결과적으로 같은 ‘파란 피’를 나눈 동료들 사이에 보이지 않는 ‘계급’을 나누고 위화감을 조성하는 결과를 낳았다. 노조가 부르짖는 정의가 진정으로 보편적인 공감을 얻으려면, 그것은 특정 부문의 이익주의를 넘어 조직 전체의 상생과 지속 가능성을 담보해야만 한다. 내부 구성원의 지지조차 온전히 결집하지 못하는 투쟁은 결국 ‘반쪽짜리 외침’으로 전락할 위험이 크다. 글로벌 반도체 산업의 생태계는 잔혹하리만치 냉정하다. 시장 전문가들은 2027년까지 메모리 반도체 공급 부족이 심화할 것으로 전망한다. 이는 삼성에게 천재일우의 기회인 동시에 치명적인 위기다. 애플, 엔비디아, 구글 등 삼성의 명운을 쥐고 있는 글로벌 빅테크들에게 납품 단가보다 수백 배 중요한 것은 바로 ‘안정성(Stability)’이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이 “AI 칩 공급망에서 단 한 번의 납기 지연은 고객사의 1년 단위 제품 출시 로드맵 전체를 붕괴시킬 수 있다”고 분석했듯, 한 번 멈춘 라인은 천문학적인 비용을 치르면 다시 돌릴 수 있지만, 신뢰를 잃고 한 번 떠난 고객은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삼성전자의 라인이 노사 갈등으로 휘청이는 그 짧은 찰나, 대만의 TSMC나 미국의 마이크론 등 경쟁사들은 ‘안정적 공급망’이라는 무기를 들고 하이에나처럼 삼성의 고객을 가로챌 준비를 마친 상태다. 신제윤 삼성전자 이사회 의장이 최근 이례적으로 공개적인 우려를 표명한 것도 바로 이러한 ‘복합 위기’의 본질을 꿰뚫어 보았기 때문이다. 경영진 역시 ‘파업은 합법적 권리’라는 원론적이고 방어적인 태도 뒤에 숨을 때가 아니다. 이 사태가 한국 반도체 생태계 전반, 나아가 국가 경제 펀더멘털에 미칠 파급력을 직시하고 전향적인 협상력을 발휘해야 한다.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체제에서 노동자의 파업권은 헌법이 보장하는 신성한 기본권이다. 그러나 자유와 권리에는 반드시 그에 상응하는 책임의 무게가 뒤따른다. 시가총액 1위 삼성전자는 단순한 일개 사기업이 아니다. 수천 개의 중소 협력업체와 연관 산업의 생존, 그리고 국가 수출의 막대한 비중을 짊어진 일종의 ‘공공재적 성격’을 지닌다. 국내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18일 전면 파업이라는 극단적 카드는 단기적인 협상의 지렛대로는 강력할지 모르지만, 자칫 삼성전자라는 거함을 구조적 침몰로 이끄는 자폭 버튼이 될 수 있다”며 “글로벌 패권 경쟁이라는 정글에서 노사가 다투는 사이, 경쟁국들은 그 빈틈을 파고들어 시장의 판도를 완전히 뒤집어 놓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초일류 기업의 생존과 쇠락을 가르는 마지막 보루는 결국 ‘신뢰’다. 이는 고객과의 약속이며, 직원과의 약속이고, 국가 경제와의 약속이다. 지금 삼성전자 노사가 벌이는 벼랑 끝 전술 속에서 우리가 결코 놓쳐서는 안 될 가치는 진리와 상식이다. ‘일한 만큼 정당하게, 그리고 투명하게 보상받아야 한다’는 명징한 진리, 그리고 ‘기업의 둑이 무너지면 그 안에서 살아가는 노동자의 터전도 흔적 없이 휩쓸려 간다’는 냉혹한 상식 말이다. 파업이 남기고 갈 가혹한 청구서는 결코 삼성전자라는 담장 안에만 머물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우리 경제 전체의 문 앞을 두드릴 것이다. 이제는 소모적인 파국을 멈추고 미래를 향한 ‘솔로몬의 지혜’를 짜내야 할 때다. 숨죽인 클린룸이 아니라, 24시간 눈부시게 회전하는 웨이퍼의 궤적 위에서만 삼성의 초격차와 대한민국 경제의 생동하는 내일을 다시 써 내려갈 수 있다. 멈추는 순간, 초일류의 자격도 함께 멈춘다.
2026-05-07 16:3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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