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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기술은 스타트업이, 고객은 KT가…56개사 묶어 '산업 AX' 판 키운다
[경제일보] 통신사가 모든 인공지능(AI) 기술을 직접 개발할 필요는 없다. 제조 현장에는 로봇 제어가, 병원에는 의료 데이터 처리가, 미디어에는 콘텐츠 분석이 필요하다. 산업마다 업무 환경과 요구하는 기술이 다른 만큼 범용 AI 모델만으로 현장 수요를 충족하기는 어렵다. KT가 56개 AI 스타트업을 협력망으로 묶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자체 통신망과 클라우드, 기업 고객 기반에 전문기업의 기술을 결합해 산업별 인공지능 전환(AX)을 실제 사업으로 연결하려는 것이다. KT는 지난 20일 서울 송파구에서 'K-PATH 2026'을 열고 스타트업과 공동 추진하는 AX 사업 사례를 공개했다. 2024년부터 협력해 온 기업은 누적 56곳이다. KT는 스타트업을 발굴하는 데 그치지 않고 현업 부서와 연결해 기술 검증부터 현장 적용, 공동사업화까지 추진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2025~2026년 공동사업화·협업 과제는 19건으로 집계됐고, KT 내부에서는 37개 사업부서가 참여했다. 협력 기업을 늘리는 동시에 실제 사업에 기술을 적용할 내부 접점도 확대하고 있는 셈이다. 협업 사례를 보면 KT가 겨냥하는 시장이 드러난다. 다임테크놀로지는 로봇 통합제어와 디지털트윈을 결합해 공장 운영을 지원하는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쓰리아이는 공공시설에서 이상 징후가 감지되면 로봇이 현장에 출동해 촬영하고 AI가 상태를 판독하는 서비스를 준비 중이다. AI를 실제 설비와 연결해 생산과 시설관리 업무를 바꾸려는 시도다. 단순히 AI 모델을 공급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현장에 필요한 장비와 시스템까지 연계하는 것이다. 에이전틱 AI도 산업별 업무에 맞춰 적용된다. 사이오닉AI는 통신망 장애 원인을 분석하고 조치 방안을 제시하는 AI 에이전트를 KT 네트워크 운영 업무에 적용할 수 있는지 검증하고 있다. 달파는 드라마 대본과 기획안을 분석해 콘텐츠 기획과 투자 판단을 지원하는 솔루션을 개발 중이다. KT는 이를 그룹 내 미디어 사업에 적용할 계획이다. 의료 분야에서는 AI 전문기업 아크릴과 협력해 클라우드·데이터 인프라와 병원 시스템 연계에 의료 특화 AI를 결합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분야별 전문 기술은 스타트업이 제공하고 KT가 고객과 인프라를 연결하는 구조다. KT가 외부 기술과의 협업을 확대하는 배경에는 기업용 AI 시장의 특성이 있다. 기업 고객은 AI 모델의 성능만 보는 것이 아니라 기존 업무시스템과의 연동, 데이터 보안, 구축 비용, 장애 대응과 유지보수까지 따진다. 기술 시연에 성공하는 것과 실제 현장에 도입돼 지속적으로 사용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KT는 기업 영업망과 네트워크·클라우드 운영 경험을 활용해 스타트업 기술을 고객 업무에 적용할 수 있다. 스타트업은 대기업이 자체 개발만으로 확보하기 어려운 전문성과 속도를 제공한다. 양쪽의 강점을 결합하면 기술 개발 부담을 줄이고 산업별 수요에 맞는 서비스를 더 빠르게 구성할 수 있다. AX 사업의 성장세는 KT가 이 시장에 힘을 싣는 배경이다. KT와 KT클라우드의 올해 2분기 AX 매출은 3678억원으로 전년 동기보다 22.3% 증가했다. KT는 상반기 금융권 AX 사업 22건을 수주했으며, 2028년 AX 매출을 2025년의 두 배 이상으로 확대한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금융권을 비롯한 기업들의 AI 도입 수요가 커지는 상황에서 스타트업 협력은 KT가 제공할 수 있는 서비스의 폭을 넓히는 수단이 될 수 있다. 자체 기술만으로 대응하기 어려운 산업별 수요를 외부 전문기업과 함께 공략하려는 것이다. 협업을 지속 가능한 수익으로 전환하는 일은 남은 과제다. 기술 검증 단계에서 성능을 입증해도 고객의 업무 환경에 맞지 않거나 비용 절감과 생산성 개선 효과가 충분하지 않으면 실제 도입으로 이어지기 어렵다. 여러 스타트업의 기술을 결합하는 과정에서는 품질과 보안 기준을 맞추고 장애 발생 시 책임 소재를 명확히 해야 한다. 초기 실증을 넘어 유료 계약을 확보하고, 구축 이후 운영·유지보수와 다른 업무로의 확장까지 이어져야 일회성 프로젝트를 반복 매출을 만드는 사업으로 발전시킬 수 있다. KT 입장에서 스타트업은 부족한 기술을 보완하는 협력사인 동시에 새로운 산업으로 진입하는 통로다. 제조 공장과 병원, 공공시설마다 요구하는 AI가 달라지는 시장에서 모든 기술을 자체 개발하는 방식에는 시간과 비용의 한계가 있다. KT가 확보해야 할 경쟁력은 개별 AI 모델의 성능만이 아니라 다양한 기술을 고객 환경에 맞게 통합하고 구축·운영까지 책임지는 능력이다. 56개 협력망의 가치는 참여 기업 수보다 현장에 안착한 기술과 유료 고객, 반복 매출이 얼마나 늘어나는지에 따라 달라질 전망이다. [아주경제 2026년 10월 22일자 13면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2026-10-22 08:0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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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사기관장의 국무회의 배석, 수사 중립성 흔드는 위험한 발상이다
[경제일보] 대한민국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핵심 원칙은 권력분립과 수사의 정치적 중립성이다. 권력이 한곳에 집중되는 것을 막고, 수사기관이 정권의 이해관계가 아니라 법과 증거에 따라 움직이도록 하는 것은 법치주의의 출발점이다. 수사기관이 권력자의 비위까지 성역 없이 들여다볼 수 있어야 국민은 공권력의 공정성을 신뢰할 수 있다. 그런데 수사기관장의 국무회의 배석을 둘러싼 논란은 정부가 수사의 독립성과 국정 운영의 경계를 어떻게 설정하고 있는지 되묻게 한다. 김지용 중대범죄수사청장은 지난 20일 취임 직후 국무회의에 배석했고, 이재명 대통령은 권력형 부패와 금융범죄 등을 성역 없이 엄단하라고 당부했다. 개별 사건에 대한 지시였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수사기관장이 행정부의 최고 정책 심의기구에 참석하고 대통령으로부터 수사 방향과 관련한 당부를 듣는 장면은 수사의 독립성을 어디까지 보장할 것인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국무회의는 대통령과 국무위원들이 국가의 주요 정책을 심의하는 행정부의 핵심 기구다. 수사기관은 법률이 정한 권한에 따라 범죄 혐의를 규명하고, 권력자를 포함해 누구에게나 법적 책임을 물어야 한다. 두 영역은 국가 운영이라는 틀 안에서 연결돼 있지만 기능과 책임은 구분돼야 한다. 현행 국무회의 규정은 의장이 필요하다고 인정하면 중앙행정기관인 청의 장 등을 배석시킬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따라서 수사기관장의 참석 자체를 곧바로 위법이나 위헌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문제는 배석의 필요성과 범위, 참석이 정례화될 경우 수사의 정치적 중립성을 어떻게 보장할 것인지에 있다. 더 큰 문제는 일회성 참석을 넘어 관행으로 굳어질 가능성이다. 정부는 지난해 말 부처 소속 외청도 국무회의에 참석하도록 하겠다는 방침을 밝힌 뒤 올해 초부터 수사·공소기관장들의 배석을 이어왔다. 이번 중수청장 참석도 그 연장선에 있다. 수사기관장이 국정 기조를 공유하고 정책 방향을 듣는 일이 반복되면 수사와 정권 사이의 거리가 흐려질 수 있다. 실제로 부당한 지시가 없더라도 권력의 의중이 수사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의심이 생기면 공정성에 대한 신뢰는 타격을 받는다. 반대로 정권에 부담이 되는 수사를 외면하거나 권력의 비위를 덮는다는 의혹이 제기된다면 피해는 정부를 넘어 법치주의 전체로 번진다. 정부는 국정 효율성과 기관 간 협조만을 앞세워 이런 우려를 가볍게 넘겨서는 안 된다. 범정부 차원의 정책 협의와 정보 공유가 필요하다면 이미 마련된 법적 절차 안에서 목적과 범위를 명확히 하면 된다. 수사기관장을 국무회의에 배석시키는 것이 어떤 정책적 필요에 따른 것인지, 어떤 의제에서 발언할 수 있는지, 개별 사건에 대한 지시나 논의가 이뤄질 가능성을 어떻게 차단할 것인지 설명해야 한다. 법적 근거가 있다는 사실만으로 그 운영 방식의 적절성까지 자동으로 입증되는 것은 아니다. 설명 책임을 다하지 않은 채 비판을 정치 공세로 몰아붙이면 불신만 키울 뿐이다. 수사기관 역시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 독립성은 외부의 간섭을 받지 않는 것만으로 지켜지지 않는다. 간섭으로 오해받을 수 있는 상황을 스스로 경계하고, 권력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해야 국민의 신뢰를 얻을 수 있다. 기관장은 원활한 국정 협조보다 법률이 부여한 권한과 책임을 우선해야 한다. 참석이 불가피하다면 목적과 의제를 분명히 하고 개별 수사에 관한 지시나 논의가 이뤄지지 않도록 제도적 방화벽을 마련해야 한다. 그 필요성과 경계를 납득시킬 수 없다면 정례 배석을 재검토하는 것이 마땅하다. 권력과 거리를 두는 것은 국정에 대한 비협조가 아니라 수사기관이 국민에게 져야 할 책임이다. 국회도 이 문제를 정쟁의 소재로만 삼아서는 안 된다. 국무회의 배석의 운영 기준을 점검하고 수사기관의 정치적 중립성을 보장할 제도적 장치를 정비해야 한다. 필요하다면 관련 법령에 참석 요건과 허용 범위, 발언 및 회의 내용의 취급 원칙을 명확히 규정해야 한다. 대통령을 비롯한 행정부의 누구도 개별 수사에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으며, 수사기관장 역시 정권의 국정 기조에 종속돼서는 안 된다는 원칙을 제도적으로 확립해야 한다. 권력은 유한하지만 헌법의 원칙은 정권의 임기보다 길다. 자유와 법치는 권력자의 선의만으로 지켜지지 않는다. 권한을 행사하는 방식에 절제와 책임이 따르고, 부당한 개입을 막는 제도적 장치가 작동해야 한다. 정부는 수사기관장의 국무회의 배석이 왜 필요한지 설명하고, 수사의 독립성과 정치적 중립성을 보장할 구체적인 기준을 내놓아야 한다. 수사기관은 권력의 곁이 아니라 법과 국민의 곁에 서야 한다. 정권과 수사의 경계가 흐려지면 법치에 대한 신뢰도 흔들린다. 수사의 독립성은 상황에 따라 선택할 수 있는 원칙이 아니다. 이를 지키는 것이 정부가 헌법과 국민 앞에 져야 할 기본 책무다.
2026-10-21 16:0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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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의 분노가 던진 경고, 미래세대는 정치권의 현금인출기가 아니다
[경제일보] 지난해 네팔에서는 청년들의 분노가 정권을 흔들었다. 부패와 특권, 청년 실업에 쌓인 불만이 대규모 시위로 번졌다. 모로코에서도 청년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국제축구대회 개최를 위한 시설에는 막대한 재정을 투입하면서 병원과 학교는 제대로 돌보지 않는 정부를 향한 항의였다. 두 나라의 사정은 달랐지만 청년들이 겨냥한 것은 자신들의 삶보다 권력의 이해관계를 앞세우는 정치였다. 한국 정치도 이 경고를 가볍게 여길 처지가 아니다. 집값은 청년들의 소득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에 이르렀고 안정적인 일자리를 얻기도 쉽지 않다. 결혼과 출산을 미루거나 포기하는 청년이 늘어나는 동안 정치권은 현금 지원과 각종 보조금 확대를 경쟁적으로 약속한다. 당장의 부담을 덜어주는 정책은 필요하지만 돈을 어디서 마련할 것인지, 그 비용을 누가 갚을 것인지에 대한 설명은 좀처럼 들리지 않는다. 정치권이 선거를 의식해 지출을 늘리면 그 혜택은 현재의 유권자에게 돌아간다. 그러나 재정 적자가 쌓여 국가채무가 증가하면 원리금을 갚아야 할 부담은 다음 세대까지 이어진다. 선거에서 표를 얻은 정치인은 몇 년 뒤 자리를 떠날 수 있지만 국가가 발행한 국채는 정권이 바뀐다고 사라지지 않는다. 정치권은 오늘의 표를 얻기 위해 돈을 쓰고, 그 빚은 내일의 납세자에게 떠넘기고 있다. 저출생과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는 한국에서 이러한 재정 운용은 더욱 위험하다. 경제활동에 참여해 세금을 낼 인구는 줄어드는데 연금과 의료, 노인복지에 들어가는 돈은 계속 늘어날 전망이다. 경제성장률까지 낮아지면 재정 수입은 줄고 지출 압박은 커진다. 지금의 지출 수준을 유지하기 위해 세금을 더 걷거나 빚을 늘리는 선택을 반복할수록 미래세대의 부담은 무거워진다. 정부가 편성한 2027년도 예산안은 총지출 820조9000억원으로 올해보다 12.8% 증가했다. 반도체 호황에 따른 세수 확대에 힘입어 국내총생산(GDP) 대비 관리재정수지 적자는 0.1%로 줄고 국가채무비율도 48.3%로 낮아질 전망이다. 그러나 국가채무 총액은 올해 본예산 기준 1413조8000억원에서 1519조8000억원으로 증가한다. 채무비율은 낮아지더라도 빚의 절대 규모는 106조원 늘어나는 셈이다. 세수 증가에 힘입은 재정지표 개선을 장기적인 건전성 회복으로 받아들이기는 이르다. 반도체 산업의 호황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장담할 수 없고 경기 침체로 세수가 줄어들면 재정 여건은 빠르게 악화할 수 있다. 한 번 도입한 복지제도와 지원사업은 수혜자가 늘어날수록 축소하기 어려워진다. 지출을 확대하는 정치적 결정은 쉽지만 이를 줄이는 과정에서는 거센 반발이 뒤따르기 마련이다. 국회예산정책처가 지난해 발표한 장기재정전망도 심각하다. 당시 법령과 제도가 유지될 경우 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은 2025년 47.8%에서 2072년 173%까지 상승할 것으로 추산됐다. 이후 정책 변화에 따라 실제 수치는 달라질 수 있지만 저출생과 고령화에 대응하지 못하면 국가재정이 얼마나 큰 압박을 받게 되는지 보여준다. 그런데도 정치권은 선거 때마다 새로운 지원책을 쏟아낸다. 여야 모두 재정 건전성을 강조하다가도 자신들이 추진하는 사업에는 예외를 두려 한다. 집권하면 재정 확대의 불가피성을 주장하고 야당이 되면 국가채무 증가를 비판한다. 국가재정을 정권의 이해관계에 따라 운용하면서 그 부담은 다음 세대에 넘기는 행태다. 재정준칙을 법률로 강제해야 하는 이유다. 지난 9월 29일 국민의힘 김상훈 의원이 대표발의한 국가재정법 개정안은 국가채무비율을 GDP 대비 60% 이내로 관리하고 관리재정수지 적자를 원칙적으로 3% 이내로 제한하도록 했다. 국가채무비율이 60%를 넘으면 적자 한도를 2%로 낮추고 준칙을 지키지 못한 정부에는 재정건전화 대책과 이행계획을 제출하도록 했다. 법률에 기준을 정해 놓는 것으로 재정 운용의 책임까지 확보할 수는 없다. 경기 침체나 대규모 재난에 대응하기 위해 정부가 지출을 늘려야 할 때도 있다. 다만 예외를 적용한다면 그 사유와 재정 영향을 구체적으로 밝히고 정상화 시한과 계획을 국회에 제출하도록 해야 한다. 독립적인 재정평가를 통해 정부의 세입 전망과 지출계획을 검증하고 시정조치의 이행 여부도 공개해야 한다. 예외와 유예를 반복하면서 준칙을 지켰다고 주장하는 편법부터 막아야 한다. 국회 역시 재정 운용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선거를 앞두고 각종 지원책과 감세 법안을 경쟁적으로 발의하면서 정작 필요한 재원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지에 대한 설명은 부족하다. 현행 비용추계 제도를 보완해 재정 부담이 발생하는 법률에는 구체적인 재원 조달 방안까지 제시하도록 해야 한다. 새로운 지출에 상응하는 재원을 마련하거나 기존 지출을 조정하는 페이고(Pay-as-you-go) 원칙도 강화할 필요가 있다. 국민에게 혜택을 약속할 권한을 가진 국회가 그 비용에 대한 책임까지 회피해서는 안 된다. 국민연금은 정치권의 개혁 지연이 미래세대에 어떤 부담을 남기는지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지난해 개정된 국민연금법에 따라 보험료율은 기존 9%에서 올해 9.5%로 올랐고 2033년에는 13%에 도달한다. 명목소득대체율도 올해부터 43%로 높아졌다. 18년 만에 이뤄진 개혁으로 기금 소진 시점은 늦춰졌지만 장기적인 재정 불안은 여전히 남아 있다. 정부 추계에 따르면 이번 개혁을 반영한 국민연금 기금 소진 시점은 2064년이다. 기금운용 수익률이 목표대로 높아지면 2071년까지 늦출 수 있다는 전망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추계는 인구구조와 경제성장률, 투자수익률에 따라 달라진다. 기금 소진 시점을 늦추는 데 성공했더라도 그 이후 연금급여를 어떻게 지급할 것인지, 필요한 재원을 누가 부담할 것인지는 여전히 풀어야 할 과제로 남았다. 현행 제도에서는 앞으로 수십 년 동안 보험료를 납부할 청년들이 인구구조 변화에 따른 부담을 더 많이 떠안을 가능성이 크다. 지난해 개혁으로 보험료율을 올리면서 소득대체율도 높였지만 세대별로 부담과 혜택이 어떻게 달라지는지에 관한 논의는 충분하지 않았다. 현재 연금을 받는 세대와 앞으로 가입할 청년의 이해관계가 다른 만큼 보험료율과 급여 수준을 정할 때 세대별 영향을 함께 따져야 한다. 정치권이 연금개혁을 미룬 책임도 가볍지 않다. 2007년 개혁 이후 보험료율을 다시 조정하기까지 18년이 걸렸다. 그동안 출생아 수는 줄고 고령인구는 증가했다. 연금 재정의 장기적인 불안이 예고됐지만 국민에게 보험료 인상이나 급여 조정을 요구하는 결정은 번번이 뒤로 밀렸다. 개혁을 늦춘 정치권이 부담해야 할 정치적 비용은 작았지만 그 사이 후속 세대가 감당해야 할 재정적 부담은 커졌다. 국민연금법에도 개혁을 더 이상 미룰 수 없도록 후속 절차를 마련해야 한다. 현행법은 5년마다 재정계산을 실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재정 전망이 법률에 정한 관리 기준을 벗어나면 정부가 일정 기간 안에 조정안을 마련해 국회에 제출하도록 의무화할 필요가 있다. 국회에도 심의 일정과 처리 경과를 공개하도록 해 연금개혁을 지연시킨 책임이 어디에 있는지 국민이 확인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세대별 보험료 부담과 예상 연금급여를 비교해 공개하는 제도도 도입할 만하다. 청년과 중장년, 고령층이 각각 얼마나 부담하고 어떤 혜택을 받을 것으로 예상되는지 같은 기준으로 산출해야 한다. 보험료 인상의 부담이 저소득층과 고용이 불안정한 청년에게 집중되지 않도록 지원책을 마련하는 일도 병행해야 한다. 국가의 연금 지급 보장은 이미 법률에 명시됐다. 이제는 그 약속을 이행할 재원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지 구체적인 계획을 내놓을 차례다. 재정 건전성을 강조한다고 해서 청년 지원이나 필요한 복지까지 무조건 줄여서는 곤란하다. 청년의 주거 안정과 일자리, 교육에 대한 투자는 장기적으로 경제의 성장 기반을 넓히는 데 기여할 수 있다. 취약계층을 보호하는 복지 지출 역시 국가의 책무다. 반면 효과가 불분명한 사업이나 선거를 의식한 일회성 지원에는 엄격한 검증이 따라야 한다. 정부가 돈을 쓰기로 결정했다면 그 사업이 어떤 성과를 낼 것인지, 앞으로 얼마나 많은 재원이 필요할 것인지부터 국민에게 설명해야 한다. 재정준칙과 연금개혁을 법으로 강제하자는 주장은 국회와 정부의 정당한 정책 결정권을 부정하자는 뜻이 아니다.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권한을 행사하는 만큼 그에 따르는 책임도 법률에 규정하자는 것이다. 재정준칙을 지키지 못한 정부는 시정계획을 제출하고, 연금 재정이 악화되면 개혁안을 마련하도록 해야 한다. 국회도 선거와 정파적 이해를 이유로 심의를 무작정 미룰 수 없도록 제도적 책임을 져야 한다. 정치권은 어려운 결정을 앞두고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말을 되풀이한다. 충분한 논의와 국민적 공감대는 중요하다. 그러나 합의를 이유로 결정을 미루는 동안에도 국가채무의 이자는 쌓이고 연금 재정의 부담은 증가한다. 다음 선거를 의식해 개혁을 연기하는 정치가 반복된다면 그 피해는 정치권이 아닌 미래의 납세자와 연금 가입자에게 돌아간다. 세계 곳곳에서 터져 나온 청년들의 분노는 오늘의 정치가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지 돌아보게 한다. 한국 정치도 당장의 지지율과 선거 승리를 위해 재정을 운용하는 관행에서 벗어나야 한다. 국가채무와 연금 지급 의무는 정권이 바뀌어도 사라지지 않는다. 정치권이 회피한 책임을 미래세대가 세금과 보험료로 감당하는 일도 더는 반복해서는 안 된다. 아직 태어나지 않은 국민은 선거에서 자신의 이해를 대변할 수 없다. 그렇다고 현재의 정치권이 그들의 몫까지 마음대로 쓸 권한을 가진 것은 아니다. 미래세대에 남길 부담을 결정하는 정치라면 그 책임부터 법으로 지게 해야 한다.
2026-10-20 16: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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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색 넘어 AI 인프라까지 판다…네이버, 아시아서 새 성장 공식 짠다
[경제일보] 네이버가 인공지능(AI) 해외사업의 판을 다시 짜고 있다. 미국 빅테크와 초거대 AI 모델의 규모로 경쟁하기보다 현지 기업의 GPU 인프라와 고객망에 자체 AI 모델과 운영 기술을 결합하는 방식이다. 태국에서 현지 언어 기반 AI 개발을 추진하고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디지털트윈 사업을 확장한 데 이어 베트남 최대 정보기술(IT) 기업 FPT와 손잡으며 아시아를 잇는 AI 사업망 구축에 속도를 내고 있다. 네이버클라우드는 지난 12일 FPT와 AI 팩토리 및 서비스형 GPU(GPUaaS) 사업을 공동 추진하기 위한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다. 양사는 한국과 일본, 베트남 등 아시아태평양 시장에서 기업용 AI 수요를 발굴하고 GPU 인프라 최적화부터 모델 운영, AI 에이전트 구축까지 협력할 계획이다. 이번 협력의 핵심은 FPT가 확보한 인프라와 고객망이다. FPT는 엔비디아와 협력해 AI 인프라를 구축·운영하고 있으며, 자사 AI 팩토리를 통해 1만8000명 이상의 개발자와 2000곳 이상의 기업을 지원한다고 밝혔다. 네이버가 해외에 데이터센터를 직접 구축하고 고객을 모집하는 대신 기존 인프라와 고객망을 활용해 기술과 서비스를 공급할 수 있는 기반이다. 네이버가 제공할 수 있는 가치는 GPU 자체보다 그 위에서 작동하는 소프트웨어와 AI 서비스에 있다. 양사는 네이버의 초거대 AI 모델 하이퍼클로바X를 FPT 기업 고객에게 제공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고객 현장에서 추론 성능과 비용을 최적화하고 실제 업무에 AI 에이전트를 적용하는 작업도 협력 대상이다. 기업의 업무 환경에 맞춰 모델을 조정하고 운영까지 지원하면 단순한 기술 공급보다 고객과의 장기적인 관계를 구축하기 쉽다. 기업 고객은 모델 성능뿐 아니라 데이터 보안과 기존 시스템 연계, 운영 비용, 장애 대응까지 해결해 줄 사업자를 필요로 한다. GPU 이용료와 모델 사용료에 시스템 구축·운영 서비스를 결합하면 일회성 기술 공급을 넘어 반복 매출을 확보할 여지가 생긴다. 다만 이번 협약은 사업 기획과 개발, 운영 협력을 위한 단계로 구체적인 수주 금액과 매출 규모는 공개되지 않았다. 실제 사업성은 고객 확보와 장기 계약, GPU 자원 사용량이 얼마나 늘어나는지에 따라 달라질 전망이다. 이 전략은 네이버가 강조해 온 '소버린 AI'와도 연결된다. 각국의 언어와 문화, 데이터 관리 규정에 맞춰 AI를 개발·운영하도록 지원하는 방식이다. 현지 규정과 산업 특성 때문에 범용 AI 서비스를 그대로 도입하기 어려운 국가와 공공기관, 금융·제조기업 등이 잠재 고객이 될 수 있다. 현지 파트너와 협력하면 시장 진입 부담을 낮추면서 국가별 수요에 맞는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태국에서는 현지 언어에 특화한 AI 개발을 추진했다. 네이버클라우드는 태국 AI·클라우드 기업 시암AI와 태국어 기반 대형언어모델(LLM) 및 관광 특화 AI 에이전트를 공동 개발하기로 했다. 현지 언어와 관광 산업의 요구에 맞춘 AI 기술을 서비스로 연결하려는 시도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서는 디지털트윈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 팀네이버는 메카·메디나·제다 등 3개 도시의 6800㎢와 건물 92만동 이상을 가상공간에 구현했다. 올해 8월에는 네이버의 클라우드 기반 디지털트윈 플랫폼이 사우디 국가 표준 플랫폼으로 채택됐다. AI 모델 수출과는 다른 사업이지만 현지 정부 시스템에 기술을 공급하고 운영 기반을 확보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국가별 사업 형태는 다르지만 현지 파트너와 인프라를 활용해 고객 요구에 맞는 기술을 공급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네이버는 직접 투자 부담을 줄이면서 해외 사업을 넓힐 수 있지만 글로벌 클라우드 기업과의 경쟁에서 기술 차별화와 가격 경쟁력을 입증해야 한다. 협력이 실제 도입과 장기 계약으로 이어지지 않으면 안정적인 매출을 확보하기 어렵다. 네이버 AI 해외사업의 성패는 데이터센터를 얼마나 확보하느냐보다 현지 기업이 네이버 기술을 얼마나 지속적으로 사용하느냐에 달렸다. 검색과 광고로 성장한 네이버가 해외에서는 기업의 AI 활용을 기술 사용료와 운영 매출로 연결하려는 것이다. 아시아 각국의 인프라를 기반으로 네이버 AI가 현지 기업의 업무에 안착한다면 한국 포털 기업의 글로벌 성장 공식도 달라질 수 있다. [아주경제 2026년 10월 20일자 13면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2026-10-20 07:5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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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약점 찾는 AI 넘어 해결하는 AI로…오픈AI, 기업 보안 전략 제시
[경제일보] 인공지능(AI)이 소프트웨어 취약점을 찾아내고 공격 경로를 분석하는 능력을 높이면서 기업 사이버 보안의 초점이 취약점 발견을 넘어 신속한 수정과 검증으로 옮겨가고 있다. 공격자가 AI를 활용해 취약점을 탐색하는 속도가 빨라질 수 있는 만큼, 방어자도 AI를 활용해 보안 문제를 먼저 발견하고 해결하는 체계를 갖춰야 한다는 것이다. 오픈AI는 기업 보안 업무에 AI 에이전트를 적용해 취약점 탐지부터 수정, 검증까지 연결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16일 오픈AI는 서울 강남구 웨스틴 서울 파르나스에서 '오픈AI 사이버 CXO 라운드테이블'을 열고 국내 기업 경영진을 대상으로 AI 시대의 사이버 방어 전략과 기업 보안 현장 적용 방안을 공유했다고 밝혔다. 최고정보보호책임자(CISO) 등 국내 기업 임원급 60여명이 참석한 이번 행사에서는 AI로 변화하는 사이버 위협과 기업의 대응 역량 강화 방안이 다뤄졌다. 오픈AI가 강조한 방향은 AI를 취약점 탐색에만 활용하는 것이 아니라 발견한 문제를 실제 해결까지 연결하는 것이다. 기존 보안 업무에서는 취약점을 찾아낸 뒤 위험도를 분석하고, 담당 개발 조직에 전달해 수정 작업을 진행한 다음, 문제가 해결됐는지 다시 확인하는 과정이 필요한 것으로 꼽힌다. 이 과정에서 보안팀과 개발팀 사이의 업무 인계가 반복되거나 수정 우선순위에 대한 판단이 늦어지면 취약점이 발견된 뒤에도 실제 위험이 해소되기까지 시간이 걸릴 수 있는 것이다. AI 에이전트는 소스 코드와 시스템 정보를 분석해 취약점 후보를 찾고, 해당 문제가 실제 환경에서 악용될 가능성을 검증하는 작업을 지원할 수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이후 수정안을 마련하고 테스트 결과를 확인하는 과정까지 연결하면 보안 담당자와 개발자가 반복적으로 수행하는 작업을 줄이고, 위험도가 높은 문제에 집중할 수 있다. 이날 발표에서는 오픈AI의 사이버 방어 체계인 '데이브레이크'도 소개됐다. 데이브레이크는 오픈AI의 AI 모델과 코덱스, 코덱스 시큐리티, 보안 업무 절차를 결합해 기업의 취약점 탐지와 검증, 수정 작업을 지원하는 체계다. 기업이 이미 사용 중인 보안·개발 도구와 업무 절차에 AI를 연결해 기존 시스템을 전면 교체하지 않고도 보안 업무에 AI를 활용하도록 설계됐다. 데이브레이크는 자산 파악과 취약점 탐색, 실제 악용 가능성 검증, 담당 조직 지정, 수정 및 해결 여부 확인으로 이어지는 방어 작업을 지원한다. 예를 들어 소프트웨어 코드에서 취약점이 발견되면 AI를 활용해 해당 문제의 영향과 위험도를 분석하고, 수정안을 마련한 뒤 테스트를 통해 해결 여부를 확인하는 방식이다. 보안 담당자와 개발자는 분석 근거와 테스트 결과를 검토해 수정안을 적용할지 결정한다. 코드 보안 점검뿐 아니라 위협 조사와 승인된 보안 테스트 등에도 활용할 수 있는 구조다. 오픈AI는 보안 업무를 지속적으로 수행하는 운영 모델인 '디펜스 팩토리' 구축 경험도 공유했다. 디펜스 팩토리는 AI 에이전트와 반복 가능한 업무 절차, 격리된 실행 환경을 기존 보안·개발 도구에 연결해 취약점 점검과 해결을 이어가는 방식이다. 일회성 보안 점검에 그치지 않고 문제를 발견하면 담당 조직에 전달하고, 수정과 검증까지 반복적으로 진행하는 체계를 만드는 데 초점을 둔다. 이 같은 방식에서 중요한 것은 보안팀과 개발팀의 협업이다. 보안팀이 취약점을 찾아내더라도 실제 코드를 수정하고 운영 환경에 반영하는 업무는 개발 조직과 연결돼야 한다. AI를 통해 분석과 수정안 작성이 빨라지더라도 누가 문제를 해결할지 지정하고, 수정 결과가 실제 위험을 줄였는지 확인하는 절차가 없다면 보안 성과로 이어지기 어렵다. 디펜스 팩토리는 AI를 기존 업무 흐름에 연결해 취약점 발견부터 조치까지의 단계를 이어 붙이는 운영 모델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AI 기반 보안 체계가 확산하려면 접근 권한과 실행 범위에 대한 통제도 필요하다. 기업 내부 코드와 시스템 정보는 민감한 자산인 만큼 AI가 어떤 데이터에 접근할 수 있는지, 어떤 작업을 수행할 수 있는지 사전에 정해야 한다. 특히 시스템 설정 변경이나 코드 수정처럼 실제 운영 환경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작업은 권한을 제한하고, 중요한 판단과 변경 사항을 사람이 검토하는 절차를 마련해야 한다. 오픈AI도 이날 발표에서 사람의 감독과 명확한 권한 설정, 통제된 실행 환경을 강조했다. 보안 성과를 측정하는 기준도 달라질 수 있다. 단순히 AI가 찾아낸 취약점 수나 자동화한 작업량만으로는 기업의 보안 수준이 개선됐다고 판단하기 어렵다. 실제로 위험도가 높은 취약점을 얼마나 빠르게 해결했는지, 수정안이 제대로 작동하는지 검증했는지, 조치 이후 위험이 감소했는지를 살펴야 한다. 취약점 발견이 늘어나더라도 이를 처리할 인력과 절차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오히려 보안팀의 업무 부담이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AI가 공격과 방어 양쪽에 활용될 수 있다는 점도 기업이 고려해야 할 변수다. AI 모델은 방대한 코드에서 취약점의 단서를 찾고 공격 경로를 분석하는 작업을 지원할 수 있지만, 같은 능력이 공격자의 취약점 탐색과 악용 준비에 사용될 가능성도 있다. 이에 따라 방어자는 최신 AI 기술을 확보하는 동시에 자사 시스템에 대한 접근과 테스트 권한을 통제하고, 발견한 취약점을 공격자가 악용하기 전에 수정하는 대응 체계를 마련해야 할 전망이다. 김경훈 오픈AI 코리아 총괄 대표는 "AI 시대에 기업이 주요 보안 위험을 빠르게 파악하고 대응하려면 사이버보안을 핵심 경영 과제로 다뤄야 한다"며 "국내 기업들이 기존 보안 체계에 AI를 접목해 현장에서 효과를 확인하고, 이를 지속적인 방어 역량으로 발전시킬 수 있도록 돕겠다"고 말했다.
2026-10-16 15:2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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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는 증시와 AI 대전환, 금융의 기본과 상식부터 바로 세워라
[경제일보] 대한민국 자본시장이 대내외 불확실성의 파고에 휘청이고 있다. 코스피는 급락과 급등을 거듭하며 투자자들의 불안을 키우고 있다. 최근의 급락은 미국 금리 인상 우려와 인공지능(AI) 인프라 투자에 대한 불확실성 등이 겹친 결과다. 그러나 외부 충격이 시장을 흔들 수는 있어도 시장의 체력과 감독 체계의 허점을 대신 설명해주지는 못한다. 시장이 흔들릴수록 필요한 것은 임기응변식 처방이나 장밋빛 전망이 아니다. 위험을 직시하고 기본과 상식으로 돌아가는 일이다. 자본시장을 지탱하는 기둥은 신뢰와 공정성이다. 기업의 실적과 가치가 투명하게 공개되고 투자자가 같은 정보와 규칙 아래 경쟁하며 위험이 합리적으로 관리된다는 믿음이 있어야 자본이 모인다. 이 토대가 무너지면 주가 부양책을 쏟아내도 불신은 사라지지 않는다. 정부와 금융당국의 역할은 지수를 인위적으로 떠받치는 것이 아니라 시장이 공정하게 작동하도록 규칙을 세우고 위험에 대비하는 것이다. 금융당국의 책임은 무겁다. 외국인 자금 흐름과 시장 유동성, 신용거래와 레버리지 위험을 면밀히 점검하고 손실이 금융회사와 투자자 전반으로 번질 가능성까지 살펴야 한다. 위기 징후를 놓친 뒤 대책을 내놓는 것은 감독이 아니라 뒷북이다. 불공정 거래와 시세 조종, 미공개 정보 이용에는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엄정하게 대응해야 한다. 시장 안정 조치는 신속해야 하지만, 그 과정에서도 원칙과 투명성을 잃어서는 안 된다. 정책 방향이 흔들리고 불공정 행위에 대한 대응마저 미온적이라면 당국 스스로 시장의 신뢰를 허무는 셈이다. 더 근본적인 과제는 AI를 중심으로 한 산업 대전환이다. 이번 증시 급락을 일시적인 수급 충격으로만 봐서는 안 된다. AI가 기업의 생산성과 수익 구조, 글로벌 자본의 투자 지형을 동시에 바꾸고 있기 때문이다. 반도체 대형주가 증시를 이끄는 상황에서 AI 투자의 수익성에 대한 의문이 커지면 국내 시장도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다. 반도체 수출 호조에 안주한 채 AI 생태계 전반의 변화를 놓친다면 시장의 불안은 산업 경쟁력의 취약성을 드러내는 경고음이 될 수 있다. AI 시대의 승부는 메모리 반도체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시스템 반도체와 소프트웨어, 데이터센터, 전력 인프라, 첨단 제조와 서비스 혁신이 맞물려야 한다. 정부는 특정 기업에 대한 일회성 지원을 넘어 연구개발 투자와 전문 인재 양성, 안정적인 전력 공급, 규제 개선을 아우르는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 대기업에 집중된 성과가 중소·벤처기업의 기술 혁신과 양질의 일자리로 이어지도록 산업 생태계도 정비해야 한다. 지원금만 늘리고 낡은 규제와 경직된 제도를 방치하는 것은 혁신이 아니라 재정 낭비다. 기업의 책임도 막중하다. 정부 지원이나 시장의 기대에 기대서는 글로벌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 연구개발과 사업 구조 전환으로 생산성을 높이고 주주와 투자자에게 경영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유행하는 기술에 편승하거나 단기 실적을 부풀리는 경영으로는 지속 가능한 기업 가치를 만들 수 없다. 자본시장 역시 투기적 기대보다 기업의 실력과 미래 현금흐름을 평가하는 본연의 기능을 회복해야 한다. 자유시장경제는 방임과 동의어가 아니다. 공정한 규칙과 책임 있는 감독이 뒷받침돼야 자유로운 경쟁이 혁신을 낳고 자본도 생산적인 곳으로 흐른다. 정부는 시장을 통제하려는 유혹을 버리고, 기업은 기술과 실적으로 답하며, 금융당국은 감독의 결과에 책임져야 한다. 정치권도 주가 상승을 성과로 내세우기보다 시장의 체질을 바꾸는 제도 개혁에 힘을 쏟아야 한다. 위기 때마다 대책만 늘고 책임지는 사람은 없는 악순환을 끝내야 한다. 흔들리는 증시를 바로잡는 출발점은 지수 방어가 아니라 신뢰 회복이다. 시장의 공정성을 바로 세우고 AI 대전환에 필요한 산업 경쟁력을 확보해야 단기 충격을 넘어 자본시장과 실물경제의 체질을 바꿀 수 있다. 금융의 기본을 지키지 못한 채 기술 혁신만 외쳐서는 미래를 담보할 수 없다.
2026-10-16 09:2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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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호황에 취한 정부, 민생은 무너진다
[경제일보] 반도체가 잘나간다고 한국 경제까지 잘나가는 것은 아니다. 수출은 늘고 기업 실적은 뛰는데 일자리가 부족하고 소비가 얼어붙었다면 무슨 소용인가. 반도체 실적에 환호하는 동안 청년은 취업 문턱에서 좌절하고, 자영업자는 생존을 걱정한다. 수출의 온기와 민생의 한파가 따로 논다. 반도체는 한국 경제의 기둥이다. 그러나 자본과 기술 집약도가 높은 산업의 호황이 대규모 고용으로 이어지기는 어렵다. 인공지능(AI)과 자동화가 확산할수록 생산성과 일자리가 함께 늘 것이라는 기대도 경계해야 한다. 반도체에 더 많은 지원을 쏟는 것만으로 성장과 고용을 해결할 수는 없다. 반도체가 벌어들인 부가가치를 경제 전반으로 확산할 성장축이 필요하다. 답은 서비스산업에 있다. 콘텐츠와 관광, 뷰티, 금융, 물류는 기술과 창의성을 결합해 세계 시장을 공략할 수 있는 분야다. K-콘텐츠와 K-뷰티가 이미 가능성을 보여줬지만 국내 기업은 낡은 규제와 부처 간 칸막이에 발목이 잡혀 있다. 고용을 떠받치는 서비스업의 생산성을 높이지 못하면 양질의 일자리와 내수 회복도 기대하기 어렵다. 제조업만으로 성장과 고용을 모두 해결하겠다는 발상부터 버려야 한다.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의 장기 표류가 이를 상징한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 개인정보 보호는 지켜야 하지만 이를 이유로 혁신의 문을 닫아걸 수는 없다. 공공성이 중요한 분야는 안전장치를 마련하고, 관광·콘텐츠·물류 등은 불합리한 규제와 중복 인허가부터 정비해야 한다. 규제를 무조건 풀자는 것이 아니라 지킬 원칙과 고칠 규제를 구분하자는 것이다. 여야가 이해집단의 눈치만 보며 입법을 미루는 동안 기업은 투자를 늦추고 청년은 기회를 잃는다. 정부 지원도 달라져야 한다. 중소 서비스기업의 AI 도입과 인력 재교육을 돕되, 장비 구매나 일회성 보조금에 그쳐서는 안 된다. 업무시간 단축과 비용 절감, 매출 증가 등 생산성 개선으로 성과를 평가해야 한다. 콘텐츠·뷰티·관광 기업에는 지식재산권 보호와 해외 유통망, 금융·마케팅 지원을 연결하고, 직업훈련은 수료 인원이 아니라 실제 취업과 임금 상승으로 평가해야 한다. 예산 집행 실적이 아니라 양질의 일자리가 정책의 성적표여야 한다. 서비스산업 혁신은 제조업을 희생시키자는 주장이 아니다. 반도체 기술을 서비스와 연결해 부가가치를 높이고 수출의 성과가 투자와 소비, 고용으로 이어지게 하자는 것이다. 제조업의 기술이 서비스 혁신을 이끌고 서비스기업의 창의성이 다시 제조업 경쟁력을 높이는 선순환을 만들어야 특정 산업의 호황에 경제 전체가 매달리는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다. 경제의 성적표는 주가나 수출액만으로 매길 수 없다. 청년이 일자리를 얻었는지, 중소기업이 성장했는지, 가계의 소득과 소비가 나아졌는지를 봐야 한다. 반도체 대기업의 실적이 좋아졌다고 경제정책까지 성공한 것은 아니다. 수출 통계 뒤에 숨어 민생의 부진을 외면하는 것은 경제운용이 아니라 책임 회피다. 반도체 호황은 정부의 공이 아니라 산업이 만든 기회다. 정부가 이 기회에 취해 서비스산업 개혁을 미룬다면 오늘의 수출을 자랑하는 대가로 내일의 일자리를 잃게 된다. 반도체 성과를 자랑하기 전에 민생부터 살려라. 정부의 성적표는 수출액이 아니라 국민의 일자리와 소득으로 매겨야 한다.
2026-10-15 17:3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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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감사 난장판, 제도부터 뜯어고쳐 정쟁의 고리를 끊어라
[경제일보] 국회의 가을이 사라졌다. 고물가와 내수 부진, 저성장으로 국민의 삶은 팍팍해지는데 여의도는 정쟁의 소용돌이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행정부를 감시하고 국정의 잘못을 바로잡아야 할 국정감사가 폭로와 고성, 막말과 증인 채택 공방으로 얼룩졌다. 국민이 맡긴 권한을 민생 해결에 쓰기는커녕 정파의 유불리를 따지는 데 탕진하는 국회라면 직무유기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문제는 의원 개개인의 자질에만 있지 않다. 정쟁을 유도하고 보상하는 국정감사 운영 방식 자체가 개혁 대상이다. 증인 채택은 상대 진영을 압박하는 수단으로 변질되고, 질의는 정책의 실효성을 따지기보다 자극적인 장면을 만드는 데 치중한다. 감사가 끝나면 지적 사항은 보고서에 남지만 정부가 이를 실제로 개선했는지 확인하는 절차는 허술하다. 국감을 내실 있게 치르는 것보다 언론의 주목을 받는 것이 정치적으로 유리한 구조부터 바꿔야 한다. 증인·참고인 채택 기준부터 객관화해야 한다. 출석 요구의 목적과 안건과의 관련성, 확인할 사실, 대체 가능한 자료의 유무를 사전에 명시하도록 해야 한다. 여야가 합의하지 못한 경우에는 그 사유와 판단 근거를 기록해 공개할 필요가 있다. 정책 검증과 직접 관련이 없는 인물을 망신 주기 위해 부르는 관행도 차단해야 한다. 정당의 정치적 필요가 아니라 사실 확인의 필요성이 증인 채택의 기준이 돼야 한다. 국감 질의도 정책 검증 중심으로 바꿔야 한다. 상임위원회는 감사에 앞서 핵심 정책과제를 선정하고, 의원들은 질의 자료와 요구 사항을 구체화해야 한다. 정부도 사업별 예산 집행과 성과, 정책 목표 달성 여부를 표준화된 자료로 제출하도록 해야 한다. 반복적인 자료 요구와 일회성 폭로를 줄이고 정책의 문제점과 개선 방안을 중심으로 심사해야 한다. 국감 성과 역시 질의 시간이나 폭로 건수가 아니라 예산 낭비 방지, 제도 개선, 정책 오류 시정 등 실질적인 결과로 평가해야 한다. 자료 제출 거부와 허위 답변에 대한 책임도 강화해야 한다. 정부 부처와 공공기관이 정당한 사유 없이 자료 제출을 지연하거나 핵심 내용을 누락하면 그 사유를 서면으로 밝히도록 하고, 고의적인 허위 답변이나 자료 은폐가 확인되면 관련 법령에 따라 엄정하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 의원의 의혹 제기 역시 증거와 사실관계에 근거해야 한다. 의혹을 제기했다는 이유만으로 제재해서는 안 되지만, 고의적인 허위 주장이나 왜곡이 확인되면 정정과 해명 등 책임 있는 후속 조치가 뒤따라야 한다. 국감은 무책임한 폭로와 무책임한 은폐 모두를 용납해서는 안 된다. 감사 결과에 대한 사후 점검도 의무화해야 한다. 상임위원회별로 지적 사항과 시정 요구, 담당 기관, 이행 기한을 명시한 관리대장을 만들고 정부가 조치 결과와 미이행 사유를 정기적으로 보고하도록 해야 한다. 다음 연도 국감에서는 전년도 지적 사항의 이행 여부부터 점검해야 한다. 같은 문제가 반복되면 다시 지적하는 데 그치지 말고 예산 심사와 법률 개정, 제도 개선으로 연결해야 한다. 국감이 매년 같은 문제를 되풀이하는 연례행사로 전락해서는 안 된다. 국감 운영의 투명성과 의원의 책임성도 높여야 한다. 상임위원회별 감사계획과 주요 질의 주제, 감사 결과, 정부의 후속 조치를 국민이 쉽게 확인할 수 있도록 공개해야 한다. 정쟁으로 회의가 파행되거나 핵심 현안에 대한 심사가 무산됐다면 그 경위와 책임도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 의원의 활동을 단순한 출석률로 평가할 것이 아니라 정책 분석의 충실성, 제도 개선 성과, 후속 조치 이행 여부 등을 종합적으로 살펴야 한다. 물론 제도만 바꾼다고 정쟁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여야 지도부가 국감을 정파적 동원과 지지층 결집의 무대로 활용하는 한 어떤 규정도 편법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여당은 정부의 잘못을 무조건 감싸지 말아야 하고, 야당은 폭로 자체를 성과로 착각해서는 안 된다. 제도 개혁과 함께 정치권 스스로 정책 경쟁을 우선하는 책임 있는 태도를 보여야 한다. 국감 이후 예산안 심사와 민생 입법은 여야의 실력을 가늠할 시험대다. 경제 위기 대응과 취약계층 보호, 미래 산업 투자, 재정 건전성 등 핵심 과제를 놓고 근거와 대안으로 경쟁해야 한다. 예산과 법안을 정쟁의 인질로 삼는다면 국회는 민생을 말할 자격이 없다. 국정감사는 의원들의 정치적 쇼가 아니라 국민의 세금과 권한으로 정부를 검증하는 헌법적 장치다. 증인 채택은 객관적으로, 질의는 정책 중심으로, 지적 사항은 끝까지 추적해야 한다. 여야는 정쟁을 부르는 낡은 운영 방식을 뜯어고치고 국감의 성과를 국민이 체감할 수 있도록 바꿔야 한다. 국회의 경쟁력은 상대를 얼마나 몰아붙였느냐가 아니라 잘못된 국정을 얼마나 바로잡았느냐로 증명돼야 한다.
2026-10-12 11:59: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