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일보] 코스피가 사상 처음으로 9000선을 돌파하면서 국내 증시의 다음 고지가 어디인지에 시장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코스피 8000’은 상징적 목표였지만, 반도체 업황 개선과 외국인 매수세가 겹치면서 시장의 시선은 이미 1만선을 넘어 1만2000선까지 향하고 있다.
19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코스피는 지난 18일 9063.84에 마감하며 사상 처음으로 9000선을 넘어섰다. 장중에는 9100선도 돌파했다. 이날 장 초반에는 9300선까지 넘어서며 랠리의 속도를 더했다. 증권가에서는 반도체 이익 모멘텀, 기업 실적 전망 상향, 외국인 자금 유입을 근거로 코스피 추가 상승 가능성에 무게를 싣고 있다.
다만 상승 속도가 지나치게 빠르다는 경계론도 동시에 나온다. 금리 인상 가능성, 유가와 환율 변동, 반도체 업황 피크아웃 우려, 특정 업종 쏠림 현상은 언제든 시장의 변동성을 키울 수 있는 요인이다. 코스피 9000 돌파가 한국 증시의 구조적 재평가인지, 유동성과 반도체 랠리가 만든 단기 과열인지에 대한 논쟁도 본격화하고 있다.
◆반도체가 끌어올린 코스피…이익 전망이 지수 상단을 다시 열었다
이번 코스피 랠리의 중심에는 반도체가 있다. 인공지능 확산, 고대역폭메모리(HBM) 수요 증가, 메모리 가격 상승, 서버 투자 확대가 맞물리면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비롯한 국내 반도체 대형주의 실적 전망이 빠르게 상향되고 있다.
대신증권은 최근 코스피 목표치를 기존 8800에서 1만1500으로 올려 잡았다. 이경민 대신증권 연구원은 “반도체 이익 모멘텀 강화와 실적 전망 상향 조정 흐름이 코스피 상승 여력 확대로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선행 주당순이익(EPS)이 꺾이기 전까지는 코스피 상단을 열어둘 필요가 있다는 설명이다.
대신증권은 특히 반도체 업종의 2분기 영업이익과 순이익 증가율이 전 분기 대비 각각 56%, 37%에 달할 것으로 전망했다. 메모리 가격 상승세까지 감안하면 향후 실적 추정치가 추가로 상향 조정될 가능성도 남아 있다.
글로벌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는 더 공격적인 전망을 내놨다. 골드만삭스는 코스피 목표치를 기존 9000에서 1만2000으로 상향했다. 올해 코스피가 이미 큰 폭으로 올랐지만 기업 이익 성장세를 감안하면 추가 상승 여력이 남아 있다는 판단이다. 특히 시장이 메모리 호황의 지속 기간을 지나치게 짧게 보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투자증권은 코스피 1만1000, DB증권은 1만1700을 제시했다. 현대차증권과 IBK투자증권도 강세 시나리오에서 1만2000선을 열어두고 있다. 증권가의 공통된 논리는 명확하다. 코스피 상승의 핵심은 유동성이 아니라 이익이라는 것이다.
◆‘1만피’ 전망의 근거…저평가 해소와 외국인 매수세
코스피 1만선 전망이 힘을 얻는 또 다른 이유는 밸류에이션 부담이 과거 급등장에 비해 크지 않다는 평가다. 지수는 급등했지만 기업 이익 전망이 더 빠르게 올라가면서 주가수익비율(PER) 부담이 제한적이라는 분석이다. 골드만삭스는 한국 반도체주의 선행 PER이 여전히 낮은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외국인 투자자들의 매수세도 코스피 강세를 뒷받침하고 있다. 반도체 업황 회복이 글로벌 투자자의 포트폴리오 재편을 이끌면서 한국 증시가 아시아 시장 내 핵심 투자처로 다시 부상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특히 인공지능 반도체 공급망에서 한국 기업의 전략적 가치가 커지면서 과거와 다른 재평가 국면이 열렸다는 시각도 나온다.
기업 실적 개선이 반도체에만 머물지 않는다는 점도 긍정적이다. 전력기기, 조선, 방산, 금융, 자동차 등 일부 업종에서도 이익 전망 상향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 반도체가 지수를 끌고 가는 것은 사실이지만, 시장 전반의 이익 체력이 함께 개선된다면 코스피 1만선은 단순한 상징을 넘어 현실적 목표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한 증권사 리서치센터 관계자는 “코스피 9000 돌파 이후 시장의 관심은 이제 지수 레벨보다 이익 전망의 지속성에 있다”며 “반도체 이익 추정치가 계속 올라가고 외국인 매수세가 유지된다면 1만선 돌파는 시간의 문제일 수 있다”고 말했다.
◆과열 경고도 커진다…반도체 쏠림과 금리 변수는 부담
그러나 장밋빛 전망만 있는 것은 아니다. 코스피가 단기간에 급등하면서 기술적 과열 부담은 커졌다. 8000선 돌파 이후 9000선 안착까지 걸린 시간이 짧았던 만큼 차익 실현 매물이 언제든 나올 수 있다. 특히 지수 상승이 반도체 대형주에 집중된 만큼 특정 업종 조정이 곧바로 지수 전체의 변동성으로 이어질 수 있다.
금리 변수도 부담이다. 주가 상승 속도가 실물경제 개선 속도보다 빠를 경우 중앙은행의 긴축 경계감이 다시 커질 수 있다. 물가가 예상보다 끈질기게 버티거나 유가가 재차 상승할 경우 금리 인상 가능성이 시장을 압박할 수 있다. 고금리 환경에서는 성장주와 고밸류 업종의 조정 압력이 커질 수밖에 없다.
환율도 변수다. 원화 강세는 외국인 자금 유입에는 긍정적일 수 있지만 수출기업의 이익 전망에는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반대로 원화 약세가 심해질 경우 외국인 투자심리가 흔들릴 수 있다. 유가 상승과 지정학적 리스크가 겹치면 수입 물가와 무역수지에도 부담이 된다.
무엇보다 시장이 경계하는 것은 반도체 업황의 피크아웃 논란이다. 현재는 메모리 가격 상승과 AI 투자 확대가 실적 전망을 밀어올리고 있지만, 공급 증가나 수요 둔화 신호가 나타나면 시장은 빠르게 선반영에 나설 수 있다. 코스피 랠리의 핵심 엔진이 반도체인 만큼, 반도체 사이클에 대한 신뢰가 흔들리면 지수 전망도 동시에 조정될 수 있다.
◆코스피 1만 시대의 조건…실적·제도·수급의 삼박자 필요
향후 코스피가 1만선을 넘어 1만2000선까지 가기 위해서는 세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는 게 자본시장 전문가들의 견해다.
우선 실적이다. 반도체 기업의 이익 전망 상향이 계속되고, 비반도체 업종으로 실적 개선이 확산돼야 한다. 지수 상승이 소수 대형주에만 의존할 경우 랠리의 지속성은 약해질 수밖에 없다.
또 제도 개혁이다. 코스피가 구조적으로 재평가되기 위해서는 주주환원 확대, 자사주 소각, 배당정책 개선, 지배구조 투명성 강화가 함께 이뤄져야 한다. 실적이 좋아도 주주에게 돌아가는 몫이 작다면 한국 증시의 할인 요인은 완전히 해소되기 어렵다.
마지막으로 수급이다. 외국인 매수세가 유지되는 가운데 연기금과 개인투자자의 장기 자금이 안정적으로 유입돼야 한다. 단기 테마성 매수만으로는 1만선 안착이 어렵다. 시장이 과열될수록 장기 투자자 기반의 중요성은 더 커진다.
한 증권업계 관계자는 “결국 코스피 9000 돌파는 끝이 아니라 시험대”라며 “반도체 슈퍼사이클이 한국 증시를 새로운 고지로 밀어올린 것은 분명하지만 1만피와 1만2000피가 현실이 되려면 이익 증가가 실제 실적으로 확인돼야 하고, 상승의 온기가 반도체 밖으로 확산돼야 하며, 자본시장 제도 개선도 뒤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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