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일보] 통신사가 모든 인공지능(AI) 기술을 직접 개발할 필요는 없다. 제조 현장에는 로봇 제어가, 병원에는 의료 데이터 처리가, 미디어에는 콘텐츠 분석이 필요하다. 산업마다 업무 환경과 요구하는 기술이 다른 만큼 범용 AI 모델만으로 현장 수요를 충족하기는 어렵다. KT가 56개 AI 스타트업을 협력망으로 묶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자체 통신망과 클라우드, 기업 고객 기반에 전문기업의 기술을 결합해 산업별 인공지능 전환(AX)을 실제 사업으로 연결하려는 것이다.
KT는 지난 20일 서울 송파구에서 'K-PATH 2026'을 열고 스타트업과 공동 추진하는 AX 사업 사례를 공개했다. 2024년부터 협력해 온 기업은 누적 56곳이다. KT는 스타트업을 발굴하는 데 그치지 않고 현업 부서와 연결해 기술 검증부터 현장 적용, 공동사업화까지 추진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2025~2026년 공동사업화·협업 과제는 19건으로 집계됐고, KT 내부에서는 37개 사업부서가 참여했다. 협력 기업을 늘리는 동시에 실제 사업에 기술을 적용할 내부 접점도 확대하고 있는 셈이다.
협업 사례를 보면 KT가 겨냥하는 시장이 드러난다. 다임테크놀로지는 로봇 통합제어와 디지털트윈을 결합해 공장 운영을 지원하는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쓰리아이는 공공시설에서 이상 징후가 감지되면 로봇이 현장에 출동해 촬영하고 AI가 상태를 판독하는 서비스를 준비 중이다. AI를 실제 설비와 연결해 생산과 시설관리 업무를 바꾸려는 시도다. 단순히 AI 모델을 공급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현장에 필요한 장비와 시스템까지 연계하는 것이다.
에이전틱 AI도 산업별 업무에 맞춰 적용된다. 사이오닉AI는 통신망 장애 원인을 분석하고 조치 방안을 제시하는 AI 에이전트를 KT 네트워크 운영 업무에 적용할 수 있는지 검증하고 있다. 달파는 드라마 대본과 기획안을 분석해 콘텐츠 기획과 투자 판단을 지원하는 솔루션을 개발 중이다. KT는 이를 그룹 내 미디어 사업에 적용할 계획이다. 의료 분야에서는 AI 전문기업 아크릴과 협력해 클라우드·데이터 인프라와 병원 시스템 연계에 의료 특화 AI를 결합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분야별 전문 기술은 스타트업이 제공하고 KT가 고객과 인프라를 연결하는 구조다.
KT가 외부 기술과의 협업을 확대하는 배경에는 기업용 AI 시장의 특성이 있다. 기업 고객은 AI 모델의 성능만 보는 것이 아니라 기존 업무시스템과의 연동, 데이터 보안, 구축 비용, 장애 대응과 유지보수까지 따진다. 기술 시연에 성공하는 것과 실제 현장에 도입돼 지속적으로 사용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KT는 기업 영업망과 네트워크·클라우드 운영 경험을 활용해 스타트업 기술을 고객 업무에 적용할 수 있다. 스타트업은 대기업이 자체 개발만으로 확보하기 어려운 전문성과 속도를 제공한다. 양쪽의 강점을 결합하면 기술 개발 부담을 줄이고 산업별 수요에 맞는 서비스를 더 빠르게 구성할 수 있다.
AX 사업의 성장세는 KT가 이 시장에 힘을 싣는 배경이다. KT와 KT클라우드의 올해 2분기 AX 매출은 3678억원으로 전년 동기보다 22.3% 증가했다. KT는 상반기 금융권 AX 사업 22건을 수주했으며, 2028년 AX 매출을 2025년의 두 배 이상으로 확대한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금융권을 비롯한 기업들의 AI 도입 수요가 커지는 상황에서 스타트업 협력은 KT가 제공할 수 있는 서비스의 폭을 넓히는 수단이 될 수 있다. 자체 기술만으로 대응하기 어려운 산업별 수요를 외부 전문기업과 함께 공략하려는 것이다.
협업을 지속 가능한 수익으로 전환하는 일은 남은 과제다. 기술 검증 단계에서 성능을 입증해도 고객의 업무 환경에 맞지 않거나 비용 절감과 생산성 개선 효과가 충분하지 않으면 실제 도입으로 이어지기 어렵다. 여러 스타트업의 기술을 결합하는 과정에서는 품질과 보안 기준을 맞추고 장애 발생 시 책임 소재를 명확히 해야 한다. 초기 실증을 넘어 유료 계약을 확보하고, 구축 이후 운영·유지보수와 다른 업무로의 확장까지 이어져야 일회성 프로젝트를 반복 매출을 만드는 사업으로 발전시킬 수 있다.
KT 입장에서 스타트업은 부족한 기술을 보완하는 협력사인 동시에 새로운 산업으로 진입하는 통로다. 제조 공장과 병원, 공공시설마다 요구하는 AI가 달라지는 시장에서 모든 기술을 자체 개발하는 방식에는 시간과 비용의 한계가 있다. KT가 확보해야 할 경쟁력은 개별 AI 모델의 성능만이 아니라 다양한 기술을 고객 환경에 맞게 통합하고 구축·운영까지 책임지는 능력이다. 56개 협력망의 가치는 참여 기업 수보다 현장에 안착한 기술과 유료 고객, 반복 매출이 얼마나 늘어나는지에 따라 달라질 전망이다.
[아주경제 2026년 10월 22일자 13면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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