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일보] 국세청이 추석을 앞두고 농축산물 유통업체 23곳, 가공식품·외식 프랜차이즈·배달 플랫폼 16곳, 패션 플랫폼 2곳 등 모두 41개 업체에 대한 세무조사에 착수했다. 국세청이 포착했다고 밝힌 탈루 혐의 금액만 약 1조원이다. 조사 대상에는 중견기업 8곳과 중소기업 33곳이 포함됐으며 이 가운데 2곳은 코스피 상장사다.
혐의 내용만 보면 그냥 넘어갈 사안이 아니다. 국세청에 따르면 일부 업체는 거짓 세금계산서를 받거나 허위로 원가를 계상해 이익을 축소했고, 매출을 누락하거나 특수관계 법인에 이익을 몰아준 혐의를 받고 있다. 한 배달 플랫폼은 국내에서 창출한 1조원대 이익을 복잡한 자본거래를 통해 해외 모회사에 보내면서 국내에서 원천징수해야 할 1000억원대 세금을 내지 않은 혐의를 받고 있다. 양계업체 가운데는 판매대금을 비사업용 계좌로 받아 숨기거나 매출을 가족 명의 사업체로 분산한 혐의가 포착됐다. 조사 결과 사실로 확인된다면 세금을 추징하고 위법 행위에는 엄정하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
그러나 이번 조사에서 짚어야 할 것은 세무조사의 대상만이 아니라 그 명분이다. 국세청은 보도자료 제목부터 이번 조사를 ‘국민 필수 생활비 관련 물가 불안 조장 탈세 혐의자 세무조사’라고 규정했다. 담합·독과점 등 시장 교란 행위와 연계된 탈루 혐의를 조사하면서 가격 인상의 명분이 된 생산원가의 적정성과 거래처와의 정상 거래 여부도 중점적으로 살펴보겠다고 했다. 국세청 스스로 세무조사와 물가 안정을 연결한 것이다.
탈세를 잡는 것과 물가를 잡는 것은 구분해야 한다. 세정은 탈세를 바로잡는 수단이지 가격을 통제하는 수단이 아니다.
시장경제에서 가격은 원재료비와 임금, 환율, 금리, 수급과 경쟁 상황 등을 반영해 움직인다. 원재료와 인건비, 물류비가 오르면 제품 가격도 오를 수 있다. 기업이 시장 상황을 반영해 가격을 올렸다는 사실 자체가 세무조사의 이유가 돼서는 안 된다. 가격을 올리는 과정에서 허위 원가를 계상하거나 매출을 숨겼다면 세법으로 다스리면 된다. 담합했다면 공정거래법으로 제재해야 한다. 독과점적 지위를 남용했다면 경쟁당국이 나서야 한다.
정부기관마다 역할이 다른 이유다. 국세청은 세금을 제대로 냈는지를 살피고 공정거래위원회는 담합과 시장지배력 남용을 감시한다. 정부는 공급 확대와 경쟁 촉진, 유통구조 개선으로 물가 상승 압력을 낮춰야 한다. 한국은행도 중기적 물가 안정을 통화정책의 핵심 목표로 삼는다. 정책 목표가 같다고 해서 수단까지 뒤섞어서는 안 된다.
특히 세무조사는 기업에 상당한 부담을 주는 강력한 행정수단이다. 국세청이 ‘물가 불안 조장’을 전면에 내세워 세무조사에 나섰다는 인식이 확산되면 시장은 가격 인상 자체를 정부가 문제 삼는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정부의 의도가 그렇지 않더라도 과세권이 가격정책의 수단으로 인식되는 순간 시장 참여자의 의사결정이 왜곡될 가능성이 있다.
가격을 억누른다고 물가 문제가 없어지는 것도 아니다. 비용 상승을 가격에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면 기업은 생산량이나 투자를 조정할 수 있다. 제품 용량이나 서비스 등을 줄이는 방식으로 대응할 가능성도 있다. 단기적으로 가격표를 붙잡는 것과 경제 전체의 물가 상승 압력을 낮추는 것은 다른 문제다.
물론 이번 조사 대상 업체들이 단순히 가격을 올렸다는 이유로 선정됐다고 단정해서는 안 된다. 국세청은 거짓 세금계산서 수취, 허위 원가 계상, 매출 누락 등 구체적인 탈루 혐의를 포착했다고 밝혔다. 범죄 혐의가 드러나면 조세범칙사건으로 전환하겠다는 방침도 밝혔다. 구체적인 탈루 혐의가 있다면 철저히 조사하는 것이 당연하다.
바로 이 때문에 세무조사의 근거는 ‘가격을 올렸느냐’가 아니라 ‘탈루 혐의가 있느냐’여야 한다. 탈세 혐의를 받는 기업이 물가 상승 품목을 취급한다는 이유로 물가 안정이 세무조사의 또 다른 정책 목표처럼 비쳐서는 곤란하다.
물가를 잡으려면 가격이 오르는 구조부터 손봐야 한다. 농축산물은 생산·유통 구조를 개선하고 식품은 원재료 가격과 판매가격 사이에서 경쟁이 제대로 작동하는지 살펴야 한다. 배달 플랫폼의 수수료 문제는 플랫폼 경쟁정책으로, 수입 원재료 부담은 관세와 공급망 정책으로 풀어야 한다. 물가 안정은 이런 공급·경쟁·유통 구조를 바로잡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고물가로 서민의 장바구니 부담이 커진 상황에서 정부가 적극 대응하는 것은 당연하다. 추석을 앞두고 생활물가 부담을 낮추기 위해 가용한 정책수단을 동원하는 것도 필요하다. 하지만 물가 안정이 절박하다고 해서 세무조사의 목적까지 넓혀서는 안 된다.
탈세 혐의는 엄정하게 조사하고 물가는 공급 확대와 경쟁 촉진, 유통구조 개선 등 물가정책으로 잡아야 한다. 그래야 세무조사의 공정성도 지키고 시장의 신뢰도 얻을 수 있다.
세금은 법에 따라 걷고 가격은 시장에서 결정되는 것이 시장경제의 기본이다. 정부가 지켜야 할 것은 가격 그 자체가 아니라 공정한 경쟁의 질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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