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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중동 전쟁 1주, 정부 대응에 필요한 것은 '정책'보다 '신뢰'다

기자정보, 기사등록일
2026-03-06 10:00:15
지난달 28일현지시간 발발한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공습 여파로 국내 주유소 휘발유와 경유 가격이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는 5일 서울의 한 주유소에 유류 가격이 표시돼 있다사진연합뉴스
지난달 28일(현지시간) 발발한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공습 여파로 국내 주유소 휘발유와 경유 가격이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는 5일 서울의 한 주유소에 유류 가격이 표시돼 있다.[사진=연합뉴스]

[경제일보] 중동 정세가 급격히 악화되면서 국내 경제도 흔들리고 있다.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사이의 군사 충돌이 현실화하자 국제 유가는 급등했고 국내 휘발유 가격도 즉각 반응했다. 전국 평균 휘발유 가격이 리터당 1800원을 넘어선 것은 3년 7개월 만이다. 일부 지역에서는 이미 리터당 2000원을 넘는 주유소도 등장했다.

통상 국제 유가 변동은 1~3주의 시차를 두고 국내 가격에 반영된다. 그러나 이번에는 거의 동시에 움직였다. 시장에서는 담합 의혹까지 제기되는 상황이다.

정부는 “국내 석유와 가스 비축량이 충분해 단기 수급에는 전혀 문제가 없다”고 강조한다. 실제로 한국은 국제에너지기구 기준을 훨씬 웃도는 비축량을 보유하고 있고 단기간 공급 차질이 발생할 가능성도 낮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분석이다. 물리적인 수급만 놓고 보면 정부 설명은 틀린 말이 아니다.

그러나 지금 시장이 불안해하는 이유는 ‘물량’이 아니라 ‘신뢰’다.

주식시장은 이미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중동 전쟁 발발 이후 금융시장은 급격한 변동성을 보였고 개인 투자자들의 손실도 빠르게 확대되고 있다. 시장은 냉정하다. 정책보다 신뢰가 흔들릴 때 더 크게 흔들린다.

이런 상황에서 벌어진 김민석 국무총리와 방송인 김어준 씨의 설전은 단순한 해프닝으로 넘길 문제가 아니다. 김 씨는 대통령 해외 순방 중 정부 대응이 미흡하다며 “아빠 없는 자식 같은 느낌”이라고 표현했고 총리실은 즉각 “사실과 명백히 다르다”고 반박했다. 총리실은 중동 사태 직후부터 관계 장관 회의를 매일 개최했다고 밝혔다.

누가 옳은지는 지금의 핵심 쟁점이 아니다. 더 중요한 것은 이런 논쟁 자체가 국민에게 불안을 준다는 사실이다. 위기 상황에서는 정부 메시지가 혼선 없이 전달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위기 관리에서 가장 치명적인 것은 정책의 부재가 아니라 신뢰의 붕괴다.

이재명 대통령은 휘발유 가격 급등과 관련해 ‘유류 최고가격 지정’을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매점매석과 폭리 행위를 강력히 단속하겠다는 것이다. 동시에 100조원 규모의 시장 안정 프로그램을 통해 금융시장 변동성에도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러한 조치가 실제로 효과적인 정책이 될지는 냉정하게 따져볼 필요가 있다.

가격 통제는 역사적으로 대부분 실패했다. 로마 황제 디오클레티아누스는 서기 301년 ‘최고가격 칙령’을 내려 물가 상승을 억제하려 했다. 그러나 결과는 정반대였다. 공식 시장은 위축되고 암시장만 번성했다. 프랑스 혁명기에도 ‘최고가격법’이 시행됐지만 식량 공급은 오히려 악화됐다. 경제는 명령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물론 위기 상황에서 정부가 폭리나 담합을 단속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시장 가격 자체를 행정적으로 통제하는 방식은 언제나 부작용을 낳았다. 가격은 단순한 숫자가 아니라 공급과 수요가 만들어내는 신호이기 때문이다. 그 신호를 억지로 누르면 문제는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곳으로 숨어든다.

100조원 규모의 시장 안정 프로그램도 마찬가지다. 금융시장 안정 장치는 필요하지만 그것이 근본적인 해법은 아니다. 시장은 정부의 자금 규모보다 정책의 방향성을 더 중요하게 본다. 정책이 일관되고 예측 가능할 때 시장은 스스로 안정된다.

역사를 돌아보면 위기를 잘 관리한 지도자들의 공통점이 있다. 그들은 상황을 과장하지도 않았고 숨기지도 않았다. 영국 총리 윈스턴 처칠은 전쟁 초기 국민에게 “피와 수고와 눈물과 땀”을 요구했다. 불편한 진실을 숨기지 않았기 때문에 오히려 신뢰가 생겼다.

지금 우리에게도 필요한 것은 그런 솔직한 리더십이다.

정부는 에너지 수급 다변화와 지역 에너지 생산·소비 체계 같은 중장기 정책을 언급하고 있다. 방향 자체는 나쁘지 않다. 그러나 위기 상황에서 국민이 먼저 보고 싶은 것은 거대한 구호가 아니라 명확한 현실 인식이다.

시장은 늘 정부보다 한발 앞서 움직인다. 불안이 커질 때 투자자들은 정책 문장 하나 발언 한 줄까지 분석한다. 그래서 위기일수록 정부 메시지는 단순하고 분명해야 한다.

지금의 중동 위기는 언제 끝날지 아무도 모른다. 호르무즈 해협 봉쇄 가능성, 국제 유가 급등, 글로벌 금융시장 불안 등 여러 변수가 동시에 움직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가장 중요한 국가 자산은 석유 비축량이 아니라 정책에 대한 국민의 신뢰다.

신뢰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잃어버리는 데는 단 하루면 충분하다.

정부가 지금 해야 할 일은 시장을 통제하려는 조치보다 시장과 국민을 설득하는 일이다. 정책의 강도보다 중요한 것은 정책에 대한 신뢰다. 위기 속에서 국가를 지탱하는 것은 결국 숫자가 아니라 믿음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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