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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 국가책임' 9년, 끝까지 책임진 건 가족이었다
[경제일보] 생활고와 간병 부담에 짓눌린 50대 남성이 친형을 살해하고 80대 어머니에게도 흉기를 휘둘렀다. 수원지법은 살인과 존속살해미수 혐의로 기소된 이 남성에게 징역 10년을 선고했다. 범죄의 결과만 놓고 보면 무거운 형이 선고될 만한 사건이다. 그러나 법원이 형을 정하면서 적시한 사정은 따로 읽어볼 필요가 있다. 남성은 부친이 숨진 뒤 치매를 앓는 어머니와 정신질환이 있는 형을 혼자 부양했다. 직장까지 그만두면서 생계가 어려워졌고 간병 스트레스도 극심해졌다. 재판부는 이런 사정을 양형에 참작했다. 형사재판은 피고인의 책임을 묻는 절차다. 법원이 간병 부담과 생활고를 참작했다고 해서 살인의 책임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다만 판결문에 적힌 양형사유는 한 사람이 어떤 상황에서 무너졌는지를 사법부가 공식적으로 기록한 대목이다. 정부가 읽어야 할 부분은 바로 여기에 있다. 2017년 문재인 당시 대통령은 치매환자를 본인과 가족에게만 맡겨서는 안 된다며 국가와 사회가 함께 책임지겠다고 했다. 정부는 ‘치매 국가책임제’라는 이름까지 붙였다. 치매안심센터를 전국에 설치하고 의료비 부담을 낮추며 장기요양 지원을 확대했다. 치매를 더 이상 한 집안의 문제로 두지 않겠다는 선언이었다. 이름부터 무거웠다. ‘지원 확대’도 아니고 ‘관리 강화’도 아닌 ‘국가책임’이었다. 정부가 스스로 책임의 범위를 넓혀 국민에게 약속한 것이다. 그렇다면 9년이 지난 지금 그 약속이 실제 가정에서 어디까지 작동했는지를 따져보는 것은 당연하다. 문재인 정부가 물러나고 윤석열 정부를 거쳐 이재명 정부가 들어섰다. 정권은 두 번 바뀌었고 치매 관련 조직과 사업, 예산은 계속 늘었다. 그런데 치매환자를 먹이고 씻기고 병원에 데려가고 밤새 지켜보는 마지막 책임은 아직도 가족에게 남아 있다. 정부 조사에서도 치매환자를 돌보는 가족의 절반 가까이가 돌봄 부담을 호소했다. 경제적 부담과 정신적 소진도 반복해서 확인됐다. 정부가 몰랐던 문제가 아니다. 수년 전부터 통계에도 잡히고 정책보고서에도 적혀 있던 문제다. 이번 용인 사건은 그 숫자가 현실에서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는지를 보여준다. 치매 노모와 정신질환 형을 한 사람이 동시에 돌봤다. 간병 때문에 직장을 그만뒀고 경제적 어려움까지 겹쳤다. 복지행정의 관점에서 보면 위험신호가 한두 개가 아니었다. 치매환자와 정신질환자가 한 집에 있고 보호자는 한 명뿐이다. 그 보호자가 생업까지 포기했다. 소득도 줄고 외부와의 접촉도 줄었을 가능성이 크다. 이 정도 상황을 국가의 돌봄망이 붙잡지 못했다면 제도가 어디에서 끊겼는지부터 따져야 한다. 치매안심센터가 몇 곳인지, 상담을 몇 건 했는지는 행정 보고서에 필요한 숫자다. 국가책임제의 성적표는 다른 곳에 있어야 한다. 보호자 한 사람이 간병 때문에 직장을 그만두고 생계까지 흔들릴 때 국가가 그 집 안으로 들어갔는지, 하루 몇 시간이라도 돌봄을 대신했는지, 버틸 수 없는 상태에 이른 보호자를 다른 제도와 연결했는지가 성적표가 돼야 한다. 국가는 치매환자를 등록하고 검진하고 상담하는 일에는 상당한 체계를 갖췄다. 정작 가족이 무너지지 않도록 책임을 나눠 갖는 부분은 여전히 허술하다. 국가가 책임진다고 했지만 밤을 새운 사람은 가족이었고 직장을 그만둔 사람도 가족이었다. 생활비와 간병비를 걱정하며 끝까지 버틴 사람 역시 가족이었다. 그래서 ‘치매 국가책임제’와 지금의 현실 사이에는 간단히 넘길 수 없는 간극이 있다. 국가는 환자를 관리했지만 가족은 환자의 삶을 떠안았다. 국가가 제도를 만들었지만 가족은 자신의 직업과 소득, 일상을 내놓았다. 책임의 가장 무거운 부분이 여전히 가족에게 남아 있다면 간판만 국가책임제인 셈이다. 이재명 정부도 이 문제에서 전임 정부를 바라볼 처지가 아니다. 정부가 바뀌면 장관과 정책 이름은 바뀌지만 국가의 약속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치매 국가책임제를 계승하고 지역사회 통합돌봄을 확대하겠다면 문재인 정부가 내건 ‘국가책임’이라는 미완의 약속도 함께 넘겨받은 것이다. 새로운 종합계획을 발표하고 지원 대상자가 몇 명 늘었다고 설명하는 것으로 끝낼 일이 아니다. 혼자 중증환자를 돌보는 사람, 간병 때문에 생업을 포기한 사람, 생활비가 끊긴 가정부터 찾아내야 한다. 도움을 신청하러 찾아오는 사람만 지원하는 복지로는 이미 지쳐 쓰러진 사람을 잡아낼 수 없다. 법의 시간과 복지의 시간도 다르다. 형법은 범죄가 벌어진 뒤 책임을 묻는다. 복지행정은 범죄나 극단적인 선택, 가족 붕괴가 벌어지기 전에 움직여야 한다. 사후에 정확하게 처벌하는 국가보다 사전에 한 가정을 붙잡는 국가가 훨씬 어렵지만 ‘국가책임’을 내걸었다면 그 어려운 일을 하겠다는 뜻이어야 한다. 이번 사건에서 범행이 벌어진 뒤 국가 시스템은 정확하게 작동했다. 경찰은 피고인을 체포했고 검찰은 기소했으며 법원은 증거와 양형사유를 따져 징역 10년을 선고했다. 형사사법기관은 각자의 절차에 따라 역할을 했다. 문제는 그 전에 작동했어야 할 국가의 돌봄망이다. 살인사건의 판결문에 ‘치매를 앓는 모친과 정신질환이 있는 형을 홀로 부양했다’는 문장이 남았다. 간병 때문에 직장까지 그만둔 한 사람이 가족을 죽이는 순간까지 갔다. ‘치매는 국가가 책임진다’고 선언한 지 9년이 된 나라에서 벌어진 일이다. 정책은 발표할 때가 아니라 국민이 가장 어려울 때 평가받는다. 센터의 숫자도, 예산의 규모도, 지원 실적도 한 가정이 무너지는 것을 막지 못했다면 다시 따져봐야 한다. ‘국가책임제’라는 이름만으로 책임을 다했다고 말할 수는 없다. 국가가 책임진다던 9년 동안, 끝까지 버티고 끝내 무너진 것은 가족이었다.
2026-08-30 12:1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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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건희 1심 징역 7년…법원이 본 것은 '선물'의 외형보다 청탁의 맥락
[경제일보] 고가 목걸이와 브로치, 귀걸이, 금거북이, 손목시계, 디올 가방, 미술품. 물건의 종류와 이를 건넨 사람들은 달랐지만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1부가 26일 김건희 씨에게 징역 7년을 선고하며 살핀 지점은 같았다. 단순한 축하 선물이나 친분의 표시였는지, 아니면 공직 인사와 사업 지원, 공천 등 공적 영역의 청탁과 결부된 금품이었는지였다. 재판부는 특정범죄 가중처벌법상 알선수재 혐의로 기소된 김 씨의 5개 공소사실을 모두 유죄로 판단했다. 김 씨 측은 일부 물품은 친분에 따른 선물이거나 구매를 대신 맡긴 것일 뿐 청탁의 대가가 아니라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번 판결은 대통령 배우자에게 전달된 고가 물품을 어떤 기준으로 형사책임과 연결할 수 있는지를 다룬 사건이다. 재판부는 물건 하나하나의 겉모습보다 금품이 오간 시점, 제공자의 현안, 청탁 내용, 물품의 가액, 김 씨의 인식과 대응을 함께 놓고 판단했다. ◆ 나토 목걸이 논란에서 시작된 수사 사건은 2022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정상회의 순방 당시 김 씨가 착용한 반클리프 앤 아펠 목걸이 논란에서 시작됐다. 재산신고 대상에 포함되지 않은 고가 목걸이라는 지적이 나오자 당시 대통령실은 지인에게 빌린 물건이라는 취지로 설명했다. 이후 수사 과정에서는 모조품이라는 주장도 나왔다. 수사의 방향은 이봉관 서희건설 회장이 맏사위 인사 청탁을 대가로 목걸이를 건넸다는 취지의 자수서와 진품 목걸이를 제출하면서 달라졌다. 특검은 이 회장이 2022년 3월부터 5월 사이 반클리프 앤 아펠 목걸이, 티파니 앤 코 브로치, 그라프 귀걸이 등 1억380만원 상당의 귀금속을 건넸다고 봤다. 재판부는 세 차례의 귀금속 수수를 하나의 연속된 경위로 판단했다. 처음에는 묵시적으로 나타난 청탁 의사가 시간이 지나면서 구체적인 인사 청탁으로 이어졌고, 김 씨도 그 과정에서 금품 수수의 성격을 인식했다고 본 것이다. 김 씨 측은 대통령 당선과 취임을 축하하는 의미의 선물이라고 주장했다. 재판부는 제공자의 이해관계와 청탁이 구체화된 과정, 반복된 금품 수수를 종합하면 사교적 선물로만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 공무원이 아닌 대통령 배우자에게 적용된 알선수재죄 김 씨는 공무원 신분이 아니다. 직접 인사권이나 인허가권을 행사하는 위치도 아니었다. 이 사건에 뇌물죄가 아니라 알선수재죄가 적용된 이유다. 특정범죄 가중처벌법상 알선수재죄는 공무원의 직무에 속한 사안을 알선하는 대가로 금품이나 이익을 받으면 성립한다. 공무원만 처벌 대상이 되는 범죄가 아니라, 공무원의 직무와 관련된 청탁을 중개하거나 편의를 봐주겠다는 명목으로 금품을 받은 일반인에게도 적용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실제 청탁이 받아들여졌는지나 인사와 사업 지원이 현실화했는지가 아니다. 금품을 받은 사람이 공적 의사결정에 접근할 수 있는 위치를 이용해 청탁을 들어줄 것처럼 행동했고, 제공자가 그러한 기대 아래 물건을 건넸는지가 판단 대상이 된다. 재판부는 김 씨가 대통령 배우자라는 지위에 있었고, 그 지위가 공직 인사와 사업상 현안을 둘러싼 비공식 청탁의 통로로 이용될 수 있다고 봤다. 김 씨가 직접 처분권을 행사하지 않았더라도 대통령실과 정부, 정치권에 영향력을 미칠 수 있다는 기대가 금품 제공의 배경이 될 수 있다는 판단이다. ◆ 금거북이·시계·디올 가방·그림…법원이 본 다섯 갈래 청탁 이배용 전 국가교육위원장에게서 받은 265만원 상당 금거북이와 세한도 복제품은 공직 임명 청탁과의 관련성이 쟁점이었다. 김 씨 측은 취임 축하 편지와 함께 전달된 선물이라는 취지로 맞섰다. 재판부는 편지의 형식보다 그 전부터 형성된 인사 청탁 관계에 주목했다. 로봇개 사업가 서성빈 씨에게서 받은 3990만원 상당 바쉐론 콘스탄틴 손목시계도 사업 지원 청탁과 연결됐다. 김 씨 측은 시계 구매를 대신 맡긴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통상적인 구매 대행이라면 대금 지급이나 사후 정산이 있어야 하는데 그러한 사정이 뚜렷하지 않았고, 제공자가 김 씨와의 관계를 유지하며 사업 현안을 부탁하려 했다고 판단했다. 최재영 목사에게서 받은 디올 가방 등은 공무원 직무와 관련된 청탁이 문제 됐다. 김상민 전 부장검사에게서 받은 이우환 화백 그림은 공천 청탁과 연결됐다. 재판부는 각 물품이 오간 전후 사정과 제공자들의 요구를 살펴 청탁과 금품 사이에 대가 관계가 형성됐다고 봤다. 이 사건에서 법원이 금품마다 청탁 하나를 기계적으로 대응시킨 것은 아니다. 서희건설 귀금속 사건처럼 여러 차례 물건이 전달되고 청탁의 내용도 점차 구체화된 경우에는 전체 경위를 묶어 판단했다. 반면 금거북이와 시계, 디올 가방, 그림은 각 제공자가 가진 인사·사업·공천상 이해관계와 전달 과정에 초점을 맞췄다. ◆ 징역 7년이 나온 배경 알선수재죄의 기본 법정형은 5년 이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 벌금이다. 그러나 여러 범죄가 함께 유죄로 인정되면 경합범 가중이 적용될 수 있다. 특검은 결심 공판에서 법정 최고형인 징역 7년6개월을 구형했고, 재판부는 징역 7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양형 사유로 대통령 배우자라는 지위, 반복된 금품 수수, 적지 않은 금품 가액, 청탁 대상이 인사와 사업, 공천 등 공적 영역에 걸쳐 있다는 점을 들었다. 김 씨가 자신의 영향력을 알선 대상으로 삼아 금품을 반복적으로 받았다고 판단한 것이다. 같이 재판에 넘겨진 이봉관 회장에게는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 로봇개 사업가 서 씨에게는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 최재영 목사에게는 벌금 800만원이 각각 선고됐다. ◆ 항소심에서는 무엇이 쟁점이 되나 김 씨 측은 항소 방침을 밝혔다. 항소심에서는 각 금품 수수와 청탁 사이의 관련성을 어느 정도까지 인정할 수 있는지, 축하 선물·친분·구매 대행이라는 주장을 1심처럼 배척할 수 있는지, 여러 차례의 금품 수수를 하나의 포괄적 대가 관계로 볼 수 있는지가 다시 다뤄질 전망이다. 형량도 쟁점이 된다. 1심은 대통령 배우자의 지위와 반복성, 금품의 규모를 무겁게 봤다. 반대로 김 씨 측은 구체적 청탁이나 실제 알선 행위가 없었다는 주장을 이어갈 가능성이 있다. 이번 1심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다만 재판부는 고가 물품의 명칭이나 전달 방식만으로 수수의 성격을 가릴 수 없다고 봤다. 제공자가 무엇을 기대했는지, 수수자는 그 기대를 알고 있었는지, 그 사이에 공적 권한과 연결된 청탁이 있었는지가 판결의 중심에 놓였다.
2026-06-26 16:1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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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은 끝났지만 판사는 돌아오지 못했다
[경제일보] 판결문은 남았지만 판사는 돌아오지 못했다. 휴일에도 밀린 업무를 처리하러 법원으로 향했던 서울고법 부장판사가 다음 날 새벽 법원 청사 안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그가 맡았던 사건은 사회적 관심이 컸고 판결 전후로 정치적 해석이 따라붙을 수밖에 없는 재판이었다. 그러나 한 사람의 죽음 앞에서 가장 먼저 멈춰야 할 것은 단정이다. 고 신종오 서울고법 부장판사의 마지막 선택을 특정 재판이나 특정 판결과 곧바로 연결하는 일은 신중해야 한다. 유서에는 김건희 여사 재판과 관련한 언급이 없었다고 한다. 가까운 동료들조차 사정을 알지 못했다. 장례식장에서도 사망 원인을 입에 올리는 것 자체를 조심스러워하는 분위기였다고 한다. 죽음의 이유는 남은 사람들이 편한 언어로 재단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그것을 정치적 해석의 재료로 삼는 순간 고인의 마지막은 다시 진영의 소음 속에 묻힌다. 그렇다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지나갈 수는 없다. 사망 원인을 특정할 수 없더라도, 그가 마지막까지 놓여 있던 업무 환경이 적정했는지는 별개의 검토 대상이다. 원인을 단정하지 않는 태도와 사법 시스템의 문제를 따져보는 일은 서로 충돌하지 않는다. 고인은 서울고법 형사15-2부 재판장으로 사회적 관심이 큰 사건들을 맡았다. 김건희 여사의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 사건 항소심도 그중 하나였다. 서울고법 형사1부가 내란 사건 전담 재판부로 지정되면서 기존 주요 사건들이 다른 재판부로 옮겨졌고, 그 과정에서 고인이 속한 재판부의 부담도 커졌다는 말이 법원 안팎에서 나왔다. 사회적 관심 사건은 사건 수 하나로 계산되지 않는다. 기록이 두껍고 쟁점이 복잡하다는 이유만으로도 무겁지만 부담은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기일 하나를 잡아도 해석이 붙고 증거 판단 하나에도 정치적 의미가 덧씌워진다. 법정 안에서는 증거와 법리로 다투지만 법정 밖에서는 이미 결론을 정해놓은 목소리들이 판결을 기다린다. 판사가 어느 한쪽의 기대와 다른 결론을 내리면 판결문은 사라지고 판사 이름이 먼저 불려 나온다. 항소심 재판장은 1심 결론을 다시 읽는 자리가 아니다. 사실인정의 빈틈, 증거능력의 경계, 공모관계의 추론, 양형의 균형을 다시 따져야 한다. 특히 1심 판단을 일부 뒤집는 판결은 부담이 더 크다. 판결문 한 문장은 상고심의 검증과 여론의 공격을 동시에 견뎌야 한다. 법률가에게는 충분히 다툴 수 있는 쟁점도 정치의 언어로 옮겨지는 순간 배신과 응징의 문제로 바뀐다. 법리 판단은 줄어들고 의도 추궁이 앞선다. 김건희 여사 사건 항소심 판결도 법률적으로 논쟁의 여지가 있을 수 있다. 1심과 달리 일부 혐의를 유죄로 판단한 부분은 상급심에서 다시 다퉈질 수 있다. 그것이 재판 절차다. 그러나 판결 비판은 판결문 안의 논리와 증거 판단을 향해야 한다. 판사를 향해 정치적 의도를 추정하거나 개인을 몰아붙이는 방식으로 흘러가면 사법 감시는 제 기능을 잃는다. 재판의 독립은 법관이 비판받지 않을 권리를 뜻하지 않는다. 동시에 법관이 진영 정치의 표적이 되어도 괜찮다는 뜻도 아니다. 법관은 판결로 말한다. 그러나 판결을 쓰는 사람의 고통까지 판결문에 적히지는 않는다. 선고가 끝나면 사람들은 결론만 본다. 유죄냐 무죄냐, 1심을 유지했느냐 뒤집었느냐, 형이 무겁냐 가볍냐만 남는다. 그 결론에 이르기까지 재판부가 어떤 기록을 읽고 어떤 문장을 고치고 어떤 부담을 견뎠는지는 법정 밖 관심사가 되기 어렵다. 법관의 직업적 숙명이라고 넘겨온 그 지점에 한국 사법의 오래된 문제가 있다. 법원은 오랫동안 성실한 법관의 밤샘 노동을 제도의 여력처럼 써왔다. 기록을 집으로 가져가고 주말에 법원에 나오고 판결문을 몇 번이고 고치는 일은 법관이라면 당연히 감수해야 할 몫처럼 여겨졌다. 그러나 성실한 법관이 많다는 사실은 제도가 건강하다는 증거가 아니다. 한 사람이 버틸 수 있는 한계를 제도가 업무 처리 능력으로 계산하기 시작하면 언젠가 그 한계는 무너진다. 법관의 독립은 고립과 다르다. 외부 권력과 여론에서 벗어나 판단하라는 말은 그 무게를 혼자 견디라는 뜻이 아니다. 독립된 판단을 가능하게 하려면 조직의 뒷받침이 있어야 한다. 사회적 관심 사건을 맡은 재판부에는 그에 맞는 인력과 시간과 행정 지원이 따라야 한다. 사건 배당은 균형을 가져야 하고 일정 조정은 현실을 반영해야 하며 법관의 건강 이상 신호를 확인하는 장치도 있어야 한다. 판사를 혼자 두면서 독립을 말하는 것은 독립의 의미를 좁게 읽는 것이다. 고인은 불면증 증세가 심각했지만 재판 업무에 지장을 줄 수 있다는 이유로 수면제를 처방받고도 복용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 대목은 무겁다. 판사가 자신의 건강보다 재판 차질을 먼저 걱정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직업윤리로 보면 책임감일 수 있다. 조직 관리의 관점에서 보면 위험 신호다. 재판을 책임지는 사람이 잠을 이루지 못하고 그 사실을 알면서도 업무가 계속 굴러가야 했다면 그것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조직이 들여다봤어야 할 문제다. 판사들은 자신의 부담을 밖으로 잘 말하지 않는다. 판결로 말해야 한다는 직업 문화가 강하고 법원 내부 사정을 드러내는 일도 조심스러워한다. 법원 조직은 때때로 그 침묵을 안정으로 오해한다. 그러나 말하지 않는다고 해서 견딜 만한 것은 아니다. 침묵은 법관 사회의 미덕일 수 있지만 동시에 위험을 늦게 발견하게 만드는 요인이기도 하다. 판사가 무너지는 순간이 돼서야 조직이 움직인다면 이미 늦다. 서울고법이 이번 일을 계기로 법관들의 실질적인 업무 부담 경감과 제도 개선을 위한 태스크포스를 꾸리기로 한 것은 필요한 조치다. 다만 선언에 그쳐서는 안 된다. 법원은 추상적인 업무 경감이 아니라 구체적인 기준을 내놓아야 한다. 사회적 관심 사건의 배당 원칙, 고난도 형사사건 담당 재판부의 사건 수 조정, 재판연구 인력의 보강, 판결문 작성 부담 완화, 장기 미제 사건과 긴급 사건의 우선순위 조정 기준이 필요하다. 법관의 정신건강 관리도 복지 차원을 넘어 재판 안전의 문제로 다뤄야 한다. 정치권도 이 문제에서 자유롭지 않다. 정치권은 불리한 판결이 나오면 법원을 공격하고 유리한 판결이 나오면 사법부의 판단을 존중한다고 말한다. 같은 법원, 같은 절차, 같은 법관을 두고 결론에 따라 태도가 달라진다. 그러면서도 사법부 독립을 말한다. 판결 비판은 가능하다. 정치권도 판결에 의견을 낼 수 있다. 그러나 공적 지위를 가진 사람들이 법관 개인을 향해 정치적 낙인을 찍는 일은 다르다. 그것은 비판이 아니라 압박이다. 정치권의 언어가 재판을 압박한다면 언론의 보도 방식은 그 압박을 키우거나 줄인다. 사회적 관심 재판을 보도할 때 법리보다 파장을 앞세우고 쟁점보다 진영의 반응을 먼저 배치해온 것은 아닌지 살펴야 한다. 판결문을 충분히 읽지 않은 채 결론만 뽑아 정치적 의미를 붙이는 보도는 재판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소비하는 일에 가깝다. 법원이 국민을 설득하려면 판결문이 더 친절해야 한다. 그러나 언론도 재판을 전달하려면 최소한 판결의 문맥과 법리의 뼈대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 사법 불신이 커진 시대에 법원도 비판을 피할 수 없다. 판결문은 더 치밀해야 하고 절차는 더 투명해야 한다. 그러나 사법 불신이 법관 개인에게 모든 부담을 떠넘기는 이유가 될 수는 없다. 판결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판사를 공격하고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건이라는 이유로 재판부의 의도를 단정하는 문화는 결국 법원을 더 약하게 만든다. 한 판사의 죽음 앞에서 사회가 해야 할 일은 사인을 추정하는 일이 아니다. 고인을 특정 정치 사건의 상징으로 만드는 일도 아니다. 이제 질문은 사망 원인을 향해서가 아니라 제도를 향해야 한다. 주요 재판이 왜 소수 재판부에 집중되는지, 사회적 관심 사건을 맡은 판사가 왜 외부 비난과 내부 부담을 동시에 감당해야 하는지, 법관의 건강 문제가 왜 재판 차질이라는 말 앞에서 뒤로 밀려왔는지 따져야 한다. 고인의 마지막 마음은 누구도 대신 말할 수 없다. 다만 한 가지는 말할 수 있다. 법관 한 사람이 주요 재판의 무게, 조직 내부의 부담, 외부의 시선, 건강의 한계 속에서 홀로 오래 서 있었다면 그것은 개인의 문제로만 볼 수 없다. 사법부가 이번 일을 계기로 해야 할 일은 추모의 말을 남기는 데 그치지 않는다. 재판을 맡은 사람을 지키는 장치를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재판도 지켜진다. 재판은 국가가 시민에게 행사하는 가장 무거운 권한 중 하나다. 그래서 판사는 냉정해야 하고 독립적이어야 하며 비판도 견뎌야 한다. 그러나 그 말이 판사를 고립시켜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 법정의 권위는 판사의 침묵과 희생만으로 유지되지 않는다. 합리적인 사건 배당, 충분한 지원, 절제된 공론장, 판결 비판과 인신공격을 구별하는 사회적 감각 위에서 유지된다. 재판은 끝났다. 판결문은 남았다. 그러나 그 판결문을 쓴 판사는 돌아오지 못했다. 이 문장 앞에서 법원은 업무 부담을 말해야 하고 정치권은 판결 비판의 선을 돌아봐야 하며 언론은 재판을 소비해온 방식을 점검해야 한다. 한 사람의 죽음을 두고 누구의 책임이라고 쉽게 말할 수는 없다. 다만 이 죽음 이후에도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다면 그때는 누구도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2026-05-30 12: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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④ 형량은 어디에서 갈리나
[경제일보] 윤석열 전 대통령의 12·3 비상계엄 재판은 항소심에서 형량 판단을 다시 다투게 됐다. 1심 법원은 윤 전 대통령에게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했고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에게는 내란 중요임무 종사 등 혐의로 징역 30년을 선고했다. 노상원 전 국군정보사령관과 조지호 전 경찰청장 등에게도 유죄 판단과 중형이 선고됐다. 항소심은 유무죄 판단뿐 아니라 각 피고인의 지위와 관여 정도에 따른 형량의 무게를 다시 따지는 절차가 될 전망이다. 윤 전 대통령과 김 전 장관 등은 1심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다. 특검도 윤 전 대통령에 대한 1심 무기징역 선고 등에 항소했다. 항소심 첫 국면에서는 재판부 기피신청과 재항고 절차까지 이어지면서 본격 심리가 지연될 가능성도 제기됐다. 다만 형량 판단의 큰 틀은 이미 1심에서 상당 부분 제시됐다. 계엄을 누가 구상했는지, 누가 군 지휘 체계로 옮겼는지, 누가 실제 병력 이동과 기관 장악 시도에 관여했는지가 핵심 쟁점이다. 내란죄의 법정형은 무겁다. 형법은 내란의 우두머리에 대해 사형, 무기징역 또는 무기금고를 규정한다. 모의에 참여하거나 지휘하거나 그 밖의 중요한 임무에 종사한 사람도 사형,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이나 금고에 처하도록 한다. 단순 가담자와 달리 우두머리와 중요임무 종사자는 국가권력 배제 또는 국헌문란 목적의 폭동에서 핵심 역할을 한 사람으로 평가된다. 이 때문에 형량 판단에서도 지위와 역할, 실행 관여 정도가 중요하게 작용한다. 윤 전 대통령 사건에서 가장 먼저 따져질 부분은 우두머리 지위다. 대통령은 군 통수권자이고 계엄 선포권자였다.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고 그 결정 이후 군과 경찰, 행정부가 움직였다면 법원은 그 권한이 어떤 목적과 절차에 따라 행사됐는지를 살피게 된다. 전직 대통령이라는 지위는 형량 판단에서 단순한 감경 요소로만 작용하기 어렵다. 국가 최고 권한을 가진 사람이 헌정질서에 영향을 미치는 결정을 내렸다면 그 지위는 책임의 무게를 키우는 사정으로 평가될 수 있다. 반면 김 전 장관 등은 대통령과 다른 층위에서 판단된다. 김 전 장관은 국방부 장관으로서 대통령의 판단을 군 지휘 체계로 연결하는 위치에 있었다. 1심 법원이 김 전 장관에게 징역 30년을 선고한 것은 그가 계엄 준비와 실행 과정에서 수행한 역할을 중대하게 본 결과로 읽힌다. 항소심에서는 김 전 장관이 단순 전달자였는지, 아니면 군사적 실행을 구체화한 인물이었는지가 다시 다뤄질 전망이다. 법정형보다 중요한 것은 역할의 차이 내란 사건의 형량은 법정형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같은 사건 안에서도 피고인의 지위와 관여 정도, 지시의 구체성, 실행 결과, 범행 후 태도에 따라 형량은 달라진다. 우두머리인지, 중요임무 종사자인지, 단순 가담자인지에 따라 법률상 출발점부터 다르다. 같은 중요임무 종사 혐의라도 실제로 계획을 세운 사람과 명령을 전달한 사람, 현장에서 제한적으로 움직인 사람의 책임은 같을 수 없다. 이 사건에서 대다수 군인은 형량 분석의 중심에 놓여서는 안 된다. 계엄에 동원된 장병과 실무 간부 상당수는 명령 체계 안에서 움직였다. 이들이 위법한 명령을 어떻게 인식했는지, 현장에서 어떤 행동을 했는지는 필요하면 개별적으로 따질 문제다. 그러나 계엄을 기획하고 명령을 내리거나 실행 방향을 정한 사람들과 같은 기준으로 평가할 수는 없다. 형량 분석의 출발점은 현장 병력이 아니라 그 병력을 움직인 의사결정권자들이다. 김 전 장관의 형량 판단에서도 이 구분은 중요하다. 국방부 장관은 대통령의 명을 받는 자리이지만 동시에 군이 정치적 판단의 실행 수단이 되지 않도록 막아야 하는 자리다. 장관이 대통령의 결심을 군 지휘 체계에 전달하는 과정에서 어떤 법적 검토를 했는지, 반대 의견을 냈는지, 오히려 실행 방향을 구체화했는지는 양형에서 주요 요소가 된다. 권한이 컸던 만큼 그 권한이 어떻게 행사됐는지가 형량에 반영될 수밖에 없다.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과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 등 군 정보·방첩 라인의 역할도 별도로 검토될 부분이다. 이들은 계엄 국면에서 특정 기관 장악이나 정치인 체포 의혹, 선거관리위원회 관련 조치와 맞물려 거론돼 왔다. 항소심에서는 이들이 어떤 지시를 받았고 무엇을 실행했으며 그 과정에서 내란의 고의와 국헌문란 목적을 어느 정도 인식했는지가 다뤄질 수 있다. 군 정보기관의 특성상 상부 지시와 독자적 판단의 경계도 쟁점이 된다. 공모관계와 지시 경로가 형량을 가른다 항소심에서 형량을 좌우할 첫 번째 요소는 공모관계다. 내란 사건에서 공모가 인정되려면 단순한 동석이나 의견 교환을 넘어 범행의 기본적 내용에 대한 의사 결합이 있었다고 볼 수 있어야 한다. 윤 전 대통령과 김 전 장관, 군·경 수뇌부 사이에 어떤 대화가 있었는지, 사전에 어떤 준비가 진행됐는지, 각자가 계엄의 목적과 실행 방식을 어떻게 인식했는지가 중요하다. 두 번째 요소는 지시 경로다. 계엄 선포 이후 군과 경찰이 실제로 움직였다면 그 명령이 어느 경로로 전달됐는지 확인해야 한다. 대통령의 발언이 장관을 거쳐 군 지휘부에 전달됐는지, 장관이나 군 지휘관이 이를 어떻게 구체화했는지, 현장 부대에는 어떤 내용으로 하달됐는지가 형량 판단의 기초가 된다. 같은 명령 체계 안에서도 상층부에서 명령을 설계한 사람과 하층부에서 이를 받은 사람의 책임은 달라질 수밖에 없다. 세 번째 요소는 실행 관여 정도다. 계엄이 선포됐다는 사실만으로 모든 피고인의 책임이 같아지는 것은 아니다. 국회와 선관위 등 헌법기관을 대상으로 한 병력 이동, 주요 인사 체포·구금 의혹, 계엄 문건 작성이나 사후 보완 과정에 누가 얼마나 관여했는지가 각각 따져져야 한다. 실행 단계에서 역할이 구체적일수록 형량은 무거워질 가능성이 있다. 반대로 지시를 받았으나 실제 실행에 제한적으로 관여했거나 위법성을 인식하기 어려웠던 사정이 인정되면 판단은 달라질 수 있다. 네 번째 요소는 범행 후 태도다. 형사재판에서 피고인이 혐의를 다투는 것 자체는 불리한 사정으로 볼 수 없다. 방어권은 보장돼야 한다. 다만 책임 있는 지위에 있던 사람이 하급자나 기관 실무자에게 부담이 전가되는 상황을 외면하거나 재판 절차를 지연시키는 것으로 비칠 경우 공적 평가는 달라질 수 있다. 전직 대통령과 전직 국방부 장관의 법정 태도가 일반 피고인보다 더 엄격하게 주목받는 이유다. 전직 대통령 지위는 어떻게 평가될까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형량 판단에서 전직 대통령이라는 지위는 핵심 변수다. 대통령은 헌법기관의 수반이고 군 통수권자다. 계엄 선포권은 국가비상권한 가운데서도 가장 강한 권한에 속한다. 그 권한을 행사한 결과 국회와 선관위, 군과 경찰, 행정부가 동시에 흔들렸다면 법원은 권한의 크기와 책임의 크기를 함께 볼 수밖에 없다. 전직 대통령이라는 사정은 두 방향으로 해석될 수 있다. 한편으로는 국가 최고 책임자였다는 점에서 더 높은 법적·정치적 책임이 요구된다. 다른 한편으로는 피고인이 재판에서 자신의 행위에 대해 어떤 태도를 보이는지도 함께 평가될 수 있다. 법원이 중하게 볼 가능성이 있는 부분은 대통령의 권한이 개인의 정치적 판단을 실현하는 수단으로 사용됐는지, 헌법기관의 권능 행사를 제한하려는 목적이 있었는지, 그 과정에서 군과 경찰 조직이 어떤 부담을 떠안았는지다. 이 대목에서 군 전체의 피해는 형량 판단의 배경 사정이 될 수 있다. 계엄에 동원된 군인들이 모두 피해자라는 식으로 일반화할 수는 없다. 그러나 대다수 장병과 실무 간부가 정치적 결정을 만든 주체가 아니라 명령 체계 안에서 움직인 사람이라는 점은 고려돼야 한다. 국가 최고 권한자의 판단이 군 조직 전체를 수사와 재판, 사회적 불신의 대상으로 만들었다면 그 결과는 양형에서 가볍게 볼 수 없는 요소가 될 수 있다. 전직 대통령에게 요구되는 체통 문제도 이와 맞닿아 있다. 형사재판에서 체통이라는 말은 법률용어는 아니다. 그러나 책임 있는 태도는 양형과 공적 평가에서 완전히 분리되기 어렵다. 혐의를 다투더라도 자신의 결정이 불러온 결과를 어떻게 대하는지, 군과 경찰의 하급자들에게 부담이 전가되는 상황을 어떻게 바라보는지는 법정 밖 평가에 남는다. 대통령의 권한을 행사했던 사람에게는 방어권 행사와 별개로 그 권한의 결과를 감당하는 태도가 요구된다. 군 피해와 양형의 연결점 12·3 비상계엄 재판에서 군 피해 문제는 감정적 호소로 다뤄져서는 안 된다. 형량 분석에서 중요한 것은 계엄이 군 조직에 남긴 구체적 결과다. 지휘관들은 피고인 또는 증인으로 법정에 섰고 일선 장병들은 자신이 수행한 명령의 의미를 뒤늦게 평가받는 위치에 놓였다. 군의 정치적 중립에 대한 국민 신뢰도 흔들렸다. 이 결과가 누구의 판단에서 비롯됐는지를 따지는 일은 형량 판단과 무관하지 않다. 대다수 군인은 계엄을 설계하지 않았다. 국회와 선관위로 이동한 병력 상당수는 상급자의 명령을 받은 위치에 있었다. 이들이 위법성을 어느 정도 인식했는지는 개별 사정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그러나 계엄의 목적과 실행 방향을 결정한 사람들과 같은 수준에서 평가해서는 안 된다. 양형은 책임의 크기를 구분하는 절차다. 군 전체를 묶어 비난하는 방식은 그 구분을 어렵게 만든다. 김 전 장관과 군 지휘부의 형량은 바로 이 구분 위에서 다뤄져야 한다. 장관과 고위 지휘관은 하급자보다 더 많은 정보를 갖고 있었고 더 큰 권한을 행사했다. 그만큼 위법성을 판단하고 제동을 걸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 계엄이 실행되는 과정에서 이들이 어떤 판단을 했고 그 판단이 하급자에게 어떤 부담을 남겼는지는 항소심에서도 중요한 사정이 될 수 있다. 형량 분석은 결국 책임의 방향을 정하는 작업이다. 현장에서 움직인 병력에게 모든 부담을 돌릴 것인지, 아니면 병력을 움직이도록 만든 권한 행사와 지시 경로를 추적할 것인지에 따라 결론은 달라진다. 이번 재판에서 법원이 살필 부분은 후자에 가깝다. 계엄이라는 비상권한을 누가 어떤 목적과 방식으로 사용했는지, 그 권한 행사가 군과 헌법기관에 어떤 결과를 남겼는지를 따지는 절차다. 항소심 형량 판단의 기준 항소심에서 형량은 여러 요소가 함께 검토될 전망이다. 윤 전 대통령의 경우 우두머리 지위 인정 여부와 국헌문란 목적, 계엄 선포 전후 지시 내용, 군·경 수뇌부와의 공모관계, 재판 과정에서의 태도가 핵심이다. 김 전 장관의 경우 대통령의 결심을 군 지휘 체계로 옮기는 과정에서의 역할, 각 부대와 지휘관에게 전달한 지시 내용, 실행 관여 정도가 주요 판단 대상이다. 노상원 전 사령관과 조지호 전 경찰청장 등 다른 피고인들의 형량은 각자의 위치와 실행 정도에 따라 다시 검토될 수 있다. 특히 군·경 수뇌부는 상급자의 지시를 받는 위치였다는 사정과 동시에 자신이 지휘권을 행사하는 위치였다는 사정이 함께 있다. 어느 쪽이 더 크게 평가되는지는 각 피고인의 구체적 행위와 인식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이 사건에서 전직 대통령이라는 지위는 항소심에서도 중심에 놓일 가능성이 크다. 대통령은 계엄 선포권자이자 군 통수권자였다. 그 권한의 행사로 군 조직이 움직였고 헌법기관이 영향을 받았다면 책임의 출발점은 위에서부터 살펴야 한다. 전직 대통령이라는 이유로 형량이 자동으로 낮아질 수는 없다. 오히려 권한의 크기와 헌정질서에 미친 영향은 법원이 무겁게 볼 수 있는 요소다. 계엄 재판의 형량 분석은 숫자를 예측하는 문제가 아니다. 법원이 어떤 책임을 더 무겁게 보고 어떤 역할을 구분할 것인지를 살피는 일이다. 항소심은 계엄을 기획·지휘한 인물과 명령 체계 안에서 움직인 사람을 나누고, 각자의 권한과 행위에 맞게 책임을 정리하는 절차가 될 전망이다. 그 과정에서 군 전체를 향한 비난보다 의사결정권자의 권한 행사와 지시 경로가 더 중요한 판단 기준으로 다뤄질 가능성이 크다.
2026-05-30 06: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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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김용현의 계엄, 국방부는 어디까지 움직였나
[경제일보] 윤석열 전 대통령의 12·3 비상계엄 재판에서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은 핵심 피고인 가운데 한 명이다. 김 전 장관은 대통령의 판단이 군 지휘 계통으로 전달되는 위치에 있었다. 국방부 장관은 군 통수권자인 대통령과 군 지휘부 사이에서 결정적 연결 고리 역할을 하는 자리다. 계엄처럼 국가비상권한이 군을 통해 실행되는 사건에서는 그 지위 자체가 책임 판단의 중요한 출발점이 된다. 29일 법조계에 따르면 김 전 장관의 내란 중요임무 종사 등 사건은 1심에서 징역 30년이 선고된 뒤 항소심 절차로 넘어갔다. 김 전 장관 측은 1심 판단에 불복해 항소했다. 항소심에서는 계엄 준비 과정과 실행 지시 여부, 각 군 지휘관에게 전달된 명령의 성격, 윤 전 대통령과 김 전 장관 사이의 의사 교환 내용이 다시 쟁점이 될 전망이다. 1심 재판부는 김 전 장관이 윤 전 대통령과 함께 비상계엄을 주도적으로 준비했다고 판단했다. 김 전 장관이 군의 국회와 선거관리위원회 등 출동을 사전에 계획했고 부정선거 수사와 관련한 별도 계획을 마련한 것으로 보인다는 판단도 제시했다. 김 전 장관 측은 항소심에서 이 같은 판단을 다툴 것으로 보인다. 재판부가 다시 살필 부분은 김 전 장관이 단순히 대통령의 지시를 전달한 것인지, 아니면 계엄 실행 과정에서 독자적 역할을 수행했는지다. 김 전 장관 사건이 중요한 이유는 그가 군 조직 전체와 대통령 권력 사이에 놓인 인물이기 때문이다. 대통령은 계엄 선포권자이고 국방부 장관은 그 판단을 군사적 실행 가능성의 영역으로 옮기는 위치에 있다. 대통령의 뜻이 곧바로 일선 장병에게 도달하는 것은 아니다. 국방부와 합참, 각급 사령부, 현장 지휘관을 거쳐 명령은 구체화된다. 김 전 장관의 책임을 따지는 일은 계엄이라는 정치적 판단이 어떤 과정을 거쳐 군의 작전 명령처럼 전달됐는지를 살피는 일이다. 군 전체를 향한 비난과 김 전 장관 책임론은 구분돼야 한다. 일선 장병과 실무 간부는 명령 체계 안에서 움직였지만 김 전 장관은 그 명령 체계가 작동하는 상층부에 있었다. 하급자가 명령을 받는 자리였다면 장관은 명령이 내려가기 전에 그것이 헌법과 법률의 경계 안에 있는지 따져야 하는 자리였다. 그 판단을 하지 않았거나 위법한 실행을 가능하게 했다면 책임의 무게는 달라진다. 대통령과 군 사이의 연결 고리 김 전 장관은 윤 전 대통령과 가까운 거리에서 계엄 국면을 맞았다. 그 가까움 자체가 곧바로 형사책임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대통령의 판단을 군사적 실행 계획으로 옮기는 과정에서 장관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는 재판의 핵심 쟁점이다. 계엄은 대통령이 선포하지만 군은 장관과 지휘 계통을 통해 움직인다. 이 사이에서 김 전 장관이 제동 장치였는지, 실행 통로였는지가 항소심에서도 다뤄질 수밖에 없다. 국방부 장관에게는 두 가지 책임이 동시에 있다. 하나는 대통령의 명을 받아 군을 관리하고 지휘 체계를 운용하는 책임이다. 다른 하나는 그 명령이 헌법과 법률의 한계를 벗어날 때 군이 정치적 수단으로 사용되지 않도록 막아야 하는 책임이다. 계엄은 헌정질서의 예외 상황을 전제로 한 제도다. 그래서 더 엄격한 요건과 절차가 요구된다. 장관이 그 문턱을 낮추거나 비상권한의 남용 가능성을 외면했다면 단순한 참모 역할로 설명되기 어렵다. 김 전 장관 측은 재판 과정에서 계엄의 성격과 목적을 다투고 있다. 윤 전 대통령 측도 계엄이 실제 국헌문란 목적의 내란이 아니라 경고성 조치였다는 취지의 주장을 이어왔다. 그러나 법원이 살필 부분은 표현보다 실행이다. 실제로 병력이 어디로 이동했는지, 어떤 기관을 대상으로 했는지, 어떤 명령이 내려갔는지, 그 명령을 받은 지휘관들이 무엇을 인식했는지가 판단의 중심에 놓일 수밖에 없다. 계엄을 경고라고 설명하더라도 군이 헌법기관을 향해 움직였다면 그 실행의 의미는 법정에서 따로 평가된다. 김 전 장관의 책임론은 이 지점에서 커진다. 대통령의 정치적 판단이 있었다고 해도 국방부 장관은 이를 군사 명령으로 옮기는 과정에서 독자적 판단을 해야 했다. 장관은 단순 전달자가 아니다. 군 조직을 움직일 수 있는 공적 권한을 가진 국무위원이다. 대통령의 결심을 이유로 장관의 책임이 사라질 수 없고 장관의 실행 관여를 이유로 대통령의 책임이 줄어드는 것도 아니다. 두 사람의 책임은 각자의 지위와 역할에 따라 따로 평가돼야 한다. 계엄의 명령은 어디서 구체화됐나 12·3 비상계엄 사건에서 재판부와 수사기관이 주목한 부분은 계엄 선포 자체만이 아니다. 계엄이 선포된 뒤 군이 어떤 방식으로 움직였는지, 그 이전에 어떤 준비와 논의가 있었는지도 중요하다. 국회와 선거관리위원회 등 헌법기관을 향한 병력 투입, 주요 인사 체포·구금 의혹, 방첩사와 정보사 등 특정 부대의 역할은 모두 계엄이 추상적 선언에 그치지 않았다는 점을 보여주는 대목으로 다뤄졌다. 김 전 장관은 이 과정에서 군 지휘부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 장관의 말은 지휘관에게 단순한 의견으로 들리지 않는다. 특히 계엄과 같은 비상 상황에서는 장관의 지시와 전달 사항이 작전 판단의 기준으로 작동할 수 있다. 장관이 어느 정도까지 알고 있었는지, 누구에게 어떤 지시를 했는지, 지시 내용이 법률상 허용되는 범위를 넘었는지는 김 전 장관의 유무죄와 형량 판단에서 핵심 변수가 된다. 하급 지휘관들이 처한 위치도 이와 맞물려 있다. 지휘관들은 장관과 상급 부대의 지시를 받는 동시에 현장에서 부하를 움직여야 한다. 이들이 어떤 명령을 받았고 그 명령을 어떻게 이해했는지는 중요하다. 그러나 책임의 출발점이 현장 지휘관에게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 명령을 설계하고 전달한 윗선의 책임이 제대로 가려지지 않으면 계엄의 부담은 군 조직 내부로만 흘러 들어간다. 그 경우 군은 정치적 결정을 수행한 조직이라는 부담을 떠안고 정작 정치적 결정을 만든 이들의 책임은 뒤로 밀릴 수 있다. 김 전 장관이 항소심에서 다툴 수 있는 쟁점은 적지 않다. 내란의 고의가 있었는지, 국헌문란 목적을 인식했는지, 각 지시가 실제 실행 가능성을 가진 명령이었는지, 윤 전 대통령의 판단과 자신의 행위 사이에 어떤 관계가 있었는지 등이 쟁점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장관이라는 지위는 그 자체로 양형에서 중요하게 고려될 가능성이 크다. 계엄 관련 결정이 군 조직을 통과해 현실의 병력 이동으로 이어졌다면 그 연결 지점에 있던 사람의 책임은 가볍게 보기 어렵다. 재판 절차와 책임 있는 태도 항소심 첫 공판 과정에서 윤 전 대통령과 김 전 장관 등은 재판부 기피신청을 냈다. 피고인에게는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가 있고 법관 기피신청 역시 형사소송 절차 안에 있는 제도다. 법원은 이후 윤 전 대통령과 김 전 장관 등의 기피신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 과정에서 항소심 심리가 지연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왔다. 피고인의 방어권은 보장돼야 한다. 다만 전직 대통령과 전직 국방부 장관의 법정 태도는 개인 방어권을 넘어 공적 평가의 대상이 된다. 두 사람은 계엄 당시 국가권력과 군 지휘 체계의 정점 또는 그에 가까운 위치에 있었다. 그런 이들이 법정에서 어떤 태도를 보이는지는 계엄에 동원됐던 군인들에게도 영향을 준다. 책임 있는 위치에 있던 사람들이 절차적 다툼만 앞세우는 모습으로 비칠 경우, 명령을 받아 움직였던 군인들이 느끼는 부담은 더 커질 수 있다. 윤 전 대통령에게도 같은 기준이 적용된다. 대통령은 군 통수권자였다. 국방부 장관이 계엄 실행의 통로였다면 대통령은 그 권한의 출발점에 있었다. 전직 대통령이라면 법정에서 혐의를 다툴 수는 있어도 자신의 결정이 군 조직에 남긴 부담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부하와 실무자들이 법정과 수사 과정에서 감당해야 하는 압박을 생각한다면 책임의 방향을 아래로 돌리는 듯한 인상은 피해야 한다. 김 전 장관 사건은 윤 전 대통령 재판과 분리해 볼 수 없지만 윤 전 대통령 책임을 덮는 방식으로 다뤄져서도 안 된다. 김 전 장관에게 책임이 무겁다는 말은 대통령의 책임이 줄어든다는 뜻이 아니다. 두 사람의 관계는 계엄 책임의 경로를 보여준다. 대통령의 결심이 있었고 장관이 이를 군 지휘 체계로 옮겼으며 그 아래에서 지휘관과 장병들이 움직였다면 책임은 각자의 지위와 권한에 따라 위에서부터 규명돼야 한다. 김용현 재판이 남길 기준 김 전 장관에 대한 형량 분석에서 법원이 살필 요소는 계엄 준비 관여 정도, 병력 투입과 기관 장악 시도에서의 역할, 대통령과의 공모관계, 하급 지휘관에게 전달된 지시 내용, 재판 과정에서의 태도 등이다. 국방부 장관이라는 지위도 중요한 요소다. 권한이 컸던 만큼 그 권한이 어떻게 행사됐는지에 따라 책임의 무게도 달라질 수 있다. 김 전 장관이 항소심에서 1심 판단을 뒤집으려면 단순히 대통령의 뜻을 따랐다는 설명만으로는 부족할 수 있다. 장관은 대통령의 참모이지만 동시에 국가기관의 책임자다. 군이 헌법기관을 향해 움직이는 상황에서 장관이 어떤 판단을 했는지는 그의 독자적 책임과 직결된다. 계엄이 실제로 무엇을 목표로 했고 어느 수준까지 실행됐는지는 항소심 재판부가 다시 살필 부분이다. 그러나 장관이 군 조직을 정치적 위기 대응의 수단으로 연결한 통로였는지 여부는 남은 재판의 핵심 쟁점으로 남아 있다. 이 사건의 피해자는 군 전체에 대한 신뢰이기도 하다. 계엄에 동원된 대다수 군인은 정치적 결정을 만든 사람이 아니다. 그들은 지시를 받았고 조직 안에서 움직였으며 이후 수사와 재판의 부담 속에 놓였다. 반면 김 전 장관은 그 지시가 군으로 내려가는 길목에 있었다. 이 차이를 구분하지 못하면 책임은 넓게 퍼지고 핵심은 흐려진다. 김용현 재판은 한 전직 장관의 유무죄와 형량만을 따지는 절차에 그치지 않는다. 대통령의 비상권한이 군 지휘 체계로 이동할 때 국방부 장관이 어디까지 막아야 하는지, 어디서부터 함께 책임져야 하는지를 살피는 재판이다. 대다수 군인에게 남은 부담을 덜어내기 위해서도 책임의 경계는 정확히 그어져야 한다. 남은 항소심은 군을 움직인 의사결정 과정과 그 과정에 관여한 사람들의 책임 범위를 다시 가려내는 절차가 될 전망이다.
2026-05-29 09:5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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