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누리상품권은 전통시장과 골목상권을 살리겠다며 2009년 도입한 제도다. 소비자가 할인된 가격으로 상품권을 구입하면 정부가 그 차액을 재정으로 부담한다. 정부 지원으로 소비를 유도하고 소상공인의 매출을 늘리겠다는 취지였다. 시행 18년째를 맞았지만 정작 국민 세금이 얼마나 효율적으로 쓰였는지, 영세 상인에게 어느 정도 도움이 됐는지를 둘러싼 의문은 여전하다.
올해 1월부터 8월까지 온누리상품권 결제액은 3조3369억원에 달했다. 이 가운데 73.7%인 2조4592억원이 상위 10% 가맹점에 집중됐다. 상위 1% 점포의 결제액만 1조2455억원으로 전체의 37%를 차지했다. 더불어민주당 장철민 의원이 중기부와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 자료를 분석한 결과다. 특히 결제액 상위 10곳 가운데 5곳은 의약품 취급점이었다. 전통시장과 영세 상인을 지원하겠다며 투입한 예산의 혜택이 실제 어디로 흘러갔는지 따져볼 대목이다.
결제액이 특정 점포에 집중되는 현상은 부정 유통과 별개로 살펴야 할 정책 설계의 문제다. 매출 규모가 큰 점포에 소비가 몰릴 수 있지만, 국민 세금까지 투입하는 지원사업이라면 영세 상인의 소득과 상권 전체의 매출에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검증해야 한다. 상품권으로 물건을 구매했다는 사실만으로 새로운 소비가 발생했다고 볼 근거도 부족하다. 평소 현금이나 카드로 구매하던 소비자가 결제 수단만 바꿨다면 정부 예산은 기존 소비에 할인 혜택을 제공한 셈이다.
정부도 뒤늦게 제도 손질에 나섰다. 지난 6월 시행령을 개정해 연매출 30억원을 초과하는 점포의 신규 가맹을 제한하고 부정 유통에 따른 과징금을 부당이득의 최대 3배까지 부과할 수 있도록 했다. 이달 1일에는 전통시장 이용자에게 할인과 환급을 합쳐 최대 10%의 혜택을 제공하는 개편안도 발표했다. 그러나 부정 유통으로 발생한 이익을 충분히 회수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할인 혜택부터 확대하는 방식에는 재정 관리의 허점이 남는다.
현행 '전통시장 및 상점가 육성을 위한 특별법'에는 이미 부정 유통을 조사하고 가맹점 등록을 취소하거나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는 근거가 마련돼 있다. 법률상 제재 수단을 추가하는 작업에 앞서 기존 권한을 제대로 행사하고 있는지부터 살펴야 한다. 위반 행위가 반복됐는데도 이를 조기에 발견하지 못했다면 감독 체계를 점검해야 한다. 부당이득 환수가 지연되는 경우에도 원인과 징수 절차를 구체적으로 따져야 한다. 행정의 성과는 적발 건수와 처분 규모에 그치지 않고 실제 환수 결과로 이어져야 한다.
국회가 손봐야 할 부분도 여기에 있다. 정부가 매년 온누리상품권의 부정 유통 적발 현황과 환수 결정액, 실제 징수액, 미납 사유를 국회에 보고하도록 법률에 규정할 필요가 있다. 환수 실적이 부진하면 그 원인을 분석해 개선 계획까지 제출하도록 해야 한다. 반복적인 감독 소홀이나 위법한 업무 처리가 확인된 경우에는 감사와 관계 법령에 따른 책임 추궁이 뒤따라야 한다. 법적 근거를 갖춘 정보 분석과 정기적인 가맹점 점검으로 이상 거래를 조기에 포착하는 일도 중요하다.
예산의 효과를 검증하는 작업 역시 강화해야 한다. 상품권 발행액과 사용액, 가맹점 수는 행정 실적을 보여주는 지표일 뿐이다. 정부가 살펴야 할 대상은 지원 전후의 실제 매출 변화와 신규 고객 유입, 영세 점포의 소득 증가, 지역별 수혜 격차다. 상품권 사용이 가능한 점포와 그렇지 않은 점포의 매출 변화를 비교하고, 할인 지원이 종료된 이후에도 소비가 유지되는지 확인해야 한다. 그 결과를 공개해 다음 연도 예산 편성과 국회 심사에 반영한다면 효과가 떨어지는 사업에 막대한 재정이 투입되는 관행도 줄일 수 있다.
골목상권의 경쟁력을 높이는 데 필요한 지원도 다시 살펴야 한다. 소비자에게 할인 혜택을 제공하는 방식과 상인의 경영 능력을 높이는 방식 가운데 어느 쪽이 더 큰 효과를 내는지 비교할 필요가 있다. 공동 배송과 온라인 판매, 노후시설 개선, 상품 개발 등은 상인이 고객을 확보하고 영업비용을 줄이는 데 직접적인 도움을 줄 수 있다. 정부가 지원한 상품권을 모두 사용한 뒤에도 손님이 다시 찾는 시장을 만드는 일이 중요하다. 재정 지원의 성과는 그런 변화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정치권은 경기 침체 때마다 온누리상품권 발행 확대를 민생 대책으로 내세워 왔다. 할인율을 높이면 소비자는 당장 혜택을 누리고 정부는 눈에 보이는 실적을 얻는다.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재정 부담과 부정 유통의 피해는 국민에게 돌아간다. 지원을 늘리겠다는 발표에는 관심이 쏠리지만 이미 집행한 예산을 어떻게 관리했고 어떤 성과를 거뒀는지 따지는 목소리는 상대적으로 작았다.
국민의 세금에는 사용 목적과 그에 따른 책임이 따른다. 온누리상품권도 예외일 수 없다. 정부는 부정 유통으로 빠져나간 돈을 끝까지 추적해 환수하고, 영세 상인에게 돌아간 실질적인 혜택을 수치로 증명해야 한다. 국회는 그 결과를 예산 심사와 법률 개정에 반영해야 한다. 새로운 할인 혜택을 약속하기 전에 이미 쓴 돈의 행방부터 밝히고, 발행 실적을 자랑하기 전에 상인들이 얼마나 나아졌는지 보여줘야 한다. 국민 세금을 쓰는 권한만 누리고 그 결과에는 책임지지 않는 재정 운용을 더는 용납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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