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결과 총 47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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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썸, 해커에 2억원 건다…거래소 경쟁, 이제는 '보안과 신뢰'
[경제일보] 빗썸이 국내 가상자산 거래소 최고 수준인 최대 2억원의 버그바운티(취약점 신고 포상제) 포상금을 내걸었다. 상장 종목과 수수료 경쟁에 치중했던 가상자산 거래소 업계가 이제는 보안과 신뢰를 핵심 경쟁력으로 내세우기 시작했다는 신호다. 가상자산은 몇 초 만에 거래되지만 보안 사고로 무너진 신뢰는 회복에 오랜 시간이 걸린다. 빗썸이 버그바운티 포상금을 대폭 올리고 프라이버시센터까지 개편한 배경에는 거래소가 단순 매매 플랫폼을 넘어 금융 인프라 수준의 통제 체계를 요구받고 있다는 현실이 자리한다. 빗썸은 플랫폼 보안 취약점을 선제적으로 발굴하기 위한 버그바운티 프로그램의 최고 포상금을 2억원으로 확대한다고 지난 2일 밝혔다. 버그바운티는 외부 보안 전문가가 서비스 취약점을 찾아 제보하면 심각도에 따라 포상금을 지급하는 제도다. 회사 측은 이번 포상 규모가 국내 가상자산 거래소 가운데 최고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국내 금융권의 버그바운티 포상금이 일반적으로 수천만원 수준에 머무는 것과 비교하면 이례적인 규모다. 빗썸은 2022년 9월 국내 가상자산사업자(VASP) 가운데 선제적으로 버그바운티를 도입했다. 올해 하반기부터는 기존 프로그램을 강화해 공지된 범위 안에서 블랙박스 침투 테스트를 수행할 수 있도록 하고 취약점 심각도에 따라 포상금을 차등 지급할 계획이다. 외부 공격자가 발견하기 전에 보안 취약점을 먼저 찾아 제거하겠다는 취지다. 더 주목되는 부분은 프라이버시센터 개편이다. 빗썸은 개인정보 처리 현황과 정보보호 활동을 이용자에게 공개하고 외부 취약점 점검 결과와 정보보호 자문위원회 정례 회의 내용도 공유할 계획이다. 거래소 보안이 내부 점검과 비공개 통제 중심에서 외부 검증과 이용자 공개를 결합한 구조로 진화하고 있는 셈이다. 배경에는 급변하는 규제 환경이 있다. 국내 가상자산사업자는 특정금융정보법에 따라 자금세탁방지 의무를 부담한다. 지난해 7월 시행된 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 이후에는 이용자 자산 보호와 이상거래 감시 책임도 한층 강화됐다. 거래소는 고객확인(KYC) 과정에서 개인정보와 금융거래 정보를 대규모로 다룬다. 보안 사고는 단순한 시스템 장애가 아니라 실명계좌 제휴와 감독당국 대응, 시장 평판까지 흔드는 경영 리스크가 됐다. 글로벌 시장에서도 보안의 중요성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최근 해외 가상자산 거래소와 디파이(DeFi) 플랫폼을 겨냥한 해킹 피해가 잇따르고 있으며, 북한 연계 해킹 조직의 가상자산 탈취 사례도 꾸준히 보고되고 있다. 디지털자산 시장이 제도권 금융에 편입될수록 보안은 선택이 아닌 생존 조건으로 자리 잡고 있다. 빗썸이 보안 투명성을 전면에 내세우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향후 스테이블코인과 커스터디, 기관투자자 서비스, 디지털자산 결제 인프라 시장이 커질수록 거래소 보안은 사업 확장의 전제 조건이 된다. 은행과 제휴하고 기관 고객을 유치하려면 보안 체계를 선언이 아니라 숫자와 절차, 검증 결과로 입증해야 한다. 남은 과제는 실효성이다. 최대 2억원이라는 포상금은 상징성이 크지만, 제보 범위와 취약점 등급 기준, 제보자 보호 원칙, 처리 기한, 패치 완료 후 공개 범위가 명확해야 제도가 제대로 작동할 수 있다. 프라이버시센터 역시 홍보 페이지에 그친다면 효과는 제한적이다. 개인정보 처리 현황과 자문위원회 권고 사항, 취약점 개선 사례가 정기적으로 공개될 때 비로소 신뢰 자산이 될 수 있다. 빗썸 관계자는 "투자자가 안심하고 거래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버그바운티 포상금을 국내 최고 수준으로 상향했다"며 "프라이버시센터를 통해 정보보호 현황을 공유하고 개방형 보안 생태계를 조성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가상자산 거래소의 경쟁은 수수료와 상장 종목만으로 결정되지 않는 단계에 들어섰다. 보안과 개인정보 보호, 이상거래 대응 능력이 거래소의 체급을 가르는 기준이 되고 있다. 빗썸의 이번 조치가 일회성 발표를 넘어 실제 제보 건수와 처리 속도, 개선 사례로 이어질 때 시장은 이를 보안 비용이 아니라 금융 인프라로 가기 위한 신뢰 투자로 평가할 것이다.
2026-07-03 13:0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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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이스X '0주 배정'…비난보다 해외주관사 결정 구조 살펴봐야
[경제일보] 스페이스X 기업공개(IPO) 과정에서 국내 투자자 대상 공모주 배정이 한 주도 이뤄지지 않은 ‘0주 배정’ 사태를 둘러싸고 금융투자업계 안팎의 논란이 커지고 있다. 미래에셋증권이 스페이스X IPO 참여를 앞세워 투자자 기대를 키웠지만 정작 최종 배정 물량을 확보하지 못했다는 비판이 제기되면서다. 금융당국도 사안을 들여다보고 있다. 쟁점은 크게 두 가지다. 미래에셋증권이 투자자에게 배정 가능성과 미배정 위험을 충분히 설명했는지, 물량이 확정되지 않은 단계에서 경영진 발언이나 영업 현장 안내가 투자자에게 과도한 기대를 줬는지 여부다. 다만 금융투자업계에서는 이번 사태를 특정 증권사의 홍보 실패나 내부통제 문제로만 규정해서는 곤란하다는 반론도 나온다. 글로벌 초대형 IPO에서 최종 배정 권한이 국내 증권사에 있지 않았고 한국 투자자가 구조적으로 불리한 위치에 놓였다는 점도 함께 봐야 한다는 것이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투자자 입장에서 불만이 나오는 것은 당연하지만, 이번 사안을 국내 증권사가 마음대로 물량을 확보했다가 나눠주지 않은 것처럼 보는 것은 사실관계와 차이가 있다”며 “최종 배정 권한이 어디에 있었는지, 한국 물량이 왜 제외됐는지를 따져보는 것이 우선”이라고 말했다. ◆최종 배정 권한은 해외 대표주관사…한국 물량 제외 배경 불투명 이번 논란의 핵심은 글로벌 IPO 배정 구조에 있다. 미래에셋증권은 스페이스X IPO 인수단에 참여했지만 최종 배정 권한은 해외 대표주관사에 있었다. 당초 국내 투자자에게 일정 물량이 배정될 수 있다는 기대가 있었지만, 상장 직전 최종 배정 과정에서 한국 배정 물량은 ‘0주’로 결정됐다. 업계에 따르면 미래에셋증권은 투자설명서 등을 통해 대표주관사의 최종 배정 결과에 따라 물량이 변동되거나 배정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을 안내했다. 문제는 국내 증권사가 최종 물량을 통제할 수 없는 구조였다는 점이다. 글로벌 IPO, 특히 스페이스X처럼 세계적 관심이 몰리는 초대형 딜에서는 △국가별 배정 △기관투자자 선호 △규제 환경 △판매 방식 △주관사의 전략적 판단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국내 증권사가 인수단에 포함됐다는 사실만으로 최종 물량 확보가 보장되지는 않는다. 증권업계의 한 임원은 “국내 투자자에게 결과적으로 물량이 배정되지 않은 것은 매우 이례적이고 아쉬운 일”이라면서도 “배정 실패 책임을 따지려면 최종 배정 결정을 내린 해외 대표주관사의 판단 배경도 공개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국내 증권사만 검사와 비판의 전면에 세우면 논의가 반쪽짜리에 그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예상’과 ‘확약’은 달라…이해상충 논란도 신중해야 이번 사태와 관련해 박현주 미래에셋그룹 회장의 과거 발언도 도마 위에 올랐다. “상당 규모 물량이 예상된다”는 취지의 발언이 투자자들에게 사실상 배정이 확정된 것처럼 받아들여졌는지가 쟁점이다. 그러나 업계에서는 전망과 확약은 구분해야 한다는 시각이 적지 않다. 인수단 참여와 사전 협의 상황을 근거로 배정 가능성을 언급한 것과 최종 물량을 보장한 것은 성격이 다르다는 것이다. 자본시장에서 예상과 전망은 언제든 달라질 수 있다. 최종 결과가 빗나갔다고 해서 과거 발언을 곧바로 허위·과장 홍보로 단정하는 것은 신중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한 자본시장 전문가는 “금융회사가 ‘가능성’을 설명할 때 투자자는 이를 ‘확정에 가까운 기대’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다”며 “이번 사태의 본질이 글로벌 배정 구조에 있다 하더라도, 국내 판매사가 투자자 기대를 어떻게 관리했는지는 별도 점검 대상”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서 제기되는 이해상충 논란도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미래에셋증권이 스페이스X 기존 투자자였다는 이유만으로 해당 기업의 성장성을 긍정적으로 평가한 행위를 곧바로 이해상충으로 연결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이해상충을 따지려면 그래서 미래에셋이 무엇을 얻었는지를 봐야 한다”며 “스페이스X의 성장성을 긍정적으로 본 것과 IPO 배정 물량을 확보하지 못한 것은 구분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배정 결과가 기대와 달랐다고 해서 모든 이전 판단을 이해상충으로 몰아가는 것은 결과론적 해석에 가깝다”고 덧붙였다. ◆국내 금융사만 때리면 글로벌 딜 참여 위축 우려 이번 사태가 국내 금융회사들의 글로벌 딜 참여 의지를 위축시킬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정부가 자본시장 선진화와 금융투자업 경쟁력 강화를 강조하는 상황에서, 해외 대형 IPO 참여 실패가 곧바로 국내 증권사에 대한 사후적 책임론으로만 귀결되면 국내 금융사의 글로벌 네트워크 확장에 부담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국내 금융회사들이 글로벌 초대형 IPO 인수단에 이름을 올리는 것은 단순한 판매 기회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실제로 미래에셋증권은 골드만삭스, JP모건, 미즈호 등 글로벌 투자은행들과 함께 초대형 IPO 인수단에 참여했고 미국 현지 기관투자자 배정 과정에서 국민연금과 KIC 등과 함께 주관사인 모건스탠리로부터 약 270만주 규모를 배정받으며 글로벌 시장에서 국내 자본시장의 경쟁력을 증명하고 있다. 향후 챗GPT 개발사 오픈AI, 엔스로픽 등 글로벌 기술기업들의 IPO가 이어질 가능성이 높은 만큼 투자자 보호와 시장 경쟁력이라는 두 목표를 함께 달성할 수 있는 글로벌 스탠다드 수준의 제도 정비가 필요한 실정이다. 일본이 엔화 약세 국면에서도 대형 해외 IPO 참여를 허용했던 사례 등을 참고해 국내 자본시장의 글로벌 접근성을 높이는 방안도 검토해야 한다는 제언이 나온다. 한 증권사 고위 관계자는 “글로벌 IPO 시장은 물량을 먼저 확보한 뒤 국내에 나눠주는 단순한 구조가 아니다”라며 “국내 금융사가 위험을 무릅쓰고 해외 딜에 참여했는데 결과가 나쁘면 국내에서만 책임을 묻는 방식이 반복되면 앞으로 누가 적극적으로 나서겠느냐”고 반문했다. 그렇다고 투자자 보호를 뒤로 미뤄서는 안 된다. 이번 사태는 해외 IPO 투자 과정에서 국내 투자자에게 어떤 정보를 어떻게 제공해야 하는지, 미배정 가능성을 어떤 방식으로 고지해야 하는지, 환전 비용 등 부대 비용에 대해 어떤 기준으로 설명해야 하는지에 대한 제도 정비 필요성을 드러냈다. 전문가들은 배정 가능성과 확정 물량을 명확히 구분해 표시하고, 대표주관사의 최종 배정 재량에 따른 미배정 위험을 표준화된 방식으로 고지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국내 증권사가 해외 IPO 인수단에 참여할 경우 대표주관사와 국내 판매사 간 책임 범위도 보다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이제 해법은 정교해야 한다. 미래에셋증권의 사전 설명과 투자자 보호 조치는 엄격히 점검해야 한다. 동시에 최종 배정 권한을 행사한 해외 대표주관사의 불투명한 결정 구조도 함께 들여다봐야 한다. 국내 금융회사만 때리는 결론으로 끝나면 투자자 보호도, 자본시장 선진화도 모두 놓칠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아주경제 2026년 06월 23일자 15면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2026-06-23 09:3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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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만에 손보는 스튜어드십 코드, 감시자도 감시받아야 한다
[경제일보] 한국 자본시장에서 오래된 질문이 하나 있다. “주인은 누구인가.” 상장기업의 주인은 주주라고 말하지만, 현실의 이사회와 경영진은 때로 오너 일가의 뜻을 더 무겁게 받아들였다. 국민의 노후자금을 굴리는 연기금과 자산운용사도 기업의 주인이라기보다 조용한 손님처럼 주주총회장 한쪽에 앉아 있었다. 기업가치를 훼손하는 결정에도 침묵했고, 일반 주주가 손해를 보는 합병이나 배당정책에도 뒤늦게 반대표를 던지는 정도에 머문 경우가 적지 않았다. 그 침묵을 깨기 위해 도입된 것이 스튜어드십 코드다. 기관투자자가 고객과 수익자의 돈을 맡은 수탁자로서 투자대상 기업을 점검하고 필요하면 의결권과 주주권을 행사하라는 행동지침이다. 한국형 스튜어드십 코드는 2016년 12월 도입됐다. 이후 국민연금, 공무원연금, 사학연금, 우정사업본부 등 4대 연기금과 자산운용사, 사모펀드 운용사, 벤처캐피털 등 수백 개 기관이 참여했다.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참여기관은 249곳이었다. 기관투자자의 반대 의결권 행사와 주주제안이 늘어나는 등 일정한 변화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지난 10년의 성적표는 절반의 성공에 가깝다. 가입 기관은 늘었지만 실제 무엇을 했는지 알기 어려웠다. 코드에 참여한다고 선언해도 이행보고서를 제대로 쓰지 않거나, 써도 각 기관 홈페이지에 흩어져 비교와 검증이 어려웠다. 금융위에 따르면 과거 이행보고서를 공시한 기관은 전체의 10%에도 미치지 못했다. ‘책임투자’라는 간판은 걸었지만 책임의 내용을 시장이 확인하기 어려웠던 셈이다. 정부와 한국ESG기준원이 추진하는 이번 개정안은 바로 그 약한 고리를 겨냥한다. 핵심은 수탁자 책임 활동 보고서를 매년 한국ESG기준원에 제출하도록 하고, 이행 여부를 점검해 공시하는 것이다. 기관투자자는 고객과 수익자에게 수탁자 책임 정책과 이행 현황을 주기적으로 보고해야 한다. 원칙을 지키지 않았다면 왜 지키지 않았는지 설명해야 한다. 기존 국내 상장주식 중심이던 적용 대상도 채권, 인프라, 부동산, 비상장주식 등으로 넓어질 전망이다. 수탁자 책임 활동의 고려 요소도 지배구조를 넘어 환경·사회·지배구조, 즉 ESG 전반으로 확대된다. 방향은 옳다. 한국 증시는 오랫동안 ‘코리아 디스카운트’라는 구조적 저평가에 갇혀 있었다. 낮은 배당, 불투명한 지배구조, 지배주주와 일반주주 사이의 이해충돌, 이사회 독립성 부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정부가 말하는 밸류업도 결국 기업이 벌어들인 이익을 주주와 시장이 신뢰할 수 있는 방식으로 나누고, 경영진이 자본비용을 의식하도록 만드는 일이다. 그 과정에서 기관투자자의 역할은 작지 않다. 기관이 침묵하면 기업은 변하지 않는다. 기관이 원칙 있게 묻고 따지면 이사회는 긴장한다. 특히 연기금과 자산운용사는 단순한 투자자가 아니다. 국민의 노후자금, 직장인의 퇴직연금, 개인투자자의 펀드 자금을 맡은 관리자다. 이들이 기업의 사업모델, 재무상황, 자본배분, 지배구조를 살피는 것은 정치적 개입이 아니라 수탁자의 기본 책무다. 기업이 현금을 쌓아두고도 투자를 하지 않는지, 대주주에게 유리한 거래가 일반주주에게 불리하지 않은지 따지는 것은 시장경제의 정상 작동에 속한다. 주주권 행사를 ‘기업 때리기’로만 보는 낡은 인식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하지만 밝은 면만 볼 수는 없다. 스튜어드십 코드의 칼날은 기업을 향하지만, 그 칼을 쥔 기관투자자도 감시받아야 한다. 문제는 누가 감시하느냐다. 이번 개정안에서 이행점검의 실무는 한국ESG기준원이 맡고, 스튜어드십 코드 발전위원회가 최종 검토·의결하는 구조다. 그런데 시장 일각에서는 이 점검 체계의 독립성을 우려한다. 발전위원회에 자산운용업계 인사가 참여하고, ESG기준원이 의결권 자문이나 의안분석 서비스 등 금융투자업계와 거래 관계를 맺고 있다는 지적이다. 피점검 대상과 점검 주체 사이에 이해상충 가능성이 있다면 제도의 신뢰는 출발선에서 흔들릴 수밖에 없다. 물론 ESG기준원은 스튜어드십 코드 지원 조직을 별도로 운영하고, 의결권 자문 등 다른 업무와 공간·인력·정보교류를 차단하겠다는 입장이다. 금융위도 내부정보 교류 차단장치를 통해 이해상충 가능성을 최소화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시장의 신뢰는 선언만으로 생기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외부에서 보아도 이해상충이 없다고 믿을 수 있는 구조다. 감시자는 실제로 독립적이어야 하고, 동시에 독립적으로 보여야 한다. 영국의 사례는 참고할 만하다. 스튜어드십 코드의 원류는 2010년 영국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기관투자자의 무관심과 단기주의가 위기를 키웠다는 반성에서 출발했다. 영국은 재무보고위원회(FRC)를 중심으로 코드의 이행력을 높여왔다. 한국도 같은 모델을 그대로 베낄 필요는 없지만, 적어도 ‘업계가 업계를 점검한다’는 의심을 줄일 장치는 필요하다. 자율규범이라는 이름 아래 점검이 느슨하면 시장은 냉소하고, 정부 입김이 과도하면 기업과 기관투자자는 정치적 압박으로 받아들인다. 반민반관형 독립기구, 외부 전문가 중심의 평가위원회, 이해상충 공개 의무 같은 보완장치가 필요한 이유다. ESG와 공동관여 활동도 신중해야 한다. ESG 요소를 고려하는 것은 세계적 흐름이지만, 기업의 본질적 경쟁력과 무관한 정치적 구호로 흐르면 책임투자는 방향을 잃는다. 여러 기관투자자가 함께 기업과 대화하는 공동관여도 영향력을 키울 수 있지만, 특정 기업을 압박하는 집단행동처럼 비치면 시장의 자율성과 경영 판단을 위축시킬 수 있다. 주주권 행사는 강해야 하지만 무리해서는 안 된다. 자본시장 개혁은 칼보다 저울에 가까워야 한다. 스튜어드십 코드 개정은 한국 자본시장에 필요한 수술이다. 기업가치를 높이고, 주주권을 정상화하며, 기관투자자의 책임을 실질화하는 방향은 맞다. 특히 PBR(주가순자산비율) 1배 미만 기업이 여전히 절반 안팎에 이르는 현실에서 기관투자자의 침묵은 더 이상 미덕이 아니다. 시장은 이제 ‘착한 기관’이 아니라 ‘책임 있는 기관’을 요구한다. 다만 제도의 성패는 문구가 아니라 집행에 달려 있다. 보고서를 의무화해도 내용이 부실하면 또 하나의 서류 행정이 된다. ESG를 넣어도 평가 기준이 모호하면 ESG 워싱만 키운다. 점검 체계를 만들어도 감시자가 독립적이지 않으면 시장은 믿지 않는다. 기관투자자에게 책임을 묻겠다면 그 책임을 점검하는 사람에게도 책임을 물어야 한다. 스튜어드십 코드 10년의 과제는 분명하다. 침묵하는 기관을 깨우는 것, 그리고 그 기관을 감시하는 눈까지 투명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 둘이 함께 갈 때 한국 증시는 숫자의 상승을 넘어 신뢰의 상승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2026-06-22 14:4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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