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일보] 하나의 사업장 안에서 발생하는 산업재해의 책임 소재를 가르는 대법원의 법리가 새롭게 정립됐다. 같은 공간에서 유사한 위험에 노출되어 일했다면 고용 형태와 무관하게 산재보험의 보호 그늘 안에 있는 동료로 봐야 한다는 취지다. 이번 판결은 특수고용직이나 파견 노동자 등 복잡한 고용 관계가 얽힌 현대 산업 현장에서 산재의 사회적 안전망 의미를 재정의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대법원 1부(주심 마용주 대법관)는 근로복지공단이 굴삭기 기사 A씨를 상대로 낸 구상금 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로 판결한 원심을 깨고 공단의 청구를 기각했다. 이는 상고심 재판부가 원심 법원으로 사건을 돌려보내지 않고 직접 판결을 내리는 파기자판이다. 법적 해석의 여지가 없이 명확한 법리 변경에 따른 결론이라는 의미다.
사건은 2018년3월 부산의 한 공사 현장에서 발생했다. 굴삭기 기사 A씨가 철거 작업을 하던 중 튄 철근에 공사업체 소속 근로자가 다쳤다. 근로복지공단은 피해 근로자에게 보험급여 약 8000만원을 지급한 뒤 사고를 유발한 A씨를 '제3자'로 규정하고 구상권을 청구했다. 산재보험법 87조 1항에 따르면 공단은 제3자의 행위로 발생한 재해에 대해 보험급여를 지급한 경우 그 제3자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
1심과 2심은 기존 대법원 판례에 따라 공단의 손을 들어줬다. A씨가 피해 근로자와 직접적인 고용 관계 즉 '보험관계'가 없으므로 구상권을 청구할 수 있는 제3자에 해당한다고 본 것이다. 하지만 올해 1월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이 낡은 법리를 폐기했다. '제3자'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은 형식적인 보험관계가 아니라 '사업장에 내재한 같은 위험을 공유하는지' 여부가 되어야 한다고 선언했다.
A씨는 비록 공사업체와 직접 고용 계약을 맺지는 않았지만 그 업체의 지휘와 명령 아래 같은 공간에서 함께 일했다. 전원합의체는 이러한 경우 A씨 역시 사업장에 내재하는 위험을 피해 근로자와 함께 공유한 것이라고 봤다. 따라서 A씨는 더 이상 공단이 구상권을 청구할 수 있는 제3자가 아니라는 결론에 이른다. 이번 대법원의 판결은 이 새로운 법리를 구체적인 사건에 적용한 첫 사례다.
이번 판결은 산업 현장의 안전망을 더 넓고 두텁게 만드는 중요한 전환점이 될 전망이다. 복잡한 도급과 하도급 관계로 얽힌 건설 현장이나 다양한 형태의 노동자가 함께 일하는 제조업 및 물류 현장에서 발생하는 산재 사고의 책임 소재가 명확해졌다. 이제 기업은 직접 고용한 근로자뿐만 아니라 사업장 내에서 함께 일하는 모든 노동자의 안전에 대해 더 무거운 책임을 져야 한다. 위험을 공유했다면 책임도 함께 져야 한다는 상식이 법의 이름으로 확인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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