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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사설] 망치를 내려놓고 전령을 살려라…대한민국의 리더십을 다시 설계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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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사설] 망치를 내려놓고 전령을 살려라…대한민국의 리더십을 다시 설계할 때다

기자정보, 기사등록일
경제일보
2026-10-26 13:53:51
사진AI 생성 이미지
[사진=AI 생성 이미지]

[경제일보] 불편한 진실을 외면하는 조직에는 미래가 없다. 획일적 정책과 권위주의적 의사결정에서 벗어나 다양성과 비판, 과학적 판단과 실행력을 국가 경쟁력의 중심에 세워야 한다.
 
국가가 위기에 빠지는 것은 언제나 돈과 기술이 부족해서만은 아니다. 더 근본적인 원인은 문제를 제대로 보지 못하고, 문제를 알리는 사람의 입을 막으며, 잘못된 판단을 수정하지 못하는 데 있다. 국가의 흥망과 기업의 성패를 가르는 것은 결국 지도자의 판단과 조직의 의사결정 구조다.
 
예컨대 망치 하나만 가진 사람에게 모든 문제가 못으로 보이듯, 익숙한 정책과 이념만으로 복잡한 현실을 재단해서는 안 된다는 경고다.
 
한국은 산업화와 민주화, 정보화를 거쳐 세계적인 경제 강국으로 성장했다. 그러나 과거의 성공 방정식이 미래의 성공까지 보장하지는 않는다. 인공지능(AI), 미·중 전략경쟁, 저출생과 고령화, 산업구조 재편이 동시에 진행되는 시대에는 국가 운영의 방식 자체가 달라져야 한다.
 
첫째, 국가경제에는 망치보다 다양한 연장이 필요하다. 부동산 가격을 안정시키겠다고 거래만 규제하거나, 기업의 투자를 늘리겠다며 지원금만 확대하는 방식에는 한계가 있다. 부동산은 공급과 금융, 세제와 인구구조가 맞물린 시장이고, 기업 투자는 기술력과 수익성, 규제와 국제환경에 따라 움직인다. 하나의 정책 수단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하려는 사고부터 바꿔야 한다.
 
정부의 역할은 시장을 대신해 모든 결정을 내리는 것이 아니다. 공정한 경쟁 질서를 세우고 시장 실패를 바로잡으며, 민간이 감당하기 어려운 기초과학과 인프라에 투자하는 것이다. 시장의 자율성과 국가의 책임은 대립하는 개념이 아니다. 둘의 균형이 경제정책의 출발점이다.
 
둘째, 불편한 진실을 전달하는 전령을 보호해야 한다. 역사적으로 권력이 위험해지는 순간은 반대 의견이 사라질 때다. 잘못된 보고보다 더 위험한 것은 지도자가 듣고 싶어 하는 이야기만 올라오는 조직이다.
 
정부에는 정책 실패를 지적하는 공무원이 필요하고, 기업에는 경영진의 판단을 반박할 수 있는 임직원이 필요하다. 언론에는 권력과 자본의 눈치를 보지 않고 사실을 보도하는 기자가 필요하다. 내부 고발과 건전한 비판을 조직에 대한 배신으로 간주한다면 잘못된 정책은 반복될 수밖에 없다.
 
특히 언론의 역할이 중요하다. 언론은 정부의 홍보 기관도, 특정 진영의 공격 수단도 아니다. 진실을 확인하고 권력을 감시하며 국민의 알 권리를 보장하는 공공의 제도다. 전령을 살리는 사회란 결국 언론의 자유와 비판의 자유를 존중하는 사회다.
 
셋째, 국가 운영에도 과학적 점검표가 필요하다. 지도자의 경험과 직관은 중요하지만 그것만으로 복잡한 경제를 운영할 수 없다. 정책을 결정하기 전에 비용과 편익, 수혜자와 피해자, 단기 효과와 장기 부작용을 따져야 한다.
 
AI 시대에는 정책의 효과를 데이터로 분석하고 다양한 시나리오를 검증할 수 있다. 그러나 AI 역시 만능의 해답은 아니다. 잘못된 데이터와 편향된 가정은 잘못된 결론을 낳는다. 기술적 분석과 인간의 판단, 민주적 책임성이 함께 작동해야 한다.
 
정책의 성공은 발표 당시의 박수로 평가할 일이 아니다. 시행 이후 국민의 삶이 얼마나 개선됐는지, 기업의 경쟁력이 얼마나 높아졌는지, 미래세대에 어떤 부담을 남겼는지로 판단해야 한다.
 
넷째, 외교와 산업정책에는 실질적인 지렛대가 필요하다. 미·중 전략경쟁이 심화되는 상황에서 한국은 어느 한쪽의 선의에만 의존할 수 없다. 안보 동맹의 신뢰를 유지하면서도 경제와 기술, 공급망에서 선택의 폭을 넓혀야 한다.
 
반도체와 배터리, 조선과 방산, AI와 바이오 등 한국이 경쟁력을 가진 산업을 외교적 협상력으로 연결해야 한다. 동시에 특정 국가와 특정 시장에 대한 과도한 의존을 줄여야 한다. 국익은 구호가 아니라 냉정한 현실 인식과 지속적인 협상 능력에서 나온다.
 
이 네 가지 원칙은 정부뿐 아니라 국회와 기업, 언론에도 적용된다. 국회는 상대방을 굴복시키는 정치보다 문제를 해결하는 정치에 집중해야 한다. 기업은 회장의 지시보다 현장의 정보와 고객의 요구를 중시해야 한다. 언론은 진영의 논리보다 검증된 사실을 앞세워야 한다.
 
대한민국은 지금 더 강한 망치를 필요로 하는 나라가 아니다. 더 다양한 해법, 더 자유로운 토론, 더 정확한 판단, 더 치밀한 실행이 필요한 나라다.
 
국가의 진정한 경쟁력은 지도자가 모든 답을 아는 데 있지 않다. 모르는 것을 인정하고, 다른 의견을 듣고, 잘못을 고칠 수 있는 능력에 있다. 진리를 존중하고 정의를 실천하며 자유로운 비판을 보장하는 국가가 변화에도 강하다.
 
망치를 내려놓아야 다양한 도구가 보인다. 전령을 살려야 진실이 살아남는다. 대한민국이 고쳐야 할 것은 바람이 아니라 바람을 받아들이는 돛, 곧 국가 운영의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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