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일보] 40도에 육박하는 폭염이 이어지고 있다. 한낮의 더위가 불편한 수준을 넘어 사람의 건강과 생명을 위협하는 단계에 들어섰다. 질병관리청이 온열질환자를 집계하고,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폭염 대응에 나서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런데 폭염 대책에서 빠져 있는 것이 있다. 바로 전기요금이다.
에어컨을 켜는 일이 누군가에게는 쾌적함을 위한 선택일 수 있다. 그러나 노인과 영유아, 만성질환자, 저소득층에게 냉방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집 안의 온도를 낮추는 것은 건강을 지키고 생명을 보호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다. 폭염을 재난이라고 부르면서 냉방에 필요한 전기를 사치재처럼 취급해서는 앞뒤가 맞지 않는다.
더불어민주당이 9일 기록적인 폭염을 ‘재난적 상황’으로 규정하고 정부에 가정용 전기요금 누진체계의 한시적 추가 완화를 요청한 것도 이런 배경에서 나왔다. 정부도 적극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폭염이 심할 때 전기요금을 낮추는 것 자체를 반대할 이유는 없다. 문제는 방식이다.
선거가 다가올 때마다 전기요금을 깎아주는 식의 임시 처방이라면 지속하기 어렵다. 전기를 쓰지 않을 수 없는 사람에게 요금 부담을 덜어주는 정책과 모든 가구의 전기요금을 일률적으로 낮추는 정책은 구분해야 한다. 전자는 복지이지만 후자는 자칫 재정과 전력 수급에 부담을 떠넘기는 정책이 될 수 있다.
더구나 우리에게 전기는 공짜가 아니다. 발전소를 돌리고 송전망을 유지하려면 비용이 든다. 한국전력의 재무 부담도 가볍지 않다. 냉방 수요가 폭증하는 여름철에는 전력 수요 관리라는 또 다른 문제가 생긴다. 요금을 무조건 낮추는 방식으로 접근할 경우 전력 소비를 더 자극할 가능성도 따져봐야 한다.
그렇다고 폭염 속에서 “전기를 아껴 쓰라”는 말만 반복해서도 안 된다. 돈이 없는 사람이 더위를 견디는 것이 에너지 절약의 해법이 될 수는 없다.
필요한 것은 정치적 결단이 아니라 제도다. 폭염과 한파 같은 기후재난이 일정 기준을 넘으면 자동으로 작동하는 전기요금 감면 체계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 기온과 폭염특보, 전력 수요 등을 기준으로 감면 단계를 정하고, 일정 기준을 넘으면 취약계층의 냉방비 부담을 자동으로 낮추는 방식이다. 매번 정치권이 목소리를 높이고 정부가 대책을 내놓는 과정을 반복할 필요가 없다.
취약계층에 대한 지원도 보다 정교해져야 한다. 에너지바우처를 확대하고, 독거노인이나 저소득층 가구에는 냉방비를 직접 지원하는 방안을 마련할 수 있다. 지원 대상과 금액을 명확히 해 놓으면 폭염 때마다 일률적인 누진제 완화를 놓고 정치권이 논쟁할 이유도 줄어든다.
냉방기기를 제대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중요하다. 오래된 에어컨을 고효율 제품으로 교체하고 단열이 취약한 주택의 냉방 효율을 높이는 사업은 단순한 복지정책이 아니다. 전력 소비를 줄이면서 취약계층의 냉방 능력을 높이는 일석이조의 정책이 될 수 있다.
기업과 건물에 대한 대책도 함께 마련해야 한다. 폭염 때마다 가정의 전기 사용만 문제 삼을 것이 아니라 대형 건물의 냉방 효율과 에너지 관리 시스템을 개선하고, 피크 시간대 전력 사용을 분산시키는 수요관리 정책도 강화해야 한다.
기후가 달라지고 있다. 예년보다 조금 더운 여름을 견디는 문제가 아니다. 앞으로 폭염과 한파가 반복되고 강도가 높아진다면 에너지 비용 역시 국민 생활의 중요한 안전 문제가 된다.
그렇다면 질문을 바꿔야 한다. “이번 여름 전기요금을 얼마나 깎아줄 것인가”가 아니라 “기후재난이 닥쳤을 때 국민이 최소한의 냉난방을 보장받을 수 있도록 어떤 제도를 갖출 것인가”를 물어야 한다.
전기요금은 시장의 가격이지만 냉방은 생존의 조건이 될 수 있다. 모든 전기 사용을 국가가 책임지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감당할 능력이 있는 사람에게까지 같은 혜택을 줄 필요도 없다. 다만 재난 상황에서 최소한의 냉방조차 포기해야 하는 사람이 생기지 않도록 하는 것이 국가의 책임이라는 뜻이다.
폭염을 재난이라고 규정했다면 그에 걸맞은 정책도 있어야 한다. 정치권은 그때그때 전기요금을 깎겠다고 약속하기보다 자동으로 작동하는 기준을 만들고, 정부는 전력 수급과 한국전력의 재무 부담까지 고려한 지속 가능한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올여름의 폭염은 지나갈 것이다. 그러나 기후재난은 앞으로 반복될 가능성이 높다. 이번 여름을 또 하나의 임시 대책으로 넘길 것인지, 아니면 국민의 냉방을 에너지 안전망의 한 축으로 제도화할 것인지는 결정해야 한다.
폭염이 재난이라면 냉방도 생존권이다. 이제 그 생존권을 누구의 선의가 아니라 제도로 보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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